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이 책을 바라보는데 괜히 손이 갔다 쓰담쓰담.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 국 영>

 

  장국영이 만우절에 생을 달리 한 것은 알았지만 9월 12일이 그의 생일인 줄은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알았고, 곧 그의 생일이 다가옴은 한참 후에야 깨달았다.

  살아생전 난 장국영을 그리 좋아하는 관객은 아니었다. 그를 좋아했던 것은 <금지옥엽>이라는 영화와 <야반가성>에서의 노래 부르는 모습이었다. 실제로 그는 배우보다는 가수로 먼저 데뷔했고 사랑받는 가수였다.

 

 

 그의 팬은 아니었지만 그가 생을 달리하던 때에, 나는 많이 울었다. 여리고 다정했던 영화 속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 그를 사랑해주지 못해 미안했다. 최진실이 떠났던 때와 노무현 대통령이 떠났던 때도 그랬다. 난 늘 왜 영원히 떠난 이들에게 뒤늦게 미안해지는지 모르겠다. 그런 식으로 생을 달리 하지 말아줬더라면 더 좋았을텐데......안쓰럽고 더 사랑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10년이 되었다고 한다. 주성철 기자는 그의 사망일이 오기 몇일 전 홍콩으로 떠났고 그의 흔적을 찾아 홍콩의 이곳저곳을 찾아다녔다. 많은 시일이 떠나 세상 속에서 그의 흔적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 마음이 아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기억하는 이를 발견할 때의 기쁨이 책 곳곳에 드러나있다. 홍콩의 배우들이나 영화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장국영'에 대해 묻는 일을 계속 했고 그때마다 그들은 오랜만에 장국영을 떠올리며 아련해했고 미안해했다. 누군가는 들추는 사람이 있어야 추억 속의 사람도 살아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사랑하는 양조위가 떠났다면, 그리고 10년이 흘렀다면 난 이렇게 무심히 잊고 살 수 있었을까? 아니, 무심히 잊고 지냈을 것 같다. 사랑하는 가족이 떠나도 떠난 시간이 많이 흐를수록 무심해지는 것이 사람이 아니던가. 그런 면에서 본다면 장국영은 주성철이라는 사람을 비롯하여 오래오래 기억해주고 들추어주려는 사람이 있으니 행복한 것이 아니겠는가. 생전 노인의 역할을 하지 않은 장국영은 언제나 그 예의 맑은 웃음과 우수어린 촉촉한 눈빛으로 떠올려진다.( 내가 사랑하는 양조위는 요즘 독고영재 닮아가던데....) 가장 아름다운 그때의 모습으로 영원히 기억된다는 것은 어쩌면 떠난 그에겐 위안이 되지 않을까. 그에게 이생은  화양연화花樣年華인 동시에 춘광사설春光乍洩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어느 누구에겐들 그렇지 않을까만은.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사 두고 읽지 않았던 작가의 첫번째 책 <홍콩에 두번째 가게 된다면>을 찾아 읽고 있다. 읽다보니 <그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은 바로 이 책에서 장국영에 대한 내용을 더 구체화, 집중화 시킨 책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시절...>이 홍콩에서 장국영의 흔적을 작가와 함께 찾아가서 애도하는 책이라면 <홍콩에 두번째 가게 된다면>이 우리 추억 속에 고이 간직된 홍콩 영화의 흔적을 구석구석 찾아가 우리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 향수가 충만해질 즈음 문득, 홍콩에 가고 싶어진다. 아, 내 어릴 적 꿈이 홍콩에 가서 양조위를 만나는 것이었지! 아, 그 시절 내 상상 속에서 얼마나 다양한 방법으로 홍콩의 배우들을 만났던가!하는 살짝 얼굴 붉어지는 추억까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홍콩엔 길거리에 채이는 게 배우라던데,,,그 말은 사실일까?^^ 주성철 기자가 우연히 관지림을 만난 걸 보면 사실일 것도 같다. 관지림, 참 예뻤는데.......

