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란자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3
J.M 바스콘셀로스 지음, 이광윤 옮김 / 동녘 / 200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구이건 말건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세상이 옳다고 말하는 삶이나 다른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상관인가. (...) 어째서 이 빌어먹을 놈의 세상은 이다지도 끔찍하고, 기괴하고, 이해타산적이며, 불신으로 가득한 걸까? (...) 이놈의 도시, 말 많은 작은 도시.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3부이다. 어쩐지 2부에서 나왔던 내용과 상당수 겹치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굉장히 의미심장한 내용들이 펼쳐진다.



일단 2부는 제제가 거짓말로 둘러대고 입양된 집을 나와 도망가는 것으로 끝난다. 그런데 광란자에서 제제는 버젓이 학교를 다닌다. 그리고 정신적 지주가 되었던 라임오렌지나무라던가 두꺼비 등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따르씨지우라는 의미심장한 아이가 처음부터 수상한 태도를 보인다. 제제와 달리 쭉 빠진 바지를 입고 다니는 그는 (하필이면) 망고나무에서 제제에게 비밀스런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졸업하면 무엇을 할 건지 제제의 아버지와 똑같이 물어보는 데서 2부의 모리스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왜 이렇게 교장인 수학선생이 소리를 지르니 죽이겠다는 말이 공감이 되는 걸까. 그나저나 수학 선생이 교장인데다 찍힌 상황이라니 끔찍하다. 수학은 나의 원수..  

생각해보니 2부에서는 난리통이 나긴 했지만 그래도 제제가 졸업을 한 것으로 나오는데 3부에서는 학교를 중간에 그만둔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2부에서도 조금씩 관심을 보여주긴 했지만 3부에서는 유달리 다정한 양아버지의 모습이 나온다. 그런 걸 보면 아무래도 3부는 일종의 평행세계가 아닐까 한다. 만약 제제가 자퇴를 했다면? 이라는 설정 정도?? 아니면 2부가 제제의 상상이고 3부가 그의 현실이었던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씰비아는 대놓고 제제를 심심풀이 땅콩 정도로 여기고 있는 거 같은데... 불안불안하다.





불안함은 제제의 연애에서 그치지 않는다.



제제는 보수도 적고 현재는 인공지능에 의해서 완전히 사라져 버린, 화물 검수를 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엄연히 돈을 버는 일이긴 하지만 정작 제제는 그 일을 자신의 즐거움으로 여기지 못한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왜 제제가 제대로 된 일을 하지 못하냐고 잔소리들이 심하다. 현실과 함께 제제를 무겁게 짓누르는 아버지란 권력. 이것을 어떻게 떨치고 나가는지는 2부와 3부가 각각 다르다. 2부에서 제제가 도망을 쳤다면 3부에서의 제제는 허심탄회하게 아버지에게 자신의 장래를 털어놓는다. 그런 점에서는 3부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시리즈 중 가장 긍정적인 결말을 보여주는지도 모르겠다. 제제의 상상력은 이미 죽었다 보지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햇빛사냥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2
J.M.바스콘셀로스 지음, 박원복 옮김, 김효진 그림 / 동녘 / 200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똑같은 반성문 천 줄을 써야 한다."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천 줄이나? 차라리 책 한 권을 쓰는 편이 낫겠군. 소설 한 권 말이야. 젠장, 내가 알게 뭐야. 거지 같은 걸로 한 권 쓰고 말지. 그런데 천 줄이나 쓰라니, 한 문장 한 문장 똑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건 연옥에 떨어지는 것보다 더한 걸 거야. (...) 나는 일부러 그걸 증오한다고 말할 텐데, 그게 받아들여진다면 최소한 내가 사랑하는 문장을 쓰게 될 것이다.
"문장을 말해요!"
"이삐랑가의 평온한 강변들은 들었노라......."
(...) "이 아이가 완전히 돌았구먼. 애국가를 증오한다고?"

내가 듣기로 이 시기의 브라질은 우리나라의 80년대와 비슷했다고 들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이 구절은 유머를 담아서 작가가 현실을 비꼬는 구절이 아닌가 생각한다. 젠장. 내가 너무 소설을 해석하려 드는 건가? 혹시라도 이 구절의 의미에 대해 좀 아는 사람이 있으면 조언을 구한다.

 


보통 혼혈아들은 생김새가 준수하다고 한다.


