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해 마지않는 우리 루시드폴님의 노래 중 '물이 되는 꿈'이라는 제목을 가진 노래가 있습니다. 지난 연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워낙 자주 들었기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그 노래를 듣는데, 노래 중간에 '내가 되는 꿈'이라는 가사가 나오자 마음이 참 새삼스럽게도 콩닥콩닥 신호를 보내는 겁니다. 아. 내가 되는 꿈이라니. 노래의 맥락을 생각해보면 돌이 되는 꿈, 흙이 되는 꿈, 산이 되는 꿈 다음에 나오는 '내가 되는 꿈'은 나로서의 내가 아닌, '강의 절친'이지만 강보다 좀더 작은 '졸졸졸 흐르는 내'가 되는 꿈일 것입니다. 하지만 뭐,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나에게는 이미 나로서의 내가 되는 꿈,이라는 의미로 이 가사가 가슴에 콕 박혀버렸는걸요. 이정도의 오독과 오용은 잘생기고 너그러우신 시대의 훈남 루시드폴님께서는 애교로 살짝 눈감아주실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제가 국민학교(그렇습니다. 국민학교 세대인 것이죠)에 다니던 시절에 "너는 뭐가 되고 싶으니?"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저는 제 자신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답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아마도 성격이 부드러우신 5학년 때의 선생님은 "장난 치지 말고, 잘 생각해보렴"이라 말했을테고, 성격이 거칠었던 4학년 때의 선생님이시라면, "이녀석! 똑바로 말하지 못해?" 하며 군밤을 한 대 먹였을지도 모를 일이죠. 다행인지 불행인지 영악했던 그 시절의 저는 변호사, 스튜어디스 등, 그리 간절하지 않았던, 하지만 그럴듯한 것들을 꿈이라는 이름으로 치환하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그 누구도 우리에게 나 자신이 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는 세상 속을 살고 있습니다. 그저 어렸을 때부터 끊임 없이 받아온 "뭐가 되고 싶니?" 라는 질문을 통해, 내가 되야 하는 것은 '어떤 사람'이 아닌, '무엇을 하는 사람'이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강요받아 왔을 뿐이죠. 심지어 돌잡이 때부터요. (여담이지만, 요즘의 돌잡이는 좀 더 직설적이 되었더군요. 얼마 전 보았던 돌잡이에는 '칫솔'이 있기에 저는 당연히 오복의 상징인 '건치'구나, 라고 생각을 했다가 웃음거리가 되었죠. 칫솔의 의미가 치과의사인 줄을 몰랐던 건 정녕 저뿐인가요?)

어쩌면 우리 사회에 혼재해 있는 많은 문제들은 사람들이 '나 자신'이 아닌, '그 무엇'으로 도구화된 채 살아가기 때문에 발생하게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진정으로 자신이 될 줄 모르는 사람은 진정으로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없을테니까요. 다른 사람이 될 수 없다면 타인의 입장에 설 수도, 타인의 마음에 공감할 수도, 타인의 아픔에 함께 눈물 흘릴 수도 없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불의'라 이름할 수 있는 것들의 대부분은 이렇게 '내가 되는 것'을 한 번도 꿈꿔보지 못한 자들, 혹은 그 꿈을 일치감치 포기해 버린 자들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들은 대통령이 되고 싶었고, 장관이 되고 싶었고, 국회의원이 되고 싶었고, 꿈이라는 이름으로 그것들을 이루었을지언정, 진정 자기 자신이 되지는 못한 자들입니다. 어쩌면 꿈이라는 아름다운 말이 인생의 성공을 위한 도구가 되어버린 순간부터, 우리는 이런 세상을 예감했어야 했을런지도 모릅니다. 교회에서는 어떤가요? 비전이라는 아름다운 단어를,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사회적 성공의 기회로 여기는 우를 범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지 않은가요? 

저는 평범한 직장에 다니는 4년차 직장인입니다. 아마 객관화된 잣대로 바라본다면, 거대한 사회 속에서 도구화된 그 무엇으로 4년째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겠죠. 다행히 대학 때부터 흥미를 가지고 있던 일을 밥벌이의 수단으로 삼고 있고, 그 일이 때로 재미있지만, 밥벌이의 수단이 된 이후부터는 매우 지난한 일상이 되어버렸으며, 그럼에도 이것을 훌훌 떨쳐버리고 좀 더 의미있는데 나 자신을 내던지지 못한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제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작게 느껴지죠. 하지만 '무엇을 하고 있는 나'가 아닌, '나로서 살아가는 나'를 꿈꾸고 있기에, 스스로를 규정하지도, 제한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바랄 것이 있다면, 내일은 오늘보다 좀 더 나다운 내가 되어 있는 것, 그뿐입니다. 

'나름'에서 처음으로 필진 제안을 받았을 때, 사실 조금 고민을 했습니다. 나는 여기에 글을 쓰고 있는 분들처럼 어떤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아니고, 그저 어설프게 여기저기에 조금씩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공연히 하나의 주제를 맡았다가는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격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쓸 줄 아는 글이 일기와 반성문 밖에 없는데 어떻게 하지요?"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텍스트를 접할 때 자기중심적 오독과 오용을 남발하는 저는 (당장 '내가 되는 꿈'을 저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오용하는 것만 봐도 그렇지요) 책을 읽고 글을 써도 반성문이 되고, 영화를 보고 글을 써도 반성문이 되고, 연극을 보고 글을 써도 반성문이 되니, 이건 뭐, 어떤 전문성이라고는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는 사람이거든요. 이런 제게 흔쾌히 '그럼 일기를 쓰면 되지'라고 말해주신 '나름'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다행히, 저는 제 자신에 대해서는 여러분들보다 조금 더 알고 있으니, 제 자신의 삶에 놓여 있는 고민과 생각들이, 여러분 삶에 놓여 있는 고민과 생각들과 어떻게 어우러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 항상 고민하는 '일기를 쓰는 아가씨'가 되겠습니다. 물론 앞으로 무슨 글을 써야할지에 대해서는 무계획 상태입니다. 왜냐하면 이건 일기니까요. 다만 바라는 게 있다면, 일기를 쓰는 아줌마가 될 때까지, 많은 것들을 나누고, 공감하며 함께 이 곳을 멋진 장소로 만들어 나갔으면 합니다. 

