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실로 가는 길. 전지 작업을 다 해두었다. 한 달남짓 쉬고 들렀는데 챙기기엔 한 발 늦었다 싶다. 우산을 들고 가위와 봉투를 챙기고 혹시 건질만한 매화 잔가지들이 있을까 하여 부산을 떤다. 여의치 않아 매화밭이 아니라 길가 한 그루에서 가지치기를 해주면서 얻는다. 화병에 한단.  고루면서 남은 잔가지를 철사와 고무줄로 묶어 빈통에 담고 떨어진 여린 매화알갱이를 담아둔다. 개나리와 동백도 한 모둠. 곧 서로 화사해질 것이다.


1. 대마 -  아열대부터 아한대까지 광범위한 지역에서 자라고, 일년생 식물로 봄에 심으면 여름이 지나 수확할 수 있다고 한다. 쑥대밭에 버금가는 듯싶다. 밀집해서 심으면 곧게 자라고, 암수가 구분되어 있다고 한다. 속대는 구멍이 나 있어 플라스틱 대용이나 단열용으로 쓰일 수 있다고 한다. 몽롱함이나 환기기능이 있어 제의용으로 시작했을 법하다고 한다. 인도 메소포타미아, 중국, 러시아 등을 가릴 것이 없이 곳곳에서 재배되었고, 염분에도 강해 밧줄용으로도 많이 쓰였다고 한다. 들깨나 유채기름처럼 바이오연료로도 쓰일 수 있고, 씨앗도 귀리나 깨처럼 오메가가 풍부한 필수 건강식품으로 환영받을 수 있다 한다. 린넨으로 쓰이는 아마, 포대로 쓰이는 황마, 모시로 쓰이는 저마와는 다르다고 한다. 저자는 농협에서 오랫동안 일하셨고, 양평에서 밭농사를 지으면서 대마에 관심을 가져오셨다고 한다. 편하게 다방면으로 잘 읽힌다. 잔잔한 정보들이 서로 이어지는 솔솔한 재미도 있다 싶다.


2. 책 - <<지식인의 배반>>은 앨버트 허시먼을 읽으면서, 책 속에서 언급되어서 구했다. 주의로 경직된 분위기에서 다양성을 넓히려는 시도로 읽혀져야 한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다시 출간한 서문이 사십여쪽이 넘는다. 하고픈 말이 얼마나 많았으면 그랬을까 싶다. 책들은 멈추어 있지 않아 있어서 좋다. 시간에 불문하고 다시 읽히고 다시 연결되어 또 다른 새로움들을 낳을 수 있으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3. 애매 - 30호 영상을 다시 보게된다. 싱어게인을 어게인해본다.  앨버트 허시먼은 '회의'라고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창조성과 상상력을 보태주는 것은 이것때문이라고 한다. 애매함을 밀고나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과정을 모색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물도 그러하며 모든 애정하는 것들은 그러하다 싶다. 어떻게 하든지 제 몸과 마음에 익숙하게 만드는 시도는 남게 되어 있고, 다른 것들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그러니 서둘지 말라.


볕뉘. 이것저것 갈피가 제대로 잡히지 않아 서성인다. 꽃들도 서성이겠지. 피면서 벌들이 나비들이 찾아올까 궁금하겠지. 개미들이 서성거리겠지. 피면서도 아련하겠지. 아마 이렇게 제 몸이 필락말락하는 걸 보니 봄이 오고 있는 게야. 저 만치 아련하듯이 제 맘도 이렇게 서서히 떠오른 것이라고 말야. 스스로 챙기는 이들에게 포르투나가 생기길 바래. 지인이자 지인의 아들인 인효가 세미파이널에서 떨어져 아쉬움도 한 가득. 또 다르게 필거야. 넘 걱정하지말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마 상식이 잘못되었다는 얘기가 여기저기. 귀쫑긋 하던 참인데 마침 책이 나왔다. 살펴보기로 한다. 


린마굴리스의 책들을 이어보고 있던 참에 같은 제목이어서 마저 읽는다. 저자는 중간중간 가족사와 학력을 슬쩍 넣었다. 그가 만약 이 나라에서 생활했다면 그는 역으로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조부모의 손에서 컸고, 고졸에다가 효모 관련 실험실 잡일을 하다가 대학교에 특채되었다는 사실. 한 가지 연구에만 몰입하고 주변에서 매진하도록 배려하는 분위기는 사뭇 이곳 연구실의 분위기와 문화가 다르다. 논문 저자에 숟가락 얻는 것을 밥먹듯이 하는 관행과 다르게 많은 역할을 했음에도 사양하는 연구 습속은 차이가 많다 싶다. 이 나라에서 연구원이나 성별차이는 끊임없이 끌어내리는 힘으로 작용하지 연구에 더욱 매진하게 하는 배려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 아니 확연한 차이다. 하고싶은 것은 하게 하는 암묵지가 없다 싶다.