 혼혈인이 아름답다라고도 하지만 그런 표현은 극히 드물며, 보통은 혼혈 아이들이라는 표현을 많이 한다. 그들은 특수한 부모들에게는 인기가 많아 잘 선택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이 그 선택을 좋아하게 될지는 별개의 문제다. 귀여움 받는 걸 상대방이 좋아하지 않는데도 계속 귀여워하는 건 폭력이라고 젤리와 만년필 창간호를 읽으면서 나는 배웠다. 게다가 귀여워하는 방식이 애정표현도 아니고 공부를 마구 시킨다는 비정상적인 방식이라면 어떨까. 차라리 아주 솔직히 네가 이쁘지도 않으며 그저 자신의 체면을 내세우고 훗날 자신에게 베풀어주는 걸 기대하고 투자하는 것 뿐이라 말한다면 나을지도 모른다. 귀여워하는 게 진정한 사랑이라 볼 수는 없음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제발 귀여워하는 사람에게 할말 못할말 다 말하지 마라... 귀여운 인간은 니가 생각하는 것만큼 만만하지 않단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에서 뭐? 아버지가 이사를 가고 우리는 잘 살 거라고 했더니? 웨 입양이 됨? 그럼 가족이 애를 버리고 도망갔다는 겁니까? 너무 열받는데. 평소 애를 죽을 때까지 패놓더니 ㅋㅋㅋ 아니 그렇게 애를 많이 낳았으면 다 책임을 져야할 거 아냐 ㅋㅋㅋ 이거 정말 너무하네요 ㅠㅠ 1부도 그렇게 시궁창이었는데. 슈발것들 진짜 그 가족 보면 머리 다 뽑고 싶을 정도의 증오가 올라온다.. 그런데 놀랍게도 제제는 어른들을 이해하려 애쓰며 현실과 타협해 나간다. 고도이아의 자동차 사고가 계가가 된 게 아닌가 짐작해본다. 따지고보면 우리나라도 옛날엔 이런 거 많았다. 가난한 애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부잣집에 위탁형태로 가서 돈 벌거나 공부해서 잘 살고 집에 원래 집에 돈 가져다 주는 방식. 내 주변에도 그런 어른 있고.

 


제제가 어른이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게 특히나 슬프다.


 1부에서 돈을 벌어야 하고 죽음과 싸우는 어른들의 심정을 모르고 장난쳤던 제제가 있다면 이 2부에서는 어른들을 배려해주는 제제가 있다. 안돼 제제야 ㅠㅠ 어른의 심정을 안다는 건 늙어간다는 증거야 ㅠㅠ 점점 건강해지고 있는 건 좋지만 얼굴이 이쁘장해서 아버지가 경계하는 걸 보니 역시 3부에서는 여자들이 졸졸 따라다닐 거 같다 ㅠㅠ 옛날에는 제제한테 감정이입해서 어른들을 욕하고 다니면서 제제가 빨리 성장하길 바랬는데 다 커서는 안타까워하는 이유가 뭘까. 역시 내가 늙었단 증거인가(...) 아님 최애를 애끼는 마음? 애인이 생긴들 분명 제제의 불우한 환경을 버틸리 없다는 불안감이 작용하는 듯하다.