혹시 저 쪽 한 구석에서 마우스를 내리며 여기까지 읽으며 고개를 끄덕끄덕해주신 당신이 있다면, 정말 고맙습니다. 그 순간 이 글은 당신을 위한 것이 되니까요. 하지만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글은 제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제가 루시드폴만큼이나 좋아하는 김연수님은 (아, 부디 루시드폴과 김연수 중 누가 더 좋으냐는 어려운 질문만은 제게 하지 말아 주세요) 그의 책 '청춘의 문장들'에서 '키친 테이블 노블'이라는 말을 소개하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오만한 반 다인이나 똑똑한 에코와 톨킨을 제외하면 누군가 어느 날 갑자기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고 한쪽 구석에 앉아 글을 써내려가는 장면을 상상할 때 어떤 애잔함 같은 것을 차마 떨칠 수가 없다. 누군가 그런 소설을 가리켜 키친 테이블 노블이라고 말했다. 식탁에 앉아서 쓰는 소설이라는 뜻인데, 전문적인 소설가가 아니라 일반인의 처지에서 쓴 소설이 크게 인정받았을 때 붙이는 이름인 듯 하다. 

키친 테이블 노블이라는 게 있다면 세상의 모든 키친테이블 노블은 애잔하기 그지없다. 어떤 경우에도 그 소설은 전적으로 자신을 위해 씌어지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스탠드를 밝히고 노트를 꺼내 뭔가를 한없이 긁적여 나간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직장에서 돌아와 뭔가를 한없이 긁적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지만 긁적이는 동안 자기 자신이 치유받는다. 그들의 작품에 열광한 수많은 독자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키친 테이블 노블이 실제로 하는 일은 그 글을 쓰는 사람을 치유하는 일이다. 

 
   

물론 저는 소설을 쓰지 못하기 때문에 '노블'이라는 단어를 쓸 수도, 부엌에서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기에 '키친 테이블'이라는 말을 쓸 수도 없지만, 애잔하게도 끊임없이 그 무언가를 적어내려가지 않는다면 견디기 어려운 종류의 인간이니, 제가 쓰는 이 일기는 키친을 룸으로, 테이블을 베드로(그렇습니다, 저는 늘 침대에서 글을 쓴답니다 -_-) 바꾼 룸베드 다이어리 정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부디 저의 빈약한 어법에는 지그시 눈을 감아주세요) 그리고 제 다이어리를 좋아해 주실 수많은 독자들에게는 정말 죄송한 일이지만, 이 다이어리가 하는 일은 아마 제 자신을 치유하는 일일 것입니다. 제게 이 글을 쓰는 일은 좀 더 내가 나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끊임 없이 자신을 다그치고, 격려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저는 제 글을 좋아해 주시고, 공감해주시게 될 당신을 진정으로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린 적어도 비슷한 색깔의 영혼을 지닌 사람일테니까요. 그런 당신과 함께할 시간을 저 역시 기대해봅니다. 

(첫 인사여서 존댓말로 글을 썼습니다.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는 글들은 좀 더 편한 어투를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이건 저의 일기니까요 ^-^)


글쓴이 : 웬디


누가 그랬지, 누구나 삶의 시작은 작다고.
그렇게, 소리없는 작은 시작의 첫발을 내딛어본다. 이 첫발이 앞으로 어디로 어떻게 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기뻐하며, 고마워하며, 감격하며. 그렇게. 시작. ^-^ 




 

아까는, 알라딘 이미지 업로드 쪽에 오류가 있었는지 안되기에.  이제서야 주소 공개.  
아직 창간준비호라 많이 미흡합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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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 2009-02-18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번에 얘기했던 웹진의 첫글인 모양이구나~
웹진 이름도 '나름' 의미가 있고 그 속의 웬디 글도 참 좋다~^^*
룸베드 일기, 기대하겠어~ 근데 웹진 주소는?
이 글 읽으니까 '꿈이 있는 자유'가 듣고 싶어진다...

웽스북스 2009-02-19 01:51   좋아요 0 | URL
네 언니 첫글이에요. 꿈이있는 자유라니. 아 영광이에요. ㅋ

다락방 2009-02-18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웬디양님. 웹진 주소는요? 무작정 검색창에 '나름' 쳤더니 아무것도 안뜨더라구요.

웽스북스 2009-02-19 01:51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이미지 업로드해놓았어요. ^-^

프레이야 2009-02-18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름' 다이어리 2호,3호 계속 기대되어요.
1호 출범을 축하드려요, 웬디양님.^^

웽스북스 2009-02-19 01:51   좋아요 0 | URL
언젠가는 혜경님만큼 삶이 묻어나는 글을 조곤조곤 쓰게되길 ^-^

마노아 2009-02-19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멋진 일을 시작하셨군요. 주소를 어디에 공개하신 거예요? 못 찾고 있어요ㅠ.ㅠ
2호, 3호 계속 기대하겠습니다. 웬디님 근사해요!

웽스북스 2009-02-19 01:52   좋아요 0 | URL
올려놓은 웹자보 이미지 안에 들어있어요 ㅋ

레와 2009-02-19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 화이팅입니다! ^^*
으쌰으쌰~

웽스북스 2009-02-21 12:11   좋아요 0 | URL
으쌰으쌰. 감사합니다.

민정 2009-02-19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와 멋진걸~
앞으로도 화이팅~~!

웽스북스 2009-02-21 12:11   좋아요 0 | URL
으헤헤헤 언니. 고마워요.

