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중심이 되어 시와시학사 시인선 8
유재영 지음 / 큰나(시와시학사)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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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거친 빵은 다시 일어선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빵
그 이름은 거친 빵?
빵은 어둠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위하여
존재한다
눈물 없이 핀 꽃
피 묻지 않은 시
혁명 없는 도시
그렇다 그 언제인가
다시 일어설 거친 빵을 위하여
버릴 것은 버리자
ㅡ어둠 속의 빛
우리들의 거친 빵

 

 

 

빵을 위해 투쟁하는 건 맞는데

왠지 우리나라에선 밥이라던가 쌀이 더 정서에 맞는 것 같은데...

이 훌륭한 시에 딱히 토를 단다면 그것 하나뿐이랄까.

 

 어디에선가 들었던 것 같다. 시에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들어가면 그 시는 끝이라고. 하지만 이 시집에서는 그 논란에 정식으로 반박하듯이 정면에 '혼자', '쓸쓸히' 등의 말이 들어간다. 그렇지만 그 부분 빼고는 매우 훌륭한 비유와 구절들이 많다보니 이젠 감정이 표현된 단어가 어색하기보단 불쌍해진다고 할까. 시로 봐서는 누이를 매우 좋아한다거나 고향을 떠났던 것 같은데, 대체 무슨 과거가 있었던 걸까.

 사실 빵시리즈만 제외한다면 이 시는 전체적으로 매우 서정적이고 자연예찬의 성질을 띄고 있다. 여백의 미를 상당히 좋아하는지 띄어쓰기나 쉼표를 매우 잘 찍는 편이다. 비 오는 날 방 안에서 호젓하게 차를 마시며 읽기엔 매우 좋은 시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찡한 감동을 느낀 시는 주로 사회참여적 성질을 띄는 빵시리즈 하나 뿐이었지만 그래도 자연에 관련된 시들도 섬세한 게 좋다. 단어들로 그림을 그리는 느낌이라서 자연 풍경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달까.

 

 

그러고보니 뒷모습을 섬으로도 표현했던 것 같다.

문득 시에 잘 어울릴 것 같은 그림이 생각나 올려봤다.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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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이 아름답다 2013.7
녹색연합 편집부 엮음 / 녹색연합(잡지)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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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된 것 좋아할 것 없어요. 세상사 모든 게 옛날에 짚신신고 지게 맬 때보다 한 수 좋은 게 없어요. 발달되면 될수록 나쁜 것도 똑같이 많아져요. 송전탑 때문에 여름을 겨울같이 전기 틀어놓고 살고, 밤에 환하게 불 키면, 살기 좋아지는 건가? 방폐장처럼 나쁜 것도 더 많아지잖아요. 서울 사람들 밤에 낮처럼 불 키고, 우리는 변소 불 하나씩도 안 씁니다. 도시 사람을 위해 우리가 왜 죽어야 합니까. 꼭 필요하면 서울 근방에 발전소 세우고 철탑 세우든가." 햇볕의 땅, 밀양이 묻는다. 

 

 

님비 못지않은 사회적 위협세력들이 또 있다.

바로 전기를 그닥 필요로 하지도 않는 지역에다 발전소랑 송전탑 지어서 서울로 가져와 소비하는 핌피.

 

 근데 솔직히 말해보자. 아이들 학교 바로 뒤편에다가 송전탑 짓는 거 반대하는 게 님비인가? 초중고 다 있는 주택지역에다가 성범죄자 놓는 거 반대하는 게 님비인가? 만약 우리 아이가 거기 있다면? 먹고 살기가 각박해지다보니 점점 여자와 아이를 희생시키려는 분위기가 만연하는 게 눈에 대놓고 보여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굳이 일베를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여자라면 대놓고 까는 놈들을 상남자라고 추켜세우는 문화라던가, 10대들이 집을 나와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범죄를 저지르는데 폭력 외에 제재할 줄 몰라 쩔쩔매는 어른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만큼 다른 사람들에 대해 신경쓰는 사람이 줄어들었다는 소리도 된다.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무작정 돈을 빌려주거나 보증을 서라는 소리는 아니다. 난 이런 각박한 세상에서 미래의 후손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두 가지 있다고 생각한다. 직접적인 방법과 간접적인 방법이 있는데, 전자는 사회현상에 대한 참여이고 후자는 소소한 환경보호 실천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매우 많은 사람들이 낮에는 불을 다 꺼놓고 있고, 밤에는 LED 등불이라던가 최소한의 불만 켜놓는다면 밀양에 송전탑을 세우고 핵시설을 세워서 전기를 대량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더불어 본인은 전깃세까지 줄일 수 있으니 일석이조. 