대체로 꼬꼬댁 꼬꼬 하는 암탉 웃음소리를 내는 등 제제 리즈 시절에 비하면 완전 평범하지만 기숙사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장난을 치는 듯하다. 1부의 화려한 경력을 생각하면 상류층계에 눌려서 기가 죽은 것 같아 매우 짠하다. 전엔 반항이라도 했지 여기선 초반에 찍소리도 못하고 눈물만 질질 흘리는 장면도 많이 보인다. 그러나 제제에게 점점 말을 거는 목소리가 많아지고, 지혜가 생기면서 전에 없던 완벽범죄(?)가 가능해진다. 그 점이 신박하다. 제제가 하는 짓이 내가 하는 짓 같은데 어른들에게 들켜서 혼날 것 같으면서 들키지 않는 스릴이 있다. 제제가 도시에 와서 생활하다보니 아무래도 상상력이 밍기뉴 때보다 빈곤해지는 듯하다. 어쩌면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인물 중 거의 유일하게 실제 인물이었던 뽀르뚜가가 기차에 치여 죽은 게 충격이 커서 거리를 뒀는지도 모르겠다. 햇빛사냥 중 핵심인물이라 할 수 있는 두꺼비 아담도 짐을 쌀 때는 제제한테 쌀쌀맞게 대하는 걸로 나오고. 기타 모리스 아저씨가 자신을 자주 방문하지 못하는 걸로 나오고 아담이 자신에 대해 다 알지 못하는 등, 일부러 한계를 설정해놓고 가상의 인물들을 조롱하듯이 말한다. 너는 근데 예전에 이 수사님이 말한 것과 어쩜 그렇게 똑같이 말하니? 라는 식으로. 무엇보다 죽음을 무서워한다. 처음 만날 때부터 너도 떠날거야? 너도 죽어? 그러고 물어보는 식. 전반적으로 기운이 없는 듯해서 불쌍하다. 안 울려고 했는데 모리스 슈발리에를 진짜로 만날 때 울었다... 제제가 모리스를 만난 게 꿈인지 아닌지 아직도 헷갈려하는 사람이 있는 듯한데, 나는 어린 시절 제제가 만난 모리스는 모리스를 꿈꾸는, 제제가 양자로 들어간 집안과 관련된 어느 배우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 - 영혼의 허기를 채워줄 하룻밤의 만찬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 1
데이비드 그레고리 지음, 서소울 옮김 / 포이에마 / 200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내를 더 사랑하고 싶지만 그 방법을 모르고 있어요. 설사 알고 있다고 해도 그만한 능력이 선생에겐 없죠. 하나님만이 그렇게 사랑합니다. 그런 사랑을 선생을 통해 하고 싶으신 겁니다."

메인디시에서 하나님의 공평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하나님에겐 인격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 소설은 그 점에선 나와 의견이 다르지만 완전무결하다는 점에선 나와 같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워낙 더럽혀져서 그 단어를 쓰는 게 싫은 것 뿐이지, '인간과 다른 종류의 사랑'이라 쓴다면 그건 맞는 듯하다. 그러나 역시 사랑이라고 하면 인간적인 사랑을 연상시키니 그렇게 쓰면 안 되는 것일 뿐. 아무튼 사람이라서 같은 사람을 볼 때 아무리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도 약점이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결국 메가데레는 2D나 신에게만 존재하지 사람에겐 있을 수 없다. 영원한 사랑 또한 없다. 이 책에선 신이 인간에게 베푸는 그 무언가에 대한 설명이 잘 되어 있는 편이다.

크리스마스날 읽고 리뷰쓰려다 귀찮아서 걍 지금 쓴다. 짧아서 영어공부하고 싶으면 원본 사서 읽어도 괜찮을 듯하다. 나는 기왕 산 거 이걸로.. 원문 제목은 Dinner with a perfect stranger이다. 미국 소설책답게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유머로 이루어진 책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골프장에 도착해 '내 주인은 유대인 목수시니'라고 적힌 스티커를 붙인 차 뒤에 주차할 때부터 심상치 않았다. 나는 4인 1조 시합에 배정되었고, 알고 보니 그 차 주인도 같은 조였다. 그는 누군가에게 벽돌로 얻어맞고는 휴일에 성형외과 의사를 불러내 수술을 받은 사람처럼 부자연스런 미소가 얼굴에 고정돼 있었다. 


유대인 목수는 요셉이 아니냐는 말을 듣고 생각난 에피소드. 저번주 일요일날 성당에서 명화 강의 있어서 들으러 갔는데 마리아는 예쁘고 막 파랑색 이쁜 옷입고 그랬는데 요셉은 무슨 푸줏간 옷 입고 몸을 있는대로 꾸부리고 있고 완전 짜져있던 게 너무 리얼했다. 현재 산부인과 병원상태 보는 줄. 알고보면 요셉은 조신한 남자의 모범이다.


처음부터 힌두교를 대뜸 까기 시작한다. 일단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내가 우주고 우주가 나라는데, 힌두교에서는 당장 내가 우주는 될 수 있어도 우주는 내가 될 수 없음. 개성을 버리면 우주에 속할 수 있지만 우주가 개성은 될 수 없다는 이야기인데, 이건 마치 내가 계급장을 찰 수는 있지만 계급장 까고 이야기하는 건 리스토라를 각오해야 한다는 거랑 비슷한 거 아닐까(...) 불교도 이와 비슷하게 까는데, 불교에서는 버려야 한다는 욕망이 지금 당장 사람들에게는 필요하다는 이야길하면서 스치듯이 지나간다.

 


 살다보면 죽다 살아날 때도 있고 그런거죠 뭐. 난 예수 부활을 믿음. 오히려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과도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을 의심하는 편.


