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죽어감에 답하다 - 죽음에 관해 가장 많이 묻는 질문들에 답하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지음, 안진희 옮김 / 청미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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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병원 원내 목사이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죽음과 같은 소식을 처음으로 전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유족이 고인의 죽음을 수용하도록 가장 잘 도울 수 있을까요?

나쁜 소식을 전하는 순간에는 유족이 죽음을 수용하도록 도울 수가 없습니다. (...) 그리고 신에게 따지고, 만약 필요하다면 신이나 의료진에 대한 분노를 터뜨리게 내버려두십시오. 그들에게 브레이크를 걸지 마십시오. 분노에 찬 표현이나 욕설을 사용하지 못하게 막지도 마십시오. 

 

 

우문현답. 지금은 목사 얘기지만 이거 못하는 의사 참 많더라. 심지어 기물파손하면 고소한다는 내용이 쓰여져 있는 종이를 진료실에 붙인 자도 있었음. 그런 글을 본다고 죽음이 선포된 환자가 진정될까 싶더만 역시나 잘 안 되는구만.

 

이 얘기는 처음 해보지만 거기서 일해본 지도 오래되었으니 괜찮겠지? 이 글 보시면 경악스러워 하시겠지만 말하지 않았습니까. 의사들 중 싸이코 많다고.

 

주로 환자에게 병을 가르쳐주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이 배배 꼬인 듯한 질문을 많이 한다. 내 페친을 검진한 의사들도 사실을 알려주지 않으려고 많이 그랬다 한다. 돌려돌려서 말하거나, 치료법이 없고 위험할 수도 있지만 괜찮을 거라거나, 정식 진단명을 알려주지 않거나 하는 식.

페친은 많은 정신과 의사-심지어 퀴어 프렌들리 한 곳의 의사들과도 문제가 있었던 사람이다. 일단 내과나 외과 전문의들은 그의 병은 희귀질환이라 했고 그 중에서도 여러 가지 희귀질환이 겹친 희귀케이스여서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문제는 정신과 의사가 오히려 상황을 부정하고 페친에게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라느니, 검사 결과가 다 괜찮을 거라느니 말했다는 점이다.

페친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고 일어나지 않을 거라 믿고 싶지만 십만명, 백만명에 한 명 꼴의 진단명과 합병증과 부작용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데 그 상황을 부정한다고 뭐가 달라지는지 모르겠다고 나에게 말했다. 적절한 정신과 치료를 위해서라도 과장된 공포와 당면한 실재적인 위협을 구분하게 해주고 현실을 인정하게 도와줘야지 왜 그걸 싹 다 부정적인 사고로 묶어 퉁치려 드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일단 자기계발 책같은 요소가 짙다. 이 책을 봄으로써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죽을지 혹은 자신의 죽음을 어떤 모습으로 받아들일지 생각할 수 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할 수도 있지만, 특히 시한부 환자나 치매 걸린 어르신들에 대한 사회복지사의 올바른 대처법이 잘 설명되어 있다. 죽음과 죽어감과 함께 적극 추천하는 책이다.

 

현재 저는 시력을 상실하고 있는 한 여성과 함께 일하고 있고 그녀는 부정의 단계에 있습니다. 의사는 아직 그녀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회복지사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일까요?

 

그녀가 그 공포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해주세요. 그런 다음 그녀에게 오디오북, 맹인용 지팡이, 맹인 안내견, 시력을 상실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세요. 하지만 이것이 끔찍한 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건 금물입니다.

 

 

이런 인간들 상당히 많다. 자폐걸린 사람 혹은 그 사람의 가족에게 '자폐는 옛날엔 아무것도 아니었어' 같은 말을 한다거나. 그 옛날 바보 형은 그럼 어떤 일을 당해왔었단 말인가. 앞으로의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식의 위로는 아무 도움도 안 되는데, 의외로 아직 흔하게 그런 말들이 나돌고 있더라.

환자들은 다양한 언어들을 이용하여 우리에게 자신의 욕구들을 전달할 수 있다. 매우 어린 환자들은 가령 그림이나 놀이 같은 '상징적 비음성 언어'를 이용하여 우리에게 '말을 한다'. 만약 어린 환자(이식용 신장을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는 어린 환자)가 상상의 권총으로 몸이 많이 아픈 룸메이트를 쏜다면, 이 환자는 룸메이트가 빨리 죽어서 자신이 그의 신장 중 하나를 받으면 좋겠다는 다급한 욕구를 표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부모님께 추천해드렸는데, 읽기가 너무 힘들다 하시더라. 자신도 저렇게 죽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슬프다 하시면서. 그러나 난 그것은 감정이입에 불과하다 생각한다. 이 책에선 불치병에 걸린 어린아이도 많이 등장한다.

