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욱의 <황금 사과>를 읽고 있다. 인물들의 이름은 윌리엄, 토마스, 제롬 등이다. 한국 작가가 내 삶과 어느 한 가지만 중복되는 이야기를 쓰더라도 별 어려움 없이 소설 속 인물 중 하나에 나를 이입시키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다른 시대 다른 나라에서 다른 이름을 가진 인물들이 얽힌 이야기를 읽으면 이입이 쉽지는 않지만 이입이 된다면 단순히 시대나 나라나 이름 때문에 이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물 자체에 이입이 되기 때문에 도리어 더 깊은 이입이 되곤 한다. 하지만 이입의 문제를 떠나 나는 그런 소설 자체에 많이 놀란다.

 

우리 나라 작가가 깊은 다년간의 연구로 우리 나라의 역사 소설을 완성해도 대단해보이고 놀라워보이는데 심지어 다른 나라의 역사 소설을 완성할 때에는 그 과정에서 얼마나 연구를 많이 했을까 싶어 사실 읽는 동안 많이 감탄하면서 읽게 된다. 물론 탄탄한 개연성을 가진 작품들에 한해서 말이다. 우리 나라에서 살다보면 자연 우리 역사에 대해서는 알게 모르게 관심도 갖게 되고 지식도 쌓이게 되지만 중세 유럽의 삶에 대해서는 아마 처음부터 새롭게 알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을텐데 싶은 마음이 들어 그 놀라움이 더 커지는 것 같다. 우리가 펄벅의 <서태후>를 중국인들이 쓴 서태후에 관한 이야기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보는 것은 이국인의 눈으로 보았다는 관점의 문제 외에도 이런 감탄의 성격이 있을 것이다. 아마 내가 우리 작가가 쓴 중세 유럽 혹은 고대 아프리카 등등 낯선 세계의 이야기에 놀라움을 느끼는 것도 그와 같다.

 

최근 읽은 <랩소디 인 베를린>의 경우가 그러했고, 지금 읽고 있는 김경욱의 <황금 사과>가 그러하고, 꽤 오래 전에 읽은 조완선의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1,2>가 그러하다. <랩소디 인 베를린>의 경우 조선인의 후손이라고 추측되는 인물 요한 힌터마이어에서 시작된  18세기 말 독일의 이야기가 21세기 독일과 일본, 한국으로 폭넓게  확장되면서 진행되는 점은 작가 구효서의 소설가적 능력이 백분 발휘된 것이며 그 외 고전 음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이야기를 버무리는 능력 또한 작가에 대한 신뢰감을 갖게 만든 수작이라할 수 있다.  조완선의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은 제목만 보고는 김탁환 류의 소설이겠거니 했는데 비록 시작은 조선이지만 그 이야기를 좇아가다보면 아프리카, 프랑스를 넘나들고 긴박한 진행과 낯선 세계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정과 묘사로 푹 빠져들게 한다. 지금 읽고 있는 <황금 사과>는 지금 읽는 중이라 아직 정확한 결말을 모르지만  실연 당한 한 한국 남자가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한 권의 수기에서 시작되어 수기 속 내용인 13세기 유럽의 기독교 세계에서 벌어지는 암투가 흥미롭다.

 

 

 

 

 

 

 

 

 

 

 

 

가장 긴박하게 흥미롭게 읽혔던 책은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로 추리의 형식을 띠어서 일 수도 있고 아무래도 금속활자에 관한 한 독자 대다수가 인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토트'라는 낯선 지식을 받아들이기가 쉬웠던 까닭도 있을 것이다. 가장 많은 감탄을 하며 읽은 작품은 단연 <랩소디 인 베를린>으로 고전 음악도 모르고, 18세기 독일은 더더욱 모름에도 불구하고 독자를 흡입하게 만든 구효서라는 작가의 힘 때문인 것 같다. <황금 사과>의 경우는 작가의 이후 역사 소설인 <천년의 왕국>에서 느낀 탄탄한 문장력이나 여타의 다른 단편 소설에서 느꼈던 표현의 신선함은 사실 좀 아쉬움이 있지만 초반 서문을 제외하고는 한국과 관련된 부분이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낯선 세계를 가장 순수하게 만나게 해주는 것 같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르송이라는 낯선 지역과 교회라는 낯선 공간 어딘가에 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주게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일단 다 읽어야 확신하겠지마나 김경욱에 대한 믿음은 있으니까. 느낌 아니까!

