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뉘.
1. 전시가 끝나고 십여일이 지나서야 뫔갈피가 잡히기 시작한다. 화실에 가기 전, 작업할 분량들이 떠오르기 마련인데 그러지 못한 상태가 계속된다. 순두부 계란탕, 추어탕, 찜닭, 야채 요리, 고함량 요구르트 들로 집밥시리즈를 가동시키고 나서야 활력의 한움큼을 쥘 수 있었다.
2. 선물 겸 응원에 대한 감사표시로 서명 마무리를 궁리해둔다. 스티커 판박이처럼 거꾸로 출력시킨 뒤, 풀로 붙여 떼어낸다. 그리고 판 도장으로 엷게 찍는다. 장소와 만난 공간들을 새겨둔다. 몇몇은 글자가 두드러지는 것 같아 색을 입혀 조금 어른거리게 만들어 둔다.
3. 위의 미술사 책들은 @달팽이책방의 선구안을 볼 수 있기도 하다. 곰브리치가 여성화가들을 저작에서 거의 넣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대표그림과 이력만으로도 여성들이 얼마나 경계를 섞고 무너뜨렸는지를 알 수 있다. 게이트웨이 미술사는 기존의 미술사 서술방식과 많은 점에서 차이가 있다. 분류가 기준이 아니라 창작자의 입장에서 무엇을 어떻게 표현해내고 만들어낼 수 있는지 이론이 아니라 이론을 실제로 녹여내고 있다. 한 매체에 경도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작가이자 시인이자 소설가이자 평론가이자 연극인이며 화가이자 판화가이며 조각가란 말이 말로만 머무를 수가 없다. 마음 속을 드러내놓기 위해서는 어떠한 것도 벽이 될 수 없다. 흰 벽에는 모든 것을 설치하고 걸고 그려넣을 수 있다. 심지어는 파 내려갈 수도 있는 일이다. 우리는 너무 갇혀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선입견과 편견이라는 도그마 속에... ...
4. 아크릴 도화지위에 올린 작품들은 담백하게 만들고 싶었다. 주제를 가지고 유사한 작업들을 많이 하고 싶었다. 한국화나 동양화 느낌이 들도록 말이다. 그러면서도 글과 정황이 있는 우리 그림들의 서명들이 있으면 어떨까 싶기도 했다. 이렇게 종이판박이를 해 보니 조금은 색다른 느낌과 마음을 그림에 집어넣을 수 있음이 다행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