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받은 집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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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 뒤에 둔 시선


축복받은 집 Interpreter of Maladies, 줌파 라히리, 서창렬 옮김, 마음산책, 2013.


  줌파 라히리의 글은 편하게 읽힌다. 섬세하다. 따뜻한 느낌과 아릿한 느낌이 오랫동안 머문다. 줌파 라히리의 소설을 처음 접한 건 장편 <이름뒤에 숨은 사랑>이기에 인도인의 정체성에 대한 계속된 질문을 단편집에서 느끼게 된다. 정체성이라고 할 수도 있고 그저 줌파 라히리가 관계하는 이민생활을 하는 인도인들의 삶의 모습이 이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어느 순간의 감정들을 잘 포착하고 그것을 편안하게 내밀한 감정의 언어로 잘 묘사한다. 격정적인 사건을 보고 있지 않음에도 마음의 격랑이 크게 이는 것은 이 감정의 여운이 사그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세심한 관찰자의 시선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을 충분히 떠올릴 수 있어서 문자 언어인 이 소설에서 시각적 이미지가 잘 떠올려졌다.

  이 단편집은 여러 문학상을 수상했고 평론가는 단편집의 전체 작품에 대해 찬사했다. 정말로 특정한 작품만이 기억에 남는 것이 아니라 단편 하나 하나가 뚜렷한 느낌으로 생생하다. 아이의 시선이 포착된 「피르자다 씨가 식사하러 왔을 때」, 「센 아주머니의 집」에선 따스한 느낌이 들었다. 그 뒤를 둘러싼 불안과 고독을 감지하는 그 시선때문이었고 미국에서 살아가는 인도인이 처한 현실 모습을 뼈저리게 느끼며 타인이 아닌, 낯선 자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이의 아픔을 공감하고 위로를 건네는 모습 때문이기도 했다. 이 적응의 긴 버전이 「세번째이자 마지막 대륙」인 것 같다. 자알, 견뎌내고 버틴 그 삶들.


나는 이 신세계에서 거의 삼십 년을 지내왔다. 내가 이룬 것이 무척이나 평범하다는 것을 안다. 성공과 출세를 위해 고향에서 멀리 떠난 사람이 나 혼자뿐인 것도 아니고 내가 최초인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지나온 그 모든 행로와 내가 먹은 그 모든 음식과 내가 만난 그 모든 사람들과 내가 잠을 잔 그 모든 방들을 떠올리며 새삼 얼떨떨한 기분에 빠져들 때가 있다. 그 모든 게 평범해 보이긴 하지만, 나의 상상 이상의 것으로 여겨질 때가 있다. p309

 

  한편, 줌파 라히리의 소설에선 일상에서 한순간 급격하게 단절되는 순간의 감정들을 잘 묘사하고 있다. 마치 어느 순간 배가 부르듯, 물 한방울이 컵에 가득찬 줄 모른 채 마침 딱 한방울에 의해 흘러내리는 그 어떤 날의 감정들. 삶의 불편과 환희의 감정이 들어차던 순간을 터뜨리는 것보다 조용히 멈춰버리는 사람들의 모습 같은 것.

  이 대표적인 느낌이 「일시적 문제」다. 한국의 문학상 수상 작가의 표절 의심에 중심에 선 작품이다. 쇼바와 슈쿠마의 아이가 사산된 후 그들 사이에 생겨난 거리감에 관한 이야기인데, 한공간에 살지만 타인처럼 서로 마주하기를 꺼리는 두 부부의 모습이 줌파 라히리의 장편 <저지대>를 생각나게 했다. 그리고 드라마 「연애시대」가 생각났다. 아내가 사산한 아이를 낳은 날 남편은 늦게 왔다. 그 순간에 함께 하지 않은 남편에 대한 서운함이랄까, 끝까지 자신이 없었던 이유를 말하지 않는 남편과 자신이 사산한 아이를 낳았다는 실패한 느낌으로 힘들어하는 아내는 상처가 되지 않기 위해 이혼했다. 남편의 결혼식에서야 그날 남편은 죽은 아이를 품에 안고 장례 절차를 치르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이때 아내는 남편에 대한 원망이 사르라지고 미안함과 고마움에 어쩔 줄 모르는데 이 연기를 한 손예진의 모습이 쇼바에게 겹쳐졌다.

