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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있는 자들의 나라


 

자크 아탈리 지음, 이재룡 옮김, 사월의 책, 2010.


 

 “이 이야기는 역사상 딱 한 번 있었던 일로서 기독교와 유대교와 이슬람교가 조화를 이루며 살았던 20년 동안의 시절에 관한 것이다. 때는 역사상 딱 한 번, 딱 한 곳에서 유일신을 믿는 세 개의 종교가 서로를 존중하고 찬양하며 서로에게서 자양분을 섭취하는 길을 택했다(p7.)”

 

 역사상 딱 한번, 딱 한곳 유일신을 믿는 세 개의 종교가 어우러졌던 곳은 12세기 스페인이다. 당시 스페인의 남부 안달루시아 코르도바는 이슬람교가 지배하고 있었지만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가 공존하던 평화의 땅이었다. 그러나 이슬람 근본주의자인 북아프리카 알모아데족이 스페인으로 침입하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개종이 요구되고 처형이 난무한 종교박해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상황을 피해 이븐 루시드와 모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절대적 영원에 대한 논고』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난다. 이 책은 신이 우주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우주는 이미 시간 전에 있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슬람교도인 이븐 루시드는 이슬람 제국의 왕의 의중에 따라 재상이 명령하는 대로 이 책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유대인 모세는 처형당한 외삼촌이 남긴 유언으로 이 책을 찾는 여정을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종교와 이성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이어지고 책을 찾는 여정 속에 목숨을 위협받기도 하고 살인 사건도 벌어진다. '깨어 있는 자들'이 등장하며 책을 찾지 말라는 위협과 찾는 일을 방해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책이 정말로 존재하는지 왜 그들에게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고민하는 두 사람은 스페인의 현자로서 끊임없는 질문에 부딪치고 사상을 피력한다.

 

여기에서 벌어지는 역사적 사건들은 모두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행동방식은 이 시대의 이념에 충실하다. 파란만장한 삶도 전부 실화이며, 그들이 한 말들도 실제 대화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특히 오늘날 서구에서 아베로에스라고 불리는 아부 알 왈리드 무하마드 이븐 루시드는 정말로 위대한 이슬람 철학자이며, 마이모니데스라고 불리는 모세 벤 마이문 역시 위대한 유대교 사상가이다. 소설에서처럼 이 두 사람은 스페인의 코르도바에서 살다가 1149년 그곳을 떠나 모로코로 들어갔다가 1165년에 다른 곳으로 떠났다. 역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이 시기의 행적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그렇듯이 이 위대한 이슬람 철학자와 유대교 사상가가 서로 만나 대화를 나눴을 공산이 매우 크다. p8

  

  자크 아탈리는 역사적인 인물과 그들의 행적을 추적하여 공통의 분모를 이끌어낸다. 여기에 허구적인 상상을 더해 이 글을 완성해냈다. 실존 인물들을 통해 재현해 낸 이 이야기는 소설적인 구성을 띠고 있지만 실제로는 철학서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자크 아탈리 자신이 ‘프랑스 최고의 석학’으로 불리며 정치, 경제, 인문, 예술 등에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만큼 이 책은 단순한 삶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인문학적인 내용을 소설이란 형식으로 풀고 있을 뿐이다.

  소설은 미스테리적이며 여행기 형태를 띠고 있다. 이러한 형식으로 자크 아탈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종교와 이성의 조화이다. 이야기 속에는 두 주인공뿐만 아니라 많은 현자들이 등장하고 이들은 종교와 이성에 대한 많은 대화, 담론들을 나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철학적인 논쟁이 가득하다. 이런 철학적인 담론을 이론적인 형태로 풀어냈다면 지루하거나 어렵거나 했을 터인데 미스테리 형식의 소설 속에서 강연으로, 대화로 풀어 가기에 조금 더 쉽게 느껴질 수 있는 듯하다. 또한 실제 주인공들의 이야기이므로 어디까지가 실제이고 허구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주인공의 삶에 대한 몰입을 더할 수 있다.

