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인상적이라고 생각했으면서 "책에 깔리다"로 기억했던 나여. 


책을 주제로 한 sf/판타지 단편집이다. 8편중 4편을 읽었는데 첫 수록작인 김성일의 <붉은 구두를 기다리다>가 제일 (유일하게, 독보적으로) 인상적이다. 


인류문명이 망해버린 먼 미래, 그래도 인류는 꾸역꾸역 새로운 문명을 일으키고 로봇과 대항하며 모여산다. 그들 문명의 중심은 '구전'되는 이야기/전설/역사다. 책은 물론 문자도 사라진 시대. 이들의 '제사장'은 대대로 한 명씩 선출되어 놀라운 기억력과 구연 실력으로 공동체의 구심점이 된다. 두 젊은이 '푸른소'와 '붉은구두'는 차기 제사장 후로로 부족민의 관심을 받는다. 


... 그런데 이들 부족의 시조가 '도로시'다? 

그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갔던? 

반짝이는 신발의? 

그리고 그들의 사는 곳의 이름이? 

맞다, 

칸사스. 


그렇다면 이들의 적 로봇이 어디에서 왔는지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고 또다른 아포칼립스 sf 대서사시 '스타워즈'도 이 세계에 연결되었다는 것을, 또한 과거 문명의 대 작가 세익스피어도 구전되는 설화에 포함되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톤은 진지하다. 농담이 아니고 이 세계는 좁고 사막 한 가운데서 .... 김초엽과 테드창의 세계를 닮아있는 성실한 얼굴로 이 문명의 탐험가와 수호자를 소개한다. 그리고 피어나는 다음 세대의 희망까지. 그들은 고도 대신 붉은 구두를 기다린다. 


말을 아끼면서 서재 친구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다들, 책에 갇히고 또 '깔리는' 심정일 때가 있으면서도 이 책이 사라지고 글이 적힌 종이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다 몸서리를 치곤 하지 않았습니까. 여기 그 세상이 있습니다. 이 세계는 성별에 따른 경계나 차별이 없고 협력하고 서로 돕지만 책과 글이 없어서 .... 


그런데 이 작품 말고 나머지는 (아직은) 별 재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슬픈 일요일밤. 


---

이 소설에선 붉은 구두에 여러 겹의 의미를 입히고 있는데 도로시 신발까지 붉은 구두로 설정한 것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것. 도로시의 신발은 은구두였지만 영화에서만 붉어졌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1-03-15 00: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에 깔리다에서 푸핫 터졌습니다. ㅎㅎ

유부만두 2021-03-15 07:23   좋아요 1 | URL
제가 깔려있거든요;;;

얄라알라 2021-03-15 0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깔리다로 착각하셨다는 데서 터졌어요^^

유부만두 2021-03-15 07:24   좋아요 1 | URL
흠흠... 저 말고 그렇게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

희선 2021-03-16 0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로시 구두는 본래 은구두였군요 예전에 본 영화에선가는 빨간색이었던 것 같기도 한데... 분홍색구두가 있어서 빨간색일까 하는 생각을 한 걸지도 모르겠네요


희선

유부만두 2021-03-16 07:02   좋아요 0 | URL
원작에서 금/은의 상징성이 중요하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영상에선 은구두가 잘 드러나지 않아서 빨간 구두로 바꿔서 찍었다고 해요.

psyche 2021-03-16 03: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도로시 구두가 원래 은구두였구나. 영화에서의 기억이 강해서 그런지 빨간색이라고 생각했었네.

유부만두 2021-03-16 07:03   좋아요 0 | URL
네 저도요. 원 소설은 축약본으로 아이들과 함께 읽어서 영화가 기준이 되어버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