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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리색에 흐려진 일상 1 - AK Novel
다테 야스시 지음, 김지연 옮김, 에렛토 그림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3년 4월
평점 :
"모르면 배우도록, 그의 발상, 번뜩임은 신의 영역에 이르고 있지. 시청자를 쌈싸먹는 애드리브, 막말과 호통, 공채다운 정통 개그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그 두뇌는 저 복룡이나 봉추하고도 비견할 수 있다고. 고유명수로서 언제나 맨 먼저 상큼하게 나서는 그 자태는 쩜오 그 자체. 그야말로 진정한 희극인, 하얀 거성, 악마의 아들... 그게 바로 명수 옹이다."
요새 하도 일본 작가들이 혐한을 작품에 마구 던진다고 해서 기분이 우울했는데
이 책은 무한도전을 극찬하고 있다. 특히 명수옹을.
원작에서 짰는지 아니면 번역가가 짰는진 알 수 없긴 한데 명수형 이거 보고 기분좋아할까 ㅋㅋㅋㅋ
일단 스토리 이전에 세계관(?)을 설명한다면 대충 이렇다. 사람이 죽었다. 그 주변의 산 사람은 계속 죽은 사람을 생각한다. (좋은 만남이던 안 좋은 만남이던 주변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세상에 없고 무덤 속에 있다는 사실은 강렬한 충격을 준다.) 그리고 그 산 사람의 생각에 부응하여 죽은 사람이 나타난다. 그 사람은 자신과 죽은 사람의 생전 관계에 따라 그 귀신이 나타난 이유를 멋대로 판단한다. 그리고 그 귀신은 수호령이 되던 원령이 되던 산 사람에게 붙어다니게 되고, 아무리 끼가 있는 영능사라고 하더라도 귀신은 하나 이상 두기 힘들다. 만일 정말 드물게라도 그 원령이 여러 마리 붙어다니고 그게 하나로 합쳐질 수 있다면 원귀가 된다.
이 책이 예능을 가장한 만담으로 덮고 있지만 언뜻 보면 참 끔찍한 일이다. 아무도 생각하지 않으면 저 세상에서 편히 쉬었을 영이 다른 사람이 멋대로 생각한 것으로 인해 지상에 소환되었고, 그 영에게 멋대로 '자신을 저주하라'라고 말을 걸어 원령으로 만들다니.
실로 하늘이 무섭지 않은 것 같은 그 사람이 바로 이 깜찍한 주인공 우도 루리이다.
어찌 보면 그녀에게 그가 꼭 필요한 게 이해가 된다. 자신과 제일 가까운 사람이 누구보다도 센 원령이 되어 자신을 해치려 하고 있으니, 기분 전환으로 사람과 농담따먹기하려 끊임없이 장난을 거는 게 귀엽기도 하고. 눈이 부리부리하지만 단호하지 못하고 성격좋고 만개 로리로리 천국을 좋아하는(어째 토라도라의 누군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지만.) 콘노 타카미가 말려드는 것도 어쩔 수 없지.
호평보다는 악평이 많이 들렸던 소설이었고, 나도 그 독자들의 심정이 이해가 가긴 한다. 예컨대 왜 루리의 과거가 그렇게 빨리 돌직구로 등장하는 거냐. 주인공 과거는 단순하고 루리의 단짝친구 스이의 등장도 적절하니 그건 넘어간다 치고, 애초에 두번째 에피소드가 너무 우울했던 차란 말이다. 분위기를 좀 풀려고 하는 찰나에 루리의 이야기까지 섞이니 밀려드는 감정의 파도때문에 감당이 안 된다고. 작가가 유명해지려고 일부러 의도했으면 안타깝게도 판단 미스. 의식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질렀다면 참으로 불친절한 센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역가가 엄청나게 커버해줘서 무사히 소설의 진미를 이끌어낼 수 있어서 요행이었다. 이 소설의 번역가는 김지연인데, 라이트노벨 번역은 처음이라 한다. 궁금해서 검색해보니 책과 콩나무 출판사의 일본동화를 주로 번역했던가보다. 책과 콩나무 출판사 카페와는 나도 조금 인연이 있고 번역가 이름도 왠지 낯설지 않은게, 참 멀리 돌아서 만났구나 싶기도 하고... 아무튼 꽤 본인에겐 꽤 인상깊었던 소설이라 리뷰를 좀 길게 써버렸다.
김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