 

세 작품 모두 낯선 세계로 독자를 데려가기 위한 수단으로 혹은 문서가 등장한다. 마치 해리포터에서 1과 1/2역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 공통점은 사실 이런 류의 소설의 한계가 느껴지는 것 같아 좀 아쉽다. 해리 포터, 반지의 제왕, 백투더퓨처가 모두 아기공룡둘리처럼 바이올린을 켜야만 판타지의 세계로 떠난다고 생각해보라. 얼마나 식상한지. 이 작품들이 나온지 오랜 시간이 지났으므로 부디 앞으로 나올 소설들은 다양한 루트로 독자를 낯선 세계로 데려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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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김영하느님 http://blog.aladin.co.kr/tiel93/6473969

2편 김경욱이옵 http://blog.aladin.co.kr/tiel93/6475135

 

사실, 내가 지금 페이퍼에 쏟을 정신이 있는 것은 아닌데 아이가 잠자는 동안 잠들 수 없고, 깨어 있는 동안도 잠들 수 없는 입장인지라 짬을 내어 써 본다. 괜히 혁사마에게 미안하다. 아마, 혁사마라는 말은 아는 분이 김연수 작가를 연수느님이라고 불러서 그에 맞추느라 그리 부른 기억이 난다. 기억이란 늘 불명확하므로 '아마도'라는 말은 필수적이다.

 

 

김중혁 작가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그의 소설도 아니고 그의 기사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니다. 글은 아니다. 그럼? 목소리이다. 한창 사이버문학광장(문장)에, 특히 '문장의 소리'에 관심을 가질 무렵 DJ가 김중혁 작가였다. 누군가는 그의 목소리가 매력적이라고 했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는, 이동진 작가님 말씀처럼 독특한 음악적 취향이 있는 하지만 그것이 치명적이게 매력적인 DJ였다. 그의 소설을 읽어볼까, 하는 마음을 가졌지만 무엇부터 시작해야할지 망설여졌다.

 

그러다가 2010년이 되어서야 문학동네 제1회 젊은작가상수상집으로 그의 소설을 처음 만나게 되었으니 다른 2金 작가님들에 비해 소설로 알게 된 것은 그 역사가 너무 짧다. 이후 문학동네 카페에서 책선물 릴레이에서 마침 김중혁 작가님의 <악기들의 도서관>을 선물받았고, 그 책에서 작가님에 대한 애정이 퐁퐁 샘솟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후 <미스터 모노레일>과 에세이 <뭐라도 되겠지>, <대책없이 해피엔딩>을 읽게 되었고 가장 최근엔 <헬로 미스터 디킨스>에서 그의 작품을 읽었다. 물론, 집에는 읽지 않은 <좀비들>과 <1F/B1>이 있다만.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면 앞서 말한 김연수작가님을 연수느님이라고 부르는 분이 연수느님의 책을 사인받아 선물해주셨는데 내가 원하는 문구로 해주신다기에 <뭐라도 되겠지>라고 적어달라고 부탁했더니 센스만땅 연수느님이 또 '뭐라도 되라지'라고 적어주셨다. 두 분 참 부러운 관계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상한 것은 작가님 소설에 대한 제 리뷰가 잘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했는데 이 페이지를 작성하려고 리뷰 기록들을 뒤적뒤적해보는데 리

뷰가 생각보다 없었다. 왜일까? 뭔가 엉뚱하고 신선하고 세련된 소설들을 읽으면서 그것을 표현할 말을 고르다 시일을 넘겨버린 것 같다. 그랬던 기억이 난다. 특히 <악기들의 도서관>이 그랬다. 개인적으로는 작가님의 장편 소설보다는 단편소설을 좋아하는데 특히 <악기들의 도서관>에 실린 '무방향 버스'는 지금도 기억이 난다.(읽고는 일주일을 안가는 나로서는 드문 일이다.) 이 단편집을 읽을 때 사실 아무 음악도 틀지 않았는데도 음악을 듣고 있는 듯 착각했다. 음악영화를 좋아하듯, 음악 소설도 좋아하는 모양이다.

