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롱메롱 은주 문학과지성 시인선 383
김점용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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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들의 야유회 중에서

 

누가 불러 잠시 다녀온 것도 모두가 야유회를 간다고 하니 누군가 한 명은 당번으로 남아야 하니까 공으로 남 때리는 피구도 싫고 헛발질 잘하는 족구도 못해서 내가 남겠다고 했을 뿐인데 남아서 텅 빈 사무실의 텅 빈 의자에 한 번씩 앉아가면서 그들과 수건돌리기를 하며 놀았을 뿐인데 사람들은 혼자 데이트를 즐겼다 수군거리고

 

끼리끼리 모여 앉아 비닐을 둘러쓰고 말풍선을 부풀리고 고기를 뒤집고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손뼉을 치는 사이 내가 그들 뒤에 석유 냄새나는 기념수건을 번갈아 놓아가며 차례차례 술래로 만들었다는 걸 모르고 손을 뻗어 뒤를 더듬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혼자서 빙빙 돌다가 지쳐 쓰러졌다는 걸 모르고 사람들은 꾀병을 부린다 야유를 하고 야유회를 즐기고

 

 

 

사람들하고 같이 산다는 건 여러모로 피곤한 일이지만, 무엇보다 갇혀 사는 사람들끼리 노는 자리에서도 얼굴을 보는 게 꺼려져서 나는 야유회에 참석하기를 점점 거부하게 되었다. 내가 특히 한 번 참여하고 나선 두 번 다시 안 가는 데가 있는데, 그게 바로 동창회다. 돌림노래처럼 요새 무슨 일을 하는지 수익은 얼마인지 물어보는 게 흡사 사람은 아니고 앵무새나 고장난 로봇같아서.

 

 

아버지가 나오는 시는 굉장히 사적인 얘기라서 그런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 부분이 많다. 그러나 대부분은 불교 사상에 기반한 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관조와 인간 세상에 관한 고찰이 잘 드러나 있다. 사회에 관한 이야기를 술 이야기와 함께 해학적으로 풀어나가려 한 점도 돋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사실 들어보면 내용은 무지 아싼데(...) 이게 어떻게 재밌게 커버가 된다.

 

 

뱀이 나오는 가게 중에서

 

미용실은 전에 빵집이었고 감자고로케를 사러 갔다가

눈앞에 빤히 보이는데도 어제 나온 거라며

어쩔 수 없이 되돌아 나온 적이 있다

(...) 그 자리가 철물점이었을 때도

곧 봄이 온다고 이제 문풍지가 무슨 소용 있냐고 해서

옆 동네까지 걸어갔다 온 적이 있다

재개발이 되고 신축 건물이 들어서기 전에는

풋고추가 자라고 호박이 열리던 밭이었는데

자연의 주인들은 어떻게든 제자리를 지켜내는 모양인지

미용사는 드라이를 대충 해주고는

보던 신문을 다시 집어든다 돈을 안 받겠다 해서 대신

주머니에 있는 뱀 한 마리를 내려놓았다

 

 

 

수없이 바뀌더라도 골목 가게를 어떻게든 찾아가고픈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난 항상 실내에서 일하다보니 그런지 경관 탁 트인 곳이 좋아서 그런 느낌을 잘 모르겠다 ㅋ 낯선 곳의 골목 가게라면 가끔 찾아갈 때도 있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이 유행할 때 지어진 시인 듯하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보통 '내가 과거에 좋아했던 집이 문을 닫는다'라는 아득한 향수 아니면 '경쟁에서 진 것 뿐이고 신세대가 좋아하는 가게를 세운 게 뭐가 나쁘냐'라는 매정한 마음이 어우러져 서로 싸우는데, 여기선 달관한 듯한 새로운 시선이 느껴져서 마음에 들었다.

 

건너다니는 우물

ㅡ은실에게

 

한밤에 누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내가 말해도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가만히 들어보니 수화기 저편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무슨 일인지 물어볼 수도 없고 그냥 듣기만 했습니다

십 분이 지나고 삼십 분이 지났습니다

그는 평소 차갑고 냉정한 사람

술을 많이 마신 모양입니다

무슨 말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그는 계속 울기만 했습니다

중간 중간 코를 풀어가면서 말입니다

먼저 말을 꺼낼까 몇 번을 망설였지만

어떤 말이 위로가 될지 몰라 그냥 듣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망설이며 그의 울음을 들어주는 사이

내게도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생긴 것 같았습니다

이 추운 겨울밤에도 얼지 않는

깊은 우물이 하나 생긴 것 같았습니다

 

 

 

남자들 아직도 술 취해서 전화해서는 뜻 모를 소리를 질러대는 게 여자들에게 무슨 로망인 줄 아는 것 같은데(...) 아니 나도 저녁밥 먹고 푹 잔 다음 아침에 일어나 출근해야 하는 몸인데 일과 중단되고 아닌 밤중에 전화받는 거 전혀 달갑지 않고요 ㅡㅡ 그건 즉 내 프라이버시를 고려 안 한다는 소린데 성품이 좋은 사람이라 생각할리가.. 실제로 나한테 이 짓거리 한 인간 있는데 최악으로 깨졌으니 주정이 있으면 아예 술을 마시질 맙시다; 아님 나처럼 핸드폰 저 멀리 던져두고 혼자 마시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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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0-12-31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르님 서재방에 2021년 연하장 놓고 가여 ㅋㅋ

2021년 새해 행복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2021년 신축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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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복많이 받으세요

갈매미르 2021-01-06 05:01   좋아요 1 | URL
댓글 넘 감사드려요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여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