글들을 쫓아가면 린마굴리스가 점점 집중하고 미세하게 들어가게 하는 데 반하여, 큰 그림들을 그려줘 통찰하기가 쉬워진다. 잘게 잘게 있었던 지식들을 이어준다는 느낌이 든다. 완독하면 기본적인 밑그림이 그려진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다섯장을 말하고 6장은 유전자 편집이나 조작으로 대별되는 가능성을 이야기 한다. 


그런데 다소 불편했다. 과학 기술이 자본에 봉사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인데 여러군데에서 반대에 부딪치면 이렇게 말한다. 가난한 사람들이나 아픈 사람들을 위해 이 기술이 정말정말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꼭 개발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기술에 대한 우려보다는 아픈이와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라고. 변명일까 아닐까. 과학이 기술이 언제 그렇게 경제를 생각하고 정치를 생각하고 인문이 몸에 배이는 활동을 해왔단 말인가? 평소의 모습과 너무 다른 사람이 흔히 하는 핑계는 아닐까 하는 그런 의문들이 생긴다. 그리고 마지막장은 생명이란 무엇인가 총괄편이다. 물론 책 제목은 아시다시피  슈렌딩거의 책 제목에서 나온 것이다. 6장에서 하고자 하는 말씀은 알겠지만 빼도 좋을 듯싶은 미련이 들었다.


볕뉘.


출근 길 라디오에서 특강을 해서 든다. 최열 이사장이 비닐 슈트를 입고 나왔다거나 대만이 페트 회수율이 95%인데 우리는 65%라거나, 비닐을 소각하는 방법에서 기후 이야기까지. 하지만 소빙하기도 있듯이 자신은 탄소배출이 식물들로 흡수가 가능하다. led로 24시간 식물팜을 하는데 어쩌구  사업가로서 급히 하지 않으면 안되어 쫓기는 느낌의 두서없는 강의에다가 기후위기 회의론을 슬며시 섞는다. 기후위기로 여기저기 다니지 않는 데가 없으며 하물며 그 일로 돈까지 벌면서, 관점은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채로... ...뭐하는 꼴이람.....그래 그게 내모습 같겠다. 그 꼴. 어정쩡한 그 모습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요구르트 제조기를 사들인다.  500ml 우유를 조금 덜어내고 요구르트 하나를 넣고 골고루 섞은 뒤 자고 일어나는 시간 뒤에 일터에 가져와 냉장보관한 뒤 맛을 본다. 먹을 만 하다.


1. 면역 -  <<면역의 힘>>은 장내 미생물과 운동(근육/력)에 대한 부분을 봤다. 색다른 부분은 크게 없었지만 림프액의 양(15리터)과 역할이 세세하게 적혀있다. 운동에 대한 장도 과유불급이라는 지적도 살펴볼 만하다. 활력을 유지하는 일. 아니 생기가 도는 일상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싶다.


2. 비건 - <<물결>이라는 잡지 창간호의 서문을 본다. 격문을 본지 얼마던가. 비장미가 감돌기도 하는 글. 날선 글이 잘못하면 갇힐 수 있는 여백도 고스란히 남기고 있다. 다른 편의 글들은 좀더 마음을 차리고 조심스럽게 읽어 보려한다.  


3. 제3세계 - <<세여자>>가 우리의 백년이라면, 지금 읽고 있는 <<앨버트 o. 허스먼>>은 유럽과 서구의 백년이라는 관점에서 읽고 있다. 그런면에서 비동맹 독본은 이를 지탱하거나 빠져나간 역사들을 채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다보니 일년의 시작을 역사로 연다 싶다.



볕뉘. 


