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다리 냅둬!
장자는 말했지,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고....
장자, 오강남, 현암사, 1999.
혼란의 시대에는 단순명료해질 수 없는 걸까. 사상의 맞물림들이 아득하다. ‘혼란’이라는 단순하고 절대적 상황에서 내적인 단순함이 독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장자의 사유가, 그의 은유와 비유로 가득한 문장들이 이해가 됨직도 하다.
춘추 전국 시대의 많은 사상가들이 그러하듯이 역시 정확한 출생연대가 기록되지 않고 있는 장자의 이야기들을 읽는다. 당연 학창시절엔 공자와 맹자에 묻혀 조금 더 나아가서는 노자에 밀려 있던 사상가다. 내 기억으로는 어느 순간 장자의 열풍이었고 그러한 바람이 무슨 연유인지 궁금했던 때도 있더랬다. 그저 시대적 상황과 함께 생각하지 않고서도 편안히 읽을 수 있는 글이구나, 싶었다.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들을 대략 보다보니 그들 사상의 진보를 떠나 통찰을 떠나 사상가들의 행적은 비슷하구나라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은 탓일까. 내겐 똑같은 옷을 입은 이들이 줄지어 앉아 생각해보면 별 차이 없는 이야기들을 떠들어 대는 듯이 보인다. 그리하여, 서로의 사상들의 논박의 물고 물림의 관계가 명확히 그려지지 않는다. 깊이 있게가 아니라 가벼운 바람처럼 읽었나 보다. 가벼운 바람처럼......
장자는 다른 여타의 사상가들처럼 본명은 따로 있다. 주(周)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그가 활약하던 당시에도 위대한 사상가, 철학자로 알려져 있었더랜다. 도가(道家)의 사상가로 노자를 계승한 것으로 전해져 노자 사상의 종속물로 생각하다 이번 기회에 분리를 시키게 된다. 동양철학사에서 그 어떤 사상가보다도 문학적이며 철학적인 글쓰기를 했다고 하는데 이런 그를 독립적으로 보지 않는다면야 저~지하에서 나를 얼마나 야속타 할꼬.
한때 벼슬을 한 적도 있긴 했지만, 벼슬을 그만둔 후에는 왕의 부름을 마다하고 저술에만 전념했다고 한다. 초나라 위왕이 대표적인 사람으로 장주를 재상으로 삼기 위해 사자를 보내 귀한 선물들로 그를 꼬시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장주는 “천금은 큰 이익이고 귀족과 재상이란 지위는 존귀한 자리이다. 그렇지만 당신은 도시 밖의 예식에서 희생으로 쓰인 소를 본적이 없는가? 수 년 동안 배불리 먹인 후에, 그 소에게 무늬가 있는 옷을 입히고 조상의 묘로 끌고 간다. 그 순간에 그 소가 자신이 단지 버려진 송아지이기를 바란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즉시 나가라. 나를 더럽히지 마라. 나는 국가를 가진 자의 포로가 되느니 차라리 더러운 도랑 속에서 즐겁게 헤엄치면서 놀겠다. 평생토록 나는 벼슬살이를 하지 않고 나의 뜻을 유쾌하게 할 것이다.”라고 했다 한다.
장주의 죽음에 관한 일화를 보면 제자들이 그에게 후한 장례식을 치러주려고 하자 “나는 하늘과 땅을 속 관과 겉 관으로 생각하고 해와 달을 한 쌍의 옥으로 생각하며, 별들을 구슬들로 생각하고 만물들을 장례 예물로 생각하고 있다. 나의 장례 용품에 어찌 빠진 것이 있겠느냐? 너희들은 이것에 무엇을 추가하려고 하느냐?” 그러자 제자들이 말했다. “선생님, 저희들은 까마귀나 솔개가 선생님을 먹을까 두렵습니다.” 장자는 말했다. “땅 위에서는 까마귀와 솔개에게 먹힐 것이고, 땅 아래에서는 나는 개미와 땅강아지에게 먹힐 것이다. 까마귀와 솔개의 먹이를 빼앗아 개미와 땅강아지에게 주려고 하니, 너희들은 어찌 그렇게 편파적이냐!”고 했다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장자를 야인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이러한 구절을 읽고 그냥 넘겼다가 다시 글을 읽고 나서 되돌아보니 그런듯하다.
