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의 그리스인 이야기
- 신화가 된 영웅들의 모험과 변신, 그리고 사랑
구본형, 생각정원, 2013.
이 책은 ‘신화가 된 영웅들의 모험과 변신, 그리고 사랑’이라는 부제를 달고 전체 3부 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신화 속의 인간’이란 제목으로 고대 그리스의 문명의 시작과 전성기 문명 속의 인물들을 살펴보고 있고 2부는 ‘트로이 전쟁, 겨루는 자들의 함성’이라는 제목으로 트로이 전쟁 전장의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마지막 3부는 ‘혹독한 귀환’이란 제목으로 트로이 전쟁이 종결하고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귀환과 새로운 터전을 찾아가는 여정 속의 인물을 담고 있다.
1부에서는 미케네, 크레타, 아테네, 테베의 각 1, 2, 3, 4장으로 나뉘어 각 문명 속의 대표적인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2부는 아테네에서 트로이로 출항하는 여정과 격돌의 현장인 트로이의 각 5, 6장으로 나누었다. 3부는 7장 ‘아테네-운명의 굴레에서’, 8장 트로이→이타카-승리한 자의 고난‘, 9장 ’트로이→로마-위대한 로마의 탄생‘의 각 3장으로 구성되고 있다.
각 장에서는 특정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어떤 특정한 사건을 중심으로 거기에 얽힌 사람들을 풀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 인물이 겪는 사건들과 그들의 인간관계, 그들의 고뇌와 방황 등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1부에서는 미케네의 페르세우스, 크레타의 미노스 왕, 아테네의 테세우스, 테베의 오이디푸스를 중심으로 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구성했다. 2부에서는 전쟁에서의 대결을 중심으로 아가멤논, 아킬레우스, 오디세우스, 헥토르, 파리스 등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3부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한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고향 이타카로 향하면서 겪게 되는 고된 여정 속의 인물들과 전쟁에서 패한 후 떠돌다 로마를 건국하게 되는 아이네이아스를 중심으로 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서 중간중간 그 인물이 겪은 사건을 그림으로 그려낸 화가들의 명화를 삽입하거나 인물들의 조각상을 삽입하여 보다 생생한 느낌을 북돋우고 있다. 또한, 각 인물들을 이야기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한편의 시로서 읊고 있다. 이야기로서 인물의 삶을 들려주는 것에서 나아가 긴 여운을 남기게 하며 각 인물의 삶을 읊조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인물의 삶에 대해 보다 공감의 요소를 더하도록 작용하는 듯하다.
저자는 그리스인의 모험과 변신과 사랑을 다루고 있는데 이들의 이러한 이야기는 결코 신과의 관계를 떠나지 못한다. 그리스인의 이야기에서는 그리스신화의 신들의 이야기가 빠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웅들의 모험담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대표적인 신과 괴물들을 Tip으로 분류하여 각 장마다 적절하게 배치하고 있다. 이를 통해 신과 괴물들의 특징을 설명하고 인물들과 연계된 이야기를 하고 있어 보나 내용의 이해를 높이고 있다.
앞서도 이야기하였듯이 각 인물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 모두에게 시를 부여한 것은 이 책의 대표적인 특성이자 장점이라고 할 것이다. 각 인물의 삶을 전체적으로 정리하고 이들의 삶의 여정을 이야기하는 것은 신화를 다루는 저작물 속에서(물론 각자 나름의 시각에서 의미를 부여하겠지만) 사실 반복되는 패턴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들의 이야기를 하나의 시로 재창조해냄으로써 인물들에게 새로운 느낌을 부여한다. 이러한 작업은 인물들의 삶에 대한 온전한 이해와 공감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저자의 인물들에 대한 애정을 볼 수 있다. 또한, 각 인물들에서 섣부른 교훈이나 억지적인 감상을 설득조로 강요하지 않고 그가 이해한 바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 마다마다에게 전해질 감상은 배가되고 확장될 수 있으리라 본다.
그 외 전체적인 책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1부의 4장이야기다. 4장의 제목은 “가장 비참하고 장엄한 자의 탄생”이다. 나는 여기서 특히 안티고네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으로 남는다. 사실, 비극이 가지는 그 무게감에도 끌림이 있으니 가장 무거운 운명을 지닌 자의 이야기에서 시작하는 이 ‘비극’이 정녕 카타르시스를 경험케 한다.
비극에 대한 저자의 말을 빌어보자.
비극이란 주인공의 극적인 투쟁을 담고 있다. 투쟁을 통해 인간 본성이 지닌 힘을 확장하여 한계의 벽까지 밀어붙인다. 그러므로 모든 비극은 평범한 인간을 영웅으로 끌어올리는 투쟁과 모험을 담고 있다. 비극의 주인공들은 시속 300킬로미터로 질주하는 카레이서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궤도를 탄환처럼 달린다. 그리고 벽에 부딪혀 충돌하고 파멸한다. 그 벽 너머에는 인간 세상이 아닌 신의 영역이 존재한다.
신은 인간이 자신의 영역으로 넘어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리스 신들은 인간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그리스 비극의 위대함은 이제까지 듣도 보도 못한 용기와 믿음으로 스스로를 넘어섬으로써 인간의 한계를 저 멀리 밀어낸 사람들의 추락과 파멸을 다룬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지평은 바로 이런 영웅들의 부딪힘에 의해 알려진다. 어느 영웅이 넓혀놓은 경계는 다른 영웅이 나타남으로써 다시 조금 더 확장된다. 모든 영웅의 공통점은 그때까지 알려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척후병이라는 점이다. 그렇게 우리는 인간의 변방을 넓혀왔다. 끝까지 간 사람들, 그들이 영웅들이다. 그들은 원래 평범했으나 삶을 통해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어간다. 그러므로 물로는 비극을 쓸 수 없다. 비극은 눈물과 피로 쓰일 수밖에 없다(p185~186).
