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안의 문학, 손 밖의 종이 뭉치

 


 

 

아침에 비몽사몽 일어나서 잠 한번 깨 보겠다고 북플에 들어갔다가 성공했다. 친애하는 이웃의 서재에서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을 둘러싸고 어느 독서모임에서 벌어진 일을 읽게 되었는데, 그 모임의 선생님이라는 자의 입에서 도덕적 잣대를 가지고 문학을 봐서는 안 된다, 그런 해석은 편향된 것이다라는 말이 나왔다고 해서, 눈이 번쩍 뜨인 것이다. , 대박. 이건 syo2020년 하반기에 들은 말 가운데서 가장 편향된 말이군.

 

첫째. 어떤 판단 자체가 도덕적 판단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둘 중 하나는 필요하다. 그 판단 자체를 도덕적으로 판단하든가, 아니면 모든 판단을 판단할 수 있는 신이 있어서 이건 도덕, 저거는 정치, 그리고 요거는 그냥 개소리- 이런 식으로 딱딱 결정을 해주든가. 사람이 신이 아닌 이상 어떤 판단이 도덕적 판단인지 아닌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도덕률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고, 그 순간 메타-도덕적 판단은 그대로 하나의 도덕적 판단이 된다. , 도덕적 잣대를 가지고 문학을 봐서는 안 된다는 말 자체가 문학을 보는 하나의 도덕적 잣대라는 혐의를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게 아니라면 저 말은 나는 신이오, 내 말을 들으시오라는 뜻인데, 설마. 결론적으로 저 선생님은 문학에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지 말라는 말로써 그 말을 듣는 사람의 도덕적 잣대에 자신의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었다. 도덕적 잣대의 침투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 잣대에 쑤셔진 죽은 문학의 분노는 두렵고, 눈앞에 살아 있는 사람은 두렵지 않은 것일까.

 

둘째, 세상에는 여성주의 비평이라는 게 떡하니 존재한다. 이 모임에서는 세상에 뿌려진 별처럼 다양한 비평들 가운데 여성주의 비평만은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하는 합의가 있지 않고서야, 판단의 오류나 오해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방식의 판단 자체를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독서모임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일까? 그리고 도덕적 잣대라는 용어 자체가 어쩐지 여성주의 비평을 비평의 한 갈래로 보지 않는 듯한 느낌도 풍긴다.

 

셋째, 설령 그렇게 볼 수 있다손 치더라도, 아니 문학이 대체 뭐건대 지 혼자 도덕적 잣대를 피해가야 하느냐는 말이지. 문학이 할 일은 그냥 문학이다. 제 몸에 갖다 댈 잣대를 제가 고르는 일이 아니라. 두려우면 피하고, 두렵지 않으면 밀고 나갈 일이다. 그런 과정에서 어떤 문학은 제 시대에 박해받다 다음 시대에 인정받기도 하고, 어떤 문학은 제 시대에 반성하고 돌아서기도 하고, 어떤 문학은 시대의 시각을 바꿔놓기도 한다. 다자이 오사무는 어쨌든 자신의 시대에,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문학을 했다. 문학을 도덕적인 시각으로 보면 안 되는 거니까 살짝 비도덕적으로 써도 문학적 평가는 좋게 받을 수 있을 거야 헤헤- 이러면서 문학을 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쓸 수 있고 쓸 수밖에 없는 글들을 썼다. 그게 그가 사랑받는 이유이고, 개개의 작품이 불러일으키는 호오를 떠나 다자이 오사무라는 이름이 문학의 역사에 크게 새겨진 이유다. 그게 작가의 일이며, 독자가 할 일은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잣대를 동원해 작품의 의미를 지금 여기에 맞게 재해석하고 재창출하는 일이다. 문학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무대 위에서, 작가-작품-독자가 대사를 주고 받으며 펼쳐지는 연극이다. 작품은 그 연극을 위한 하나의 구성요소일 뿐이고, 결코 독자의 위에 있거나 독자의 시각을 제약하는 위치에 있지 않다. 그 연극을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서, 독자는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연기를 해야 한다. 도덕이건 뭣이건, 독자는 한다.

 

모든 문학은 역사성을 띤다. 지위가 변하지 않는 고전이라는 것은 환상이다. 셰익스피어는 시대를 안 탈까? 이제 고작 500년이 지났다. 500년 뒤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솔직히 말해서 다자이 오사무의 아우라를 벗기고 나면 사양은 쓰레기에 가깝다. 최소한 이 시대에는. 나는 사양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과, 사양이 존재하지만 그걸 쓰레기라고 말할 수 없는 세상 가운데 하나를 골라 살라고 하면 0.1초의 고민도 없이 전자의 세상을 고르겠다.

 

 

 

우리의 모든 기술적인 진술들은 종종 보이지 않는 가치범주들의 그물조직 속에서 움직이며 실로 그러한 범주들이 없으면 우리는 서로에게 할 말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우리가 사실적 지식(factual knowledge)이라고 불리는 어떤 것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다시 특별한 이해관계나 판단에 의해서 왜곡된다는 것만이 아니다물론 이것도 분명히 가능하지만그보다도 특별한 이해관계가 없이는 아예 지식을 갖지 못하리라는 것이다왜냐하면 어떤 것을 굳이 알려고 애쓸 이유가 없을 테니까이해관계는 우리의 지식을 '구성하는요소이지 지식을 위태롭게 하는 한갓 편견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지식이 '몰가치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그 자체가 하나의 가치판단이다.

테리 이글턴문학이론 입문


이야기'는 곧 읽기와 쓰기다반응하지 않는감정 이입 없는 글쓰기는 불가능하다그러지 않아야 더 잘 쓸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의 뇌는 진공 상태다글이란 자기 생각을 외부로 물질화하는 일인데생각이 없다면생각 없는 글쓰기가 가능하고 심지어 널리 읽히는 세상이다.

정희진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문화의 불모지에서 잘난 척 날뛰고때로는 처절한 비명으로 변하는 내 아우성은 내 글의 표면을 집게손가락 끝으로 후벼팔 줄 아는 사람들많지는 않으나 내게는 충분한 그런 사람들에게만 들릴 뿐이엇다삶은 계속되고 계속되었다마치 알갱이마다 미세하게 풍경을 그려 넣은 쌀알 목걸이 같은 삶이었다모든 사람이 그런 목걸이를 하고 있지만그 누구도 목걸이를 벗어 눈에 가까이 대고 알갱이마다 담겨 있는 풍경을 해독할 충분한 인내심이나 용의가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로베르토 볼라뇨칠레의 밤


 

 

 

--- 읽은 ---


 

131. 붕대 감기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 2020

 

문학은 시대를 반영하고, 어떤 이야기가 쏟아져나오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의미다. 우리는 저마다 감수성은 다르지만 어쨌든 시대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지니고는 있다. 그러나 그래 봐야 그건 인간의 감각이다. 신의 눈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떤 작가가 흐름의 시작점이고, 어떤 작가가 그 흐름을 거세게 만들었고, 그리고 어떤 작가부터 어떤 작가까지는 이미 존재하는 흐름에 그저 올라탔을 뿐이다- 라는 식의 자체적 판단을 할 수는 있지만, 그 판단이 객관적이거나 여지없는 진리라고 우길 수는 없다. 그건 무지개에서 노란색과 초록색의 정확한 경계를 찾으려는 노력과 비슷하다. 그런 판단조차 하나의 흐름일 뿐이다. 그 흐름이 거세어져 많은 이들이 동의하게 되고, 사회적 설명력을 지니면 패러다임이 되는 거고.

