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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솔로사회 - 2035년 인구 절반이 솔로가 된다
아라카와 가즈히사 지음, 조승미 옮김 / 마일스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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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 마케팅

초솔로사회-2035년 인구 절반이 솔로가 된다, 아라카와 가즈히사, 2018.


  미혼율이 증가하고 전세계적으로 솔로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일본의 칼럼리스트 아라카와 가즈히사는 2035년이면 인구의 절반이 솔로가 되는 사회가 도래한다며 이에 대해 이해하고 대비할 것을 《초솔로사회》를 통해 이야기한다. 이 책의 분류가 ‘경제’로 되어 있음을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후반부를 읽어가며 왜 경제에 방점을 두었는지 알았다.

  솔로 사회란 미혼, 비혼이 증가하는 사회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결혼을 했어도 솔로가 되는 사회다. 이혼이 증가하고 무자녀 가정을 선택하는 기혼자들도 증가하고 있다. 무엇보다 고령화 시대 남성과 여성의 서로 다른 평균 수명은 필연적으로 솔로가 되는 사회를 만들고 있다. 이런 이유들로 저자는 초솔로사회란 “‘혼자가 될 가능성’이 특례가 아니라 범례가 된 사회”라 칭한다.

  저자는 일본의 빠른 솔로사회화를 다양한 통계를 활용해 상세히 보여주고 있다. 통계를 통해 미혼과 비혼이 증가하는 이유와 오래도록 지배되고 있는 결혼규범이 변화하는 사회에 어떻게 작용되고 있는지를 분석했다. 결론은 일본사회는 피할 수 없는 초솔로사회가 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 ‘솔로로 살아갈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에 저자는 솔로의 소비 형태에 주목했다. 솔로사회, 1인 가구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소비형태와 가치관을 지닌다. 저자의 분석에 의하면 솔로의 소비는 ‘물건의 소유를 중시하는 소유가치에서 경험을 중시하는 체험가치를 추구’하는 쪽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른바 ‘에모이’소비라 불리는 형태로 한번 가치를 인정한 것에 돈과 시간을 아낌없이 쓰는 것이다. 그러니 솔로들을 위한 마케팅을 하려면 ‘에모이’ 소비에 중점을 두고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소비시장의 변화를 이끌고 있는 솔로는 변화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저자는 정신적인 자립인 ‘솔로로 살아갈 힘’을 키워야 한다고 얘기한다.


솔로로 살아갈 힘이란 물리적으로 혼자가 됐을 때에도 고립감을 느끼지 않고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러려면 한가지 사물이나 한 사람에게만 의존하려는 태도를 버리고 타인, 사회와 폭넓게 연결되고, 연결성을 유지하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즉 솔로로 살아갈 힘이란 기존의 직장, 가족, 지역뿐만 아니라 다양한 커뮤니티와의 관계를 구축하는 힘이기도 하다.

  

  솔로사회라고 해서 개개인의 생활만 중시하는 고립된 형태일 거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물론 어느 정도 지역사회간의 관계성은 약화되기도 할 테지만 또다른 형태의 커뮤니티는 증가하게 된다. 단, 자신이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중요할 것이다. 미혼이든 기혼이든 비혼이든 어느 시점에는 분명 솔로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홀로’ 살아갈 필요는 없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관계망을 구축하며 지나치게 타인에게 의존적이지 않도록 하는 힘을 길러 초솔로사회에 대비하자는 것, 이것이 저자의 주요 메시지다.

  이러한 메시지를 만들기 위해 저자가 분석한 일본사회의 특성과 결혼규범에 관한 저자의 견해가 재미있다. 결혼하지 않은 이들을 일종의 실패에 가까운 자로 여기는 것, 결혼이 인생 최대의 성공이며 정상인 것처럼 여기며 미혼자들을 향해 간섭하는 행동들을 보고 있으면 ‘종교 강요’같다고.


결혼이란 건 어떤 의미에서 모종의 종교에 가까워졌다. 미혼자에게 “결혼하라”고 참견하는 게 종교에서 “신을 믿어라, 그러면 구원을 받을 것이다”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나뿐일까. 결혼을 권유하는 기혼자들은 ‘결혼교’ 선교사나 전도사라 할 수 있다.