말하지 않는 환자들도 있습니까? 이들은 우리 사회의 희생자들입니까?

 

예를 들어 어떤 여성은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몇 주 동안 병실에 혼자 누워 있었습니다. (...) 하지만 우리 병원의 음악치료사 중 한 명이 단순히 그녀의 병실에 들어가서 노래를 부르고 기타를 연주하자, 그녀가 갑자기 두 눈을 번쩍 뜬 후 노래를 부르기 시작해서 모두들 깜짝 놀랐습니다. 노래를 다 부르고 나서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물었습니다. "도대체 이 노래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찬송가라는 걸 어떻게 알았나요?"

 

 

최근 의사가 적다고 하는데, 난 그렇다기보단 이런 분들이 국내에 심각하게 적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여성분 눈을 뜨셔서 정말 다행이다 ㅠ

 

환자가 혼수상태일 때 환자의 가족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당신은 가족이 계속 일상생활을 영위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젊은이들은 데이트를 하고, 영화를 보러 가고, 보통 때 하던 일들을 해야 합니다.

 

 

나도 찬성하는데 나는 쓸데없는 도움을 주기보단 괴로움에 빠진 사람들에게 할 일에 대해 일러주는 게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건 화가 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평상시 하는 일을 완전히 망치면 더욱 분노가 마음을 잠식하게 된다. 집중이 안 되더라도 조금씩 할 일을 찾다보면 금방 마음이 가라앉게 된다.

 

 

자신의 감정을 지속적으로 들여다보면 자기 자신의 죽음과 대면할 수 있을까요? (...)

 

우리가 자기 자신의 죽음과 대면할 수 있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 우리는 문학 작품이나 시를 읽을 수 있습니다. 또는 음악, 드라마, 미술 등 다양한 형식 안에서 우리에게 제시되는 '죽음'이라는 주제를 숙고해볼 수 있습니다. (...) 그리고 편안한 친구들이나 지인들과 함께 모임을 만들어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만의 관점을 형성할 수도 있습니다. 종교는 훨씬 더 넓은 의미에서 죽음에 대해 숙고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심이 깊은 사람은 삶의 의미, 그리고 당연히 죽음의 의미에 대해 숙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질문과 대답으로만 이루어져 있기에 이 책에는 기존의 죽음과 죽어감에는 없던 단점과 장점이 동시에 존재한다. 단점은 일단 위에서 말했듯이 쓸모없어 보이고 어떨 때 저자에 대한 인신공격이라고 할 수도 있는 질문이 많다는 것이다. 다행히 저자는 이런 질문들에 침착하고 세세하게 답한다. 장점은 돌발적인 질문으로 인해 기존 책엔 없던 의사로서의 철학이 저자의 입에서 직접 나온다는 점이다. 죽음과 죽어감을 더욱 깊게 파고들 수 있는 책이다.

 

우리 사회의 양로원은 우리가 노인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슬플 만큼 여지없이 보여주는 공간이다. 우리는 노인들에게 주거지와 숙식을 제공하고 때때로 텔레비전과 수영장, 골프장, 댄스 시설까지 제공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에게서 다른 사람을 돕고, 베풀고, 자신만의 고유한 서비스(즉, 그들이 수십 년동안 축적한 지혜와 경험들)를 제공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이건 지금도 다르지 않은 듯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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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뭐라고 - 시크한 독거 작가의 일상 철학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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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반에 눈을 떴다. (...) 베겟머리를 더듬거려 손에 잡힌 책 베트남에서 온 또 한 명의 마지막 황제를 꾸벅꾸벅 졸면서 읽었다. 나는 베트남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베트남전쟁을 다룬 미국 영화 속 정보랑 보도된 뉴스밖에 모른다. 그렇다 치더라도 백인들은 지독하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내내 그랬다.

 

 

요새 새벽 4시에 일어나고 있다.