 

윤이형의 차례였다. 윤이형은 돌아와야 한다.

 

  

 


132. 어느 괴짜 선생님의 수학사전

김용관 지음 / 생각의길 / 2019

 

거의 대충 다 알고 있었다. 생각보다 똑똑했던 나. 나라는 인간을 좀 더 사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133. Chaeg 2020. 7. 8.

()(월간지) 편집부 지음 / (주)책(잡지) / 2020

 

우린 모두 별에서 왔느니 어쩌니 하는 멘트는 솔직히 별 이야기 책마다 다 들어 있어서 별 이야기 아니다. <, 빛의 과학>이라는 책을 책장에 꽂아 넣었다. 근데 글 잘 쓰는 사람 정말 너무 많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문학이 아니라 책이라는 사실을 잡지를 읽을 때면 선명하게 느낀다.

 

 

 

 

 

--- 읽는 ---

희망은 과거에서 온다 / 김진영

11미술 1교양 1 : 원시주의~낭만주의 / 서정욱

이사 / 마리 유키코

, 빛의 과학 / 지웅배

쓰기의 감각 / 앤 라모트

문학사를 움직인 100/ 이한이

페미니즘 : 교차하는 관점들 / 로즈마리 퍼트넘 통 외

프로이트 패러다임 / 맹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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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0-09-11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무원들 봉급 깎아서 그걸로 재난 지원금 주자는 새끼들은 이제 아닥 했나요?
그 뉴스 듣자마자 사이오 님 생각이 났다는 거 아닙니까. 흑흑...
아침부터 열 받을 일이 따로 있지 그깟 다자이 때문에 뭘 힘을 주시고 그래요. ^^

syo 2020-09-11 10:52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 ‘그깟 다자이‘라는 딱 다섯 글자가, 제가 써 놓은 저 양만 많은 글 전체보다 더 시원한 한방이네요!
역시 깔 놈 까는 법은 폴스타프님께 오래 배워야겠어요....

봉급 깎아서 재난지원금 주자는 논의가 있었었군요..... 진짜 쥐똥만큼 주면서..

비연 2020-09-11 13:54   좋아요 1 | URL
Falstaff님은 ‘사이오님‘이라 하고
스텔라님은 ‘스요님‘이라 하고
저랑 기타 등등은 ‘쇼님‘이라 하고.
도대체 누굽니까, 그대는...ㅎㅎㅎ

Falstaff 2020-09-11 13:54   좋아요 1 | URL
비연님,
제 댓글에 비밀 답글을 다시면, 저는 보이는데 사이오님은 못 보실 거 같습니다. ㅋㅋㅋㅋㅋ
‘사이오‘ 멋있잖아요? 스요, 쇼 님 보다요. 저 유명한 만화 <손오공>에 초 사이언이 등장하는데요, 발음이 좀 비슷.... ㅎㅎㅎㅎ

비연 2020-09-11 13:56   좋아요 0 | URL
으하하하. 쇼님한테 정체성을 물어본 댓글인데 쇼님만 안 보였다니.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냥 비밀댓글 풀어버림 ㅎㅎㅎㅎ 별 얘기도 아니고 해서..
사이오님이 손오공의 초사이언과 비슷해서 그렇게 부르시는군요..
영어로 쓰면 이렇게 읽을 때 각자 읽게 되는 듯^^;;; 그렇다면, syo님. ㅎㅎ

syo 2020-09-11 14:00   좋아요 1 | URL
으하하하 저는 호칭논란을 즐깁니다. 그래서 늘 저 자신은 syo라고 쓰죠. 더 헷갈리라고.... ㅎㅎㅎ

stella.K 2020-09-11 16:25   좋아요 0 | URL
전에 그냥 아무렇게나 불러 달라고 하시던데
그래서 전 스요님으로 낙찰봤다능.ㅎㅎㅎ
스요님은 다중성명자잖아요.
거 말고 또 다르게 부를 이름은 없을까요?ㅋ

단발머리 2020-09-11 10: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대면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있었지만, 쇼님의 위의 아름다운 문장들을 내가 잘 꿰고 있었다면 정확하게 친절하게 대응할 수 있었을텐데... <비평 이론의 모든 것>을 사기만 하면 뭐하나요. 저는 어버버 했습니다. ㅎㅎㅎㅎ 셋째,로 시작하는 문단 너무 좋네요. 문학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무대 위에서, 작가-작품-독자가 대사를 주고 받으며 펼치는 연극이라니. 이건 좀 외워서 써먹어야겠습니다.

수요일 깊은 밤이었죠. 책을 읽다가, 아니 이건 도대체 무슨 소리야? 노여움에 알라딘 들어와 쇼님의 <사양>에 대한 짧은 리뷰를 읽고, 크게 안심했습니다. 그때부터 고마웠습니다.

syo 2020-09-11 10:53   좋아요 0 | URL
다자이 오사무는 시공간을 너무 타죠?
그때 그 시절 그곳에서는 울림이 컸는데, 조금씩 영향력이 작은 영역에 집중되는 느낌. 그러다 소멸할지도?

저는 좋아하지만요....

