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셋 : 아름다움과 여성혐오 열다 페미니즘 총서 2
쉴라 제프리스 지음, 유혜담 옮김 / 열다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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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성


코르셋, 쉴라 제프리스, 열다북스, 2018.


  미용관습은 여성의 주체적인 행동인가. 저자 쉴라의 주장은 명확하다. “아니다.”

  미용관습이 여성 선택인가에 관해서는 페미니즘 내에서도 이견이 존재한다. 이것은 ‘미용관습’이 무엇인가에 관한 인식 차이에서 벌어진다. 미용관습은 화장, 하이힐, 다이어트, 제모, 로션, 미용영양제, 패션, 보톡스, 성형수술과 같이 여성의 ‘외모’를 성적/미적 대상으로 하는 행위들뿐만 아니라 ‘여성적’인 태도까지를 포함한다. ‘여성적’이지 않은 태도―화장과 제모를 하지 않는 등 용모를 꾸미지 않은―는 여성의 자기관리 능력이 없음을 입증하는 근거가 된다. 능력없고 프로페셔널하지 못하고 게으르고 성실하지 않은.

  쉴라는 ”여자에게 강요되는 ‘아름다움’이 “성별 구분에, 즉 성적 지배 계급인 남자와 피지배 계급인 여자를 쉽게 구별하는 데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본다. 미용관습은 순종―여자에게 성적으로 복무할 의지, 심지어 성적 복무를 위해 노력을 들일 의지가 있다는 뜻― 표시이며 ‘굴종적’이라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남성 지배 문화를 이끄는 문화적 관습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꼭 미용 관습을 통해 성적 차이를 만들어야 하는가? 남자들이 일상생활을 꾸려나가는 동안 ‘여자’를 보고 고추를 부풀리며 성적 만족을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남성 지배 사회에서 ‘여성성’은 피지배자 사회에서 일어나는 집단행동으로 “남자의 성적 흥분을 용이하게 하도록 여성성을 훈련받고 여성성을 수행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는다”. 이에 대해 디 그레이엄은 “여성성은 사회적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일컬었다.


여자는 남자와는 달리 여성성을 ‘선택’할 위치에 있지 않다. 여성성은 강요되는 것이며, 여자의 낮은 지위를 나타내는 표식이기도 하다. 여자들에게 여성성은 섹스 장난감이 아니라 몸과 감정, 인생까지도 규정하는 규칙이다.


  쉴라는 이러한 서구의 미용관습,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행하는 미용관습 역시도 ‘유해한’ 문화 관습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UN은 여성 성기 훼손(FGM), 여자에 대한 강제 음식 주입, 조혼, 남아 선호, 여야 영아 살해, 미성년 임신, 지참금 등 여성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폭력을 철폐하기 위한 유해 문화 관습을 지정하고 있는데 FGM은 서구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지만 중동과 아프리카의 FGM는 다르게 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어쩌면 서구에 ‘관습’을 만들어내는 ‘문화’가 있다는 개념 자체가 낯설게만 느껴져서일지 모르겠다. 보통 서구의 유해 관습은 소비자의 ‘선택’, 아니면 ‘과학’의 ‘의학’, 그것도 아니면 ‘패션’이 발생시키는 것이 아니라며 정당화된다. 관습이 아니라 시장의 법칙이라는 것이다. 문화는 비서구에만 존재하는 수구적인 무언가라면, 서구에는 그 대신 과학과 시장이 있다는 식이다.


  미용관습이 ‘선택인가?’에 관한 페미니즘의 시각이 나뉘는 지점이 여기이다. 선택이라 주장하는 근거는 화장과 제모하지 않기, 다이어트나 몸매 관리는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기에 선택이며 강요된 부분이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앞서 제시했듯 여성이 미용관습을 거부하면 “분노와 조롱을 부르며” “도덕 같은 성질을 띤다”는 점, 다이어트가 건강에 피해를 주고 죽음까지도 낳기도 한다는 점은 ‘강요’와 ‘사회적 압력’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 책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이것이다. 미용관습에 관한 시각에 서구중심주의, 국가간 권력 관계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 행해지는 관습에 관해―어느 정도 고유한 문화라고 인식하면서도― ‘미개하다’는 시선으로 보고 있다. 어째서 서구가 행하는 것은 ‘세련된’ 문화이고 ‘사업’이 되는가. 왜 흑인 여성에게 여성성은 “백인 여성처럼 되기”가 되어야 하는가. 왜 중국 전족 문화는 여성 억압하는 문화로 문제시되고 서구의 하이힐 문화는 그렇지 않은가. 어느 나라의 ‘문화’적 상황보다 자본이 개입된 ‘산업’이라는 명목에서 ‘여성성’은 더더욱 도구적이고 ‘상품’으로 위치하고 있지 않은가. 