순오기 2009-02-22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나름' 멋있어요~ 웬디님 글도 공감하고요.
즐기면서 하는 웬디의 나름~ 기대합니다!

웽스북스 2009-02-22 14:59   좋아요 0 | URL
고마워요 순오기님. 앞으로도 좀 더 열심히 해야할텐데 말이죵 ㅋ
 



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 의심이었다,라는 말로 리뷰를 쓰려다가 망설인다. 너가 그렇게 많이 고민하고, 의심하고, 사유했다고 진정 자신하니? 라는 의심이 스믈스믈 몰려오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러고보니 지금까지 네가 너를 키운 팔할이라고 한 게 도대체 몇개니? 다 기억은 하니? (못한다) 팔할이 80%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 거니? 라는 내면의 양심적 자각(ㅋ)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이렇게 수정해본다. 나는 어쨌든 끊임없이 의심하는 인간이고, 의심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과는 조금 많이 다른 모습의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정도로. 음. 뭐야. 쓰고보니 이 말이 더 진정성이 있는 것 같잖아? ㅋ   

영화 시작 부분에 신부님의 설교 중 이런 말이 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으나) 우리가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의심이라는 것을 하게 되는 순간이 있고, 우리는 스스로가 그 순간 고립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순간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다고. (아. 빈약한 기억력 ㅋ) 이런 설교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수녀는 (사실 의심만큼 기독교에서 오랜 세월동안 금기시되어 온 것이 또 뭐가 있단 말인가 - 아, 많구나) 이것 외에도 신부에 대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많고, 그녀의 의심의 배경은 사실 의심의 단초를 제공해준 그 '작은 사건'이 아닌, 이러한 것들로부터 시작된다. 스스로 이교도적이라 여기는 꼬마 눈사람(눈사람이 모자를 쓰며 생명을 갖는다고)이라는 노래를 좋아하는 것이나 볼펜을 쓰고, 설탕을 세 개나 넣어 먹는 행위로 대표되는, 자신과는 다른 신앙의 모습들. 하지만, 그녀 역시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신부가 설교했던 것과 같은 이유로 오열하게 된다. 모든 사람이 극찬하듯, 이 부분을 포함한 여러 부분에서 메릴 스트립의 연기는 정말 압권이다. 

우리가 믿는 것들은 무엇으로부터 오는가. 이 세상에서의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오로지 천국소망 외쳐대는 기독교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지옥행이 아닌, 실은 자기 자신이 지켜온 삶의 기반인 신앙이 무너지는 것, 그 자체는 아닐까. 그러고보면 이것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나 역시, 좀 다른 기반을 가지고 있다 말하지지만, 어느 순간 이것이 무너져야 하는 계기가 온다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해, 자신과 다른 것을 외쳐대는 상대가 틀렸다고 믿어야만 견딜 수 있는 알로이시스 수녀와 나는 전혀 다른 신앙의 색깔을 가지고 있지만 어쩌면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렇게 쓰는 지금조차도 이런 것들을 인정하는 것이 매우 어렵지만 말이다. 그러니, 자기 자신을 의심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어렵고도 중대한 일인가. 특히나 그것이 평생을 지녀온 신념이라면 말이다.

이 영화는 인간이 심리가 가진 이런 딜레마를 여러 측면에서 매우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단순히 누가 맞고 틀리다의 문제는 중요치 않다. 다만 그 확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의 정체는 무엇인지, 그 의심은 무엇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인지에 대해 끊임 없이 의문을 제기한다. 때로는 두려움이, 때로는 수습할 수 없는 상황이, 때로는 일관성에의 욕망이, 때로는 안정적인 삶에의 욕구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정말 재밌는 건, 이 영화가 영화속에서 논쟁이 되는 것들에 대해 명쾌한 결론을 내주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더 재밌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만의 결론을 이미 다 지어버리고 극장을 나왔다는 것. 돌아오는 길 정인씨에게, 내가 지었던 결론에 의거해 '나도 저런 신부를 좀 만나보고 싶다'라고 이야기했더니 매우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는 것. 아. 우리는 서로 다른 프레임으로 영화를 봤구나. 이런 영화를 보면서 나는 또 철저히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신념을 합리화하고 있었구나. 하하. 이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또 내가 해석하는 게 맞다고, 계속 이러고 있는 징글징글한 사람이구나. 하지만 이런 자신을 발견하는 일 또한 흥미롭지 아니한가. 이런 내 모습은, 지금 내게 이게 매우 중요한 문제임을 반증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니, 이 영화를 여러 사람들과 함께 보고 자기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나눌 기회가 있다면, 매우 재미있는 작업이 될 것 같다. 

일단 올해 봤던 영화 중에는 단연 최고인데, 지금이 아직 2월인지라 이 말에 가치를 더해주지 못해 아쉽다. (신선생님께서는 이미 2월에 2009년 최고의 영화를 정해버리셨다. 하하하.) 가능하면 한 번 더 볼 생각인데, 그건 좀 다른 느낌으로, 다른 관점으로 생각하면서 보고 싶기 때문이다. 2월의 필관람 영화 리스트도 제대로 못보고 있으면서 항상 욕심만 앞선다. 나 막 괜히 22일날 아카데미 수상 결과도 기다려지고 그런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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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02-17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는 왠지 초반부터 괜찮은 영화들이 몰려오더군요.
워낭소리, 체인질링, 다우트, 벤자민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레볼루셔너리 로드,그랜토리노, 프로스트VS닉슨, 개봉할지 않할지는 모르지만 빅키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 더 리더, 더 레슬러,왓치맨까지...^^ 아 사랑후에 남겨진 것들도 있군요.

