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파도가 가까이 몰려오거나 몰아쳐가는 느낌의 나날들. 이제 그 파도들도 바위에 부딪치고 다시 멀어져가는 듯하다. 


1. 일터


5개월전 처음 그대로 다시 세팅하기로 하다. 열린 것 같지 않던 문은 여러 번의 시도 가운데 공문이 주효했던 것 같다. 공문마저도 제대로 소통되지 않는 조직은 당사자가 봄으로써 더 이상의 진행을 멈추게 만든 듯하다. 손해배상의 문구와 밑줄을 넘고, 기본설계 검토가 되지 않은 것이 부담으로 다가온 듯하다. 다음달 초순 원상복귀함으로써 일단락된다.


2. 진창


공문의 세계는 깔끔하다. 베어버릴 듯 칼날같은 단어들을 취사선택하고, 요점을 벼릴 때만 원활한 소통이 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다. 의도를 가늠하기 어렵고, 불쑥 불쑥 솟아나는 기호를 해석하기 힘들다. 연기는 피어오르지만 어디서 어떤 이유로 생기는지 가늠할 수 없는 것처럼 좀더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 그래서 늘 끝은 끝이 아니다. 다른 시작이다. 여러 사건들은 여전히 생길 것이고, 이해와 확율과 가늠의 시선이 명확해지는 것이다. 여긴 애초에 진창이었던 것이다. 관측하려했던 시도는 벌써 읽혀 다른 중첩의 사건의 확율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3. 엄마


딸아이가 엄마가 되다. 예정일은 6.6이었는데 아이가 크다는 이야기 조정을 해야겠단 통화를 한다. 분만유도하던 당일날, 왜 이리 시간은 천천히 흐르는지 모른다.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여러 얘기치못한 사건들에 대한 상상이 불쑥불쑥 끼여든다. 아이는 뱃속에서 편안하고 싶은데 세상은 이리 야단이다. 문은 열리지 않고 하루의 절반이 지난 시간 수술하기로 한다는 소식이다. 늦밤 녀석은 세상을 본다. 부산한 일터를 드나들다 아이를 보고싶다. 수고했고 축하한다는 꽃바구니도 보내고, 출산축하금도 보낸다. 산모는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다. 다음날 다시 보니 붓기도 빠지고 수액도 없이 완보로 걷고 있다. 괜찮다 싶다. 잠만보 쑥떡이 녀석을 보곤 다시 일터로 내려온다.


4. 루틴


하루하루 핑계삼아 마신 반주가 틈틈이 달려주었음에도 몸무게가 오르내린다.  그래도 허리부분에 자극이 와서 내장지방은 물론 유연성을 보완해주는 단계로 세팅되었음을 알려준다. 하지만 아직 휴식타임을 제대로 몰라 매번 무리한다. 격일 러닝. 천천히든 빨리든 거리장단에 매일은 아직 적응하지 못하는 몸임을 깨닫는다. 늘 쉽게 경직하는 어깨를 풀어주는 방법을 찾아가는 듯하고, 루틴만 잡게 되면 좀더 말랑말랑해질 듯싶다. 반주가 문제라 한 주가 금주라고 새겨본다.



























볕뉘


정보이론, 암흑에너지를 비롯한 진전들, 양자 퀀텀으로 보는 양자생물학. 달리 봐야할 것들이 늘어난다 싶다. 막내와 도나, 양자, 철학얘기를 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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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입해두고 읽지 않은 지가 오래다. 오래된 책벗이 찾아와 얘기를 나눌 때, 젊은 작가와 기성 세대의 불화를 다룬 작품이란 단평을 듣는다. 


그래도 읽지 않는다. 사무실 한 켠에 여러 책들보다는 보이는 자리를 차지하긴 했지만 말이다. 한 계절도 훌쩍 지나고, 지인에게 빌려주게 되었는데 지인들과 서로 돌려본 모양이다.


그제서야 읽고 싶은 마음이 인다. 매년 출간되는 젊은 작가 신인상이라는 타이틀도 그렇고 상주고 받는 관행, 소설가의 역할에 대한 회의도 든 지가 오래되기 때문이다.


<혼모노>, <길티 클럽>, <스무드>, <우호적 감정>, <잉태기> <메탈> 순으로 읽다.