  유해 미용 관습이 없어진 세계가 올 수 있을까. 쉴라는 미용관습의 유엔 유해 문화 관습 지정이 그 시작이 되리라 보는 듯하다. 미용관습에 적용될 ‘존엄성dignity’은 문화적 차이에 의해, 자본의 차이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인간 존재 자체의 존엄과 자유를 위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하여 여자가 얻게 될 육체적, 정신적 자유를 위해서라면 투쟁할 가치가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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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사이언스 클래식 4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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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에는 별이 있다


코스모스, 칼 세이건, 사이언스북스, 2004.


  지나치게 걱정이 앞섰던 걸까. 마치 물리학이나 고급 수학 교재처럼 생각했던 까닭에 코스모스를 들쳐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주를 이해하고자 하면 더 쉽고 가벼운 책으로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더 쉽고 가벼운 과학책을 보았던 건 아니지만…. 어느 순간부터 과학책을 읽고자 하는 강력한 열망이 생겼다. 코로나 19 상황이 가져온 긍정적 요인이다. 이해하지 못할 신천지 종교관과 행동에 대한 반발심은 과학과 사실이란 단어에 더 집중하게 했다. 우주와 인간에 대한 이해를 거짓과 망상이 아니라 사실과 증거로 내 사고체계의 중심을 잡고 싶은 까닭인지 과학적 사실에 대한 강력한 욕구가 마침내 코스모스를 읽게 했다. 그리고 알았다. 코스모스는 너무도 쉬운 책이라는 걸. 수학적 기호와 물리학 공식이 가득한 ‘교재’가 아니었다.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음만 활짝 열면 되는 거였다. 그러면 아름다운 문장과 이야기들이 마음을 사로잡아 우주로 이끈다. 시작부터 이 책을 읽고자 했던 마음에 꼭 들어맞는 문장이 등장했다.


오늘날 우리는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 강력하고 정교한 방법을 알고 있다. 그것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 과학을 통해 이해하는 것이 우리 자신을 낮추는 일이 된다거나 무엇인가의 권위에 도전‧반항하는 것이란 사고는 오래 전에도 있었지만 여전한 듯하다.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완벽히 이해하는 법을 터득했다. 그건 모두 ‘신의 뜻’이라 말하며 머리를 조아리면 되었다. 2,500년 전 이오니아에서 새로운 깨달음의 기운이 일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이 미신에 갇혀 세상을 보고 있을까. 많은 것들을 보고 들으며 현상을 발견하고 해석해 내면서 인간은 점차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에 부여된 체계적 질서를 알아가게 된다.


과학의 세계에서 새로운 생각이 인정을 받으려면 증거 제시라는 엄격한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벨리코프스키건의 가장 서글픈 면은 그 가설이 틀렸다거나 그가 이미 입증된 사실을 간과해서가 아니라, 자칭 과학자라는 몇몇 이들이 벨리코프스키의 작업을 억압하려 했던 데에 있다. 과학은 자유로운 탐구 정신에서 자생적으로 성장했으며 자유로운 탐구가 곧 과학의 목적이다. 어떤 가설이든 그것이 아무리 이상하더라도 그 가설이 지니는 장점을 잘 따져봐 주어야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생각을 억압하는 일은 종교나 정치에서는 흔히 있을지 모르겠지만, 진리를 추구하는 이들이 취할 태도는 결코 아니다.


  칼 세이건은 우주 탄생과 생명의 진화, 별과 행성, 항성에 관해 관찰과 탐험의 사례를 유려한 언어로 이야기해준다. 칼 세이건은 금성은 높은 압력과 맹렬한 더위, 맹독성 기체 등으로 지옥 낙원보다는 지옥에 가까운 현장이라고 이야기한다. 화성―지금도 여전히 많은 과학자들이 탐험하며 알고자 하는―엔 생명체가 존재하는가,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인가를 설명하며 보다 본질적인 것을 지적한다. 화성에 생명이 있다면 그대로 놔둬야 한다고. 그건 지구조차도 잘못 사용한 인간이 화성에 생명이 있을 시 화성을 어떻게 만들어갈 지에 대한 우려를 표한 것인데 실제 화성에 대한 탐사를 수식하는 단어가 ‘정복’이라는 점에서 이 점에 동의한다. 어떤 문명이 한 문명에 우위를 점하고 그에 대하여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칼 세이건은 단순히 과학적 사실과 현상만을 나열하지 않고 궁극적으로 인간이 우주를 알고 이해하려는 이유를 끝없이 주지시킨다.