 

오늘처럼 컨디션이 좋으면 새벽 3시 반에 일어난다. 어쨌던 일찍 잘 수 있어서 이런 시간에도 일어나는 게 가능하다. 아직까지 내가 잘 살 수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노 요코는 일어나기 귀찮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마다 뭔가 해야 할 일이 많다. 죽는 게 뭐라고에서는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죽은 사람들이라고 시작하더니.. 아무래도 이 작가는 첫 줄에 신경을 쓰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시작이 매우 적절하다고 할까. 역시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게 하루를 시작하는 전형적인 방법이 아닌가. 일기 형식으로 에세이를 진행하는 점도 상당히 마음에 든다. 아무래도 난 아직 죽음보단 사는 것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밤에 프로젝트 X(힘든 과정을 극복하고 성공하는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NHK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울었다. (...) 그나저나 저 아무개 도모로요(다구치 도모로요. 프로젝트 X의 내레이션을 담당한 배우)라는 사람의 목소리로 "그때 XX는 말했다. 좋아, 해보자고! OO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라는 내레이션이 흐르면, 설령 프로젝트가 군고구마 장사라 해도 눈물이 날 지경이다. 모처럼 시청자를 감동시키려고 만든 방송이니만큼 우는 게 이득이겠지.

 

 

일종의 극한직업 프로그램인가. 근데 한국에 계신 우리 부모님은 이 프로가 나오면 채널을 돌리신다. 우리도 힘들어 죽겠는데 뭐하러 남이 힘든 걸 보냐고. 분명 저런 프로그램이 나오면 박장대소를 하다 혀를 끌끌 차며 채널을 돌려서 야구를 보시겠지() 사실 나도 저런 걸 보고 운다니 일본은 참 이해가 안 되는 나라구나 싶다.

토토코 씨는 엄청나게 활달하고 몹시 키가 큰 여자다. 요전에 치매 걸린 엄마한테 함께 갔더니 엄마가 "이분은 남편이야?"라고 물었다.

(...) 나는 토토코 씨가 다카라즈카(여성으로만 구성된 가극단)에 남자 역할로 들어갔다면 대스타가 되었으리라고 항상 생각한다.

 

 

 

남자가 한 명 껴 있긴 하지만 대충 사쿠라 대전의 마리아같다고 생각하면 되려나.

비디오 대여점 앞 신호등에서 비디오나 잔뜩 빌려 태평한 섣달그믐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홍백 가요 대전에는 내가 모르는 젊은 애들만 나온다. 모르는 노래뿐이다.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기를 기다리며 가게 출입구를 살펴보니 젊은이들이 들락거린다.

저 애들은 섣달그믐인데도 비디오나 볼 수밖에 없는 외로운 젊은이들인가. (...) 생판 모르는 남들이 비디오 빌리는 풍경에 대고 오지랖 넓게 걱정하는 내 모습을 타인의 눈으로 본다면 어떨까. 멀쩡한 할머니가 섣달그믐에 비디오를 대여섯 개씩 빌린다면 불쌍한 할머니, 황량한 풍경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 나는 체면 때문에 비디오 대여점 방문을 포기했다.

 

 

비디오 대여점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다 ㅎㅎ 지금은 모두들 넷플릭스를 사용하니 저런 민망해질 일은 없겠지. 그리고 잔소리 듣고 살기 싫을텐데 뭐하러 명절날 굳이 부모님들 뵈러 가냐.. 명절날 가족들끼리 모여서 굳이 스트레스 받을 거면 그냥 다들 집에서 쉬자는 게 내 생각이다. 어차피 사회적 거리두기도 해야할 테고.

"저어,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ㅇㅇ예요." 기억 못한다. "요즘 전원생활 관련 잡지를 만들고 있는데요, 이번 호에서는 가루이자와를 다루려고요. 원고 좀 써 주실 수 있을까요?" "이봐요, 가루이자와랑 내가 사는 기타카루이자와는 다른 데예요." (...) "아, 그렇군요. 그래도 그림이랑 글을 둘 다 부탁드리고 싶은데요." "괜찮은 사람 소개해드릴게요. 나카카루이자와에 사는데 그림이랑 글솜씨가 훌륭해요. 부인은 유리공예가고 본인은 클래식 카를 두 대나 가지고 있죠. 멋지게 사는 사람이에요." "누구신데요?" "이름은 사토 마사히로인데, 카 클래식이라는 잡지에 그림이랑 글을 기고해요. 그림이 정말 좋아요." "저, 좀 더 저명한 분이....... 요전에 이즈 편에서는 아사이 신페이(사진작가이자 배우) 씨께 부탁드렸거든요."

 

 

 

이건 충분히 화낼 만하다 보는데. 가루이자와가 시골인지도 의문스럽지만, 아무튼 사노 요코가 어디 사는지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전화를 했고.. 기껏 대신할 사람을 소개시켜준다 하니 거절까지; 책에서까지 나와버렸으니 잡지 인생 접게 되어버렸겠지만 좀 매너가 없네; 일본 사람들은 친절하다더니.

 

"난 욘사마 데리고 집에 가고 싶어." 희귀한 남자 K는 말했다. "네가 게이인지 슬슬 걱정된다." 희귀한 남자 K가 비길 데 없는 호색가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ㄷ 욘사마의 정절(?)은 무사할 수 있을 것인가.