 

물론 제 1회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인 '1F/B1'도 신선했다. 도대체 이 작가의 신선함이란 정말 낯설고도 흥미롭다. 장편 소설인 <미스터 모노레일>의 엉뚱하고 신선하면서도 묘하게 현실적인 느낌도 나쁘진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의 매력은 단편에서 그것들이 좀더 밀도 있게 다가오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2010. 6.28

무심히 지나쳤을 그 공간, 그 사이를 어쩌면 이토록 세상 밖으로 잘 끌고 나올 수 있을까. 이것은 김중혁이 가진 독특하고도 우주적인 시각 덕분이리라. 이전에 이상문학상 수상집에서 읽었던 차별성있던 작품 '3개의 식탁, 3개의 담배 ' 그 이상의 모든 것이 이 이야기에 담겨있다는 나의 말은 읽어가면서 거짓이 아님이 증명될 터이다.

 

 

2011. 8. 20

슈스케를 보고 있자면 윤종신이 '희소가치'를 외치는데 그런 면에서 본다면 김중혁은 소설계에서 정말 윤종신이 찾는 바로 그 목소리가 아닐까? 취향의 문제나 공감의 차원가 아니라 감탄의 차원이다.

 

 

 

요즘 이동진의 <빨간 책방> 덕분에 그의 목소리를 한 달에 두 번씩 꼬박꼬박 들을 수 있다. 나는 그의 유머가 좋다. 그런 그의 유머는 고스란히 그의 에세이에 남아있다. 절친인 김연수 작가와 공저한 <대책없이 해피엔딩>을 읽고 나서 내가 그의 유머를 정말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이유인즉슨 접어놓은 페이지들이 죄다 김중혁 작가 편이었다. 정말이지 단 한편도 김연수 작가의 귀퉁이는 접혀 있지 않았다는 점이 김연수 작가에게 미안할 정도였다. 명색이 누군가에겐 연수느님인데 말이다.

 

 

그러다가 만난 <뭐라도 되겠지> 밑줄 대박, 공감 백만배의 에세이였다. 재미로만 치자면 그의 모든 작품들 중에 최고로 재미있었다. 패러디면 패러디, 발명이면 발명, 풍자면 풍자 유머의 모든 것을 구사해주시는 김중혁 작가님 되시겠다!

 

 

집에 두고 아직 읽지 못한 두 권의 책을 포함하여 그의 데뷔작을 올해 안에 읽는 것이 목표인데, 3金 작가님의 못다 읽은 책 몇 권 언제 다 읽으려나 싶은 마음이 급 들어 맹세는 못한다. 참고로 <헬로, 미스터 디킨스>에서는 김중혁 작가님 작품이 아마도 젤 분량이 길었던 것 같은데 제일 빨리 재밌게 읽었다. 올해 한국 소설이 3金 작가님들 덕분에 더욱 든든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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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金♥작가 1편 김영하 작가편(http://blog.aladin.co.kr/tiel93/6473969)에 이어 김경욱 작가에 대하여 페이퍼를 올려보고자 한다. 올해가 김경욱 작가의 등단 20주년인 해라고 한다. 김영하 작가가 1996년에 등단했으니 그보다 3년 더 빠르지만 개인적으로 내가 김경욱 작가의 소설을 읽은 것은 그보다 훨씬 늦다. 

 

 

 요즘 와서 보니 김경욱 작가야 말로 미남이시다는^^; 사실 김영하 작가의 프로필 사진에 반했던 데에 반해 김경욱 작가의 프로필 사진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미남인 줄 모르고 진심 작품 때문에 좋아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만 변명이 안되,겠지?^^ 작가님 소설로는 2005년에 처음 읽은 <장국영이 죽었다고?>로 시작해서, <천년의 왕국>, <위험한 독서> 그리고 공통 집필한 <소설가로 산다는 것>과 <헬로, 미스터 디킨스>를 읽었는데 희한한 건 이 책들이 집에 하나도 없다. 팬이라고 하기엔 참 미안한 지점이다. 대신 집에는 읽지 않은 <동화처럼>과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만 빳빳하게 서 있다. 김영하 작가의 소설이 오래된 연인처럼 읽은 듯 안읽은 듯 다 읽고 다 곁에 두었다면, 김경욱 작가의 소설은 연애가 시작되기 전 엇갈리는 인연처럼 아직까지는 이렇게 어긋나고 있다. 읽은 책은 집에 없고 읽지 않은 책만 집에 있으니 읽고 나면 이 책들도 왠지 어디론가 보내버려야할 것 같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신간이 나왔으니 어여들 읽자고!

