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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전혜린 에세이 1
전혜린 지음 / 민서출판사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즉 역사와 생활 상황이 우월한 존재보다 완성된 존재라고 끊임없이 가르쳐 준 남성이라는 존재 속에 여자는 자기의 존재를 초월하고 융합하려고 한다. 그러나 남자에게 있어서는 사랑이란 인생 그 자체일 수는 없고 다만 많은 가치 속의 한 가치에 불과한 것이며 남자는 여자 속에서 자기의 실존을 포기하려고 하지는 않고 반대로 자기의 실존 속에 여자를 일체화하고 부속시키려고 할 뿐이다.- p. 38
옛날에 교실이데아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학교체제에 맞지 않는 청소년들을 데려다가 대안학교에서 살게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책이나 테이프를 보면 알겠지만 지금은 부자들만 갈 수 있다는 그 대안학교와는 많이 다르다. 굉장히 치열하고 각박하고 팍팍하고 말 그대로 인생 바닥까지 치고 올라온 애들이 한 데 모인 자리라서 살벌한 분위기가 난다고 할까. 그 때 어떤 여학생이 이 책을 읽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호기심이 있어서 나도 찾아 읽어봤지만, 유독 남녀관계에 대해서만은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다. 여중여고를 나왔었고 게다가 어렸을 때의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극도로 남자를 혐오하게 된 나로서는. 아니, 그보다는 '남자도 인간인데 이렇게 이율배반적이고 자기중심적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반복적으로 들어서 책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근, 20대 중반에 난 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여자는 남자없이 살 수 있다 보지만) 남자는 여자 없이 살 수 없는 존재이며, 50대에 가서야 삶에 대해 깨닫게 되고 그 전엔 자신과 주변의 모두를 닳아빠지게 만드는 불쌍한 존재라고. 여자가 이해해주지 않으면 남자는 자신이 만든 불모지 한가운데서 무력한 미아가 된다고. 우연의 일치인진 모르겠지만 전혜린도 이 글을 쓸 때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나이였다.
여기서 어머니의 말을 빌린다. '결혼은 사실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권장할 수 없는 선택이다. 그러나 육욕을 이기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길 걸 우려해서 결국 결혼을 하게 된다면 남자와 여자 모두가 희생해야 한다. 지금은 시대가 좋아져서 전혜린처럼 고통받는 여성이 많지 않지만 그 와중에서도 여자가 결혼해서 더 희생해야 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여성이던 남성이던 누구던 희생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건 이기적인 것이다. 사실 여성은 대부분 가정과 아이만 있으면 그걸로 충만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남성은 뇌구조부터가 가정에 충실할 수 없게 만들어진 존재다. 그 모순적인 상황 속에서 결혼한 여성과 남성은 인생에 대한 각자의 깨달음을 얻는데, 여성은 보통 30~40대쯤 되서 깨닫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남성은 아무리 빨라도 50대다. 그 깨달음이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할 수 없다. 그걸 감수하면서 희생의 즐거움을 누리거나 아니면 그냥 상대방을 참아주던가 아님 그걸 버티지 못하고 바람피거나 자살을 하는 것이다.'
전혜린은 독일에 대한 동경이 굉장히 큰 사람인데, 니체를 좋아하고 데미안과 생의 한가운데를 진지하게 읽으며 생의 의미를 찾은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생의 한가운데의 내용과 많이 연관되 있을 것 같은 이 글을 올려본다.
하나는 여자로서의 자기를 백 퍼센트 의식하고 자기를 하나의 물, 육체로 보는 전적인 자기 포기의 타자 의존적인 생활방식이며, 또 하나는 자기를 인간으로(여자이기 전에) 의식하고 인간으로서의 자기를 사회내에서 현실시켜 나가 보려는 외롭고 괴롭지만 떳떳하기는 한 두 가지 방법이다. 이 두 가지 중 이성의 사랑을 보다 많이 향유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전자이며 후자는 사랑을 받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해도 과언이 아닌 생활 방식의 선택이다.
그러나 전자라 해서 절대로 안심은 아니다. 30대의 님페트는 생각해 볼 수조차 없지 않은가. - p. 216~217
오영수의 갯마을이라는 소설이 있다. 내가 가장 감명깊었던 한국소설 중 톱 2에 속하는데 그 책을 읽고 독일어로 번역하려고 하고 오영수 선생님에게 직접 편지를 남겼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나도 오영수 선생님에게 편지 올리고 싶어....
전혜린의 글을 보면서 생각난 게 아스카의 독백 장면.
그러고보니 아스카의 어머니도 자살했던 걸로 기억함.
자살과 여성은 어찌 보면 남성과의 관계보다 더 친근한 것일 수도.
P.S 그리고 제목에 대해서 갖가지 상상을 하는 건 좋은데, 하인리히 뵐을 모르면 그냥 생각만 하고 아무것도 쓰지 말자. 소설을 많이 읽었다면서... 하인리히 뵐을 안 읽었으면 대체 뭘 읽었단 말인가? 이 나라 독서 질이 심히 염려된다.
김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