웽스북스 2009-02-17 01:38   좋아요 0 | URL
그니까요. 리스트 적어놓고 허덕 허덕하고 있어요. 레볼루셔너리로드는... 음... 레오나르도디카프리오를 보고 있을 자신이 없긴 하지만 말이죠. 으흑. 그리고 왓치맨은 개봉해요. 예고보면서 뭥미했는데, 괜찮은 영화인가보네요. 노란 배경에 까만글씨가 좀 쩔어요 ㅋㅋ

Mephistopheles 2009-02-17 01:44   좋아요 0 | URL
원작이 꽤 유명한 그래픽 노블이랍죠. 뭐랄까 엄청난 힘과 권력을 가진 슈퍼히어로들이 우리가 익히 아는 지구와 인류의 평화에 대해 파쇼적인 생각을 갖는다면....가정하에 진행되는 이야기랍죠..^^

무해한모리군 2009-02-17 09:02   좋아요 0 | URL
왓치맨 나오면 꼭 봐야지 하고 있어요.

웽스북스 2009-02-17 12:46   좋아요 0 | URL
아하아하. 아침에 다이어리에 결국 적어놨어요. 크크.
도무지 이런 정보들은 다 어디서 얻으시는지 말이죠 ㅋㅋㅋㅋㅋ

(이럴 때 알라딘 너무 좋아 ^-^)

프레이야 2009-02-17 0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도 봐야하고.. 요새 보고픈 영화들 줄지어 있는데 마음은 바쁘고..
팔할이바람,에서 따와서 팔할이 두루 많이 쓰이죠.ㅎㅎ
다우트, 인간심리의 딜레마를 여러층에서 보여준다는 글귀가 쏙 맘에 당겨요.

웽스북스 2009-02-17 12:46   좋아요 0 | URL
그죠. 혜경님. 저도 그래요.
팔할이 바람, 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써먹은 팔할만 해도 십수개는 될 것 같아요. 나는 알고보면 1000%의 인간인가? ㅋㅋ

영화는 꼭 보세요. 혜경님의 리뷰도 기대되어요.

다락방 2009-02-17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볼거예요, 볼거예요, 볼거라구욧!!!!!!!

그나저나 평일엔 이제 영화 안보려고 하는데(이제 피곤해요 ㅠㅠ)그렇다면 주말에 몰아서 봐야하나, 주말에 보기도 힘든데, 막 이러면서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고 있군요. 다우트 은근 또 빨리 막 내릴까봐 겁나기도 하고 말이지요.

웬디양님,
저는 벌써 2009년의 책을 정해버렸어요. 움화화핫. 물론 그걸 깨버릴 책이 나오길 바라지만 말이죠. 자, 저는 2009년의 책을 정했으니 이제 미친듯한 홍보만 남았어요. 새벽 세시가 1판4쇄 찍었던데, 제가 올해 찜해버린 책은 1판5쇄까지 만들겠어요. 움화화핫 ^^v

웽스북스 2009-02-17 12:48   좋아요 0 | URL
아침에 이거 보고 너무너무 궁금했어요. 다락방님의 올해의 책은 뭘까. 지금이 2월이니까, 1판 5쇄는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요. 새벽 세시의 1판 4쇄 공로는 팔할은 다락방님에게 돌아가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흐흐. 저 멀리 독일에서 작가가 고마워하고 있을 듯.

흐흐. 다우트는 얼른 보세요. 일단 22일 아카데미에서 좋은 결과가 있으면 오래 하지 않을까요? (막 혼자 가설 세운다 ㅋ)

다락방 2009-02-17 15:01   좋아요 0 | URL
웬디양님.

제가 1판 5쇄를 위해 웬디양님을 비롯한 모든 소중한 이들에게 한권씩 쫘악~ 돌리고 싶은데 요즘 책값은 왜그리 비싼거예요? 한달에 한명씩만 선정해서 줄까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아, 책값 비싸 비싸 ㅜㅡ

웽스북스 2009-02-17 22:37   좋아요 0 | URL
아. 맞아요. 책값 너무 비싸요.
일단 제목부터 좀 밝혀주시죠? 흐흐.

다락방 2009-02-18 08:20   좋아요 0 | URL
페이퍼에 :)

레와 2009-02-17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에 인근 극장 시간표를 모두 확인해봤는데,
'다우트' '낮술' '레볼루셔너리로드' 개봉관이 없어요.ㅠ_ㅠ

부산까지 가야할까봐요..엉..엉..ㅠ_ㅠ

진정, 서울에 살고 있는 여러분들이 부럽습니다.네네!

웽스북스 2009-02-17 12:49   좋아요 0 | URL
레와님도, 예매 때문에 맘상하셨군요.

사실 공기 더럽고 사람 많은 수도권 거주가 정말 몸서리쳐지게 싫으면서도 가끔 위안이 되는 것은 이런 것들 때문인 것 같아요. 그치만 그런 것들만 제외하면, 사실 거기가 더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거기는 마산인가요?)

무해한모리군 2009-02-17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봐야겠어요 ㅎ

웽스북스 2009-02-17 12:50   좋아요 0 | URL
휘모리님. 보세요. 보세요. ^-^ (오. 나 전도사 된 것 같아요)

사과나무 2009-02-17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앨런 무어와 데이브 기븐스의 왓치멘은
타임지 선정 1923년 이후 출간된 100대 소설에 포함된
유일한 그래픽노블(만화책)임.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http://blog.naver.com/boomer27 참조 바랍니다.
(코믹스계의 숨은 고수)

웽스북스 2009-02-17 12:50   좋아요 0 | URL
사과나무님은 정말. 정보의 강자.
저런 숨은 고수님은 어디서 찾아내시는 거에요. ㅋㅋ

왓치맨 일단 폰트 때문에 마음에 안들었었는데. 하하하. 봐야겠어요. (과연?)

