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비나무의 노래 (리커버 에디션, 표지 2종 중 랜덤 발송) - 아름다운 울림을 위한 마음 조율 가문비나무의 노래
마틴 슐레스케 지음, 유영미 옮김, 도나타 벤더스 사진 / 니케북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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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산중에서 살아남기 위해 위쪽 가지들은 빛을 향해 위로 뻗어 오르고, 빛이 닿지 않는 아래쪽 가지들은 떨어져 나가지요. 바이올린 만들기에 딱 좋은 '가지 없는 목재'가 바로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수목 한계선 바로 아래의 척박한 환경은 가문비나무가 생존하는 데는 고난이지만, 울림에는 축복입니다.

 

 

 

독일인 바이올린 제작자이자 이 책의 작가, 마틴 슐레스케가 생각하는 좋은 삶은 자기의 행복보다는 남의 필요에 관심을 기울이는 삶이다. 이웃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헤아려보라는 것이다. 이런 삶을 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훌륭한 생각은 북극에 가까운 지대에 살수록 나오는 법일까? 슐레스케가 사는 곳보다 더 고위도에 있는 스코틀랜드에서는 로버트 오언이 개인의 행복은 개인이 속한 공동체의 행복을 늘리는 행동으로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마틴 슐레스케의 생각보다 더 윗길이다.

 

이러한 삶보다는 못한 수준의 삶으로, "책임을 다하는 삶"이라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위험의 외주화, 오염의 외부화라는 악덕을 회피하고 제국적 생활양식을 벗어나는 삶으로, 세계의 생태적 원순환 질서에 자신의 삶을 맞추고 세계 어느 곳이든, 자신이 가할 수 있는 해를 최소화하려는 삶이다. 지구의 생태적 원리에 어긋남이 없고, 칸트식 도덕 원칙에 비추어 부끄러움이 없는 삶이다. 물론 이것도 실천하기 쉬운 삶의 양식은 아니다.

 

그리고 이 두 층위의 삶의 아래로 내려가면, 우리가 그토록 앙망하고, 우리가 그토록 편안해하는 삶, 소확행님이 등장하신다. 자신의 행복이 타인의, 타자의 고통을 얼마나, 어떻게 야기했는지에 관심을 두지 않는 자의, 그야말로 소소한 또는 꾀죄죄한 행복 말이다. 소확행의 본질은, 이러한 전체의 구조(삼층, 사층, 오층의 구조)를 보려 하지 않음이다. 이러한 전체의 실상에 눈을 굳건히 감겠다는 것이다. 앎보다는 무지가 행복에 가까울 것이라는 본능에 기대겠다는 것이다.

 

책 이야기를 나누다가 요즘의 젊은 독자들은 책을 오브제 또는 굿즈로 구입하는 성향이 커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탕진잼이라는 신조어를 접하며 이 새로운 세대를 어떻게 이해할까 고민이 더 깊어졌다. 공동선이라는 이념이 실종된 시대, 각자도생의 방편으로 굿즈를 소비하며 또 가차없이 내다버리는 시대... 평생 벌어봐야 집도 못 살 텐데 그냥 소소하게 즐기며 살련다가 인생철학으로 둔갑한 세태를 보며 우리 기성 세대가 정말 끔찍한 잘못을 저질렀구나 다시 절망한다. 나이 들수록 소소한 게 좋더라구 ㅠㅠ

 

독서모임으로 인해 읽게 된 책이다. 중간쯤 읽고나니 얼추 마음에 들어서 이 후속편이라는 책도 구입했다. 주로 내용은 바이올린을 켜기 좋은 나무에 대한 소개와 훌륭한 바이올린을 만들 때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들, 그리고 바이올린을 만드는 장인으로서 화자가 예술가들과 대화를 하며 느꼈던 점들(칭찬만 하고 있진 않아서 웃겼다 ㅋㅋ)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 이후로는 자신의 영적 신념과 관련한 짤막한 글들을 일기처럼 소개하고 있는데, 솔직히 이 부분이 영 지루해서 말이다(...) 어려운 용어를 써도 좋으니 바이올린과 자신의 직업에 대해 좀 더 소개했으면 좋았겠다 싶었다. 그건 2권에서 다루려나?

 

 

때로 신은 우리를 '묻는 사람', '구하는 사람', '듣는 사람'으로 남게 하고자 우리에게서 모습을 감춥니다.

 

 

 

성격 나쁘신 거 같은데(...) 일단 화자는 예수님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청원을 들어주신다는 입장이다. 스포는 자제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모든 사람들의 기도를 들어주시지는 않는지에 대해서도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있다. 즉슨 청이 소명에 맞아야 한다는데, 이것도 지극히 화자다운 의견이었다고 해야 할까.