 

 

책 속 홍콩의 모습을 보니 참 복작복작 복잡하다. 홍콩의 모든 곳이 영화 속 장소일 것만 같다. 홍콩 영화 안 본지가 꽤 오래되었다. 마지막으로 본 것이 마치 <화양연화>인것만 같다. 그만큼 오래되었다. <천장지구>, <불초자 열혈남아>를 보며 휴지 한 통씩 다 쓸 정도로 엉엉 울었던 어린 소녀. <도학위룡>, <가유희사>를 보며 깔깔 대던 그 어린 소녀. <아비정전>, <동사서독>, <중경삼림>에서 <춘광사설>, <화양연화>까지 왕가위의 영화를 사랑했던 소녀 혹은 여자. 그녀를 참 오래 잊고 살았다. 지금도 보이는 곳에 홍콩 영화 비디오테이프가 있건만 이젠 그것을 볼 수 있는 기계마저도 없다. 시간은 참 지나간다는 말도 없이 퍽도 빠르게 지나간다. 뭉텅이 뭉텅이로 지나가는 것만 같다. 어디서 홍콩 영화 한 편 상영해주면 좋겠다. 기왕이면 오~~래 된 것으로, 촌스러워도 좋아!

 

 

 

 

 

 

 

 

 

 

 

 

 

 

 

 

 

 

 

 

 

 

아, 홍콩에 가고 싶다. 두번째가 아니라 단 한 번 이라도!

 

 

 

"유덕화가 캐릭터와 경쟁하는 배우라면

양조위는 캐릭터와 사랑에 빠지는 배우다

그리고 장국영은 캐릭터를 유혹하는 배우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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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3-09-12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때 홍콩영화 매니어(비디오와 dvd로 많이 봄)였는데 장국영이 죽은지 벌써 10년이 되었네요.장국영은 항상 우수에 찬 모습으로 뭇 여성들의 마음을 울렸는데 개인적으로 장국영의 코믹한 모습이 더 보기 좋더군요.
동사서독이 여러문제로 촬영이 늘어지자 그 틈에 후다닥 찍은 영화가 있는데 바로 동성서취입니다.이 영화속 코믹한 장국영이 모습이 참 재미있었습니다.혹 보셨는지요?

그렇게혜윰 2013-09-13 01:25   좋아요 0 | URL
양조위가 퉁퉁부은 입술로 나오고 유명한 배우들 거의 다 나온 시대물이었죠^^ㅋ
책 속 사진에서의 장국영의 환한 웃음을 진작 알았더라면 좀더 사랑했을텐데 말이죠. 하긴 양조위도 한 우수 했는데 그는 사랑했네요. ㅋ
 

몇 년 전 우연한 기회로 김려령 작가님과 아주 가까이에서 마주 앉아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 그땐 동화책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로 밖엔 작가님을 알지 못한 때라 지금 생각하면 내가 그 자리에 앉았다는 것이 작가님께 얼마나 큰 실례였던가 하는 생각에 얼굴이 붉어지기도 한다.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작가님에게서 읽었던 섬세함, 따뜻함, 슬픔, 명랑함을 오래 기억했다. 이후 <완득이>를 읽었고 사실 깜짝 놀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득이> 속에도 김려령이라는 사람은 작품 전반에 실려 있었다.

 

오랜만에 작가님의 소설을 읽었다. <너를 봤어>. 제목을 보는데 너무 읽고 싶어졌다. 너를 너무나 보고 싶었다고 하면 이해가 될까? 도대체 '너'는 누구길래,,,,,,

 

똘재야, 너를 봐서 너무 행복했다.