 이번에 잡지가 싹 개편되었는데 절약과 분리수거에 관해 상당히 유용한 정보들이 많이 나와서 마음에 들었다. 너무 내용이 풍부해서 소재 고갈이 우려되긴 하지만 계속 이렇게 나왔으면 좋겠다.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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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5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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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사랑했다. 내 비록 다리가 다섯 달린 괴물이었지만 너를 사랑했다. 내 비록 비열하고 잔인했지만, 간악했지만, 무슨 말을 들어도 싸지만, 그래도 너를 사랑했다. 너를 사랑했다! 그리고 때로는 네 심정을 헤어릴 수 있었고, 그때마다 지옥의 괴로움을 맛보았다. 나의 아이야, 롤리타, 씩씩한 돌리 스킬러.- p. 458

 

 

 

역대 원작 롤리타와 궁합이 가장 잘 맞았다는 영화 롤리타의 주인공 롤리타.

배우 이름은 도미니크 스웨인인데 우리나라 나이로 16살에 주인공으로 발탁되었다 한다.

원작에서는 사실 12살 때부터 계부에게 잡혀살았다 하지만.

 

 사실 어릴 때부터 도전했었던 작품이었지만 험버트가 롤리타를 학교에 보내고 롤리타에 대한 의심병이 도지기 시작할 때부터 질려서 그만두었었다. 그 때는 아마 험버트도 그녀에 대한 육체적 사랑에 슬슬 물리고 집착 같은 것이 형성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롤리타가 다른 남자와 도망갈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자 다시 소유욕이 충만해졌겠지. 그러고 나서 또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임신한 롤리타를 볼 때, 그 때 아마 그는 자신이 정말로 롤리타를 사랑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사람은 언제나 지나가고 나서야 깨달으니까. 사랑하면 자연히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특히 정신병원에 조용히 수감되서 누워있다보면 더욱더 생각을 해보지 않을까.) 자신이 롤리타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비로소 깨달은 그는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질투에 눈이 멀어 롤리타의 첫사랑을 죽이고 나서도 (롤리타가 처음에 험버트를 따랐던 건 동경심이라고 치고.) 롤리타에 대해 책을 쓸 계획은 깜빡하고 고속도로를 역주행 한 것도 그 일종이라고 생각되고. 아니면 모든 것을 거꾸로 돌려 과거로 회귀하고 싶었을까.

 

 

그러나 아무리 험버트가 자신의 짝사랑을 아름답게 미화시켰다 한들 현실은 가혹하다.

 