  쇼바와 슈쿠마도 아이가 사산된 후 서로 최소한의 마주침만을 하며 견디고 있는 중이다. 정전을 틈타 서로에게 하지 않은 이야기를 건네는 모습에  이제 화해의 순간이 도래할 듯한 느낌을 풍긴다. 예상보다 빠른 단전의 복구처럼 그들은 촛불을 켜고 대화를 나누게 되는 것처럼 이제 일상의 대화를 나눌 듯이 보인다. 그러나 슈쿠마는 단전된 시간 속에 나누었던 이야기들은 쇼바의 보다 확실한 헤어짐을 말하기 위한 전초였음을 안다. 서로에게 상처를 새기기 위한 말들. 그때 남편, 슈쿠마가 내뱉은 말은, 그날 아이를 품에 안고 느낀 아이에 대한 묘사다. 함께 슬퍼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소원했던 관계는 이제 일시적인 문제였다는 느낌을 받는다. 쇼바가 다시 전등을 껐다는 것에.

  「축복받은 집」 또한 그렇다. 새 집에서 여러 성물들, 십계명이 적힌 행주, 그리스도상이나 성모 마리아상을 찾아내는 트윙클은 집을 “축복받은 집“이라 칭한다. 하지만 정돈된 깔끔함을 원하는 산지브에겐 참을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그들은 기독교인도 아니니까. 불필요한 물건들에 관심을 두고 굳이 쓸모를 찾는 트윙클의 갈등은 쇼바와 슈쿠마처럼 어느 순간 소통하지 않는 모습이 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게 한다. 그러나 또한 사소한 트윙클의 모습 하나하나에서 이해를 넓혀가는 산지브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여기 등장인물들 모두가 그렇다. 쉽게 내뱉지 않고 마음속으로 자신이 가진 인상과 생각에 매몰되어 있다. 그리고 한순간 깨닫고 또 한순간 깨닫는다. 그들은 자신의 마음을 쉽게 내비치지 않지만 「질병 통역사」에서처럼 타인에게 기대어, 또다른 계기를 통해 문제에 핵심에 가 닿는다. 이 책의 원제가 이 단편이라는 것 역시 의미있다고 여긴다. 관광안내원이자 질병을 통역해주는 직업을 가진 카파시에게 자신의 문제를 터놓고 마음을 편하게 해줄 말을 요구하는 다스 부인의 요구처럼.

  마치 스스로 문제의 원인을 알지만 그것에 가 닿지 않으려 빙빙 돌다가 다시 그 자리에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때의 느낌과 감정은 이제 처음에 느꼈던 그때의 느낌과 감정과는 다르다. 해결의 방식은 항상 의미의 재발견이다. 상황에 대한 다른 시선. 그것은 타인에 의지해 혹은 먼 훗날의 내가 이 모습을 서술하는 듯한 느낌으로 진행되는 듯하다. 내가 과거의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처럼 줌파 라히리의 등장인물들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그렇게 돌고 돌아 한걸음 뒤에 서서 바라보는 시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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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의 물리학

 

중력의 법칙, 장 퇼레, 성귀수 옮김, 열림원, 2008.

 

   이 소설이 연극이라면, 영화라면 등장인물은 몇 명 출연하지 않아도 된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인물은 단 두 명이다. 두 명의 대화로 이어가는 소설의 전개는 흥미진진하다. 작가 장 퇼레는 『자살가게』에서도 블랙 유머를 가득 구사하는데 프랑스가 자랑하는 이야기꾼이라 불린다. 그의 소설을 읽을수록 이 말에 동감하게 된다.