  매우 유명한 학자인 저자가 소설을 썼다기에 궁금했다. 어떤 내용인지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지. 소설책이라는데 두께가 제법 된다. 정말 소설일까. 과연 학자라는 사람이 쓸 수 있을 만한 책이다. 아리스토텔레스뿐만 아니라 철학자에 관한 책을 쓴 저자가 철학적 주제와 내용을 전하는데 소설 형식을 택했고 소설 속에서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한마디 한다. 


  "나쁜 소설만이 자전적이네. 좋은 소설은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데 쓰이지. 그리고 그 본성이란 허구 속에서만 찾을 수 있고."


  자크 아탈리는 좋은 소설을 쓴 것일까.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으니 좋은 소설이라 할 것이다. 지금도 끊이지 않는 종교전쟁, 종교가 매개가 된 전쟁을 보건대 ‘종교전쟁의 문제는 서로 싸운다는 것보다 힘의 과시’라는 말이 오늘날의 상황과도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책 속에서 던지는 세 가지 질문을 계속 되묻게 된다.

  세 개의 유일신교를 대립시키는 게 무엇인가? 무엇이 우주를 사라지게 할 수 있는가? 진리는 예언자가 아닌 사람에게도 현시될 수 있는가?

  이에 대해 진리의, 비밀의 책을 찾는 두 주인공이 각각의 생각을 말하고 있다. 종교와 신, 종교와 이성에 대해 제기될 수 있는 물음과 모순과 인간의 어리석음과 이기를 알 수 있는 물음이다. 종교가 인간의 삶을 영원케 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적으로 몰아갈 수 있음을, 종교적 갈등이 초래한 비극적인 역사의 한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논쟁들이 많이 제시되었다.

  마침 스페인 여행의 뒤라서 주인공들이 떠나는 순례의 여정을 온전히 상상이 아니라 직접 본 장소를 그리며 쫓아갈 수 있었던 것도 도움이 되었다. 스페인에 세 종교가 공존했던 그 시기처럼 반목하지 않은 종교에 대한 바램, 종교가 종교답기를, 종교인이 종교의 교리의 본질을 잘 실천하기를 실로 바라는 마음으로 책의 여정을 함께 했다.

 일단, 소설인데 미스테리한 구조와 여행기가 보태지면서 흥미를 높여 준다. 그런데 소설적 구성을 갖추고 있지만 지루한 감이 있다. 흥미있게 가독성있게 읽혀지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종교적인 내용들이 주를 이루기 때문인 것 같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이나 종교와 이성에 대한 물음과 질문들을 대화나 강연식으로 나타내고 있다. 또한 그 강연과 대답은 결국 같은 주제로 일관되어야 하기에 반복적인 패턴으로 나타난다. 철학적 개념과 사상을 대화식으로 풀어 좀더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다는 측면은 있다.

  ‘실화소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등에 사람들의 관심을 쏟듯이 현존한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하였기에 흥미를 배가시키는 부분이다. 다만 내가 그들을 잘 모를 뿐......그들의 인생을 재현하고 알려지지 않은 부분들에 상상을 가미하여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 부분도 흥미를 더할 수 있다. 단, 이러한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으로 소설을 선택했지만, 양념이 첨가되지 않은 담백한 느낌이다. 이 담백이 나쁘지 않게 느껴지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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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신이 각본을 쓴 코믹 대서사극이야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정서웅 옮김, 민음사, 2003.


   파우스트는 크게 1권과 2권으로 나뉜다. 이 두 권의 나눔은 내용에서 차이가 있다. 1권은 젊은 시절의 괴테가 2권은 노년의 괴테가 완성한 작품으로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던 시각만큼이나 차이가 있다.