 의붓아버지는 그 모양이고, 첫사랑마저 집단성교를 할 것을 강요했었던 롤리타는 더이상 정상적으로 한 남자를 사랑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게 되었다. 원래부터 강단도 세고 똑똑했는지 귀머거리같은 남편을 잡아서 어떻게든 살고 있긴 했지만, 아무리 포즈가 열정적이라 해도 승부욕이 없어 테니스 선수가 될 수 없는 신세와 똑같다. 으레 짝사랑이 도가 지나치면 사람을 망칠 수 있다는데, 짝사랑 상대가 만약에 아이라면 효과는 더 심하다. 소설에서는 정말 난리도 이런 난리가 있을 수 없다. 아이의 멀쩡한 가정을 파탄내고, 좋아하는 감정이고 뭐고 다 사라져버린 변덕스러운 아이와 함께 납치여행을 다니고, 멋대로 아이를 순수하다고 생각하면서 선입견을 뒤집어 씌우고 비뚤어진 권력으로 억누르고. 육체적 관계보다 훨씬 더 나쁜 건 이 난리통 속에서 서서히 무너져간 그녀의 주관, 그리고 자존심이었다. 역시 롤리타와 험버트같은 경우라면 이뤄지지 않는 게 더 나을지도.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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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리색에 흐려진 일상 1 - AK Novel
다테 야스시 지음, 김지연 옮김, 에렛토 그림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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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면 배우도록, 그의 발상, 번뜩임은 신의 영역에 이르고 있지. 시청자를 쌈싸먹는 애드리브, 막말과 호통, 공채다운 정통 개그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그 두뇌는 저 복룡이나 봉추하고도 비견할 수 있다고. 고유명수로서 언제나 맨 먼저 상큼하게 나서는 그 자태는 쩜오 그 자체. 그야말로 진정한 희극인, 하얀 거성, 악마의 아들... 그게 바로 명수 옹이다."

 

 

요새 하도 일본 작가들이 혐한을 작품에 마구 던진다고 해서 기분이 우울했는데

이 책은 무한도전을 극찬하고 있다. 특히 명수옹을.

원작에서 짰는지 아니면 번역가가 짰는진 알 수 없긴 한데 명수형 이거 보고 기분좋아할까 ㅋㅋㅋㅋ

 

 일단 스토리 이전에 세계관(?)을 설명한다면 대충 이렇다. 사람이 죽었다. 그 주변의 산 사람은 계속 죽은 사람을 생각한다. (좋은 만남이던 안 좋은 만남이던 주변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세상에 없고 무덤 속에 있다는 사실은 강렬한 충격을 준다.) 그리고 그 산 사람의 생각에 부응하여 죽은 사람이 나타난다. 그 사람은 자신과 죽은 사람의 생전 관계에 따라 그 귀신이 나타난 이유를 멋대로 판단한다. 그리고 그 귀신은 수호령이 되던 원령이 되던 산 사람에게 붙어다니게 되고, 아무리 끼가 있는 영능사라고 하더라도 귀신은 하나 이상 두기 힘들다. 만일 정말 드물게라도 그 원령이 여러 마리 붙어다니고 그게 하나로 합쳐질 수 있다면 원귀가 된다.

 이 책이 예능을 가장한 만담으로 덮고 있지만 언뜻 보면 참 끔찍한 일이다. 아무도 생각하지 않으면 저 세상에서 편히 쉬었을 영이 다른 사람이 멋대로 생각한 것으로 인해 지상에 소환되었고, 그 영에게 멋대로 '자신을 저주하라'라고 말을 걸어 원령으로 만들다니. 

 

 

 

실로 하늘이 무섭지 않은 것 같은 그 사람이 바로 이 깜찍한 주인공 우도 루리이다.

 

 어찌 보면 그녀에게 그가 꼭 필요한 게 이해가 된다. 자신과 제일 가까운 사람이 누구보다도 센 원령이 되어 자신을 해치려 하고 있으니, 기분 전환으로 사람과 농담따먹기하려 끊임없이 장난을 거는 게 귀엽기도 하고. 눈이 부리부리하지만 단호하지 못하고 성격좋고 만개 로리로리 천국을 좋아하는(어째 토라도라의 누군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지만.) 콘노 타카미가 말려드는 것도 어쩔 수 없지.