 

한쪽 눈이 여자를 무죄방면하는 동안 다른 쪽 눈은 여자를 단죄하는 것인가……그렇다면 질이 지금 처해 있는 정확한 위치는 두 눈 사이가 되는 셈이다. p137

 

   경찰관 질 퐁투아즈의 두 눈 사이에 있는 여자. 여자는 10년 전 지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러 경찰서에 와 있다. 공소시효 3시간 정도를 앞두고서. 여자의 죄는 12층 아파트에서 남편을 떠민 것이라 말한다. 12층 창문에서 떨어진 남편은 양팔을 옆구리에 붙인 채 사망했다. 그 사건은 자살 시도 전력이 있는 남편의 자살로 결론 났다. 이 떨어짐, 이에 대한 중력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떨어짐은 잠깐이고 경찰서에서 경찰관과 여자의 대화만이 진행된다. 머릿속에 막연히 ‘중력’과 ‘중력의 법칙’이 무언가에 대한 물음을 희미하게 붙잡고 소설을 읽는데 두 사람의 대화속에 빨려 들어가 지켜보는 내내 긴장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데 중력은?

   경찰관이라면 자수하는 이에 대해 인간적인 연민을 가지더라도 정확한 사항을 파악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할 직업적인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이 경찰관은 사건경위를 듣고 범죄혐의를 파악하고도 ‘절대로’ 체포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그 결심을 실천에 옮겨 적극적으로 여자를 설득하기 시작한다. 여자는 ‘절대로’ 10년 동안 자신의 죄의식에서 벗어난 적이 없노라며 감옥에 들어가기를, 합당한 벌을 받기를 원한다.

   오래도록 죄의식에 시달려 온 여자의 입장을 이해한다면, 경찰관은 도대체 왜 이토록 여자를 무죄로 만들기 위해 애쓰는가. 남편은 술주정뱅이에 자주 여자와 아이들을 구타했고 자살 시도로 잦은 치료를 받고 있기도 했으며 그날도 역시 창문에 매달려 자살하겠다고 외쳤기에 여자는 그럼, 소원대로 해주겠다며 남편을 밀었다고. 그러나 당시에 경찰관들에겐 남편이 자살했다고 진술했다는 이 여성의 주장에 대한 근거가 없기 때문에 더더욱 체포할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만. 그전에 우리의 경찰관은 3시간 후의 당직에서 벗어나 휴일을 맘껏 즐기고 경찰업무를 잊고자 하는 열망에 가득 차 있다. 그러니 3시간만 참으면 경찰관은 아무런 일처리를 할 필요없이 휴일을 향해 걸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라고 하더라도 질 퐁투아즈 경찰관에게 이 여자의 자백과 행동은 도대체 이해의 차원을 넘어선다. 실로 멍청하기 그지없는 결정이다. 어쨌든 남편은 아내와 자식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망나니같은 놈이고, 그런 놈이 이 사회에 없는 것이 훨씬 좋은 일 아닌가.

 

책상 위의 텅 빈 성모마리아는 여전히 감색 의상을 걸친 채 꼿꼿한 자세로 서 있다. 그 발치에는 고전적인 윤곽을 갖춘 머리 모양 마개가 책상에 볼을 댄 채 누워 있다. 자세히 보니, 성모마리아의 한쪽 눈에 묻었던 수의와 약물 한 방울이 방금, 마치 베게처럼, 자기 머리 밑으로 미끄러져 들어온 한 장의 얼굴사진을 슬그머니 적시고 있다.

마리아가 지미를 애도하고 있는 셈이다……. 리지외 출신의 경찰관은 도대체 이 현상이 왜 일어났는지, 그 신호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 수가 없다. 무얼 뜻하는 걸까? 그럼에도 죄지은 여자를 체포하지 말아야 하는가? p149

 

   처절하게 여자를 설득하기 위한 경찰관의 노력은 여자의 삶의 이야기를 이끌어내고 경찰관 자신의 인생을 끄집어내게끔 한다. 탈법과 타락의 비루한 제 이야기 하나하나, 낱낱이. 마치 경찰관의 자백, 고해성사 같다. 이제 체포되어야 할 사람은 경찰관인 것만 같다. 이 쉽지 않은 이야기들을 털어놓을 수 있는 것, 경찰관에게 여자의 위치는 성모마리아, 신부와 같았을 지도 모른다. 죄를 지었으나 언뜻 무결해 보이기도 하는 여자의 상태, 그 도덕심에 대해 경찰관의 자기고백이 나왔을지 모른다.