 애초에 남이 결혼을 하든 말든 내버려두면 좋을 것을, 이런 결혼교도들은 가만히 내버려두지 못한다. 자신의 믿음만이 절대적으로 옳고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불쌍하니 구제해줘야 한다는 마음이 작동된다. 기혼 의원이 “부모의 심정으로 결혼하라고 했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런 속마음이 바로 느껴진다.


  초솔로사회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결혼하라’ ‘아이를 낳아라’가 대비책이 되는 시대는 정말로 생각해볼 여지가 많다. 통계를 통해 저자가 분석하듯 기혼자도 필연적으로 솔로가 되는 시간이 온다는 것을 그저 결혼하지 않음에 따른 ‘문제’로 보고 있으면 어떤 대안이 나올 수 있을까. 그렇다고 발빠르게 초솔로사회의 소비 마케팅 전략을 부각하는 저자의 견해도 감탄스럽진 않다. 기업체에서 솔로활동을 하는 남성 연구 프로젝트팀에서 광고·홍보 일을 한다고 하니 저자의 견해가 기승전 왜 소비로 흘렀는지를 알 수 있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행하고 있는 그것이 트렌드일 수 있겠지만 특정한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에 의해 ‘트렌드화 되어버린 삶’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초솔로사회에 자본주의의 마케팅에 끌려가지 않는 ‘솔로의 삶’을 위한 기술이 필요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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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인들 공평한가


 

 자본주의는 도덕과 윤리에 특별히 예의를 두지 않는다. 효율과 생산에 집착하고 불평등을 당연시 여긴다. 그래서 심화되는 불평등에 놀라지 않으며 반대편의 불평등을 향해 혀를 차거나 가끔 동정어린 시선을 보낼 뿐이다. 더 매서운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기도 한다. 효율성을 저해하는 모든 것에 불만이 가득 차 있으니까. 그래서 ‘불평등’이 문제라 목이 터져라 외쳐도 허공에 흩날릴 뿐이다.

  그래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 교수는 시장주의자들에 맞춰 그 ‘효율성’의 관점에서 불평등을 비판한다. 불평등을 이야기할 때 원인과 폐해에 집중하며 항상 윤리적 측면에서 옳지 않다고 부각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불평등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으로는 이성과 감성에 제대로 먹혀들지 않는 이유다.

  저자는, 불평등은 정치 시스템의 실패라고 주장한다. 불평등이 경제 시스템을 불안정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불평등이 시장경제의 활성화의 필요악이 아니라 반드시 해결해야 할 부분인 것이다. 불평등이 제대로 자리잡으면 정치·사회의 여타 제도들 역시 안정화될 것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불평등의 책임은 정부 정책에게 있는 것이다. 저자는 미국의 심각한 불평등과 그의 원인이 시장 왜곡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미국의 시장은 새로운 부를 창출하는 행위 대신에 다른 사람들에게서 부를 빼앗는 행위를 장려하는 방향으로 왜곡되어 있다.” 한국에서도 불평등의 해결은 항상 경제성장이 해답이라고 주장하지만, 경제성장도 제대로 된 적 없거니와 경제성장을 통해 이익을 보는 집단은 따로 있었고 불평등은 완화되지 않았다. 또한 불평등 완화로 늘 내밀었던 사회복지에 대한 투자도 안전을 위한 정책도 아무것도 나아진 것이 없었다. 또한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 대신에 분열만이 가득한 상황이 되었다. 특히나 가난한 사람은 늘, 그들 스스로가 게으르고 부족하다는 논리로 불평등의 결과를 개인에게 전가시킨다.