 

요점은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뭐 그런 얘기이다. 다만 니가 까마귀일지도 모르니 자신을 잘 알라는 말을 간접적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후반에는 아무리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도 대놓고 내치지 말라는데, 나도 이 얘기엔 찬성한다. 나도 옛날엔 나와 의견이 다른 걸 떠나 사회적으로 옳지 못한 일을 하면서도 그게 틀린 거란 걸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화 많이 내고 살았는데, 시간이 지나니 이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틀리다고 지적하더라. 사회적인 운동에는 참여하는 게 좋지만, 틀린 짓을 하는 사람하고 쌈박질해봤자 그닥 좋은 건 없는 듯하다. 사실 쌈박질하는 것도 다 어울려 다니려고 하는 짓이다. 그냥 만나지 않는 게 제일 좋지. 그런데 이 작가는 또 위에서 말한 것처럼 공동체를 중시하기 때문에 니 진리만 고집해서 사람을 내치는 게 아닌지 잘 살펴보라고 후반부엔 그런다. 어렵다 어려워..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로렌츠는 그리던 그림을 북북 찢어 버렸습니다. 선이 삐뚤빼뚤하고 전혀 평행하지 않았거든요. 아들은 스케치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나는 로렌츠가 또다시 그림을 찢어 버릴까 봐,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로렌츠, 넌 지금 작도를 하는 게 아니란다. 컴퓨터로 그리면 아주 똑바른 선을 그을 수 있겠지. 하지만 그건 스케치가 아니라 작도야. 네 스케치에서 선이 얼마나 곧은지는 중요하지 않아. 그림을 그리는 동안 네 스케치가 어떤 모습이 되어 가는지 유심히 보렴. 네가 그은 선들이 어떤 작품으로 탄생할지 기대하면서 말이야."

 

 

 

한국에서는 약소국을 초승달에 비유하고 강대국은 보름달이라 하며, 초승달은 곧 차오르고 보름달은 곧 줄어드니 약소국도 성장 중이라 이야기했다는 설화가 있다. 그게 꼭 국가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일까? 개인에게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완벽주의이며 설사 그걸 관철할 수 있다 하더라도 앞날은 현재보다 점점 비뚤어질 뿐이다. 그러고보니 성장소설이나 만화에서도 이런 소재가 자주 등장하곤 하던데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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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 2 한국버지니아울프학회 총서 2
한국버지니아울프학회 엮음 / 동인(이성모)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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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는 우리가 '보는' 것이 얼마나 단편적이며 편파적인지를 지적하면서 이어지는 세 점의 그림(장면)을 보여준다. "선원의 귀환," "한밤의 외침," 그리고 "묘지"로 이어지는 세 개의 장면은 그 자체로는 연관성이 없는 개별적인 것이지만 작가는 그 장면들이 모여 어떤 드라마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마지막 부분에서 작은 단서를 제시하여 보여준다.

 

 

울 어머니가 사피엔스를 최근 다 읽으셨다고 해서 그거보다 백배는 더 재미있다고 이 책 추천했는데 딱 이 부분 전에 줄치고 완전 새 책이 되었음 ㅠㅠ 어머니가 보수라 나 빼고 페미들 몽땅 다 싫어하는 건 알지만 이 정도일줄이야. 엉엉 사람들아 페미책 재밌어요 왜 안 읽어요 징징. 그나저나 아무리 내가 대학시절 유일하게 자퇴 안 하고 버틸 수 있었던 계기인데다 초 선망하는 교수가 이 책 필자단 중 한 명이라 해도.. 철학자들 졀라 많이 나오고 두껍고 글씨 큰데도 의외로 읽기 어려워서 페미뽕 정말 부족하면 2권 마저 읽어야지 생각하고 덮은 책인데 지금이 그 기회인 듯하다.

 

말이 나와서 그런데 이런 책보다 읽기 힘든 게 반페미 서적이다. 말도 안 되는 얘기가 하도 나와서 대체 출처가 어딘가 일일히 검색해봐야 한다. 그런데 죄다 너튜브라는 점 ㅡㅡ 너튜브는 또 반페미 서적을 참조한다면서 입을 씨부리고 말이다. 이게 그 복고냐? 돌고 도는 트롯트야? 요새 젊은 애들이 불러도 촌스러운 건 촌스럽더만.

