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 지니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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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28> 에서 이미 지니가 눈을 떴는지도 모르겠다. 교차되는 여러 생과 선택들. 힘찬 문장과 생생한 장면 속에서 정신없이 달렸다. 하지만 설명이 너무 많아 종종 김이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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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9-05-26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벌써 읽으셨나이까. 빠르십니다. ㅋㅋ
리뷰를 보니 역시나 재미는 보장된 소설인 것 같네요. ^^

유부만두 2019-05-31 06:30   좋아요 1 | URL
실은..재미는 전작들 보다 덜해. 따뜻하다고 홍보를 하긴 하던데, 실은 ‘지니‘가 그냥 도구로 쓰인 느낌이고 작가의 개입, 설명이 너무 많아서 좀..

2019-06-01 0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01 06: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삼청동 학고재에서 지난 주말까지 열렸던 '우리가 되찾은 천재 화가, 변월룡' 전에 다녀왔다. 두 번 갔다. 삼 년 전 전시회를 못봐서 아쉬웠는데 다행이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미완성) 초상화 때문에 갔다가 다른 인물화에 더 마음을 빼앗겼다. 특히 여성 노동자의 당당한 풍채와 온화한 미소에 어쩔줄 몰랐다. 


1990년대에 페테르부르그에서 변월룡의 그림을 만나서 그의 생애와 그림을 되찾아 전시회까지 성공시킨 '위인' 문영대 교수의 책은 '기가 막힌' 역사와 그것을 온몸으로 살아낸 연해주 고려인 출신의 변월룡을 보여준다. 저자의 문장은 다소 투박하고 조국과 어머니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지만 읽다보면 절로 나도 조국과 어머니를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가 느꼈을 좌절과 .... 사랑이라니. 그의 그림을 생각하고 동료 예술가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뻐근하다. 





러시아 이름은 '펜 바를렌(Пен Варлен)'으로, 한국 이름 변월룡을 러시아어로 그대로 옮겨 읽은 이름이다. 일제강점기였던 1916년 9월 29일 연해주 쉬코토프스키구()에 있는 유랑촌에서 출생했다.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변월룡은 어릴 때부터 그림에 소질을 보였다. 12세가 되던 1928년 블라디보스토크 8호 모범 10년제 학교에 입학하였고, 21세가 되던 1937년 스베르들로프스크(현 예카테린부르크)에 있는 미술학교에 들어갔다. 이때 처음 제대로 된 미술교육을 받았는데, 남다른 재능을 발휘하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다. 이후 1940년 담당 교수의 권유로 당시 최고의 예술대학으로 꼽히던 '레닌그라드 회화·조각·건축학교(독·소 전쟁 이후 일리야 레핀 회화·조각·건축 아카데미로 개편)에 입학하였다. 대학 과정과 대학원 과정을 모두 마치고 1950년 데생과 조교수에 임용되어 학생들을 지도하였으며, 1951년 미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1953년 데생과 부교수 자리에 올랐다.

같은 해, 소련 문하성의 지시에 따라 북한 교육성 고문관으로 파견되었다. 기존 북한의 미술교육 체계를 개선하고자 동양화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하였고,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을 북한에 전수하는데 기여하고자 하였다. 처음 체류 기간은 3개월로 예정되어있었으나, 평양예술대학의 학장직을 맡으면서 체류 기간이 15개월까지 연장되었다. 이 기간 동안 미술이론가 김용준·한상진, 화가 정종여·문학수·배운성, 작가 한설야·이기영, 무용가 최승희 등 북한의 예술인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한국전쟁 휴전 당시 판문점에서의 북한 포로 송환 모습 등의 역사기록화를 비롯하여, 평양 대동문, 개성 선죽교 등 다수의 풍경화도 그렸다. 건강 상의 문제로 러시아로 돌아가 머물던 중 북한으로부터 영구 귀화를 요구받게 된 변월룡은 이를 거절하였고, 그 이후로 북한에 입국이 거부되어 더 이상 방문하지 못했다.