왜 안 믿냐 물어보면 대부분은 개신교나 천주교 신자에게 당한 일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신에게 당한 건 아니잖아? 예수 입장에선 걍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죽다 살아난 것 뿐인데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은근 시샘하고 공격하는 걸 보고 좀 억울해할 듯. 납득 안 되는 이야기는 오히려 창세기쪽이다.

 


 맨 끝에 소소하고 깜찍하지만 예리한, 누구나 겪지만 가볍지는 않은 반전이 나온다.


아마 이 내용을 중심으로 하여 2탄이 나온 듯하다. 짧지만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잘 파악한 책이라고 생각되며, 마지막 순간까지 방심할 수 없다. 기독교인이라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대놓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절대 단순한 자기계발물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책.

 

"창세기는 역사의 흐름을 보여줍니다. 거기에 따르면 하나님은 빛으로 시작해서 천지를 질서정연하게 창조합니다. 땅을 만든 다음 땅을 구성할 것들을 설계하죠. 대양으로 대륙을 만들어 내고, 식물을 창조하고, 동물을 창조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창조합니다. 자, 이 일련의 순서에 과학자들이 동의하지 않는 점이 있습니까?"


 

이 다음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에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을 거라고 닉이 말하니 예수가 과학자들이 창조주를 설명하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맞긴 하지만 과학자란 직업 자체가 가설을 증명하는 걸 목적으로 하는지라 눈앞에서 보는 것도 믿지 않는 판인데, 너무 가혹한 건 아닌지;;? 다 좋은데 여기서 지뢰를 밟은 듯하다. 과학자들은 믿음 자체가 없기 때문에 창조주를 설명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무신론자들이니 예수가 나타나서 신이 있다고 말한들 관심도 없을 것이다. 스켑틱이라는 과학 잡지만 봐도 그런 이야기 천지다. 이 경우엔 예수가 먼저 그들에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게 아닌지? 닉도 빨리 넘어가려는지 기적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바꾼다. 하지만 기적은 창조랑은 연관없을 텐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그가 눈을 감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눈을 뜨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눈은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뻣뻣하게 굳어져 있었고, 내면을 향하여 혹은 아주 먼 곳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 파리 한 마리가 그의 이마에 내려앉아 천천히 코와 입술 위로 서서히 기어갔다. 그러나 그는 털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꿈이었는지 뭔진 기억 안 나지만 꿈이라고 할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일이 하나 있었는데, 이거 따라하려고 옛날에 가만히 있던 적이 있었다.


 근데 등에 정도의 곤충이 날아와서 얼굴로 기어가고, 가만히 있었는데 귓속으로 들어가버리는 것이었다 ㅋㅋㅋ 정확히 그 이후 귓속에 무지막지한 염증이 생겨서 난리가 났는데, 그 때 사람이 아무거나 책에 나오는 내용을 무작정 따라해서는 안 된다는 걸 느꼈다. 당시엔 베토벤을 떠올리며 엄청난 무서움에 사로잡혔었는데, 그래서 베토벤 곡을 듣다보면 크게 쿵쾅거리는 대목에서 지금도 움찔하는 면이 있다.

 

"그렇게 할 수는 없어. 인간에게는 남을 조종할 수 있는 자유 의지가 없어. 목사님이라도 말이야. 다른 사람 쪽에서 내가 원하는 생각을 할 수도 없거니와 내 쪽에서 원하는 것을 그가 생각하게 만들 수도 없어. 하지만 누군가를 잘 관찰할 수는 있지. 그러면 그 사람이 종종 무얼 생각하는지, 혹은 무얼 느끼는지 꽤 정확하게 알아차릴 수 있어. 그러면 그가 다음 순간에 무얼 느끼는지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어."

옛날에는 왜 이딴 책을 이렇게 열심히 읽는지 신기했는데 전 지금 보니까 왜 데미안을 반복해서 읽었는지 알겠다. 특히 이 대목은 아직도 내 인생 명언이라고 해도 될 정도이다. 이 구절 읽을 땐 정말 여기서 감동을 받고 아 이렇게 하면 내가 힘든 게 해결되겠구나 그런 생각과 함께 빛이 보였던 듯했다. 학교가 너무 힘들었거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싱클레어에겐 데미안이라는 조력자가 있으니 그렇게 좋아질 수 있었고, 무언가가 가능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을 하는 듯하다. 그러나 나는 데미안보단 빨강머리 앤 보고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듯하다. 데미안은 되고 싶은 사람이란 느낌이 강했고. 아직도 데미안 같은 인물이 되고 싶다. 어떤 사람은 책 한권으로 사람을 계몽시킬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는데, 데미안은 사람이 바뀔 수 없다고 여기서 말하는 듯하다. 관찰당한단 느낌이 강할때 잠깐 바뀌고 그뿐. 어릴 때는 이게 그냥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인 줄 알고 집중력만 줄창 연습했지만, 나머지가 안 되어 학교에서의 괴로움은 지속되었다. 뭐, 관찰하려면 쳐다보는 것부터 연습하는 건 맞지만. 

