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latea: A Short Story (Hardcover)
매들린 밀러 / Ecco Press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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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인셀” 피그말리온의 우윳빛깔 대리석 여인 갈라테아 이야기.

현실의 여자들을 혐오하며 만든 순수 완벽 여인, 그 여인이 “인간”이 되었을 때 피그말리온이 제일 먼저 한 일이 뭘까? 그는 무엇을 간절하게 원하며 비너스에게 빌었을까? 바로, 육체를 가진 여인과의 결혼! 하지만 부인이 독립적인 “인간”이라는 것은 부정한다. 그는 인생의 동반자를 원한 게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고 부리고 주인 대접을 원했다. 대리석 여인의 탄생 순간을 못잊는 나이든 조각가의 집착어린 행동은 끔찍하다. 그는 갈라테아를 윽박지르고 급기야 가둬버리는데 <누런 벽지>와 피츠제랄드도 생각난다.

여혐 신화를 다시 쓴 매혹적 단편. 결말은 아쉬움이 남지만 여성의 침묵 위의 흔한 마무리 happily ever after 를 부순 게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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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챈들러의 <롱 굿바이>의 일본 드라마 5부작을 봤다. 2014년작. 주인공 레녹스의 장인 캐릭터는 꽤 비중있게 나오는데 소설 속 차가운 기업가가 아니라 '미래의 일본'을 비장하게 외치며 신문물 테레비 방송을 우매한 대중에게 던지는 늙은 너구리 정치인이다. 그리고 생뚱맞게 화면엔 2020 도쿄 올림픽 로고가 슬쩍 지나가며 '이제 (1960년) 올림픽도 열릴거야' 라는 기자의 나레이션이 나온다. 하지만 드라마 배경은 일본 도쿄, 소설의 1950년대 중반이라는 거. 현지화를 미묘하게 덜 해서 미쿡 셋트장 기분이 많이 나고 기모노 입은 사람은 안 나온다. 2020년이 어쩔지 이때는 몰랐지.


소설의 비밀스런 주인공 테리 레녹스에 코유키 캐스팅은 꽤 어울린다. 책임감 없고 속없는 말간 얼굴. 대신 레녹스의 얼굴 흉터와 백발은 작은 칼 자국과 불편한 다리로 바뀌었다. 도망자가 가는 곳 멕시코는 대만이 되었다. 이 드라마에서 보이는 대만에 갖는 일본 사람들의 은근한 향수와 편안함은 당혹스럽다. 얼마전 본 에키벤 만화의 대만/오키나와 편에서도 대만의 '일본 통치 시대' 건물과 기차에 대해서 (뿌듯한 얼굴에) 향수를 머금고 설명하는 일본인 캐릭터가 나온다. 이런 뻔뻔한 장면이 꽤나 많이 나와서 당황한 건 오히려 한국의 독자, 나. <롱굿바이>의 미국인 탐정이 멕시코(와 구별하지 않는 남미 여러 나라들 출신의)사람을 대하는 우월감을 일본판 드라마에서는 대만을 상대로 펼치고 있다. 예전 '일본 통치 시대'는 따뜻한 기후와 열대 난초꽃 속의 순수한 첫 사랑이다. 일본 드라마/영화의 단골 주제, 첫사랑 い, 그 좋았던 시절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 새로운 올림픽의 새일본으로 나아간다는 결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징그럽다. 과거를 잘 정리하고 결산을 해야지 미래도 있는 거라고. 근데 어제 또 우루루 야스쿠니 신사에 갔더라?

욕하면서 완주한 일본판 드라마를 챈들러와 분리할 수 밖에 없었던 더 큰 이유는 바로 주인공 탐정 (아사노 타다노부, 극중 이름은 까묵어뿟다)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소설의 말로에게 백점을 준 건 절대로 아니다. 언젠가 그를 향한 나의 욕 바가지 페이퍼를 쓰려고 벼르고 있다) 일본인 주인공은 껑충한 키의 의리있는 매력남 말로 보다는 여느 일본 탐정 드라마의 다부지고 끈질긴 명탐정이었고 분위기만 멋진 사무실 구석에서 정성스레 사이폰 커피를 만드는 그는 ...그래, 하루키 상이었다. 파스타도 만들 것 같고. 키나 외모가 별로인데 여자들이 접근을 하고, 심지어 대부호의 맏딸은 탐정더러 女子し(온나타라시, 여자 꼬시는 매력있는 사람)라고 말한다. 정말 하루키 주인공 같네. 하루키의 소설 롤모델이 챈들러였다더니 겹치는 그림이 꽤 많이 나온다. 바에서 남녀가 함께 마시는 김릿의 색은 영롱하고 배경으론 재즈가 흐른다. 사람들이 하나, 둘, 셋 죽는다. 탐정은 담배를 아주 많이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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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3-04-22 1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부지고 끈질긴 명탐정인데 ‘여자 꼬시는 매력‘이라니ㅋㅋㅋ 커피도 잘 내린다고요? 하루키가 떠오를 수 밖에 없는데요 ㅎㅎㅎㅎ

유부만두 2023-04-23 11:19   좋아요 0 | URL
네 설거지나 청소도 바지런하게 합니다. 하루키에요 딱. (마라톤은 안함)
 

6학년에 올라가기 직전 여름, 마거릿네 가족은 뉴욕 맨허튼에서 뉴저지로 이사한다. 뉴요커 친할머니와 헤어지는 것이 아쉽지만 아파트 대신 마당이 있는 교외지역에서 새 친구들도 사귀며 적응하는 마거릿. 주말이면 교회나 시나고그로 가서 신앙 생활을 하는 “평균” 미국인과 다르게 마거릿의 가족은 무교다. 그래서 자유롭게 혼잣말 처럼 (어쩌면 상상친구 대하듯, 안나가 일기장에게 하듯) 마거릿은 하느님께 속내를 털어놓는다. 개신교 집안 엄마와 유대교 집안 아빠가 결혼 이후 각자의 가족과 어떤 갈등과 결별을 겪어왔는지, 친구 오빠의 친구를 보면 맘이 어떤지, 같은 반의 키크고 성숙한 친구에게 갖는 묘한 적대감은 어떤 느낌인지.