   아무리 범죄자들을 조사하고 체포하는 그런 좋지 못한 일상만을 접하는 경찰업무에 시달린다 한들 그 조서 하나를 피하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절절하게 이야기를 내뱉는 경찰관의 이 노력이 처음엔 웃기다가 차차 경건해보이기도 한 까닭은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침대 위에 몸을 던진 경위는, 축 늘어진 양팔을 옆구리에 붙이고 손바닥을 위로 향한 채 가만히 누워 있다. 붕대를 감은 왼손의 반지 속 어금니가 마치 작은 수도원처럼 보인다.

이제 그는 그 어떤 꿈의 기억도 지니지 않는 죽음의 형제, 깊은 잠 속에 빠져든다……. p187

 

   그 어떤 노력을 해도, 압박을 가해도, 공포를 심어줘도 여자는 물러나지 않는다. 그날 이후 여자의 온 생은 죄의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곳곳에서 남편의 얼굴을 만났고 이제 공소시효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더 이상 시간이 없는 것이다. 결코 여자를 떠나지 않을 죄의식이라는 중력장. 그리고 경찰이지만 경찰이라는 업무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경찰에게 되돌아오는 경찰업무라는 중력장. 그리고 그들에게 잔잔히 파동치는, 그러나 전체를 휘감는 ‘도덕’이라는 중력장. 알 수 없이 흐르는 중력이 인간의 생을 결정짓는다. 그 어떤 발버둥으로도 벗어날 수 없는 중력의 집결지는 경찰관의 손가락에 끼어진 반지가 쥐고 있는 듯하다. 수도원처럼 보이는 반지. 결국 중력의 법칙은 도덕의 또다른 이름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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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광기


육식이야기, 베르나르 키리니, 임호경 옮김, 문학동네, 2010.


   독특하다,라는 말에 걸맞은 베르나르 키리니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이 작가는 여러 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하는데 독특한 스타일의 작가에게 주는 ‘스틸’상을 수상했다는 말에 어울린다는 생각을 갖는다. 베르나르 키리니. 이 작가를 프랑스문학계에선 환상 문학계의 대표적 작가인 보르헤스, 포 등을 잇는 작가로 거론하는 모양이다. 열네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육식이야기」에는 여전히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작가의 스타일이 펼쳐진다.

  재밌다는 생각이 들기보다 일단, 기괴하군이라는 생각이 먼저 스쳐간다. 작품 전반의 분위기는 음산한 열대우림 속에 갇혀 있는 기분이랄까.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길 속에서 서늘했다가 놀랐다가 나가고 싶어 했다가 포근함을 느끼기도 했다가 무엇이 튀어나올지 몰라 움츠러들기도 했다가, 별별 생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의 상상력만큼이나 별개로 환상속으로 통과하게끔 하는 맛이 있다.

  베르나르 키리니의 단편은 현실에서 벌어질 개연성이 있긴 하겠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형태, 또는 등장인물의 절대 악과 같은 류의 이야기로 흘러가지 않는다. 당연 이상한 상황이 등장하는데 그 상황은 더 이상한 상황과 더 이상한 등장인물의 사고패턴으로 이어진다. 역시 적절한 말은 기괴하다, 정도일까. 유쾌하다는 말은 선뜻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구 머리야’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이런 류의 상상이란, 이런 류의 환상이란 마법이란 단어에서 느끼는 귀엽고 유쾌하고 재밌는 종류의 환상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생각해보니, 단편의 제목뿐만 아니라 단편집 전체의 이야기가 육식으로 가득찼다. 「육식이야기」는 거대 식물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굳이, 육식이야기라고 제목을 붙였는지 시간이 흐른 후에야 언뜻 알듯하다. 단편 「밀감」이 반복적으로 밀감과 오렌지를 꺼내들며 이야기해도 사그라지지 않는 강렬한 이미지, 피의 이미지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밀감」은 그 껍질을 벗기고 상큼하거나 시큼하거나 달달한 과즙을 상상할 법한 이야기가 아니다. 시작부터 오렌지 주스에 피를 섞어 마시는 남자가 등장한다. 이것은 현실이라도 궁금한데, 하물며 소설이니까 적극적으로 이 남자의 사연을 궁금해 하는 이가 어떤 사연인지 물어준다. 그리하여 남자는 온몸이 오렌지 껍질로 되어 있었다는 아리따운 여인과의 만남을 이야기해준다. 오렌지 껍질을 까먹듯 그 여인과의 오렌지향 가득한 사랑을 나누지만 환상적 사랑이 지나고 난 이후에 오렌지 껍질로 가득찬 여인을 직시하게 된다면 과연 어떤 생각이 들까.

