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주어졌다. 고전동역학의 궤적들의 특성은 준법성, 결정론, 그리고 가역성 등이다. 각각의 상태는 과거에 있던 것이든 미래에 있을 것이든 간에 모든 상태들을 연결하는 궤적과 아울러 다른 모든 상태들을 계산할 수 있도록 한다...107


우연X우연X우연X . . .행성들간의 힘과 자유낙하 물체를 가속시키는 힘, 화학물질간의 힘들이 똑 같은 인력이라는 것이 확인되자....모든 것에 적용할 수 있는 것, 보편적인 법칙이라는 것에 당대의 위대한 과학자들은 뉴턴은 경험론에 불과해 라며 모욕을 주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우연들까지 겹쳐 신화는 탄생하게 된다.


여기에 결정적 힘을 보탠 것은 칸트였다. 경험에 대한 선험적 조건들은 또한 경험의 대상들의 존재를 위한 조건들이다.140 라고 하며 선험철학은 따라서 모든 실증적인 지식의 명확한 형태를 찾아내었다고 하는 물리학자의 주장을 비준하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과학에 대한 철학의 지배적인 위치를 확보해 주었다. 141 칸틔 비판적인 비준은 과학적인 노력을 조용하고 체계적이며 그 자신 안에 폐쇄된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철학은 분쟁을 지지하고 영속시키고 있으며 실증적인 지식의 전 분야를 과학에게로 비하시켜 내주어 버리고, 반면에 철학 자체는 자연과는 낯선 것으로 생각되는 자유와 윤리학의 분야를 보유하고자 하는 것이다. 142


볕뉘


물론 과학과 철학 간의 칸트적인 휴전은 허약한 것이다. 142 로 다음 문단은 시작한다. 중력의 법칙에 거슬러 올라가는 불, 열, 엔트로피가 기다리고 있다. 온전하지 않음을 문장을 다 읽기도 전에 감지할 수 있다. 


여기서 백과전서파의 디드로를 만날 줄이야. 그는 기계론의 함정을 명확히 알고 있었으며 과학이 무엇을 해내어야 하는가를 명확히 했다. 최근 번역된 책들이 많이 보인다. 과학자 달랑베르에 책에 언급된 대목들이 나온다.


문어, 갑오징어처럼 주변환경에 변화하는 것도, 도룡뇽처럼 잘린 다리를 복원하지도 못하는 과학이라니, 그런 수준에 있는 우리 과학님은 이제서야 돌멩이와 곰팡이와 대장과 인간과 살아있는 것들을 겨우 매만지기 시작한 수준이다. 텍스트처럼, 일리야 프리고진과 이자벨 스텐저스가 쓴 고전에 넋을 읽게 된다. 다음 대목은 이어서








과학이 자연에 대한 일관된 전망을 이룩하기 이전에 생명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 P132

당신은 데카르트와 마찬가지로 그것이(달걀에서 병아리로) 단순히 흉내내는 기계라고 하겠습니까?..만일 기계라면 당신 또한 기계라고 대답할 것이오....당신이 말한 것과 반대로 일정한 방식으로 배열되고 다른 불활성 물질에 의하여 잉태되었으며 열과 운동의 영향을 받는 하나의 불활성 물질로부터 당신은 감수성, 생명, 기억, 의식, 정열, 사고 등을 얻게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오 - P133

그러나 디드로는 절망하지 않는다. 과학은 단지 시작되고 있을 뿐이다. 합리적 역학은 단지 너무나 추상적인 첫 번째 시도일 뿐이다. 태아의장면은 그것이 주장하는 보편성을 반박하기에 충분한 것이다...위대한 수학자들의 업적들 역시 이집트의 피라미드들에 비유했다...살아있고 수확이 풍성한 진정한 과학은 다른 곳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 P134

디드로는 물체가 감수성이 있어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심지어 돌멩이까지도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분자들이 다른 것보다는 어떤 특정한 배합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따라서 그들의 좋고 싫음을 지배한다는 의미에서 감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 P134

디드로는 인간의 영혼은 벌집의 영혼이 존재하는 것 이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짓고 있다. - P135

디드로는 생명에 관한 연구를 과학의 영역 바깥에 놓기는커녕 그것이 그가 생각하기에는 아직도 요람기에 있는 과학의 미래를 대표하는 것으로 보였다. - P13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간호사님들이 오셔서 건강체크 중이다. 상담내용들이 들려 잠시 바람도 쐴 겸 산책이다. 안전보건이란 개념으로 바뀐 뒤, 노동자의 주기적 검진과 상담이 일상화되어 있다. 그렇다고 일상들이 달라지거나 바뀐 것은 아니다. 그런 내밀한 얘기들은 듣지 않는 편이 낫고, 알아서도 별반 좋은 일이 아니다. 그래서 자리를 피한다.


