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아니라 삼성이다_삼성민국에 부쳐(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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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오지 않습니다. 동네 지인들과 식사하며 마신 맥주 몇잔에 취기가 있어서인가요. 꾸벅졸다 봐야할 책이 있어 일찍 잠을 청할 생각이었습니다. 어이하다보니 <피디수첩>을 보다 이렇게 마음을 가다듬지 못합니다. 달리다보면, 무리하다보면 몸은 어김없이 신호를 보냅니다. 아픔,통증 미약하기도 하지만 반복되는 얕은 것을 보냅니다. 하물며 폭우로 충만해진 산은 산사태를 예고합니다. 쩌엉 울리는 신호를 보냅니다.
모임도, 일터도, 사회도 어김없이 스스로 아픔의 신호를 보내는 것이 아닐까요. 무리하지 말라고 돌아보라고, 어디가 부족한 것인지 어디가 아픈 것인지, 그 모오스같은 교신에 예민해야 합니다. 달리기란 것도 조금만 등한히 하면 어김없이 제 몸을 망가뜨립니다. 놓치고 놓치다보면 결국 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못하게 되죠. 이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이 일연의 시대변화나 흐름에 적확하고 빠른지 알았습니다. 지식이나 패러다임의 변화와 조직의 빠른 변화를 요구하고 바꾸어내는 것이 놀라울 지경이더군요.
년초 조폭수준의 사고를 가진 재벌가의 퇴행이 한차례 신호를 보낸 것 같기도 한데, 어김없이 첫눈내리는 어수선한 대선정국에 퇴행의 마각과 족적이 조금조금 드러나는 것을 보면, 입도 벌어질뿐만이 아니라, 끈끈이처럼 붙어있는 우리의 의식도 그만큼 벌어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게 다른 나라 의식하던 우리들도 부끄러움에 대해 애써 감추려하는 것은 아닌지 되물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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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시스템을 삼성이 인질로 잡고 대중을 조정하고 길들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민주화 20년의 열망과 절망이란 책자의 로고가 지난 20년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병철씨의 사망에 이은 이건희가 삼성을 이은 것이 1987년 12월 1일이라 합니다. 87년체제라 불러도 좋고 그러지 않아도 좋지만, 7,8월 노동자대투쟁의 말미에 정교해지고 세련되게, 제대로 말하면 악날하게 사익을 위해 시스템을 점령한 단초가 그때부터라고 봐야되지 않을까요. 민주화가 아니라 관통해서 흐르는 것은 자본화가 맞을 듯 싶습니다. 자본화 20년, 사익을 위해 그리 처절한 몸부림, 아니 화려한 외유의 과정이 더 맞겠지요. 은근히 즐기는 그 맛에 도취되어서 말입니다.
민주화니, 수구니, 반부패니, 반보수니 이런 용어들이 나름 의미가 있겠지만, 적확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 20년, 아이엠에프체제 10년으로 분절되듯이, 10년을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일들이 <자본>이라는 관점으로 동선을 세밀히 분석해내는 작업, 반자본이 아니라 비자본으로 활동해나가는 일들이 합의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진보교수와 꾸준한 활동, 양심선언으로 이어진 사익을 추구하는 세습경제 독재자의 국가기관 사유화과정, 그리고 또다른 새끼세습자본가의 동선의 관점으로 정치를 들여다보고 알리고 대응하는 일들이 이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막연함이 아니라 세밀하면 할수록 이렇게 어이없이 능멸당하는 일은 다시 없어야하지 않을까싶네요. 자본의 검은그림자를 보지 않고 늘, 지나쳐버린, 분절된 활동의 20년을 돌아보는 처절한 반성과 새로운 시각,관점을 새롭게 하는 일, 새로운 초심으로 바닥을 기는 활동으로 펼쳐나가지 않으면 대선에 상관없이, 총선에 상관없이, 어이없는 퇴행을 지속적으로 보아야 하고, 거기에 편승하여 삶을 맡기는 대중을 볼 수 밖에, 거기에 함몰되고 마는 자신을 볼 수 없는 것은 아닌가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