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 의심이었다,라는 말로 리뷰를 쓰려다가 망설인다. 너가 그렇게 많이 고민하고, 의심하고, 사유했다고 진정 자신하니? 라는 의심이 스믈스믈 몰려오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러고보니 지금까지 네가 너를 키운 팔할이라고 한 게 도대체 몇개니? 다 기억은 하니? (못한다) 팔할이 80%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 거니? 라는 내면의 양심적 자각(ㅋ)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이렇게 수정해본다. 나는 어쨌든 끊임없이 의심하는 인간이고, 의심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과는 조금 많이 다른 모습의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정도로. 음. 뭐야. 쓰고보니 이 말이 더 진정성이 있는 것 같잖아? ㅋ
영화 시작 부분에 신부님의 설교 중 이런 말이 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으나) 우리가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의심이라는 것을 하게 되는 순간이 있고, 우리는 스스로가 그 순간 고립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순간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다고. (아. 빈약한 기억력 ㅋ) 이런 설교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수녀는 (사실 의심만큼 기독교에서 오랜 세월동안 금기시되어 온 것이 또 뭐가 있단 말인가 - 아, 많구나) 이것 외에도 신부에 대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많고, 그녀의 의심의 배경은 사실 의심의 단초를 제공해준 그 '작은 사건'이 아닌, 이러한 것들로부터 시작된다. 스스로 이교도적이라 여기는 꼬마 눈사람(눈사람이 모자를 쓰며 생명을 갖는다고)이라는 노래를 좋아하는 것이나 볼펜을 쓰고, 설탕을 세 개나 넣어 먹는 행위로 대표되는, 자신과는 다른 신앙의 모습들. 하지만, 그녀 역시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신부가 설교했던 것과 같은 이유로 오열하게 된다. 모든 사람이 극찬하듯, 이 부분을 포함한 여러 부분에서 메릴 스트립의 연기는 정말 압권이다.
우리가 믿는 것들은 무엇으로부터 오는가. 이 세상에서의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오로지 천국소망 외쳐대는 기독교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지옥행이 아닌, 실은 자기 자신이 지켜온 삶의 기반인 신앙이 무너지는 것, 그 자체는 아닐까. 그러고보면 이것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나 역시, 좀 다른 기반을 가지고 있다 말하지지만, 어느 순간 이것이 무너져야 하는 계기가 온다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해, 자신과 다른 것을 외쳐대는 상대가 틀렸다고 믿어야만 견딜 수 있는 알로이시스 수녀와 나는 전혀 다른 신앙의 색깔을 가지고 있지만 어쩌면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렇게 쓰는 지금조차도 이런 것들을 인정하는 것이 매우 어렵지만 말이다. 그러니, 자기 자신을 의심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어렵고도 중대한 일인가. 특히나 그것이 평생을 지녀온 신념이라면 말이다.
이 영화는 인간이 심리가 가진 이런 딜레마를 여러 측면에서 매우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단순히 누가 맞고 틀리다의 문제는 중요치 않다. 다만 그 확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의 정체는 무엇인지, 그 의심은 무엇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인지에 대해 끊임 없이 의문을 제기한다. 때로는 두려움이, 때로는 수습할 수 없는 상황이, 때로는 일관성에의 욕망이, 때로는 안정적인 삶에의 욕구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정말 재밌는 건, 이 영화가 영화속에서 논쟁이 되는 것들에 대해 명쾌한 결론을 내주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더 재밌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만의 결론을 이미 다 지어버리고 극장을 나왔다는 것. 돌아오는 길 정인씨에게, 내가 지었던 결론에 의거해 '나도 저런 신부를 좀 만나보고 싶다'라고 이야기했더니 매우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는 것. 아. 우리는 서로 다른 프레임으로 영화를 봤구나. 이런 영화를 보면서 나는 또 철저히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신념을 합리화하고 있었구나. 하하. 이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또 내가 해석하는 게 맞다고, 계속 이러고 있는 징글징글한 사람이구나. 하지만 이런 자신을 발견하는 일 또한 흥미롭지 아니한가. 이런 내 모습은, 지금 내게 이게 매우 중요한 문제임을 반증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니, 이 영화를 여러 사람들과 함께 보고 자기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나눌 기회가 있다면, 매우 재미있는 작업이 될 것 같다.
일단 올해 봤던 영화 중에는 단연 최고인데, 지금이 아직 2월인지라 이 말에 가치를 더해주지 못해 아쉽다. (신선생님께서는 이미 2월에 2009년 최고의 영화를 정해버리셨다. 하하하.) 가능하면 한 번 더 볼 생각인데, 그건 좀 다른 느낌으로, 다른 관점으로 생각하면서 보고 싶기 때문이다. 2월의 필관람 영화 리스트도 제대로 못보고 있으면서 항상 욕심만 앞선다. 나 막 괜히 22일날 아카데미 수상 결과도 기다려지고 그런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