실은 6학년 마거릿은 2차 성징과 터져오르는 호기심을 온 몸과 맘으로 또래들과 아슬아슬하게 겪는 중이다. 이것만 해도 버거운데 종교와 신앙을 학교에서 탐구 주제로 삼아 교회나 시나고그를 갔더니 열렬하게 전도하는 사람들, 양가 조부모님들은 흡사 종교 전쟁을 시작하는 것 같고, 주위의 남학생들의 저질 행동과 소문은 참기 어렵다. 마거릿의 나날은 바람 잘 날 없이 태풍 속으로 착착 걸어가는 것만 같다. 솔직히… 이 책은 부모들 마음을 조마조마 꽤 불편하게 만든다. 그래서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는데…

이 책은 6학년 아이의 생활 속, 마음 속, 몸 속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모습을 위험하리만치 직설적으로 그려내지만 그 해법을 강요하지도, 뻔한 화해를 만들어 내지도 않는다. 그 덕에 어린이/청소년책의 대가 주디 블룸의 1970년 (미국) 최우수 어린이 도서는 위험한 책 “금서”의 아우라를 뿜어낸다. 책의 마지막에도 마거릿은 온갖 갈등의 원인을 거의 그대로 갖고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어른도 마거릿에게 섣부른 조언을 할 수 없다. 대신 아이의 힘을 믿고 지켜보자고 생각하며 불안감을 조금은 내려놓는다.

드디어 이 책이 53년이 지나서 영화로 나온단다.



내가 하느님에게 실제로 말을 걸고 있다는 것을 엄마아빠는 아직 모른다. 그러니까 만약 내가 하느님에게 말을 건다는 이야기를 하면 두 분은 내가 광신도나 된 줄 아실 거라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걸 비밀로 했다. 나는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도 하느님에게 말할 수 있다. 그래야 할 때에는, 엄마는 ‘하느님‘ 이란 사람들의 멋진 착상이라고 말한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있으니까. - P28

하느님, 거기 계세요? 저 마거릿이에요. 교회에 갔다 왔어요. 하느님, 그 곳에서도 특별한 것을 느끼지 못했어요. 뭔가 느끼고 싶었는데 말이에요. 저에겐 왜 그곳이 하느님과 별관계가 없는 것같이 느껴질까요? 다음번에는 더 열심히 노력할게요.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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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3-04-22 1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하나님에게 혼잣밀이라요. 이건 극도의 신심이 아니면 불가능한데ㅋㅋㅋㅋㅋ 저 이 책 찾아봐야겠어요^^

유부만두 2023-04-23 11:19   좋아요 0 | URL
신심... ㅎㅎㅎㅎ
어린이 도서지만 타부를 정면에서 다루는 책입니다. 추천해요!
 

<갈대 속의 영원> 읽기 시작.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에게 한 유혹의 선물은 책이었다거나 ‘일리아드’ 덕후 어린 알렉산드로스는 책을 안고 잤다는 등 고대 도서관과 책 이야기로 현대의 한줌 독자들(우리)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다. 기원전 3세기의 말 달리는 책 사냥꾼 무리를 그리는 프롤로그는 더욱 <진리의 발견> 분위기도 풍기는데 책은 하드커버가 아니라 덜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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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년 외교관 경력을 뒤로하고 지금은 다른 일을 하는 저자는 현 일본의 차분하고 안정된 분위기가 부럽다고 2017년 한 책소개 방송에서 말했다. 하지만 이 책은 17-19세기 중반의 다이내믹한 에도 시대의 경제적 변화와 개혁이야말로 일본이 근대 역사의 “우등생”이 된 배경임을 보여준다.
에도 막부 260년 정치적 평화 시기(.. 다른 일본사 책 보니까 아니네.. 하긴 어느 나라가 260년 동안 내란 등의 갈등이 없겠나)의 일본 경제 사회 문화사를 풍부한 사진 그림과 함께 재미있게 만날 수 있다. 미야베 미유키 에도 시리즈를 떠올리면서 조닌과 상인, 화폐와 참근교대제 부분을 읽었다. 바로 이 시기가 메이지 유신을 위한 오랜 빌드업이었던 것이다. 이토록 중요한 부분을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학교에서 잘 배울 수 없었던 건 세계사 수업의 동양사 17세기 이후는 기말고사 전에 급하게 정리하기 때문이리라. 일부러 무시하거나 외면한 게 아니라.
맺음말에서 역사 의식과 ‘억울’에 관련된 국민(성) 차이, 제국주의 열강의 외교 체결 ‘사정’, 일본의 역사교육에 대한 저자의 너그러운 의견 등은 정리되지 않은 저자의 갑갑한 마음의 반영으로 보인다. 일본은 남탓 안하고 자신을 바꾸어서 해냈다, 로 읽혀서 과연?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면 나의 오독인가. 게다가 저자의 이력 만큼이나 색다른 일본식 한자어 표현이 많아 읽으면서 여러번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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