빈 플라스틱을 보면 애처롭기도 하고 스스로 한심해지기도 하는 것 같다. 빈봉지에 주워 담으며 매번 비슷한 자괴감에 든다. 또 줄인다는 핑계로 연신 택배로 오는 작은 상자나 비닐류 역시 다를 것이 없다. 그냥 동네 작은 시장에서 천원 이천원 장바구니에 담아오는 것이 괜찮겠다고 여겨보지만 뜻대로 되지 않구 말이다.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를 보면 작금의 시대를 인류세나 자본세로 것이 아니라 닭뼈의 시대로 본다. 구석구석 그 잔뼈들은 어디서든지 발굴될 것이라구 지금을 상기시킨다. 


선언이라는 것은 늘 미리 가는 것이니 천천히 가보는 참을성을 놓치면 많은 것을 보지도 못하며 잃을 수 있는 것이 많다. 그래도 앞서거니 뒷서거니 일상의 나침반을 놓는다하고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싶다. 불우의 시절이긴 하지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좌우를 확 섞어버려야..." 



세여자 2권은 1939년 경성부터 해방, 친탁반탁, 한국전쟁, 북한의 남로당파, 소련파, 연안파 숙청까지 조선공산당의 역사를 축으로 정숙이 사망한 1991년의 흔적까지 살펴볼 수 있다. 1990년 한소수교이후에야 많은 자료들이 개방되었고  비비안나 박의 방문으로 주세죽의 유배사실도 밝혀졌다 한다. 주세죽은 2007년에서야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게 된다. 대신 훈장은 받은 그녀도 6년 뒤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고 한다.


1. 봄 - 저자는 소제목으로 20세기의 봄이라고 적어두었다. 20세기. 그리고 봄이다.라고. 백년전 출발한 청춘들의 삶의 이력이라고 보다는 우리 아픈 역사를 품에 안는 것 같아 더 가슴이 아프다. 어느 하나로 정리할 수 없는 다기한 상황과 삶들은 여전히 진행중인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왜 봄이라고 했을까. 


2. 횡단열차 - 타고싶다. 그저 끊임없이 펼쳐지는 평원이나 평화로운 모습들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한 열차는 느릿느릿 사과나무의 발원지 카자흐스탄. 그 안의 크질오르다를 거쳐 우랄산맥의 역들과 모스크바. 그러다가 다시 우랄산맥을 넘어 끝도 없는 시베리아로 읽고 느낀 사연들을 배고 베이면서 갈 것같다. 온전한 여행은 되지 못할 것이다. 관광은 더 더구나. 



3. 미세 - 먼지. 플라스틱. 균. 20세기는 전쟁의 시대였고, 여전히 21세기도 전쟁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어쩌면 또 다른 전쟁을 치루고 있다. 비만과 우울. 건강과 삶의 질은 원인도 모른 채 더 많은 희생을 치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원자력이든 반도체든 가습제든 편리와 편이는 과학의 이름으로 찾아와서 그렇게 만들어진 사물은 여러 형태로 오염원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수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난 뒤에야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그 원인이 찾아지는 것이다. 새로운 것은 새롭지 않다는 사실들을 염두에 둘 때만 조금 비껴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볕뉘. 


1. 그랬으면 좋겠다. 좌우라는 것이 허울이고 섞여버렸으면 좋겠다 싶다. 용서가 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좌나 우로 나눌 수 없는 것이 현실일 것이다. 그러니 그 말은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 섞일 수는 없는 것이고, 설령 섞인다면 더욱 다양해지는 것이고 달라져야 하는 것이겠다 싶다. 그리고 달라진다는 것이 서로를 표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삶의 온도가 올라가게 하는 일이 우선 일 것이다.  


2. 정치란 무엇일까, 권력이란 무엇일까, 삶이란 무엇일까, 목숨을 경각에 달리게 한다는 것은 어떻게 봐야하나, 역사와 사람, 권력을 보는 태도, 시대를 보는 안목들로 서로 벼르지 않는다면, 조직이 만든 목적에 늘 경도될 것이다. 권력을 탐하고 권력의 사생아들만 영웅이란 이름으로 나타나기만 하는 것은 아닐까. 그 역시 소모품으로 쓰일 것이며 사물에 대한, 삶에 대한 태도 , 윤리는 어느 구석도 비집고 들어갈 구석이 없다. 