  침몰한 배에서 유출된 기름이 잔뜩 유출되어 그 덩어리로 출렁이는 바다를 찬양하는 학자도 등장한다. 기름 범벅인 바다에 대한 탁월한 찬양을 하는 자의 사고 또한 식물적이기보다는 육식의 이미지에 가깝게 느껴진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유독 잘 청취하는 놀라운 청력의 소유자도 등장한다. 육신이 늘어나는 주교도 등장한다.    

 「육식 이야기」속 식물학자는 식충식물에 반해 모든 것을 제껴두고 식충식물 연구에만 매달린다. 연구용으로 채취해 온 거대 파리지옥과 늘상 전투를 벌이며 살아가는 이 식물학자의 점점 더해지는 광기를 보며 조수는 식물학자를 떠나고 몇 년 후 식물학자가 의문사 했음을 전한다. 하지만 드러내지 않았을 뿐 짐작가는 범인을 가까이에 두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읽다 보면 유출된 기름냄새가 온몸을 휘감은 듯 머리가 아프다. 조금 신선한 공기를 쐬지 않으면 같이 미쳐버릴 것만 같다. 이 단편집 속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처럼 광기에 빠지는 일은 욕망에 빠지는 일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떤 욕망은 내도록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이기도 하다 싶다. 욕망을 쫓는 일은 힘든 일이라는, 발목 잡힐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니, 완전한 욕망에 빠지는 일도 쉽지 않다. 온전히 욕망에 빠져 그 욕망을 과감하게 가감없이 발산하는 일은 더할 나위 없이 현실적인 선택인 것일까, 환상에 매몰되는 것일까. 문득, 욕망에 광기에 빠지는 일이라는 것은 신선한 공기를 쐬지 못하는 일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또한 욕망이란 옳지 않다는 이미지로 인한 생각일까. 어쨌든 육식이야기에서의 육식, 이 단편집에서의 육식이란 욕망을 욕망하는 이야기라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생각을 하며 작가의 수다스러운 이야기로부터 빠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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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혹은 거짓의 문장

 

 첫 문장 못 쓰는 남자

 베르나르 키리니, 윤미연 옮김, 문학동네, 2012.

 

    한국의 단편은 정해진 분량을 대체로 가늠할 수 있다. 각종 공모전들이 소설의 분량을 일률적으로 정하고 있으니까. 단편이라면 원고지 몇 페이지, 책으로 몇 페이지 정도라는 것을 안다. 셜리 잭슨(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단편은 이야기와 이야기를 하는 방식으로 분량이라는 것이 주어질 뿐, 한국처럼 천편일률적이진 않다)의 단편은, 분량이 자유롭다. 이것이 경향인지 최근 한국소설에도 짧은 이야기라 기획으로 책들이 출간되고 있다. 이야기는 이야기가 흘러가는 대로 나오는 것이지 특정한 분량으로 제재를 두어야 할 것은 아니긴 하다. 그래서 단편이라는 양에 길들여진 독자에겐 이야기의 분량에 가끔 당황하긴 한다.

   이런 짧은 분량의 이야기는 종종 유머와 풍자를 곁들인 경우에 자주 사용되는 것 같다. 내가 읽은 단편 소설들에서만 판단하건대 그렇다. 키리니의 작품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상당한 풍자와 유머들이 튀어나온다. 장편소설에 피에르 굴드가 나오는데 이 단편집이 키리니의 첫 출간작이었으니 피에르 굴드는 작가의 페르소나인가 싶다. 16개의 단편 곳곳에서 피에르 굴드를 만날 수 있다.

   단편집의 제목인 「첫 문장 못쓰는 남자」가 가장 인상적이다. 첫문장을 못떼는 이야기가 너무나 공감되어 요즘 유행말로 웃프게 느껴진다. 결국 첫문장을 쓰지 못하고 문장 속에 갇혀버리는 그런.