3일째는 속초에 들렀다가 판문점으로 갔다. (...) 판문점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 나온 모습 그대로였다. 그 영화는 예산을 아낄 수 있었을 것이다.

(...) 한국인 친구는 말했다. 삼팔선은 공산주의로부터 일본을 지켜주고 있다고. 게다가 일본은 한국전쟁으로 크게 한몫 보기까지 했다.

"한국은 한 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인의 정은 내부를 향해 있고 애증도 그 안에서 소비되니까 외부로 나갈 여력이 없는 것이다. 북한도 남한도, 한 민족의 애증이 내부에서 부딪히는 거겠지.

 

 

 

아 제발 한남 좀 닥쳐줘 ㅋ 글을 읽으면서 내가 다 부끄럽다. 왜 부끄러움은 항상 나같은 인간의 몫인가 한남들은 저 말이 왜 부끄러운지도 모를텐데(...) 아침에도 밤에도 새벽에도 존내 가르치려 드는 한남들이 리얼하게 등장한다.

사실 이 인간 말고 전에 더 전형적인 한남이 등장하는데 ㅋ 아니 왜 이런 분들과 친구하고 살지? 하기사 이런 분들과 결혼한 여성들이 고생하겠지.. ㅠ 다들 어서 안전이혼하셔야 할텐데 ㄷ

 

쓰지도 않는 휴대전화가 고장 났다. 팸플릿을 보며 배우 고바야시 게이주가 선전하는 노인용 휴대전화를 찾던 중에 아들이 참견했다. (...) "내가 사 줄게." 아들이 말했다. (...) 정사각형의 새빨간 신제품을 손에 넣었다. 뛸 듯 기뻤다. 나는 예순넷의 남동생에게 도전하고 싶었다. (...) 나는 문자만 필사적으로 외웠다. 손이 땀으로 흥건했다. (...) "벨소리도 좋아하는 노래로 설정할 수 있는데. 겨울연가로 할까?" "그런 건 필요 없어." "라디오도 들을 수 있다고." "그런 건 필요 없어. 미안한데 익숙해질 때까지 너한테 연습 삼아 보낼게." 히라가나로만 쓴, 마침표도 없는 문장 네 줄을 만드는 데 30분이나 걸렸고 손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아들에게 전송하고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문자 갔어?" "응, 좀 덜떨어진 사람이 쓴 것 같은 문자가 왔어."

 

 

이게 남의 일이 아니다 ㅠ

나는 핸드폰 얼리어답터도 아니니 팟캐스트같은 걸로 IT 계열에 대해 열심히 알아보는 수밖에.

 "내가 회사에 들어갔을 땐 컴퓨터가 없었어. 처음 쓴 컴퓨터는 크기가 다다미 석 장 정도나 됐으니까. 사용법을 외워서 젊은 애들한테 가르쳤지. 이제 다 가르쳤나 싶으면 또 새 컴퓨터가 들어와. 다시 외워서 알려주면, 또 새로운 게 들어오고. 그런 일의 반복이야." 아, 일본은 어느 회사나 모모 언니 같은 사람이 있었기에 경제를 지탱해왔구나.

 

 

근데 지금은 일본이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그나저나 초반에 컴퓨터 크기 신경쓰인다 무슨 에니악 쓰셨나요;;

 

납작하게 늘어난, 몽골 스모 선수(스모의 천하장사에 해당하는 요코즈나는 2003년부터 몽골 출신 선수들이 장악했다)만큼이나 커다란 바퀴벌레가 자고 있었던 내 아래쪽에서 버르적거린다. 1제곱센티미터 정도의 삿자리무늬가 아로새겨진 날개는 몹시 아름답게 번들번들 빛난다. 깜짝 놀라서 잠에서 깼다. (...) 일주일 전에 노인 병원에 세 차례나 가서 치매 검사를 받았다. 병원에서는 노망이나 치매 같은 단어를 쓰지 않고 건망증 외래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화가 난다. 그게 뭐든 간에 단어를 바꿔 부르면 화가 난다. 정신분열증을 조현병이라고 하거나 장님을 눈이 불편한 사람이라고들 한다. 호칭을 바꾼들 상태가 달라질 리 없다.

 

 

여담이지만 스모 애니도 있는데 치명적인 작붕이 있어 추천을 못하겠음. 만화로 보시길.