 

가장 간단하게 독후감을 말하라면 이 문장이다. 수현의 질척이는 가족사를 읽으면서 그리고 가족의 죽음에 대한 낯선 대응을 보면서도 나는 동요하지 않았다. 아마 어느 순간부터 나 역시 수현을 온마음으로 사랑한 모양이다. 예쁜 아저씨 정수현을, 그리고 수현 안에 숨어 있는 나를 몹시도 사랑한 모양이다. 가여워한 모양이다. 똘재가 나타나서 정말 좋았고, 그녀가 수현을 받아주어 다행스러웠고, 수현을 떠나지 않고 그 곁에 머물러주어 고마웠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 독자가 이 소설을 읽고 한번쯤 웃고, 한번쯤 울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위로받은 듯한 웃음을 여러 차례 지었고 세번 크게 울었다. 에필로그에서 두 번, 작가의 말에서 한 번. 그 중 가장 크게 운 것은 작가의 말이었다. 이 소설은 앞의 모든 것들이 켜켜이 쌓여 마지막에 그 모두를 느끼게 하는 소설이었다.

 

책을 마무리하던 때가 밤이었다는 것이 큰 이유였을까, 아닐 것이다. 전혀 외롭지 않은 밤이었고 울 생각 따윈 하지 않던 시간이었다. 속지에 영재와 도하가 남긴 짧은 인사말에서 터진 울음은 그 밤 내내 한참 이어졌다.

 

마지막까지 우리였던, 영원히 그러할

당신을 애도하며, 서영재

당신에게 키스를, 윤도하

 

사랑합니다.

2013년

 

 

다음 날 책꽂이에서 <우아한 거짓말>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몇년 전의 자리에서 작가가 자전적 이야기라고 했던가 아끼는 이야기라고 했던가 했던 기억이 나서 <가시 고백>을 뒤로 하고 <우아한 거짓말>을 읽기 시작했다. 천지의 죽음은 좀 이르게 왔다. 봉인된 실을 하나씩 찾을 때마다 봉인된 눈물이 툭툭 터져 나왔다. 그러다 역시 작가의 말에 이르러 펑펑. <완득이>를 읽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아프면서 슬프고, 슬프면서 아름답고, 아름답기에 결코 절망적이지 않은, 끝에 여운으로 남는 행복감이 있었다. 물론 <완득이>도 그랬다. 다만, 이 두 편의 소설은 마치 김려령이라는 사람의 속에서 그 모든 감정을 싹싹 긁어서 나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장담할 수 없는 것은 아마 다음에 읽을 작가님 소설을 읽다보면 또 맘이 변할 것 같다. 아직 남은 속이 있어서 아직 읽지 못한 소설에서 또한번 그 느낌을 받을 것 같다는 말이다. 작가의 말마저도 아름다웠다. 작가의 말에 자신의 남은 속을 다 긁어내어 독자에게 주는 것 같았다. 그러하기에 어느 소설을 읽어도 다 사랑할 것 같다. 아프고 슬프고 아름다고 행복한 느낌.

 

내일 당신을 만나러 갑니다, 보고 싶습니다.

 

 

내가 수많은 당신을 죽이며 갈망했던 것이 결국 사랑이었나보다.------이 책을 펼친 당신이 한번쯤 웃었으면 좋겠고 한번쯤 울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 작은 사랑이 당신에게 가 닿으면 좋겠다.
「너를 봤어」작가의 말 중.

어른이 되어보니, 세상은 생각했던 것처럼 화려하고 근사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버렸다면 보지 못했을, 소소한 기쁨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거면 됐습니다. 애초에 나는 큰 것을 바란 게 아니니까요.
「우아한 거짓말」작가의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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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황금 사과>를 읽고 있다. 인물들의 이름은 윌리엄, 토마스, 제롬 등이다. 한국 작가가 내 삶과 어느 한 가지만 중복되는 이야기를 쓰더라도 별 어려움 없이 소설 속 인물 중 하나에 나를 이입시키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다른 시대 다른 나라에서 다른 이름을 가진 인물들이 얽힌 이야기를 읽으면 이입이 쉽지는 않지만 이입이 된다면 단순히 시대나 나라나 이름 때문에 이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물 자체에 이입이 되기 때문에 도리어 더 깊은 이입이 되곤 한다. 하지만 이입의 문제를 떠나 나는 그런 소설 자체에 많이 놀란다.