추풍오장원 2020-09-11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자이 책은 인간실격외엔 읽어보질 않았는데 syo님의 글 덕택에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쓰레기 문학도 있고 쓰레기를 쓰레기라 하는 비평도 있고 쓰레기 비평도 있고..저같은 사람은 그저 읽을 뿐입니다. 사양 번역은 어느 출판사가 괜찮을까요?

syo 2020-09-11 10:56   좋아요 0 | URL
저도 <사양>은 민음사 것밖에 안 읽어봐서 딱히 드릴 만한 말씀은 없지만, 이 번역은 자체로 특별한 감상을 불러일으키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유숙자 선생님이야 뭐, 워낙에 베테랑이시기도 하고..... ㅎㅎ

하나 2020-09-11 15: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자이 오사무는 어쨌든 자신의 시대에,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문학을 했다. 문학을 도덕적인 시각으로 보면 안 되는 거니까. 살짝 비도덕적으로 써도 문학적 평가는 좋게 받을 수 있을 거야 헤헤- 이러면서 문학을 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쓸 수 있고 쓸 수밖에 없는 글들을 썼다.” 너무 좋아서 일기장에 옮겨 썼어요. 저의 요즘 고민과도 통하는 거 같아서요. 나중에 다시 읽어보려고요. 오늘도 생각할 거리에 대한 자극을 주셔서 감사합니당! 좋은 하루 보내세요 ^^

syo 2020-09-11 14:02   좋아요 1 | URL
별말씀을요. 요즘 그런 고민을 하고 계셨군요..... 저는 이렇게 한 번 찌끄린 다음 또 다 까먹고 으헤헤 하면서 산답니다 ㅎ
하나 님도 좋은 금요일 되시길^-^

독서괭 2020-09-11 14: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yo님의 빡침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ㅋㅋㅋㅋ 전 인간실격 그닥 기억에 남지 않아서 사양은 안 볼 것 같네요..
위에 하나 님이 옮겨 썼다는 부분 저도 좋아요~~!

syo 2020-09-12 10:41   좋아요 0 | URL
다자이 오사무는 결락이 별로 없거나 아직 발견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다지 매력이 없는 작가인 것 같아요.
한참 다자이앓이 하던 사람들도 때 되면 졸업하는 느낌...

모운 2020-09-11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자이는 포기할 수 없다. 죽어서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

syo 2020-09-12 10:42   좋아요 0 | URL
늘 느끼는 거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모진 말을 한단 말이지....

2020-09-11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붕대감기.. 공감합니다. syo님 글 늘 재밌게 잘 보고 있어요.^^

syo 2020-09-12 10:42   좋아요 0 | URL
쥬님 반갑습니다^-^

stella.K 2020-09-11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놈의 월간 책은 읽어보고 싶긴한데
괜히 비싸단 느낌이 들어서 안 사게 된다능...
잡지를 딱히 즐기질 않으니. 원..ㅠ

syo 2020-09-12 10:43   좋아요 0 | URL
즐기지 않으면 안 보셔도 되는 건데, 뭘 또 ‘원..ㅠ‘까지요 ㅎㅎㅎ
저는 오히려 axt같은 책은 너무 찐하고 무거워서 읽기가 힘들고, 이 정도가 적당하더라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20-09-12 16:5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음... 저는 그 선생님의 말씀이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알라딘의 이런 반응이 좀 놀랐습니다. 도덕적 잣대는 시대에 따라 다릅니다. 예를 들어, 허클베리 핀과 톰 소여를 보면 허클베리와 톰은 줄담배를 하죠. 그리고 헐리우드 영화에서 1950년대에만 해도 10살짜리 꼬마가 광장에서 어른과 함께 담배를 피웁니다. 그 시대에는 어린아이의 흡연은 문제가 되지 않았죠. 쇼 님처럼 지금의 도덕적 잣대로 평가하자면 허클과 톰소여는 쓰레기 문학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어떤가요 ? 유다는 며느리와 잠자리 가졌고, 세겜은 여자를 강간한 후 아내로 삼으려 했고, 롯은 자신의 손님을 지키기 위해 두 딸을 강간해도 좋다고 했고, 레위기는 월경하는 여자는 부정하다고 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도덕적인가요, 불태워야 할 책인가요 ?

다자이 오사무가 사양을 쓸 때가 1946년입니다. 출간은 47년도 이지만... 이때까지도 일본은 여성투표권이 없었습니다. 패망 후 어쩔 수 없이 미국법을 따라 46년에 투표권이 주어졌을 뿐이죠. 그 시절만 해도 여성은 일종의 재산 취급을 당했습니다. 시대적 맥락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의 잣대로 이 소설이 비도덕적이라고 말씀하신다면 현대인은 교회도 다니면 안되죠.


syo 2020-09-12 18:07   좋아요 9 | URL
곰발님, 우선 오랜만입니다^-^

아무래도 제 글이 미숙해서 전달을 실패한 것 같은데,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모든 작품이 현대를 기준으로 한 도덕적 허들을 넘어서지 않으면 일괄적으로 쓰레기라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식으로 한두 가지 기준만 적용하고 나머지 잣대는 들이대지 말라는 태도에 반대한 건데요. 어떤 사람은 작품을 평가할 때 미적 가치에 먼저 마음이 움직일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도덕적 관점(정확히는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들여다봤는데 선생님이 그건 ‘도덕적 평가‘라고 ‘평가‘하신 거지만요)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올 수도 있잖아요. 그렇다면 그 독자는 그 작품의 그런 점에 대해서 자신의 견해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어느 독자가 <사양>을 미적으로 접근하여 장점을 말했을 때, 그 선생님이 ˝그런 식의 아름다움을 우선으로 한 잣대를 작품에 들이대는 건 편향될 수 있으니 하지 마시고, 도덕적 시각으로 한 번 보시죠.˝ 라고 말씀하실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왜 뭐는 되고 왜 뭐는 안 되냐는 말이 하고 싶었던 건데요. 제 생각에는 시대의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는 곰발님의 말씀과, 도덕적 기준을 갖다대지 말라는 그 선생님의 말씀은 같은 견해가 아닌 것 같습니다.

10살짜리 꼬마가 광장에서 어른들과 담배를 피운다고 해서 그 책이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런 이유로 10살짜리 꼬마가 광장에서 어른들과 담배를 피워도 된다/혹은 피워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책이라면 이 책은 좀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톰 소여의 모험>에서 아이들이 피는 담배를 통해 마크 트웨인이 주장하고 싶은 것(그런 게 있었을까요)과, <사양>에서 가즈코의 행동이나 선택을 통해 다자이 오사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이 작품의 주제에 가깝잖아요)은 그 비중이 달라서, 읽는 이도 다른 비중으로 대응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마찬가지로 이 시대에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내용이 있는 책이라고 해서, 그 책을 불태워버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작품의 평가 기준은 너무 다양하고, 오늘날 관점에서 다소의 도덕적 결함이 있더라도 그걸 상쇄하거나 침묵시킬 만큼 뛰어난 가치를 보유한 작품들이 잔뜩 있으니까요. 톰 소여의 모험도, 성경도, 불태워야 할 책이라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유다와 세겜의 행위가 오늘날의 입장에서 보면 부도덕하다고 평가할 수 있도록 읽을 때 도덕적 기준을 들이댈 수 있지 않느냐는 거죠.