그나저나 꿈에 벌레를 봤다는 건 엄청 스트레스 받았다는 메시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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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성 장애아동의 내면세계 - 고기능 자폐성 장애아동들의 글과 그림으로 본
Rebecca Chilvers 지음, 신현기.남경욱 옮김 / 시그마프레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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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사람들이 거의 들어본 적조차 없었던 장애 증상인 자폐증이 1994년을 기점으로 일간지의 가장 큰 뉴스거리로 장식되는 등 장애계의 현실이 변모하였다. 이 증상은 정부가 나서서 다루고 있는 문제인 동시에 공중 보건의 측면에서도 주요 관심거리가 되었고, 열띤 토론의 주제가 되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자폐증 진단이 증가한 이유는 어찌됐건 '비전형적' 행동을 보이는 아동에 대하여 의료인들이 지나치게 병리적으로 접근하는 등 과도한 열정이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나도 이렇게 생각한다.

 

사실상 사람들은 누구나 정신에 장애가 되는 게 있다고 보는데, 그게 다수의 사람들에게 심각한 해를 끼치거나 결국 장애가 있는 사람이 스스로 병원에 가면 정신병이 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나는 글쓰는 게 빨랐고 회화가 늦은 편인데, 지금도 영어가 작문은 잘 되는데 회화를 못 한다. 그러나 어른이 된 지금은 약간 공부에 방해가 될 뿐이지, 누구도 그걸 '장애'라 칭하진 않는다. 사람들의 이야기에 신경쓰는 건 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따져보면 그들의 오락가락하는 소리에 피해를 입는 건 결국 정신에 장애가 있는 아동 그리고 부모다. 물론 그렇다 해서 정신병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다. 보다 정밀한 검진이 필요하다는 뜻이지.

 

'나에 관해'에서 발췌

 

조디오 알렌, 15세

 

정말 내가 자폐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도 보았고, 지금도 여전히 내가 정말로 정상인지 아니면 다른 장애인처럼 유별나게 보이는지 생각해 보곤 해요. 맙소사! 지금 내가 런던에서 열리는 장애인 올림픽에 나가는 상상을 했어요.

(...) 제 취미는 먹고, 마시고, 축구하고, 플레이스테이션(PS2) 게임하고, 피카딜리와 같은 번화가에서 쇼핑을 하는 거예요.

 

 

글에서 나오듯이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게임을 좋아하고 운동도 좋아하니, 자신도 장애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상당히 명확하게 표출되어 있다.

 

아무래도 가장 오타쿠같은 아이이다보니 책을 읽으면서 더욱 관심을 갖게 되더라. 뒷장에 소원을 적는 게 있는데, 거기서 그는 일본에 가고 싶고 미국에도 가고 싶다고 했다. 그렇지 오타쿠면 성지순례를 하고 싶지 ㅋ 이 책이 나온 시기상 지금쯤이면 어른이 되고도 남았을텐데 첫 번째와 두 번째 꿈은 제대로 이루었을지 궁금하다.

내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네이던 캐시 데이비슨, 18세

 

나는 사람들이 아스퍼거를 가진 사람들의 재능을 질투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내 경우를 보자면, 나는 비트박스와 랩을 할 수 있고 그림을 그릴 줄 알고 기타를 연주하는 등 다양한 재능으로 인하여 아주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또 나는 구슬이 굴러가도록 만들어진 완구를 발명할 수 있고, 내가 원하는 대로 조각을 할 수도 있다.

 

 

 

젠장 솔직히 부럽네 ㅋㅋ

둘째, 자폐성 장애아동은 다른 또래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학습을 하는 경향이 있다. (...) 또한 사실, 그림, 기술적 절차, 기재와 같은 학습 자료의 다른 측면에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관심은 특정 영역(컴퓨터 프로그래밍 혹은 제품 생산기술 영역)에는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아동을 유리한 위치에 세워줄 수도 있지만 학교에서 적용되고 있는 광범위한 교육 과정과는 호환성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잘 할 수 있다는 얘기는 새롭게 들어봤다.

페친이 그러는데 특정 패턴에 민감해서 그렇다고. 그리고 되새김을 일반인보다 자주 반복하는 편이라 한다. 그래서 수학 언어가 자폐특성을 갖고 있는 아이들에게 접근하기 쉬운 면이 있단다. 컴퓨터 프로그래밍도 수학 모르면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자폐증이 있는 아이들 중 모두가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어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시한다.