 

첫 문장, 그것이 문제였다. 수년 전부터 구상해왔던 책을 쓰기로 결심한 날, 굴드가 고민한 건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백지를 앞에 놓고 완벽한 첫 문장을 찾느라 몇 시간을 흘려보냈다. 금방이라도 글을 써내려갈 듯이 끊임없이 만년필촉을 종이 위에 갖다대고 손목을 부드럽게 풀면서 첫 글자의 획을 그어보려 했지만, 글을 시작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이 있을 거라는 확신 때문에 신경이 쓰여 매번 멈추고 말았다. 그가 앞으로 써나가게 될 모든 것은 바로 그 첫문장에서 비롯될 것이고, 따라서 첫 문장을 잘못 시작했다가는 책 전체가 망가져버릴 게 틀림없었다. p9

 

   굴드처럼 모든 문장을 쓰는 일은 어렵지만 첫문장은 유독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그것이 시작이라는 점에서 그럴 것이다. 아무 생각없이 시작을 하던 때도 많았는데 줄거리만큼이나 “문장” “첫문장”에 대한 관심도 증가한 것 같다. 이 단편에서 굴드는 첫문장을 써내기 위해 엄청나게 고심을 한다. 그래서 그는 글쓰는데 어려움을 느끼는데 결국 굴드는 작가가 되었다. 어떻게 되었느냐고. “첫 문장을 시작할 수 없어서 결국 아무 내용도 쓰지 못한 소설의 작가.”

   그럼에도 굴드는 계속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한다. 단편집 곳곳에서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하기 위한 피에르 굴드의 종횡무진 활약상을 만날 수 있다. 피에르 굴드는 단 한권의 책을 쓰고 영원히 글쓰기를 포기한 ‘이클립스들’에 매료되어 첫작품이자 마지막 작품을 쓰고자 하지만 쉬울 리가. 첫 문장을 못쓰는 남자 피에르 굴드가 마지막 작품 「단검에 찔린 유명인들에 관한 안내서」를 쓰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자신을 찔러야 한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재밌고 독특하게 생각을 전개시킨 소설들을 만나다 보면 외국인들의 환상적이고 자유로운 생각의 세계들이 부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것이 개인적인 성향의 차이일 지도 모르지만 다소 ‘문화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야기 곳곳에서 글쓰기와 작가에 대한 정체성과 고민이 지속된 단편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작가의 치열한 고민이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기괴한 이야기의 나래를 펼쳤다. 곳곳에 들어있는 피에르 굴드의 활약들이 글을 쓰기 위해 질주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대부분의 작가는 거짓말하는 재능이 바닥나 이제는 진실밖에 이야기하지 못한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교묘하게 얽힌 이야기들을 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야기들을 하려는 작가들이 있고 작가가 되려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 힘들고 어렵다는 문장들을 나열하며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다는 건. 거짓을 위함일까, 진실을 위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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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속 푸른 옷을 입은 사나이

 

제비뽑기 The Lottery And Other Stories

셜리 잭슨, 엘릭시르, 2014.

 

  공포와 광기의 작가라 불리는 셜리 잭슨의 대표적인 단편집이다. 연결된 이야기로 읽다가 무언가 아리송함을 발견하여 다시 보고 단편집임을 알았다. 단편임을 알았다면 각 단편을 완료된 하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였을 텐데, 단편이라 생각지 않아서인지 각 이야기의 연결고리를 찾고 있었다. 묘하게, 그렇게 연결짓는 이미지가 있었다.

   우선 형식에서 마치 장편인 것처럼 각 단편을 5부로 나누어 배열하고 있다. 각각이 독립적인 이야기라면 굳이 이러한 구분을, 분류의 필요성이 있을까. 아마도 이 구분이 읽으면서 장편이라는 연속적인 이야기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 요인일 것이다.