3. 정치는 어쩌면 한 번도 우리를 목적으로 가진 적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정치는 그들의 목적만으로 그들의 시간만 가지고 흘러갔고 우리를 늘 수단으로 여기는지도 모르겠다. 정치는 홀로 똑똑해질 수 없는 사물이다. 20세기, 21세기. 백년은 지극히 짧은 시간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봄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는 지는 의문이다. 복기를 한다면 또 다른 가능성과 길은 있을까. 그 많은 갈래길이 새롭게 자라는 뿌리로서 자랄 수 있을까. 우리의 삶들이 아둔한 정치와 이데올로기에 희생되지 않으면서... ... 또 다른 이름없는 생명들의 삶을 담보삼지 않는다면...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래봐야 너만 더 힘들어져/ 백날 해봐라,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아/ 복지 얘기하는 사람은 다 빨갱이야


TV 시청 하지 않은 지가 오래된다.  손석희 복귀 소문이 들려 일부 시청했다. 첫회에 수사-기소권을 분리해야 한다는 데 대해 이견을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아 아 이런 합의가 가능한가 의아하기도 했다. 어제도 두 번째 좌담을 이어갔나보다. 혹시나 했는데 토론을 진행중이었다. 부동산에 대한 이재명-원희룡 토론 말미 부분을 보았다. 합의한 원칙을 지키는 것도 못하는 현실에 대한 강변이 있었다. 그것이 그렇게 어렵다.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 가능한가 싶지만, 어쩌면 십여년, 오년전을 돌이켜봐도 많은 진전이 있다 싶다. 보수는 위의 전략으로 지배하고 있다. 그 기본적인 전략자체가 민주주의도, 자유도 부정하는 아이러니를 함유하고 있다. 그 절망의 바닥이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늘 유효했다. 지금도 그러하다. 


그렇지만 저자가 진보를 두둔하는 것이 아니다. 진보 역시 한쌍의 또 다른 극으로서 똑 같은 기능을 해왔다는 것이다. 진보-보수의 구도 자체를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좌-우가 아니라 상하-하상에 모든 논의의 출발점이 되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정보를 통해 수정할 용의가 없는 집단들이 늘 힘을 더 많이 갖고 행사하고 있다. 


결국 어느 집단도 완전한 패권을 쥘 수 없다. 다원주의의 가능성이 그 부분한 부분들을 채워나갈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걸 뚫고가는 정치인들이 없고, 뚫고 나가는 사회단체나 정당세력이 없다는 것이 비극인 듯 싶다. 헤쳐나갈 일들뿐만 아니라 논쟁해나갈 꺼리들이 그토록 많은 것 같은데 합의에 바탕을 둔 덧셈의 정치를 제도권 내에서 보기 어렵다. 구태 역시 쥔 것을 놓치 않으려는 아둔한 유아의 땡깡같아 보이는 것은 혼자만의 생각일까. 유난히 정치의 이분법 구도는 강하고 한 걸음 더 나갈 수 없게 만든다 싶다. 깨시민들도 흡인하고 만들어갈 수 없는 덫을 놓은 듯 말이다.


 볕뉘. 저자의 책 가운데 사둔 것이 있었고, 중고 매장에서 산,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라는 것도 다른 조직과도 연관된 것이다. 질문의 수준이 질문자의 시야를 그대로 말해주는 것일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그 너머에 가 있지 않는 이상, 정치는 늘 옛날 질문만 가지고 살 것이다. 그러지 못하게 다른 질문들을 갖고 사는 이가 점점 늘어야 조금은 나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을 것 같다는 아쉬움. 다른 저작들도 챙겨봐야지 싶다. 조효제 교수는 이 와중에 기후위기와 인권에 관한 글들을 쓰셨다. 


반동: 계획된 행동은 비참한 결과를 초래한다
진보: 계획된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반동: 새로운 개혁은 옛 개혁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다.
진보: 신-구의 개혁은 서로가 서로를 강화시켜 줄 것이다.

반동: 계획된 행동은 사회 질서의 항구적이고 구조적인 성격을 바꾸려 한다. 따라서 그것은 전혀 효과가 없고 무용하다.
진보: 계획된 행동은 이미 ‘굴러가고 있는‘ 강력한 역사의 힘에 의해 뒷받침된다. 거기에 맞서는 것은 아주 쓸데없는 짓이다. - P226

플로베르는 한때, 만물이 순수 물질 아니면 순수 정신이라고 주장하는 대립적인 두 철학 사조를 공격하기 위해 훌륭한 구절을 만들어 냈다. 그러한 단언들은 ‘두 개의 똑같은 불합리‘라는 게 그의 말이었다. - P227

진보주의자들은 여전히 진지성이라는 수렁에 빠져 있다. 그들 대부분은 오랫동안 의분에는 강하지만 풍자에는 약했다. - P2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