 

사실 버지니아 울프만큼 오해를 받는 인물이 없다. 최근 자기만의 방에 '여성이 자기 권리를 가지려면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고 쓰여있다 착각하는 무식한 자를 본 적 있다. 일단 말하는 인간은 남자같은데 그런 식으로 여성 소설가를 깔보듯이 얘기하는 짤을 올리는 건 여혐이라 생각되었다. 그리고 자기만의 방 안 읽은 모양인데 그 책은 '여성이 차별받지 않으려면 경제력 있어야 한다'로 끝낸 게 아님. 정확히 풀자면 버지니아 울프는 '지적으로 무지한 여성이라는 게 편견이란 걸 증명하기 위해 더 많은 여성들이 글을 써야 한다'고 말하고 있음. 그리고 그녀들이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게 생존 가능할 만큼의 돈과 편하게 글 쓸 수 있는 자기만의 방임. 그런 책소개를 나한테 캡쳐해서 보여준 놈도 미친 놈이지만 그 소개글 쓴 인간에게 이 리뷰에서 전한다. 제발 좀 책을 읽고 지껄여라 응? 알겠니? 읽지도 않도 네이버 지식인 검색해서 대충 씨부려대다가 이렇게 인터넷 사방팔방에 니 무식이 퍼지는 거란다. 이것도 감지덕지인 줄 알어 내가 버지니아 울프였으면 너네 둘 소송걸었다.

 

 

디 아워스는 여러 형태의 동성애 구조가 그려져 있다. (...) 여기서 끌어낼 수 있는 또 한 가지 측면은 영화가 갖고 있는 대중매체라는 속성을 감독인 달드리가 매우 유연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 동성애자의 관계는 도식화 내지 약화시켜 그 관계 자체를 표면화시키지 않으면서도, 남성간의 동성애는 그것을 인간 조건의 한 단면으로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묘사해 동성애 자체에 대한 비난이나 논란을 정략적으로 피해가고 있는 것이다. 양성애자인 달드리 자신의 "한 번 뿐인 삶에서 오직 한 종류의 사람으로 운명 지워 진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는 말은 그의 의도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게 한다.

 

 

 

상당히 잘 만든 영화인데 매니악하긴 하다. 최소한 댈러웨이 부인, 시간들에 이어 버지니아 울프의 삶까지(그에 대해선 도서출판 동인에서 나온 버지니아 울프 1을 추천한다.) 알고 있어야 한다 ㅋ 개인적으로는 커닝햄의 시간들 소설까지는 스킵해도 좋다고 보긴 하지만 그렇게 하면 정신없이 뒤바뀌는 전개를 따라가기 어려울 것 같기도?

 

자아와 타자의 경계이며 자아와 타자가 접촉하는 최전선을 이루는 의복은 이렇게 그것을 입은 사람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울프는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이러한 옷에 대한 첨예한 인식은 블룸즈베리 구성원들의 팬시드레스 파티에서 누드에 이르기까지 파격적인 행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한 극단적인 예로 "드레드넛 혹스" 사건을 들 수 있다.

1910년 2월 7일 버지니아 울프와 아드리안 스티븐, 호레이스 코울, 안토니 벅스턴, 던컨 그란트 등 몇몇 블룸베리즈 젊은이들이 템즈 강에 정박 중이던 당시 대영제국 해군력의 상징이었던 드레드넛 함을 상대로 장난을 친 사건이었다. (...) 무대 분장사의 도움을 받아 아프리카 왕족과 외교사절단으로 분장힌 이들은 의심받지 않고 국빈대접을 받으며 영국군의 극비사항인 배 내부를 시찰하고 돌아간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었다.

 

 

 

이 장난꾸러기들 ㅋㅋ 울프는 이래놓고 자기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하다니.

 

1920년대 모더니즘 문학이 공장에서의 대량생산과 대규모 쇼핑몰을 필두로 하는 대량소비가 자리 잡게 되는 시기에 도래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이 시기의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학 내적인 변화 외에도 패션이나 영화, 자동차, 비행기, 라디오와 같은 새로운 등장한 문화현상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

 

 

 

마침 1910~1920년대 스타일을 꽤 좋아하는지라 ㅎ

 

자기만의 방에서 울프는 "축구와 스포츠는 '중요한' 반면, 패션을 숭상하고 옷을 구매하는 것은 '사소한' 것"으로 여기는 풍조를 비판한다.

