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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드르 화가들 - 네덜란드.벨기에 미술기행
금경숙 지음 / 뮤진트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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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차와 튤립은 보이지 않는 그림

플랑드르 화가들 - 네덜란드·벨기에 미술기행, 금경숙 저, 뮤진트리, 2017.


  네덜란드에서 돌아가는 풍차라거나 피어 있는 튤립을 본 적 없다. 그럼에도 네덜란드 하면 풍차와 튤립을 떠올리는 이 자동적인 반응은 네덜란드에 대해서 최초로 ‘배운’ 것이 그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였는지는 모르지만 암기처럼 배운 네덜란드의 이미지는 이 책을 읽고서 조금은 바뀌게 되려나. 미술책에서 본 많은 화가들의 고향이 네덜란드라는 사실을 새롭게 각인하게 된다.

  네덜란드에서 살고 있는 저자가 직접 네덜란드와 벨기에 화가들의 자취를 쫓으며 들려주는 그들의 인생과 그림 이야기에는 풍차와 튤립은 전혀 들어 있지 않다. 네덜란드와 벨기에의 역사가 있고 드문드문 들었던 이야기의 장소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반 고흐와 렘브란트의 고향과 『플란다스의 개』에서 네로가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성당 속 그림이 있는 장소를 되짚는 기회가 된다.

  플랑드르는 현재의 프랑스 노르 주, 벨기에의 동플랑드르·서플랑드르 주, 네덜란드의 젤란트 주를 이른다. 현재는 세 나라가 어우러진 곳이고 미술의 역사에서 ‘플랑드르 화가들’이란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 활동한 화가들을 가리킨다. 이 책에서는 얀 판 에이크, 히에로니무스 보스, 피터르 브뤼헐, 루벤스, 프란스 할스, 렘브란트, 페르메이르, 반 고흐, 페르낭 크노프, 제임스 엔소르, 몬드리안, 르네 마그리트 12명의 화가들의 작품과 생애와 흔적을 보여준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영감을 찾아 방랑하기도 하고 더 배우기 위해 고향을 떠난다. 그렇다면 ‘플랑드르 학파’라 불릴 정도로 이 지역에서 화가들이 활동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아주 당연한 이유 이외에 그들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그림을 그렸는지 그들 그림에 나타난 특유의 분위기는 무엇인지가 플랑드르 역사와 함께 펼쳐진다.


예술가들이 대체로 환경을 거스르는 사람들이긴 해도, 고흐 이전의 플란데런 거장들은 그 시대의 중심지이자 그림으로 생존할 수 있는 사회 환경과 예술가들의 풍성한 움직임이 있던 곳에서 태어나거나 자랐음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예술가를 알아보고 후원을 아끼지 않던 시대의 남다른 예술가들을 끌어들여 붙박이형으로 만들었으나, 이제 세상은 달라졌다.


  우리나라 통영에 수많은 예술가들이 머물고 활동했던 것처럼 플랑드르 역시 해안가로 많은 물류들이 드나들 수 있었고 여러 국가들이 인접해 있는 지역적 특성이었다. 또한 사람의 삶이란 주어진 환경에 영향받을 수밖에 없기에 네덜란드와 벨기에의 정치, 경제, 문화는 화가들에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소재와 의지를 주기도 한다.


네덜란드 역사에서 1672년은 ‘재앙의 해’로 불린다. ‘민중은 이성을 잃었고(redeloos), 정부는 가망이 없고(radeloos), 나라는 구할 길이 없다(reddeloos)'는 말이 공공연히 떠돌았다. 영국과 프랑스가 네덜란드를 침입해왔고, 예상치 못한 전쟁에 민중이 분노하여 권력자들은 하야했다. 총독 부재기간 동안 의회의 공화주의자들은 전쟁보다는 조약으로 대립을 완화하려 했으나, 평화는 이들의 의지대로 찾아와주지 않았고 영국과 해전을 치러야 했다. 네덜란드가 이겼다고는 하나 피해는 만만찮았다.


  언제나 세계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플랑드르 지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더구나 계급사회였으니 그림을 향유하는 계층은 언제나 귀족들이나 종교인들이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늘 권력에 억압받는 민중의 현실을 폭로하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이 종교권력의 위선을 폭로하는 화가들이 있었다. 그리고, 민중들의 일상의 모습을 담담히 그려내는 화가들이 있었다. 사진이 발명되지 않았던 시기에 그림은, 화가는 암울한 현실을 기록하는 역할을, 위선자들을 폭로하는 역할을, 억압당하고 피폐한 삶에도 부패한 권력에 강력히 저항하는 민중의 모습을 기록했다.


