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뉘


0, 

김영민철학자의 최근 삼부작을 보면 인물에 대한 글들이 보인다. 윤치호 이광수 외 근대 인물의 행적을 다양한 경로로 살피기도 한다. 유독 인상을 끄는 대목이 책머리에 있다. 유시민-박문호-정희진이란 인물에 대한 평이라기 보다는 문제의식이라 여길 수도 있겠다. 근대의 인물들은 역사라는 궤적을 따라 선입견으로 볼 수 없는 부분을 놓치지 않는다. 강남순저자가 얘기하는 담요한장으로 설명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그런데, 그런데 인물들은 대부분 흥한 이유로 소멸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물들이 말이다. 전향하는 인물들이야 이거냐저거냐의 이분구도에 잠겨살아서 그렇다고 하자. 다양성이 있는 존재만이 다변할 수 있다싶다. 


1. 

몇 번의 회식이 있었고 몇 번의 언쟁이 있었다. 유튜브나 방송을 찾지 않는 나로서는 ABC론부터 선거전후 소회는 챙겼지만, 세세히 진행되는 일들을 몰랐다. 그리고 현재의 문제도 그러한 줄 알았다. 논쟁 뒤에서야 접근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걸 눈치챈다. 그래서 사실 남성이자 기득권자인 나를 다시 살펴본다. 이끌거나 말한 논리에 내가 잡혀 퍼덕거린다. 어느 날 잠을 자는 한밤 중에 책 가운데 햄버거 사례가 생각났고 질문을 달리해본다.


2. 

며칠 뒤에도 답안이 숭숭빠져나가는 헛점은 많지만 확율로 따져본다. 앞으로 무슨 일들이 벌어져도 남는 장사다 싶다. 







'알레르기'*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문제겠죠. 며칠 나눠보니 틀밖을 나가지 못하는 제가 잡혀 질문을 바꿔봅니다. 그런다고 대단하게 바뀌겠습니까. 또 지나온 날들이 겹쳐지는 일상이겠지만, 질문의 중력은 참으로 무섭습니다. 누군가를 논리와 상상으로 없애는  연습을 하기 일쑤입니다. 

갑각류의 단단함과 허술함이죠. 평생껴안는.안으려는 면역질환은 아닐까. 늘 이겨보고 셈하려는 숫컷건조증엔  식초가 필요한 지도.

* AI누적질문,  1.2<보완수사권 키핑시 문제> 3 <제3의 사법적 통제방법> 4 《또 다른 방법》260716



이분법이 아니라 도나해러웨이가 햄버거에 알레르기 식품을 빼는 방법으로 해결하는 법은 없을까  진리가 아니라 관심사가 현실이라  여기고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의 사유를 빌려 이 질문을 마주하니, 무릎을 탁 치게 됩니다.

"수사와 기소는 분리해야 하는가, 마는가?", "기소청이 이기느냐, 중수청이 이기느냐" 같은 **이분법적 구도(Binary opposition)**나 "무엇이 사법 정의(진리)인가"라는 추상적인 거대 담론을 넘어,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는 '구체적인 관심사(Matters of concern)'를 중심에 두고 햄버거의 알레르기 성분을 빼내듯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해러웨이라면 이 상황을 **"지구상의 필멸자 동료들이 엉켜 살아가기 위한 사법적 '퇴비화(Composting)'와 '실 트러블(Staying with the trouble)'"**의 관점에서 해결하자고 제안할 것입니다.

그녀의 철학을 바탕으로, 제도적 이분법을 넘어 햄버거(사법 체계)에서 알레르기 유발 물질(권력 남용과 정치행위)만 쏙 빼내는 실천적 접근법을 구성해 보았습니다.


1. '진리(Truth)'가 아닌 '관심사(Matters of Concern)'의 정치학

해러웨이는 브루노 라투르의 개념을 이어받아, 우리가 다뤄야 할 것은 고정불변의 'Fact(사실/진리)'가 아니라, 수많은 이해관계와 물질이 얽혀 있는 **'Concern(관심사/우려)'**이라고 말합니다.