 

 

 

내가 패션고자라서 그렇지 이건 정말 인정함. 그리고 '아무거나 몸만 가리게 걸치면 되지'라고 얘기하는 것들 사실 고상한 체 하지만 99.9%는 패션고자임 왜냐면 그게 나거든 ㅠㅠ

 

라뎅의 지적처럼 세월에서 안티고네 신화의 잦은 언급은 감정과 개인 관계에 근거한 여성적 윤리 체계와 외적 사회 코드에 대한 남성적 힘의 원리와 순응 사이의 대항을 위한 신화적 유사성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라스웨이드부인으로 가장 화려한 삶을 산 키티조차도 그녀의 지난 날 들은 "괴롭고, 역겹고, 잔인한 세월들"로, 과거나 추억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원하며, 북부에서 정원을 가꾸고 발레를 관람하며 혼자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현재 삶을 즐거워한다. "젊지 않다는 것은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건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이제 우리는 마음대로 살 수 있어"

 

 

 

실제로 나이가 들어보니 죽고 싶단 생각은 덜 듭디다.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줄어들어서 그렇지. 근데 젊은 여자만 찾는 직장은 사실 다 이유가 있어요 ㅎ.... 그런 점에선 나이든 게 훨씬 나아요.

 

영화에 대한 사회전반의 관심은 1920~30년대 데일리 메일, 베너티 페어, 아델피, 보그 등 인기 잡지들을 통한 열띤 영화논쟁으로 이어졌고 유럽 전역에서 피카소, 조이스 등 아방가르드 예술가 작가들의 참여도 눈에 띤다. 특히 1920년대에는 초현실주의적, 다다이즘적 영상들을 통해 꿈이나 부조리 등을 담아내며 시간성을 전복시키는 실험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예술영화들은 기존의 소설이 제공하는 서사구조를 전복시켜 프로이트의 꿈의 세계처럼 논리성과 시간성을 벗어나는 부조리함을 추구하기도 했다.

 

 

 

굉장히 뜻밖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영화를 봤다니 ㅎㅎ 내가 은근 이 분을 옛날 사람으로 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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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팝스 2021.4
굿모닝팝스 편집부 지음 / 한국방송출판(월간지)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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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으로 읽는 서양철학, 한 편의 웹툰을 읽으면 한 명의 철학자를 알게 된다! 색다른 인문학 도서로 사랑받았던 지적 허영을 위한 퇴근길 철학툰이 근현대 편에 이어 고대 중세 철학자 18인의 삶과 철학 이야기를 담은 두 번째 시리즈를 발표했다.

 

 

 

한편으로는 궁금해진다. 정말 이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단 말인가 ㄷㄷ 출근길 경영대학원이라는 팟캐스트도 있던데 퇴근길엔 철학책(나는 철학자 본인이 쓴 원서를 읽는 걸 추천하지만)을 읽는다니.. 그러고보니 다른 팟캐스트에서는 지하철에서 스코틀랜드의 역사를 읽는단 분도 계시고; 아니 내 주변엔 한 명도 없어서 최근 밖에서 책 읽는 거 걍 접었구만 민나 도코니 이루노 다들 어디 숨어 계시나요 ㅠㅠ

 

오늘 호에선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란에서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일본 감독이 만든 시간을 달리는 소녀 리뷰쓰고 있더라. 뭐지 내 블로그 보고 의식하신 건가(아님) 원작 책이 있다는 것만 더 소개하면 좋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지나친 욕심이겠지. 호소다 마모루 추천했으니 그 다음엔 별의 목소리 감독을(탕)

 

이미 음악계를 평정한 빅 션과 스눕 독은 뛰어난 연기력으로 영화에서도 그 명성을 이어가는데, 주인공 트러블 역할을 맡은 빅 션은 천연덕스러우면서도 섬세한 감정 연기를 선보이고 유쾌한 연기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는 스눕 독은 후반부에서 그의 진가를 제대로 발휘한다. (...) 현실 속의 동물을 보는 것 같은 생동감 역시 밀리언 달러 트러블을 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 요소 중 하나이다. 어벤져스 시리즈와 앤트맨 시리즈 등 마블 영화들의 특수 효과를 담당했던 비주얼 팀과 슈렉 시리즈의 프로듀서 팀 등 믿고 보는 월드 클래스 제작진이 모여 실사에 버금가는 높은 퀄리티의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냈다.

 

 

 

미국 애니메이션같은 경우는 작화를 거의 다 그린 후에 성우 녹음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누가 해도 연기에는 큰 문제가 없고, 현장의 분위기를 많이 신경쓴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예능계 사람들이 성우진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고, 의외로 두각을 드러내는 분들도 나타나곤 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처럼 전문적이지 못해서 대부분은 그저 성우가 아닌 예능인이 말을 한다는 느낌이 나지만 나름의 장점도 갖추고 있을 듯.

