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예담이는 열두 살에 1000만원을 모았어요>를 시작으로, 학습동화와 창작동화를 분주하게 오가며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배출해온 김선희 작가의 2012년 신작은 '인문학 동화'라는 이색적인 타이틀을 달고 있다. 작가가 '아이들 영혼의 허기를 채워주는 곳'이라 소개한 <공자 아저씨네 빵가게>는 옛 성인(聖人)들의 21세기 한복판으로 데려와, 오늘의 어린이들이 겪는 고민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컨셉의 새로운 동화책이다. (기획 : 주니어김영사 / 인터뷰 : 알라딘 이승혜)
<공자 아저씨네 빵가게> 출간 전후, 어린이 책 시장에 고전 열풍이 심상치 않았는데요. 최근 들어 고전 붐이 일어난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지요? 인문학 동화를 표방한 <공자 아저씨네 빵가게>에도 독자분들의 관심이 적지 않았습니다.
책이 나오고 나서 많은 독자분들이 찾아주신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어린이 책 시장에서 어느 때는 과학동화가 잘 나가고 어느 때는 또 창작동화 붐이 일고, 그런 흐름들이 있는데 그런 어떤 흐름 탓도 있겠고요. 아이들 책은 엄마들이 더 먼저 관심을 갖고 보시잖아요. 엄마들이 인문학 책을 읽으면서, 우리 아이들도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는데 생각하시면서 어린이 인문학 도서의 붐과 맞아 떨어지지 않았나... 그리고 학습동화라고 하는 장르가 어떤 한계에 도달한 것 같은 느낌이 있거든요. 그 자리를 인문학 동화가 대체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주니어김영사의 인문학 동화 시리즈는 어떻게 처음 출발하게 됐나요?
이 시리즈는 기획위원이 계세요. 제 친한 선배이시기도 한데, 어느 날 연락을 주셨어요. '인문학 동화를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 사실 당시에는 문학, 창작물에 더 주력을 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제안을 받고 나니까 인문학 동화라는 게 너무 좋은 거예요. 유럽에 가려고 계획을 세워놨을 때였는데, 여행 가기 전에 기획동화를 마지막으로 해보자, 하는 생각으로 작업을 맡게 됐어요. 신기한 건 그 즈음 제가 논어를 읽고 있었거든요. 평소에도 논어를 좋아해서 가끔씩 펼쳐보는데, 그때 마침 인문학 동화 시리즈 집필 제안을 받게 된 거죠.
논어를 자주 읽으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제일 처음 읽었던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하세요?
한 십년 전? 그 때는 논어를 그냥 책으로 읽었던 것 같아요. 고전이니까 한번 읽어봐야지, 이렇게요. 의무감 때문에 읽어서 내용이 굉장히 깊이 들어오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후에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읽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읽게 될 때는 구절 하나하나가 와서 박히는 거예요. 십년 동안 살면서 많이 생각도 바뀌었고, 그러면서 같은 글이 다르게 다가오게 되더라구요.
<논어>에서 좋아하시는 구절 하나 소개해주시겠어요?
<공자 아저씨네 빵가게>에도 등장하는 구절인데요.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앎이다'. 도덕경에도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것이 가장 훌륭한 앎이다'라는 말이 나오고요. 그런 말이 있잖아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아는 것이다. 내가 뭘 모르는지, 내가 정말 공부를 많이 하고 책을 정말 많이 읽었고, 그랬는데도 점점점 더 모르는 것이 늘어가잖아요. 처음 읽었을 때는 그리 와 닿는 말이 아니었는데요. 제가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다음에 그런 의문이 생기더라구요. 세상을 많이 안다고 생각을 하는데, 안다는 것이 과연 뭘까... 모르는 게 더 많은데... 그런데 이 구절을 읽으면서 맞아 이거야! 하면서 타인에 대해서나 나 자신에 대해서 조금 겸손해지게 된 것 같아요. 더 많이 배워야 하고, 더 많이 공부를 해야 하고, 더 알아야 겠다는 생각도 많이 하게 됐지요.