열정과 애착, 숭배와 집착, 공동체와 구조, 대물림과 협착, 이상와 현실.


그의 글을 따라가다보면 이렇게 지금-여기를 잃어버리는 인물들이 하나 둘 탄생한다. 그 시작인물들과 무대는 독특하다. 감떨어진 선무당, 우연히 꽂힌 영화팬, 찐 한국인외모의 완전 미국인, 공동체마을, 원정출산기, 메탈청소년. 현실을 이탈하는, 이탈하게 하는 경계선상의 인물들이다. 이질감 있는 작두 선상에 있는 인물들이다. 잘 될 것이냐, 그렇지 않을 것이냐는 독자들의 몫이기도 하다. 뒷 배경에 있는 인물들도 경계에 있지만 현실에서 볼만한 인물들이다. 국회의원이 되고자 하는 인물, 광팬들과 매니아. 아크로비스타, 강화 홍성, 이중국적, 락커. 현실은 이렇게 양끝이 동시에 버무려져 있다.


안타깝게도 작중의 인물들 가운데 이 경계를 벗어나버린 이 역시 없다싶다. 또 다시 그 소설의 말미의 현실은 더 현실감있게 다가온다. 현실의 인물들은 여전히 그 가운데 하나의 색깔을 가진 주인공들이 되고만다. 뭔가가 있다고 여기는 착시, 이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악착같은 인생들이 만들어내는 현실은 더 기괴해진다. 


하지만 깨달음 같은 것은 없을까. 왜 현실을 볼 수 없었는지, 뒤늦게나마 그 현실을 깨달을 수 있다면 주장과 과도함이 넘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주인공들은 일상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현실을 부정하거나 선을 그으면서 늘 저기를 가르친다. 현실에 접속하는 법을 애써 지우려는 인물들이다. 다른 삶들에는 관심조차 잃어버린 이들이다.


호랑이 척추를 부디 만져보시길 작중의 주인공들에게 다시 권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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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유고래에 이어 까마귀 소리를 모아 데이터 분석한 유투브영상이 뜬다. 고래가 모스 신호처럼 교신하고 대화한다는 사실. 그처럼 까마귀들은 해를 끼치는 사람들을 정확히 기억하고 알린다는 것이다. 새를 아끼는 사람들은 올빼미, 까마귀, 닭을 가릴 필요는 없다. 까마귀가 구슬이나 지폐나 동전등으로 보은을 한다는 사실영상은 흔하기도 하다. 살아있는 것들 가운데 영악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작년에 노벨상도 양자터널링 증명이 그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동네 작은 도서관에서 그 논문을 본 뒤, 이렇게 중첩되는 책을 펼치게 된다. 


이 책을 든 순간, 어 이거 정말인가? 그래 광합성할 때는 양자역할을 들어봤지. 하지만 새들이 지구자기를 보는 눈이 있다는 말은 처음인데. 효소 반응 속도도 그렇다고 대체 무슨 말이야.  


같은 이야기가 중언부언 이어지는 부분들이 많다. 저자분이 양자사업단 단장이니 이해해야할까. 물론 반복되니 이해가 깊어지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아직 검증되는 않은 파트는 애써 이해하고 싶지 않기도 하다. 중언부언들을 추려내고 명확한 것들로만 편집해낸다면, 음 단장이 아니라 양자역학의 실응용을 알고싶은 호기심어린 독자들을 가정하여 썼다면 어땠을까? 절반으로 팍 줄여서, 앞 표지디자인도 심박하게 한다면 말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명은 DNA 염기쌍이  양자화 되어 돌연변이를 만들어간다는 것이나 후각의 수소, 중수소 진동에 의한 양자화 로 냄새를 듣는? 후각수용체, 새의 크립토크롬인 눈 속의 양자나침반이야기는 모두 새롭고 경이롭기도 하다. 생명은 양자의 도약으로 체내화하면서 진화했다는 사실들을 하나하나 반복해서 짚어내기도 하여, 여러 주제의식은 명확해지기도 한다. 