그 선생님이 ‘도덕적 잣대‘라는 말씀을 하시는 바람에 계속 도덕을 놓고 이야기하게 되어 좀 웃긴데, 저는 사실 서재 이웃님이 한 평가는 도덕적 평가가 아니라 정치적 평가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양>이 비도덕적이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파국을 헤쳐나가겠다고 정치적 약자에게 특정한 이미지를 씌우고 부당한 의무를 부과하는 방법을 택한 정치적으로 치졸한 작품이라고 생각했지요. 딱 한번 읽고 이런 판단을 내린 게 섣부른 결론이라든가, 다른 기준으로 보면 <사양>은 훌륭한 점이 많다든가, 혹은 네가 책을 이렇게 저렇게 잘못 읽어서 네 잣대를 놓고 봐도 이 책은 그리 쓰레기가 아닐 수 있다든가, 그런 비판었다면 제가 아마 군소리없이 그렇군요- 했을 것 같아요. 나중에 다시 또 이 책을 읽고 제 견해가 바뀔 수도 있고......

최근에 김초엽과 문목하를 놓고 친구랑 이야기하다가 다시 느낀 건데, 정말 사람마다 책 읽는 방법은 다양하고 평가하는 잣대의 좌표나 크기도 다르더라구요.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이 쓰레기라고 말하고 싶다는 것은 제 개인적 견해입니다. 저는 그저 입 다물라는 소리 듣지 않고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싶지, 다른 독자들 역시 저처럼 이 책을 쓰레기로 봐주길 바라는 마음은 하나도 없어서요.

시대적 맥락을 읽어야 한다는 곰발님의 말씀에 당연히 동의합니다. 그러니까 제 말이 이렇게 길어지는 거겠죠....

곰곰생각하는발 2020-09-12 18:25   좋아요 5 | URL
아, 그렇다면 < 사양 > 에 대하여 어느 독자가 ˝ 페미니즘적 비평 ˝ 으로 이 작품을 독해했더니 선생이 패미니즘적 비평을 단순히 도덕적 잣대‘로 폄훼했다는 의미로군요 ? 그렇다면 그 선생이 ˝ 선생질 ˝ 을 한 거죠. 비평은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니깐 말이죠. 마르크스적 비평, 정신분석 비평, 페미니즘 비평 등등.... 제가 오해를 했습니다. 죄송.


+
저는 개인적으로 이 작품 << 사양 >> .. 아, 주인공 이름이 가물가물.. 하여튼 여성 주인공을 단순히 남성 작가의 판타지가 만든 인물이라기보다는 안타고니스트로서의 독립적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는 일본에 남자가 전멸했습니다. 젊은 남자는 전부 전쟁터에서 어마어마하게 죽었거든요. 당연히 결혼할 젊은 남성은 다 죽고, 마약중독이거나 늙은 남자밖에 없어ㅛㅆ죠. 남자는 여자와 결혼하기 쉬운 반면 여자는 결혼하기 힘들었죠. 그런 상황에서 여성 주인공은 유부남의 아이를 낳아 첩일망정 이 시대를 혁명하고 싶다는 결의를 합니다. 그냥 마냥 착한 여성(캔디형 인간)이 아닌 거죠. 오히려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서예지 같은 안타고니스트죠. 뭐, 그렇다는 소리입니다. 주말 잘 보내ㅣ십시오..

syo 2020-09-12 18:33   좋아요 2 | URL
곰발님이 이렇게 깔끔하게 한 줄로 정리하실 말을 전 한 바닥을 썼군요...ㅠㅠ
그렇게 말하고 싶었는데, 왜 그렇게 말하지 못했을까요;;

추적추적 비도 내리는데, 곰발님도 주말 잘 보내시고 코로나 조심하소서...

AgalmA 2020-09-12 22:5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비판적 서평을 썼다고 출판사가 실질적 제재를 취할 정도로 제가 느끼기엔 한국은 비판에 대해 1%도 용인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판매와 연결되는 비판에 대해서는 더욱 그럴 테지만, 비판이 악플이 되는 것도 한 끗 차이고, 비판과 악플의 기준도 각자 느끼기 나름이니 참 어렵죠.

각자 소양이 다르니 여러 감상 포인트가 나올 것이고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도 각자의 몫이겠죠. 그러나 자신이 옳다라는 걸 선점하고 말이든 글이든 휘두르진 말아야겠지요. 저도 누누히 명심해야 할 점이고요.

표현의 자유만큼 해석의 자유도 열어두면 좋겠습니다.

syo 2020-09-14 18:07   좋아요 0 | URL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데 참 어렵지요?
열심히 조심하고 살아야겠습니다.

2020-09-12 2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14 1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12 2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No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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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 없이 또 하루를 살았다. 아픈 데는 없었지만 웃을 일도 없었다. 집 밖으론 나가지 않았다. 짐작건대 몸은 약해지고 있고 확신컨대 살은 찌고 있다. 단문을 쓰면 구슬퍼 보이지만 그건 기분 탓. 웃을 일도 없었지만 슬플 일도 없었다. 읽었고,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늘 그렇다. 읽는 일은 서두르고 쓰는 일은 미룬다. 보통 나라면 이쯤에서 바람이나 비 이야기를 꺼내겠지만, 뜬금없이 바다 이야기가 나오면 그야말로 syosyo한 거겠지만, 오늘은 그런 단어를 쓰지 말아야지. 여기까지 적어놓고 보니까 계속 구슬퍼 보이지만 그건 문장 탓. 점심 먹고 좀 더 읽어야지.

 

 

 

2



욕망과 공부." 캐서린이 한 번은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건 그것뿐이죠안 그래요?"

스토너가 보기에는 딱 맞는 말 같았다이것이 그가 살면서 터득한 것들 중 하나인 것 같았다.

존 윌리엄스스토너


욕망하지 않는 법을 욕망하던 시기를 통과하자 나는 부상병이 되어 있다. 이제는 있는 그대로 욕망을 인정하고 살게 되었는데, 사실은 욕망의 존재를 인정한 것이 아니라 욕망에 대한 패배를 인정한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요리보고 조리봐도 보통 사람이라 욕망의 아가리에 입마개를 채울 만한 역량이 없다는 사실에 대한 인정, 그러니까 결국 내 꼴리는 대로 하지 않고 살 수 있을 만큼의 자제력과 인내력이 부족하다고 자백하는 것인데, 그렇게 말하면 굉장히 없어 보이니까 그냥, 욕망을 인정하려고- 따위의 그럴싸한 문장을 훔쳐 와 찌라시를 뿌리고 프로파간다에 동참하고 있는 것 같다. 욕망이라는 것이 실제로 있었나? 내 안에 있었나? 내가 내 욕망을 마주 본 적이 있었던가? 나는 그저 욕망하는 나를 봤을 뿐이고 행동하는 나를 봤을 뿐인데. 내 뒤에 혹은 내 안에 욕망이라는 물건이 있어서 나를 개처럼 여기저기 끌고 다녔다는 식의 말은 확인된 사실인가? 그럼 나는 지금껏 무엇에 계속 지면서 여기에 도착한 것일까.

