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심, 혹은 덕질에 대한 소설이라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왠걸, 한없이 바닥으로 추락하게 만든다. 화자의 육체가 살이 무겁고 인생이 그 의미가 버겁다. 이제 겨우 고등학생인 아카리는 겨우 겨우 최애 가수/배우에 매달려, 그 최애가 붙잡아주는 희망을 숨쉬며, 그가 끌어주는 척추로만 일어서서 살아간다. 우울하고 힘겨운 나날, 최애의 어디까지 내가 닿을 수 있을까, 혹은 나는 최애와 어떻게 결별해야 하는가. 내 인생은 어떻게 붙잡지? 


끝까지 닫히지 않는 북향 창에서 들어오는 바람이 몹시도 차가운데 따뜻한 물과 온도 차가 나서 기분이 좋다. 욕조에 몸을 담그고, 들고 온 휴대폰을 봤다. 어디에 가더라도 최애가 없으면 불안했다. 요 며칠간 이 네모난 기계가 네모난 내 방이 된 기분마저 든다. (91)


어둡고 슬픈, 하지만 생생하게 살아서 독자를 삼키는 소설이다. 아이돌에 많은 애정과 시간 돈을 쏟아붓는 아카리의 현란한 문장을 읽다보면 어지럽게 홀려 들어 그 절망에 빠진다. 같은 아쿠타가와 상을 받은 '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 보다 훨씬 좋았다. 하지만 그만큼 절망은 깊다. 


덧: 주인공은 최애의 생일 8월15일을 핸드폰 비번으로 쓰는데 일본인들에게 815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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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22-01-10 16: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책이군요^^;;;;

유부만두 2022-01-10 16:52   좋아요 3 | URL
가볍지 않아요. 주인공의 절망과 고독이 실감나고요. 매우 젊은 작가의 소설이라 더 감탄스러워요.

기억의집 2022-01-10 2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보라색 치마… 완전 병맛이었어요. 뭐 이런 애가 다 있지 했는데..

울 딸이 아이돌에 갖다 바친 돈 시간 생각하면..이 책 주인공하고 비슷하겠어요 ㅠㅠ

유부만두 2022-01-10 20:51   좋아요 1 | URL
이 책 주인공 아카이도 보라색 치마 인물들 만큼 답이 없어요. 그런데 이야기 전개 방식과 묘사/서술이 좋았어요. 그래서 절망감이 더 짙어요.
근데요… 책에 돈 시간 (시력) 다 바치는 전 어느 정도 그 덕질 마음 알겠더라고요. 그 구원, 숨구멍 같은 ;;;

독서괭 2022-01-10 22: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헉 그렇게 무거운 소설이었어요? 이책 제목 알고 있었는데 제목이 주는 느낌과 참 많이 다른가봅니다;;

유부만두 2022-01-13 15:24   좋아요 2 | URL
소재와 제목은 ‘최애‘인데 주인공은 진심으로 온맘과 온몸으로 최애 만을 위해 살거든요. 그러니 엄청 심각해요.

다락방 2022-02-03 11: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유부만두 님의 이 글을 읽고 이 책을 장바구니에 넣은지 좀 되었는데 오늘 지르기에 앞서 다시 한 번 사도 좋을지 이 글 읽으러 왔습니다. 음.. 망설여지지만 중고로 살 것이므로.. 사겠습니다!

유부만두 2022-02-06 09:31   좋아요 0 | URL
예상과 다른 분위기, 젊은 작가의 첫 작품이라기엔 (이 역시 편견이겠지만) 섬세한 묘사가 좋았어요. 엄청 우울한데 이해가 되더라고요.

아 그런데 다락방님은 다른 감상을 하실지도 몰라요.

persona 2022-02-03 12: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절망한 가운데 빛이었던 최애가 스캔들 내버리니까요, 그 최애 자체가 지하아이돌이다 보니깐 더 뭐랄까 반짝임 보단 지침 외로움 우울 고독 이런 게 최애와 팬 간에 형성되는 것 같아요. 저는 문장이 무척 공감을 많이 했어요. 가제본 서평단으로 읽기는 했지만요.
그런데 유부만두님 글 다시 읽고 보니까 새로 한 표지도 좋지만 다크 레드로 타서 재가 돼버린 이미지였으면 독자가 미리 예상하고 마음의 준비 하고 읽기 좋았을 것 같기도 해요. 가제본은 검정이라서 좀 톤이 맞는 느낌이었거든요.
이희주의 환상통도 그렇고 아이돌과 팬덤 이야기 나오는 이야기들이 생각보다 무거운 책이 많은 것 같아요.

유부만두 2022-02-06 09:33   좋아요 1 | URL
맞아요. 다크레드가 더 내용의 분위기였겠네요.
전 환상통을 재미있게 읽어서 이 책의 우울함에 대비가 되어있지 않았어요. 제목의 ‘최애‘는 좋은 어휘 선택이지만 명랑한 분위기니까요.

젊은 작가의 소설이지만 이야기를 끌어가는 데 꽤 능숙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작가의 다음 책도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