니나 2009-02-17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항cgv에서 하면 엄마랑 보고싶당~

웽스북스 2009-02-17 12:51   좋아요 0 | URL
흐흐. 공항 씨지브이에 투서라도?
(나도 씨지브이에서 본거야)

그팀장님 2009-02-17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쩐지쩐지...덧글이 남아 있길래 리뷰가 있나 와봤더니
벅찬 감동을 한 조각이라 놓칠새라 그새 리뷰를 써 놓았구나.
(설마 이게 오늘아침 9시 5분의 헐떡임과 관련있는건 아니겠지? ㅋㅋ)

아래 벤자민의 리뷰와 비교하자면 너무나 티나게 길다구~ 이건 편애야.ㅎㅎ

웬디가 내린 결론은 무엇일까?
물론 영화 속 사건의 진실(?)이 무엇이었는지 모르지만
나의 가설은 한 두어가지는 되는 것 같은데
가설의 검증보다는...사건의 fact가 무엇이었든 간에 주인공들의 번뇌가 영화의 진실(!)이라는 생각을 했어.

어제 밤은 귀마개 안하고 푹 잤다구~ 흐흥~

웽스북스 2009-02-17 12:53   좋아요 0 | URL
흐흐. 오늘 아침 9시 5분의 헐떡임은. ㅋㅋㅋ
아마 이게 아니었어도 저는 그 시간에 잤을테니. ㅋ

저 원래 차별이 좀 심한 인간이잖아요. 그치만, 뭐, 리뷰를 안쓰는 영화들도 수두룩하다고요. ㅋㅋ

그죠. 집중해서 봐야 하는 것들은 그것들이죠. 거기에 집중하면서도 사건에 대해서는 그림을 그려가면서 봐야 하니까. 제가 맞다고 생각하는대로 본거죠. ㅋㅋ 그래도 귀마개 안하고 주무셨다니, 정말 다행이에요. ^_^

깐따삐야 2009-02-17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 말씀처럼 연초부터 이렇게 양질의 영화들이 쏟아지네요. 내 스케줄에 맞춰 개봉해 주시면 더 좋겠는데 말이죠. 이 영화도 보고 싶네요.^^

웽스북스 2009-02-17 22:36   좋아요 0 | URL
그죠 그죠. 흑. 어디서 보니 아카데미 특수를 노리는 영화들이 개봉 시기를 이렇게 많이 잡는다고도 하네요. 깐따삐야님은 그래도 방학이 좀더 낫지 않아요? 이 영화 꼭 챙겨보세요 ^-^

2009-02-18 0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21 1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생각해보면 삶이라는 게 참 재밌다. 외면이 가장 아름답던 젊은 시기에는 정리되지 않은 내면의 치기어림, 미숙함 등으로 인해 연발되는 실수, 혼란들이 가득하고,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내면의 모습을 점차 아름답게 갖춰갈 즈음엔 외면적인 모습이 점차 시들어가니 말이다. 이 영화를 보며, 우리 생의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면, 우리의 내면이 정점에 이를 때 즈음에, 우리의 외면도 그에 맞춰 아름답다면, 그리하여 인생의 한 시기를 내/외면의 정점에 이른 채 완벽체(?)로 살아가게 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하지만, 역시 별로다. 내면의 치기는 젊음의 생기가 감싸주고, 외면의 늙음은 아름다운 내면으로 보완할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은 이러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나보다. 그런가보다. 
 
영화를 보며 여주인공의 이름이 개츠비의 여주인공 이름과 같은 데이지이기에 스콧피츠제럴드가 데이지라는 이름에 어떠한 집착 같은 게 있는게 아닌가 싶어 좀 알아보니 원작의 여주인공의 이름은 데이지가 아니었다고 한다.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개츠비의 여주인공이었던 데이지의 이름을 따왔다는. 

영화 자체의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이 영화를 완성해나가는 건 결국 관객의 몫이 아닌가 싶다. 영화를 보며, 잠깐이지만 빠져들어보는, 자기자신에로의 적용, 계속되는 생각들. 스토리 자체에 그치지 않게 하고, 자꾸만 상상하게 하는 것이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인듯. 이 영화 역시, 그렇게 시작된 듯 하고 말이다. (영화 속 설정이 원작과 많이 다르다니, 이건 감독의 또다른 상상력의 산물인 것이다) 사실 이건, 생각은 관객의 몫으로만 남겨둔 채 동화같은 이야기 한 편을 전해준 이 영화의 깊이에 대한 아쉬움의 토로이기도 하다. 물론, 그게 충분히 의미 있을 수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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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나무 2009-02-15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이빗 핀처의 실력은 거꾸로 는다?

웽스북스 2009-02-15 01:49   좋아요 0 | URL
아 글쎄요. 제가 챙겨본 작품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연출이 나빴거나, 영화가 안좋았다거나, 뭐 그런 건 아닌데, 저는 어쩐지 벤자민이라는 인간의 내면의 변화를 밀도있게 그리지 못했던 것 같아서 아쉽더라고요. 할 얘기가 더 많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책을 볼까 생각중이에요 ㅎㅎ (그런데 이것도 단편이더라고요 ㅋ)

프레이야 2009-02-15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츠비의 데이지를 따왔군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였어요.
사람의 외면과 내면의 조화도 생각하게 하네요.

웽스북스 2009-02-17 01:34   좋아요 0 | URL
네 그렇더라고요. 혜경님의 생각들도 조곤조곤 풀어주세요 ^-^

도넛공주 2009-02-15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저도 참 많은 생각을 한 영화였답니다..

웽스북스 2009-02-17 01:34   좋아요 0 | URL
도넛공주님은 어떻게 생각하시고, 또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네요. 흐흐.
 



새로 살 집에 이사 가는 얘기 하면서,
드레스를 입어본 얘기를 하면서
숙대입구 역까지 같이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내리는 C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 좀 울컹했다고

니가 결혼하는 게 이제야 실감이 나서
이제야 섭섭함이 오나보다,라고
C에게 얘기했더니

그녀의 답변

 

선아야, 그거 당연한 거야.