아무튼 노자가 자상하면서 근엄한 철인의 풍모를 지녔다면, 장자는 투철한 눈매로, 때로는 크게 껄껄 웃고, 가끔은 험구도 불사하는 재기발랄한 야인의 모습을 지녔다고 하겠다.
장자는 총 33편 6만 4606자로 이루어져 있고 <내편>, <외편>, <잡편>으로 묶여 있다. 그리고 <내편> 7편, <외편> 15편, <잡편> 11편이 실려 있다. 이와 같은 구성은 위진 시대 사상가 곽상(郭象)이 편집한 것이라 전하고 있다.
서기 1세기 경에 반고(班固가 지은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는 [장자]가 전체 52편으로 되어 있다는 기록이 있고 사마천의 [사기(史記)]「노장신한열전(老莊申韓列傳)」편에서는 장자가 10여 만 언을 썼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볼 때 곽상이 편집한 것, 즉 오늘날 전해지는 [장자]는 원문이 일정 부분 소실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소실된 것인지, 곽상이 편집하면서 빼버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학자들은 이 중 <내편> 7편은 장자가 작성한 것으로 보고 있으나 그 외의 편들은 장자의 사상을 이어받은 이들이 기록한 일종의 논문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내편>은 1편 「소요유(逍遙遊)」, 2편 「제물론(齊物論)」, 3편 「양생주(養生主)」, 4편 「인간세(人間世)」, 5편 「덕충부(德充符)」, 6편 「대종사(大宗師)」, 7편 「응제왕(應帝王)」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장자[의 구성을 볼 때, 이 책은 [장자]의 <내편>을 풀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자[가 직접 썼다는 <내편>의 내용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저자의 생각들을 풀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추가로 <외편>과 <잡편>의 몇 구절을 뽑아 그에 대한 해석을 덧붙이고 있다. 그러니까 뼈대는 <내편>에 대한 저자식의 풀이이다.
중요한 것은 제일 처음에 제시된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처음이라 보다 꼼꼼하게 읽어서인지 제1편 소요유 편이 제일 인상에 남는다. 제목도 “자유롭게 노닐다~”이다.
붕새와 메추라기 이야기는 여러 생각할 거리들을 만들어줬고 그와 더불어 다른 장자 책의 해석과 풀이와 비교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편에서 나오는 바람이야기가 왜 닿는지. 지금 이 책을 읽는 시점에선 소요유 편의 붕새와 메추라기 이야기와 더불어 바람이야기가 내 맘에 얹어진다.
오래 전 한문으로 쓰여진 다른 나라의 글을 해석한다는 것이 쉬운 일인가. 장자에 대한 해석을 단 많은 책들이 있듯이 결국 세상의 모든 책들은 자기식대로 소화하고 읽어 가는 것 아니겠는가.
이 책의 특징은 물론, 장자에 대한 오늘날의 시각, 현대적 의미의 해석을 가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요즈음의 책들이 다 그러하니 이 책이 가지는 뚜렷한 특징이라고 보기엔 미흡하다. 그렇다면 뭘까. 저자의 프로필을 보면 더욱 쉽게 이해가 되는데 이 책은 장자에 대한 기독교적인 해석을 곁들이고 있다는 것이 대표적인 특징이다. 아마도 기독교인들은 보다 쉽게 이해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달리 말해서, 기독교인이 아닌 경우라면 멈칫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한편으론 장자 원전 자체가 지나치게 은유적이고 비유적으로 흐르고 있는데 여기에 기독교적인 해석이 들어가 더욱 그 느낌을 배가시키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까 더욱 몽롱해진다는 이야기다. 좀더 명쾌함이 필요하지 않나. 이것은 기독교의 교리 이해, 영적인 해석에 덜 노출된 나 혼자만의 문제일까.
원문을 해석하고 풀이하면서 반복적으로 단어를 쓰는 경향이 있다. 해석의 폭이 일관적이라고 해야 할지, 좁다고 해야 할지, 거듭 반복된 문장과 단어가 내용에 대한 일관됨을 견지할 수는 있지만 부족하다는, 미흡하다는 느낌이 반복적으로 들게 했다. 프레임의 차이일 수 있을 것이고 몇 번 거듭됨 때문인지 강신주와 왕멍의 장자 해석이 더 일깨움으로 다가왔다. 글이란 어찌어찌 해도 코드라는 것이 있구나 생각한다. 나의 이 ‘코드’를 물리치는 책을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