이 책의 각 인물이야기는 저자가 이야기해주듯 말하고 있다. 간혹 나오는 대사라도 이것은 인물의 독백으로 그저 뱉어내어질 뿐이다. 4장에서만큼 인물들의 대화가 자세히 묘사된 장은 없다. 심지어 인간의 극한 대립이 치닫는 전장을 묘사하는 2부에서조차도 전쟁하는 그들의 맞선 상황에서도 대화는 없다. 그러나 인간의 비극이 치닫는 이 장에서는 인물들 간의 극명한 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들의 대화가 없이 그저 이들의 이야기가 묘사되었다면 이 내용의 느낌은 얼마나 반감될까.
비극적 인물의 묘사, 인물들간의 대화 이것 외에 이 장이 나에게 다가오는 의미는 또 다른 데 있다. 바로 여성 ‘안티고네’이다. 부제의 신화가 된 ‘영웅’이란 말을 곱씹으며 책을 읽어가다 문득, 아니 여성은 어디있어? 왜 없어? 여성은 영웅거리의 이야기가 없나? 이런 생각이 든 것이다. 분명 그리스시대에도 여성은 존재하지만 이야기들 속에 여성에 대한 인상이 너무 없었던 차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특히나, 옛날 옛적이라면 더더욱 강조하는 ‘여성이미지’를 벗고서 나타난 안티고네의 이야기는 나를 매우 기쁘게 만들었다.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림없는 신념과 곧은 정신의 소유자. 어찌 보면 신화속에 나오는 이들과 같은 격렬한 감정의 풍랑이 없다고 할지 모르나, 그와 같은 사고를 갖기까지, 그 사고에 따라 행동하기까지 얼마나 무수한 고뇌의 풍랑을 겪었을 것인가. 그리스인이야기 속의 영웅들, 특히 남성들은 외부의 여러 사건들 속에서 모험하고 방랑하고 영웅으로 성장하고 그들의 행동적인 면이 강조되었다. 반면 안티고네는 사건을 바라보는 그의 사고 속에서 영웅으로 성장한다. 새로운 영웅의 모습을 발견한다.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라고 한다. 따라서 신화를 읽으면서 우리는 ‘신’이라 불리는 그들의 막강한 힘과 능력에 감탄하며 절대적인 그들의 위치에 경탄한다. 그러면서 절대적인 위치의 그들이 내보이는 저차원적인 분노와 질투에 흥분하고 그들의 놀음에 운명지어진 그리스인들의 슬프고 고된 운명을 보며 비탄해한다. 그렇게 신들은 우리에게 조롱의 대상이기도 하고 경탄의 대상이기도 했다. 하지만, 신들은 신이기에 알 수 없는 경외감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그러나, 그리스인이야기에서 주인공은 신이 아니다. 바로 인간을 다루고 있다. 신들이 그려놓은 모습으로의 ‘인간’이 아니라 자아를 가지고 성장하고 역사가 되고 있는 인간을 다루고 있다. 신이 창조한 인간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의 삶을 이뤄가는 그들의 삶에 신이 조연처럼 따른다. 그러므로 같은 인간으로서 바라보는 그들의 분노와 질투, 사랑이야기는 신들의 그것과는 다르게 다가온다. 이러한 점이, 이 그리스인들을 동일한 시각으로, 좀 더 내 이웃의 이야기로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가지게 하는 것 같다.
그러나 한편, 왜 이들인가?라는 질문을 해 본다. 신화가 된 영웅들의 모험과 변신, 그리고 사랑이라는 부제를 놓고 다루는 인물들 중 왜 이들을 다루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미 익숙하게 ‘영웅’으로 알려진 이들이 각 장의 중심점으로 나오면서 독립적인 이야기를 부여받지 못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한 또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같은 맥락에서, 전체적인 틀에서 보면 1부와 3부에 비해 2부에서 다루는 인물이 적게 나타난다. 2부에 중첩되는 인물들이 3부로 빠져 귀환의 여정에서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파트로클로스, 아이아스, 메넬라오스 등 트로이 전쟁의 인물들이 독립적으로 다루어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여성들의 삶은 영웅의 조력자로서 혹은 영웅을 괴롭히는 여인으로 등장한다. 영웅을 사랑하고 기다리다 배신당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그들에게 복수하는 삶이 주가 되고 있다. 각 장마다의 영웅 이야기 속에 스테레오타입으로 나타나는 모습이 아니라 안티고네와 같은 여성의 이야기를 보다 찾아내 이야기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각 장마다 신들의 이야기를 Tip으로 하여 인간들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신들의 특징들을 설명하고 있다. 이 신들의 이야기가 각 장에서 신이 등장하면 그에 맞추어 배열이 되면 좋을듯하다. 12신의 이야기를 먼저 배치하고 이후 신화 속 기괴한 괴물들, 동물들, 3대 마녀들, 신화에 등장하는 반인반수들, 신화 속 예언자들의 이야기를 각 장마다 나누어 나타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또한 각 장의 이야기 속에 다수의 신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주요하게 다뤄지는 신이 있는 경우에 Tip에서 그 신의 이야기를 배열하였으면 한다. 예를 들어 1장에서는 대표적으로 제우스와 포세이돈이 나타나므로 두 신을 다루고 헬레네 이야기 다음에 헤라와 아르테미스 신을 Tip으로 다루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