 1999년부터 읽은 김영하 작가의 소설에 비해 6년이나 늦게 만난 김경욱 작가의 소설이지만, 오래된 연인처럼 마침 그 즈음 살짝 눈돌릴 때였는데(?) 김경욱이라는 작가를 만나게 되어 또 눈이 하트 뿅뿅 되었다. 독자 마음 참 간사하다. 그래도 김영하 작가의 작품들 보다는 많이 덜 읽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두 분의 색깔이 많이 달라서 누가 더 좋으냐고 묻는다면, 아니 어쩌면 다음에 이야기할 김중혁 작가를 포함해 세 분의 색깔이 정말 달라서 독자로서는 셋을 동시에 다 좋아할 수 있어 정말 행복하다. 아직도 한창 연애 중(나 혼자만,,,,^^;)인 김경욱 작가의 작품을 소개해본다.

 

<우리 처음 만난 날 - 장국영이 죽었다고?>

 

 이 책이 생각난 것은 바로, 장국영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작가는 이 소설집을 통해 '소통'을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소설 속 인물들이 많이 외로워보였다.  기록 중 표제작 '장국영이 죽었다고?'에 대한 기록 중 일부를 옮겨본다.

 

2005.10. 18

개인적 추억은 개인적으로, 대상에 대한 그리움 역시 개인적으로, 바로 그 개인적인 멋스러움이 인터넷에 의해 사라져버리고 오히려 그것이 뭔가 잘못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에 대한 잘못을 느껴본다.

 

 

<아, 작가님 사릉합니다 ♥ - 천년의 왕국>

 

 역사 소설을 쓸 줄은 몰랐다. 단편을 통해 느꼈던 섬세함을 기대했는데 돌아온 것은 묵직함 그리고 탄탄한 문장력이었다. 책을 읽은지 한참이 지났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문장이 정말 좋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김경욱 작가의 소설을 읽은지가 꽤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이라고 말하는 데에는 이 소설의 역할이 크다.

 

(그나저나 리뷰를 적은 것 같은데 또 없다. 새로 찾은 공책엔 김영하 작가의 두 작품의 리뷰가 있었다. 참, 기록은 열심히 하는데 정리가 좀...^^:)

 

<사랑의 확신 - 위험한 독서>

 단편을 읽어도 장편을 읽은 듯한 느낌이었다. 편편이 무게감이 느껴졌다. 김경욱 작가에 대한 무한한 신뢰감이 형성되었다.

 

2009.

대체로 몇몇 작품만 인상적인 많은 단편집과 비교해볼 때 지금 난 꽤나 ‘유익한 독서’를 한 듯 하다.

 

<내 눈엔 너 밖에 안 보여♬ - 소설가로 산다는 것>

여러 작가들의 소설쓰는 이야기가 담긴 <소설가로 산다는 것>의 첫 글은 김경욱 작가였다. 에세이라고 하기엔 매우 진지했고, 나는 그런 진지함이 정말 좋았다. 이후에 이어진 소설가들의 이야기는 그에 비해 가벼웠고, 나는 그런 가벼움이 정말 가벼웠다. 이 책에선 김경욱 소설가만 보였다.

 

2012. 1. 23

-17명의 작가가 글을 썼고 나는 그중 대여섯 명의 글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단 3명의 글을 좋아했고 그중 으뜸은 김경욱이다. 그러니까 내게 이 책은 <-김경욱 외>이다.

 

<더 알고 싶어요!>

 사놓고 읽지 못한 책, 분명 솟구치는 궁금함으로 샀을 거면서 이렇게 밀려있다. 새로 나온 소설 <야구란 무엇인가>에서 느낄 묵직함도 기대하게 한다. 내가 알지 못했던 <장국영이 죽었다고?>이전의 작품도 궁금하다. <헬로, 미스터 디킨스>에서의 김경욱 작가님 작품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김중혁 작가님 소설이 좀더 좋아서 이 책은 3편에 소개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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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애정하는 3김 작가가 있다. 좋아하게 된 순서로 소개하자면 김영하, 김경욱, 김중혁 작가가 바로 그들이다. 나는 각기 그들을 영하느님, 욱이옵, 혁사마 라고 부른다. 별명은 혁사마, 영하느님, 욱이옵의 순서로 지었다. 사실 김경욱 작가의 경우엔 괜히 설레어서 별명을 지어 부르지 못했다가 신간 출간 기념으로 별칭으로 부르기로 했다. 물론 대상없는 호칭이다.