 

우리 나라 작가가 깊은 다년간의 연구로 우리 나라의 역사 소설을 완성해도 대단해보이고 놀라워보이는데 심지어 다른 나라의 역사 소설을 완성할 때에는 그 과정에서 얼마나 연구를 많이 했을까 싶어 사실 읽는 동안 많이 감탄하면서 읽게 된다. 물론 탄탄한 개연성을 가진 작품들에 한해서 말이다. 우리 나라에서 살다보면 자연 우리 역사에 대해서는 알게 모르게 관심도 갖게 되고 지식도 쌓이게 되지만 중세 유럽의 삶에 대해서는 아마 처음부터 새롭게 알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을텐데 싶은 마음이 들어 그 놀라움이 더 커지는 것 같다. 우리가 펄벅의 <서태후>를 중국인들이 쓴 서태후에 관한 이야기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보는 것은 이국인의 눈으로 보았다는 관점의 문제 외에도 이런 감탄의 성격이 있을 것이다. 아마 내가 우리 작가가 쓴 중세 유럽 혹은 고대 아프리카 등등 낯선 세계의 이야기에 놀라움을 느끼는 것도 그와 같다.

 

최근 읽은 <랩소디 인 베를린>의 경우가 그러했고, 지금 읽고 있는 김경욱의 <황금 사과>가 그러하고, 꽤 오래 전에 읽은 조완선의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1,2>가 그러하다. <랩소디 인 베를린>의 경우 조선인의 후손이라고 추측되는 인물 요한 힌터마이어에서 시작된  18세기 말 독일의 이야기가 21세기 독일과 일본, 한국으로 폭넓게  확장되면서 진행되는 점은 작가 구효서의 소설가적 능력이 백분 발휘된 것이며 그 외 고전 음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이야기를 버무리는 능력 또한 작가에 대한 신뢰감을 갖게 만든 수작이라할 수 있다.  조완선의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은 제목만 보고는 김탁환 류의 소설이겠거니 했는데 비록 시작은 조선이지만 그 이야기를 좇아가다보면 아프리카, 프랑스를 넘나들고 긴박한 진행과 낯선 세계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정과 묘사로 푹 빠져들게 한다. 지금 읽고 있는 <황금 사과>는 지금 읽는 중이라 아직 정확한 결말을 모르지만  실연 당한 한 한국 남자가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한 권의 수기에서 시작되어 수기 속 내용인 13세기 유럽의 기독교 세계에서 벌어지는 암투가 흥미롭다.

 

 

 

 

 

 

 

 

 

 

 

 

가장 긴박하게 흥미롭게 읽혔던 책은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로 추리의 형식을 띠어서 일 수도 있고 아무래도 금속활자에 관한 한 독자 대다수가 인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토트'라는 낯선 지식을 받아들이기가 쉬웠던 까닭도 있을 것이다. 가장 많은 감탄을 하며 읽은 작품은 단연 <랩소디 인 베를린>으로 고전 음악도 모르고, 18세기 독일은 더더욱 모름에도 불구하고 독자를 흡입하게 만든 구효서라는 작가의 힘 때문인 것 같다. <황금 사과>의 경우는 작가의 이후 역사 소설인 <천년의 왕국>에서 느낀 탄탄한 문장력이나 여타의 다른 단편 소설에서 느꼈던 표현의 신선함은 사실 좀 아쉬움이 있지만 초반 서문을 제외하고는 한국과 관련된 부분이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낯선 세계를 가장 순수하게 만나게 해주는 것 같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르송이라는 낯선 지역과 교회라는 낯선 공간 어딘가에 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주게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일단 다 읽어야 확신하겠지마나 김경욱에 대한 믿음은 있으니까. 느낌 아니까!