 

-_- 그렇구나 ;;

 

그녀의 결혼식은
교회사람 + 회사사람 + 학교친구들
여기에 모든 공통 분모는 나,라는 -_-

어디 도망이라도 가있던가 해야지
혼자 울면 창피할테니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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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02-13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아야, 이번만큼은 울지 말아봐. =3=3=3=3=3=3=3

코코죠 2009-02-13 20:55   좋아요 0 | URL
메피님 저에게도 다정하게 "즈마야, 이번만큼은 울지 말아봐." 라고 말씀해 주세요(질투 질투)

웽스북스 2009-02-15 01:50   좋아요 0 | URL
어머 질투쟁이 즈마님. ㅎㅎㅎ 메피님 저 놀리신 거에요. ㅋㅋㅋ

Mephistopheles 2009-02-16 12:26   좋아요 0 | URL
우히히..그렇다면 뭐..흠흠( 목소리 가다듬고)
즈마야. 이버만큼은 울지 말아봐.~~
(하라고 또 하는 나는 뭔가..으허)

hnine 2009-02-13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해가 좀 될려고해요.
저랑 아주 친하지 않았는데도 저희 과에서 처음으로 결혼하는 친구 결혼식 가서 보면서 눈물이 나는 것을 참느라고 혼났던 기억이 있거든요.

웽스북스 2009-02-15 01:50   좋아요 0 | URL
아. 정말요. 이건 참 설명 불가한 감정인 것 같아요. 왜그런가 몰라.
hnine님 요즘은 어떠세요? 요즘도 그러신가?

2009-02-13 15: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15 0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13 15: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15 0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니나 2009-02-13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신헌언니 결혼식에서 소라랑 엄청 울었지, 이유는 알 수 없었음 ;ㅁ;
우리 부케받는 연습해야하는거지? 넌 C, 난 N언니 ㅎㅎ

웽스북스 2009-02-15 01:52   좋아요 0 | URL
으하하 나 C 부케 안받는데? 그거 원래 결혼 얼마 안남은 사람들이 받는 거 아니야? ㅋ

최선엄마 2009-02-15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머어머 나도 그래.
왜 그러지, 부모님한테 인사할 때 왜 눈물이 나지? 정말 나도 그래.

웽스북스 2009-02-17 01:36   좋아요 0 | URL
흐흐 최선엄마님도 그러시군요. 그러고보니 지현샘 결혼식 때 학교 뿌리치고 올라갔어야 했는데 말이죠. 흐흐.
 



어제도 집에 돌아오니 11시쯤이었나. 노트북을 켜고 일기를 쓰려는데 엄마가 방으로 들어온다.  

그것 좀 알아봤니?  

알아봤을 리 없다. 나는 늘 그런 식이다. 엄마는 예전부터 상담심리 교육을 듣고 싶었다고 이야기하며 관련한 광고가 신문에 났으니, 사이트 좀 들어가서 정보를 봐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엄마는 내 노트북 옆에 앉았고, 나는 쓰던 일기를 잠시 하단 바에 내려놓았다. 사이트에 들어가 이런 저런 정보들을 같이 읽었다. 50만원을 조금 넘는, 1주일에 한 번 정도 수업을 듣는 코스. 라는 정보 외에 홈페이지에 그렇게 많은 정보는 없었던 터라 쉽게 끝났다. 자, 나는 다시 일기를 써야 한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할 일들이 쌓여 있다. 그런데 엄마가 나가지 않는다.

나는 성격이 못되먹어서, 옆에 누가 있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그런 사람이 기숙사 생활은 어떻게 했고, C와는 어떻게 1년도 넘게 살았는가를 묻는다면, 그들은 이 공간 내에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는 거고, 이 공간 안에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닌 (공간 = 방) 타인이 들어오면 나는 계속 신경이 쓰여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거다. 그래서 엄마가 빨리 나가길 기다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엄마가 나가지 않더니, 심지어는 바이올린 악보까지 들고 오는 것이다. 엄마는 교회 분들과 함께 아는 분을 통해 매우 저렴하게 레슨을 받고 있는데, 사실 음표 보는 법부터 새로 해야 하는 초짜다. 나는 초반에는 웃으며, 응, 엄마 나도 피아노를 연습하니까 괜히 마음이 부드러워지더라, 라고 하며 매우매우 응원모드였으나, 엄마의 질문이 계속됨에 따라 짜증모드로 변모하는 상황이었다. 특히나 물어본 것들을 계속 물어보게 되면. (바이올린은 모르지만, 악보 보는 것에 관련한 질문)

아, 그러니까, 꼭 짜증을 내게 되는 영역이 있는데, 나는 엄마나 아빠가 무언가를 잘 몰라서 물어볼 때 짜증을 내는 것 같다. 특히 컴퓨터 같은 것. 생각해 보면 모르는 게 당연한 건데도, 나는 엄마나 아빠가 나보다 잘 못하는 그 무엇을 맞닥뜨리게 되는 그 감정의 어색함이 짜증이라는 감정으로 나타나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젠 당연히 그런 것들이 더더욱 많아졌고, 그저 나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가르쳐주면 되는데, 여전히 그게 어려워서 쩔쩔매고 있는 모습을 보면, 도무지 친절한 설명이 안된다. 동생 가르치기보다 더 마음이 어려운 게 부모님께 뭔가를 가르쳐주는 일이 아닌가 싶다. 도무지, 이게 왜 그렇게 안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빠에게 파워포인트의 기능을 설명해줄 때, 엄마에게 인터넷 이용법을 알려줘도 매일 까먹을 때, 나는 그렇게도 못되진다. 그래놓고는 내가 못된 게 아니라 어색해서 그런 거라고 막 핑계중이다.