 

 

김영하 작가를 좋아하게 된 것은 스물두 살로 기억한다. 그의 데뷔작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읽고 충격과 매력을 동시에 느꼈었다. 그땐 두세줄 메모로 기록했을 기록장에 나는 무어라 적었을까? 그즈음의 기록을 찾아보니 다행히 있다.( 잠시 후에 소개^^) 책장 한 칸엔 이 3金 ♥작가의 책이 옹기종기 모여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제외하고는 모두 읽었으니 전작은 아니더라도 9할작주의는 된다고 생각한다. 작정하고 읽지 않았는데 새 작품이 나올 때마다, 혹은 그것을 놓친 다음에는 늦은 후에라도 찾아 읽다보니 스물두 살로부터 13년이 멀어진 지금, 나는 작가의 경력과 함께 나이를 먹었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초기작부터 <빛의 제국>까지를 좋아한다. 이후의 작품들은 장편보다는 단편이 더 좋았다. 그를 가장 신뢰하게 된 작품은 단연 <검은 꽃>이다. 이번에 출간된 <살인자의 기억법>은 왠지 내가 가장 좋아했던 그의 작품들을 닮았을 것 같은 기대를 해 본다. 새로우면서도 탄탄한 문장과 사건을 만나고 싶다.

 

 

 <처음 그에게 반했던 작품들- 1999년 이후의 기록과 함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로 시작한 줄 알았는데 기록을 보니 <호출>을 먼저 읽었었다. 사람의 기억이란 참. 이 책을 읽고 스물 두살의 나의 기록 중 한 줄을 소개해 본다.

1999.7.1

- 신선하다. 깬다. 이게 내가 그의 소설을 찾는 이유이다.

 

 

1999. 7. 26 

- 착한 소설이다. 나비효과. 그런 맘이 들 때가 있다.

 

 

 

 

 

 

1999. 8. 21

- 푹빠져 있는 지금 그의 소설에 대해 평을 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담배같은 소설.

매캐한 중독성.

 

 

  

 

이 책이 네번째 읽은 소설이라는 점에 스스로 깜짝 놀랐다. 이 책의 인상이 컸던 모양이다. 그것도 2002년에야 읽었다니!!!

 

2002. 1. 7

-난 왜 김영하의 글을 좋아하는 걸까? 형식을 파괴하고 기존의 안정된 내용들을 완전히 탈피했기 때문이지. 사실 뭘 말하고자 하는 지는 파악이 잘 안된다.

 

<권태기랄까? - 2005년 이후의 기록과 함께>여기서부턴 리뷰를 길게 쓰던 시기이다.

 

2005. 1. 12

- 다소 부드러워진 그의 글 속에도 예전의 느낌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은 나도 함께 물러진 탓이리라.

 

 

 

2005. 1. 26

영화평을 읽을 땐, 그가 글을 잘 쓰는 사람같지는 않다. 그저 사고가 유연하다고 느껴질 뿐. 그러하기에 여전히 난 그가 소설을 쓰기를 바란다.

 

 

 

 

 

 

2006. 11.2

일반인으로서의 김영하, 일명 지식인으로서의 김영하, 소설가로서의 김영하가 사는 글이었다. 물론 그 안에 일반인으로, 일명 지식인으로, 직업인으로 나도 살고 있는 글이었다. 그래서 나는 10년 가까이 그의 글을 사랑하나 보다.

 

 

 

2008. 10. 30 (시기상으론 절정기지만 작품상으론 권태기인듯)

-길었고 쉽게 읽히긴 했다.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도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실망하기도 했던 소설이었다.

