늘 그렇듯 앞 십분쯤 놓치고 시작한 케이블 무료 영화. 지친 몸으로 멍청하게 앉아서 보기 시작했는데, 19금이기 때문은 아니고, 낯 익은 배우들 때문은 아니고, 그저 좀 쉬고 싶어서 였다. 

음대 교수를 남편으로 둔 쥴리안 무어는 산부인과 의사에다 훤칠한 아들도 두고 멋진 집에서 산다. 중년의 위기랄까, 전 같지 않은 남편과의 거리감, 툭하면 반항을 일삼는 아들. 멋진 집은 괴괴한 기분이고 드디어 낯선, 하지만 묘한 매력이 있는 이십대 아가씨에게 남편을 유혹해 볼 것 (하지만 하지 않을 것을 바라면서)을 제안하고, 돈을 건넨다.  - 여기까지 아마, 내가 놓쳤을 테지만 상상이 가능하다. 

클로이와 무어가  마주 앉았다. 젊은 클로이는 빤히 무어의 눈을 들여다 보면서 깐족깐족, 조분조분, 남편과의 데이트를, 정사를 묘사한다. 그리고 무어는 화를 내고, 절망하고, 또 흥분한다.  

하지만 속으로는 클로이를 천한 것, 취급을 하고 접어두려는데, 아들 녀석도 클로이에게 끌리고. 어찌 어찌하다 클로이와 무어는 하룻밤을 보내고 칠칠치 못하게 자신의 집 주소, 일터, 남편의 개인 정보 등등을 다 드러낸다. 어찌보면 바보같은, 하지만 뭔가 찜찜한 표정의 클로이는 천진난만하게, 하지만 무섭게 들이댄다.  이제 해법은 남편과의 화해. 무어는 남편과 만나고 그 자리로 클로이도 부른다. 하지만, 여기서 이 영화의 유일한 반전이 짠, 하고 벌어지고. 영화는 그 파국으로 치닫는가 싶더니, 아아, 결국 너무나 허무하게 한 목숨이 진다. 너무나 산뜻하게, 그리고 편하게.  

마지막 장면, 그 알듯 말듯한 표정의 아들과 엄마, 그리고 남편. 그들은 모두 클로이를 잊기로 '편하게' 약속한 걸까. 그녀는 그들 중산층 가정의 감정의 사치, 아니면 감춰둔 인간의 본능 이런 것들의 사신 같은걸까. 생뚱맞게 엄마의 머리 장식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조용히 끝나는데, 세상에, 이렇게 찜찜할 수가. 스릴러도 아니고, 치정극도 차마 안 되면서, 이리 찜찜한 이유는. 클로이나 무어의 아들이 무어에게 외치는 그 "왜 나 조종하려고 해요? 왜 다 맘대로 시켜요?" 라는 대사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저렇게 미친 방향으로 나가는 무어의 '중년의 위기'가 뭔지 알기 때문이다.  

그래도 교훈을 하나 건졌다면, 절대 남을 믿지 말것. 젊은 여자애라고 무시하고 곁에 두었다간, 아직 그 나이에 가지지 못한 것을 탐내고 앙큼하게 변하기도 한다는 것. 클로이를 '천하고 어린 것'으로 하지만 입으로는 '예쁘고 젊은 것'으로 부르는 무어는 완전 무방비 상태였다. 클로이는 자기가 갖지 못한 큰 집, 가정, 그리고 원숙함을 소유한 무어를 진정으로 갖고 싶었을테지. 그녀가 절정의 순간에서 무어의 옷장을 바라보던 눈길은 내가 이 영화에서 딱 하나 맘에 들었던 장면이다.  어쨌든, 영화는 찜찜하고 기분 나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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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어린이/청소년 분야 주목할 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10월의 마지막 밤을...... 하는 청승맞은 노래도 생각나지 않게 바쁜 10월이 휙 지나갔다. 기대하고 고대하던 10월의 어린이/청소년 도서 중 나의 선택은 없어서 조금 (아니, 실은 많이) 섭섭했는데, 아직 숙제가 끝나지 않은 건, 우리 집의 두 녀석들의 난리법석 때문이다.  

왜? 왜? 왜?  

애 키우는 일이 이리 힘든걸까. 남의 집 애들은 말 잘 듣고, 공부 잘 하고, 키 크고, 건강만 하던데! 왜 내 아들은 다른 이들에게 '엄친아'가 될 수 없단 말인가!!!! 게다가 요샌 뭔 바람이 불었는지, 깨워야 겨우 일어나는 주제에 아침마다 머리 감고, 여드름 방지 폼 비누로 꼼꼼히 세수까지 한다. 저 정성으로 노트 필기나 수행 준비를 좀 하면 얼마나 좋을까.  