  칼 세이건의 언어로 우주의 이야기로 읽는 과정은 여행기를 읽는 것처럼 흥미롭다. 인간이 별과 달과 행성에 가 닿기 위한 끝없는 도전 과정, 우주의 모든 별과 행성의 흔적은 학창 시절 교과서를 통해 배웠던 단편적 이해를 뛰어넘어 아름답게 보이고 가슴 벅찬 느낌을 준다.

  꽃 중에 코스모스를 좋아했는데 왜 코스모스인지 궁금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코스모스 사진을 보고서야 알았다. 코스모스는 가운데 통과 같이 생긴 꽃인 통상화와 꽃잎으로 알고 있는 설상화 두 가지 종류의 꽃이 합쳐진 꽃이라 한다. 이런 꽃을 두상화라고 한다는데 코스모스의 통상화를 잘 들여다보면 각각의 별모양을 한 꽃들이 한덩어리로 무리지어 있다. 코스모스 속의 코스모스. 아, 우주의 질서는 더할 나위 없이 신비롭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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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발자국 - 생각의 모험으로 지성의 숲으로 지도 밖의 세계로 이끄는 열두 번의 강의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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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발견

열두 발자국, 정재승, 2018.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호기심 못지않게 놀라운 재능 하나가 또 있습니다. 바로 ‘강한 호기심을 잠시 느꼈으나 이내 그것을 억누르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일상을 살아가는 놀라운 억제력’ 말입니다.


  내 인생의 첫 발자국이 어땠는지는 전혀 기억에 없다. 왼발이었는지, 오른발이었는지, 보폭은 얼마큼이었는지, 그곳이 어디였는지 모른다. 달에 남긴 닐 암스트롱의 발자국보다 환호했을 부모님은 기록대신 기억을 선택했고 그 기억은 이제 흐릿해졌다. 내가 기억해야 할 내 삶의 몇몇 발자국도 흐릿하다. 절절했고 중요했던 그 순간마다 나는 어떻게 판단하고 결정짓고 발자국을 옮겼는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이젠 어떤 선택을 하려는 시도를 하려는 일이 드물고 선택의 순간을 회피하려는 때가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서두의 이 문장이 얼마나 강하게 와 닿았는지 모른다. 그 놀라운 억제력을 여전히 발휘하고 있다. 그래서 변화가 없는 건가?!

  삶에서 특별히 기억나는 발자국의 순간은 망설임과 맞닿아 있다. 종종거리던 그 순간들은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때였고 그건 엄청난 에너지를 요하기도 했다. 어떤 결정을 위해 창의력을 발휘한 적 있었던가, 그런 여력이 있었는지, 그런 후에 벌어지는 결과를 후회없이 실망없이 수긍하였던가. 이 디테일을 기억해내지 않아도 선택하는 그 순간의 기본 작용을 이해한다면 난, 언제나 같은 패턴으로 움직였으리라. 이 책을 읽었다면 다르게 사고하고 행동했을까.

  이 책은 인간의 의사결정에 관한 뇌과학적 작용에 관해 이야기 한다. 창의적인 사람들의 뇌, 의사결정을 주저하고 미루는 이유, 요즘 상황에 딱 들어맞는 의문인 “왜 우리는 미신에 빠져드는가?”와 같은 질문을 통해서 유의미한 대안을 생각하게끔 한다. 우리가 얼마나 획일적인 패턴에 갇혀서 사고하고 있는가를 말이다. 그리고 그런 작용이 뇌가 기민하고 체계적으로 작동하기보다는 오류에 쉽게 빠지며 착각을 일으키는지도 말이다.

  인간행동에 작용하는 것이 지식과 감정의 콜라보라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저자를 통해 듣는 ‘뇌’의 작용은 흥미롭다. 익숙한 사례들이 펼쳐질 때마다 공통의 ‘문제’를 안고 있는 인간에게 친근함을 느끼게 된다.