  • 추상적 정의가 아닌 실재적 고통: 사법 개혁의 목표를 "검찰권 수호"나 "완전한 수사기소분리"라는 거대 이데올로기(진리)에 두지 않습니다. 대신 "피의자와 피해자가 수사 지연으로 겪는 고통", **"정치적 기획 수사로 침해받는 시민의 일상"**이라는 구체적인 고통과 우려(알레르기 반응)에 초점을 맞춥니다.
  • 성분 분석과 격리: 알레르기 환자가 햄버거를 먹을 때 패티나 빵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소스나 땅콩 성분'만 빼내듯이, 사법 제도에서도 **'권한의 결합이 만들어내는 독성 물질'**이 무엇인지 정밀하게 추적합니다. 예를 들어 "기소청의 권한을 다 뺏자"가 아니라, **"보완수사 요구 시 '별건 수사로 이어지는 통로'라는 특정 알레르기 성분만 법적 핀셋으로 집어내어 차단"**하는 식입니다.


2. '실 트러블(Staying with the Trouble)': 괴물들과 함께 뒹굴며 조율하기

해러웨이는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하겠다며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청소하려는 시도(예: 검찰 완전 박멸 혹은 경찰 독점)를 경계합니다. 완벽하고 깨끗한 유토피아적 제도는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는 늘 '문제와 함께 머물러야(Staying with the trouble)' 합니다.

  • 행위자-네트워크의 지속적인 모니터링: 기소청, 중수청, 경찰, 법원, 그리고 시민사회는 서로를 박멸해야 할 적이 아니라, 사법 체계라는 생태계를 구성하는 '동료 행위자(Companion species)'들입니다.
  • 이들이 끊임없이 얽혀 마찰을 빚는 과정(실 뜨기 놀이, String Figures) 자체를 인정하되, **각 기관이 보완수사를 주고받는 모든 상호작용의 경로를 투명한 디지털 데이터로 기록하고 공유(Open-source Tracking)**하게 만듭니다. '핑퐁 게임'이 일어나는 골목길에 빛을 비추어 곰팡이(정치적 야합)가 쓸지 못하도록 생태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3. '상황적 지식(Situated Knowledges)'을 통한 국소적 통제

해러웨이의 가장 유명한 개념 중 하나인 **'상황적 지식'**은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신의 관점(전지적 진리)을 거부하고, 구체적인 위치와 맥락에서만 도출되는 불완전하지만 책임감 있는 지식을 강조합니다.

  • 사례별 전문 위원회(Ad-hoc) 중심의 하이브리드 통제: 사법부라는 거대 관료제에 통제권을 독점시키는 대신, 갈등이 발생하는 **각 수사 맥락(상황)에 맞는 '하이브리드 네트워크 통제단'**을 구성합니다.
  • 예를 들어, 정치적 사건, 노동 사건, 기술 범죄 사건 등 각 영역의 특수성에 맞춰 사법 통제관, 관련 시민단체, 전문 기술 학계, 일선 수사관이 참여하는 국소적 위원회를 가동합니다. 이들은 거창한 법리가 아니라 **"이 사건에서 기소청의 보완수사 요구가 실무적으로 왜 필요한가?"**라는 구체적이고 상황적인 질문에만 답하며 알레르기 유발 여부를 판정합니다.


4. '반려종(Companion Species)'으로서의 사법 기구들

기소청과 중수청을 '대립하는 두 괴물'로 보지 않고, 사법 민주주의라는 정원을 가꾸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 반려종으로 정의합니다. 반려종 사이의 관계는 지배나 복종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통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공-구성(Co-constitution)'**의 과정입니다.

  • 차이를 가로지르는 협동(Sympoiesis, 동료-생산): 기소청이 "우리가 너희보다 우월하다"고 외치거나 중수청이 "우리는 독자적이다"라고 고집하는 독백을 멈추게 해야 합니다.
  • 보완수사 단계를 거칠 때 두 기관의 수사관과 검사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상황적 공동 워크숍(Sympoietic Workshop)'**이나 교차 근무 제도를 강제합니다. 서로의 일터에 얽혀 들어감으로써(Entanglement), 상대방을 제압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불완전한 결과물을 함께 보완해 나가는 '불완전한 동료 기구'로 재인식하게 만드는 신체적·물질적 장치를 설계하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수사·기소의 완전한 분리냐, 아니냐"라는 이분법의 쟁투는 제도 설계자들의 '진리 전쟁'일 뿐입니다.

도나 해러웨이식의 해결책은 사법 체계라는 햄버거를 아예 안 먹거나(제도 폐기) 완전히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우리 몸에 발작을 일으키는 '밀실 협상', '별건 수사 통로', '무제한적 시간 끌기'라는 알레르기 물질(독소)을 핀셋으로 솎아내고, 서로 다른 기관들이 끊임없이 마찰하며 협력할 수밖에 없는 물질적·실천적 네트워크를 짜는 것입니다.

