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단골 빵집이 생긴다는 건
동네에 단골 술집이 생긴다는 건 일상생활에는 재앙일지 몰라도,
기억에 대해서는 한없는 축복이다.
권여선의 <사랑을 믿다>에 나오는 문장이다. 2008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이다. 2008년 이후로 술집에 갈 때면 항상 저 말이 떠올랐고 가끔은 소리없는 입말로 읊조렸다. 그리고 지금은 빵집에 갈 때마다 “동네에 단골 빵집이 생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생각한다.
동네에 천연발효종을 사용한 빵집이 생겼다. 발을 멈추게 하는 빵냄새에, 호기심에, 작은 빵집 문을 두드려 한껏 고르고 난 뒤 발길이 그곳으로만 간다. 프랜차이즈 빵집을 전전하던 내게 실로 생애 처음으로 단골 빵집이 생겼다. 얼마 되지도 않아 빵집 영수증이 수두룩하게 쌓였다. 내가 이토록 빵을 좋아했던가 의아할 만큼 빵을 사들이는데, 가끔은 보상심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또한 이 빵집에서 와타나베 이타루의 시골 빵집을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다. 천연발표종 사용에 매주 쉬고 재료가 소진되면 영업하지 않는 방식. 뭐, 이것은 표면적인 것이기도 하니까. 이러한 마케팅은 다른 가게에서도 널리 하고 있으니 차별성이 덜하다 치고. 일단은 빵이 맛있다. 무엇보다 빵속에 들어간 다양한 재료들이 숨바꼭질 놀이 하지 않고 늘 단체로 튀어나온다. 밤, 호두, 크랜베리, 불루베리, 무화과라는 이름이 들어간 빵에 걸맞게 밀가루는 조연이 된다.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느끼는 “향”만 가득한 빵이 아니었다. ‘건강하고 맛있는 빵’이라는 생각이 들게끔, 아 이런 게 빵이구나 싶은 새로움을 안겨 주었다. 참, 빵이 뭐라고 이렇게 먹을 때마다 감탄해대다니!
와타나베 이타루는 이스트에 물든 빵이 아니라 천연균을 찾아 자연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건강하고 착한 빵을 만드는 빵집 주인이다. 그는 자신이 빵집을 운영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라는 독특한 제목으로 들려준다. 이 책 제목이 한참 떠돌며 베스트셀러에 등극할 때, 그냥 자본론에 관한 일본 학자의 해석인가보다 했었다. 그러나 이 책은 철저하게 자본론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강의였다.
저자는 농부를 꿈꾸었고 유기농산물 도매회사에서 일을 했다. 하지만 그 회사에서 저자는 부정을 일삼는 회사의 모습에 질려 회사를 그만두었다. 가만 보면 저자 자신도 그렇지만 저자의 환경도 다른 이들과 확실히 달랐다. 그의 할아버지는 천연균을 연구하셨고 그의 아버지는 마르크스를 탐닉하신 분이니까. 그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저자가 하고픈 일을 하는데 힘이 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끊임없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그를 다지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어떻게, 무엇을 해서 먹고 살 것인가만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세상을 꿈꾸고 만들어 가는가를 생각하는 삶으로 말이다.
삶에서 사회와 느끼는 괴리감을 적절히 끌어안고 삶의 철학을 잘 영글었고 그 바탕으로 이룬 것이 그의 빵집 <다루마리>다. 그는 혼자서 살아가는 이윤을 남기는 빵집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빵집을 운영하기로 했다.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방식, 보다 행복하게 살며 행복한 빵을 만들고 싶은 마음,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이야기는 그와 그의 아내가 함께 이루어가고 있다.
그의 빵집 운영과 삶의 철학의 바탕이 된 것이 마르크스주의의 자본론이다. 빵집을 운영하는데 <자본론> 책을 들고 있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니 웃기다. 세상 어느 자영업자, 기업가가 <자본론>을 읽으며 경영방식을 세우겠는가. 그러나 그는 그렇게 했다. 자본주의의 경제와 경영 체계를 뒤집고 마르크스주의의 자본론을 깨치며 이윤을 남기지 않는 빵집을 만들었다. <자본론>이 이렇게 적절한 사례와 함께 이야기되니 동화책 같은 느낌도 들었다. 어렵다, 불온서적이다라는 마르크스의 책이 고운 때깔을 맛난 듯 이 책은 초등학생들도 부담없이 쉽게 읽고 이해될 것 같다.
자연계에서는 균의 활약을 통해 모든 물질이 흙으로 돌아가고, 살아 있는 온갖 것들의 균형은 이 '순환' 속에서 유지된다. 자연의 균형 속에서는 누군가가 독점하는 일 없이도, 누군가가 혹사당하지 않고도 생물이 각자의 생을 다한다. 부패가 생명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자연의 섭리를 경제활동에 적용시키면 어떻게 될까? 각자의 생을 다하기 위해 배경에 부패라는 개념이 있다고 한다면 부패하는 경제는 우리 각자의 삶을 온화하고 즐겁게 만들어주고, 인생을 빛나게 해주지 않을까? p13
이 책 속에는 반복적으로 ‘부패’라는 단어가 나온다. 저자가 말하는 부패하지 않는 경제는 이윤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이윤이라는 목적을 위해 어그러진 노동시장을 만들지 않는 것. 억압과 착취가 난무하는 노동환경, 비리가 폭발하는 경영을 하지 않는 것.
하지만 그가 허용하는 부패가 있다. 그는 자연에 존재하는 천연균을 이용해 빵을 만든다. 그것은 부패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균은 ‘부패’와 ‘발효’의 순환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이윤을 위해 사용되는 인공배양균 이스트가 빠른 속도로 많은 빵을 만들어낼지는 모르지만 결코 풍요로운 삶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이스트로 만든 빵이 가져다 줄 수 있는 행복은 한정적이다. 특정한 이에게로 집중된다. ‘부패하지 않는’ 빵, 그런 음식은 결국 이 자연을 조화롭게 유지시키는데 악영향을 미친다. 어쩌면 당장의 허기를 채워주고 취약한 취업환경에서 일자리를 제공해 줄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영양없는 먹거리와 일자리일 뿐, 인간의 존엄을 엎어치며 공존하는 삶을 밀쳐버리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돈을 쓰는 방식이야말로 사회를 만든다. 자리가 잡히고 균이 자라면 먹거리는 발효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소상인과 장인이 크면 경제도 발효할 것이다. 사람과 균과 작물의 생명이 넉넉하게 자라고 잠재능력이 충분히 발휘되는 경제. 그것이 시골빵집이 새롭게 구워낸 자본론이다. 빵을 굽는 우리는 시골 변방에서 일어나는 조용한 혁명의 태동을 오늘도 느끼는 중이다. p232
동네 빵집에도 쿠폰을 발행해준다. 그렇다고 쿠폰을 채워 공짜빵 하나 더 먹으려고 줄기차게 이 빵집을 찾는 건 아니다. 프랜차이즈에서는 언제들 활용가능한 할인카드가 있으니까. 화학첨가물을 사용하지 않은 천연발효종과 유기농밀가루를 사용하는 빵집이라서, 그저 재료를 아끼지 않고 쏟아붓는 빵집이라서 아주 좋은 향이 난다. 난 이 집이 다루마리 빵집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다루마리 빵집처럼 경영하는 빵집이 있다면, 소비자로서 이 집 빵을 사먹는 일 또한 부패하지 않는 경제를 만들어가는 일에 힘을 얻는 일이라 생각하며 이 빵집엘 간다.
와타나베 이타루,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