 

세 작품 모두 낯선 세계로 독자를 데려가기 위한 수단으로 혹은 문서가 등장한다. 마치 해리포터에서 1과 1/2역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 공통점은 사실 이런 류의 소설의 한계가 느껴지는 것 같아 좀 아쉽다. 해리 포터, 반지의 제왕, 백투더퓨처가 모두 아기공룡둘리처럼 바이올린을 켜야만 판타지의 세계로 떠난다고 생각해보라. 얼마나 식상한지. 이 작품들이 나온지 오랜 시간이 지났으므로 부디 앞으로 나올 소설들은 다양한 루트로 독자를 낯선 세계로 데려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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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김영하느님 http://blog.aladin.co.kr/tiel93/6473969

2편 김경욱이옵 http://blog.aladin.co.kr/tiel93/6475135

 

사실, 내가 지금 페이퍼에 쏟을 정신이 있는 것은 아닌데 아이가 잠자는 동안 잠들 수 없고, 깨어 있는 동안도 잠들 수 없는 입장인지라 짬을 내어 써 본다. 괜히 혁사마에게 미안하다. 아마, 혁사마라는 말은 아는 분이 김연수 작가를 연수느님이라고 불러서 그에 맞추느라 그리 부른 기억이 난다. 기억이란 늘 불명확하므로 '아마도'라는 말은 필수적이다.

 

 

김중혁 작가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그의 소설도 아니고 그의 기사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니다. 글은 아니다. 그럼? 목소리이다. 한창 사이버문학광장(문장)에, 특히 '문장의 소리'에 관심을 가질 무렵 DJ가 김중혁 작가였다. 누군가는 그의 목소리가 매력적이라고 했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는, 이동진 작가님 말씀처럼 독특한 음악적 취향이 있는 하지만 그것이 치명적이게 매력적인 DJ였다. 그의 소설을 읽어볼까, 하는 마음을 가졌지만 무엇부터 시작해야할지 망설여졌다.

 

그러다가 2010년이 되어서야 문학동네 제1회 젊은작가상수상집으로 그의 소설을 처음 만나게 되었으니 다른 2金 작가님들에 비해 소설로 알게 된 것은 그 역사가 너무 짧다. 이후 문학동네 카페에서 책선물 릴레이에서 마침 김중혁 작가님의 <악기들의 도서관>을 선물받았고, 그 책에서 작가님에 대한 애정이 퐁퐁 샘솟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후 <미스터 모노레일>과 에세이 <뭐라도 되겠지>, <대책없이 해피엔딩>을 읽게 되었고 가장 최근엔 <헬로 미스터 디킨스>에서 그의 작품을 읽었다. 물론, 집에는 읽지 않은 <좀비들>과 <1F/B1>이 있다만.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면 앞서 말한 김연수작가님을 연수느님이라고 부르는 분이 연수느님의 책을 사인받아 선물해주셨는데 내가 원하는 문구로 해주신다기에 <뭐라도 되겠지>라고 적어달라고 부탁했더니 센스만땅 연수느님이 또 '뭐라도 되라지'라고 적어주셨다. 두 분 참 부러운 관계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상한 것은 작가님 소설에 대한 제 리뷰가 잘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했는데 이 페이지를 작성하려고 리뷰 기록들을 뒤적뒤적해보는데 리

뷰가 생각보다 없었다. 왜일까? 뭔가 엉뚱하고 신선하고 세련된 소설들을 읽으면서 그것을 표현할 말을 고르다 시일을 넘겨버린 것 같다. 그랬던 기억이 난다. 특히 <악기들의 도서관>이 그랬다. 개인적으로는 작가님의 장편 소설보다는 단편소설을 좋아하는데 특히 <악기들의 도서관>에 실린 '무방향 버스'는 지금도 기억이 난다.(읽고는 일주일을 안가는 나로서는 드문 일이다.) 이 단편집을 읽을 때 사실 아무 음악도 틀지 않았는데도 음악을 듣고 있는 듯 착각했다. 음악영화를 좋아하듯, 음악 소설도 좋아하는 모양이다.

 

물론 제 1회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인 '1F/B1'도 신선했다. 도대체 이 작가의 신선함이란 정말 낯설고도 흥미롭다. 장편 소설인 <미스터 모노레일>의 엉뚱하고 신선하면서도 묘하게 현실적인 느낌도 나쁘진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의 매력은 단편에서 그것들이 좀더 밀도 있게 다가오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2010. 6.28

무심히 지나쳤을 그 공간, 그 사이를 어쩌면 이토록 세상 밖으로 잘 끌고 나올 수 있을까. 이것은 김중혁이 가진 독특하고도 우주적인 시각 덕분이리라. 이전에 이상문학상 수상집에서 읽었던 차별성있던 작품 '3개의 식탁, 3개의 담배 ' 그 이상의 모든 것이 이 이야기에 담겨있다는 나의 말은 읽어가면서 거짓이 아님이 증명될 터이다.