예술가들의 삶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보면 세기말 벨기에는 신비롭고 근대화된 사회였지만, 노동자들에게는 생존권과 참정권을 쟁취하려는 투쟁의 시대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엔소르가 이 그림을 그릴 때에는 기득권이라 할 가톨릭 정치세력에 맞서 사회민주주의 정치세력이 부상하던 참이었다.


  화가가 그림을 그린 곳이 어디인지를 궁금해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모양이다. 네덜란드 일상 풍경을 잘 담아낸 페이메이르가 그린 두 개의 아치가 나란히 있는 문이 그려진 그림의 장소는 진짜 있는 것이지, 화가가 상상한 장소인지 많은 이들이 궁금해한다. 결국 운하세 대장까지 찾아서 그림속 장소를 찾아낸다. 저자가 찾아가는 그림속 장소는 그림에서 보던 것과는 달라졌지만 그냥 그림속 장소라는 이유로 정감어리게 여겨진다. 과거의 플랑드르와 현재의 플랑드르의 간격이 그 시대를 살며 활동한 화가들의 생애와 그림들로 인해 연결된다. 플랑드르의 역사와 함께 화가들이 자취가 가득한 플랑드르 지방으로의 여행은 렘브란트, 마그리트, 루벤스 등 널리 알려진 화가의 명성에 의해서도 보고프지만 점차 플랑드르 지방이 지니는 매력을 느끼고 싶은 기운까지 더하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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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 다빈치 art 18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신성림 옮김 / 다빈치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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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보는 시선


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 J.M.G. 르 클레지오 저, 다빈치, 2008.


  프리다 칼로의 바비인형이 제작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칼로의 인형은 칼로가 입었던 옷을 입고 칼로의 상징인 눈썹을 하고 닮은 듯 아닌듯한 자태로 서 있다. 3월 8일 여성의 날을 맞아 미국 완구회사가 제작했다는데 현재는 가족들의 초상권 제기로 판매금지 상태라고 한다. 가족이라는 얘기에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자녀를 먼저 생각했다. 그들에게 자녀는 없고 그들의 부모도 형제들도 사망했을 테니까. 기사엔 칼로의 조카딸과 가족이 초상권을 독점 소유하고 있다고 되어 있다.

  칼로가 살아있다면 어떻게 했을까. ‘영감을 불어넣는 여성’으로 선택되어 자신을 닮은 바비인형의 탄생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초상권 제기로 인해 판매 금지가 되었다는 한국 기사엔 ‘여류 화가’라고 강조되어 있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까. 여성을 억압한 관습에 저항한 페미니스트라 소개하면서 ‘여류 화가’임을 절대 놓치지 않는 기사를 보면서 칼로는 뭐라고 말했을까.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클레지오는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삶을 자신의 언어로 기술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지만 무게중심은 프리다 칼로 쪽으로 기운다. 프리디 칼로의 전생애를 중심으로 한다면 리베라는 연인이자 남편으로 등장하고 있다. 물론, 그 영향력은 무시못할 만큼이긴 하다. 화가로서 프리다 칼로의 그림도 책속에 나타나는데 그림 때문에라도 프리다 칼로에 대한 인상이 강하게 남는다. 프리다가 자화상을 주로 그렸기 때문이다. 화가로서는 칼로보다는 디에고의 활동이 방대하고 ‘화가’로서의 명성이 큰 것 같다.

  반면에 프리다 칼로는 그림보다도 자신의 생애 자체로 회자된다. 프리다는 한순간도 편치 않고 급박한 삶속에 있었다. 프리다가 살아간 시대는 1907~1954년의 멕시코. 프리다는 화가로서의 명성보다는 유명한 화가 디에고 리베라의 아내, 끔찍한 사고 후에도 굳건히 생을 살아간 여성으로 위치되었던 삶이기도 했다. 이런 프리다에 대한 평가는 차츰 변화되어 혁명가로서 페미니스트로서 강렬한 인상을 전한다.


이십 년이 지난 뒤에도 프리다 칼로는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 기막힌 시절 자신이 믿었던 모든 것, 만났던 모든 이들, 그들이 투쟁하던 이상을 고스란히 기억 속에 간직했다. 사실 그녀의 그림은 혁명적이지 않고 벽화주의 화가들의 웅장한 작품처럼 정치적 참여를 드러내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녀의 혁명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그녀의 예술은 참여예술이 아니다. 그녀의 투쟁이 내면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상과 그녀의 고독한 삶에 대해, 고통의 감옥에 대해, 그녀의 자존심이 입은 상처에 대해, 그리고 남성이 지배하는 멕시코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여섯 살에 소아마비로 인해 장애를 갖고 있는 프리다가 18세에 겪은 버스 사고는 ‘끔찍했다’는 한마디 말로 하기엔 프리다의 고통을 너무나 가볍게 만드는 것 같다. 버스와 전차가 충돌하며 금속 기둥이 프리다의 몸을 관통했고 폭발한 버스의 잔해가 프리다의 몸속에 박혔다. 수술은 끝이 없이 반복되었고 회복은 더뎠고 소녀가 가진 꿈도 날아가 버렸다. 늘 침대에 있어야 했던 프리다는 자신의 고통을 그림으로 그리며 삶을 위한 투쟁을 벌였다.