 

욕망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고, 그냥 욕망하는 내가 있었고, 나는 그런 나의 패배를 내뱉기 싫어서 존재하지도 않는 것의 승리를 말한 것도 같다. 왼손이 가위를 내고 오른손이 바위를 냈으니 오른손이 이겼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 왼손이 지고 내 오른손이 이길 동안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 오늘 하루 어떻게 지냈느냐고 묻는 말에, , 왼손이랑 오른손이 싸워서 오른손이 이겼어- 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농담과 자조를 하고 있는 것이지 실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별일 없이 그럭저럭 지냈어. 뭐 좀 심심했지. 이긴 욕망 같은 건 없다. 그냥 별일 없이 그럭저럭 지내는 나만 있다. 뭐 좀 심심한 나만이 존재한다.

 

그나저나, 욕망만큼이나 공부가 중요하다고 한다…….

 

 

 

--- 읽은 ---

 


128.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

이주윤 지음 / 드렁큰에디터 / 2020

 

이주윤 선생님. 유추해보건대 syo와 동갑. 인생에 대해 syo와 비슷한 견해(“청소년 시절에도 내 인생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성인이 되면서부터는 이때까지와는 차원이 다르게 팔자가 꼬인다는 느낌을 받았는데”)를 지니고 있음. 심지어 문장에 대한 관점(“모든 책에서 공통으로 조언하길, 말하듯이 쓰되 단문을 사용하라고 했다. 시키는 대로 글을 써보았다. 과연 쉽게 읽히기는 하였으나 경상도 남자의 일기장처럼 영 재미가 없었다. 버리자.”)은 마치 한 사람의 왼손과 오른손처럼 syo와 착 달라붙는, 재밌는 와중에 왠지 서글프고, 치열한 와중에 어쩐지 느른한,

 

syo는 이 선생님이 팔리는 작가가 되면 좋겠다.

 

 


129. 근육이 튼튼한 여자가 되고 싶어

이정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

 

[운동]

1. 사람이 몸을 단련하거나 건강을 위하여 몸을 움직이는 일.

2.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힘쓰는 일. 또는 그런 활동.

 

이정연 선생님은 운동으로 운동을 하고 계셨다. 남자의 운동은 그저 운동이지만, 여자의 운동은 그대로 운동이 되는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아서, 특히 근육 운동 장르에서는 아직도 넘어야 할 시선과 편견의 장벽이 거대한지라, 운동이 없을 수는 없을 듯. 운동을 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 바로 운동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퍽 재미있고 뜻하는 바도 크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말은 개인적 문제가 정치적 문제라는 뜻 이외에도, 묵묵히 해나가는 개인적 운동이 정치적 운동이 된다는 뜻이기도 한가 보다.

 

그나저나 알고 보니 세상에는 두 종류의 통장이 있는 것이었다. 금융통장과 근육통장. 종성만 다른 이 두 통장은 자본주의와 백세시대가 콜라보 된 이 자주 빡세고 종종 빡치는 빡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물건으로서, 둘 중 하나만 잔고가 간당거려도 인생사가 심히 고달파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 두 통장을 동시에 땅땅하게 배 불리는 일이 불가능은 아니지만 불가능과 호형호제하는 사이쯤은 되잖아. 그럼 일단 하나씩 처리해야겠는데, 내가 아무리 구르고 구른들 내 월급 주는 사람은 인사만 할 뿐 인상은 해주지 않는바, 그렇다면 당장 뭐부터 시작해야 되겠어?

 

하여 맘먹고 케틀벨을 사보았다. 근데 너무 무거운 걸 사버려서 들었다 놨다 빼고 뭘 제대로 하지를 못하는 서글픈 상황에 봉착. 스윙까지는 근력이 조금(거짓말) 더 필요할 듯하다. 운동하려고 케틀벨을 샀는데 케틀벨 하려고 운동을 할 판이다.

 

가끔 운동도 그냥 돈 주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뭐 임마? 하며 이정연 선생님이 케틀벨 들고 후드려패러 달려오시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130. 다소 곤란한 감정

김신식 지음 / 프시케의 숲 / 2020

 

제일 많이 든 생각은, 대체 여기에 마침표를 왜 찍느냐는 것이었다. 그 생각을 수도 없이 하느라 읽기의 흐름이 자꾸만 달아났다. 간결한 문장, 쉽게 와닿는 사유를 담은 책인데도 끝까지 읽어내는데 정말 오랜 시간과 공력이 들었다.

 

syo는 스스로 타인의 문체에 관대한 사람이라고 믿어왔다. 한 페이지를 세 문장으로 채우는 소설도 하하하, 마침표 하나 찍으면 한 권이 끝나는 소설도 허허허, 소위 ’,‘를 보이는 들로 가득 찬 문장도 호호호 넘길 줄 아는 호방한 독자였는데, , 마침표 이렇게 찍는 문장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 점들이 내 생각에 와서 쾅쾅 찍히는 바람에 나는 자꾸만 멈춰서 한숨을 쉬고……. 안 맞다, 나랑은 진짜 안 맞다…….

 

그럼에도 감정과 심정에 관한 사회학이라는 차림은 먹기에 썩 괜찮았다. 워낙 감정적인 인간이 돼놔서, 감정 때문에 곤란한 일이 다소를 초월한지 벌써 오래다. 부제에 매달린 섬세한이라는 수사가 적확한 것이, 내가 지나쳐온 감정에 대해서는 너무 날카롭게 와닿았고, 내가 모르는 감정에 대해서는 아, 그런 게 그런 거로구나- 하고 지나갈 수밖에 없을 만큼 뾰족한 핀포인트 조명을 던져 놓은 듯. 그러니까 요는, 패가 모 아니면 도뿐인데 마침표 때문에 쉴새 없이 뒷도가 몰아치는 윷놀이판 같은 책이었다고.