최근 어느 초등학교를 방문했을 때 어떤 보조교사는 만화 심슨가족에 특이한 관심을 보이는 자폐성 장애아동과 함께 활동을 하고 있었다. 보조 교사는 학급에서 그 만화를 금지히는 대신 가위로 오려낸 만화 캐릭터에 달린 말풍선에 핵심적인 지시 사항과 확인 사항들을 담아 활용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어떤 특정 상황이 아동의 불안을 초래하게 되면 그 보조 교사는 "너를 도와줄 사람이 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어!" 라는 말풍선이 달린 호머 심슨에게 소년이 주목하도록 지도하였다. 이러한 말은 교사가 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가 '할 때' 훨씬 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거 확실히 좋은 방법인 듯하다 ㅎㅎ 캐릭터의 특성을 파악해서 그 말투를 가능한 한 재현할 수 있다면 더욱 쓸만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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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죽어감 - 죽어가는 사람이 의사, 간호사, 성직자 그리고 가족에게 가르쳐주는 것들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지음, 이진 옮김 / 청미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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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되도록 안 오거나 짧게 머물러주는 게 환자에게나 의료진에게 도움이 되는 가족도 있다. 스물두 살 된 자신의 아들을 아기처럼 다루면서, 자기 외에는 그 누구도 아들을 돌보지 못하게 했던 어머니가 있었다. 아들은 혼자서도 충분히 스스로를 돌볼 수 있었지만 어머니는 그 아들을 씻겨주고 이를 닦아주었으며 용변 후 뒤처리까지 해주었다. 환자는 어머니가 나타날 때마다 짜증을 부렸고 화를 냈다. 간호사들도 환자의 어머니의 태도에 질렸고 점점 더 그녀를 싫어하게 되었다. 사회복지사가 몇 번이나 그녀와 대화를 하려고 시도했지만 매번 불쾌한 말들과 함께 쫓겨나곤 했다. (...) 비록 건강한 관계로 보이진 않았을지언정, 우리가 두 사람의 관계에 개입한 것이 과연 그에게 도움이 될까? 어쩌면 간호사들을 '나쁜 엄마'처럼 보이게 만들고 구원자를 자처하는 우리의 환상에 찬물을 끼얹은 열성적인 어머니에게 우리의 분노를 표출했던 건 아닐까?

 

 

나는 앞으로 이게 중요한 테마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간혹 라떼는 말이야를 들먹이며 부모가 아이(자신)의 이빨을 닦아주지 않았다느니 거론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신은 부모가 이빨을 닦아주지 않는 시대를 살았고, 지금은 부모가 아이의 이빨을 닦아준다. 질투로 보이지 않으려면, 그냥 생각만 하고 말로 드러내거나 제재하지 않는 게 최선이다. 만일 이 시대의 부모가 좀 더 나이든 세대(혹은 아이를 낳아보지 않은 사람)에게 조언을 구한다면, 그 때 적절하게 상대방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도록 답해주면 된다. 특히 아이 쪽이 다 죽어가 앞으로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듯한 환자라면 말할 필요도 없다.

 

역시 이론은 원서를 직접 봐야 한다고 하지만, 이 죽음과 죽어감이란 책 만큼 정확한 설명인 경우는 없다고 본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하면 죽음과 고립, 분노, 협상, 우울, 수용 이 다섯 가지 단어만 생각나고 의학과 관련된 것을 배우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단어만 달달 외울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람이 쓴 작품은 복잡하고 전문 단어가 많이 쓰여져 있고 재미없을 것이라 치부하고 넘어가게 마련이다. 나도 그런 부류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 책은 사실 불치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거나 말기 환자들을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혹은 죽음에 대해 다룬 책이라고 겁먹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간들이다. 이런 책을 보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다양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지 알게 된다면, 죽기 직전에 겪는 불편을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한 인간에게 초점을 맞추는 대신 숫자와 규모에 초점을 맞추고, 수업의 규모가 커지고, 교수와 학생의 교류가 사라지고 대신 폐쇄회로 TV 강의, 음성 자료, 동영상 같은 것으로 대체되고, 그런 식으로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을 점점 더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가르친다면 이 사회는 어떻게 될까?

 

 

이게 코로나19로 인해 급격히 앞당겨져서 실행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

 

이웃의 죽음이라든가 전투와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 고속 도로에서 죽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도 우리 자신의 불멸성에 대한 무의식적인 믿음은 더욱 견고해질 뿐이며 나아가서 우리는ㅡ무의식 세계의 은밀하고도 사적인 영역 안에서ㅡ죽음이 언제나 '내가 아닌 내 옆 사람'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라는 사실을 즐기고 있다.