  어쩌면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프리다가 화가인 디에고와 결혼하는 일은 없었을지 모르겠다. 프리다에게 있어 그림이 고통을 견뎌내는 힘이었다면 프리다의 그림을 알아봐준 디에고에게서 고통을 나눌 위안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스물 한 살 연상의 바람둥이 화가에 대한 끌림은 의지하고픈 마음과 자유스럽지 못한 자신의 상황을 투사한 마음에서 비롯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어쨌든, 내가 어찌 그 심정을 알겠으며 프리다가 끝없이 한 남자로서 ‘사랑’했다고 말하고 있으니, 그 사랑이 고통을 더하는 데 결코 빠지지 않았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디에고의 심각한 여성 편력과 동생과의 불륜을 끝없이 참은 것이 사랑의 힘이었을까. 신체적 고통을 넘어선 정신적 고통을 주는 존재, 디에고 리베라. 프리다 칼로의 남편. 왜 프리다는 디에고 리베라의 아내 역할을 놓지 못했을까. 상처입은 프리다의 자존심도 고통을 이겨낼 의지도 모두 프리다의 내면에서만 일어나고 있었다. 프리다는 계속 ‘디에고의 여자’를 놓지 못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프리다는 심각한 몸 상태에도 몇 번의 유산에도 아이 갖기를 소망했다. 그리고 또다시 상처받았다. 아이를 낳지 못한 것에. 프리다가 디에고를 떠났을 때는 유산 후였고 여전히 디에고는 자신의 습성을 버리지 못했으니 프리다의 인내심이 다한 것은 디에고 때문이 아니라 그저 자기 자신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혼과 재결합을 제시한 것은 항상 디에고였다. 그래서인지 프리다 칼로의 ‘페미니스트’로서의 부각은 강한 울림으로, 느낌으로 와 닿지는 않는다. 하긴 프리다 스스로 페미니스트라 자처한 적은 없다.

  초기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활동 또한 디에고를 위해, 디에고에 의해서인 것도. 프리다 칼로를 처음 마주했을 때는 프리다에게 강렬하게 매료되었던 것 같은데 프리다의 그림을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시선을 끄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쩜 프리다에 대한 매혹은 프리다 생애 자체가 주는 스토리에 대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새삼 다시 이 책을 훑어보며 처음과는 달리 프리다의 ‘주체적’인 면을 찾게 된다. 디에고의 엄청난 ‘성적인’ 활동에도 불구하고 그의 명성은 줄어들지 않았고 디에고는 그런 일로는 화가로서 혁명가로서 달리 평가받는 일은 없었다. 오로지 그의 아내 프리다만이 상처입었을 뿐이다. 

  그런 상처를 프리다는 그림으로 그렸다. 한편으로는 디에고로 인해 상처와 고통받은 아내로서,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의 고통을 그림으로 형상화낸 것이 의지와 주체적인 표현이기도 하겠다. 이런 면에서 예술이 가진 힘을 느끼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말할 것을 알았던지 프리다는 일기에 이렇게 쓰고 있다. 프리다가 ‘원하는 여인’은 어떤 상이었을까. 프리다는 무엇을 위해 싸웠는가.


광기의 장막 저편에서는 내가 원하는 여인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난 온종일 꽃다발을 만들고 고통과 사랑과 다정함을 그리면서 다른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비웃으리라. 그러면 모두들 말하겠지. 불쌍한 미친 여자라고(난 무엇보다 나 자신의 어리석음을 비웃으리라). 나 자신의 세계를 건설하겠다. 그것은 내가 살아가는 동안 다른 모든 세계와 조화를 이루리라. 내가 살아갈 날과 시간과 분은 내게 속한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속하겠지. 나의 광기가 작업 속으로 도주할 수단이 되지 못할 테니, 다른 사람들이 나를 그들 작품의 포로로 가둘 것이다. 혁명이란 형태와 색채의 조화이며, 모든 것은 생명의 법칙에 따라서만 움직이고 머문다. 누구도 다른 누군가와 헤어질 수 없다. 누구도 자기 자신만을 위해 싸우지는 않는다. 만물은 전체인 동시에 하나이다. 불안, 고통, 쾌락, 죽음은 존재를 유지할 유일한 방법이고 결국은 하나이다.


