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욱의 <황금 사과>를 읽고 있다. 인물들의 이름은 윌리엄, 토마스, 제롬 등이다. 한국 작가가 내 삶과 어느 한 가지만 중복되는 이야기를 쓰더라도 별 어려움 없이 소설 속 인물 중 하나에 나를 이입시키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다른 시대 다른 나라에서 다른 이름을 가진 인물들이 얽힌 이야기를 읽으면 이입이 쉽지는 않지만 이입이 된다면 단순히 시대나 나라나 이름 때문에 이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물 자체에 이입이 되기 때문에 도리어 더 깊은 이입이 되곤 한다. 하지만 이입의 문제를 떠나 나는 그런 소설 자체에 많이 놀란다.

 

우리 나라 작가가 깊은 다년간의 연구로 우리 나라의 역사 소설을 완성해도 대단해보이고 놀라워보이는데 심지어 다른 나라의 역사 소설을 완성할 때에는 그 과정에서 얼마나 연구를 많이 했을까 싶어 사실 읽는 동안 많이 감탄하면서 읽게 된다. 물론 탄탄한 개연성을 가진 작품들에 한해서 말이다. 우리 나라에서 살다보면 자연 우리 역사에 대해서는 알게 모르게 관심도 갖게 되고 지식도 쌓이게 되지만 중세 유럽의 삶에 대해서는 아마 처음부터 새롭게 알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을텐데 싶은 마음이 들어 그 놀라움이 더 커지는 것 같다. 우리가 펄벅의 <서태후>를 중국인들이 쓴 서태후에 관한 이야기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보는 것은 이국인의 눈으로 보았다는 관점의 문제 외에도 이런 감탄의 성격이 있을 것이다. 아마 내가 우리 작가가 쓴 중세 유럽 혹은 고대 아프리카 등등 낯선 세계의 이야기에 놀라움을 느끼는 것도 그와 같다.

 

최근 읽은 <랩소디 인 베를린>의 경우가 그러했고, 지금 읽고 있는 김경욱의 <황금 사과>가 그러하고, 꽤 오래 전에 읽은 조완선의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1,2>가 그러하다. <랩소디 인 베를린>의 경우 조선인의 후손이라고 추측되는 인물 요한 힌터마이어에서 시작된  18세기 말 독일의 이야기가 21세기 독일과 일본, 한국으로 폭넓게  확장되면서 진행되는 점은 작가 구효서의 소설가적 능력이 백분 발휘된 것이며 그 외 고전 음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이야기를 버무리는 능력 또한 작가에 대한 신뢰감을 갖게 만든 수작이라할 수 있다.  조완선의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은 제목만 보고는 김탁환 류의 소설이겠거니 했는데 비록 시작은 조선이지만 그 이야기를 좇아가다보면 아프리카, 프랑스를 넘나들고 긴박한 진행과 낯선 세계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정과 묘사로 푹 빠져들게 한다. 지금 읽고 있는 <황금 사과>는 지금 읽는 중이라 아직 정확한 결말을 모르지만  실연 당한 한 한국 남자가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한 권의 수기에서 시작되어 수기 속 내용인 13세기 유럽의 기독교 세계에서 벌어지는 암투가 흥미롭다.

 

 

 

 

 

 

 

 

 

 

 

 

가장 긴박하게 흥미롭게 읽혔던 책은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로 추리의 형식을 띠어서 일 수도 있고 아무래도 금속활자에 관한 한 독자 대다수가 인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토트'라는 낯선 지식을 받아들이기가 쉬웠던 까닭도 있을 것이다. 가장 많은 감탄을 하며 읽은 작품은 단연 <랩소디 인 베를린>으로 고전 음악도 모르고, 18세기 독일은 더더욱 모름에도 불구하고 독자를 흡입하게 만든 구효서라는 작가의 힘 때문인 것 같다. <황금 사과>의 경우는 작가의 이후 역사 소설인 <천년의 왕국>에서 느낀 탄탄한 문장력이나 여타의 다른 단편 소설에서 느꼈던 표현의 신선함은 사실 좀 아쉬움이 있지만 초반 서문을 제외하고는 한국과 관련된 부분이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낯선 세계를 가장 순수하게 만나게 해주는 것 같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르송이라는 낯선 지역과 교회라는 낯선 공간 어딘가에 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주게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일단 다 읽어야 확신하겠지마나 김경욱에 대한 믿음은 있으니까. 느낌 아니까!

 

세 작품 모두 낯선 세계로 독자를 데려가기 위한 수단으로 혹은 문서가 등장한다. 마치 해리포터에서 1과 1/2역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 공통점은 사실 이런 류의 소설의 한계가 느껴지는 것 같아 좀 아쉽다. 해리 포터, 반지의 제왕, 백투더퓨처가 모두 아기공룡둘리처럼 바이올린을 켜야만 판타지의 세계로 떠난다고 생각해보라. 얼마나 식상한지. 이 작품들이 나온지 오랜 시간이 지났으므로 부디 앞으로 나올 소설들은 다양한 루트로 독자를 낯선 세계로 데려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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