엄마는 원래 학교 때부터 음악을 못했어. 그냥 좀 친절하게 가르쳐주면 안돼? 엄마가 너 피아노 학원도 보내줬는데. 이럴 때 써먹자 좀.
엄마도 지금 바이올린 레슨 받잖아. 돈 받고 가르쳐주는 선생님을 써먹어야지.
너보다 어린 선생님한테 어떻게 일일이 계속 물어봐. 챙피하게.
그 선생님은 가르칠 의무가 있는 거야. 그냥 좀 선생님한테 물어봐. 나도 좀 집에선 편히 쉬자고.
엄마가 너한테 피곤함을 주는 존재니?
누가 그렇대? 그렇다는 게 아니라, 계속 똑같은 걸 물어보니까, 대답하기가 힘들잖아.
(쓰다보니 진짜 못됐군 -_-)

라는 싸움을 계속 한다, 엄마는 그간의 서운함을 또 마구 이야기하고, 나는 나 나름대로의 항변을 하다가 짜증을 내며 휙, 샤워를 하겠다고 먼저 나가 버린다. 샤워를 하면서는, 당연히, 반성의 쓰나미다. 아. 도무지, 나는 왜 이렇게 마음이 이 모양인걸까.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 건데. 그냥, 4번, 5번 설명해 주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다 씻고 나가 반성의 손길을 내밀어도, 이미 늦었다. 오늘은 이 상태로 자야 한다.

라는 상태로 어제를 마무리하고, 그리고 오늘, 오늘은 집에 오니 12시쯤. 또 마음이 바쁘다. 그래도 어제의 미안함에 엄마를 보고 생긋 웃고 들어가려는데 엄마가 통 하나를 들고 온다.


뭐야?

휘리리리릭 쏟아낸 것은 100원짜리, 500원짜리 동전이었는데, 아, 정말 끝도 없이 나온다.

이걸로 엄마 학비 하려고
우와 진짜 많다

그 동안 모았던 동전을 새로 배울 상담심리 공부에 보태려고 꺼냈다는 엄마는 내게 동전을 같이 세보겠느냐고 묻는다. 순간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지만, 오늘만은 잠시 접어 두고 같이 동전을 세기로 한다.

이거 사실, 나중에 손주들 용돈 주려고 모아놓은 건데
하하하하, 그런 거 필요 없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내 자식에게는 미안하지만, 엄마가 몇년간 모은 동전을 나올지도 안나올지도 모를 그녀석보다는 스스로를 위한 일에 쓰는 일이 나는 더 기쁘다. 거의 30분 가량을 동전만 셌나보다. 짤랑 짤랑. 스윽 스윽. 둘 넷 여섯 여덟 열, 손끝을 가끔 스쳐가며, 백원짜리는 엄마쪽으로 밀어줘가며, 오백원짜리는 내 쪽으로 밀어줘가며, 주거니 받거니 동전을 세고, 가끔은 수다를 떨다가 몇개까지 셌는지 까먹기도 하다 보니, 어느 덧 이십개씩 탑으로 쌓은 오백원짜리가 하나, 둘, 셋....서른 여섯, 서른 일곱, 서른 여덟개. 거기에 백원짜리를 더하니 동전은 47만원을 조금 넘는다. 모자라는 십만원 가량은 내가 보태기로 한다.

실은 어제 일이 미안해서 같이 동전을 센 거였는데, 나중에는 동전을 모을 때조차 손주들 용돈을 줄 생각인 엄마가 그래도 뭔가 시작해보는 걸 같이 응원한 마음으로 센 것 같다. 손이 시커매지도록 열심히. 덕분에 이렇게, 이래저래 늦은 잠을 청하게 됐지만 말이다.

그런데 몇년도 동전이 디게 가치가 높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던 것 같아. 아, 나는 몰라 이제. 

라고 이야기하며 동생에게 떠넘긴다. 인터넷 검색좀 해보라고.
동생은 검색 후 98년도 동전이라고 말한다. 20-30만원 정도에 거래된다고.

그럼 엄마가 안찾을 수가 없지.

라고 이야기하며 다시 앉아 500원짜리를 뒤적이는 엄마에게 '으아, 나는 패스' 라고 말하는 것. 사실은 이게 자식들의 한계가 아닐까 싶다. (응?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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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09-02-12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님 어머님, 화이팅-! ^ㅡ^
웬디님도 수고하셨습니다~ (슬쩍, 나도 그간 모아놓은 동전에서 98년도가 있는가 본다)

웽스북스 2009-02-13 00:25   좋아요 0 | URL
아. 엘신님. 500원짜리에요 ㅋㅋ 그 얘기를 안썼구나..

2009-02-12 07: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13 0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동녘 2009-02-12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98년도 IMF 시절에는 긴축정책을 실시해서 새롭게 돈을 찍어낼 이유가 없었죠. 98년 500원짜리 동전을 매우 적게 만들어서 귀하고, 귀한만큼 희귀하다고 하네요.

웽스북스 2009-02-13 00:26   좋아요 0 | URL
네. 8000개인가. 한정본으로 만들었다고. 거의 유통이 안됐다고 하더라고요.

다락방 2009-02-12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잔돈으로 47만원이라니!

아,그런데요, 웬디양님.
우리 자식들은 대체 부모님들께 왜 그러는걸까요? 다른데서는 화나도 참으려고 노력하면서, 왜 부모님 앞에서는 아주 사소한 것에도 틱틱대는걸까요? 결국 반성의 쓰나미를 맞이할거면서. 언제나 후회하지만, 또 언제나 되풀이하곤 해요. 아, 싫다 정말.

웽스북스 2009-02-13 00:26   좋아요 0 | URL
세느라 손가락이 까매졌어요

다락방님도 그러시는구나. 우리 자식들은 다 그렇구나. (엄마, 것봐~ 라고 말하고 싶은 순간 -_- ㅋ)

Mephistopheles 2009-02-12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 페이퍼 때문에...
아침부터 사무실에서 저금하는 동전통을 뒤집어서 500원짜리 죄다 뒤져봤다는....
결론은 97,96년도는 많은데...98년은 항개도 없더군요.