  쉬이 무너지지 않고 초기 생의 고통을 예술혼에 투영하였던 프리다의 삶은 경이롭다. 아마도 그렇기에 프리다의 삶이 강렬하게 다가올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들 두 화가의 삶이 너무나 비교된다. 내가 그들의 삶을 모르기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하는 이 책을 통해서 그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클레지오 작가는 이들의 삶을 한편의 소설처럼 엮어 놓은 솜씨가 있다. 실존 인물의 삶을 전하는 클레지오의 시각에 영향을 받게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프리다의 힘겨운 삶과 그 고통의 면면들이 연민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반면에 디에고는 너무도 열정적이고 천재적인 화가이자 혁명가로 부각되는데 프리다는 늘 디에고에 대한 사랑에 목말라 하는 존재로 그려져 있는 것도 같다. 제 아무리 디에고를 언제고 사랑했다 하지만 늘 디에고로 귀결되는 이 집착과도 같은 사랑은 아름답고 열정적인 사랑으로 다가오기 보다는 환멸스러움을 더하기도 한다. 어쩌면 불편하고도 짠한 이 연민은 이렇게 묘사한 작가의 언어때문 아닌가 싶기도 하다.

  부부 예술가의 삶은 전문가적인 역량에선 늘 여성이 남성보다 ‘못한’ 것으로 표현되는 듯하다. 여성의 예술혼은 늘 남성에 ‘의해’ 강화되는 것으로 만든다. 늘 고정적으로 묘사되는 예술가로서의 남성과 여성, 부부들. 그것이 사실일 수밖에 없는 요인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과 더불어 늘 ‘그렇게 보는’ 시각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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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 4285km, 이것은 누구나의 삶이자 희망의 기록이다
셰릴 스트레이드 지음, 우진하 옮김 / 나무의철학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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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를 상실하려는 의지에 맞서


와일드-4285km, 이것은 누구나의 삶이자 희망의 기록이다


  PCT라 하면 PCT활용능력이 먼저 떠오르는 사람으로서 인상깊게 본 다큐 <순례> 시리즈에서 마지막 4편의 예고를 보면서는 건너뛰어야지 생각했다. 어쩌다 보게 되고서는 PCT 찾기에 혈안이 되어 한동안 PCT 앓이를 했다. PCT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캘리포니아 주 멕시코 국경에서 시작해 캐나다 국경 너머까지 아홉 개의 산맥을 따라 펼쳐지는 4,285km의 도보여행 길을 말한다. 이 길을 걸으려면 적어도 6개월 이상이 소요된다. 이 여정을 지나는 동안 사계절을 만나게 되고 사막과 산맥, 여행자들에게 위협이 되는 곰과 뱀, 퓨마 들이 서식하며 출몰하기도 한다.

  길이란 이어지는 것이고 그냥 존재하는 것이니 이 코스에 대한 명칭이 존재하고 관련 안내서적이 있다는 것은 최초 누군가의 시도 이후 오랫동안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았음을 보여준다. 저자 셰릴 스트레이드 역시 이 여정에 도전하는 스물 여섯의 여성이다. 저자의 자전적 에세이로 PCT 여정을 떠나게 된 배경과 그 여정을 담고 있다. 여정 중간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이 길을 걷는 이유가 엄마를 잃은 후 처절하게 무너진 자신의 절망과 상처 회복을 극복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하다 아버지의 학대와 가난하고 불우한 유년 시절을 떠올리며 엄마에 대한 분노에 감정을 보이기도 한다. 시종일관 반복되는 엄마 때문이라는 말, 엄마로 인해 자신의 삶이 무너졌고 회복불능이라는 말이 안타까이 느껴지면서도 엄마가 돌아가신 상실감에 약물과 불륜을 반복지속하며 자신을 놓아버렸다는 저자의 얘기에 드문드문 의아한 마음을 가지기도 했다.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일에 대한 의문, 그 순간들에 대한 의문들이었다. 손쓸 수 없이 무력하게 되는 항거불능의 상황이겠지만 드문드문 셰릴이 부러 의지를 상실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우연히 PCT를 알게 되어 이 여정을 가겠다고 결심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미 저자는 ‘의지를 상실하려는 의지’를 놓아버린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이 여정의 성공 여부는 저자의 감정 정화의 여정이 될 수 있었다고 본다. 셰릴 자신도 변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 여정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자신을 놓아버릴 때처럼 자신을 붙잡으려는 명분이라는 생각을 언뜻 했다.