문학 작품과 <공자 아저씨네 빵가게> 같은 기획물, 작가님께는 어떤 점이 다르게 다가오는지 궁금합니다.
처음 쓴 기획동화가 <예담이는 열두 살에 1000만원을 모았어요>였는데요. 이 책을 쓰기 전까지는 기획동화라는 개념을 몰랐어요. 그 책은 실제로 있었던 일을, 예담이라는 아이의 이야기를 쓴 건데요. 책이 나오고 나서 독자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는 걸 보고 많이 놀랐어요. 이런 기획물들이 창작물보다 훨씬 더 환영을 받는다는 생각에 굉장히 갈등을 했어요. 내가 과연 기획동화를 해야 하나, 아니면 순수 창작물을 해야 하나.... 계속되는 갈등 속에서 10년을 기획동화 작업을 했죠. 하면서 계속 창작물하고 기획동화하고 병행을 했어요. 창작물은 오랜 기간에 걸쳐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반면, 기획동화는 단시간 내에 큰 반응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게 달랐어요.
또 창작동화를 할 때는 굉장히 자유롭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그런데 기획동화는 이야기는 자유로울 수 있어도, 주어지는 주제에 얽매이게 되는 그런 게 있어요. 나중에는 내가 도식적으로 쓰고 있구나 생각했는데, 어떤 틀에 맞춰서 그 틀을 못 벗어나고 있었죠. 그래서 반성도 많이 했고, 이렇게 쓰면 독자들도 더 이상 안 좋아할 것 같은 거예요. 뻔하다고 생각할 것 같고. 그런 제 자신이 용서가 안 되는 시기가 있었어요.
기획물은 그렇게 많은 고민을 안겨주는 어려운 작업인데, 이번 <공자 아저씨네 빵가게> 같은 경우에는 결과가 너무 좋았잖아요. 이번 작업이 기획물에 대해 생각을 달리 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주었을 것 같기도 한데요.
예, 말씀하신대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왜냐하면 독자 리뷰를 보고 나서, 이런 기획물들이 너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이들이 이런 책을 통해서 평소 접하기 어려운 이야기들과 만나고 무언인가 깨달아가고 또 변화가 된다면, 이건 정말 가치 있는 일이다라는 생각이 든 거예요. 그런데 이게 너무나 신기한 경험이었던 거죠, 저한테는.
<공자 아저씨네 빵가게>를 읽은, 또는 읽게 될 아이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오면 좋겠다고 생각하세요?
애들은 책을 덮고 나면 그만일 것 같은데요. 재미있게 읽고 나서 덮으면 끝나는 거지, 큰 기대는 안 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라는 것은 있어요. 그게 어떤 변화냐면 아이들에게도 괴롭고 어려운 문제들이 있을텐데, 그런 문제들에 부딪힐 때 이 책에서 공자님이 했던 얘기를 한번 떠올려 보는 것이요. 아, 공자님은 이럴 때 이렇게 말씀하셨었지... 책에 나온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봤으면, 하는 거예요. 이성 문제라든지 부모님과의 관계라든지, 그런 여러 가지 문제 중에서 하나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정말 보람을 느낄 것 같아요.
책을 다 읽고 당장은 까먹을 수 있더라도, 그런 문제들과 마주했을 때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신 거죠? 책을 읽은 독자분들은 주로 어떤 반응을 보이셨나요?
제일 듣기 좋은 말이 그거였어요. 잘 읽힌다는 말. '한번 읽기 시작하면 놓을 수가 없다'(웃음). 제일 좋은 책은 정말 손에서 놓지 않고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책, 교훈도 필요하고 지식도 좋지만 제일 중요한 건 재미라고 생각하거든요. 재미있다는 말, 잘 읽힌다는 말이 흐뭇했죠. 그리고 리뷰 중에서 기억에 남았던 건 '나도 모르게 스며든다'는 말들이었어요. 알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것 같다, 이런 독자평도 참 좋았어요. 의도했던 부분이었거든요.