가난한 사람들보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많이 물리고 효과적인 사회 보호 시스템을 제공하는 내용의 누진적인 조세 정책 및 지출 정책은 불평등의 심화를 억제한다. 반대로, 국가의 자원을 부자들과 좋은 연줄을 가진 사람들에게 몰아주는 프로그램은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p121 


  중요한 것은 시장의 힘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을 정치 또한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는 익히 보아온 대로, 그 힘을 불평등을 완화시키는데 사용하지 않는다. 세계 금융위기에도 심각한 시장실패가 나타나는 상황에서도 항상 정부는, 정책을 “분배”에 집중하지 않았다. 오히려 특정 집단에 힘을 실어주는 법률로 정책으로 노동자들을 제어하는 방식으로 흐른다. 경제학적 논리로 “자본 수익률 격차가 노동 수익률 격차에 비해 아주 작게 나타나는” 데도 그렇다. 정부는 보다 효율적일 수 있는 정책들을 외면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사회복지정책이 효과가 있음에도 더 많은 비용이 소요되고 소수에게 혜택이 가는 기업지원 제도를 만든다. 세수를 확충하고 효율성을 증진하고 평등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세 제도를 설계할 수 있는데도 전혀 하고 있지 않다는 것. 그것이 문제라고 저자는 말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심각한 불평등은 정치 균형을 잃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균형을 잃은 채 균형을 잃은 경제를 관리하게 되면 치명적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 이것은 아주 위험하다.


 불평등은 대부분 과학 기술과 시장의 힘, 그리고 광범한 사회적 힘에 영향을 미치고 이를 견인하는 정부 정책에서 비롯한 결과다. 바로 여기서 희망과 절망이 교차한다. 이런 불평등이 불가피한 것이 아니며, 정책을 바꾸면 보다 효율적이고 보다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반면에 이런 정책들을 만들어 내는 정치 과정을 바꾸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절망에 빠진다. p186


    그래서,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가.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할까.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우리는 우리의 근본적인 가치관에 더욱 부합하는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 그것은 곧 더 많은 기회와 더 높은 국민 소득, 더 강건한 민주주의, 그리고 대다수 성원들에게 더 높은 삶의 질이 보장되는 사회다. 물론 그곳에 다다르기는 쉽지 않다. 우리를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가는 여러 시장의 힘들도 존재한다. 이런 시장의 힘들은 정치, 우리가 집단적으로 선택한 규정과 규제, 그리고 우리 사회 내 기관들이 행동하는 방식에 의해서 형성된다. p432


  전세계적으로 불평등으로 인해 야기되는 심각한 문제들을 보면서도 지금까지 해온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놀랍다. 과연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는 것인가 의문이 든다. 시장경제가 기회만 주면 결과의 불평등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논리를 펴지만, 그 기회가 공평하지 않다는 것, 그 기회에서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누구나 체감하고 있는 현실이다. 결국 어떤 시스템을 작동하는가는 그 사회가 가진 가치에 의존하게 된다. 그리고 누구의 지배논리가 어떤 가치를 우선하느냐에 좌우된다. 그래서 한없이 암울한 전망이다. 정치과정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으니까. 또 한편으로 정치과정을 바꾸는 것이 무엇이 어렵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정치는 ‘권력’을 잡기 전엔 눈치를 보고 고개를 숙이기는 하니까. 경제적 불평등이 민주주의를 흔든다. 경제적 불평등과 민주주의 모두를 잃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일을 원하지 않는다면, 내가 살고 싶은 사회시스템에 대해서 생각해 볼 일이다. 정부가 만드는 정책과 제도에 대해 따져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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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단골 빵집이 생긴다는 건


  동네에 단골 술집이 생긴다는 건 일상생활에는 재앙일지 몰라도,

기억에 대해서는 한없는 축복이다.


  권여선의 <사랑을 믿다>에 나오는 문장이다. 2008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이다. 2008년 이후로 술집에 갈 때면 항상 저 말이 떠올랐고 가끔은 소리없는 입말로 읊조렸다. 그리고 지금은 빵집에 갈 때마다 “동네에 단골 빵집이 생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생각한다.