생명은 양자체내화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 효율성은 그야말로 지금까지 과학이 발명한 그 어떤 것보다 경이롭다. 그래서 상온에서도 양자의 결맞음은 현상을 유지할 수 있음은 지금 양자컴퓨터가 절대온도 부근으로 온도를 낮추는 현실과 비교할 땐 얼마나 한심한 수준인가하는 아이러니가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가려서 읽게되면 놀라움과 순탄함, 여러가지 가능성이 동시에 보일 것 같다. 그래도 막힘없이 끝까지 읽어내게 된다. 주변에 작은이야기 꺼리로 참 좋다싶다. 앞부분의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원리 설명도 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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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발 짚은 스포츠 기자의 딸인 도나는 눌변에 달변이다. 읽는 내내 깊숙히 빨려들어가는 느낌이다. 본문을 직접 접하지 않았다면 몰랐겠지. 어질러티 대회부분만 반복되는 것 같아 살짝 빼곤 어제오늘 완독하다.


거기에다가 스스럼도 없다. 라투르와 데리다를 거침없이 쓰는 것이나 이자벨과 카렌버라드의 통찰은 거의 한몸인 듯 개념을 이질감없이 자유자재로 활용한다.


의문의 일패한 남성사상가들은 한 둘이 아니다. 맑스는 반려동물 시장으로 파악되는 생명자본(론)으로 한방에 훅 보내버린다. 


내셔널 지오그래프의 크리터캠의 역사는 물론 목양견 사도 풍부하고, 깊고 일목요연하다. 기술사곁가지도 몽글몽글하다. 얼마만에 루이스 멈포드라니.  이 책은 어렵지 않다. 너무 쉬워 조바심이 난다. 또 다른 재미있는 대목은 없을까하고 말이다.  물론 종이 그 종만이 아니라는 것. 사물과 거의 모든 것들이다. 번역자에게 깊은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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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당 본점에서 이삼백미터 떨어진 지점에 성심당문화원이 있다. 1층은 굿즈상품을 3층부터 5층까지는 전시실로 운영되어 온 곳이다. 정작 많은 이들은 여기를 잘모르고 잘 돌아보지 못한다.


총괄지휘자의 안내를 받으며 찬찬히 관람한다.


높은 조도의 조명이 환등기의 필름처럼 선명하게 글자를 비춘다. 밀가루 포대, 성당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퍼지듯, 슬라브에 코어를 뚫고 매달려있다. 타이포그라피와 실물의 배치는 거대한 반죽기, 팥빙수기로 3층 전시실을 관통하고 있다. 유리공예, 스테인글라스느낌이 나는 최고층의 기도실까지 드러나지 않으면서 스며들게 하고 있다.


기업 70년사. 경영주의 독차지 같은 기업 발간물을 많이 보아온 터라 자칫 과잉으로 흐르지 않을까 싶은데, 우려였나보다. 사업주로서 로망같은 것들이 있다. 생각들을 모으다보니 <자본주의와 자발적 예속>이란 책에 나오는 "공동결사기업" 모델이 안성맞춤이다 싶다. 협동조합도 아니고 기업에 방점이 따로 찍혀있는 것이 아니라 원가비용공개를 일주일마다 신문형식으로 나오는 성심당의 제도화에는 혀가 내두를 정도이다. 기본 문화로 정착된 것이다. 사랑의 성심당은 인사고과의 40%를 또 다른 사회화를 염두에 두고 운영하고 있는 것 같다. 


1113인의 소망과 바램이 적힌 일터는 이미 3-4천명의 가족과 함께 삶은 꾸려가는 터전인 듯싶다. 많이 받으면 좋겠지만 정녕 그러한 것이 노동자의 심리는 아닌 것 같다. 일들을 겹쳐 쪼개고 더 작은 근무시간, 더 많이 활용할 수 있는 자신의 시간들을 부릴 수 있다면 말이다. 발라낸 노동이 아니라 삶에 함침된 노동은 수많은 것들을 구제할 수 있다. 열정과 에너지. 고무된 희망들. 그 곳이 일터라니, 설레지 않을 수 없다.


뒤풀이에서 그런 농담같은 이야기를 한다. 김영훈노동부장관이나 이재명대통령, 청와대관계자들이 꼭 전시를 보고 가면 좋겠다고 한다. 자본주의가 구조적으로 안고 있는 근골격계 질환을 피해갈 수 있는 4조 2교대가 아니라 6조 2교대의 현실도 가능하리라는 자극을 안고 갈 수 있다고 단언해본다. 여기서 또 다른 길과 답을 찾아보시라고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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