일터가 수단이기도 하지만, 좀더 나은 공간이 되길 바라지만 그럴 수가 없다. 개개인의 여건과 조건 거기에서 출발한 가치관과 일에 대한 관념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또한 선입견이다. 일에 대한 개념 역시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강도가 다르듯이, 삶에 접근하는 수단으로서 일, 아니 다른 형태로서 일은 다채로울 수밖에 없다. 30년을 도보로, 자력으로 세계일주하는 사람이 있듯이 그가 향하는 삶에 일은 가늠하기 어렵다. 또 다른 걸음으로 가는 조력으로서 일은 간결하거나 매여있지 않다. 하지만 아이학비를 책임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몇 년간의 월급쟁이 생활을 자원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흔하다.


가난에 대한 과욕으로 돈에 매진하다가 몸이 다치거나 아프게 된 경우, 그 일에 대한 의미를 수정해야 될 것이다. 불쑥 몸이 아프게 된 안해를 위해 하루에 일정한 돌봄을 우선으로 삼는 사업주는 또 다른 부와 일을 다른 각도에서 접근할 것이다. 코로나 백신으로 현기증을 동반한 균형상실을 회복한 분이 조무사일을 야간에 다시 하면서 생기게 된 무기력함은 그 일을 벗어나야만 해결이 될 것이다. 골수, 혈액암에 걸린 젊은 친구가 투병후 완치하여 다시 복귀한 경우라고 해도 일에 대한, 일터에 대한 견해가 바뀌지 않을 수도 있다. 일은 다얗하며, 일을 대하는 태도, 일의 종류에 따른 개인 삶의 접목자체가 성격과 여건에 따라 다르다.


이렇게 다르지만, 공통되는 소망은 이럴 수도 있고, 더 간결할 수 있다. 더 적게 일하고, 더 많이 삶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랄 것이다.


편의점 야간 알바를 하는 분들의 걸음걸이, 응대하는 태도, 그리고 출퇴근하는 모습들을 관찰해본다. 아니 관찰이라고 하기보다는 우연히 동네에 있으니 목격하는 것이다. 끌려가는 듯한 취한 걸음걸이, 퇴근 또한 무기력해보이는 걸음걸음이다.  성격에 따라 시원시원하게 인사를 건네거나, 꼭 비닐봉투에 담아주는 이도 있다.


어쨌든 일이라는 짐이 자신의 삶을 짓누르거나, 그 무게를 감당해내지 못하는 경우는 흔하다. 그러니 쉽게 할 수 있다라고 얘기할 수도 없다. 이겨내라. 얼마나 무책임한 조언인가. 회식할 여유돈도 없는 청춘들의 삶들도 더 팍팍해지고, 소비할 관계인구들은 기하급수적으로 자신의 건강만 신경쓴다. 임대상가들은 더 말라비틀어진다.


더 이상 일도 소비도 가늠할 수 없다. 구제할 수 있다는 생각마저 보류하거나 아예 없다에서 생각를 자라게 하는 편이 낫겠다싶다. 그러니 표준적인 일터 생활, 일 앞날을 대비하라는 말조차 폐를 끼치는 발언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산책 길에 여전히 억새와 새들, 그리고 철지난 개나리도 핀다. 흐리고 고요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오고 가며 준비를 하는데 정신이 없다. 지난 전시이후 일년 반, 이 년간의 책들을 모은다. 모으고 분류해둔 글들을 보다나니 마음에 들지 않아 (조금 시간이 지난 듯해) 무엇을 하고싶은지에 집중을 해본다. 그래서 1차 정리한 정리본을 과감히 접어서 보관?해두고 다른 방향의 글들을 모아 보며 책탑을 쌓아본다. 