나는 변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이 그 계획을 세우는 몇 개월 동안 나를 밀어붙이는 힘이 되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예전 모습을 되찾겠다는 것이었다. 강한 의지와 책임감, 맑은 눈을 가진 사람. 의욕이 넘치며 상식을 거스르지 않는 그냥 보통의 좋은 사람. PCT는 나를 그렇게 만들어줄 터였다. 그곳을 걸으면서 내 인생에 대해 전체적으로 다시 생각해볼 참이었다. 인생을 이처럼 우스꽝스럽게 만들어버린 모든 것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채, 내 의지와 힘을 다시 찾을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여기 이렇게 PCT에 서고 보니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다시 돌아온 것만 같았다. 비록 조금 다른 형태이긴 했지만. 여행 첫날부터 이렇게 똑바로 서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웅크린 채 걷고 있는 모습이라니.


  셰릴은 엄마에 대한 집착적인 감정과 엄마의 죽음으로 인해 자신이 망쳐버린 가정을,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 걸으면서 생각한다. 하지만 그 생각을 하면서 괴롭고 상처받은 감정들은 현실적인 ‘생존’이라는 상황 앞에서 조금은 작게 보이고 부차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정신적인 피폐함이 육체의 피폐함 앞에서 뒤로 물러나며 아물어지기도 했고 아름답고 경이로운 자연의 경관 앞에서 인생에 대한 숙연함을 느끼기도 하면서 셰릴은 이 험난한 여정의 끝에 다다른다. 이 도보여행을 함께 하는 이들의 도움을 받기고 주기도 하고 그러나 더 많은 나날 홀로 외로움과 추위와 배고픔과 고통, 두려움을 이겨내고 찾아낸 것은 환희였으니 그것은 셰릴이 앞으로 살아나갈 인생에 대한 깨달음과 의지를 얻어낸 덕분이고 힘든 여정을 마침내 완전히 제 힘으로 해냈다라는 의미였다.


PCT를 걸어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은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달려 있지, 흉측한 내 발에 달려 있지 않았다. 온갖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가려는 강한 의지 말이다.


  셰릴이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놓아버렸던 만큼이나 다시 감정을 부여잡고 길을 떠나 완성하는 과정은 놀랍고 대단하다는 생각을 거듭 가지게 했다. 수많은 사람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이 도보여행에 도전하고 실패와 성공을 반복한다. 다큐에서 이 여정에 참여한 몇몇과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전쟁에 참전한 경험을 가진 이들을 보았다. 여성군인도 있었다. 이들이 신체적으로는 어느 정도 단련되어 있겠구나 싶었지만 그들이 이러한 여정을 떠나는 것이 단시 신체훈련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쟁터에서 겪은 일에 대한 정신적인 회복 욕구가 더 강하다는 것을 알았다. 고난을 통해서 고난을 잊고자 하는 이들의 노력에 응원이 더해지는 이유이기도 했다. 마냥 걷고 싶은 기분이 들거나 잡다한 일에 매몰될 때마다 정신이 혼란스러웠던 기억들을 생각해보면 이 도보여행에 대한 끌림이 우연은 아니구나 싶었다.

  변화하고 자신에 대한 긍정적 에너지를 채운 셰릴이 이 여정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그녀의 아이들에게 도보여행에 성공한 장소에서 자신의 여정을 이야기해주는 모습은 아주 평화로운 풍경으로 보였다. 감정의 격량을 잠재우고 의지를 적절하게 활용할 줄 아는 자의 여유로움이 보였다고나 할까. 이 여정을 걸어나가는 의지 이전에 이 여정을 하겠다는 의지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 와일드가 내게 준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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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를 따라간 스페인 - 윤준식.권은희 교수의 여행 에세이
권은희.윤준식 지음 / 꿈의날개(성하)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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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와 베짱이의 도시화


