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전문가 윤아해 님께서 알라딘으로 보내주신 9월의 좋은 어린이 책, <명품 가방 속으로 악어들이 사라졌어>의 추천글입니다.


며칠 전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온통 털로 뒤덮인 옷을 보았다. 옷을 파는 여자는 폭스가 어쩌구, 라쿤이 저쩌구 말이 많았다. 가격은 수십만 원이었다. 마치 아주 교양 있고 고급스러운 것처럼 영어로 포장했지만 말하자면 폭스는 여우, 라쿤은 너구리였다. 모두 어린이 책에 자주 등장하는 친근한 동물들이다. 나는 갑자기 화가 치밀어 혼잣말을 내뱉었다. "여우와 너구리들의 목숨 값이 고작 몇 십만 원 밖에 하지 않는다는 말이야? 여우랑 너구리가 조끼 되고 싶어서 태어났냐?" 이러한 반응은 책 한 권에서 시작되었다.


이 책은 제목부터 시선을 확 끌었다. 어쩌면 이렇게 매력적인 제목을 뽑았을까? 최근에 나는 공저로 출간한 책 <즐거운 그림책 쓰기>에서 독자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제목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많은 여자들이 갖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키우는 평범한 엄마들조차 맹목적으로 갖고 싶어 하는, 그래서 아이들도 무엇인지 명확하게 모르지만 뭔가 좋은 것을 대표하는 것 같은 이름, '명품가방'을 전면에 내세워 우리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게다가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악어들이, 자연에서 지내야 어울리는 악어들이 동물원도 아니고 하필이면 명품가방이 되어버린 이 상황을 제목으로 맞닥뜨리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던 일들에 대해 균형을 깨뜨리는 일종의 위기감 같았다. 이러한 위기감은 책을 읽는 내내 이어졌다. 서술 방식이 부드러운 것 같으면서도 참 묘하게도 인간의 이기심과 허영심을 꼭꼭 꼬집었다. 화려한 색감으로 보여주는 일상적인 그림 속에서도 인간들이 얼마나 이상한 취미를 갖고 있는지 구석구석 찾을 수 있었다. 나 역시 책을 읽어가며 콕콕 찔리고 아프고 한없이 미안했다. 인간이 복 받기 위해 호랑이를 죽여 양탄자로 깔고, 부자가 된다고 코끼리 상아를 뽑고, 예쁘다고 새장 속에 앵무새를 가두어 놓고, 몸에 좋다고 뱀 잡아먹고 코뿔소 뿔도 갈아 마시고, 신기하고 맛있는 거 먹겠다고 거북이알도 삶아먹고 상어지느러미도 잘라먹고, 좋은 가방 갖고 싶다고 악어가죽을 홀딱 벗기고... 한 번도 동물들에게 그래도 되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미안하다고 말하지도 않고,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다하는 못된 인간들이 말할 수 없이 부끄러웠다. (어른들이 이렇게 부끄러운데 동물을 친근하게 느끼는 어린이들은 이 책을 읽고 분노할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어른들은 어린 감시원들이 무서워 함부로 털옷을 사거나 몸보신하기 힘들 것 같다.)


어느 영화평론가는 좋은 영화란 영화를 보고난 뒤에 자꾸만 생각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공감한다. 마찬가지로 좋은 그림책은 매력적인 제목만으로, 잘 쓴 글만으로, 잘 그린 그림만으로 될 수 없다. 책을 덮고 난 뒤에도 자꾸만 생각나게 하는 책이 좋은 그림책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한없이 미안했다. 값진 선물이 되어 내 어깨에 달랑거렸던 새끼악어에게 미안했고, 추운 겨울 내 등을 따뜻하게 덮어 주었던 토끼에게 미안했고, 멋을 위해 모자를 장식해주었던 너구리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그동안 나를 포장했던 허영심을 들여다 본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 이 책이 내게 던진 질문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묻는 것이었다. 아마도 조금 더 조심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좋은 것,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찾기 전에 이것이 나만의 이기심이 아닌지 돌아보게 만들어 줄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이 좋다. 제목도 글도 그림도 좋지만 나를 돌아보게 해 주어 참 좋다. - 윤아해(그림책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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