웽스북스 2009-02-13 00:27   좋아요 0 | URL
네네 ㅋㅋ 별로 안찍었다고 하더라고요.
위에도 썼지만 500원짜리에 해당이요 ㅎㅎ

깐따삐야 2009-02-12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해요. 저도 아빠나 엄마가 뭘 물어오면 막 짜증내고 그런 적 많아요. 가르쳐놨더니 저 혼자 잘나서 그런 줄 아는 거죠. 쯧! 그리고 사실 부모님만큼 편한 분들도 없구요.^^
그나저나 98년도 동전이 그렇게 비싸군요! 남편이 결혼할 때 들고 온 저금통 있는데 함 털어봐야겠네요. ㅋㅋ

웽스북스 2009-02-13 00:28   좋아요 0 | URL
그쵸. 가르쳐놨더니 저 혼자 잘나서 그러는줄. 아. 역시 맞아요.
깐따삐야님께도. 500원짜리라는 사실을 알려드려야겠어요. 흐흐.
남편이랑 오손도손 앉아서 같이 동전을 골라보세요. ㅋㅋ

마늘빵 2009-02-12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머니가 말 걸면 짜증내요. -_- 그냥 말 걸면. 근데 말 거는게 항상 잔소리 계열이라서 더 짜증나요. 그래서 아예 말을 안하는데 가끔씩 던지는 말도 그런 류라죠. 왜 돈 내고 운동 안가냐, 어제 운동 갔다왔냐. 대개는 저를 구속하거나 억압하거나 아니면 소유물로 생각하거나 하는 것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에요. 흐음, 저는 동전은 생기는 족족 '필름통'에 넣고 다니면서 다 써요. 얼마전 회사 옆 책상 치우면서 십원짜리, 백원짜리, 오백원짜리까지! 꽤 나왔는데 ^^ 제가 꿀꺽 했죠.

웽스북스 2009-02-13 00:28   좋아요 0 | URL
크 아프님 운동하세요? 올! ㅋㅋ
여기 아들도 한명 있고! ㅎㅎ

마늘빵 2009-02-13 10:05   좋아요 0 | URL
아, 등록은 해놓고 자주 안간다지요... ^^a 내 돈...

레와 2009-02-12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머릿속복잡잡복복잡잡복...


웽스북스 2009-02-13 00:29   좋아요 0 | URL
어이쿠 레와님.. 레와님은 양측의 입장에서 복잡하신 건가요?

보석 2009-02-12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참...엄마하고는 항상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뭐랄까..오히려 남이라면 좀더 관대하게(또는 무심하게) 넘어갈 수 있는 일도 엄마한테는 좀더 예민하게 반응을하게 된다고나 할까요. 그래놓고 또 후회하고. 가족이란 애증의 관계인 듯.

웽스북스 2009-02-13 00:29   좋아요 0 | URL
그죠. 그죠. 좀 더 예민해지는 것 같아요.
그러면 안되는데, 더 만만하게 대하기도 하고.

사과나무 2009-02-12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밤의 동전세기는 잘 마무리되었지만
어머니와의 관계는 細技가 부족한 관계로 덜그럭?

사람 좋아보이는 두 사람이 덜그럭 댄다는 건 참 초현실적.

웽스북스 2009-02-13 00:30   좋아요 0 | URL
ㅋㅋ 사과나무님의 언어유희는 계속되는 거지요.
아무리 사람 좋아보여도, 안 덜그럭대는 게 더 초현실적이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우리 선익이는 저처럼 키우지 마십시오. 흑.

사과나무 2009-02-13 10:13   좋아요 0 | URL
시간이 좀 더 흐르면 감정의 세기 조절에 익숙해질테니
너무 조급해하지는 마시기를.
선익이도 뭐 나한테 대들 날이 오겠지요.

웽스북스 2009-02-13 10:26   좋아요 0 | URL
아무리 내 새끼, 하면서 예쁘게 키워도,
대드는 자식들은 세기의 난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도 선익이가 대드는 날이 오면 좀 슬프긴 하겠네요 ㅜ

치니 2009-02-12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완전히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한석규가 아버지(신구)에게 비디오 카메라 설명하면서 짜증 내던 씬 생각나는데요.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던 명장면, 우리가 다들 그러고 사는데 영화에서 리얼하게 표현해주니 그렇게 가슴에 남았던 듯 해요. (일반화의 오류에 포함 안될 것 같습니다, 자식들은아니 사랑을 무조건 받는 입장인 사람들은 거의 그런 것 같아요. ^_^)

웽스북스 2009-02-13 00:32   좋아요 0 | URL
아. 그 장면이 있었지요. 저도. 8월의 크리스마스는 꽤 어릴 때 봤으면서도 (스무살 초반쯤?) 그 장면이 기억이 나네요. 어릴 때부터 나는 그랬었군요. 요즘은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참 많이 생각나요. 치니님과 얼짱아드님의 관계는 어떤지 궁금해요. 요즘 니나랑 치니님 얘기 가끔 한다는 ㅋ

그팀장님 2009-02-17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원래 자식은 그런거야.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잖니.
자식이라서 투정부릴 수 있는거고, 퉁명스러울 수 있는거지.

돌이켜보건데 혈연의 관계가 아닌 웬디의 주위사람에게
그렇게 단 한번이라도 마음에도 없는 투정과 비난을 쏘아본적 있니?
어쩌면 마음에 없는 칭찬을 한 일이 더 많을걸..

요샌 내 나이 드는것 보다
부모님 나이가 한해 한해 늘어가시는게 더 걱정이구나..에효..


웽스북스 2009-02-17 12:54   좋아요 0 | URL
그니까요. 요즘 내리사랑이라는 말 정말 실감해요.

투정과 비난은. 음. 만만한 최금숙? -_- ㅋㅋ 아. 역시 만만한 사람들에게 못됐나봐요 전. 으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