 

그러나 부족한 영어 실력은 대학교 첫 여름 방학 때 떠난 동유럽 배낭여행에서도 저를 괴롭혔습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서 영어를 못하면 각종 숙소 및 물건 등에 대한 정보를 얻기 어려웠는데, 특히 식당에서 많은 난항을 겪었습니다. (...) 작년 여름, 서점의 잡지 코너를 구경하던 중 영화 포스터로 이뤄진 책표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영화 커런트 워가 실린 월간 굿모닝팝스 2020년 6월호였습니다. (...) 다음 날 아침 6시, 애플리케이션 콩을 설치하고 라디오 굿모닝팝스가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내 주변에는 CIA 드라마만 보고 나서도 영어회화가 술술 나와서 미국으로 논문 발표하러 나갔던 친구도 있음. 뭐든지 자기가 흥미있는 장르로 영어를 시작하면 좋다고 본다. 가급적이면 번역이나 한국인이 지어낸 영어를 보는 게 아니라 미국 혹은 영국에서 직접 만든 콘텐츠를 보는 걸 추천한다. 과외하다보면 공부용 영어를 강의해달라는 아이들을 종종 보게 되는데, 그런 언어는 없다.

 

Mardi Gras is a time of feasting before the start of Lent, a season in the Christian tradition which lasts for 40 days and requires fasting and prayer in preperation for Easter. (...) A drunken businessman, Michael Krafft, tied some cowbells to the end of a rake and, with the help of some tipsy friends, paraded through downtown Mobile. (...) Some of the modern mystic societies are still all men or all women and all (or mostly) white. But there are now groups with men and women of any race or ethnicity as well as LGBTQ parading organizations. (...) First, dress for the weather and bring a bag to catch throws, then you head downtown with plenty of time to find parking and a spot along the parade route. (...) Throws include plastic bead nacklaces, coins known as doubloons, plastic cups, candy, plush toys, and, the most coveted throw in Mobile: moon pies!

 

 

 

너무 오랜만에 퀴어와 관련된 글을 본 것도 있고, 모르는 단어를 찾아서 정리하다 보니 이렇게 길게 쓰여졌다고 한다() 참고로 사순절이란 뜻의 Lent는 독일어로 봄이란 뜻이라 한다. 사순절 의미치고는 너무 단순하지 않나 생각했는데, 하기사 서양은 봄에 왕 혹은 이방인을 죽이는 관습이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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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7 - 1941-1945 밤이 길더니… 먼동이 튼다, 완결 (박시백의 일제강점기 역사만화) 35년 시리즈 7
박시백 지음 / 비아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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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독일 항복 후 3개월 내에 참전하겠다고 공언한 스탈린은 이미 대규모 병력을 극동으로 이동시켰고 일본의 희망과 달리 1945년 8월 8일, 대일 선전포고로 응했다. 직후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자폭탄 '팻맨'이 투하되었다. 2개의 원자폭탄으로 희생된 사람은 1945년 말까지만 해도 21만 명에 이른다.

 

 

 

이 사진이 팻맨 모에화라고 널리 알려져 있는데 제대로 된 밀덕에게 물어보니 사실 리틀보이라고 한다. 폭탄 모양이 팻맨은 좀 뚱뚱하고 둥글고 리틀보이가 잠수함형이라나. 근데 얘네 이름 정말 왜 이래 ㅋㅋ 첫번째로 떨어뜨렸단 에놀라 게이()도 그렇고 뭔가 이상하다고; 아무튼 원자폭탄 모에화한 건 사실인듯 일본도 정상이 아냐..

 

각종 과거 폭로 사건들을 보다보면 가해자들에게서 일제시대 친일파의 향기가 진하게 느껴진다. 그당시엔 이리 될지 몰랐고, 그땐 좋았겠지. 그래도 될 줄 알았겠지.

그리고 현재 밝혀져도 욕은 먹지만 제대로 처벌받는게 드물다는 것도 비슷한 느낌. 그러고보니 공무원시험이나 수능에서 정말 일제강점기 때 친일파였던 사람들의 작품 많이 나오더라. 모르고 문제를 푼 것도 있고 일부러 구해서 본 작품도 있는데 이제 이 책을 봐버린 이상 구역질나서 다시는 국어시험 문제는 쳐다보지도 못할 거 같다. 거 친일파 인간들의 작품을 시험 문제로 사용할 거면 출제할 때 시험지 옆에 친일파라고 좀 크게 써 넣읍시다. 나같은 사람이 시험지 찢어버리고 시험장 박차고 나갈 수 있게.