  동네에 천연발효종을 사용한 빵집이 생겼다. 발을 멈추게 하는 빵냄새에, 호기심에, 작은 빵집 문을 두드려 한껏 고르고 난 뒤 발길이 그곳으로만 간다. 프랜차이즈 빵집을 전전하던 내게 실로 생애 처음으로 단골 빵집이 생겼다. 얼마 되지도 않아 빵집 영수증이 수두룩하게 쌓였다. 내가 이토록 빵을 좋아했던가 의아할 만큼 빵을 사들이는데, 가끔은 보상심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또한 이 빵집에서 와타나베 이타루의 시골 빵집을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다. 천연발표종 사용에 매주 쉬고 재료가 소진되면 영업하지 않는 방식. 뭐, 이것은 표면적인 것이기도 하니까. 이러한 마케팅은 다른 가게에서도 널리 하고 있으니 차별성이 덜하다 치고. 일단은 빵이 맛있다. 무엇보다 빵속에 들어간 다양한 재료들이 숨바꼭질 놀이 하지 않고 늘 단체로 튀어나온다. 밤, 호두, 크랜베리, 불루베리, 무화과라는 이름이 들어간 빵에 걸맞게 밀가루는 조연이 된다.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느끼는 “향”만 가득한 빵이 아니었다. ‘건강하고 맛있는 빵’이라는 생각이 들게끔, 아 이런 게 빵이구나 싶은 새로움을 안겨 주었다. 참, 빵이 뭐라고 이렇게 먹을 때마다 감탄해대다니! 

  와타나베 이타루는 이스트에 물든 빵이 아니라 천연균을 찾아 자연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건강하고 착한 빵을 만드는 빵집 주인이다. 그는 자신이 빵집을 운영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라는 독특한 제목으로 들려준다. 이 책 제목이 한참 떠돌며 베스트셀러에 등극할 때, 그냥 자본론에 관한 일본 학자의 해석인가보다 했었다. 그러나 이 책은 철저하게 자본론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강의였다.

  저자는 농부를 꿈꾸었고 유기농산물 도매회사에서 일을 했다. 하지만 그 회사에서 저자는 부정을 일삼는 회사의 모습에 질려 회사를 그만두었다. 가만 보면 저자 자신도 그렇지만 저자의 환경도 다른 이들과 확실히 달랐다. 그의 할아버지는 천연균을 연구하셨고 그의 아버지는 마르크스를 탐닉하신 분이니까. 그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저자가 하고픈 일을 하는데 힘이 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끊임없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그를 다지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어떻게, 무엇을 해서 먹고 살 것인가만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세상을 꿈꾸고 만들어 가는가를 생각하는 삶으로 말이다.

  삶에서 사회와 느끼는 괴리감을 적절히 끌어안고 삶의 철학을 잘 영글었고 그 바탕으로 이룬 것이 그의 빵집 <다루마리>다. 그는 혼자서 살아가는 이윤을 남기는 빵집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빵집을 운영하기로 했다.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방식, 보다 행복하게 살며 행복한 빵을 만들고 싶은 마음,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이야기는 그와 그의 아내가 함께 이루어가고 있다.

  그의 빵집 운영과 삶의 철학의 바탕이 된 것이 마르크스주의의 자본론이다. 빵집을 운영하는데 <자본론> 책을 들고 있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니 웃기다. 세상 어느 자영업자, 기업가가 <자본론>을 읽으며 경영방식을 세우겠는가. 그러나 그는 그렇게 했다. 자본주의의 경제와 경영 체계를 뒤집고 마르크스주의의 자본론을 깨치며 이윤을 남기지 않는 빵집을 만들었다. <자본론>이 이렇게 적절한 사례와 함께 이야기되니 동화책 같은 느낌도 들었다. 어렵다, 불온서적이다라는 마르크스의 책이 고운 때깔을 맛난 듯 이 책은 초등학생들도 부담없이 쉽게 읽고 이해될 것 같다.