지난달, 녀석은 아직도 '어린이 명작 동화'를 붙잡고 있더니 뜬금없이 <알프스 소녀 하이디> 와 <어린아씨들>을 끝냈다. 수상하다. 기대했던 <합체>는 조금 남겨두었고 <명혜>는 다 읽었는데, 재미가 별로 였다고 했다. 독후감을 좀 썼으면 좋을텐데, 아무리 채근해도 독후감 쓰기는 별로란다.  

그동안 나온 책들이 알차다 몇 권만 고르기가 어렵다. 그래도, 역시 나이가 제목에 들어가면 손이 먼저 간다. 큰 아이와 동갑 만 열두살, 열 세살 다른 소년들의 모습이 역시 궁금하다. 소설에선 엄친아만 나오는건 아니다.  

   <비타민F>로 2000년 124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가 시게마쓰 기요시의 단편집. 열일곱 편의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야기의 주인공은 모두 초등학교 5학년생인 소년들이다. 소년들은 전학, 이별, 부모님의 이혼 등을 겪으면서 고독감과 쓸쓸함을 느끼기도 하고 그들의 좁은 세계에서 자기 나름의 고민거리 때문에 고민하고 성장해간다. 열일곱 편의 서로 다른 이야기 속에서 점점 성장해가는 소년들의 이야기가 유쾌하게 펼쳐진다.

이 책에 나오는 소년들은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일어나는 신체적 혹은 정신적인 변화, 친구들 사이의 사소한 다툼이나 경쟁, 어른들 사이에서의 문제, 이성에 대한 관심 등 다양한 문제들로 고민하고 있다. 저자는 이런 고민거리들을 어린 소년들의 입장에서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짧은 글 속에 묘사된 소년들의 섬세하고도 복잡 미묘한 심리 변화가 탁월하다 - 알라딘 책 소개글  

그렇다, 나는 '성장' 해 가는 아이의 모습이 보고 싶다. 그리고 아들이 자기가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또 하나 관심이 가는 책은 제목부터 재미있다. 

얼핏, 초등학생용 책 같지만, 쉬운 문장으로 책머리를 시작할 뿐, 내용은 중1 사회 <법>과 연결되는 부분이 많다. 청소년 교양, 이라는 부제도 맘에 쏙 든다. 청소년용 인권, 법, 경제 서적들이 중학생 1학년이 보기에 (우리집 아이의 소박한 독서 경력 탓이겠지만) 너무 어려워서 섭섭했는데, 이 책이라면 같이 읽고 생각을, 교양을 쌓을 수 있지 않을까. 목차에서 볼 수 있듯이, 법이 사람을 억누르고 간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호하고 편하게 하기 위해 있다고 풀어나간다. 어쩌면 체벌금지가 시행되는 요즈음, 법과 규제, 그리고 체벌이라는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찜. 했다.   

1.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 우리 생활 속에 살아 움직이는 법
2. 사람들이 질서를 원하는 이유는?
- 질서를 찾아 주는 나침반
3. 이름은 완전하고 형체는 불분명한 것?
- 정의를 꿈꾸는 사람들의 소망
4. 자유롭기 위해 자유를 제한한다고?
- 길을 잃지 않게 해 주는 가로수
5. 함께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 모두가 지켜야 할, 누구나 지키리라고 믿는 약속
6. 발견한 걸까, 만든 걸까?
- 하늘이 정한 법, 인간이 만든 법
7. 약속한 만큼 보호받는다?
- 삶의 설계를 도와주는 도구
  

또 한 권 눈에 들어오는 신간은, 중1 녀석에겐 너무 어려울 듯 싶다. 하지만 내가 읽고 싶어서 골라본다. 청소년 시리즈로 묶여 나왔지만, 작가 이름이나 책 설명은 제법 묵직하다.  

데이비드 알몬드, 닉 혼비, 이오인 콜퍼, 데보라 엘리스… 등 열 명의 작가가 모여 전체의 큰 틀 안에서 나머지는 각자 자신의 스타일대로 구상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작가마다 한 챕터씩 써서 모두 열 챕터로 이루어졌는데, 그 챕터가 모두 모여 다양한 세대의 이야기를 짤막하게 묘사한 모자이크 같은 소설이다 - 알라딘 책설명  

서로 다른 스타일을 가진 열 명의 작가들이 열 개의 이야기를, 하지만 질풍노도의 시기의 주인공들을 내세워 하나의 사진을 찍는단다. 클릭, 찰칵. 길고 긴 인생에서 눈 깜짝할 사이인 이 사춘기는, 클릭, 하고 지나고 나서야 그 화려한 사진을 볼 수 있겠지.  

