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거인"의] 원작자인 이사야마 하지메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거인의 모티브는 어디서 온 것인가요? 라그나뢰크며 오딘이며 북유럽의 거인 신화를 머릿속에 그렸을 기자에게 이사야마는 전혀 엉뚱한 현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전에 넷카페에서 심야 알바를 한 경험이 있는데 그때 상대했던 취객들을 모티프로 삼은 겁니다. 정말 무서웠어요. 같은 인간인데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 특히 무서웠습니다. 거인은 다름 아닌 왕(손님), 취객의 갑질에서 잉태된 것이었다.

 

 

 

작가의 눈 코너는 지난 주부터 입소문을 탔던 그 글, 박민규 작가의 <진격의 갑질>이 힘차게 열었다. 아, 그렇구나. 괜한 데다가 정열, 분노를 퍼붓고 멍청이처럼 굴지 말아야지. 벽을 쌓아올릴 때 구경만 했던 착한 아이였던 내가 진격의 거인 앞에선 도망가기 바쁘구나. 이제라도 적어도 반성은 해야될텐데. 윤이형 작가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 더 공감을 하는걸까..) '그물'의 의미를 조근조근 말해준다. 편가르기에 혹, 하고 넘어가는 단순한 나란 인간.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책을 덮어버리는 우매한 짓을 저지르지 말자고 하는 최민우 작가의 글까지. 작가의 눈, 코너 정말 좋다. 불편하게 있으라고, 생각 좀 하고 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작가의 일이겠지. 그들이 더 섬세하고 민감하게 알아채고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18/400. 어깨동무 (정훈이 외)

우리 주위에서 만날 수 있는, 하지만 무시하고 마는 인권이야기를 여러 만화가들이 짧은 이야기로 만들어 묶었다. 그림체 만큼이나 이야기 전개 방식이 다양하다. 정훈이는 역시 씨네21의 영화 패러디 만화 같은 느낌으로 거대기업의 노동자 학대를 다뤘는데, 병상의 남기남 회장님 장면이 절묘하다. 사교육에 치여 버둥대는 학생이나 학부모의 이야기를 읽는 나는 그저 갑갑한 마음에 한숨만 내쉴 뿐이다. 책 마무리를 맡은 유승하의 인권 역사는 의미 깊다. 이 작품만이라도 아이들과 함께 읽고싶다. 하지만 어쩐지 엉성한 느낌이 든다. 조금 더 이야기를 진행시켰으면, 조금 더 번득이는 재치와 아픈 비평을 보았으면, 싶은 마음은 욕심인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5-03-13 2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15 15: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 열망에 너무 강하게 사로잡혀서 자기 자신도 스스로를 어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야. 그들은 어떻게든 그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지. 그 열망을 충족시키려면 다른 모든 걸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 거고."
"자기를 사랑하능 사람까지도 말이에요?"
"물론이지."
"그렇다면 단순한 이기주의에 불과한 것 아닐까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군."
"래리가 죽은 옛날 언어를 배워서 뭐하려고 그럴까요?"
"어떤 사람들은 다른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지식 그 자체를 갈망하기도 해. 그건 멸시당해야 하는 욕망은 아니야."
(14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빵집 앞에 다다르자 초콜릿빵이 먹고 싶지 않느냐고 뤼크가 물었다. [...] 우리 둘은 초콜릿빵과 커피 에클레르를 단번에 먹어 치웠다. -- 마크 레비 <그림자 도둑>

 

 

아침 7시에 문을 여는 그 빵 가게에서는 갓 구운 빵을 살 수 있다.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남편 - 이 사람은 빵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 나는 이곳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빵을 한 개 먹는다. [...] 빵이 담긴 봉투를 들고 돌아갈 대는 기운이 넘친다.

                                            -- 에쿠니 가오리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남자와 그의 브뢰첸. 얼마나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그림이란 말인가! 물론 뒤에서 수군거리는 이들은 어디에나 있다. "어쩐지 저 남자에 비해 너무 어려 보이지 않아? 언제고 브뢰첸이 나이를 먹어 신선함을 잃어버리고, 그때 마침 저 남자가 예쁜 크루아상을 만나게 된다면? 그렇게 되면 가여운 브뢰첸에게는 관계의 빵 부스러기만 남겠지..." 그러나 우리의 신뢰는 그들의 구설보다 강했다.

                                           -- 호어스트 에버스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

 

 

어머니가 손수 만드신 새 잠옷, 모직 양말 두 켤레, 위에 초콜릿을 끼얹은 렙쿠흔 한 봉지, 남태평양에 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책 한 권, 스케치북,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고급 색연필 한 상자가. 마르틴은 너무나 감격해서 부모님에게 입을 맞추었다.

                                         -- 에리히 캐스트너 <하늘을 나는 교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17/400. 유럽, 빵의 위로 (구현정)

얼마전 읽었던 <빵의 세계사>가 빵을 만드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고 서문에 나와 있) 었다면, 이번 책은 빵을 먹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유럽이 요즘엔 부쩍 가깝게 느껴지는데, 그건 동네마다 한 두 개씩 보이는 빠리.... 이라는 빵집 덕분은 아니겠지. 이번 책에는 빠리....나 뚜레...에서 보다 훨씬 더 새롭고 다양한 유럽의 빵들을 진열해 놓았다. 이 책은 그러니까 유럽에 가고 싶은 사람이 (그게 바로 나!), 빵 냄새와 케익의 달콤함과 진한 커피를 원하는 사람이 (그러니까, 나!), 새로운 빵과 그 빵에 깃든 따뜻한 이야기도 궁금해하는 사람이 (역시, 나!) 읽기에 좋은 책이다. 가볍다면 가벼울 수 있는 저자의 개인 이야기, 블로그 글에서 흔히 보이는 예뻐요, 좋아요, 풍인 글인데 얄미울 정도는 아니고 그 빵들을 먹고, 그 케익들을 먹고, 그 커피와 차를 즐긴 저자가 부럽긴 했다....몇몇 소설 작품 속에 빵이 인용되는 부분을 읽을 수 있는데, 이 역시 나같은 독자를 위한 것이리라. 저자나 나는 이렇게 빵에 대한 마음이 너그러운, 아니 '나이브'한 편이었다보다. 궁금하면 먹고, 맛있으면 먹고, 하지만 우리에겐 밥이 있으니까, 이런 태도. 그래서 책 마무리는 울름에서 만난 '빵문화 박물관'은 이 책의 밝음과 행복함에대한 반성이 "최소한" 으로 담겨있다. 유럽인들에게 빵은 생존이었다. 그동안 저자가 끼니 대신하는 빵보다는 후식과 간식으로서의 빵, 케익에 집중한 것이 살짝 부끄러웠을까. 하지만 빵은 위로가 맞다. 배고픔을 달래고 아쉬움을 달랜다. 또 빵은 유혹이다. 봉지에 남겨둘 수가...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식탁 위 봉지에 담겨있던 밤빵을 다 뜯어 먹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