 

 

 

 

 

<애정의 절정기 -2008년 이후의 기록과 함께>

 

  2008. 10. 9

-끔찍했던 어떤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여겨지는 것, 그런 일이 반복되는 것, 혹시 그런게 인생이 아닐까

‘끔찍’까지는 아니더라도 깜짝 정도는 놀라야 하는 일, 못 견딜 것 같던 슬픔과 아픔, 고통의 일들이 여러 번 반복 되면 그것은 정말 일상처럼 느껴지고 그들이 인생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함께 들었다.

 

 

 

찾았다 이 책의 리뷰를!

2006. 11. 19

역사 소설치고 이 소설만큼 민족주의와 영웅주의가 눈에 띄지 않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글을 읽는 내내 나는 특정 인물에 대해 과도한 애정과 연민, 존경을 가진 적이 없다.

 

 

 

2010. 8. 15

- 김영하의 짧은 소설은 비현실적인 내용에서 현실감을 준다는 점이 다르다. 다시 말해, 순간 멍해지는 느낌을 받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이내 든다.

 

 

 

 

그 외 읽었지만 기록이 없는 책들

 

 

 

 

 

 

 

 

 

 

읽지 않았지만 읽고 싶은 책들

 

예약 판매로 구매하고 기다리는 <살인자의 기억법> 제목만으로도 읽고 싶은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그리고 사놓고 읽지 못한 <옥수수와 나>!

 

 

 

남은 2金의 이야기는 다음 이시간에,,,, 근데 나 사실 영하느님 데뷔하셨을 때 프로필 사진에 반했었는데 그때 생각만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잘생겼다고 말하고 다니다가 무시당함...확인해보니 미남은 아니신걸로! 목소리가 좋으시니까! 남자는 목소리지!라며 다시 신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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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는 어쩜 이다지도 무지한지.. 다니자키 준이치로, 슈테판 츠바이크, 제임스 설터, 구효서라...

한 달에 10여 권의 책을 읽고, 일 년에 100여 권의 책을 읽는다면 분명 우리나라 성인 평균 독서량보다는 많은데 나는 의외로 작가들을 잘 모른다. 물론 애정하는 작가가 있다. 알랭드 보통, 밀란 쿤데라, 헤르타 뮐러, 김영하, 김중혁, 김경욱, 오은, 김언, 심보선, 아멜리 노통브, 오르한 파묵, 알베르토 망구엘, 로쟈 등등. 하지만 인터넷 서점을 들락 거리거나 책관련 카페에서 소개되는 책들을 보면 마치 나만 모르고 다 아는 작가의 소설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럴 때 짐짓 아무렇지 않은 채 하지만 나 정말 궁금하다. 사실 궁금해서 <한밤의 아이들>같은 경우에는 읽어보려고 시도 했었다. 다만 실패했을 뿐이다. 그렇게나마 해소가 되면 기호를 말할 수 있는데 대체 나는 그 유명한 작가들의 이름을 처음 접하니 할 말이 없다.

 

 

 

여러 번 페이지에서 언급했다. 김영하 작가가 읽어주는 <만>에 반해 그가 궁금했다고. 그러나 아직 그를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고 어제서야 바로 그 책 <만,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가 내 책장에 들어왔다. 탐미주의라고 했고, 실제 그의 삶이 탐미적이라고 했다. 탐미적이라고? 그게 무슨 뜻일까? 소설을 들어본 바로서는 무척이나 '여성의 몸'에 대한 탐미로 느껴졌다. 사실 혼자 책읽으면서도 부끄러워하는 나로선 썩 즐겨읽는 내용이 아니지만 왠지 끌렸다. <미친 사랑>이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는 더더욱! 제대로 빠져보자 싶은 마음이 들었다. 김영하 작가가 소설을 읽어주며 언급한 <세설>이라는 (내 기억에는 그런데 확실하진 않다.) 작품도 궁금해하는 중이다. 최근 창비 세계문학 속에서도 <열쇠>라는 작품으로 포함되어 있으니 이 작가가 궁금한 것은 나만의 현상은 아닌 모양이다. 왜 우리는 그의 소설을 탐하게 되었을까? 세상이 어지럽기 때문일까? 어쩌면 현실도피적인 성향이 나랑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잊자. 아름다움을 제외하고 모두.