   파우스트는 괴테의 창작 속의 인물이 아니라 전설 속의 인물이라 한다. 그러니까 16세기 살았다는 떠돌이 학자라 한다. 마술과 점성술을 가지고 신학과 의학에도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으로 범상치 않은 행동이 그를 전설 속의 인물로 만들었던 모양이다. 그런 이유로 파우스트는 다양한 예술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 되었고 여러 형태의 이야기로 전해졌다. 여기에 괴테도 동참한 것이다. 오래도록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듯 이 이야기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악마와 계약을 맺는 이야기다. 계약의 내용, 조건이 무엇이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괴테는 이 이야기를 1권은 헌사, 무대에서의 서연, 천상의 서곡, 비극의 1부로 구성하고 2부는 비극의 제2부로서 5막으로 구성하여 전개시키고 있다. 괴테식 파우스트를 이해하기 위한 이 버거움을 어떻게 할까.


이 희곡의 중요한 의도는 강렬한 인식에의 욕구를 지나고

용기 있게 자아를 성취해 나가는 르네상스식 인간상을 그려내는 것이었다.


  이 책은 상당한 분량의 작품해설을 삽입하고 있는데 주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래? 그렇군이라고 이해하면서도 처음에는 운문을 까닭없이 속독으로 읽었던 탓에 내용을 유리시켜버림으로 다시 정독하기를 반복했다. 상당히 사변적으로 느꼈다. 재미와 감탄도 아주 조금 했다. 아마도 지식이 풍부한 괴테였기에 수많은 학자들과 예술가들이 집합되어 그들의 특징을 잘 살린 한편의 파노라마를 풀어냈겠지. 그저, 괴테가 만든 향연 속에 아는 학자 이름이 나오면 반갑네 할 여력밖에 없었다. 어쨌든 충분히 내게 놀라움을 주었다. 그러다가, 아주 우습게도 요런 형태의 복잡하고 많은 이들이 떠들어대는 희곡은 중학교 시절 학예회 시간에 아주 우습거나 재밌는 연극을 만들 때 썼던 컨셉인데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주 희화화하기 위해 그때 내가 아는 인물들을 총동원하여 그들의 특징을 살려내어 극 속으로 끌어 들였다. 나는, 단순 재미였지만, 괴테는 그의 사상이 집약되어 있고 그의 인생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작품이니 진중하겠지. 그래서 그 진중이 무엇인지를 집중하고픈데, 잘못된 선입견이 코믹으로 읽으려한다.

  하지만 어떤 순간 마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적절하고 놀라운 대사들이 끊임없이 흥미롭게 하기도 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비트는 대사, 또한 그러면서도 영적으로 울리는 대사들. 여러 가지 다양한 면을 즐길 수 있었다. 

  파우스트는 한 사람이 쓴 것이 맞는지, 같은 내용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1부와 2부의 내용과 분위기가 달랐다. 거기에는 오랜 시간차가 있었다는 것을 알자 이해를 하면서도 오랜 시간 동안, 60년이라고 하던가. 같은 책을 붙들고 있었을 괴테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그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하니, 그가 죽기 전까지 꼭 붙들고 완성하고픈 책이었다고 하니.

 희곡이기에 장면과 막이 등장한다. 지문도 등장한다. 그러나 대사는 운문이다. 어떤 상황에서 정확한 움직임을 그려내기엔 조금 어려운 끊임없는 운문의 향연. 그 비유와 은유를 보다 보면 놀라운 문장들에 빠져 내용의 줄거리를 가끔 놓친다. 어라, 그 문장 속에 담긴 의미가 그것이었나. 운문이라고 빠르게 읽었던 탓에. 처음부터 줄거리와 의미를 파악하고 문장을 곱씹었다면 괜찮았으려나 싶다. 아무튼 나같은 독자를 제대로 낚으셨다.