 

 

갈홍기 1906~1989

 

종교인, 정치인, 친일 반민족 행위자. (...) 1931년 개릿신학교 졸업 후 노스웨스턴대학교 대학원을 거쳐 1934년 시카고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 1943년 일본 기독교 조선감리교단의 연성국장 및 상임위원으로 임명됐으며 학병 권유 활동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조선종교단체전시보국회의 감리교 대표를 맡았다. (...) 1951년 한일회담 대표, 1952년 외무부 차관, 1953년 공보처장을 맡았으며, 1956년 대한농구협회장, 1957년 동명학원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아무래도 이 책을 재미있게 보는 비법은 독립운동가보단 친일파를 찾아보는 것 같다. 근데 이게 정말 재밌음 찾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름 ㅋㅋ 아무래도 친일파에 대해서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다보니 그런가.

여기서는 기독교만 소개했지만 책에선 불교도 천주교도 모두 다 친일을 했던 걸로 나온다. 사람들은 사회에 위기에 닥치면 종교가 위안을 줄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 종교가 더 심하다.

 

권혁조 1923~2002

 

해방 후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면서 오부자, 죽자니 청춘 살자니 고생, 월하의 공동묘지 등 다양한 작품을 연출했다.

 

 

 

예전에 전설의 고향을 학생들에게 틀어줬더니 애들이 한바탕 웃으면서 귀신이 너무 웃기다고 했다던 얘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지금도 그러려나? 난 근데 월하의 공동묘지 처음 봤을 때 진짜 무서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 많은 유교국가 여성의 삶을 그려낸 작품이지만.

 

김준엽 1920~2011

 

학자, 한국광복군. (...) 광복군 제2지대에 편입된 이후, OSS 훈련 정보파괴반을 수료하고 광복군 국내 정진군 강원도반 반장에 임명되어 작전을 기다리던 중 광복을 맞이했다. 1949년 고려대 사학과 교수가 됐고, 같이 광복군에서 활동한 장준하가 만든 사상계의 주간을 맡기도 했다.

 

 

 

정진군 공부하면서 책 읽는 중인데 여기서도 정진군이 나오니 기분 묘하다 ㅎㅎ

 

1942년 5월, 조선에서의 징병제 실시가 결정된 것이다. (...) 총력연맹을 중심으로 한 설명회가 각지에서 열렸고, 강연회, 반상회, 소책자, 라디오방송 등을 이용한 선전이 뒤따랐다.

 

 

 

이 이후부터 징병제와 카미카제를 장려했던 사람들의 글과 문학작품이 쭉 이어진다. 좀 역겹지만 나는 재밌었음.

 

노수현 1899~1978

 

화가, 친일 반민족 행위자. (...) 1921년 동아일보사에 입사, 미술부 기자를 담당했고 1923년 조선일보사로 옮겨 네 컷 만화 멍텅구리 헛물켜기를 수차례 연재했다. 1941년 잡지 신시대에 일제의 시국 생활 규범과 총동원 체제에 대한 호응을 내용으로 하는 중편 만화 멍텅구리를 여러 차례 연재했으며, 1942년 황군 위문 부채 그림을 조선총독부에 헌납했고, 18~19세기 일본에서 유행한 남화의 연구, 발표를 목적으로 조선남화연맹을 조직, 제1회 남화연맹전람회에 참여했다. 당시 출품작 수익금은 모두 일본군에 헌납했다.

 

 

 

요즘 일제시대 지어진 미술 작품들이 전시되고 새롭게 조명도 받았다고 하지만 이 책 보면 그 시대엔 거의 친일파들이 그렸던 것 같은데 ㅠ 시집 이야기이지만 해방 때엔 예술 작품을 불질러서 증거를 말소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안타깝다. 애초 왜 그 재주로 친일이 내용인 작품을 썼을까. 광복될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을까? 아님 그림을 그릴 돈이 없어서? 그런데 수익금은 또 왜 죄다 일본군에게 주냐 그것도 아깝다 ㅠㅠ 이건 명성을 위해서인가.

 

여운형은 1929년 상하이의 야구장에서 체포되고 국내로 송환도어 재판에 넘겨졌고 3년 형을 살았다. 출옥 후에는 조선중앙일보 사장을 맡아 짧은 시간 안에 조선일보, 동아일보에 버금가는 신문으로 키워냈다. 신문사 사장 생활은 일장기말소사건으로 끝이 났다. 이후 그는 수차례 일본을 방문하여 정세를 살폈고, 단파방송까지 접하며 일본의 패망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 생각을 주변에 발설했다가 투옥되었다. 쇠약해진 몸을 걱정하는 가족, 주변의 권유에 7개월 만에 전향서를 쓰고 석방되었다.