중요한 메시지는 의사결정과정에서 ‘감정’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성에 비해 감정을 열등하다고 여기지만, 감정은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신속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결정을 내리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요. 감정이 만들어낸 선호와 우선순위는 의사결정을 할 때 매우 중요하지요. 그걸 섬세하게 파악하는 뇌 영역이 망가지면, 우리는 선택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피니어스 게이지-쇠파이프가 머리를 관통하여 두개골과 대뇌 전두엽 손상을 입은-의 행동 연구 결과는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뇌의 부분을 알려줌과 동시에 의사결정과정에서 ‘감정’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내 뇌의 어느 부분이 ‘나 지금 작용하고 있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겠지만 뇌가 기능하고 있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사라진다. 뇌의 기능에 대한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렇다. 감정이란 뇌의 작용인 건가. 뇌의 작용은 그 어떤 것도 가능하게 열린 막연한 원칙과 논리 같은 것으로만 느껴진다. 뇌과학 이야기의 많은 부분이 심리학에서 보는 이야기와 맞물린다. 인간 행동에 대한 ‘이해’는 꾸역꾸역 하게 되는데 문제인식을 실행으로 옮겨가는 일은 여전히, 먼 미래의 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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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한나 아렌트를 읽는가
리처드 J. 번스타인 지음, 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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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우리는 왜 한나 아렌트를 읽는가, 리처드 J. 번스타인. 2018.


이성적 진리의 반대는 무지와 오류이지만, 사실적 진리의 반대는 고의적 거짓말이다. 사실적 진리는 이성적 진리보다 훨씬 더 깨지기 쉽다. 사실이란 우연적인 것이고, 또 사실들이 참되거나 거짓이어야 할 아무런 필연성이 없으므로, 사실적 진리를 부정하거나 또는 고의적인 거짓말로 그것을 제거하는 것은 훨씬 쉬운 일이 된다. 사실적 진리가 어떤 사람의 기본적인 확신을 방해할 때는 엄청난 적대감을 맞닥뜨리게 된다. (…) 그녀는 조직적 거짓말, 이미지 메이킹, 기만 그리고 자기기만에는 한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으로는, 압도적인 권력에 직면했을 때 진리를 말하는 자는 무기력해 보이는데도, 체계적인 정치적 거짓이 붕괴하기 시작하는 지점은 결국 다가온다. 정치적 거짓말은 사실적 진리를 파괴할 수 있지만 그것을 결코 대체하지는 못한다.


  정치인들이 좀 없어졌으면 좋겠다.

  코로나 19 상황에 관한 시사프로에 나온 의사의 발언이다. 이 말을 들으며 정치인이 있어서 좋았다보다 미치겠다, 차라리 없어져라 생각했던 날들이 더 많았음을 생각했다. 현재 상황이 어떤지를 명확히 인식하고 대안을 마련하여야 할 정치인의 늘 한길로만 가는 발언-비상식적이고 무책임한 정치적 거짓말-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말이 아닌 것은 걸러야 하지만 ‘어떤 말’들은 마구잡이로 키우는 언론으로 인해 속시끄럽고 귀따가운 일은 여전하다.

  사실적 진리를 요즘 말로 팩트라고 얘기하면 될까. 이것을 하는 명백한 직업군이 존재함에도 ‘시민’이 사실적 진리를 찾아내고 그에 대한 해석까지 하는 일은 오래되었다. 명백하게 의도적인 사실적 오류가 난무할수록 시민은 스스로가 언론인이 되고 정치인이 되어 간다. 이것이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정치의 회복’, ‘정치 영역의 회복’일 것이다.


아렌트는 자신에게 항상 근본적이었던 것과 우리에게 근본적이어야 할 것─시민이 그들의 목소리가 공적으로 들려질 수 있도록 하고 그들의 정치적 삶을 날카롭게 벼리는 진정한 참여자가 되도록 하는 열망─을 표현했다. 그녀는 공적 자유가 살아 있는 현실이 되는 곳에서 혁명정신의 발견과 개념화를 시도했다.


  이 책이 출간된 당시에는 ‘난민’ 쪽으로 좀더 초점이 흐르는 것 같았다. 난민 증가 상황에서 아렌트가 지적하는 ‘난민’ 문제에 대한 시각이 난민문제로 격한 갈등이 부딪치는 사회에서 시사점을 주었다. 한나 아렌트의 저작과 그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아렌트 사상의 본질은 정치와 연관되어 있다. 정치적 행위의 결과. 


아렌트의 권력 개념(과 정치이해)에서 굉장히 놀라운 점은, 그것을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방식, 즉 한 개인이나 집단이 다른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over 지배하는 통제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권력은 수평적인 개념이다. 그것은 복수의 개인이 함께 행위하고 서로를 정치적으로 동등한 존재로 여길 때 나타나고 성장하는 것이다.