  파우스트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의 거래, 자신의 영혼을 팔고 원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인간의 이야기로 줄거리가 요약된다. 그 과정 속에 사랑, 욕망, 속죄, 구원의 이야기가 녹아 있는데 처음과 끝을 보고 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그저 가련한 인간이었다. 신의 손에 놀아날 수밖에 없는.....파우스트가 백세에 자신의 청춘을 돌아보았을 때엔 화려한 젊은 시절의 환락보다 인생무상을 느끼고 도덕적 가치를 더 우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많은 이들이 나이들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면 인생의 그늘에 대해서는 후회를 하고 좀더 가치있는 삶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가. 신화속 등장인물과도 섞이고 과학자며 연금술 이야기들도 등장해 여하튼 재밌는 요소들이 많다. 그러나 종교적인 색채도 강하다. 영혼의 구원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게끔 만든다. 종교인과 비종교인의 시각은 얼마나 또 다르게 느껴질까.

  괴테의 시각에 대해 뭐라고 말을 하고 싶은데 시작하자면 정리되지 않은 채 많은 말들이 막 나올 듯하다. 그래도 그냥, 그의 생각과 나의 생각의 차이를 비교해보고 싶기는 하다. 파우스트의 이해를 좀더 하기 위해 러시아 영화 파우스트를 봤지만, 잤다. 영화를 본 시간이 11시가 넘어서라는 오로지 시간 설정을 잘못하고 영화를 봤다는 한탄을 해보지만 역시 이유는 한가지였을 것이다. 물론 괴테의 파우스트 내용이 그대로이기를 빌었지만, 역시 감독이 재해석한 파우스트였다. 그래도 뼈대는 같으니, 다시 도전해 보겠다. 아침 11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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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독일 최고의 책

    

저자 요한 페터 에커만 


  이 한권을 위해, 아니 엄밀히 말하면 출판사에서 2권으로 출간하였으니, 2권을 위해 전생애를 바친 요한 페터 에커만의 생애가 기억이 남는다. 그의 생애가 요즘으로 따지면 을의 인생, 열정페이를 강요받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 책의 제목이 『괴테와의 대화』임에도 저자가 괴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여전히 괴테만 기억하는 사람에게 꼭 이 책의 저자는 요한 페터 에커만이라고 외치고 싶다!


  니체가 “현존하는 독일 최고의 책”이라고 평한 『괴테와의 대화』는 민음사 판 전2권으로 되어 있다. 저자가 괴테와의 만남에서 있었던 대화를 기록한 것으로 1권에는 1부와 2부, 2권에는 3부가 연도별로 정리되어 있다. 그러나 2권에 연도가 중복되어 나타난다. 저자는 괴테 사후 약 10년 동안 천 번의 만남을 통해 괴테와 대화한 내용을 메모하여 기록한 것으로 1836년 1부와 2부를 출간하였다. 이후 인기가 좋아 1848년 괴테와의 대화를 기억하여 출간한 것이 제3부이므로 연도가 중복되어 나타나고 있다. 또한 3부는 저자 이외 오랜 동안 괴테와 교류한 제네바 출신의 자유로운 공화주의자 소레가 괴테와의 만남을 일기에 적은 내용이 첨부되어 있다. 소레가 그가 기록한 내용들을 연대순을 편입해 달라고 부탁했고 저자는 소레가 기록한 것을 보충하고 거기서 빠진 공백들을 채워 넣으며 3부를 완성하였다. 특히 소레의 내용을 상당히 활용한 부분은 구분하기 위하여 따로 표시하고 있는데 1824년에서 1829년에 이르는 부분, 1830년, 1831년, 1832년이 그러하다. 전체적인 내용이 괴테와의 대화를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다면 3부의 초기 년도에서는 사건을 나열한 듯한 인상을 받았는데 그것이 소레의 일기를 바탕으로 한 부분이었다.