 

소녀들은 상냥하고 정중한 태도와 아첨만을 바라는데 그거야 실로 귀엽긴 하지만 진짜는 아니라고 했다. 성숙한 여자들한테서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고 그들이 훨씬 더 똑똑하다는 것이다.


 사실 데미안은 내 성적 취향을 자리잡게 하는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데(...)


이때부터 어머니를 보는 눈이 달리 보이고 나이든 여성 중에서도 성숙한 여자를 가려내는 눈이 생겼으며 심지어 내가 나이가 들었음에도 이번엔 2D에서 성숙한 여성을 찾게 되더라. 좋던 싫던 첫사랑이었던 분도 경험많은 분이셨으니... 생각해보면 이걸 청소년 권장도서라고 추천하는 닌겐들이 데미안 정말 제대로 읽었는지 궁금한 부분 ㅋㅋㅋ 자세히 보면 이거 처음부터 끝까지 누님 찬양인 책인데.

 


 

최근에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한 번 다 읽게 되어 너무나 행복했다. 그런데 이 책에도 니체가 있었군. 이 대목에서부터는 별로 감흥이 없어서 대강 읽었었는데, 이렇게 니체를 만나게 될 것도 운명까진 아니지만 인연인가 보다.


사랑인 것 같으면서도 사랑이 아닌 것 같고, 철학인 것 같기도 하면서 동시에 철학이 아닌 것 같은 그런 오묘한 분위기가 매력적이었음. 아예 소설 자체가 아브락사스인듯. 처음 이 책을 접할 땐 이 결말에 강한 반발심이 생겨서 덮었는데 둘의 관계는 요즘의 썸이라고 하는 그런거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사랑보다 더한 어떤 게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런데 어쩌면 싱클레어는 에바부인보단 데미안을 사랑했던 게 아닌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름 뒤에 숨은 사랑
줌파 라히리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0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좀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이 나라에 오기 위해 모든 것을 모든 것을 버렸는데, 결국 그 모든 것이 이렇게 죽기 위해서였단 말인가?

고골리의 아버지에겐 사연이 있다. 그는 고골리의 외투를 우연히 읽다가 마음에 들어 전철까지 들고 갔었다. 그런데 전철이 전복되어서 구조를 청하려는 도중 손에 있던 종이를 날려 간신히 구조된 것이다. 여러분 이렇게 책을 들고 읽으면서 걸어가면 위기의 순간에 구조될 확률이 높아집니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는 우리나라에서 필수적으로 해야 할 행위라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방금 차 타자마자 이야기한 사람이 사지가 뎅겅 잘려서 자기 몸 위에 올려졌다니 굉장히 서스펜스하네요. 인도의 이야기라서 그런가?

내 기대가 좀 많이 컸던 건지는 모르겠는데 고골리가 너무 소심해서 대학시절 부터는 보기가 괴롭다 ㅋㅋㅋ 나도 이름 때문에 콤플렉스가 있기는 했다만 그걸 보통 대학생 때까지 끌어안고 앉아 있냐. 역시 인간은 나이가 들 때까지 무언가 성장하는 게 없음 그것만큼 꼴사나운 게 없는 것 같다.

무엇보다

 

핸드백 속에는 세븐업 맛이 나는 입술 연고가 들어 있었는데, 그 애는 이따금씩 그것을 꺼내어 입술에 발랐다.

 

이 때부터 끼가 충만했던 흑로리 분이

 

그녀가 책에서 눈을 떼어 고개를 들었을 때, 기다리는 사람은 그녀였음에도 자신이 방해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갸름한 얼굴이었다. 고양이 상이지만 얄밉지 않았고, 눈썹은 가늘고 곧았다.

이런 흑누님이 되어 돌아옵니다.
아니 고골리 전생에 나라 구했음?
게다가 고골리보다 나이 한 살 많다고 함.