 

 

 

이 시국에 어째서 야구장에 있냐면.. 몽양은 자기 자신의 신체적 능력을 너무 과신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암살도 그래서 허술하게 당했다는 이야기를 읽었던 기억이 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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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일, 길바닥 여행 - 내가 그은 선 하나 그 길을 쓰다
박수 지음, 류정아 그림 / 푸르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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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곡을 쓰기 위해 뮤지션을 꿈 꿔 왔지만,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지난 시간 무수히 많은 곡을 연주했는데 왜 난 아무 곡도 쓸 수 없는 거지? 도와줄 거라 믿었던 성실함은 꼬여버린 기타줄이 되어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방황으로 인해 대학생활은 의미 없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그래

놓자.

 

기타를 다시 잡기 위해 잠시 손에서 내려놓자는 결론을 내렸다.

잠시 쉬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글 밑에 일렉기타와 스피커를 연결하는 줄에 묶여있는 사람이 그려져있다; 좋아하는 일을 못 한다는 압박감이 심했던 듯하다. 두루 해봤는데 예체능은 성실하다고 다 되는 게 아니더라. 오히려 독약이 될 수도 있다.

 

이 글쓴이가 쓴 글에는 몇몇 문제가 있다. 그 중 하나가 '빈곤해도 여행은 해라'인데, 그게 미담이 되는 건 썩 좋은 문제가 아니다. 자기가 돈아끼고 고생하면서 여행하는 것이야 얼마든지 OK이다. 다만 남의 선의에 기대서 민폐끼치며 여행을 왜 한단 말인가. 자기 짐 팔고, 현지에서 단기로 일하고 대가를 받는 정도라면 모르겠는데 구걸(버스킹 포함)과 대책없는 히치하이킹 등은 은근 민폐이다.

자기 힘으로 갈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가다가 중간에 누가 선의로 태워주거나 밥을 얻어먹거나 교류하는 것이야 좋은데 다른 수단 없이 남에게 전적으로 기대는 상황을 만들거나, 도움은 반 강요하듯한 상황을 만들고 본인 혼자 자뻑에 차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남성으로서 생각의 한계를 보여주기도 하다. 이혼을 쉽게 생각하라 하는데, 과연 여자가 이혼이 쉬울까? 애 키워야 할 수도 있고 취직도 어려울텐데 뭔 소리야. 먹고 살아야 여행이든 뭐든 할 수 있지.

 

근데 솔직히, 난 이 사람의 여행 얘기보단 돈 쓰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애 안 낳고 결혼도 안 할 거면 굳이 돈 모으려고 아등바등할 필요도 없으니 그냥 하루 벌은 거 하루 다 쓰면서 좀 근근이 살아도 되잖음?

나이가 들어서 직업 구할 게 걱정되면 돈을 모으느라 골병 생기지 말고 투표 좀 잘하시고요. 크게 다친 건 본 적 없지만 정신병원에서 다 날리는 분들 많이 봄.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사람들 의식이 점점 선진국화되는 건 좋은 현상이라 본다. 코로나19가 발생하고 나서는 오후 10시에 가게가 무조건 문을 닫게 되니 아예 유럽처럼 이 현상을 장기화하자는 이론도 나타나기 시작했고. OECD가 그렇게 좋으면 우리도 좀 선진국 사람들처럼 살아보자. 등수 따지는 단계에서 좀 벗어나자고.

 

 

이별의 술잔을 기울일 겨를도 없이 더 쓴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여윳돈에 은행 대출까지 더해 투자를 했는데 사기를 당했다. 징역 몇 년으로 그 큰 돈을 퉁친 걸 용납해 준 이 세상이 너무 야속했다.

 

스물아홉.

빚 4000만 원.

 

이별의 아픔과 함께 빚쟁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누군가 들을까 봐 라디오 볼륨을 최대로 높인 채 이불을 뒤집어쓰고 목놓아 울었던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내가 눈이 안 좋아서 라디오를 듣는 것도 있지만, 우울할 때 라디오 들으면 그나마 괜찮더라. 유튜버들 보다보면 나보다 잘생긴 것들은 그것들 대로 짜증이 나고, 나보다 못생긴 것들을 봐도 '이들같은 애들도 유튜버로 성공했는데 나는 뭐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등 뒤로 20kg, 앞에는 8kg, 옆에는 기타까지 합이 30kg.

중국 천진행 배를 기다리던 내 여행의 첫 모습이다.

58kg인 내 몸무게의 절반이 넘는 짐들에 매달리고 나서야 드는 생각,

 

전쟁 나가니?