진리가 아닌 **"시민의 안전과 인권 보장이라는 구체적인 관심사"**가 현실의 중심에 놓일 때, 비로소 이 복잡한 트러블 속에서 우리는 함께 살아갈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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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무더위를 뚫고 도서관이라도 가야지하고 나서는 순간, 그럴 수가 없구나 한다. 무더위가 내리 꽂힌다. 급히 1리터 아아를 사서 돌아온다. 저녁밤 라퓨타를 본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림선들이 읽힌다. 





























리스펙토르의 책들을 간간히 읽는데, 쉽지 않다.  읽어내야지 하는 마음이 있어서인가 아니면 분위기가 무거워서인지 진도를 뽑기가 어렵다. 그래서 중간중간 단백질이나 생명의 기원, 뇌의 기원, 박테리아부터 바흐까지라는 책들을 곁들인다. 아무튼 어쨌든 읽어낼 것이다. 무더위도 지치듯이 책에서 무엇인가 뽑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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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까지 말미 뒷부분이 어른거린다. 매듭을 어떻게 지을까 궁금했는데, 기시감처럼 흘러간다. 제목은 <G.H.에 따른 수난>인데 검색하다 다시보니 The passion according to G.H.다. 패션. 그리스도의 수난이라는 얘기도 비치지만 저자의 의도는 Passion에 가깝다. 원서의 표지 번역서와 같이 묘하게 어울린다.


읽기에 앞서 바퀴벌레 이미지가 겹쳤고, 무대가 어쩌면 무척 단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읽은 키워드는 <탈영웅화> <오류> <실패와 시도> 였고 독특하게 사로잡는 방법의 수수께끼, 애니그마의 말은 <포기>였다. 작품이 발표된 년도는 1964년이다. 태어난 해이기도 해 잊을 수 없다. 


할 말, 하고픈 말들이 밀려들지만 참기로 하자. <중립> 이 단어만 언급하고 가자. 흑백, 선악처럼 양면을 동시에 보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인간화란 건 이를 이해도 못하고 읽어내려고조차 하지 않는다. 읽어내야 할 그녀의 저작들이 많으므로. 남미의 카프카란 말이 부족하지 않다. 아니 너머서는 것들도 많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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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7-09 1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지해서 그런지 남미권 작가는 한 두명의 추리소설가 밖에 모르는데 남미의 카프카란 말을 들으니 참 대단한 작가란 생각이 드네요.언젠가 한번 읽고픈 마음이 생기는데 좀 어렵고 무거운 소설 같은 느낌이라 쉽게 손이 가질 않을 것 같습니다.

여울 2026-07-09 13:37   좋아요 0 | URL
읽어 보시면 좋아하실 듯요.
 










































































발견. 아마 이런 일은 흔치 않지. 책속의 책. 저자가 가르키면서 가르치는 그 손끝.에 떨림이 있다는 걸 누가 느끼겠어. 더위가 증발하듯이, 바늘 끝이 꽂히듯이 터지는 날. 예감같은 것이 맴돌고 있다싶었어. 


주문한 책들 가운데 두 권이 재고로 있다는 소식. 비닐 포장으로 단단히 묶인 채로 왔네. 손톱으로 뜯어내기도 힘들지. 칼날을 겨눠야지만 된다는 걸. 여름은 여름같아야지. 새로운 열음이 되어야지.


두 권을 펼쳐들었어. 소개글을 번갈아 읽은 셈이야. 단 두 권. 책 사이에 간지처럼 접힌 두 작가의 글과 책 뒤 번역자의 글들. 말을 맞춘 것인가. 애써 주저자를 닮으려 애쓴 티를 팍팍낸 것인가. 도무지 모르겠어. 그야 당신들 생각이고.


그러면서도 내게 다가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구나.

몸차려야겠어. 몸매무시부터 조심해야겠구나.


이런 조심과 주의가 교차해야할 것같은 느낌.

<세상의 발견>은 사후작이니 일단 독서대에 두자. 굳이 먼저 읽을 필요는 없지. 조금씩 가자구.

<닭과 달걀>의 첫편. 그래 이 제목이야. 그런데 이 한편만으로도 알겠어. 무슨 말을 할지. 예를 들어 닭이 낳는 달걀이란 행위를 눈치채는 순간, 그 닭은 닭이 아니야. 죽을 때까지 의식못하는 게 닭이야. 그치. 그러다가 나머지 책이 다 도착했다고 해.