 

 

2011. 8. 20

슈스케를 보고 있자면 윤종신이 '희소가치'를 외치는데 그런 면에서 본다면 김중혁은 소설계에서 정말 윤종신이 찾는 바로 그 목소리가 아닐까? 취향의 문제나 공감의 차원가 아니라 감탄의 차원이다.

 

 

 

요즘 이동진의 <빨간 책방> 덕분에 그의 목소리를 한 달에 두 번씩 꼬박꼬박 들을 수 있다. 나는 그의 유머가 좋다. 그런 그의 유머는 고스란히 그의 에세이에 남아있다. 절친인 김연수 작가와 공저한 <대책없이 해피엔딩>을 읽고 나서 내가 그의 유머를 정말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이유인즉슨 접어놓은 페이지들이 죄다 김중혁 작가 편이었다. 정말이지 단 한편도 김연수 작가의 귀퉁이는 접혀 있지 않았다는 점이 김연수 작가에게 미안할 정도였다. 명색이 누군가에겐 연수느님인데 말이다.

 

 

그러다가 만난 <뭐라도 되겠지> 밑줄 대박, 공감 백만배의 에세이였다. 재미로만 치자면 그의 모든 작품들 중에 최고로 재미있었다. 패러디면 패러디, 발명이면 발명, 풍자면 풍자 유머의 모든 것을 구사해주시는 김중혁 작가님 되시겠다!

 

 

집에 두고 아직 읽지 못한 두 권의 책을 포함하여 그의 데뷔작을 올해 안에 읽는 것이 목표인데, 3金 작가님의 못다 읽은 책 몇 권 언제 다 읽으려나 싶은 마음이 급 들어 맹세는 못한다. 참고로 <헬로, 미스터 디킨스>에서는 김중혁 작가님 작품이 아마도 젤 분량이 길었던 것 같은데 제일 빨리 재밌게 읽었다. 올해 한국 소설이 3金 작가님들 덕분에 더욱 든든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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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金♥작가 1편 김영하 작가편(http://blog.aladin.co.kr/tiel93/6473969)에 이어 김경욱 작가에 대하여 페이퍼를 올려보고자 한다. 올해가 김경욱 작가의 등단 20주년인 해라고 한다. 김영하 작가가 1996년에 등단했으니 그보다 3년 더 빠르지만 개인적으로 내가 김경욱 작가의 소설을 읽은 것은 그보다 훨씬 늦다. 

 

 

 요즘 와서 보니 김경욱 작가야 말로 미남이시다는^^; 사실 김영하 작가의 프로필 사진에 반했던 데에 반해 김경욱 작가의 프로필 사진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미남인 줄 모르고 진심 작품 때문에 좋아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만 변명이 안되,겠지?^^ 작가님 소설로는 2005년에 처음 읽은 <장국영이 죽었다고?>로 시작해서, <천년의 왕국>, <위험한 독서> 그리고 공통 집필한 <소설가로 산다는 것>과 <헬로, 미스터 디킨스>를 읽었는데 희한한 건 이 책들이 집에 하나도 없다. 팬이라고 하기엔 참 미안한 지점이다. 대신 집에는 읽지 않은 <동화처럼>과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만 빳빳하게 서 있다. 김영하 작가의 소설이 오래된 연인처럼 읽은 듯 안읽은 듯 다 읽고 다 곁에 두었다면, 김경욱 작가의 소설은 연애가 시작되기 전 엇갈리는 인연처럼 아직까지는 이렇게 어긋나고 있다. 읽은 책은 집에 없고 읽지 않은 책만 집에 있으니 읽고 나면 이 책들도 왠지 어디론가 보내버려야할 것 같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신간이 나왔으니 어여들 읽자고!