1954년부터는 레핀 미술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작품 제작에 힘썼다. 1961년 이후로는 유럽 대륙을 여행하며 여러 작품을 남겼다. 1977년 데생과 정교수로 승진하였으나, 1985년 건강이 나빠지면서 퇴직하였다. 한국과 러시아의 수교를 4개월 앞둔 1990년 5월 25일 74세를 일기로 뇌졸중으로 사망하였다. 유언에 따라 그의 묘비에는 한글로 이름을 새겼다.

유화, 판화, 데생, 수채화, 포스터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으며, 특히 동판화는 변월룡의 예술성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내용적으로는 인물화, 풍경화, 역사기록화 등을 주로 남겼다. 2016년 3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한국 근대 거장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가 이루어진 바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변월룡 [Pen Varlen, 邊月龍]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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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9-05-25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난 주말 이 전시 다녀왔는데 정말 정말 좋았어요.
유화도 데생도 동판화도 전시를 보는 내내 감탄하고 또 하고...
가보지 못한 그리고 언제 가볼지 알 길 없는 평양에 대한 그림들도 인상적이었어요. 저는~
정말 이번 전시 놓쳤으면 후회할뻔 했어요! ^^

유부만두 2019-05-31 06:32   좋아요 0 | URL
참 잘 했어요!!!!

그림들도 정말 멋지고 좋았는데 책을 읽으면서 그의 인생과 역사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됬어. 책도 읽어보시길 추천함!
 

하이드님의 글을 보고 따라 읽었다. 그냥 재미로 읽는 책 때문에 정작 읽어야 할 책들을 미루는 죄책감, 쌓여있는 책들에도 불구하고 신간에 눈이 가는 죄책감을 떨칠 수 있겠다 싶어서 읽었다. 게다가 많이 읽는 법을 알려준다고 했으니까. 세상엔 재미있고 멋진 책들이 얼마나 많아!


저자는 빨리 쭉쭉 읽어낼 책, 담지 않고 흘러 내보내는 책, 손에 들고 책장을 넘기며 내용을 이해하는 '지금'의 즐거움에 중점을 둘 책에 대해서 주로 이야기한다. 경영, 자기계발서 류의 책. 하지만 그렇지 않고 시간과 공을 들여서 읽어야 하는 '다른' 책이 있다고 인정한다. 하루에 두 권 이상 읽고 리뷰 쓰는 자신도 그런 책들은 휴일에만 만난다고. 


그러니까 소설, 9전통적인 의미의) 문학에는 저자의 흐르듯 내 몸을 맡기며 즐기는 독서법을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책을 속도 내서 읽는 쾌감, 그리고 독서 경험을 매일 정리하는 습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배웠다. 책 정리하기와 계획 세우기는 꽤 실용적인 팁이다. 

‘이 책을 다 읽었을 때 당신의 인생은 극적으로 변해 있을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이 씌여있는 책은 대부분의 경우 인생을 극적으로 변화시켜 주지 않습니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계속 하는 책을 저는 신뢰하지 않습니다. - P97

아무리 밑줄을 그어봐야 다시 보지 않는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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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을 만나면 포스트잇을 붙여놓는다. 그럴 수 없을 땐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둔다. 다시 찾아 읽거나 페이퍼를 써야지 생각도 한다. 그렇게 하루 하루가 지난다. 사진폴더에는 이렇게 쌓인 책 페이지 사진이 꽤 된다. 가끔 이게 어느 책에서 나온 구절이더라, 하기도 한다. 이 사진들 처럼. 



아, 생각났다. 이건 습관에 대한 책이었다. 


서점에 놀러갔다가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기에 들고왔다. 그런데 영 별로여서 곱게 읽고 바로 팔아버렸다. 저 사진 속 구절만 기억난다. 디드로와 나의 연결 고리. (그것도 이제야 생각남)


정리해야 생각이 나는구나. 그렇다면 계속 치우고 정리해야하는데 나는 너무나 게으른 사람. 그러니까 '정리 책'을 조금 더 사두어도 되겠지. 아, 맞다. 어제 읽은 신간 "부끄러움"을 짧게 기록 하려고 했었지. 







아니 에르노의 책은 '단순한 열정'과 .... 어떤 한 권을 읽었는데 그게 '집착'인지 아닌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머 어쩌면 좋아) 


 영화 "논-픽션" 에서 한 작가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써서 옛 연인들을 곤혹스럽게 한다. 그 책은 독자들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한다. 나는 곧장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던 신간 '부끄러움'을 구입했다. 