 

 

 

--- 읽는 ---

희망은 과거에서 온다 / 김진영

어느 괴짜 선생님의 수학사전 / 김용관

붕대 감기 / 윤이형

회사 밥맛 / 서귤

Chaeg 2020. 7. 8. / ()(월간지) 편집부

11미술 1교양 1 : 원시주의~낭만주의 / 서정욱

 

 

--- 갖춘 ---

한나 아렌트의 정치 강의 / 이진우

혁명의 거리에서 들뢰즈를 읽자 / 김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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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0-09-09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슬퍼 보이는 게 기분 탓 문장 탓이라니 다행이네요~
마침표가 대체 어디에 어떻게 찍혔길래..?? 궁금궁금

syo 2020-09-11 08:37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기회되면 한 번 읽어보세요. 써 놓고 보니 욕만 한 것 같지만 실은 괜찮은 책이었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09-09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글을 보니 제목에다 괜히 마침표 찍고 아무데나 ... . . 하는 스스로를 괜히 돌아보게 됩니다... 왜 이리 생각이 많으세요. 나도 괜히 생각이 많아질락말락아일락

syo 2020-09-11 08:35   좋아요 1 | URL
저 정도 잡생각은 멍때리다보면 슥-하고 하게 되는 거잖아요 ㅎㅎㅎㅎ 다른 때에 비해 특별히 생각이 많은 나날을 보내고 있지는 않습니다^-^

단발머리 2020-09-09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갖춘‘의 책이 ‘읽은‘으로 가는데는 어떤 메카니즘이 있을까요? 요기 위에 두 책의 리뷰도 엄청나게 궁금하거든요. 기다릴께요!

syo 2020-09-11 08:35   좋아요 0 | URL
너무 간단한 메커니즘이 있습니다. 바로 ‘읽는‘ 거죠..... 말은 간단하다.

얄라알라 2020-09-10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는 일은 서두르고 쓰는 일은 미룬다.˝
이 문장에 격하게 공감입니다!!

syo 2020-09-11 08:34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안 돼요, 그런 문장에 격하게 공감하시면 ㅎㅎㅎ

공쟝쟝 2020-09-10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문체에 대해 탐구한적은 없으나, 가리지 않고 골고루 잘먹는 것 같아요. ㅋㅋㅋ 곤란한 감정도 읽으면서 가독성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았으며 ㅋㅋㅋ (뚝뚝 끊겨서 한번에 안읽어지니까 어쩐지 더 생각하며 읽게 된다는 느낌이었어요) 섬세한 생각, 생각에서 한번 더 생각한 생각들이 좋았던 책이었어요.
생각해보니 나 문체 진짜 안보는 사람이었던게 제2의 성 을유로 읽으면서도 왜 잘 안읽히는지 눈치 못챘었다...

syo 2020-09-11 08:34   좋아요 1 | URL
아마 그렇게 읽으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었겠으나, 모든 독자가 저자의 생각대로 움직일 수는 없으니까요. 저도 뚝뚝 끊긴 자리에서 ‘생각‘을 하긴 했는데 그 생각이라는 게 ‘대체 왜 이렇게 계속 점을?‘ 하는데 그치고 말아버리니까 오히려 도움이 안 됐달까요. 작가가 독자를 위해 생각의 자리를 마련해줄 수는 있곘지만 생각의 형태까지 지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결국 그냥 저랑 안 맞는 책이었던 거죠.

그래도 쟝님 같은 독자가 있으니 작가님의 의도는 성공에 가깝지 않나 싶고.

하나 2020-09-10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케틀벨로 가기 전에는 세라밴드가 유용합니당 ㅋㅋㅋ 인터넷에서 이삼천원이면 사요. 일년동안 운동만 배웠을 때가 있었는데, 체력이 안되어서 세라밴드로 하는 스쿼트만 두달 정도 했더니 케틀벨도 되더라고요 ^^ (이렇게 일부에만 반응해도 되는 것도 Syo님 글쓰기 ㅋㅋ)

syo 2020-09-11 08:31   좋아요 1 | URL
세라밴드라는 것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뭘 사든 사 놓고 안 하는 건 똑같아서 ㅎㅎㅎ

2020-09-11 1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11 1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온대저기압으로

 

 

저녁이 내리기 전에 얼른 옥상에 섰다. 태풍이 휘몰고 온 비가 멀리 산과 하늘의 경계를 문지르고 있었다. 더 멀리 내다보고 싶었지만 그건 가벼운 마음만 가지고 될 일이 아니어서 오늘은 그냥 웃고 말았다. 버스가 사람을 태우고 마을을 휘돌아 내려가고 있었겠고, 나는 그런 생각만으로 조금 먹먹해졌다. 빗방울이 우산을 때려대는 소리가 고르지 않았다. 그래서 좋은 거잖아, 때로는 강하고 때로는 여리게, 때로는 빽빽하고 때로는 성글게, 작은 물방울들은 아무리 애를 써도 이길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대기나 중력 같은 커다란 힘에 휘감겨 그때그때 주어진 만큼의 리듬과 강렬함으로 부딪는 거라서, 알 수 없는 거라서, 그래서 좋은 거잖아, 하고 말해도 보았다. 아무도 듣지 않는 옥상에서. 조금 머쓱해져서 고개를 들고 올려다본 하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를 아무도 듣지 않는 옥상에서 맞아가며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을 아무 생각이나 하는 동안, 태풍이 동쪽 바다를 지나가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저녁이 자주 있기를.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아무 생각이나 하는 동안, 태풍은 스스로 바다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 천천히 사라지는 이런 저녁이.

 

 


달은 우리에게 늘 똑같은 한 쪽만 보여준다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삶 또한 그러하다그들의 삶의 가려진 쪽에 대해서 우리는 짐작으로밖에 알지 못하는데 정작 단 하나 중요한 것은 그쪽이다.

장 그르니에

 

  내 상상은 거처가 없고 처자식도 봉양할 부모도 없고 오로지 흔들리는 그림자만 있어서

  내 상상은 죽도록 사랑할 애인도 없고 이별 따윈 더더욱 없고 옥수숫대의 종아리만 있어서

 

  나는 누군가 나에게 흔들리는 옥수수 그림자를 경작하는 사람이라고 불러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왜 하필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물으면

  간신히 이를 가지런히 내보이며 파종의 힘을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안도현, <파종의 힘> 부분 

 

 


--- 읽는 ---

페미니즘 : 교차하는 관점들 / 로즈마리 퍼트넘 통 외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 / 이주윤

현대 정치철학의 네 가지 흐름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문장구조 덕분에 영어 공부가 쉬워졌습니다 / 키 영어학습방법연구소

희망은 과거에서 온다 / 김진영

영원한 남편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공공성 / 하승우

북항 / 안도현

 

 

--- 갖춘 ---

아도르노, 사유의 모티브들 / 게르하르트 슈베펜호이저

정전과 내전 / 오오타케 코지

한 권으로 읽는 칸트 / 이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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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9-08 0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는 비가 꽤 와서 덜 더워서 좋았어요. 높은 산동네 사는 사람이라 물난리를 못 겪어 좋다 소리만 하지만ㅜㅜ 이제 비맞으면 감기 걸릴 날씨네요. 조심조심 우산쓰고 맞으세요. ㅎㅎㅎ

syo 2020-09-08 22:56   좋아요 1 | URL
역대급 무더위 그러더니, 올해는 참 뭔가 예상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군요. 이래저래....