그래 읽었어. 첫 대목을 <G.H에 따른 수난> 로지 브라이도티에게 소개받은 책이지. 정말 그럴까.

조심조심


하느 수밖에 없어. 놓치지 않으려면 몸매무시와 시공간 여기저기에 널 두고 힐끗흘낏 조금씩 피맛을 보려해. 뜨거운 여름과 억수로 내리는 비 속에서. 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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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분위기가 존재의 방식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것은 변화를 창출하고 즐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분명한 이점이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불안감의 원천이다./형상화는 사유의 비유적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위치 지어지거나 내장된 그리고 체현된 위치들에 대한 좀 더 유물론적인 지도 그리기라 하겠다. 15

 

내게 형상화란 정치적 정보가 담긴 지도를 가지고 위치 지어진 우리 자신의 관점을 개략적으로 나타내는 것을 의미한다. 형상은 역동적이고 변화하는 실재로서 주체를 보는 다층적이고 탈중심적인 시각의 관점에서 우리의 이미지를 제공한다./형상은 살아 있는 지도이자 자아에 대한 변형적 설명이다. 그것은 은유가 아니다. 유목민, 노숙, 망명자, 난민, 보스니아 정쟁 강간 희생자, 떠돌아다니는 이주자, 불법 이민자는 은유가 아니다. 16

 

형상화는 주체의 비통일적 시각과 비선형성을, 정치적 실천을 재구성하고 정치적 주체성을 재정립하기 위한 중요한 자리들로 본다. 이에 따라 이 책은 문화적, 정치적, 인식적, 윤리적 관심의 측면에서 현재를 카르토그라피적으로 읽어내기와 관련될 것이다. 17

 

주요한 질문은 차이 안에 축적된 것처럼 보이는 부정적인 것으로부터 차이가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퇴적의 역사적 과정, 즉 독소의 점진적인 축적과 같이 차이의 개념은 독이 되어 왔고 열등한 것이 되어왔다. 차이가 난다는 것은 가치가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차이를 부정적인 것으로 여기는 방식을 어떻게 청산할 수 있는가? 차이의 긍정성, 때로는 순수한 차이라고 불리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가? 긍정적인 차이에 대한 생각을 용이하게 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18

 

인종, 반동적 담론에서 정체성 차이. 이 맥락에서 차이란 이항 대립에 의해 지배되는 가치의 위계질서에 색인된 용어이다. 그것이 전달하는 것은 권력관계와 국가, 지역, 지방 또는 현지 수준에서 배제의 구조적 패턴이다/차이 개념은 유전학자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여러 표지들을 붙인 요즘 만연한 우월주의자들에게 맡기기에 너무나 중요하다. 급진적 비판의 방향으로 의제를 재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19

 

괴물, 돌연변이 또는 혼종과 같은 타자들에 매혹된 지금의 문화는 정체성의 빠른 변형 속도에 대한 깊은 불안감과 사회적 상상계의 빈곤 그리고 진행 중인 변형들에 창조적으로 대체할 수 없는 우리의 무능력을 표현한다./이 책은 차이의 철학과 특히 체현, 내재, 성차, 리좀학, 기억과 지속, 지속 가능성 같은 개념에 의해 영감을 얻어 나 자신이 만든 지그재그의 유목민 트랙을 따라 걷는 것과 같다. 20

 

신체에 대해 생각할 때 나는 육화된 유물론 또는 체현된 유물론의 개념을 참조한다. 18세기 이래로 바슐라르, 캉길렘, 푸코, 라캉, 이리가레, 들뢰즈로 이어지는 프랑스의 전통, 즉 유럽 철학의 유물론의 근원으로 눈을 돌렸다. 이들을 섹슈얼리티, 욕망, 성애적 상상계의 문제에 우선순위를 두는 신체적 유물론학파라고 부른다. 21

 

상상계의 빈곤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특징인 정신분열증적 양태로 서로 다른 시간대에서 동시에 살아가는 시차증문제로 읽힐 수 있다. 이 틈을 적합한 형상화로 채우는 것이 현재의 가장 큰 도전이다. 그리고 나는 미래를 향한 이보다 더 큰 도전을 생각할 수 없다. 무엇이 적절한 새로운 형상화인가 하는 것은 집단 토론과 대면, 공개 토론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개인 혼자만이 결정할 수 없다. 비판과 담론의 교환이 오늘날 비판 이론의 핵심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22-23