 

이러한 부정이 불가능해지면, 우리는 죽음에 도전함으로써 죽음을 정복하려 한다. 고속 도로에서 전속력으로 달릴 수 있었다면, 베트남전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었다면, 마치 실제로 죽음에 대한 면역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우리는 우리 측 인명 손실의 열 배가 넘는 적군을 죽였다. 우리가 거의 매일 뉴스에서 듣는 소식이다. 이것은 어쩌면 전지전능함이나 불멸성에 대한 우리의 유아적 소망이 투영된 것은 아닐까?

 

  

의외로 흔히 볼 수 있다. 미친 소를 먹을 확률이 낮다며 일부러 미국산 소를 사먹었던 10년 전 우리의 모습이나, 혹은 일본에서 아직도 후쿠시마 산 채소를 굳이 먹으려 하는 경우가 그렇다. 북한 독재자가 무슨 일을 벌일 때마다 굳이 예비군 군복 사진을 찍어 SNS에 뿌리는 한남의 유아적 심경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로또같은 죽음의 확률이 자신에게 안 돌아갈 거란 보장은 없지.

 

 

만약 우리 자신이 죽음을 침착하게 대면할 수 없다면 어떻게 환자들을 도울 수 있겠는가? 그런 경우 우리는 환자들이 제발 그 끔찍한 질문을 하지 말기를 바랄 것이다. 우리는 에둘러 말하면서 온갖 자질구레한 얘기들이나 날씨 얘기를 할 것이고, 민감한 환자라면 우리와 함께 게임을 하면서, 자신이 다가오는 봄까지 살지 못하리란 것을 알면서도 다가올 봄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런 의사들에게 물어보면, 환자들이 진실을 알고 싶어 하지 않고 절대로 진실을 물어보지 않는다고, 따라서 아무 문제도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사실 그 의사들은 환자들이 그런 질문을 하지 않은 것에 무척 안도하고 때로는 그들이 환자들의 그러한 반응을 유발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나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그걸 누군가 알려줬음 좋겠다고 생각한다. 직장이고 뭐고 다 때려치고 얼마 안 남은 기간동안 할 수 있는, 평소 하고싶었던 거 다 하고 세상 떠나면 얼마나 좋을까 ㅎㅎ

 

그녀는 크리스천 사이언스의 신자였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신앙을 지켰다. (...) 몸이 쇠약해질수록 그녀의 화장은 점점 더 괴기스러워졌다. 처음에는 붉은색 립스틱만 엷게 발랐지만 나중에는 화장이 점점 더 요란해지고 점점 더 붉어져서 광대를 닮아갔다. 마지막이 다가올수록 그녀의 옷차림도 똑같이 요란해지고 알록달록해졌다. 마지막 며칠 동안 그녀는 거울을 보는 것을 피하면서도 급격하게 흉측해지는 외모와 깊어가는 절망감을 감추기 위한 가면무도회를 멈추지 않았다.

 

 

ㅉㅉ 사이비 종교가 이렇게 여러 사람들 망친다니깐.

종교 말고도 여러가지 이유로 치료를 받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죽기 전 하는 말은 '더 이상은 못하겠어요.'라고 한다. 오히려 그들은 죽음으로서 삶의 짐을 내려놓을 때 더 편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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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게 뭐라고 - 시크한 독거 작가의 죽음 철학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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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기타카루이자와에 놀러 간 적도 있다. 숲 속의 별장지 '다이가쿠무라(1927년 호세대학의 학장 마쓰무로 이타스가 자신이 소유한 토지를 학자나 문화인 등에게 분양하여 개발한 별장지)'는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 "여기서 살아보면 어때?" 요코 씨가 우리에게 말했다. "파격적으로 싼 땅이 나와 있는데."

나루짱은 마음이 동요되는 듯했다. (...) 하지만 파격적으로 쌌던 까닭은 엄마와 아들이 동반 자살한 땅이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시라이시 가요코('광기의 여배우'로 불렸던 가부키 배우)에 아들은 누쿠미즈 요이치(예능 프로그램에서 머리숱이 적어 놀림당하는 캐릭터를 가진 배우) 같았다는 말을 듣고, K가 심사숙고 끝에 땅을 포기했던 건 유감이었다.

 

 

원래 땅값이 싼 곳은 대부분 이런 사연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IMF 때 그런 집이 많았다고 한다. 최근 부동산을 하고 있는 친구에게 이런 말을 들었는데, 심지어 글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니 묘한 기분이다.

 

그 유명한 사노 요코의 작품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 두 가지만 밝히겠다. 아무래도 이름난 사람의 작품이라 아무도 까지 못할 테니 또 아무리 (심지어 작가 본인에게까지) 비난당해도 멘탈이 탄탄한 내가 이 책을 까고 욕먹는 거 감수해야지 어쩌겠냐.