<공자 아저씨네 빵가게> 속에서 공자의 캐릭터 변신이 흥미로운데요. 공자 아저씨가 빵을 굽는데, 빵도 그냥 빵이 아니라 재밌는 이름의 빵들이에요.
전 빵을 정말 좋아해요. 빵을 먹는 것도 좋지만 빵이라는 말이 정말 좋아요. 아이들도 좋아하는 단어 같아요. 빵! 재밌잖아요. 공자 아저씨와 빵이라는 단어는 참 어울리는 것 같아요. 빵은 배고플 때 먹는 건데 이 책에서는 아이들의 영혼이 배고픈 것, 정신적으로 배고픈 것을 이야기하고, 빵도 영혼의 허기에 공자 아저씨가 주는 양식인 셈이 되지요.
논어에 나오는 여러 가르침 중에 몇 가지를 선별해, <공자 아저씨네 빵가게>에서 들려주셨는데요. 어떤 기준을 가지고 이 이야기들을 고르셨는지 궁금합니다.
그 기준은 분명히 가지고 있었는데요. 어린이들이 지금 당면한 문제, 당면한 현실적인 고민들을 위한 것일 것. 제일 큰 고민으로 공부 문제, 부모와의 문제를 들 수 있겠죠. 사춘기 아이들은 부모님하고 적이 되는 경우도 많잖아요. 또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요새는 많이 줄었다고 해도 경제적인 문제가 있을 것이고 이성과의 문제도 있고요. 평소에 생각하고 있는 아이들 문제를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들을 고르게 된 거죠.
아이들의 현실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작가님은 성현의 가르침 속에서 찾으셨어요. 요즘도 사실 유명하고 꽤 훌륭하다는 사람이 많은데 구태여 옛날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신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공자 아저씨네 빵가게> 본문에도 옛 사람들의 말에 귀기울여야 한다는 대목이 나오고요.
제가 어른들 잔소리를 정말 싫어했거든요. '내가 젊었을 때는...' 그런 식으로 시작되는 얘기들. 그런데 뻔한 잔소리는 애들도 정말 싫어해요. 항상 내가 잘 되길 바라는, 좋은 의도에서 나온 말이었겠지만, 일단 저부터도 굉장히 거부감을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아이들한테 그런 말 잘 안하려고 노력을 했고... 너흰 어려서 몰라라고 하면 아이들이 얼마나 반발하는데요. 우리가 왜 모르냐고. <공자 아저씨네 빵가게>를 쓰면서도 그 비슷한 반발이 있지 않을까 예상을 했죠. 아이들은 '또 성현들 말씀이야? 공자왈 맹자왈... 피가 되고 살이 되고... 그런 말 할 게 뻔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논어를 읽으면서 느꼈던 건 옛날 어른들 말씀이 하나도 틀린 게 없구나...(웃음)
공자는 2천 5백년 전에 살았던 분이잖아요. 2천 5백년 전이면 예수시대 사람인데, 그 시대에도 지금 시대랑 고민은 똑같았거든요. 사람 사는 게 똑같으니까요. 그때도 성적 문제는 있었을 거고, 우리집은 왜 가난해 이런 고민이 있었을 것이고, 아이들도 아이들대로 고민, 어른은 또 어른대로 고민이고. 사람의 생각은 2천 5백년 전이나 할머니나 엄마나 지금 애들이나 다 똑같은 것 같은 거예요. 그러면 이 사람은 공자님이고, 그의 말이 2천 5백년 이후까지 살아남을 정도면.... 그 동안에 얼마나 많은 훌륭한 사람들이 살다가 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데, 지금까지 그의 말이 살아남아서 읽히고 있는가. 이 사람에게 정말 뭔가가 있기 때문에, 특별한 뭔가가 있기 때문이겠죠. 지금 내가 고민하는 것과 그때 고민했던 것들, 같이 공감을 할 수가 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그 시대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거죠.
<공자 아저씨네 빵가게>에서 다루었던 이야기들 가운데서, 개인적으로 가장 각별하게 다가오는 가르침이 있으세요?