가능할 듯 싶다. 사진을 찍고 오리고 모으고...작업실을 오가기도 하고, 가족행사라 왔다갔다 하기도 하고 오늘은 온전히 책을 읽을 요령으로 이러고 있다.


오늘 아침은 어제 저녁에 준비해 둔, (사실 배는 그리 고프지 않았는데, 어제 한 가닥 잡혀 만찬을 한지라) 달걀을 풀어 섞은 당근과 양배추를 활용해 또띠아를 만드는 것이었다. 암튼 나쁘지 않게 성공한다. 그리고 어제는 참치액젓, 육수봉지, 대파건조용까지 있더라니, 암튼 조리용 양념들을 두루 사둔다. 맛술도 샀구나. 어제 단골가게 사장님이 맛을 보여준 첫개시 과메기까지, 그리고 찌개까지 만들어 들었다. 과식 맞다.


그렇게 냉장고털이 요리근력을 키우고 있다. 그 다음은 아마 조리도구일 것이다. 채칼도 어찌나 좋은 것들이 많은지. 이렇게 낚이는 구나 한다.


이 책은 책장을 정리하다가 사둔지도 모르고 깜놀한 책이다. <세계끝의 버섯>에서 저자가 불안정성과 불확정성 개념을 시도한 곳이 여러 군데 나와 유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덕분에 불안정성 개념을 다룬 학자가 여럿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정리할 겸 끝까지 완독해보려고 한다. <혼돈으로부터 질서>도 같이 완독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너스레를 떨고 있다니. 어쨌든 두 책매듭을 짓고 작업에 더 몰입할 예정이다.


그래도 한 바퀴 달리고 오자꾸나. 날이 너무 좋아. 찬 바람 맞기 전에 그림자 안은 제법 찬 기운이 느껴지니 말이다.


앗 이 책도 읽어야 하는구나. 행사준비용으로 <면목동>이란 시를 외우다시피 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1. 구두 


 돌잔치를 가는데, 멀다. 세종 조치원은 가깝다는 생각만 있지 넓다는 생각을 늘 놓친다. 가다가 고복저수지를 얘기했고, 그 한 켠의 매운탕집을 건넨다. 비가 내리고 저녁밤에 가깝다. 아까부터 있던 구두 밑에 끈적거리는 느낌이 뭐람?  사돈 어른과 만나고 얘길나누고 비는 짙어진다. 여전히 끈적이는 느낌 파사드가 있는 입구로 가서 밑바닥을 확인한다. 아불싸. 우레탄 밑창, 고이 모셔두었더니 세월에 삭은 것이다. 뼈대는 사그라들면서 접착제만 바닥으로 서서히 내려와 고인 것이다. 막내 차에 신발은 없니라고 묻고, 조심조심 해야한다는 경고. 그 뒤로 조심스러워지고 조심스럽게 아니 우아하게 다닌다.


2. 증약


장군님닭치킨 이층은 아지트다. 대전아트시네마에서 영화를 한 편 때리고, 오백 한잔과 소회를 나누기 좋은 곳이다. 오징어다리튀김, 전기구이, 반반. <이방인> 프앙소와 오종 감독 작품이다. 코로나 시기 페스트란 작품과 나눔의 세계 등등 여러 작품들을 한 번에 볼 겸 카뮈를 심층탐독했던 시기이기도 한 것 같다. 그런데 과연 나는 <이방인>은 제대로 읽어본 것인가? 뫼르소 뫼르소 유명한 나머지 읽은 것은 확실한가라는 의문도 들기는 했지만, 과외 경험과 수십 번 읽은 시인에게 스토리를 확인받는다. 아참 이 친구는 막걸리파인데. 증약막걸리. 오늘은 참자. 취한다.


3. 개인주의자














뫼르소. 뫼르소. 지난 시절을 겪은, 책을 본 나는 저것이 나라는 것을 다시 확인해낸다. 감정을 하나하나 걷어내고 있는 사실만 보는 건조오징어같은 놈 말이다. 서로 닮으려고 하고 추구하려고 하는 지식인의 모델, 항간에 회자되는 선배들의 모습은 저런 것이었다. 모든 것을 발라내고 스스로 오똑 선 체 하는 인간. 그 모습이 겹친다. 