  이 책은 괴테와 저자 사이의 대화 내용이 주가 된다. 그리고 괴테의 가족과 친구들, 괴테가 만난 예술가와 학자 등-나폴레옹, 헤겔, 실러, 베토벤 등-와 나눈 대화가 수록되어 있다. 이들 대화는 일상적인 대화를 넘어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것은 괴테 자신의 작품에 대한 내용, 세계 문학대가들에 대한 괴테의 생각과 해석, 정치에 대한 관점, 당대의 문학과 예술에 대한 관점, 종교에 관한 관점, 자연과학에 대한 관점, 삶의 지혜에 관한 생각 등 괴테의 삶과 철학이 담겨 있다.


  대화는 상호간에 주고받는 말이다. 대화에서는 화자와 청자의 역할이 나뉘며 담화의 내용에 따라 역할을 달리하게 된다. 『괴테와의 대화』는 괴테와 저자의 10년 동안의 만남 속에서 이루어진 대화가 주 내용을 이루고 있는데, 상호간의 대화가 무색할 만큼 괴테의 일방적인 언행들이 주를 이룬다. 괴테의 말에 대해 저자는 호응하거나 혼자 감탄하거나 하면서 괴테가 전하는 내용들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연도가 지날수록, 그러니까 세월이 지날수록 이러한 형태의 대화는 조금의 변화양상을 보인다. 괴테의 일방적인 말씀 전하기가 아니라 저자 또한 일정 부분 대화의 주도권을 가진다는 것이다. 괴테의 논리에 반박하며 자기 주장을 펼치며 의견을 피력하고 자신의 견해를 서술하기도 하는 것이다.

  같은 문학을 꿈꾸는 자로서 또한 시집을 낸 시인으로서 저자는 대문호 괴테에게 가려져 아무런 꽃을 피우지 못한 듯이 보였다. 니체가 최고의 작품이라 평했지만 저자에 대한 명성이나 문학적인 찬사가 아니라, 그저 ‘괴테’를 더욱 더 알 수 있는 연구로서 이 책이 세상에 기억되고 있다. 그렇기에 저자에 대한 안타까움과 서글픈 감정이 지속되었는데, 저자 자신이 괴테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있고 그 오랜 기간 동안 스스로도 괴테의 영향 아래서 정신적으로도 더욱 성숙하고 자신의 관점을 정립하게 된 듯하여 이것이 매우 뜻깊게 다가왔다.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문학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기에 괴테의 작품을 정리하는 일을 도우면서 그 자신의 관점과 문학적인 열성으로 괴테의 작품을 정리하고 새롭게 조언하는 내용을 보게 되는 것이 기쁘기 그지없었다. 그러니까, 저자 또한 시간의 흐름과 함께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에커만이 여행길에서 괴테에게 보내는 편지가 아닌가 한다. 그것은 진실로 에커만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갈망을 표출하며 자신과 마주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결과를 떠나 자신의 목소리를 괴테에게 전달했던 또 하나의 표현이었다. 그러니까 이 책 전반에 나타난 괴테의 지식과 혜안들에 놀라지만, 지극히 조심스럽고 경외감으로 표현된 에커만의 어조들을 보는 것이 은근히 기억에 머물게 된다. 이 책을 쓰게 된 내용, 그가 괴테와 만나기까지의 과정 등, 그 기록들 속에서 저자 에커만을 마주할 수 있어서 좋다.