   내용 측면에선 셜리 잭슨이라는 작가하면 떠올려지는 특유의 이미지 때문이다. 저자 특유의 이미지, 셜리 잭슨만이 그려내는 분위기는 무엇일까. 셜리 잭슨을 부르는 또다른 호칭은 마녀. 이 단편집은 1부에서 5부로 나뉘어 있으며 각 부의 앞장엔 조지프 글랜빌의사두키스무스 트리움파투스를 발췌하고 있다. 마녀재판의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작가는 각각의 단편들에도 이 마녀재판의 이야기를, 이미지를 담고자 하는 것이다. 작가가 지향하는 이야기의 틀은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단편집의 제목인 제비뽑기는 매년 미국 문학 교과서에 실린다고 하며 평론가들은 작가에 대해 미치광이 아니면 천재라 일컫게 해준 작품이다. 힐 하우스의 유령이 심리적 공포와 광기를 묘사하고 그러한 분위기를 자아냈다면 이 단편집은 오히려 가벼움이 느껴지는 이야기가 많았다. 어느 한 마을의 사람들이 소소한 일상을 즐기는 평화로운 분위기가 표면적으로 드러난다. 다만 그 속에, 저자 특유의 조이는 듯한 어두운 이미지가 드러난다.

   또한 작품 속엔 제임스 해리스라는 이름이, 푸른색 양복을 입은 남자가 반복적으로 등장하기에 이야기의 연속성을 받아들였던 듯하다. 반복된 이 이름과 이 푸른색 양복의 사나이가 의미하는 것, 이것도 작가의 의도일 것이다. 단편을 읽어나갈 때마다, 아까도 이런 사람이 있었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 사람이 전면에 드러나지 않고 보일 듯 말 듯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각인되어 있을 때마다 작은 소름이 돋으려 한다. 이 이미지와 이름은 마녀와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가. 이미 답을 알고 있듯이 긍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지진 않는다. 단편집마다 이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은, 이런 옷을 입은 사람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으로 문제와 관계된 사람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전면에서 혹은 스쳐가면서도 꼭 그렇게, ‘을 만들어 버린다. 관계의 갈등을 촉발하게끔, 인식을 전환하게끔 하는 것이다.

   단편 마녀에서처럼 평범하고 온화한 노인의 얼굴을 하고선 아이에게 끔찍하고 폭력적인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그런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거의 모든 단편에서 평범한 모습을 한 채 내뱉는 그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 하나는 글로 읽어도 기가 막힌데, 직접 경험한다고 하면 더욱 놀라우리라 여겨진다.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맘 속에 불쑥 스며드는 공포와 불안, 이것을 조장하는 제임스, 푸른색 양복의 사나이. 한편으로는 인간에게 내재된 욕망을 끊임없이 부추기는 역할을 이들이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등장인물들 중 몇은 이들을 통해 환기된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히지만 그 욕망을 알아서, 거기에 기대어 황홀함을 느끼기도 한다.

   매우 충격적이면서 놀라운 작품이라 일컬어지는제비뽑기는 마을의 축제에서 시작한다. 축제를 준비하는 이들의 일상의 풍경이 별스럽지 않게 드러나는 가운데 축제의 절정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데 무슨 일이 벌어진지도 모르게 눈깜짝할 새, 경악스런 일이 벌어진다. 매년 풍년을 기원하며 이뤄지는 제비뽑기 행사. 행사에서 제비뽑기를 굳이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할 즈음, 왜 제비뽑기가 이뤄지는지 드러난다.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너무도 특별한 모습으로 등장하지 않아 더 놀라운 사건이다. 표면에 악이라고 달고 있다면 미리 대비라도 할 수 있겠지만 전혀 선한 얼굴을 들이밀어 나타난 공포에 휩쓸리니 더욱 공포와 광기라는 말을 실감하게 한다.

 

워너 영감이 코웃음을 쳤다. “어리석은 미치광이들. 요즘 젊은 놈들은 입만 열면 불평불만이라니까. 조만간 동굴에서 원시 생활을 하자고, 더 이상 일하지 말자고 주장해댈 거야. 어디 한번 그렇게 살아보라고 해. ”‘유월에 제비를 뽑아야 곡물이 금방 익는다고 옛 어른들이 말씀하셨지. 제비뽑기를 안 하면 별꽃과 도토리로 끼니를 때우게 될 거야. 매년 해왔다고.“ 노인은 성마른 어조로 덧붙였다. ”새파랗게 젊은 조 서머스가 모두와 농담을 해대는 꼴을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상하건만.“