자연계에서는 균의 활약을 통해 모든 물질이 흙으로 돌아가고, 살아 있는 온갖 것들의 균형은 이 '순환' 속에서 유지된다. 자연의 균형 속에서는 누군가가 독점하는 일 없이도, 누군가가 혹사당하지 않고도 생물이 각자의 생을 다한다. 부패가 생명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자연의 섭리를 경제활동에 적용시키면 어떻게 될까? 각자의 생을 다하기 위해 배경에 부패라는 개념이 있다고 한다면 부패하는 경제는 우리 각자의 삶을 온화하고 즐겁게 만들어주고, 인생을 빛나게 해주지 않을까? p13


  이 책 속에는 반복적으로 ‘부패’라는 단어가 나온다. 저자가 말하는 부패하지 않는 경제는 이윤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이윤이라는 목적을 위해 어그러진 노동시장을 만들지 않는 것. 억압과 착취가 난무하는 노동환경, 비리가 폭발하는 경영을 하지 않는 것.

  하지만 그가 허용하는 부패가 있다. 그는 자연에 존재하는 천연균을 이용해 빵을 만든다. 그것은 부패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균은 ‘부패’와 ‘발효’의 순환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이윤을 위해 사용되는 인공배양균 이스트가 빠른 속도로 많은 빵을 만들어낼지는 모르지만 결코 풍요로운 삶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이스트로 만든 빵이 가져다 줄 수 있는 행복은 한정적이다. 특정한 이에게로 집중된다. ‘부패하지 않는’ 빵, 그런 음식은 결국 이 자연을 조화롭게 유지시키는데 악영향을 미친다. 어쩌면 당장의 허기를 채워주고 취약한 취업환경에서 일자리를 제공해 줄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영양없는 먹거리와 일자리일 뿐, 인간의 존엄을 엎어치며 공존하는 삶을 밀쳐버리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돈을 쓰는 방식이야말로 사회를 만든다. 자리가 잡히고 균이 자라면 먹거리는 발효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소상인과 장인이 크면 경제도 발효할 것이다. 사람과 균과 작물의 생명이 넉넉하게 자라고 잠재능력이 충분히 발휘되는 경제. 그것이 시골빵집이 새롭게 구워낸 자본론이다. 빵을 굽는 우리는 시골 변방에서 일어나는 조용한 혁명의 태동을 오늘도 느끼는 중이다. p232


  동네 빵집에도 쿠폰을 발행해준다. 그렇다고 쿠폰을 채워 공짜빵 하나 더 먹으려고 줄기차게 이 빵집을 찾는 건 아니다. 프랜차이즈에서는 언제들 활용가능한 할인카드가 있으니까. 화학첨가물을 사용하지 않은 천연발효종과 유기농밀가루를 사용하는 빵집이라서, 그저 재료를 아끼지 않고 쏟아붓는 빵집이라서 아주 좋은 향이 난다. 난 이 집이 다루마리 빵집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다루마리 빵집처럼 경영하는 빵집이 있다면, 소비자로서 이 집 빵을 사먹는 일 또한 부패하지 않는 경제를 만들어가는 일에 힘을 얻는 일이라 생각하며 이 빵집엘 간다. 


와타나베 이타루,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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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든 벼룩이든 명성이 필요한 걸 


 코끼리와 벼룩 - 직장인들에게 어떤 미래가 있는가

 찰스 핸디 저, 이종인 옮김, 생각의나무


  <코끼리와 벼룩>은 서문과 맺음말 이외 총3부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기업을 코끼리로 벼룩을 코끼리에서 벗어나 혼자 힘으로 살아가는 피고용인으로 설정하고 있다. 저자는 코끼리의 삶에서 나와 벼룩의 삶으로 가는 여정을 자신의 삶을 통해 보여주며 고용문화와 같은 변화된 사회환경, 프리에이전트의 시대에 대해 설명한다. 저자는 결국 코끼리의 삶에서 벗어나 벼룩처럼 혼자 살아가야 한다는 핵심 메시지를 전하며 이러한 삶을 포트폴리오 인생이라고 말한다.

