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사용 설명서 징검다리 동화 16
공진하 지음, 김유대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중증 장애아 유진이의 이야기를 읽는다. 혼자서는 일어서 걷지도 화장실에 가지도 못하는 아홉 살, 이제 초등 2학년 생. 집 근처 학교 대신 자동차로 한참 가야 있는 특수 학교에 다니는 아이. 고개는 자꾸 옆으로 가고 침은 흥건하게 흐른다. 잠을 자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싶어도 베개에 파묻혀서 숨이 막히기도 한다. 엄마, 라는 발음보다는 쉬운 '이여'로 엄마를 부른다. 화장실 용무를 도와주는 자원봉사자의 몸에, 휠체어 위에서 쉬를 해 버리기도 한다. 같은 반 친구는 독한 약기운에 계속 졸거나, 소리를 지른다.

 

엄마는 유진이를, 유진이도 엄마를 사랑한다. 엄마는 아이의 울음이나 투정에 노련하게 유머로 대처한다. 아이를 감추며 변명하는 대신 아이를 세상에 설명하고 아이와 소통하는 방법을 주위와 나눈다. 엄마는 학교 버스에 아이를 태우고 혼자 숨 돌릴 틈을 겨우 갖는다. 밤늦게 까지 자영업을 하는 아빠는 아이에게 덤덤한 애정을 보이는데 여느 아빠와 다르지 않다. 아이는 새로운 선생님과 만나서 물리치료를 즐기는 법을 배우고, 이야기 듣기를 즐기고, 글씨 표시하는 법으로 속 이야기를 꺼낸다. 비장애아이들과 함께 숲속에서 열리는 캠프에도 엄마 없이 참여한다. 위험 없고 사고 없는 성장은 없고, 동굴이나 섬에서 없는듯이 살 수도 없다. 유진이는 동굴에 숨는 대신, 동정어린 시선과 혀차는 소리 대신 인사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오늘도 자란다. 데굴데굴 도토리는 조금씩 상수리 나무로 커간다.

 

이 모든 이야기가 귀엽고 밝고 힘차게 그려진다. 장애인은 불쌍한 존재이니 도와주어야 한다고, 그래서 비장애아인인 내가 좋은 사람이라 확인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유진이 엄마의 고생은 눈에 보이지만 천천히 엄마 없는 공간의 아이를 그려내서 감탄했다. 아직은 장애아 엄마들이 '죄인 혹은 투사'가 되는 우리나라 상황에 마음이 아프다.

 

 

<장애와 함께 크는 사회> 엄마의 고군분투, 우리 아이가 '섬'이 되지 않게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2111634001&code=9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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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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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와 수잔의 두 이야기를 읽었다. 수잔은 전남편 에드워드가 보내온 원고, 토니가 주인공인 소설을 읽어가는 상황. 두 이야기가 아주 다른 톤의 문장과 어휘로 자신의 이야기를 끌고나간다. 묘하게도 수잔의 이야기 속에 자리 잡은 토니를 만나는 게 아니라 독자인 나는 수잔과 동등한 입장에서 따로 토니를 만난다. 그러니 자연스레 수잔의 행동과 싼티나는 말투에는 박한 평가를 내리면서 토니의 이야기 몰입을 방해하는 수잔에게 짜증이 나기도 한다.

 

원고를 읽고 수잔은 현실로 돌아와 남편 아놀드의 행동거지와 그의 의뭉스런 계획에 넌더리를 내면서 원고를 보내온 전남편의 의도를 고민해본다. 그는 왜, 이제서야, 이 소설을 보냈을까? 복수? 무엇에 대한? 깔끔하거나 노골적인 연결점은 보이지 않는데, 그저 관심과 시간을 잡아두었다는 것만 의도했다기엔 너무 착하잖... 가만히 토니를 따져본다. 어쩐지 초반부터 공식대로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아, 싫은데 끌려가서 읽고 있는 나와 수잔. 앞이 보이는 소설인데도 손끝이 움찔거리게 무서...운데 툭 수잔이 끼어든다. 하지만 초반 그녀의 설레발이 신경에 거슬리기도 하고. 그 정도는 아니잖아? 왜이래, 처음 스릴러 읽는 사람처럼. 난 별로 겁 안 먹었거등?