 

샌들 위로 드러난 발톱에는 고동색이 칠해져 있었고, 쪽지어 올린 머리에서 몇 가닥이 흘러내려와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는 반쯤 피운 담배가 끼워져 있었는데, 몸을 기울여 그의 뺨에 키스하기 전, 그녀는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 샌들 끝으로 비벼 껐다. (...) 그녀가 돌아서서 그를 보았다. 계속 웃고 있었고, 안경엔 아직도 김이 서려 있었다. 그녀가 요리 때문에 밀가루와 닭고기 기름으로 엉망이 된 손을 들어보이며 물었다. "이것 좀 벗겨줄래?"

이후 메챠쿠챠했다!
않이!
이거 너무 내 취향 흑누님 아닙니까!
일러스트 하나 없는데 흥분했다!
나 이 책 보기 잘했어!
이름 뒤에 숨은 사랑의 모슈미를 내 최애로 임명합니다 ㅠㅠ 사... 샤릉합니다 ㅠㅠ.
아니 진짜 고골리 이 자식 여자 보는 눈이 없네 옆에 모슈미 있는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오금이 저리는 반전이다.

 

피로연에서 고골리는 양복으로, 모슈미는 가는 어깨끈이 달린 바나라시 실크로 만든 드레스로 갈아입었다. 그녀가 직접 디자인해서 재봉사 친구가 만들어준 옷이었다. 살와 카미즈가 어디가 어때서 입지 않느냐고 따지는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모슈미는 이 드레스를 입었다. 모슈미가 깜빡 잊고 숄을 의자 위에 놓아두고 일어섰을 때 그녀의 가느다란 구릿빛 어깨가 드러났고, 모슈미가 바른 특별한 파우더 때문에 어깨는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모슈미의 이미지는 이 분으로 정했습니다.
아마도 페이트 그랜드 오더의 캐스터로 짐작?

 

 

사실 줌파 라히리의 소설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이 소설의 결말이 어떨지도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학을 전공하는 여성들도 인간이다. 그런지라 그 가운데서도 능구렁이 같은 남자에게 휘둘리고, 주변 친구들에게 노예처럼 휘둘리고, 비밀로 지켜야할 일들도 술에 만취해서 서슴없이 폭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인간은 여성학을 공부한다고 해서 대단하지 않다. 오히려 여성학을 공부함으로써 여성에게서 인기를 얻으려는 남성보다 훨씬 더 멍청해 보인다. 예를 들어, 여성이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은 어떨까.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담배를 피운다는 건 해로운 일이다. 하지만 임신할 수도 있는 대부분의 여성들을 볼 때, 그닥 책임감있는 행동이라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남성들의 정자에도 해롭다고는 한다. 하지만 여성은 아이라는 생명에게 집을 마련해 주는 중대한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것이다. 결혼을 하지 않을 거라면 상관없지만, 결혼을 하는 사람이라면 남성과 여성 모두가 희생을 감수해야 함을 이 책은 담담하게 주장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최근 익명으로 어떤 남성의 성추행 성폭력을 폭로한 글들이 일부는 거짓임이 밝혀지고 있다. 폭력을 폭력으로서 대응하면 안 된다는 줌파 라히리의 선견지명이 최근 한국에서도 은연중에 뿌리내려지고 있다. 모슈미는 선명하게 빤한 거짓말을 함으로서 죄가 더욱 드러나게 되었다. 하지만 이름을 숨기는 게 딱히 거짓말이 아닌 것처럼 된 요즘 시점에서 사람들은 더욱 신중하게 옳고 그름을 판단해서 행동해야 할 일이다.

 

 그날 밤 고골리는 부모님이 이제 쓰시지 않는 RCA 턴테이블로 화이트 앨범의 3면을 듣고 있었다. 그룹이 해체될 무렵 태어난 고골리는 존, 폴, 조지, 그리고 링고의 열렬한 팬이었다. 최근 몇 년 동안 그들의 거의 모든 앨범을 사모았다. 문 뒤에 걸린 게시판에는 보스턴 글로브지에 실렸던, 이미 노랗게 바래고 나달나달해진 존 레논의 부고가 유일하게 붙어 있었다.

 

음악이 주가 되는 소설이 아니라서 소설에서 나온 모든 음악은 올리지 않는다. 하지만 80~90년대 당시 굉장히 인기가 있었던 음악들이 많이 나온다. 줌파 라히리의 소설이 매력있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니 한번 챙겨서 들어보시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