  1부는 포트폴리오 인생을 시작하기에 앞서 유년시절과 그 시절 자신이 받은 교육과 깨달음에 대해 설명한다. 인간의 생이란 과거와 뗄 수 없는 것이므로 그 시절의 경험이 밀의 삶과도 관계가 있다는 얘기다. 2부에서는 인터넷 시대의 기업 문화의 변화를 설명하며 달라지는 기업환경과 그 속에서의 개인의 상황과 역할에 대해 말하고 있다. 3부에서는 포트폴리오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방법을 일과 생활의 구획 짓기임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이 책은 저자 개인의 삶에 대한 회고록이자 미래에 대한 예언서이고 저자는 이 책 속에 자신의 기억과 편견을 뒤범벅하면서 아이디어와 사상이라고 할 것들을 독자들에게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훗날의 저서에서 아주 독창적이라고 생각했던 아이디어의 여러 가지 형태가 이미 그 책에 나와 있는 것을 보고서 깜짝 놀랐다. 하지만 나중에 그게 그리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쓴다면 자신의 견해를 급격하게 또 빈번하게 바꾼다는 것은 아주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과거의 아이디어를 여전히 다루지만 새로운 현실에 비추어 재해석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새로운 통찰, 새로운 관점, 새로운 경험을 나눠줄 수 있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p277


   ‘솔직히 털어놓고 말해서 이 책은 기억과 편견의 뒤범벅이다’라고 저자 자신이 말했다. 나 역시도 동감한다. 이 책은 도대체 무언가 뒤범벅이다. 깔끔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야기의 내용도 이제는 너무나 친숙해서 달달 외워 버릴 1인 기업가의 생활을 다루고 있다. 때문에 저자가 이 책을 낸 연도에 이 책을 읽었다면 저자의 포트폴리오인생에 대한 이야기들이 놀라웁게 여겨졌겠지만, 알고 읽는 입장에선 내용의 전개가 산만해서 아쉽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지루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저자도 이야기한 것처럼 일과 개인의 이야기가 섞여 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자신이 통찰, 예견하는 사회도 말하고 있다. 저자는 포트폴리오 인생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그 삶을 제안하면서 자신의 생활을 늘어놓는데, 어떤 사회에 대한 통찰보다도 오히려 아내의 부추김으로 인해 그 생활을 하게 된 것이 강조된다. 이것은 저자의 배움과 통찰로 바라보며 보다 전문가적인 입장에서 전하는 이야기로 여겨지기보다는 자신의 삶의 방향을 이끌어준 아내의 이야기를 전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도대체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수시로 들었다. 저자에게 이 인생을 결정하고 확신하고 이끌어 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오로지 ‘아내’의 말이다. 전문적인 방법이나 통찰을 기대한 나에게 오로지 ‘나의 아내는 나와 달리 이것을 이렇게 말했다’라는 메시아적으로 언급하는 이 내용을 나는 얼마나 참고 읽어야 하는가.

 코끼리와 벼룩으로 조직과 개인을 비유하여 이야기를 끌어간 것은 좋다고 본다. 하지만 그 코끼리와 벼룩의 삶에 대한 대비 역시도 명쾌하기보다는 왔다 갔다 정리가 되지 못한 모양으로 보였다. 무엇보다 저자는 이 삶에 대한 확신이 있는 것인가?

  과거의 나가 미래의 모습에 영향을 미친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는데 오히려 이 부분도 이야기의 흐름에 방해 요소가 되었다. 읽기 시작해서 얼마 안 있어, 뭐야, 이거 자서전이야?라는 생각이 들었고 앞서도 얘기했듯이 전체적으로 산만하고 정리되지 않은 느낌에 이 부분도 당연 힘을 쏟았기 때문이다.

  뭔가 핵심을 찔러 들어가는 식이 아니라 주변부를 맴맴 도는 듯한 이야기 전개가 시원스럽게 와 닿지 않았다는 것. 물론,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기에 흥미가 덜했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지금은 이미 1인 기업가, 프리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나고 있는 상황이기에 새롭지 않은 이야기로 호기심이 당기지 않았다는 측면도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13년 전의 상황에서 억지로 읽는 것처럼 이 책을 읽어나갈 수는 없었기에,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경제나 경영 분야의 책은, 시대의 흐름, 시간을 무시할 수 없는 거구나. 그 뿐만 아니어도 당대의 사회적인 분위기, 트렌드라는 것은 무시못할 요소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프리랜서 생활은 노출된 생활이다. 그것은 자기 신념을 필요로 한다. 비평 혹은 혹평의 형태로 다가오는 피드백으로부터도 배우려는 의욕이 있어야 한다. p319