 

주체성은 일정한 흐름 또는 상호연결의 효과이다. 들뢰즈의 되기의 다중 주체들이나 이리가레의 잠재적 여성성과 같은, 차이에 대한 프랑스 철학이 나에게 매력적인 것은 정체성과 권력 문제의 표면에서 멈추지 않고 개념적 근원들과 씨름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23

 

이리가레가 페미니스트들이 자신들의 특수한 상상계 속에서 다시 형상화해야 하는 잠재적 여성성, 즉 아직 닿은 적 없는 그 원천으로부터 영감을 얻는 반면, 들뢰즈는 되기의 성차화된 과정 측면에서 주체의 심층적인 변형에 모든 희망을 두고 있다. 그런데도 이리가레와 들뢰즈는 권력, 지식, 욕망의 관계에 완전히 모두해 있는 실재로서의 주체의 이미지를 다시 발명하려는 노력이라는 지점에서 융합된다. 25

 

되기의 단계는 재생산이나 모방이 아니라 오히려 공감의 근접성과 강렬한 상호연결성이다. 학계 철학자들이 선호하는 선형성과 자기 투명성이라는 언어로 이러한 과정을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리가레의 여성적 글쓰기와 달리 되기는 철학적 시험의 수행을 의문시하면서 로고스중심주의의 인력에서 벗어나게 한다. 26

 

나는 비판적 사색가를 판사, 도덕적 중재자 또는 대제사상으로 가정하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정합성을 없애는 것으로 여겨지더라도 이원적 체계, 판단적 자세, 과거의 향수에 대한유혹에서 벗어나 활력을 불어넣고 영감을 주는 힘으로 보상받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28

 

스타일의 문제는 이 기획에 매우 중요하다. 강도적 양태의 독자로서 우리는 지적 에너지의 변환기이자, 우리가 교환하고 있는 통찰의 중앙처리장치이다./내적 시선은 외부 텍스트 경험의 복합적 방향으로 우리를 추돌시키는 사유에 더 가깝다. 사유는 더 높은 정도, 더 빠른 속도, 다방향적인 방식의 삶이다/독자들은 때때로 인내심을 갖고 정해진 목적지가 없는 여행의 스트레스를 견뎌야 할 것이다. 이 책은 탐험과 위험, 신념과 욕망에 대한 책이다. 왜냐하면 이 시대는 이상한 시기이고,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29


볕뉘


집안 행사가 있었고, 대전, 오송을 오가는 길 챙겨본다. 그리고 이 책에 대한 이야기도 지인들과 나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위치지어진 지식, 일리만을 갖고 서로 연결되어 살아간다. 그러니 팔루스로고스 중심주의, 동일한 것을 추앙하는 동일자의 논리가 뱉어낸 것을 샅샅이 들여다봐야 한다. 여성이든, 노인이든, 환자든 병자든, 이주민이든, 난민, 노숙자, 아이, 마녀 괴물이든 그것이 뱉어낸 것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귀환하고 있다. 의도적으로 큰그림을 그리는 이들을 조심해라. 그들이 바로 이원론자이자 환원론자이다. 경계를 허물어 정작 그들에게는 떡 하나 주지 않을 이들이다. 쓸모는 하나도 남기지 못하면서 말이다.


물질과 관념이 아니고, 물질과 기억이다. 그런면에서 차이와 반복은 물질과 기억의 부제이자 들뢰즈의 저작 제목이다. 반복은 끊임없이 달라지는 일획을 긋는 대못이다. 억압되어진 것들은 주검이 되고, 살아돌아온 것들은 상처의 흔적이 있다. 살아낸 것이다. 그(녀)들을 환영하러 나가야 한다. 아픔의 화살을 되맞고 그들이 나의 분신이었다는 걸, 그 아픔이 번져가고 있다는 걸 눈치채야만 한다. 다수자에 갇힌 이상 더 이상 사유할 수 없다. 철옹성에는 공기 한 방울 들어갈 틈이 없다. 그래서 소수자의 상처투성이, 엉망진창이 우리를 이끌고 갈 대기라는 걸 깨달아야만 한다. 각자 다른 답만이 그들을 지켜낼 것이다. 땅을 끌면서 걸어온 피범벅의 삶들만이 구원해낼 수 있으리라. 스스로 바꾸는 자만이 보고느끼고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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