얘기를 나누다보니 정작 우리 시대는 이런 경험이 몰려왔지만, 놓쳤다. 겪지 못한 것 같다. 어정쩡한 변태들만 낳고 만 것은 아닐까? 시대의 우울이다. 사르트르와 같이 실존주의는 즉자적 존재, 대자적 존재, 기투란 말들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자아라고 하는 것 개인이라는 고체가 있어야, 이것이 전제해야 가능한 서술이다. 하지만 주어는 흔들린다. 그렇게 매여둘 수 없다. 그 고체, 부여잡고자하는 시대상의 인물, 그 가상이 늘 뫼르소였다. 곁이 없는 존재. 감정 한 톨도 매여둘 수 없는 존재말이다. 


카뮈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 존재라는 것. 부조리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 시지포스를 빌려서 그 마음을 설명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시대의 추락은 이미 시작하고 있다. 견고한 개인주의자 하나 만들어내지 못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버리는 편이 나았을까. 아닐 것이다. 각자 다른 길로 접어든 것일 수밖에.  그 이전이 함께라는 수식어가 늘 곁에 있었다면, 그 이후는 나밖에라는 수식어만 붙어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암담의 확율은 부쩍 높아진 것이다. 어떤 깨우침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니 또 다른 고체덩어리다. 이기심으로 똘똘뭉친 뫼르소들의 출현이 그 뒤를 잇는 것은 아닐까


개인주의자가 하는 모든 서술도 형용모순이다. 그렇게 존재하거나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이성이 억압하고 뱉어낸 감정들이 그 삶들을 이어주는 접착제이자 가교다. 냉랭한 이성은 무미 건조하지만, 말랑말랑한 감성과 감정들은 일상을 버무리고 뱉어낸 마음과 심장을 쫓는다. 삶의 강약은 이렇게 뛰는 것이다. 무미하게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냉동동결인간들이 어찌 숨을 쉴 수 있겠는가.


4. 모르겠습니다.


 뫼르소는 '모르겠습니다'를 늘 달고 다닌다. 묻는 말에 잘 모르겠습니다. 저항은 이렇게 시작한다. 바틀비가 체제를 거스르는 발언 '계속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처럼 끝까지 그 지난한 역린이 숨어 있듯, 이 영상에도 그대로 스며있다.


5. 지금


지난 과거들이 물밀듯이 몰려온다 간다. 그 영화를 빌미로 지난 흔적들이 희석되기를 바란다. 너무 부끄럽다. 하지만 지금이 있다. 그래 그렇게 디딘다. 흔적들을.


200521 ▼

 

‘전락‘

마흔 여섯.

시지프스가 맛 본 그 해방감.
바위를 손에 내려놓는 그순간.
숙명을 짊어지고 사는 인간.

그가 가다듬는 심호흡과 통쾌함으로 잇는 길.

재판관으로서 ‘시선‘과 참회자*로서 ‘뺄셈‘이 서로 겪어내는 바닥.
그 바닥에서야 오롯이 삶의 시선을 맛볼 수 있다 한다.

힘겹게 바위를 밀어올린 과정과
바위가 굴러내려가는 순간을 다시 써 내려간다.

그제서야 지금과 다른 종류의 인간들이 들어서는 것이라 일갈한다.

발. 삶의 비밀을 드러낸 자에겐 늘 가혹하다 싶다. * 카뮈, 《전락 》, 문학동네

 

펼친 부분 접기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두 달이 되어간다. 약을 타러갈 때면, 이틀 전 한 피검사 결과가 어떨까? 가정혈압을 재면서 긴장하는 모습을 느낀다. 대소롭지 않게 느끼면 될 일이지만, 백의혈압처럼 의원이나 병원은 그리 익숙하지 않고 긴장하게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어쨌든 편안함을 주고 들고 간 책에 관심을 기울이는 의사선생님을 만나면 기분좋다. 오늘도 들고 간 책에 먼저 관심을 주신다. 헉 이렇게 어려 --운




1. 읽다가 보니 작정하고 읽은 작품들이 없다. 선입견만 있어서, 너무도 유명해서 읽지 않는 작가이기도 하다. 읽다보니 참 겸손하다고 할까 아니면 말들을 세세히 잘 고른다고 할까 , 이 책 또한 작정하고 쓴 작품이기도 하니 그가 정갈하게 들어있다는 느낌이 든다.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이 가운데 한 구절이 들어온다. 냉장고에 문을 열고 그 안에 있는 재료로 요리를 해내는 장면, 많지 않아도 그저 사과 매실 등등으로 만드는 모습이 스치듯 기록되어 있다. 50대후반이니, 청춘시절 공연음식점의 경험으로 설명되지 않는 다른 일상의 숙련미가 들어왔다.