  저자는 포트폴리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명성, 명성, 명성이라고 강조했다. 프리랜서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오로지 명성이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서 중요하다는 것을, 개인의 명성, 프로필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이런 형태의 자기 삶에 관한 이야기, 편하게 읽힌다는 장점은 물론 가지고 있지만, 딱히 차별성이 보이지 않는 형태에서 제일 중요한 차별성은 명성있는 ‘찰스 핸디’가 썼다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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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하면 사과보다 먼저 생각나는



  스티브 잡스

  월터 아이작슨 저,| 안진환 옮김, 민음사, 2011.


 이 책은 스티브 잡스의 공식 전기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 책이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던 성격 까칠한 스티브 잡스가 선택한 작가에게 자기의 인생 이야기를 털어놓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러니까 스티브 잡스가 말하는 이야기인 셈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이야기를 스티브 잡스의 생애를 스티브 잡스의 말로 전달하는 형태에 머물지 않고 객관적인 자료를 함께 하고 수많은 사람들과 인터뷰를 통해서 스티브가 말한 사건들과 상황들을 해석해낸다. 

  스티브 개인의 생애와 그 과정에서 형성된 삶의 철학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스티브 잡스가 이룩한 명성인 ‘애플사’에 관한 이야기가 병렬적으로 전개된다.

 아무래도 이 책은 ‘애플’사의 창업주 스티브 잡스에 관한 이야기이다 보니 애플이라는 회사의 이야기가 빠질 수가 없다. 그렇기에 애플의 창업과정 애플에서 개발한 다양한 상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서인지 그러한 회사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부분이 재미있었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이기도 했고 스티브의 ‘일’과 관련되지 않은 개인적인 부분에 관한 이야기를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래서 1장, 20장, 40장은 너무 안 맞는 말이지만 ‘인간적인’ 스티브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장이라서 흥미가 더 당겼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어느 정도 타인의 가십같은 삶에 이야기에 슬쩍 빠지게 되는 것에서 시작하여 그 부분이 스티브 잡스의 인생 전체를 조금 더 이해하라고 연결해주는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잡스의 자서전이 아니라 잡스의 전기이다. 월터 아이작슨은 스티브 잡스와 2년 동안 40여 차례에 걸친 인터뷰를 했고 어린 시절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또한 스티브의 이야기를 확인하기 위해 잡스와 관계된 100명이 넘은 이들을 인터뷰했다. 수많은 자료를 모으고 인터뷰를 한 기록들을 모아 저자의 평을 곁들인 것이 이 책이다. 스티브의 아내는 장점뿐 아니라 결점에 대해서 정직하게 써달라고 부탁했다는데, 그래서인지, 장점보다는 결점이 수두룩하게(?) 보이는 잡스의 일대기였다. 

  스티브 잡스에 관한 일대기는 많은 이들이 쓰고 싶은 소재였고 스티브 잡스는 탐나는 이야기를 갖춘 인물이었기에 많은 작가들이 스티브 잡스의 인생 역정을 조명한 책을 출간했다고 한다. 그때마다 스티브 잡스는 그의 성격대로 불쾌함을 표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직접 평소 친분이 있는 아이작슨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와 자신의 전기를 써달라고 했다 한다. 스티브 잡스가 바란 것이 월터 아이작슨에게 조명된 자기 삶이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게도 저자는 너무나 덤덤하게 이 전기를 쓴 것 같다.