 

여행을 떠나기 직전까지 베어그릴스 시리즈를 시청했다.

주인공이 세계 오지를 탐험하면서 야생에서 생존하는 법을 몸소 보여주는 리얼 다큐였다. 이 시리즈를 여러 번 보면서 세계 일주를 향한 마음의 준비를 굳게 다잡았다.

당시 'REAL-explorer'라 여행자 명함에 새겨 넣은 것만 봐도 세계 여행을 향한 마음가짐이 어땠는지 알 수 있다.

 

 

베어그릴스가 사람 여럿 망쳤네.. 주작도 일부 있다더니.

 

그곳에 있던 낡은 가구와 그림, 집안 곳곳에 있던 아기자기한 공예품들은 모두 할아버지, 할머니의 작품이었다. 젊었을 적부터 취미로 만들어 온 수백 점의 작품들이 집 안 구석구석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젊은 날의 추억이 묻어 있던 식탁에 둘러앉아 커피를 마시며, 그 시절 이야기를 듣는다. 세월의 빈 공간을 본인의 것으로 채우며 살아오신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마치 영화 포레스트 검프 같다.

 

할아버지 주연의 영화 한 편이 끝나자 마가렛 할머니께서 기다렸다는 듯이 작은 방으로 우리를 이끄신다. 세 평 남짓 되는 할머니의 작업실이다.

최근에는 시력이 좋지 않아 예전만큼 작업하기가 어렵다고 하셨지만 방에는 여전히 작업의 온기가 느껴진다.

지금은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면서 후원 활동을 하고 계신다고 했다.

카드 한 장 한 장에는 후원 아동을 향한 마음이 고이 담겨 있었다.

 

 

금손들 부럽 ㅠ

 

나는 장난감을 조립할 때 시작부터 끝까지 설명서대로 따라하는 아이였다. 항상 상자에 그려진 모습 그대로 완성해야 직성이 풀렸다. 그 당시 설명서는 나에게 가이드를 넘어선 정답지였다.

 

여행 초반 가이드북은 장난감 조립설명서 같은 존재였다.

적혀 있는 모든 것을 해야 그 여행이 완성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 할수록 가이드북을 따라 여행하는 것이 그리 즐겁지만은 않았다.

왠지 모를 공허함만 남을 뿐 이었다.

가이드북에 없는 곳을 여행할 때면, 아는 곳이 없는데도 마음은 편했다.

 

 

요새는 같은 작품인데도 TVA판과 극장판이 나누어져서 나오기도 하니, 가끔 애니보는 순서에 대해서 물어보는 사람들도 생긴다. 그러나 애니 보는 순서는 대체로 사람마다 다르다. 제작연도 순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작중 내 시간과 연관짓기도 하고, 혹은 사건의 인과관계를 맞추어서 보는 사람도 있다. 나처럼 극장판은 취향이 아니라서 왠만하면 아예 안 보는 사람도 있겠지.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굳이 애니메이션 보는 순서를 정해주지 않는 건, 시청자의 자유를 빼앗지 않으려는 배려이다.

 

설상가상으로 다음날 도착할 때부터 떠나기 전까지 옐로우나이프의 하늘에는 구름만 가득했다. 4일 내내 오로라는커녕 밤인지 낮인지 시계를 확인해야 알 수 있을 정도로 햇빛 한 줄기조차 들지 않았다. 자연 현상은 신의 영역이기에 나는 매일같이 인터넷으로 기상상태를 확인하고 커튼을 들춰서 하늘을 쳐다보는 일밖엔 할 수 없었다.

 

 

결국 집엔 못 가고 며칠 거기서 일을 한 후 오로라를 봤다는데 난 그렇게까지 여행을 해야하는지 이해가 안 감; 역시 난 여행 안 좋아하는 듯(...)

 

잠시 머문 곳이 가슴에 오래도록 남는 건 단지 내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함께 이야기를 만들고 그것을 공유했던 누군가가 그 곳에 있기 때문이다.

내게 터키는 더 이상 역사적 유물이 묻혀 있는 오스만 제국의 땅이 아니라 히치하이킹과 카우치서핑을 하면서 만든 인연의 끈들이 곳곳에 놓여있는 추억의 땅이다.

내 친구 에르뚜르가 있는 곳이다.

 

그곳엔 나의 친구가 있다.

그곳엔 '당신'이 있다.

 

 

솔직하게 자기 과거 얘기를 꺼낼 수 있어서 친해질 수 있다고. 그런데 이것도 결국 무임승차처럼 다시는 못 볼 사람들이니 저지를 수 있는 일 중 하나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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