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돈'은 밝히는 사람들은 관계를 맺는 방식이 유별나긴 하지만 - 돈을 벌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라고 묻자 동구에 있는 나무에 발가벗고 매달려서 그 나무를 놓치않는다면, 그렇게 해야 돈을 모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생각나긴 하지만 - 사람관계까지, 아니 이젠 너무도 당연하여 얼마나 덜 손해보느냐?로 행동을 옮긴다. 철저하게 돈만 밝히는 것이 일상의 일이 된 것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그런 돈을 중심에 놓은 이해타산이 좀더 더, 오랫동안 벌기위해 쓰는 몸짓이 이타심이다. 수전노-구두쇠에서 전후좌우를 살피고 시간과 때에 따라서 사람의 마음까지 고려하도록 진화를 하고 있다. 내가 잘되고 좀더 벌기 위해서 문화를 고려하거나 배경에 관심, 이타심까지 철저하게 배우고 있는 것이다.
-2.
정치란 무엇인가? 언듯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추악하다. 공익보다는 사리사욕을 채우거나, 한자리해 먹으려는 명예욕으로 떡칠을 한 모습. 돈으로 그 힘과 권력을 사려는 무리들만 연상작용으로 떠오르는 모습. 추악함. 가까이해서는 안될 것들. 누가 해보았자 다 똑같은 것. 이 상식이 된 것은 아닐까? 그런 인식에서 출발한 이상적인 정치란 어이없게도, 물론 반작용의 산물이겠지만 뭔가 이상적인 것을 그려놓고(그것을 이데올로기이든, 이념이든, 진리라고 생각하는 가치이든, 도덕이라고 하든, 무소유라고 하든) 그것이라고 하는 것일까? 정치는 진리이다. 정치는 도덕이다. 진리나 도덕에서 출발하지 않는 것들은 전부 잘못된 것이다 라고 옳고 그름의 문제로 환원하고 있는 것은 또 다른 현실은 아닐까? 아니면 이상적인 상을 그려놓고 그것에 근접하지 못하는 것은 전부 쓸데없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 또 다른 면은 아닐까? 정치의 실종 이면에는 끈끈이처럼 붙어있는 것이 진리이거나 도덕이거나, 나의 머리속 틀로 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 실종된 이면의 현실은 아닐까?
-1.
(-3)에서 언급한 '돈'이나 '이해타산'을 지금보다 더 나아진 모습, 결과로 놓자. '이익'이라고 하자. 사적 이익, 공적 이익 줄여서 사익, 공익으로 이야기할 수 있으니 좀더 수월한 것 같다. 이 세상에 두사람만 있다면 (나-너)의 이익이 시이소오가 된다. 내가 많이 취하면, 너가 부족하고, 너가 많이 취하면 내것이 줄어든다. 그러면 셋이면 좋겠다. 셋이상의 관계에서는 공익이 생겨난다. 그 공익을 위해, 제한된 것(힘,자원,역량)을 공정하고, 효율성 있게 써서 지금보다 더 이익이 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0.1
이것을 정치라 한다. 돈을 더 벌기 위해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그 방법을 그대로 '돈'이나 '사익'이 아니라 '공익'을 위해서 해라. 셋이면 셋을 위해서 넷이면 넷의 최대이익을 위해서 하라. 그것이 정치다.
0.2
그러면에서 '어떻게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아끼고, 더 공부하고, 더 쓰고 하는 일은 정치와 무관한 일이다. 도를 닦는 일도, 이 다음에 그 자리에 오르면 어떻게 하겠다는 일은 모두 정치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일이다. 내 식성에 맞추라고, 내가 좋아하는 반찬만 먹으라고 하는 일은 더 더구나 정치적인 행위가 아니다.
0.3
힘이 적다고 정치를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힘을 키우기 위해 하는 일이 정치이다. , 나의, 우리의, 정파의, 정당이 옳다고 확신하는 것에 복속시키려는 행위가 정치가 아니다. 지금의 우리 수준에 대한 합의, 한계에 대해 명백히 인식하고, 그 보다 낫게 만들기 위해 힘을 만들어내고, 연결망을 만들고, 한번 더 생각을 나누게 하고, 고민을 섞게하고, 한발자욱 딛게 하는 것이 정치이지 않을까? 맞다고 확신하는 것에 규합을 시키지만, 늘 그 사람 그 범위에서 움직이지 못한다면, 10년내내 만나는 사람과 접촉점만 있다면 그동안 정치적인 행위는 하나도, 아니 퇴행을 시키는 행위를 끊임없이 자행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0.4
뭔가 정리가 되어야만 움직이는 습속들과 행위들은 여전히 비정치적인 행위를 양산만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대중과 유리되고, 조합원과 만나지 않고, 끌어당기려고만 하는 것도 마찬가지는 아닐까? 정파가 달라 만나지 조차 않고, 일도 하지 않는 행위는 유아적 행동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퇴행자임을 공개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아닐까?
0.5
제도권에 진입을 하고도, 가지고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속한 이념에 맞지 않는다고 힐난하는 행위도 그 퇴행 가운데 있는 것은 아닐까? 눈높이를 대중에 맞추지 못하고, 우리가 겨우 가지고 있는 힘높이에 맞추지 못한다면, 그 곳에서 출발하지 못한다면 그 끊임없는 행위는 우리는 정치도 모르는 바보입니다를 반복적으로 자임하는 꼴은 아닐까? 모임성원의 현상태에서 더하기 일을 하는 행동은 없고 사고만 있는 행태도 마찬가지는 아닐까?
1.0
마키아밸리가 의도한 전제, '공익 한점' 보태기는 사라지고, 기교만 아니 술수만 가져가서 응용하는 현실 정치는, 정치를 실종시킨 원흉은 아닐까? 정치라는 로망도 살해하고, 정치가 마치 이념을 주입하는 것인냥, 사상을 공부시키는 것인냥, 정치가 도를 닦거나 도덕인 것처럼 머리 속에 주입한 결과, 숨도 쉬지 못하고, 호흡도 가눌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은 아닐까? 사회단체는 어쩌다 대행기관이 되어버리고, 혼 마저도 위임과 위탁하는데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
1.1
돈을 벌 듯 하는 모든 행위를 공익을 위해, 우리가 합의하는 역량을 키우는 일에 집중하는 일은, 사칙연산 가운데 불과 덧셈을 만드는 일은 아닐까? 손해가 되면 분노하고 흥분하는 것처럼, 손해가 예상된다면 가장 적은 손해를 보기위해 노력하는 행위, 봉우리를 일단 올라가고 다음 봉우리를 향하자고 하는 일, 저 높은 산 정상만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지치고 힘들지만 올라온 봉우리와 주변의 친구들을 냉정히 살펴보는 일, 다음 봉우리를 향하기 위해, 날강도같은 놈들의 트럭이라도 올라타거나, 차비를 얻으려고 길거리공연이라도 하는 일들, 사라진 일상을 복원하는 일은 어떨까?
1.2
,뒷골목에 외롭다고 뜨거운 눈물만 뚝뚝 흘릴 것이 아니라, 점선같은 관계망들을 만들어가는 일, 더하기 일을 위해 함께하는 것, 상상의 발칙함들... 일상적인 행위가 사라진 지금, 일상적인 뜨거움조차 소멸해버린 것일까? 복원가능한 일일까? 블로그란 공간에 자신의 세계를 그려내는 작업도 훌륭하지만, 일상의 뜨거움과 아무런 힘도 없을 것같은 한점을 사회에 던지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소중한 것은 아닐까? 복원을 전제로 한다면... ...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