 호평보다는 악평이 많이 들렸던 소설이었고, 나도 그 독자들의 심정이 이해가 가긴 한다. 예컨대 왜 루리의 과거가 그렇게 빨리 돌직구로 등장하는 거냐. 주인공 과거는 단순하고 루리의 단짝친구 스이의 등장도 적절하니 그건 넘어간다 치고, 애초에 두번째 에피소드가 너무 우울했던 차란 말이다. 분위기를 좀 풀려고 하는 찰나에 루리의 이야기까지 섞이니 밀려드는 감정의 파도때문에 감당이 안 된다고. 작가가 유명해지려고 일부러 의도했으면 안타깝게도 판단 미스. 의식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질렀다면 참으로 불친절한 센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역가가 엄청나게 커버해줘서 무사히 소설의 진미를 이끌어낼 수 있어서 요행이었다. 이 소설의 번역가는 김지연인데, 라이트노벨 번역은 처음이라 한다. 궁금해서 검색해보니 책과 콩나무 출판사의 일본동화를 주로 번역했던가보다. 책과 콩나무 출판사 카페와는 나도 조금 인연이 있고 번역가 이름도 왠지 낯설지 않은게, 참 멀리 돌아서 만났구나 싶기도 하고... 아무튼 꽤 본인에겐 꽤 인상깊었던 소설이라 리뷰를 좀 길게 써버렸다.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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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 Novel Engine
보르자 지음, Riqurr 그림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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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우리가 체포해도 되요? 괜히 멋모르고 체포했다가 꼬이는 거 아니냐고요. 갑자기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어, 나 선도청장인데 거기 전화 받은 사람 이름이 누구요?' 이럼 어쩌죠? 전 머뭇거릴 거에요. 그럼 이러겠죠. '이름을 말하라는데 왜 말을 안 해?' 그래서 전 겁을 먹고 선배를 바꿔줘요. 그럼 선배에게 또 묻겠죠. '방금 전화받은 사람 관등성명 좀 말해봐요.' 그럼 선배는...."- p. 46

 

 

이건 전적으로 영희라는 한 캐릭터를 부각시키기 위한 소설이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듀라라라의 이자야와 맞붙어도 될 만한 강적이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는데 에필로그 읽어보니 그 정도까진 아니군 싶기도 하고.

 

 아무튼 위의 저 인상깊은 정치드립대사는 철수가 두번째로 무기정학을 먹을 위기에 처해있을 때 선도부실로 들어가자 선도부 졸개들이 주고받은 말이다. 그만큼 그 학교는 공권력이 쩔어있는 곳이다. 마치 자기가 페이트의 에미야이기라도 한 마냥 정의의식에 쩔어있는 철수에게는 한 마디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학교라고나 할까. 첫번째로 무기정학을 먹었던 이유도 어떤 남학생에게 폭력을 당했던 한 여학생을 옹호하기 위해 법적 고소를 하다가 말려들어서 이니까. 1년동안 학교를 강제로 쉬는 수치를 당했다면 왠만해선 그냥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면 될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학생과 다시 재소를 하기 위해 그는 학교로 향한다. 그리고 지부장에게 범죄를 도우라는 지시까지 묵묵히 듣고, 수행한다.

 여러 말을 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겠기에 자세한 말은 생략하겠지만 이 소설에서 주목할 것은 어떤 상황을 들여다보는 영희와 철수의 명백한 차이이다. 소설의 말미에서 독자들은 기묘한 아쉬움과 함께 그 둘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그녀는 '철수 앞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 단지 진실도 함께 말하지 않을 뿐이다. 내 생전 의붓아버지에게 강간당해 애를 집 근처 보육원에 보냈다는 비터버진의 여주보다 더 불안하고 서스펜스한 여주는 그녀밖에 없을 듯하다. 그나마 비터버진 남주는 사실을 모두 알지만 철수가 그녀에 대한 진실과, 소설 속 그녀의 과거에 대한 암시까지 다 뚜렷하게 알게 된다면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_-;;; 뭐 하지만 이 책은 단편이고 이야기는 소설 저 너머의 상상 속에서 계속 전개될 테니...

 책을 소장하고 싶긴 했으나 불행하게도 클라이막스에서 갑자기 뚝 끊기더니 앞부분이 반복해서 나오는 관계로 그럴 수 없게 생겼다. 이걸 중복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출판사에서 이런 건 좀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다. 재미있게 봤다가 갑자기 맥이 확 빠진다. 어쩌면 그 부분만 없었다면 별점 5개 만점을 줬을지도 모르는데.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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