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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의 탄생 - 사회민주주의자 웹 부부의 삶과 생각 ㅣ 대우휴먼사이언스 19
박홍규 지음 / 아카넷 / 2018년 1월
평점 :
공공서비스 정신
복지국가의 탄생 - 사회민주주의자 웹 부부의 삶과 생각, 박홍규, 2018.
한국사회에서는 보수(부르지만 극우에 가까운)라는 집단은 선거철이 되면 어김없이 복지관련 공약을 남발하면서도 뒤로는 복지예산을 깎으려 안달하고 정부의 복지 정책을 포퓰리즘이라 비난한다. 더 나아가 복지정책이 나오기만 하면 어김없이 사회주의, 공산주의, 빨갱이 좌파 정책이라 부르며 정책에 반대하기 바쁘다. 그러면서, 늘 정부가 혜택을 주지 않는다고 손을 흔든다. 전세계적으로 복지국가를 지향세는 확산되어 가는 상황에서 복지정책이 수립될 때마다 ‘공산주의, 사회주의, 좌파는 안돼’ 외치는 이들이 정녕 그 뜻을 알고 외치는 건가 궁금해진다.
사회주의라는 말에도 여러 뜻이 있지만 이 책에서는 무엇보다도 개인의 재산권, 즉 사적 소유의 권리를 사회적 차원에서 제한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 극단적인 제한, 즉 모든 생산수단을 국유로 하자는 것이 공산주의인 반면, 모든 생산수단의 국유화가 아니라 중요한 사회적 생산수단을 국유화하되 일상적인 생활에서는 기본적으로 사유화를 인정하는 것이 사회민주주의다. 반면 모든 생산수단의 사유화를 인정하는 것이 자본주의다. 따라서 사회민주주의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중간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사회민주주의를 우리나라 헌법이 금지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도리어 그 반대로 인정하고 있고, 실제로도 어느 정도 인정된다. 가령 우리나라에도 국유산업이 상당수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 헌법은 도리어 순수한 의미의 자본주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책은 복지국가의 이념을 정립하고 그것을 실천한 사상가이자 실천가인 영국의 웹부부의 사상과 실천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재벌 딸인 비어트리스 웹과 가난한 공무원 시드니 웹의 결혼이 이루어진 과정, 그들의 사상을 실천하기 위한 협회 조직 활동 과정이 담겨 있다. 특히 저자는 웹 부부가 제시하는 복지국가 이념을 살펴보고자 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9세기 영국에서 전개된 웹 부부 수준의 노동조합운동을 포함한 사회개혁운동이 지금 이 땅에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임금투쟁 같은 이익투쟁만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 지금 우리에게 참으로 필요한 것은 전반적 사회개혁운동과 함께 전개되는 노동조합운동이다. 민주화, 교육개혁, 도시개혁, 공해반대, 생태보존, 반전평화 등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이 연대하면서 사회변화를 주도할 필요가 있다. 노동운동만을 좁게 외골수로 계급투쟁의 수단으로 파기보다 다른 사회운동이나 시민운동과 함께 폭넓고 유연하게 사회변화의 동반자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시민들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복지국가의 핵심은 가난의 책임을 개인이 아닌 국가로 보는 것이다. 웹 부부 역시 「소수파 보고서」에 이러한 생각을 기본으로 나타내고 있으며 빈곤선의 개념을 제시하는 ‘내셔널 미니멈(national minimum)’의 창시자였다. 최저생계를 보장하는 최저임금제, 1일 8시간의 노동으로 최저 휴식보장, 최저위생보장, 아동의 대학까지의 교육과 장학금을 지급하는 최저아동보장이 핵심으로 이는 현대의 최저생활보장의 개념과 같다. 저자는 웹 부부의 정신을 공공의 정신이라고 얘기한다.
자본주의 정신 대신 공공의 정신이 필요하고, 사적인 부의 축적이라는 동기 대신 공공서비스라는 동기가 필요하며, 그것에 의해 비로소 사회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했다. 사회의 합리적 재조직화, 공공복지의 제도화, 각자의 공공정책에 대한 보편적 참여, 즉 사회환경의 전반적 변화는 인간의 정신, 성격, 동기에 영향을 받는다고 보았다.
웹 부부의 사상은 현재에도 세계가 지향하는 가치를 제시하고 있다. 한 세기 전의 두 부부가 제시하고 발전시켜간 사상이 현대에도 유효하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의 논의가 타당하고 탄탄했다는 얘기일 수 있겠다. 한편으로는 여전히 최저생활보장에 대해 반발이 심한 것을 보면 지금도 한 세기 전의 영국 사회를 이끌었던 이들의 생각과 차이가 없는 세력들이 존재한다는 말일 게다.
웹 부부 각각 뛰어난 사상가이고 실천가였다 하더라도 그들의 생각과 이론이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다. 사상의 한계점과 개인의 한계점이 있다. 저자는 다른 학자, 동료들의 웹 부부에 대한 견해를 덧붙이고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지적한다. 분명한 건, 웹 부부의 복지국가에 대한 생각이 오늘날 복지국가의 기틀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웹 부부는 1912년 한반도를 1주일간 방문하여 당시 한반도 최고급 호텔에 머물면서 글을 썼는데 한반도 사람들을 세계 최하의 문화 수준을 가진 미개인으로 묘사했다고 한다. 2020년 한국은 영화산업의 심장부인 미국 오스카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주요 부분을 휩쓸었고 BTS가 전세계가 음악 시장을 휩쓰는 등 문화강국으로서의 지위를 점하고 있다. 이런 때 웹 부부가 한국을 방문했다면 평가는 달랐을 텐데.
한국에서 보수는 웹 부부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을 것 같은데 백여년전 두 부부의 한국에 대한 평가 때문이 아니라 두 부부가 지향하는 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가 ‘닥치고 싫은’ 맹목적인 집단과 그래야만 잘 살 수 있는 집단들일 것이다. 그런 집단에게 시드니의 견해를 자알, 보라고 내밀어 본다.
시드니는 집단주의적 경향이 모든 국민에 의해 효과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그 목표는 모든 국민이 현 정부에 대해 일체감을 갖도록 지향되어야 하며, 그 조직은 정부의 행동이 특정 계급의 권력이나 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의 복지를 균등하고 일관적으로 실현하여 계속적인 사회발전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집단주의를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아가 그것을 방해하는 지주와 자본가에게 집단주의적 이념을 침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