 괴테의 말들은, 그의 수많은 작품 속에서도 우리가 알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작품을 통해서도 알지 못하는 많은 공백들을 저자가 10년 동안 대신 물어 줌으로써 괴테를 통해 그 작품들이 창작되고 그에 대한 여러 감흥들을 엿볼 수 있던 것 또한 좋은 부분이었다. 결국, 아닌 듯해도 이 작품은 괴테라는 넘을 수 없는 바위를 조금씩 조금씩 두들겨 대는 저자를 통해 사람들 가까이로 바위가 이끌려 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 책은 연도순으로 괴테와의 대화를 기록하고 있다. 처음부터 일기 형태로 기록되었기도 하였고 괴테와의 만남의 순간들에 대한 기록이기에 어찌 보면 연도순의 일기 형태가 가장 무난한 구성인 듯 보인다. 그리고 이 형태로 구성된 것은 당시의 이야기의 맥락에 따른 내용이해를 제고할 수 있다는 점이 주요하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이러한 연도별 기술에서 1부와 2부의 나뉨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서술 형태의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괴테와의 만남에서 극적인 사건 변화로 구분지은 것도 아니다. 대화의 주제에 따른 구분도 아니다. 단순히 연도상이 절반 정도를 나눈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부의 나뉨은 별 의미가 없다. 물론 3부는 1, 2부 후에 또한번 출간된 것이라 전체적으로 기록하지 못했던 날들에 대한 추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예외로 한다고 해도 역시, 거기에다가 3부로 덧붙이는 것은 좀 어색하다. 차라리 3부의 내용이 다른 서술 형태이라면, 주제를 달리한 묶음이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렇기에 3부의 내용들은 1부와 2부 사이에 연도와 날짜에 맞추어 각각 삽입한다면 전체적인 전개가 매끄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3부에서 참고한 소레의 기록에 대한 표기도 하면서 말이다.

  저자는 인쇄되지 않은 괴테의 편지와 일기 등을 연도별로 검토하면서 편집과 출판에 관한 사항들을 정리하며 다양한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그는 모든 편지들을 다 실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이유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개별적인 구절들은 선행하고 있는 구절들이나 나중에 나오는 구절들에 의해서 비로소 그 진정한 가치가 드러나고 확연하게 이해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를 출판하기에 무리가 따른다면 부분 부분 베껴 해당 연도별로 묶는 방법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수신인과 연도별 정리 방법 중에서 연도별을 선호하는데 그 이유는 같은 시간대에 활동했던 이들의 관계를 드러내고, 그 편지를 쓴 이들이 처한 상황과 일을 여러 측면에서 조명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그가『괴테와의 대화』에서 사용하고 있는 연도별 기록은 이러한 자기 의견을 적용한 책인 것이다.   

  하지만, 이 책 자체가 연도별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또 다른 형태의 구성을 제안해 본다. 바로 주제별로 대화의 내용을 분류하는 방안이다. 아마도 이것은 『괴테와의 대화』라는 제목에 부제를 달아야 할 지 모르지만 그 이야기가 나온 맥락의 이해를 떠나, 주제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려될 만하다. 특히 『괴테와의 대화』가 담고 있는 괴테의 무수한 생각들을 총합적으로 정리하여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유용하리라 본다. 여기에 에커만이 생각한 바 있는 정리 방식이 유용한 지지를 해준다.


      결국 우리는 다음과 같이 견해의 일치를 보았다. 예술과 관련된 모든 경구들은 예술에 관한 글을 모은 책에다가 자연과 관련된 글들은 모두 자연과학 편에, 그리고 윤리와 문학을 다룬 글들은 마찬가지로 또 그런 것들만을 모은 책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괴테와의 대화』1권, p725)

 

   이러한 형식을 고려한다면 다방면의 주제로 이야기가 이루어진 만큼 다양한 주제로 나눠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큰 카테고리 나뉜다면 다음과 같은 형태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문학, 철학, 자연과학, 정치학, 종교학

 둘째, 괴테의 문학과 자연과학에 대한 소고

 셋째, 고전론, 희극론, 배우론, 작가론, 시론, 정치론, 괴테의 작품비평


  특정한 주제어를 발췌하여 그에 따라 서술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을 선별하여 논의를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고전적인 것과 낭만적인 것

      개별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

      데몬적인 것과 오성

      작가의 생산성과 창조력

      이념과 소재

      정신과 자연과학

      인간 존재와 신


  이와 같은 내용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이를 중심으로 세부적인 내용들을 전개하면 핵심 내용들을 이해하는데 보다 유용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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