돈키호테를 따라간 스페인, 윤준식, 권은희 지음, 꿈의날개(성하출판), 2001.2010


  확실히 돈키호테를 따라다니는 스페인 여행은 다이나믹하고 흥미로울 것 같다. 얼만큼 그를 감당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되겠지만 소설속 돈키호테 옆에 있는 산초만큼이나 하면 되지 않으려나. 돈키호테가 흔적을 남긴 곳을 따라가는 것도 나름 재밌긴 할 거다. 맞닥뜨리는 것은 풍차와 여인숙이고 마냥 길이라도 말이다. 하지만 돈키호테를 따라간 스페인 여행은 수사적 표현이고 이 책은 스페인에서 생활한 저자들이 살면서 보고 들은 것을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스페인의 유명한 관광자원뿐만 아니라 자연문화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스페인의, 스페인 사람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스페인에 관해 알면 알수록 새롭고 재미있지만 계속 알고 싶어지기도 한다. 아랍, 유대, 기독교 문화가 공존했던 나라, 그로 인해 더욱 많은 이야기가 펼쳐져 있고 각각의 특색있는 문화유적이 남아 있는 곳. 자끄 아탈리의 소설 『깨어있는 자들의 나라』처럼 비밀스런 책을 찾는 이야기가 생겨날 수 있던 것도 이 세 종교가 어울러져 있었기에 그와 같은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었다.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는 아랍어 ’마헬리트‘에서 유래된 ‘물이 곳이는 곳’이라는 뜻이다. 또한 ‘산복숭아와 곰의 마을’이라고도 불린다는데 그것은 마을의 산등성이에서 나무를 잡고 열심히 열매를 따먹는 곰을 보고 지은 것이라고 한다. 이렇듯 이 책은 스페인의 각 도시들의 역사와 유래를 잘 설명해주고 현재의 공간이 가지는 의미들을 설명해 주고 있다. 또한 스페인에서 유명한 하몽, 빠에야 등의 음식과 투우와 플라멩고, 스페인에서 예술혼을 불태운 예술가들에 대한 생애와 작품 설명 등 문화, 스페인에서 독립을 외치며 반목을 지속하고 있는 까탈루냐, 바르셀로나에 대해서 비교설명하고 있다. 비록 까먹기야 했지만 이 책은 출판일을 감안하고도 스페인 여행시에는 유용했다.

     

한편, 보수와 진보의 양대 거대 세력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도 바르셀로나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큰 목소리를 낸다. 공업과 상업, 그리고 금융업이 오래 전부터 발전되어 경제기반이 집중되어 있으므로 세금의 액수도 다른 지역에 비해 많다. 그래서 생긴 말이 세비야 사람들은 춤추고 노래하면서 인생을 즐기지만,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일하면서 이들을 먹여 살린다는 것이다.


  스페인의 까딸루냐 독립에 관한 투표와 관련 이야기가 뉴스를 장식할 때 난 이 책의 위의 글을 생각하며 씁쓸한 기분에 잠기곤 했다. 구걸도 직업이라 생각하는 스페인식 철학의 관점에서 보면 까딸루냐는 스페인의 정체성에서 너무 멀리 가 있다. 하지만 이 끝없는 경쟁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살아가기 위한 까딸루냐의 신철학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의 삶이란 세비야와 바르셀로나의 삶 두 가지가 모두 조화롭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니까. 개미와 베짱이의 도시화가 바르셀로나와 세비야라니.


독일의 우중충한 날씨가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내면의 세계에 대해 골똘하게 생각하는 시간적 여유를 제공하고 철학을 낳게 하였다면, 스페인의 강렬한 태양은 그 푹푹찌는 광야를 무방비로 걷고 있는 사람의 머리를 정면으로 강타하여 미쳐버리게 하였으니, 내면의 생각이고 뭐고 걷다가 포기하고 풀썩 주저앉거나 살기 위해 쉽게 흥분하는 가슴으로 돌진하는 것밖에는 다른 선택이 없을 것 같다. 


  스페인에 대해 반복적으로 갖는 이미지는 정열과 정념과 같은 강하고 화려한 단어다. 스페인을 얘기할 때면 붙는 수식어를 반복적으로 들어왔으니 그럴 수밖에 없을 지도. 그렇지만 그 모습을 찾으려 하기에 그 모습만 보이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돈키호테의 후손이자 수많은 광기와 정념의 예술가들을 생각하면 영락없이 그렇소, 할 수밖에는 없기도 하다. 그렇기에 스페인에설 살고 스페인에서 공부한 두 저자의 스페인에 대한 또다른 견해 또는 평판에 시선이 간다. 어느 나라든 세월은 흐르고 인간도 교류를 통해 다양한 시각을 가지기 마련인데 고착화된 이미지 하나만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문화공존의 문화가 나타날 수 있었던 것에는 개인주의라 불리는 특성이 함께 했다는 것은 정열의 색과는 달라서, 또 생각하게 된다. 왜인이 정열은 개인주의보다는 함께, 다같이라는 단어와 어울리니까 말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고슴도치와 같아서 사회란 공간에서 살아가지만 자신을 그 사회에 끌어들이려는 순간에는 가시를 곤두세우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내가 만들어서 내가 먹으면 된다는 식의 생각이 이들의 지배적인 가치관이다.