  정치가 무엇인가라는 원론적인 물음은 정치가 지향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에서 그 답이 이루어져야 한다. 정치란 특정인에게 주어지는 권력개념이 아니라는 아렌트의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고 중요하고 간과할 수 없는 개념이다. 정치가 ‘정치인’의 것이 아니라는 것, 정치인 중에는 사실적 진리를 왜곡하고 충분히 조작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그것이 정치행위로서 타당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꽤 오래 주창하고 실행해 오기도 했다.

 다만 왜 이렇게 사실적 진리를 왜곡하고 정치적 막말을 선동하는 정치집단에게 내 삶의 대리를 맡기는가, 의문이다. 내 삶이 정치에 의해 얼마나 영향을 받고 있는지를 모르지 않으면서 오래도록 정치는 엘리트‘님’이 하는 것으로 ‘그거나 저거나 다 똑같다’라는 식으로 생각해왔다면 아직도 정치는 빨갱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아렌트가 필요하다. 악의 평범성도 전체주의의 기원도 위에서 내려와 강제로 주입한 ‘의식’, 신화처럼 굳어 있는 세뇌당한 습성이 만들어낸 사유의 문제이니까.


오늘날 우리가 아렌트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아렌트가 우리 앞에 아직도 버티고 서 있는 위험들을 예민하게 잘 이해하면서 동시에 우리가 무관심하거나 냉소적이 되지 않도록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렌트는 우리의 정치적 운명을 책임지라고 촉구한다. 아렌트는 우리가 공동으로 행위할 능력이 있고, 새로운 것을 시작할 능력이 있으며, 자유를 지상의 현실로 만들기 위해 분투할 능력이 있다고 가르쳐주었다.


  병이 있으면 진단을 하고 치료를 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행위라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한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선거 때문에 일본 정부는 올림픽 때문에 이탈리아는 확진자 수가 증가하기 때문에 코로나 검사를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선거가 가까워옴에도 한국 정부는 적극적으로 코로나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코로나 19가 뚫리게 만든’ 한국 정부는 무능하고 탄핵되어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때때로 ‘이런 말’을 쏟아내는 정치인과 특정 집단의 말이 소위 ‘먹힌다’는 사실이 아찔하고 영원한 난제로 다가온다. ‘나 때문에’ 많은 사람의 생명을 건졌다는 31번 환자의 말까지는 한계일까. 악의 평범성에 반하는 사례인지 해당하는 사례인지 건지… 이러저러한 생각 속에 되묻게 된다. 아렌트의 말처럼 우리는 공동으로 행위할 능력이 있을까. 자유를 지상의 현실로 만들기 위해 분투할 능력이 있을까. 한나 아렌트 때문에-덕분에가 더 어울리지만-, 시민의 혁명정신과 정치 회복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한나 아렌트를 통해 그것을 읽어야 함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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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리 블라이의 세상을 바꾼 10일 넬리 블라이 시리즈
넬리 블라이 지음, 오수원 옮김 / 모던아카이브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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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이 말해준다

넬리 블라이의 세상을 바꾼 10일, 넬리 블라이, 2018.


  정신병원은 항상 음침한 느낌이 든다. 미학적인 설계와 쾌적한 설비를 갖추어 새로 건축했다고 해도 말이다. 정신병원은 어쩌다 무섭고 음침하고 문제가 많다는 이미지를 심어주었나. 수많은 다큐에서 실제로,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가상으로 접한 정신병원의 실상이 너무 생생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정신병원이 행하고 있는 다양한 불법적인 행태가 끊이지 않고 드러나고 있어서다. 정신병원 운영자의 탐욕이 만들어낸 결과는 정신병원 건물, 그 공간 자체를 공포의 공간으로 확정짓는다.