 

공식을 따라가는 소설인데도 토니는 특이하다. 자신만 생각하고 자신을 잃을까, 앞을 못 내다볼까 걱정한다. (가족을 잃어서 그는 정말 슬프고 괴로운가, 그는 진짜 피해자일까, 의심할 정도로) 그는 범죄 현장에서도, 사건 후 집에 돌아와서 친척이나 동료, 학생들을 상대할 때도, 계속 주저하고 고민하다 마지못해 행동에 나선다. 반면 레이와 형사 엔더스는 곧바로 행동한다. 토니는 고민을 할 때도 혼자 있지 못한다. 부인 로라를 불러내고 딸 헬렌을, 그리고 형사나 레이를 불러내서 계속 묻는다. 어째야 할까, 어떻게 다음 행동을 해야할까. 이게 '나' 인가. 독자에게 사인을 계속 보내는 토니. 자신의 이름과 직책을 주문처럼 되뇌이며 자신을 잃지않으려 애쓰지만 그가 결단을 내려 행동에 옮기는 순간, 챕터는 끊기고 공백이 생긴다. 그 공간에 독자가 들어선다. 그렇지, 내가 대신 해줄게, 너의 복수, 너의 욕망, 그리고 너의 비겁한 고백을. 하지만 쉽지 않게 수잔도 끼어든다. 실은 자기가 더 알고있는 에드워드의 이야기가 있다고. 그는 쫌 아니 많이 별났다고. 그의 이야기가 예전엔 후지고 유치했다고. 그러거나 말거나. 이야기를 계속 읽게 냅두라고.

 

마지막까지 휘둘리는 토니는 무얼 보고, 보지 못하고 사그러지는 걸까. 이야기의 틀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는 주인공 토니. 그가 복수의 칼을, 아니 총을 휘두루는 건 '자신의 인생을 망친' 것에 대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였대. 어둠 속에서 토니는 미친 형사와 미친 여자들, 그리고 멍청한 양아치들에 맞섰다. 그리고 속으로 외웠지, 내 이름은 토니 헤이스팅스, 수학과 교수. 내가 복수라고 부르니까 이건 복수의 잔치야.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게 소설 읽기의 의미일까. 책을 덮어 책장에 꽂는다. 당분간 '한낮에' 다른 이야기를 읽을 때라도 토니 헤이스팅스, 수학과 교수가 생각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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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4-05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보다 <녹터널 애니멀즈>라는 영화가 비주얼
적인 면에서 더 소설 속의 영화, 영화 속의 영화
처럼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니 영화는 미처 다 보지 못했네요...

유부만두 2018-04-05 16:56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그런데 영화는 예고편만 봐도 무서워서 엄두가 안나네요. 소설은 꽤 좋았어요. 별 다섯 개 주기에는 조금 꺼려지고 제가 작가의 트릭 혹은 의도를 다 파악하지 못한 듯 하지만 ... 좋은 독서 경험이었어요.

목나무 2018-04-05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작은 안 읽고 <녹터널 애니멀즈> 영화만 봤더랬죠.
영화는 음~~ 첫장면부터 충격적이었고.....ㅎㅎㅎ;;;;;
끝까지 보기가 참 힘들어서 겨우겨우 봤던 영화로 기억이.....;;;;;
영화때문이라도 원작은 볼 생각은 못했는데.. 음음... 볼까 말까나.... 고민이...

유부만두 2018-04-05 16:57   좋아요 0 | URL
소설은 꽤 재미있게 여러 생각도 하면서 읽었어. 추천. ^^
물론 무섭지... 영화도 끔찍하겠더만... 그대는 쎈 독자니까 감당할거야.

psyche 2018-04-16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이 책이 별로더라구. 읽고나서 빨책도 들었었는데 내가 작가의 의도를 잘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유부만두 2018-04-16 07:48   좋아요 0 | URL
전 수잔 부분은 너무 뻔하고 싼 티나서 싫었어요. 토니 부분도 너무 무섭고.
그런데 토니의 캐릭터와 서술이 색달라서 읽는 동안엔 몰입해서 읽었어요.
작가의 의도 .... 그런 게 있었겠죠? ;;; 저도 모름.
 

살림은 왜이리 끝이 없고 재미도 없는지.... 재미있게 살림 하고 사업도 하는 하루미 상의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난 사람은 따로 있구나'였다. 예쁜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남편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깔끔한 집을 유지하고 방송에서 살림과 요리 일을 하는, 지금은 육십오세 현역 주부, 아니면 사업가. 그녀의 집을 살짝 구경하며 이야기를 듣는 구성의 살림 (뽐뿌는 커녕 포기를 부르는) 책.