스페인인들의 개인주의는 개인이 자신이 편한 대로 행동하도록 내버려 뒀으며,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하고 원주민들과 자연스럽게 합해질 수 있었던 이유도 피부색과 문화의 차이를 두면서 정복해나갔던 영국인들과는 달리 스스로의 기분과 판단에 따라 이뤄진 개인주의의 결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에도 그렇소, 외에 달리 뭘 말해야 할까 싶다. 그런가?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그렇‘소’하니 스페인의 검은 황‘소’가 생각난다. 스페인의 고속도로에는 아무 커다란 검은 황소 간판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스페인의 특성을 나타내는 상징물이겠거니 여겼건만 단지 개인회사 ‘오스보르네’의 셰리주에 대한 광고물이란다. 더구나 법적으로 철거처분을 받았음에도 회사 로고만 지운 채 그냥 서 있게 되었는데 그렇게 되면서 자연적으로 스페인의 상징물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투우 때문에 황소 간판이 스페인과의 연결고리가 되었으리라 생각하긴 하지만 11월 11일이 빼빼로 데이라는 기념일이 당연시되는 것처럼 상업적인 이유에 의한 억지스럽고 조작된 기념일, 상징은 달갑지 않다.

  검은 황소 간판이 스페인 사람들 스스로가 상징으로 내세웠다기보다 타국의 관광객들이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그렇게 인식하고 확산된 게 아닌가 싶다. 스페인 고속도로에 가면 온통 검은 황소 간판이 있으니 찰칵 인증샷을 남기라고. 상상이긴 하지만 인간세상은 참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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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기행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14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송병선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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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연금술


스페인 기행, 니코스 카잔차키스, 송병선 옮김, 열린책들, 2012.


  스페인에 관한 책들을 들여다보기 전까지 스페인은 돈끼호테, 산티아고, 그리고 카탈로니아 찬가 스페인 내전으로 기억되는 나라였다. 하고 많은 스페인에 관한 이미지 중에 하필  스페인 내전이 혁명이 각인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세가지 이미지가 너무 부조화스럽다가 또 한없이 어울리는 조합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나만큼 스페인 내전이 각인된 사람들은 많은 것 같고 니코스 카잔차키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인지 1930년대의 스페인은 수많은 예술 작품에서 단연코 단골이다.

  스페인 여행의 기록을 쓴 이 책에서도 스페인 내전에 관하여 담고 있다. 스페인을 내전으로만 기억하기에는 스페인이라는 도시 곳곳에 스민 자체의 매력과 수많은 예술가들이 남긴 예술품과 그들의 자취가 억울하다고 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토록 많은 예술가들의 창작혼 또한 스페인의 역사와 이 내전에서 발현되기도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당대의 예술품에도 그들의 생애에서도 스페인 내전을 쉽게 지우지는 못할 것이다.

  아랍 문화와 유대 문화 기독교 문화가 공존하는 곳, 스페인. 이 세 문화가 어울려지고 또한 각각의 특징을 내세우며 스페인이 흘러왔듯이 스페인 내전에도 수많은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뛰어들었다. 어떤 전쟁에서도 명백한 선악이란 구분되지 않듯이 스페인 내전에도 수많은 명분과 이유와 소망들이 혼재되어 있다. 스페인 내전에 관해서는 역사책에나 ‘권위있는’ 이의 입을 통해서 정의되는 형태로 기억하고 생각할지 모른다. 모든 전쟁의 속살은 들여다보면 비참하고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어쨌든 무엇이, 누가 더 선이고 악인지를 구분하면서 전쟁은 반복되어 왔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스페인 내전에서 독재라 칭해지는 프랑코의 편에 있었다. 이것으로서 니코스 카잔차키스에게 ‘호감있는 자’,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권위있는 자’로 보는 이들에게는 한두번쯤은 스페인 내전에 대해 다시 자료를 찾아보고 생각해 볼 수 있는 동기를 주지 않았나 싶다. 적어도 일방적인 구분이 아니라 조금 더 나쁜 자라거나 복잡하고 얽힌 상황에 대해, 그가 그렇게 한 이유에 대해 말이다.


이런 모든 것들이 나를 절망으로 몰고 가오. 이 모든 것이 스페인 사람들이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생긴다고 생각하시오? 절반은 기독교를 믿고 나머지 절반은 레닌을 믿는 것이란 말이오? 아니요! 절대 그런 것이 아니오! 들어 보시오. 내가 말하려는 것을 주의 깊게 들어 보시오. 이 모든 것은 바로 스페인 사람들이 아무것도 믿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오. 아무것도……, 아무것도 믿지 않소! 그들은 <데스페라도>요. 이 세상의 다른 어떤 언어도 이것에 해당하는 단어를 갖고 있지 않소. 왜냐하면 스페인을 제외한 그 어떤 나라도 그 단어가 의미하는 바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오. <데스페라도>는 계속해서 붙잡고 있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을 뜻하오. 그들은 아무것도 안 믿는 사람들이오. 그리고 믿지 않기 때문에 거친 분노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오.