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는 거요.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요즘 아이들 굉장히 이기적이라고 하잖아요. 부모들이 이기적으로 키우는 면도 있거든요. 손해보는 짓 하지 마라, 어디든 가서 꼭 이겨라, 지지 말아라, 그런 식으로 많이 가르치는데, 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그러면 오히려 내가 편해질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이 편안해지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 편안해질 것 같아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 입장 생각 안 하고,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면 자기가 피곤해지는 거거든요. 자기도 편안할 뿐만 아니라 사회도 굉장히 편안해지고, 싸움 같은 것도 잘 일어나지 않을 거고요. 정치인들 싸움을 보면, 아 정말 자기들만 생각하는구나, 유권자들은 안중에도 없구나,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거든요. 저사람들이 정말 조금이라도 배려하는 마음이 있거나 남을 생각한다면 저렇게 진흙탕은 안 될텐데. 얼마나 믿고 의지하는 유권자들이 많은데 배신을 하는 거잖아요. 그것도 나라 일을 하는 사람들이요. 결국은 정치인들도 다 남을 위해서 희생한다고 하지만 다 자기를 위해서 권력을 위해서 행동하는 거잖아요. 이야기가 너무 멀리 나갔는데요(웃음), 아이들이 친구랑 싸우는 것도 다 자기만 생각하기 때문에 싸우게 되는 거거든요.
<공자 아저씨네 빵가게>를 읽고 난 다음, 성현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될 어린이 독자가 있다면 논어 외에 권해주고 싶은 고전이 있을까요?
제가 요즘 불교철학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요. 불교철학이 자기 수행을 하는 건데, 요즘 아이들한테는 자기를 되돌아볼 시간이 없는 것 같아요. 부모님이 그럴 수 있는 시간을 안 만들어주세요. 아이가 아닌 부모님이 원하대로 판을 다 짜놓고 거기 맞추도록 강요하는 모습도 많이 볼 수 있잖아요. 그렇게 교육 받은 아이들은 나중에 커서 불행한 삶을 살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거예요. 제가 불교철학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불교라는 게 자기를 되돌아보는 것, 자기와 세계를 바라보는 것, 그게 종교잖아요. 열심히 불교철학을 공부해서 좀 더 쉽게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생각은 갖고 있습니다.
<공자 아저씨네 빵가게>에 아이들한테 도움 될 만한 이야기가 참 많은데, 머리로 아는 것하고 몸소 실천하는 것에 괴리가 생길 수 있잖아요. 아이들이 배운 것을 실천도 잘하기 위해서 작가님이 해주실 수 있는 조언이 있을까요?
실천은 어른도 참 힘든 거잖아요.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어른들은 바꿀 수 없는 것들이 많거든요. 완전히 굳어져서 도저히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어른들한테는 많아요. 아이들이 오히려 어른보다 더 사고가 유연하고 더 넓고 더 깊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받아들이는 게 훨씬 많고 어른들보다 바뀌기가 쉬워요. 얘네들이 마음만 먹으면 바뀌는 건 어른보다 몇배나 더 쉬울 거예요. 한 2초만? '어떤 문제가 있을 때 2초만 이 책을 생각해! 공자 아저씨가 어떤 말을 하셨었는지'(웃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네요.
10년 넘게 집필 활동을 해오셨는데, <공자 아저씨네 빵가게>는 작가님의 이력에서도 꽤 도드라지는 이색적인 작품이 된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앞으로 또 어떤 독자들을 찾아가면 좋을까요?
많은 아이들에게요(웃음). 어떤 고민이 하나 있는 아이들? 고민이 있어도 누구와도 대화가 안 되잖아요, 어렸을 때는요. 부모님들하고 절대 대화하지 않는 아이들이 많잖아요. 크면 클수록 부모님이 아이들 고민을 해결해줄 수 있는 상대가 못 되는 현실이 많고요. 부모님도 안 되고, 친구들이랑 얘길 해봐도 이 고민이 해결되기는 힘들고. 그런 아이들이 이 책과 만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