 1999년부터 읽은 김영하 작가의 소설에 비해 6년이나 늦게 만난 김경욱 작가의 소설이지만, 오래된 연인처럼 마침 그 즈음 살짝 눈돌릴 때였는데(?) 김경욱이라는 작가를 만나게 되어 또 눈이 하트 뿅뿅 되었다. 독자 마음 참 간사하다. 그래도 김영하 작가의 작품들 보다는 많이 덜 읽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두 분의 색깔이 많이 달라서 누가 더 좋으냐고 묻는다면, 아니 어쩌면 다음에 이야기할 김중혁 작가를 포함해 세 분의 색깔이 정말 달라서 독자로서는 셋을 동시에 다 좋아할 수 있어 정말 행복하다. 아직도 한창 연애 중(나 혼자만,,,,^^;)인 김경욱 작가의 작품을 소개해본다.

 

<우리 처음 만난 날 - 장국영이 죽었다고?>

 

 이 책이 생각난 것은 바로, 장국영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작가는 이 소설집을 통해 '소통'을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소설 속 인물들이 많이 외로워보였다.  기록 중 표제작 '장국영이 죽었다고?'에 대한 기록 중 일부를 옮겨본다.

 

2005.10. 18

개인적 추억은 개인적으로, 대상에 대한 그리움 역시 개인적으로, 바로 그 개인적인 멋스러움이 인터넷에 의해 사라져버리고 오히려 그것이 뭔가 잘못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에 대한 잘못을 느껴본다.

 

 

<아, 작가님 사릉합니다 ♥ - 천년의 왕국>

 

 역사 소설을 쓸 줄은 몰랐다. 단편을 통해 느꼈던 섬세함을 기대했는데 돌아온 것은 묵직함 그리고 탄탄한 문장력이었다. 책을 읽은지 한참이 지났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문장이 정말 좋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김경욱 작가의 소설을 읽은지가 꽤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이라고 말하는 데에는 이 소설의 역할이 크다.

 

(그나저나 리뷰를 적은 것 같은데 또 없다. 새로 찾은 공책엔 김영하 작가의 두 작품의 리뷰가 있었다. 참, 기록은 열심히 하는데 정리가 좀...^^:)

 

<사랑의 확신 - 위험한 독서>

 단편을 읽어도 장편을 읽은 듯한 느낌이었다. 편편이 무게감이 느껴졌다. 김경욱 작가에 대한 무한한 신뢰감이 형성되었다.

 

2009.

대체로 몇몇 작품만 인상적인 많은 단편집과 비교해볼 때 지금 난 꽤나 ‘유익한 독서’를 한 듯 하다.

 

<내 눈엔 너 밖에 안 보여♬ - 소설가로 산다는 것>

여러 작가들의 소설쓰는 이야기가 담긴 <소설가로 산다는 것>의 첫 글은 김경욱 작가였다. 에세이라고 하기엔 매우 진지했고, 나는 그런 진지함이 정말 좋았다. 이후에 이어진 소설가들의 이야기는 그에 비해 가벼웠고, 나는 그런 가벼움이 정말 가벼웠다. 이 책에선 김경욱 소설가만 보였다.

 

2012. 1. 23

-17명의 작가가 글을 썼고 나는 그중 대여섯 명의 글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단 3명의 글을 좋아했고 그중 으뜸은 김경욱이다. 그러니까 내게 이 책은 <-김경욱 외>이다.

 

<더 알고 싶어요!>

 사놓고 읽지 못한 책, 분명 솟구치는 궁금함으로 샀을 거면서 이렇게 밀려있다. 새로 나온 소설 <야구란 무엇인가>에서 느낄 묵직함도 기대하게 한다. 내가 알지 못했던 <장국영이 죽었다고?>이전의 작품도 궁금하다. <헬로, 미스터 디킨스>에서의 김경욱 작가님 작품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김중혁 작가님 소설이 좀더 좋아서 이 책은 3편에 소개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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