  2020년 봄을 향해 달려가는 시점, 감염병 확산으로 특정 병원의 정신병동에서 사망자가 증가하고 있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공간에 들어가 확인하고픈 심정이다. 지금 상황과는 많이 다른 110년 전 정신병동을 잠입 취재한 기자가 있다.  <뉴욕월드>지는 뉴욕의 정신병원에 들어가 환자 처우와 관리 방식을 취재해 보도해 달라 요청했고 그 요청을 수락한 기자는 넬리 블라이, 병원 잠입시 이름 넬리 브라운, 본명 엘리자베스 코크레인. 넬리 블라이는 “할 수 있으며 해보겠다고 했고, 실제 그렇게 했다.” 그건, “정신이상자들, 신이 만든 피조물 중 가장 무력한 사람들이 친절하고도 적절하게 진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픈 욕구”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는 넬리 블라이의 블랙웰스 섬의 정신병원 내부 취재기이다. 어떻게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어떤 일들을 겪었는가를 유머를 곁들여 이야기한다. 정신병원에 들어가려면 환자가 되어야 한다. 거짓 환자 행세를 하고 그 결과를 기다리는 넬리 블라이의 심정은 한마디로 말한다면, “정말 끔찍한 기분”이다. 왜냐면.


이렇게 잘생긴 청년 앞에서 정신이상자 연기를 해야 하다니! 정말 끔찍한 기분이었다. 젊은 여성이라면 내 말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넬리의 유머코드는 이야기 곳곳에서 발현된다. 심각한 상황에서 종종 나타난다. 넬리의 환자 ‘연기’는 완벽했는지 몰라도 의사들의 진단은 완벽하지 않았다. 넬리는 쉽게 정신병원에 갈 수 있었다. 하긴 블랙웰스 섬의 정신병원은 환자를 강제로 입원시키고 가혹행위로 악명이 높은 곳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의사들의 능력에 대한 신뢰는 전보다 훨씬 떨어졌고, 정신이상자를 가장하는 내 능력에 대한 확신은 전보다 더 높아졌다. 나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난폭한 행동을 보이지 않는 이상 그 어떤 의사도 정신이상 여부를 제대로 판별하지 못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넬리가 직접 겪고 보고 들은 정신병원의 실태는 끔찍했다. 기본적으로 의사와 간호사는 제대로 일하지 않으며 환자를 거칠게 다룬다. 입소자 중에는 단지 영어를 하지 못해서 들어오게 된 외국인과 남편 말에 따르지 않아서, 갈데없고 일자리가 없어서 수용된 여성도 있었다. 처우는 매우 열악했고 형편없는 식사는 당연했다. 형편없는 식사라고 하니 어떤 형태일지 상상이 가는데, 실제로 최근 코로나 19 사태로 코호트 격리된 병원의 의료진과 환자에게  청도군이 제공한 식사가 떠오른다.

 중국에서 귀국하여 정부가 제공한 식사와 매우, 매우 차이가 난다. 중앙정부와 지자체라는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이건 엄청난 문제다. 더구나 도시락까지 확인해야 하는 담당자의 말은 직무태만임은 물론이고 업체와의 어떤 유착이 있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 심각한 전염병 사태에 체력과 면역력을 위해서는 더욱 영양가 있는 식사가 제공되어야 하건만 소꿉장난 할 때나 만드는 허구 도시락도 이것보다 나을 듯 싶을 정도이다. 현재에도 이런 형태가 일어나고 있으니 110년 전의 실태는 얼마나 더 열악했을까.

  열흘간의 정신병원의 실태를 꼼꼼하게 관찰하고서 정신병원을 탈출해 실태를 고발한다. 전문가와 함께 병원을 조사하기 위해 방문했을 때 아마도 내부고발자가 있었던 듯 병원은 준비를 갖춰 조사단을 맞았다. 병원에 대한 처벌과 즉각적이고 보다 많은 변화를 이끌어 내지는 못했지만 넬리의 폭로 기사 덕분에 뉴욕시는 환자들을 위한 예산액을 100만 달러 더 책정했다.

  넬리의 잠입취재기에 나타나는 일들은 현재에도 일어나는 일이다. 권력과 유착해 조사를 어물쩡 넘기는 경우까지 참 닮아 있는 모습이다. 여성이 있어야 할 곳은 가정뿐이라는 어느 신문사 기사에 여성을 가두는 것은 국력 낭비라는 항의 편지를 쓴 넬리 블라이. 그곳 신문사 편집장은 반박 기사를 쓴 넬리의 재능을 알아보고 기자로 채용한다. 기레기가 아니라 발로 뛰는 기자로서 넬리 블라이는 성심을 다한다. 그렇게 취재한 정신병원 잠입취재기인 이 기록은 200쪽 정도의 작은 판형인데 분량이 아쉽다는 느낌을 준다. 10일간의 핵심이 담겨 있다고 할 수는 있지만 좀더 세세하고 정밀했으면 좋았겠다. 그곳에서 느꼈던 순간순간의 감정과 상황을 잘 느껴보고 싶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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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5 1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26 17:3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