정말 해보고 싶다. 아무렇지 않게...






2. 대기실에서 기다리며 접힌 부분 다음을 읽어나간다. 부계가 아니라 모계사회가 30여군데 세계 안에 있다고 한다. 가부장의 질곡을 풀어내는 대목들을 읽다가 진료실 호출이 있어 제대로 닫지도 못하며 들어간다. 이 책 앞 부분 아니 <감정의 기원>이었구나, 책을 좋아해서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읽는 대목이 나온다.


아 난, 거기까지는 아니었는데 싶다.

해보고 싶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 책열정은 본받고 싶다.말 남긴다.









 3. 이 책은 최신의 흐름을 반영한 역작이다. 아마 제대로 평가가 되어야 할텐데 그럴 수 있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평가하는 대목은 그녀의 불안정성과 불확정성, 그리고 얽힘을 그대로 반영한 인문사회과학 서적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를 들면 이분법을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해당되지 않는 부분을 연결시켜 이분법이 갇힌 한계를 깨닫게 한다는 점에서도 수작이다. 마음대로 될 수 없다. 이렇게도 되고 저렇게도 되고 이런 길을 걸으면 이럴 가능성과 함께 기술한다. 


그리고 계속 언급되는 어슐러 르귄의 작품들 <소설 가방이론?>, 해러웨이나 최신 저술은 참고문헌을 책에 한계짓지 않는다. 영화, 미디어, 예술작품, 특히 자주 언급되고 회자되는 SF작품들이다. 안타깝게도 <빼앗긴 자들>의 아닐레스?와 우레스 행성..배경과 연관되는 SF독서를 진중하게 하지 못한 것이 걸린다. 위의 <일상의 유토피아>가 흐름들을 짚어주기도 한다.




4. 폭발이나 교란. 위의 책에서도 언급되지만 대규모 교란, 살아있는 것들은 필연적으로 제거하거나 없애버리는 과정이 있다. 손가락 모양을 배아세포 단계에서 만들려면 나머지 부분을 없애야 한다. 없애거나 지우거나 하는 것이 더 풍요롭고 풍부해지는 바탕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안다. 하지만 저술에 일관되게 그것이 갖는 힘을 기술해내기는 힘들다. 그 점에서 이 두 책은 뛰어나다. 삶죽음은 죽음삶은 멀리 관조해내는 일이 아니다. 가까이있는 일이고 일상이다. 한글런에서, 기적의 마라톤에서 자원활동을 한 유지원러너는 2001년생이다. 그때 그때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한글런에서도 레이싱패트럴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하고 무척 말랐군하며서 스친 모습이 마지막이다. 하루키의 책에서도 갓 결혼한 젊은 러너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장면이 묘사된다. 똑 같은 운동장에서 숨을 가누며 다가오는 모습이 그 장소에 어른거리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고 안전을 위한 더 높은 강도의 기준들 관리들이 이 계기도 만들어졌으면 한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5. 막내녀석이 건넨 책 띠지엔 필요한 곳에 필요하게 해 두었다. 군대독서내공이 읽힌다. 이 가운데 뜨끔한 곳이 있다. 명상이라는 것이 특별한 것도 대단한 것도 아니지만, 자신을 내려놓고 갈피짓는 시간, 짬을 시작하지 못하는 모습이 겹친 것이다. 여러 효과와 단단함, 시도. 여러 결들을 책을 통해 갈무리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그 좋다는 걸 정작 어정쩡하게 서있는 내 모습이 걸렸다.


해보고 싶다. 오분 십분  삼십분....






볕뉘


나쁜? 기름기가 줄고 눈에 띠게 좋아진 수치는 물론 러닝의 결과이기도 한 것 같다. 하루키만큼 월마일리지를 달릴 몸이 되는 것도 고맙다싶다. 하지만 이렇게 너스레를 떨지 말고 찬찬히 하고 싶은 일들과 연결시켜가며 달리기를 풍부하게 만들고싶은 마음도 든다. 의사선생님이 말한다. 감마 지피티 튀잖아요. 어 한잔 하셨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