책은 매우 얇다. 영화 속 '대중'들의 불평처럼 너무 비쌉니다. 그리고 이런 상태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책을 여니 판권부분이 거꾸로 보인다. 뒤집어서 펼쳐보았다. 표지가 거꾸로 제본되어있다. 나에겐 파본인데 친구는 "레어템"이라고 좋게 말해줬다. 제대로? 아니면 거꾸로? 들고 읽기 시작하는데 앞에 해설이 길게 (열한 쪽이지만 책 본문은 백십여쪽) 버티고 있다. 에르노의 이 '부끄러움'이 그녀의 작품 세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제대로 짚고 넘어가라고.  네.   본문 뒤엔 역자 후기가 열쪽이 더 남아있다. 프랑스에서는 에르노의 여러 작품들이 묶여서 나왔다고 했는데 차라리 한 호흡에 (무리겠지만) 읽을 수 있도록 우리도 한 권으로 만들었다면 좋았겠다. 매번 이런 식으로 앞뒤 해설과 설명, 그리고 (거꾸로 붙인) 양장 표지를 만나는 대신.


그녀의 부끄러움은 분명하고 공감하기 어렵지 않았다. 자신의 환경과 그 '수준' 그러니까 사회 계급에 부끄러움을 갖지 않는 열두 살 아이가 있을까. 가난하고 못배운, 억척스럽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부모를 가진 아이. 자신의 배경과 자신을 떼어놓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에 불안한 아이. (나는 지금 이 나이에도 그런데) 그 부끄러움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진열한다는 에르노의 글을 읽으면서 어쩔 수 없이 프루스트가 떠올랐다. 그의 과거는 에르노와 마찬가지로 '이미지'로 떠오르고 현재의 펜을 붙잡지만 더 아름답게 펼쳐진다. 하지만 농땡이치는 부르주와 사람들의 인간 관계 신경전과 겹겹이 놓인 문화적 레퍼런스 때문에 취하다 취하다 멀미가 났다. 프루스트의 인간들의 부끄러움은 아주 다른 성질의 것이다. 그래서 놓아두었고 나는 나만의 부끄러움? 을 조금 느끼고 있었다. 큰 아이의 군생활 동안 완독하겠다고 해놓고선! 애는 벌써 상병인데! 나는 아직 스완네 옆집에서 어정거리고 있었어! 


쨌든,


에르노는 오십이 넘은 현재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열두 살 아이의 환경과 경험을 기록한다. 볼드체의 구절들은 그녀의 부끄러움의 증거들이다. 덤덤하게 하지만 덮어두었던 것을 꺼내고, 발각되는 게 두려웠을 본질 (이라니 너무 거창하지만)을 마주한다. 나쁘지 않다. 열두 살의 에르노와 오십대의 에르노가 그 하나의 사건, 부끄러움의 집약체인 그 끔찍한 기억으로 서로 연결되었고 그 확인은 태연하게 독자 앞에 기술된다. 이런 태도는 이제 21세기에는 별로 놀랍지 않다. 말미의 보스니아 내전을 들며 말하는 '다른' 부끄러움의 설명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오오카 쇼헤이의 '모닥불'는 찾아 읽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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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선생의 8주기를 기념하여 여러 작가들이 짧은 글들을 묶어 냈다. 수필 같기도 소설 같기도 한, 그 안에 박완서를 기리는 마음들.

 

정세랑의 '아라의 소설'은 아라에게, 또 정세랑 작가 본인에게, 그리고 많은 여성 독자들에게 속내를 털어놓는 듯하다. 남성작가들 앞에 줄 서서 사인을 받던, 독자로서의 흑역사를 돌아보며 쓴 웃음을 짓는 나는 이제야 거울 앞에 돌아와 만난 여성 독자들과 여성 작가들에게 손을 내밀며 눈을 맞춘다. 장르라고요? 순수 문학이라고요? 진짜 글쟁이라고요?

 

됐고!

 

진짜 글과 이야기는 허세랑 폼재기 따위 말고 독자가 알아본다고요. 적어도 난 그런 '눈'이 슬슬 뜨이는 것만 같다고. 난 계속 아라의 소설을, 정세랑의 소설을 읽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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