추풍오장원 2020-09-08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칼 슈미트에 대한 책이 나왔었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전 언제나 읽는 속도보다 사는 속도가 더 빠르군요..

syo 2020-09-08 22:57   좋아요 0 | URL
책 읽는 사람들 대부분이 읽는 속도보다 사는 속도가 더 빠르지 않을까요?
칼 슈미트 책은 아직 열어 보기도 전입니다만, 전체적인 사상에 대해 정리을 잘 해 놓았다는 평이더라구요.

하나 2020-09-08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 그르니에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우리는 짐작으로밖에 알지 못하는데 정작 단 하나 중요한 것은 그쪽이다, 이런 문장을 저도 발견하고 싶어져서요. 좋은 오후 되세요 :)

syo 2020-09-08 22:58   좋아요 1 | URL
다시 한 번 읽으시면 되죠 ㅎㅎㅎㅎ 생각 날 때마다 다시 읽어도 좋은 책들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지요?
저는 저 섬을 이번에 읽고 내다 팔았지만.....^-^

공쟝쟝 2020-09-10 07: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다에서 온 태풍이 바다로 다시 뚜벅뚜벅.... 표현력 대박..그 태풍은 신사였구나...

2020-09-14 0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14 1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Passion

 

 

1

 

며칠 전부터 어떤 할아버지가 동네 슈퍼 앞 평상에 앉아서 하루 12시간씩 술을 마시며 고성방가 중이다. 가장 많이 외치는 말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이고, 그 다음이 김진태 이 개 쉬벌로마. 그 두 마디가 8할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뭘 어쩌시겠다는 건지, 김진태는 당최 누구이며 어떤 부득이한 사정이 있어 쉬벌로마로 전락하고 말았는지에 대해서는 일언도 반구도 없는 상황이다. 동네 사람들은 여유로운 건지 너그러운 건지 아무도 할아버지를 말리지 않는다. 다들 국가와 민족과 김진태와 쉬벌로마에 대해서 같은 의견인 것일까. 모쪼록 국가와 민족이 얼른 안녕을 되찾기를.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김진태 씨도 얼른 사람 되시길.

 

아침부터 사락사락 비가 내려서 기분이 좋다. 할아버지께서도 그러신가 보다. 유독 찰진 딕션. 구꽈와 민죠글 위해,!



  "난 족장이야아파치 부족 족장이라고젠장맞을!"

  "젠장은 혼자 맞으세요족장 나리." 그는 술을 마시며 거울 속 내 손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째서 아파치족 빨래를 하세요?"

  내가 왜 그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잔인한 말이었다그를 웃기려고 그랬던 것 같다아무튼 그는 웃었다.

  "레드스킨자네는 어떤 부족인가?" 그가 담배를 꺼내는 내 손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내 첫 담배의 불을 붙여준 사람이 어느 왕자였다는 거 아세요내 말 믿겨요?"

  "믿고말고불 줄까?" 그가 내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다우리는 서로 바라보며 소리 없이 웃었다우리는 사이가 아주 가까웠고 그는 정신을 잃었고 거울 속에는 나 혼자였다.

_ 루시아 벌린, 「에인절 빨래방」

 

 

 

2

 

어제 마트에서 사온 요거트를 과 하나씩 나누어 먹었는데, 요거트 뚜껑? 껍데기? 하여튼 그걸 양손으로 잡고 핥아먹고 있다가 역시 그걸 양손으로 잡고 핥아먹고 있던 과 눈이 마주쳤다. 부끄러운 듯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돌리는 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나도 부끄러워져서 괜히 네이버를 열었다 닫았다 하고 아무 의미 없는 하얀 공간에 마우스를 클릭하며 뭔가 하는 척을 하게 됐다. 아니, 왜 사람이 작아지는 느낌이지? 이걸 안 핥아먹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요거트 뚜껑은 안 핥고 그냥 버리는 사치를 누려야지. 김밥 두 줄 시킬 때 그냥 김밥 + 참치김밥 말고, 참치김밥 + 치즈김밥 구성으로 시키는 호사도 누려야지. 콜라도 1.5L사면 500mL 시점에서 김 다 빠지니까, 500mL짜리 작은 페트만 사서 먹을 거고, 버거킹에서 셋트 먹을 때도 라지로 먹을 거야! 700원 더 주고!

 

, 생각만 해도 개설렘…….

 



가끔 길을 걷다가 저 멀리 보석이나 꽃 같은 물체가 있는 것을 보지만 몇 걸음 더 다가가서 보면 그냥 쓰레기일 때가 있다하지만 그 물체도 정체가 완전히 드러나기 전에는 아름다워 보인다.

리베카 솔닛길 잃기 안내서

 

 

 

3

 

시를 하루 딱 10편씩만, 천천히, 느긋하게, 꼭꼭 씹어 읽어야지- 하고 다짐하는 일이 생겼다. 그러고 안도현을 뽑아 들었는데, 아이 좋아…….

 


 간절한 것은 통증이 있어서

 당신에게 사랑한다는 말 하고 나면

 이 쟁반 위 사과 한 알에 세 들어 사는 곪은 자국이

 당신하고 눈 맞추려는 내 눈동자인 것 같아서

 

 혀 자르고 입술 봉하고 멀리 돌아왔네

 

 나 여기 있고당신 거기 있으므로

 기차 소리처럼 밀려오는 저녁 어스름 견뎌야 하네

안도현그 집 뒤뜰의 사과나무〉 부분

 

 

 

 

--- 읽은 ---


 

123. 새로 쓴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임승수 지음 / 시대의창 / 2020

 

분식집 개도 삼 년이면 떡라면을 끓인다고 했다. 마르크스는 읽지 않고 마르크스 개론서/해설서만 읽으면서 빨간 심장의 표면만 할짝대던 것이 아아, 몇 년이던가. 이제는 알 수 있게 되었다. 원숭이가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인간에게도 좋은 책이기만 한 것은 또 아니라는 사실을. 후려치기란 늘상 그런 것이다. 후려친 책은 결국 사다리의 맨 아랫단에 불과하고, 읽을 뜻이 있는 사람들은 언젠가 그 단을 밟고 저 위로 올라가야 한다. 그렇다면 이 책은 불필요한가? 사다리의 첫 단을 밟지 않고도 안전하게 올라설 자신이 있는 이들에게는 그럴 수도 있겠다. syo는 워낙 뱁새다리이온지라.

 

 



124. 알기 쉬운 경제학

김경진 지음 / 지식공감 / 2020

 

거짓말은 아니었다.

 


 

 

125. 김언호의 세계서점기행

김언호 지음 / 한길사 / 2020

 

서점과 도서관을 거니는 즐거움을 빼앗겨 버린 지 오래다. 저 빌어먹을 감염병 때문에. 어떤 이는 수입이 줄고 심한 경우 직장 자체를 잃었다. 또 어떤 이는 건강을 잃고 심지어 생명을 잃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겨우 도락 하나 빼앗긴 게 무에 그리 대수냐 하옵시면 그건 뭐 또 그렇겠습니다만…….