  이 문단들을 보며 드는 생각은 스페인에서 다양한 문화가 공존했던 것이나 전쟁을 겪은 것이나 절대적 신념이나 이유 때문이 아니라 아무것도 믿지 않기에 가능했던 것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배려와 존중이 남달랐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 모든 것에 개의치 않았기에 가능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해도 거친 분노가 어떤 상황에서 일괄적으로 움직여지느냐는 또한 신념의 문제가 될 수도 있고 무언가가 발생하는 이유가 되지는 않을까.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스페인 여행은 스페인 내전이 발생하기 전에 이루어졌다. 시간이 흘러 스페인 내전이 뚫고간 이곳을 다시 방문했고 전쟁을 겪은 스페인의 모습을 덧붙였다. 스페인에 관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시선은 수없이 회자되고 인용되었고 그가 묘사한 스페인의 모습을 보면 달리 더 표현할 말이 떠오르진 않는다. 스페인 곳곳을 둘러보지만 일반적인 여행의 기록이라기엔 도시의 랜드마크에 대한 소소한 감상은 물러둔 채 사색적이면서 재미있는 시각을 덧붙인다. 그러니 좋다. 관광책자엔 반딱반딱한 스페인의 랜드마크들이 나열되고 있으니 경험해보지 못한 1930년대 스페인의 분위기를 그때 그곳에서 느낀 누군가의 감성을 읽는 것은 실망할 생각을 주지 않는다. 실망이란 말이 딱 맞는 것은 관광 책자에서 온갖 미사여구로 동원된 글과 사진발을 보고 난 뒤에야 오는 것이니까.

 

여행을 기록한다는 것은 오만한 자아를 인간이라는 고통 받는 편력 군대 속으로 던져 담금질하여 부드럽게 만드는 것이다.


  오만한 자아를 유지하기 위해서 여행 후 기록을 남긴 적은 없지만 심지어 찰칵 사진 하나도 제대로 찍지 않았기에 내 영혼이 부드러워질 기회를 놓친 지난날들이 문득 아쉬워졌다. 하긴 좋다, 나쁘다, 맛있다, 맛없다, 별로다 이런 글을 쓸 거라면 굳이 기록할 필요가. 감흥은 가득찬데 밖으로 터져 나오지 못한 말들을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글로 달랜다. 스페인 내전 전후의 그의 글의 느낌처럼 그의 글을 보고 또 보고 스페인을 생각하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 그럴 때면 이것은 내 느낌인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느낌인가 구분하려 애를 쓰게 된다. 우습게도.


툴레도는 엘 그레코의 정신과 똑같은 모습으로 내 마음속에 나타났다. 한쪽은 빛이 관통하고 있고 다른 쪽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어느 비잔티움의 신비주의자가 말했듯이, 냉담이 아닌 하느님의 광기의 출발점이며, 도저히 가까이 할 수 없는 인간적인 노력의 절정을 보여 주고 있었다.


  툴레도는 엘 그레코가 유명하고 중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저자 역시도 이런 툴레도의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스페인 전쟁 전후에 툴레도에 대해 쓴 글은 차이가 있다.


툴레도는 격렬하고 고동치는 모습들로 가득하고, 모든 희망을 잃은 높고 거대한 벽으로 가득한 엘 그레코의 캔버스가 되어 있었다. 그것은 논리적으로 터무니없는 것이 되어 있었다. 이제는 덧없이 사라지는 그림자들이 서로 속이듯이 움직이면서 이 도시의 건축물들을 배치하고 있었다. 너무나 마술적인 장면이어서 그곳을 떠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는 재앙을 향한 충동이 숨어 있음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약탈된 도시의 광경을 야만적인 기쁨으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툴레도는 자신에게 맞게 사납고 모질어졌다. 그래서 마침내 호전적이고 용맹한 정신에 걸맞은 육체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세상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것들을 바라보며 음미하고 또 음미하며 모든 기쁨과 슬픔의 정수로 정제시키려는 마음의 연금술이 이 책에 담겼다. 읽을수록 저자가 스페인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 너머 인간 영혼의 정화를 찾고자 한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더구나 스페인 전쟁을 겪은 후라면 더욱 그렇지 않을까. 달리 『영혼의 자서전』을 쓴 작가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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