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심, 혹은 덕질에 대한 소설이라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왠걸, 한없이 바닥으로 추락하게 만든다. 화자의 육체가 살이 무겁고 인생이 그 의미가 버겁다. 이제 겨우 고등학생인 아카리는 겨우 겨우 최애 가수/배우에 매달려, 그 최애가 붙잡아주는 희망을 숨쉬며, 그가 끌어주는 척추로만 일어서서 살아간다. 우울하고 힘겨운 나날, 최애의 어디까지 내가 닿을 수 있을까, 혹은 나는 최애와 어떻게 결별해야 하는가. 내 인생은 어떻게 붙잡지?
끝까지 닫히지 않는 북향 창에서 들어오는 바람이 몹시도 차가운데 따뜻한 물과 온도 차가 나서 기분이 좋다. 욕조에 몸을 담그고, 들고 온 휴대폰을 봤다. 어디에 가더라도 최애가 없으면 불안했다. 요 며칠간 이 네모난 기계가 네모난 내 방이 된 기분마저 든다. (91)
어둡고 슬픈, 하지만 생생하게 살아서 독자를 삼키는 소설이다. 아이돌에 많은 애정과 시간 돈을 쏟아붓는 아카리의 현란한 문장을 읽다보면 어지럽게 홀려 들어 그 절망에 빠진다. 같은 아쿠타가와 상을 받은 '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 보다 훨씬 좋았다. 하지만 그만큼 절망은 깊다.
덧: 주인공은 최애의 생일 8월15일을 핸드폰 비번으로 쓰는데 일본인들에게 815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