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독립운동가, 청춘의 초상 - 조국의 독립에 바친 뜨거운 젊음, 한 장의 사진이 증언하는 찬란한 그 순간
장호철 지음 / 북피움 / 2025년 3월
평점 :
식사하셨습니까!
독립운동가, 청춘의 초상
-조국의 독립에 바친 뜨거운 젊음, 한 장의 사진이 증언하는 찬란한 그 순간
장호철, 북피움, 2025
책 속 26명의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본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 실려 있던 인물이 몇 명이나 되나. 살아가면서 이 사람의 독립운동가라고 이름 들어본 사람이 몇 명이나 되나. 하지만, 이런 분도 있었어?를 더 남발함에 부끄럽고 또한 안타까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했겠지만, 기본적으로 ‘독립운동가’에 대해 얼마나 제한적으로 가르쳐왔으며 소극적으로 알렸던가, 이들을 외면하고 왔던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독립운동가의 삶은 ‘조국의 독립에 바친 뜨거운 젊음, 한 장의 사진이 증언하는 찬란한 그 순간’이라는 책의 부제처럼 뜨거웠다. 이들에게 조국은 무엇인가를, 국가란 국민에게 무엇이어야 하는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몇 년의 상황들과 맞물려 더더욱.
책은 ‘돌아오지 못한’ 독립운동가와 ‘돌아온’ 독립운동가로 나누어 이야기하고 있다. 독립운동가의 삶을 읽다가 보면 감정이 울컥해지며 숙연해짐을 느끼게 되는 지점이 있는데, 돌아오지 못한 독립운동가의 대부분, 10대와 20대라는 것이다. 청년이라고 하기엔 너무 어린 그들. 그들은 그 어린 나이에 ‘조국’의 독립을 외치고 실천하고 있었다.
또한, 그들의 죽음은 일제에 의한 직접적인 ‘처형’이거나 ‘굶주림’으로 인한 것이라는 점이다. 최근 유튜브에서 AI로 복원한 ‘독립 운동가’의 식사하는 장면을 보았다. 왜 이러한 장면을 복원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내내 제대로 드시지 못한 그들이 편안하고 조금은 풍족한 한 끼를 드셨기를 바라는 마음, 뒤늦은 감사와 응원의 마음 아닐까.
이러한 마음으로 숙연해지는 가운데, 어쩔 수 없이 분노하게 되는 지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당연히 일본에 대한 분노여야 하는데, 한 나라의 초대 대통령이란 놈에 대한 것이다. 아, 일본의 앞잡이이니 일본에 대한 분노와 같은 건가.
독립 운동가 ‘장인환’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제의 제국주의를 옹하고 한국의 독립을 방해한 미국인 더럼 스티븐스를 저격한다. 당시 한인들의 모습을 보자.
의거 후에 두 사람이 재판에 넘겨지자 한인들은 성금을 모아 변호사를 선임했고 유학생이던 신흥우가 통역을 맡았다. 애당초 이승만에게 통역을 맡기고자 했으나 그는 샌프란시스코까지 왔다가 자신이 학생 신분이며 기독교도로서 살인자를 변호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거부하여 한인사회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아, 이쯤에서 내가 잘못 읽었나 하여 다시 한번 문장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둘도 없을 것 같은 이름, 이승만이 그 이승만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데, 그건 여성 직업 교육에 매진한 ‘차미리사’의 활동에서다. 여자로 태어났다고 ‘섭섭이’라고 불린 차미리사의 소개 내용은 이렇다.
그는 “동포의 고통을 외면하고 천국에 가길 소원하는 내세 지향적 영혼 구원 신앙, 불의한 현실 사회에 대해 무관심한 초월주의적 신앙, 정교분리 뒤에 숨어 민족의 아픔을 외면하는 경건주의적 신앙 모두를 비판(한상권)”하면서 ‘의혈 투쟁’의 소신을 편 것이었다. 이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장인환의 재판 법정 통역을 기독교도로서 살인자를 변호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거절한 이승만이 해방정국에서 면담을 요청하자, 차미리사가 이를 단호히 거부한 데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저런 인간을 몇 번이나 대통령에 뽑아…. 뽑아 버려야 할 인간을 ‘전직 대통령’이었다는 이유만으로 과하게 칭송하고 받드는 무리들이 있어 그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이 어떤 나라인가. 식사하셨습니까가 인사이고 안부인 나라. ‘밥 한번 먹자’가 만날 약속의 표현인 나라인데.
2009년 정부가 발표한 교육 부분 친일반민족행위자 22명 가운데 일제강점기에 근대 여성운동과 여성 교육의 선구자로 불리었던 사학 설립자들이 많다. 서울여대를 세운 고황경, 인덕대학을 세운 박인덕, 상명대를 세운 배상명, 성신여대를 세운 이숙종, 추계예술대학고 중앙여중고를 세운 황신덕 등이 바로 그들이다. 특히 김활란은 이화여대의 ‘초대 총장의 신화’로 설립자 메리 스크랜튼보다 훨씬 큰 지배력을 지닌 인사로 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지금도 여전히, 이런 현상은 이어진다.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여전히 힘겨운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친일 세력은 그때 얻은 어마어마한 부를 바탕으로 더 많은 부를 챙기고자 여전히 ‘친일’에 목매고 있다. 독립된 지 오래되었는데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친일 문제는 오늘까지 이어져 나라를 흔든다.
한편,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대부분의 여성 독립운동가의 활동도 알 수 있었다. 여성 독립 운동가로 ‘유관순 누나’만 주로 이야기되었던 현실이었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여전히 ‘누나’로 불리는 것은 그를 온전한 한 사람의 독립운동가로 바라보는 걸 방애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를 ‘유관순 열사’라 부를 때 그는 ‘이준 열사’와 같은 위상의 공적 영역에 존재하는 인물이 된다는 점을 되새길 만하다.
독립 유공자 가운데 여성의 비율이 3%가 채 되지 않는 현실은 옥바라지와 경제활동, 양육까지 병행하며 항일투쟁에 참여한 여성들의 희생이 재조명되어야 할 필요성을 웅변으로 증명한다. 그늘에 가려진 부인들의 뼈를 깎는 희생은 남편에 부수되는 ‘내조’가 아니라 동등한 ‘투쟁’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아쉽다. 내로라하는 독립운동가들의 투쟁과 헌신은 바로 그들 가족의 희생을 전제로 가능했기 때문이다.
낯선 이름들이 뒤늦게라도 세상에 알려지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독립운동을 하였을 터인데, 기록에 없어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많아 안타깝다. 그러나, 명백히 드러난 독립운동가의 행적을 ‘외면’하고 ‘폄하’하는 무리들이 있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이들의 투쟁과 희생으로 살아 있으면서 다시금 독립운동가들을 때려잡으려는 밥버러지들의 밥그릇을 걷어차 버리고 싶은 나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