어떤 곳에서는 이미 제비뽑기를 없앴다고 하더라고요.” 애덤스 씨가 말했다. 그래봐야 문제만 생겨.” 워너 영감은 단호히 말했다. “요새 젊은 것들이란.” p397

 

   작가 셜리 잭슨은 미학적 의미에서, 문학적인 은유로서의 마녀이외, 실제로 같은 마을에 사는 이들로부터 마녀로 취급당했다 한다. 작가의 개인적 경험이 호러 미스터리에, 집단 광기에 관심을 가지게 한 것일 게다. 제비뽑기에 이르러 드러나는 집단적 광기의 덤덤한 표출은 일상의 생활 공간에서 마을 사람들과의 갈등으로 인해 마녀로 덧씌워진 셜리 잭슨의 내면의 반영일 것이다.

   조금 다르지만 지난 몇 개월 동안 한국의 광장에서 일어난 일이 제비뽑기의 모습과 겹친다. 특정한 집단의 논리가 제임스 해리스의 모습으로 치환된다. 한발만 달리 뻗으면 극과 극의 논리를 겪게 되는 광장에선 310,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 광장은 90여일 동안 진정한 축제였고 평화로웠다. 토론과 주장이 맞물리며 옳고 그름, 다름을 논의했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나누고 다지는 자리였다. 논리와 신념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지만 타인의 신념을 인정하는 방법을 아는 자, 상식과 정의가 무엇인지를 아는 이들의 행사는 순조로웠다. 어느 순간 불거진 광장의 이야기에 제임스 해리스가 등장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몇몇의 제임스 해리스들이 등장하여 순수한 신념을 가진 이의 눈과 귀를 닫아버린 것은 아닌가.

   다만, 그들은 보기에도 평범하지 않은 얼굴을 하고, 제 지위를 이용하여 갖은 수단을 동원하며 사람들을 선동하고 그들을 광기에 물들게 했다. 타당한 논리도 아니고 정확한 사실에 근거하지도 않은 채로 말이다. 책임을 가진 지위와 역할은 던져 버리고, 인간으로서의 기본도 망각한 채로 제비뽑기를 준비하던 이들은 누구란 말인가. 사실과 진실을 인지하며 어쩌면 생각을 재정리하고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던 이들의 결말을 방해한 것은 누구란 말인가. 특정 단어만을 반복한 채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선동으로 사람들을 공포와 광기에 담가놓는 것이 누구란 말인가.

   오늘도 마녀사냥을 부르짖는 한 목소리를 들었다. 마녀사냥, 마녀재판이 가지는 집단 광기와 공포의 잔혹함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것이 추상적인 공포에 기대어 희생양을 삼은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특정한 이의 이익을 위해 벌어진 일이라는 것도 안다. 그렇기에 마녀사냥이라는 말 속에는 어리석은 이들과 공포를 이용·조장하여 제 이익을 꾀하는 이에 대한 분노도 더해진다. 어쨌든 역사 속 마녀재판이라 불리는 사건들 속엔 분명 억울한 마녀가 존재했다.

   특정인이 부르짖는 이 마녀재판이라는 말은 어디에 닿는 것일까. 마녀재판이라는 말 속에 담긴 억울함이 호도되는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탄식이 절로 나온다.

   이것은 과연 마녀재판일까. 오래도록 깊이 생각했지만 제비뽑기가 전하는 충격만큼이 전달되지 않는다. 짜증만이 날 뿐이다. 어떤 이들의 사전엔 단어의 정의가 제멋대로, 내 이익대로 쓰여 있다고 생각하게 될 뿐이다. 학력은 학벌은 정의를 바라보는 눈을 키워주지 않는다. 욕망과 탐욕이 공포와 광기와 만났을 때 나타나는 결과는, 참으로 씁쓸하다. 참으로 기쁜 날인데, 참으로 시원스러운 날인데 조금 속이 편하지 않은 것은 몰상식과 몰인간성을 여전히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들만의 단어 사전을 들고 권력과 재력으로 무장하고선 그것을 더 연장하기 위해 사람들의 이성을 감정을 툭툭 건드리는 불쾌한 제임스 해리스들, 푸른 양복을 입은 사나이들이 지금도 광장에서 사람들을 향해 제비뽑기를 하라고 부추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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