  스티브 잡스의 생애를 너무나 잘 묘사한 것을 떠나 적절하게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의 생애와 애플의 창업과정의 연대가 주축이 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마치 스티브 자신이 이야기를 전하는 것처럼 세세한 내용들이 잘 포착되어 있다. 또한 그러한 일들이 스티브의 언어로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시각까지 전하고 있어 한 사건에 대한 여러 상황과 스티브의 ‘성격’에 관한 것까지를 좀 더 잘 알 수 있었다. 상당히 객관적이고 분석적으로 글을 썼다. 그러면서 교묘하게 저자의 의견을 드러내는 듯이 보인다. 이러한 형태로 글을 쓰고 이끌어 나가는 것은 저자의 상당하고 예리한 통찰력 덕분인 듯하다. 또한 저자가 문학을 전공하고 역사를 전공해서인지 그 두 가지의 흐름을 잘 버무린 듯하다. 문장 또한 담백하다.

  방대한 분량의 이야기가 버겁기는 했지만, 저자의 자료 조사와 적재 적소에 연결되는 다른 이들의 인터뷰는 참으로 훌륭했다. 그것은 스티브 잡스를 보다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끔 이끌어주는 힘이 되었다. 한편으로 중립을 유지하듯이 하며 저자의 시선이 놓이는 곳이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어떤 형태로든 저자는 이야기를 잘 풀어가는 사람이었고 대상을 무조건적으로 찬미하는 형태의 글쓰기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주관적일 수 있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와 자료와 사건들을 잘 버무려 놓았다. 간혹 특정한 인물에 대한 전기는 조금은 영웅적인 형태로 묘사되거나 성격이나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그것에 대한 일종의 변명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렇지 않아서 좋다. 스티브 잡스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좀더 속시원하게 스티브 잡스에 대해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도 쭈욱~이렇게 장편 대서사시처럼 쓴다며 선뜻 책을 읽을 마음이 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으로 보면 스티브 잡스의 새로운 상품이 출시되는 과정이 반복되고 있는데 그 과정마다 다양한 패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상품을 기획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에 관해 논의하는 과정, 그리고 출시되어 마케팅하는 과정, 성공인가 실패인가가 주가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늘 스티브는 자기 성격대로 이끌었다는 것이고 그래서 마찰이 있었다는 것이고, 스티브는 늘 지 성격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이야기고....반복적인 패턴의 이야기가 에피소드별로 반복되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것이 스티브 잡스의 생애였고 성격이었다는 것을 알지만, 한편으로는 그러한 것을 매번 같은 패턴으로 이야기하기에 자칫 지루한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 싶다.


  월터 아이작슨은 전문 전기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초당파적 교육 및 정책 연구기관의 CEO이며 타임지의 편집장과 CNN CEO를 역임했다. 이러한 그의 이력이 전기 작가를 하는데 분명 도움이 되었으리라 본다. 특히 그가 특정한 인물에 대한 자료를 모으는데 매우 유용했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전기만 해도 잡스와 관련된 인물 100여명을 인터뷰했는데 쉽게 쉽게(?) 저자를 만나줄 수 있는 것도 그런 것 아닐까. 물론 그가 이 세계에 영향력 있는 작가였고 무언가 믿을 만한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잡스의 전기를 통해 느낀 바 스티브는 매우 까다롭고 괴팍한 인물인데 자신의 이야기를 써줄 사람으로 월터 아이작슨을 택했으니 말이다.

  참 희한하게도 전기를 읽는데 스티브보다 월터 아이작슨에게 관심이 더 쏠린다. 이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이야기를 잘 전개했지? 인터뷰 대상에 몰입하면서도 감정적으로 지나치게 얽히지도 않은 채 어떻게 글을 정리할까. 그것이 전기 작가로서의 역량이겠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다른 전기 책도 읽어보고 싶어지게 만든다. 분명 그는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스스로의 이름도 나에게 알리고 있었다. 게다가 월터 아이작슨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다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이 책의 이야기는 분명 스티브에게서 나왔음에도 저자가 전하는 이야기는 저자의 목소리로 연결되기 마련이니, 내가 스티브를 바라보는 시선은 결국 저자의 시선과 같은 것일까? 상당한 관찰자적 시선과 제3의 시선으로 글을 써내려가려고 했던 것이 보인다. 글을 쓰는 과저에서 특히나 인터뷰를 하고 타인의 전기를 서술하는 과정에서의 전하는 이의 ‘감정전이’에 대한 부분을 깊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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