 

그녀의 팁 중에서 '15분 집중' 법은 배울만 하다. 딱 15분만, 청소건 요리건 다른 어느 집안일이라도 집중해서 하기. 몰입하기. 책읽기라면 할 수 있는데요....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고기를 무쳤다. 이킬로. 파를 채썰었지. 한단. 책을 샀지. 부엌 창문 밖에는 어제까지 얌전하던 벚꽃들이 잔치중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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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8-04-04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 언니 손 큰 거 보소. . ㅋㅋ
15분 집중이라. . . 전 사무실일만 그나마 집중 나머진. . . . ;;;;;;

유부만두 2018-04-04 21:36   좋아요 0 | URL
2킬로 갖고 뭐 그러우~ 난 보통 3-4킬로씩 재우는데. 큰애가 군대 가고나선 양이 줄었음.
15분 집중하면 은근 많은 일을 할 수 있던데... 사무실 격무에 시달리는 그대에겐 그저 15분 휴식을 짬짬이 주고 싶어.

단발머리 2018-04-04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림에 대한 책을 보고 계시니 유부만두님은
진정한 살림꾼!입니다~~
저는 고기 이키로는 안 되구요.
파썰기는 한 번 해볼려구요~~ ㅎㅎㅎ
파 사러 갑니다, 여기 파 한 단이요~~

유부만두 2018-04-04 21:38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이래서 알라딘 서재 최곱니다.
책 블로그에서 살림 이야기하면 칭찬이 쏟아지지요! ^^
파썰어서 얇게 펴서 얼리세요. 덩어리 지면 잘 안 떼어지고 ... 얼었다 녹은 파 만큼 난감한 식재료가 없어요. (.... 다 아시는 거죠?;;;)

고기 이키로는 훗, 애들 키우는 집에선 뭐....

moonnight 2018-04-04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2킬로@_@;;;; 저도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에요. 포기를 부르는^^;

유부만두 2018-04-04 21:39   좋아요 0 | URL
살림 포기를 하면 마음이 가벼워 지거등요. ㅎㅎㅎ
결혼한지 25년차가 이럽니다.
 

빵이 한숨을 쉰다, 는 문장에서 내 맘이 무너졌다. 바게트 빵을 사왔다.

 

급할 땐 전자책. 예상보단 (어쩌면 리뷰를 내 맘대로 읽은 탓이겠지만) 인생이야기가 더 맵고 짜다. 위탁가정을 전전하는 열살도 안된 남매 이야기는, 겨우겨우 힘들게 읽었다. ('멀어도 얼어도 비틀거려도'가 떠오르기도 하고) 책을 다 읽도록 아이 엄마나 아빠에대한 박한 평가는 바뀌지 않았다. 나이들어 부모를 이해하게 된다,는 뻔한 이야기는 얼마나 잔인한가. 아이들은 그냥 계속 당하고 다치고 원망도 못한다니. 가정에서도 집 밖에서도 취약하게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은 그 분노를 자신에게 터뜨리고 결국 자신의 삶을 망가뜨린다. 어른은 어른대로 휘청거리고 그 사이에서 시간이 지나면 몸만 훌쩍 자라는 아이들.

 

그 모든 아픔이 부엌에서, 음식에서 치유되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샤의 부엌에서도 내 마음이 따뜻하게 녹아내리지 않은 것은 사샤의 고집 위에서 진행되는 그녀의 '다국적 음식 탐험'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샤 엄마의 식초와 오일 처럼 (식초는 소독을 한다며 중국 음식 위에 뿌려대는 엄마) 그 고집스러움은 책 전체에서 '이건 내 책이에요, 비판은 사절'이라는 분위기를 풍긴다. 헛헛한 그녀의 인생과 마음에 시작한 블로그니까 그녀가 바라는 건 칭찬과 응원이다. 남편과의 만남을 로맨틱하게 '문학적으로' 그려내고 싶어한 저자의 귀여운 욕심은 불안한 마음을 감추는 방식인지도 모르고. 하지만 나는 블로그가 아닌 책을 읽었으니 그 기대치가 다를 수 밖에. 영화 같은 전개에 딱맞춘 거대한 파티 장면은 눈에 보일 것 같다. 정말 영화로 만들면 재밌겠네 했다가, 초반 아이들의 고생스러운 이야기에 고개를 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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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3 14: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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