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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조건의 변화에 관한 모든 서사는 에너지원 착취에 일어나는 변화에 관한 서사거나 대사적 체제에 대한 설명이다. 여기에 인간에너지를 아우르기 때문에 한 차원 더 일반적으로 확장된다. 인간이, 이제 자신이 모든 종류의 비인간적 장소의 규모에 압도되었다는 것을 발견하며 그 장소에 사로잡히고 그 장소는 더 이상 인간적이기만 하지 않습니다. 57
원인과 결과는 사물들의 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들의 “앞에” 있으며, 이 앞은 공간적 앞이 아니라 존재론적 앞입니다. 이는 인과성이 있기 위해서 언제나 이미 객체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포스트뉴턴주의 세계에서 인과성은 미적 차원 속에서 자신의 정당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우리는 사물 그 자체를 볼 수 없으며, 그 사물의 인간-풍의 상관항을 볼 수 있습니다. 61
초월론적 주체. 칸트주의적 주체에 대한 일련의 희망에 찬 대체물이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정신(헤겔), 의지(쇼펜하우어), 권력의지(니체), 현존재(하이데거)가 바로 그것입니다. 맑스의 경우에는 인간의 경제적 관계들이 사물들을 실재적으로 만듭니다. 본격적인 헤겔주의적 라캉주의적 알튀세르주의 버전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최종심입니다. 이런 문화적 맑스주의자에게는 이데올로기와 인간의 경제적 관계들이 있게 됩니다. 68
‘지구’ 규모에서 인간을 생각하는 것은 완전히 기이한 일입니다: 낯설게 낯익고 낯익게 낯선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내가 좀비라는 것을 깨닫는 것과 같은데, 혹은 차라리 내 의지에 상관없이 내가 좀비의 구성요소라는 것을 깨닫는 것과 같습니다.71/실재한다는 것은 모순된다는 것, 여러분을 포함하지 않는 집합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입니다. 실재한다는 것은 형이상학적으로 항상 현재하는 식별하기 쉽고 생각하기 쉬운 것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73
우리는 여전히 1만 2천 년의 “현재” 순간, 지질학적 시간의 한 섬광의 내부에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일어난 일은 “지금” 일어나고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어두운 생태학>>이 우리를 메소포타미아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이치에 맞는 이유입니다.78/글루텐-프리 다이어트, 구석기 다이어트 paleo diet 구석기라는 용어는 우리가 포스트에소포타미아 인간 사회 형태에 사용하는 용어인 신석기neolithic에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인지합니다. 79
공존 없이 출현한 것처럼 문명이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아테나 여신 같이 아무런 지원도 없이 갑자기 출현한 것처럼 인간은 메소포타미아에서 문명을 시작했다는 착상이 겹칩니다. 87/인간 초객체는 초객체들의 생성을 위한 기계가 되었습니다. “문명” 개념과 실제로 현존하는 사회적 공간 사이의 날카로운 불균형, 그리고 이 차이를 만들어낸 농업로지스틱스 자체 때문에 “문명”은 생래적으로 유약합니다. 88
더 많은 행복이 더 낫고, 더 많이 현존하는 것이 내가 어떻게 보이든 더 나은 것입니다. 이 착상은 현존함 자체를 위해 현존함으로서 행복으로 압축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 ‘생각하기 쉬운 윤리학’은 오염, 방사성 물질, 인간종과 관련된 문제에서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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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석기 arche-lithic는 결코 증발한 적이 없는 인간과 비인간의 원초적 관계성을 가리킵니다. 라투르가 우리가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고 한 것처럼 아마도 우리는 결코 신석기인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이는 구석기 또한 원-석기를 완전히 차단하려고 분투하는 그 농업로지스틱스적 구조 내부에 있는 원-석기의 반짝임을 억제하는 개념이라는 걸 의미합니다. 우리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수렵-채집 정신을 결코 떠나본 적이 없습니다. 117
원-석기가 1만 2천 년의 현재에 붙어 따라다닙니다. 원-석기는 대문자 구의 폭력과 오만을 일소합니다. 원-석기와 그 에코그노시스에는 선과 악, 필요와 원함, 자연과 문화, 인간과 비인간, 생명과 비생명, 자아와 무아, 현전과 부재, 유와 무의 이분법이 없습니다. 150/원-석기는 선형적 시간에 종속되지 않기 때문에, 인간과 관련된 것이 아닐 따름입니다. 흐릿한 고리처럼 제멋대로 퍼져 있는 시간성의 기묘한 논리적 우선성과 관련이 있으며 인간 대 비인간 또는 과거 대 현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인간 ‘문화’ 외부에서 원-석기의 증거를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박테리아. 이는 가장 단순한 생명체, 그리고 미래의 생명체로부터 생성되거나 인간에 의해 합성된 화학물 사이의 원-석기 관계입니다. 151/구조들이 사유한 것이 농업로지스틱스이지 그 반대가 아닙니다. 그 목소리들은 그냥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목소리들은 언제나 거기에 있었습니다. 바뀐 것은 목소리들을 향한 우리의 태도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자아-개념으로부터 의식을 벗기는 것과 같습니다. 에코그노시스적 관점에서, 여러분은 “자기‘에 관한 특정적 관념 없이도 의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157
/원-석기의 목소리들은 비모순율에 따른 한 귀결, 흑과 백, 예와 아니요 사이에 아무것도 없다는 ’배중률‘을 위반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상 경험 중 극히 일부만이 이러한 배제에도 존립합니다. 예를 들어, 자기 자신이 방 안이나 밖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출입구“에 있을 수 없습니다. 운동은 불가능해 보이기 시작합니다. 너무도 많은 생태적 존재자가 ’배중‘이고 너무도 많은 생태적 행위가 ”그다지 –하지는 않음’과 약간의 영역에 있습니다. 158 문명의 질서정연함은 완전히 미쳤었고 완전히 미친 것입니다. 159
사물은 스스로에 의해 가려지기 때문에 다른 사물에 의해 가려집니다. 재귀는 전체론적이지 않는 전부-아님 즉, 생태적 가능성 공간에서의 공존을 가리킵니다. 메타언어는 공존함의 역설-우리는 서로를 함의하며 서로가 아니다-을 환원하려고, 이 가능성 공간을 탈출하려고 시도합니다. 164 실체와 우유성은 사물이 현존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사물에는 지각적 시공간 어디에도 없는 비가시적 균열이 있습니다. 나는 그 균열을 생각할 수는 있지만 만질 수는 없습니다. 이는 사물이 어떤 것인지와 어떻게 나타나는지 사이의 균열이지만, 균열 안으로 내 손가락을 넣을 수는 없기 때문에 이 둘을 분리할 수는 없습니다. 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