첫째, 전교조를 깐다. 예를 들면 전교조 놈들은 사흘이라는 낱말도 모른다 그런 식이다. 일단 그들이 한자를 보통 사람들보다 더 모른다는 근거도 없지만, 한자를 모른다 하여 사는 데 지장이 없는 건 아니다. 선생님이라도 그렇다. 당장 아이들이 쓰지 않는 낱말을 언제까지 끼고 살아봐야 실용성만 없다. 요새 언론을 보면 쓸데없는 한자보단 되려 선생들에게 필요한 건 성인지라는 생각이 든다.

둘째, 의사가 철저히 페미니즘적인 인식에 대해선 사노 요코의 지식을 무시한다. 아이는 낳지 못한다면서(난 안 낳는 것이라 생각한다. 돈만 쓴다면 요새는 남자가 애를 낳는 것도 가능하다.) 집요하게 여성이 애를 키우는 건 천성이라 주장한다. 사노 요코는 살 대로 다 살아서 아쉬울 것도 없고, 게다가 의사하고 친하다 보니 그의 강한 주장에 잠자코 눌리는 기색이다. 환자에 대한 의사의 무지막지한 권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혹 애를 키우는 건 여성의 천성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째서 본성을 이기고 애를 버리거나 죽이는 여성들이 많은지 쓸데없이 골머리를 썩일 이유가 없다. 애를 키우는 건 남자의 천성이 아니듯 여성의 천성도 아니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정신력이 단지 남성의 그것보다 더 강할 뿐이다.

셋째, 죽음과 죽어감이란 책을 들먹이면서 자신은 그 단계 중 아무 것에도 속하지 않는다 하는데, 그 책을 제대로 보셨는지 모르겠다. 그 책의 저자는 병원에 입원한 환자와 이야기하고 있을 뿐, 사노 요코가 말하듯이 집에서 편히 죽는 환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이것도 편하게 죽을 집과 펑펑 쓸 돈이 있으니 부리는 허세가 아닌가 싶다. 심지어 의사가 말하는 무사도는 졸렬하고 유치하기 이를 데 없다.

 

나는 두 번이나 이혼했기 때문에, 내가 타인을 끝까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평생 사랑할 수 있었던 사람이 2주쯤 전에 나타났다. 그는 죽은 사람이었다. 죽은 지 10년 정도 지났다. 어떻게 나타났느냐 하면, 20센티미터 정도 되는 갈색 나무 상자에 담겨 조그만 사람의 형상으로 스르륵 나와서는 그 뒤로 언제든 어디서든 스르륵 스르륵 나타나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살아있는 동안 나는 알지 못했다.

처음 보았을 때 그는 나보다 두 살 적은, 아버지 친구 아들이었고 보들보들한 아랫도리를 내놓은 채 기어 다니고 있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줄곧 친구였다. 그가 쉰다섯 살에 샌프란시스코에서 골프를 치다가 쓰러질 때까지, 가장 오랜 친구였다.

 

 

 

ㄷㄷ 얀데레?!

머리가 좋고 재능이 있으며 풍채도 근사하다. 인격도 훌륭한 것 같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면 내가 몰래 짝사랑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랬더니 이스트우드의 DVD를 잔뜩 빌려준 사람이 나타났다.

하지만 외국인인걸.

남몰래 사모하려 해도 외국인인걸.  

 

 

그래도 2D를 좋아하는 것보단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나는 종일 소파에 드러누워 텔레비전이나 비디오를 볼 때 행복하다. 그러는 게 너무나도 좋아서, 아무도 없는 집에서 파트너 같은 드라마를 한창 보던 중 문득 그 행복을 느끼면 깔깔 웃음이 터질 정도다. 아아, 이러니 혼자 사는 걸 도무지 포기할 수 없다. 

 

 

ㅠㅠ 나도 이 맛에 혼자 사는 걸 좋아하는데 한 번도 혼자 살아본 적이 없네 불행하다!

꽤 오래 전에 들은 이야기다. 암에 걸려 격심한 통증에 시달리는 한 아저씨가 아플 때마다 여자의 무대라는 노래를 틀어달라고 했고, 그랬더니 3분 정도는 아픔을 잊었다고 한다.

모차르트를 들으며 아픔을 잊는 사람도 있겠지.

나니와부시를 듣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나는 마지막 순간에 줄리의 오늘 밤 결정할 거야를 듣고 싶다.  

 

 

줄리란 사와다 켄지를 얘기한다. 지금은 할아버지가 되셨지만 검색해보면 일본에서는 찾기 힘든 미남 중 미남이다; 비교해보면 세월의 풍파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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