 

 

 

 

 

 

 

 

 

 

 

 

 

문학동네에서 세계문학들을 한창 구입할 때만 해도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은 내 위시리스트에 올랐던 적이 없었다. 나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슈자도 몰랐었다. 그런데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하던가? <열린 인문학 강의>를 통해 알게 된 유유출판사에서 나온 연두색 표지를 보고 가진 1%의 관심, 누군가 추천하는 페이지에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를 보고 사실 작가보다는 주제에 대해 가진 10%의 관심, <백년의 지혜>에서 알리사 할머니가 의지했던 <어제의 세계>에 대한 30%의 관심, 그러다가 그의 이름을 검색하고 나니 주루룩 목록이 뜨는 그의 많은 작품들, 작품들, 작품들.  나는 가랑비에 옷이 홀랑 젖고 말았다. 그리고 우선 <이별 여행>이라는 표지가 아름다운 책을 구입했다. 나는 그의 소설에서 무엇을 기대할까? 사실 소설 외의 책에도 많은 관심이 생기지만 우선 시작은 소설로 하고 싶다. 알리스 할머니에 의하면 그는 히틀러 집권을 미리 예감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그의 소설이 심리묘사가 섬세하다고 한다. 섬세함과 통찰력을 갖춘 소설가! 어찌 궁금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사랑하는 인간의 조건 중의 하나이다

 

 

 

 

 

 

 

 

 

 

하하하, 난 이 페이지에 그의 데이터를 입력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가 여자인 줄 알았다.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이다. <가벼운 나날>의 표지에만 전적으로 의존한 탓이다. <가벼운 나날>이 출간되어 책정보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난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작가인데, '작가들이 칭송하는 작가' '미국 최고의 문장가'로 꼽힌다고 했다. 더욱이 이 책의 편집자는 “편집한 책 중에 다음 세대까지 오래 남을 책을 들라”는 질문에 설터의 <가벼운 나날>을 꼽았다고 한다. 고뤠? 그 정도야? 마음이 동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여기까지는 그저 <가벼운 나날>에 한하여 생긴 관심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트위터였다. 트친들이 주고받는 트윗들에 제임스 설터의 이름이 자주 거론되었다. 그 중 <어젯밤>을 읽었다느니 다시 읽을 예정이라느니 하는 말은 심히 부담되었다. 흔들리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말해봤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꼭 읽어보고 싶은 작가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작가들 중 단연 독보적으로 백지상태의 지식이지만 왠지 문장력이 기대된다.

 

 

 

 

 

 

 

 

 

 

 

한국 소설을 어릴 때부터 읽은 것이 아니라 대학 때부터 읽었기에 의외로 한국 소설을 잘 모른다. 젊은 작가들의 소설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나를 사로잡은 것은 은희경, 김영하였고 나는 그 이전에 나온 작가들의 소설은 이문열의 삼국지가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경숙과 김형경의 소설을 읽지 않은 것은 아니나 크게 인상적이지 않았다. 따라서 지금까지도 나는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더 선호한다. 그러다 구효서의 신작 모니터링을 하게 되었는데 사실 좀 놀랐다. 1958년생이면 우리 나이로 56세인데 문장에서 젊음이 느껴졌다. 탄탄했고 예상을 전복했다. 단편들의 내용도 좋았지만 그 점이 개인적으로는 인상깊었다. 이 작가의 소설을 더 읽어보고 싶었다. 차일피일 미루던 터에 이번에 <베를린 인 랩소디>를 구입했다. 책을 고르면서 '구효서'라는 이름만으로 책을 사는 팬층이 두텁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의 평은 내가 신작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랜 필력의 작가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음악에 귀 기울이고 싶다.

 

 

 

 

 

 

 

 

 

 

아마 지금 언뜻 생각이 나지 않아서 그렇지 더 많은 작가들이 내 머릿 속을 살짝 살짝 가랑비 뿌리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어떤 계기로 소낙비 한 번 내려주면 나의 관심은 수직상승할 터이다. 좋은 작가를 알게 된다는 것은 참 좋은 일 같다. 처음엔 몰랐던 작가가 유명한 작가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당황하기도 했지만 내가 꼭 그들을 다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라며 일단은 합리화를 하고 그들 중 몇 분을 알아가는 과정을 거치고 읽고 애정하게 되는 과정이 참 좋다. 이 네 분 중 세 분의 소설이 오늘이면 책꽂이에 자리하게 된다. 내 손에도 부디 빨리 오시길 바랄 뿐이다. 그건 나도 장담 못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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