아, 아들놈의 미친 사춘기는 언제나 끝날런지. ㅜ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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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스캔들이 드라마로 나온다고 했을때,  꽃미남 운운하는 얘길 들었을때, 책 잘 안 읽는 내 동생이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을 사서 읽는다고 했을때, 난 몰랐다. 내가 그 책을 내 돈 주고 사서 읽고, 내 돈 주고 유료 VOD 를 볼지. ㅜ ㅜ  

가을이다. 바람은 차고, 마음도 비고, 아들놈은 반항하고, 막내는 말 안듣고, 남편은 출장가고. 책은, 글자는 둥둥 떠서 도대체 읽히질 않고, .... 그래서 머리도 비어가고, 아.줌.마. 라는 호칭은 가슴에 써억 써억 칼자욱을 남기는 가을. 

워쩼거나 새로온 책도 규장각 .... 관련. 연결고리는 끊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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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내가 엄선한 세 권의 책을 보내주는 줄 알고 책을 목이 빠져라 기다렸는데, 아, 그게 아니라 민주주의, 다수결의 시스템으로 유아, 청소년 쪽의 다른 리뷰어들의 의견을 종합해서 두 권을 뽑아서 준다는 말이었다. 즉, 예전의 무작위 일주일에 두 권 대신, 여러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두 권을 한 달에 꼼꼼히 읽어야 된다.  

그리하야, 나의 이번 달 숙제는 아래 두권. 


왕실도서관 규장각에서 조선의 보물 찾기 / 신병주, 이혜숙 / 책과함께 어린이
조선 시대의 기록 문화는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 보기 어려울 정도로 아주 잘 되어 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어린이들이 알기 쉽게 조선 시대 기록을 담당하던 <규장각>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고 하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자랑스러운 우리의 투철한 기록 정신과 빛나는 기록 문화를 읽을 기회가 생겼으면 한다.
- 알라딘 8기 신간평가단 '슈퍼남매맘'님


열네살이 어때서? / 노경실 / 홍익출판사
아동문학가 노경실의 첫 성장소설로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열네 살 소녀의 성장통을 통해 우리 청소년들의 생각과 생활모습, 방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란다. 딸이 작년에 열네살이었고 그때 사춘기를 겪었기 때문에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 같다.
- 알라딘 8기 신간평가단 '선인장'님 

 내가 골랐던 책들이 아니어서 조금 실망이지만 7기 활동할 때 처럼 으악! 하고 던지고 싶은 책을 만날일은 없을 듯 해서 안심이다.  

자, 요즘은 나이를 언급하는 책들이 부쩍 눈에 띈다. 아들녀석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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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10-25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 저 열여섯의 섬 샀어요!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한창훈님의 작품이라 잽싸게 구입해 두었지요. 후훗 열 여섯의 섬을 보니 반가워져서 그만. ㅎㅎ

유부만두 2010-10-30 11:47   좋아요 0 | URL
전 그책을 한작가님 행사에 가져가서 아주 멋진 사인도 받아왔지요!
<**에게, 재미있고 아름다운 것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 한창훈 아저씨가>
ㅎㅎ 대단하죠?
 
줄리 & 줄리아 - Julie & Julia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미국 티비에서 보던 셰프 중 기억나는 세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쥴리아 차일드, 네이키드 쉐프 (영국인이지만) 제이미 올리버, 그리고 뱀! 하고 양념을 떨치던 에메릴 라가시. 

50년대, 빨리 편하게를 외치던 미국 식탁에 제대로 된 소스의 프랑스 음식을 소개한 쥴리아는 90년대엔 허리와 어깨가 한참 굽고 풍성하게 화면을 가득 채우는 할머니가 되었다. 그녀는 메인 요리사 옆에서 손가락으로 양념 맛도 보고,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고, 프랑스 단어도 불쑥 불쑥 꺼내면서, 늘 활짝 웃고 말했다. "부온 아뻬티!" 맛있게, 즐겁게 음식을 준비하고 즐기는 것이 그녀의 모토. 

영화는 쥴리아 차일드가 사십대에 남편의 부임지인 프랑스에서 시작한 그녀의 요리인생을 보여준다. 그리고 40여년을 훌쩍 건너뛰어 뉴욕의 허름한 피자집 이층에 세들어 사는 젊은 부인 쥴리가 요리를 즐기게 되는 과정을 그려낸다. 인터넷 블로그의 쥴리아 따라잡기, 라면 과하고 뉴요커 쥴리는 두꺼운 프랑스 요리책을 도전과제로 잡고 일년 동안 바지런하게, 그러나 때론 힘겹게 사백 여개의 요리를 만들어낸다. 영화는 식객 류의 요리 탐구보다는 그녀들의 웃음과 착한 남편들의 이야기다. 어쩌면 지극히 평범하고, 또 단순한 진리. 내 옆의 그가,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인생을 사랑하기. 그리고 그 사랑을 담는 정성스런 음식을 만들기. (칼로리 계산 말고 버터를 듬뿍 넣어서)

쥴리아 차일드의 행동과 말투를 어쩜 저리 잘 표현했는지!!! 다시 한 번 메릴 스트립에게 감탄했다. 메릴, 그녀는 내 영화라는 빵에 빠질 수 없는 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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