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 광기


육식이야기, 베르나르 키리니, 임호경 옮김, 문학동네, 2010.


   독특하다,라는 말에 걸맞은 베르나르 키리니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이 작가는 여러 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하는데 독특한 스타일의 작가에게 주는 ‘스틸’상을 수상했다는 말에 어울린다는 생각을 갖는다. 베르나르 키리니. 이 작가를 프랑스문학계에선 환상 문학계의 대표적 작가인 보르헤스, 포 등을 잇는 작가로 거론하는 모양이다. 열네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육식이야기」에는 여전히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작가의 스타일이 펼쳐진다.

  재밌다는 생각이 들기보다 일단, 기괴하군이라는 생각이 먼저 스쳐간다. 작품 전반의 분위기는 음산한 열대우림 속에 갇혀 있는 기분이랄까.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길 속에서 서늘했다가 놀랐다가 나가고 싶어 했다가 포근함을 느끼기도 했다가 무엇이 튀어나올지 몰라 움츠러들기도 했다가, 별별 생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의 상상력만큼이나 별개로 환상속으로 통과하게끔 하는 맛이 있다.

  베르나르 키리니의 단편은 현실에서 벌어질 개연성이 있긴 하겠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형태, 또는 등장인물의 절대 악과 같은 류의 이야기로 흘러가지 않는다. 당연 이상한 상황이 등장하는데 그 상황은 더 이상한 상황과 더 이상한 등장인물의 사고패턴으로 이어진다. 역시 적절한 말은 기괴하다, 정도일까. 유쾌하다는 말은 선뜻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구 머리야’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이런 류의 상상이란, 이런 류의 환상이란 마법이란 단어에서 느끼는 귀엽고 유쾌하고 재밌는 종류의 환상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생각해보니, 단편의 제목뿐만 아니라 단편집 전체의 이야기가 육식으로 가득찼다. 「육식이야기」는 거대 식물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굳이, 육식이야기라고 제목을 붙였는지 시간이 흐른 후에야 언뜻 알듯하다. 단편 「밀감」이 반복적으로 밀감과 오렌지를 꺼내들며 이야기해도 사그라지지 않는 강렬한 이미지, 피의 이미지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밀감」은 그 껍질을 벗기고 상큼하거나 시큼하거나 달달한 과즙을 상상할 법한 이야기가 아니다. 시작부터 오렌지 주스에 피를 섞어 마시는 남자가 등장한다. 이것은 현실이라도 궁금한데, 하물며 소설이니까 적극적으로 이 남자의 사연을 궁금해 하는 이가 어떤 사연인지 물어준다. 그리하여 남자는 온몸이 오렌지 껍질로 되어 있었다는 아리따운 여인과의 만남을 이야기해준다. 오렌지 껍질을 까먹듯 그 여인과의 오렌지향 가득한 사랑을 나누지만 환상적 사랑이 지나고 난 이후에 오렌지 껍질로 가득찬 여인을 직시하게 된다면 과연 어떤 생각이 들까.

  침몰한 배에서 유출된 기름이 잔뜩 유출되어 그 덩어리로 출렁이는 바다를 찬양하는 학자도 등장한다. 기름 범벅인 바다에 대한 탁월한 찬양을 하는 자의 사고 또한 식물적이기보다는 육식의 이미지에 가깝게 느껴진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유독 잘 청취하는 놀라운 청력의 소유자도 등장한다. 육신이 늘어나는 주교도 등장한다.    

 「육식 이야기」속 식물학자는 식충식물에 반해 모든 것을 제껴두고 식충식물 연구에만 매달린다. 연구용으로 채취해 온 거대 파리지옥과 늘상 전투를 벌이며 살아가는 이 식물학자의 점점 더해지는 광기를 보며 조수는 식물학자를 떠나고 몇 년 후 식물학자가 의문사 했음을 전한다. 하지만 드러내지 않았을 뿐 짐작가는 범인을 가까이에 두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읽다 보면 유출된 기름냄새가 온몸을 휘감은 듯 머리가 아프다. 조금 신선한 공기를 쐬지 않으면 같이 미쳐버릴 것만 같다. 이 단편집 속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처럼 광기에 빠지는 일은 욕망에 빠지는 일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떤 욕망은 내도록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이기도 하다 싶다. 욕망을 쫓는 일은 힘든 일이라는, 발목 잡힐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니, 완전한 욕망에 빠지는 일도 쉽지 않다. 온전히 욕망에 빠져 그 욕망을 과감하게 가감없이 발산하는 일은 더할 나위 없이 현실적인 선택인 것일까, 환상에 매몰되는 것일까. 문득, 욕망에 광기에 빠지는 일이라는 것은 신선한 공기를 쐬지 못하는 일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또한 욕망이란 옳지 않다는 이미지로 인한 생각일까. 어쨌든 육식이야기에서의 육식, 이 단편집에서의 육식이란 욕망을 욕망하는 이야기라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생각을 하며 작가의 수다스러운 이야기로부터 빠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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