 

책이 잔뜩 늘어서 있는 공간에서 시간을 탕진하는 데서 얻는 안온함 같은 것이 있다. 그렇게 책을 뺐다 꽂았다 하면서 보낼 시간에 그냥 아무거나 골라서 읽기 시작했으면 한 권은 읽었겠다는 비난은 좀 경영학적이라서 반사. 책광욕의 기쁨을 모르는 사람은 독서가일 수는 있어도 애서가일 수는 없는 법.

 

서점이라는 공간이 내뿜는 문화적 광채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겠고, 그 종이로 넘실거리는 건물 안에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편안함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없겠다. 그런 이유로 syo에게 서점에 관한 책은 어지간히 좋은 책이어도 별반 의미 있는 책은 아니기 십상. syo의 세상에는 두 가지 서점만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본 서점, 그리고 내가 가볼 서점.

 


 


126.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고병권 지음 / 그린비 / 2003

 

마르크스의 문장과 니체의 문장 중 어느 것이 더 선동적인가?

 

그들은 둘 다 뭔가를 부쉈다. 마치 윈도우에 깔린 익스플로러처럼 사회에 기본적으로 설치되어 있던 뭔가를. 그래서 그들(그들의 책)이 태어나기 전과 후의 세상은 같은 세상일 수가 없었다. 말과 글로 그런 파괴 행각을 벌이기 위해서는 당연히 선동과 추동의 문장이 필요하다. 혁명에는 사상이 필요하지만 사상만으로는 혁명이 충분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 처음의 질문은 그들이 부순 것들, 부수고 세운 것들의 크기를 평가하는 사람의 잣대에 따라 다른 답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범위를 좁혀서, 마르크스와 니체가 아니라 고병권의마르크스와 니체에서 생각해보자면, 좀 더 손쉽게 답을 내릴 수 있다.

 

고병권 선생님의 입지는 이 책에서부터가 아니었을까? syo는 니체보다 마르크스를 훨씬 더 좋아하지만, 고병권 선생님의 마르크스 책보다는 니체 책을 훨씬 더 사랑한다.

 


 

 

127. 인생을 바꾸는 건축수업

김진애 지음 / 다산북스 / 2012

 

인생을 바꾼다는 제목을 달았다고 해서 이 책이 내 인생을 바꾸어줄 거라고 기대하거나, 왜 바꿔 준대 놓고 바꿔놓지를 못하느냐고 따지는 것은 유아적이다. 책 한 권이 인생을 바꿔놓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고, 다만 내가 어떤 책 한 권을 통해 내 인생을 바꾸는 일이 가끔 일어날 뿐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책이 우리에게 해 줄, 해주겠다고 선언한 일들에 큰 기대를 가져서는 안 된다. 인생은 하나의 사건을 만나 크게 물길을 틀어놓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미세한 각도의 선로변경을 반복하며 긴 시간을 두고 바뀌어 간다. 책에서는 한 줄의 문장, 하나의 지혜, 한 조각의 동력만 주워도 기쁜 일이다. 주운 것을 인생에 발라 뭔가를 바꾸는 것은 읽는 이의 일이다.

 

 

 

 

--- 읽는 ---

페미니즘 : 교차하는 관점들 / 로즈마리 퍼트넘 통 외

타인의 얼굴 / 강영안

홍차수업 / 문기영

현대 정치철학의 네 가지 흐름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북항 / 안도현

너 자신을 알라 /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근육이 튼튼한 여자가 되고 싶어 / 이정연

Chaeg 2020. 7. 8. / ()(월간지) 편집부

닥치고 데스런 스트레칭 / 조성준

다소 곤란한 감정 / 김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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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20-09-06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맘은 트럼프 십알노마 입니다만...서점기행 부럽고 관심가네요

syo 2020-09-06 12:20   좋아요 1 | URL
그쵸, 서점기행.... 세상 모든 애서가들이 서점기행 책을 한 권씩 내도 비슷한 듯 다 다른 책이 나올 것 같고 나도 가 보고 싶고 막 그러네요...

트럼프의 만행에 관한 소식은 코로나와 의사파업으로 뉴스가 점령된 이 땅에도 들려오고 있습니다.... 모쪼록 여기서든 거기서든 힘내서 살아야겠어요ㅠㅠ

반유행열반인 2020-09-06 1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광욕하던 날이 벌써 먼 옛날 같은...국가든 민족이든 뭐든 신념을 가지고 윽박지를 수 있는 사람들은 부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시끄럽기도 하네요...

syo 2020-09-06 12:21   좋아요 2 | URL
개시끄러워요.... 저는 저 지칠줄 모르는 체력과 쉬지 않는 목청이 부럽습니다.

하나 2020-09-06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부분의 “유독 찰진 딕션”에서 웃다가, 나 혼자였다가, 쓰레기도 멀리서는 아름다워 보였다가, 나 여기 있고 당신 거기 있었다가 거짓말은 아니었다가, 고병권은 마르크스보단 니체였다가, 책에서 주운 걸 발라서 인생을 바꾸는 건 읽은 사람 각자의 일이었다가.. 흐름 뭐죠? 되게 재밌는 글쓰기네요 ^^ 긴장을 놓을 수가 없어요

syo 2020-09-06 18:23   좋아요 1 | URL
ㅎㅎㅎ 혼란스러운 글쓰기지요? syo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줍니다 ㅎ
긴장은 애초에 그냥 놓아버리시고 스윽- 읽으시는 게 제일 낫지 않나 생각해요. 별 의미 없거든요^-^

하나 2020-09-06 19:22   좋아요 0 | URL
그게 좋아요 ^^ 여기 왜 이러죠 ㅋㅋㅋ 그저께는 반유행열반인의 까만우울 빨간우울 노란우울에 감탄하고 오늘은 syo님 닥에 신나고 즐겁네요! 좋은 자극을 주셔서 감사합니당 :)

반유행열반인 2020-09-06 19:50   좋아요 1 | URL
syo는 님인데 저는 그냥 인이고 님이 없는 이유가 갑자기 궁금해졌다고 합니다....농담이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나 2020-09-06 19:57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까 졸다 써서 그런가봐요 오타도 막 있네요 반유행열반인님 웃기기까지 하시면 너무 좋아져버리는뎅 ㅋㅋㅋㅋ

페크pek0501 2020-09-06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잘읽고 갑니다. ^^

syo 2020-09-06 18:23   좋아요 0 | URL
핵감사합니다^-^

blanca 2020-09-06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동네나 그런 할아버지 한 분쯤은 있나 봅니다. ㅋㅋ 서점은 아... 지금 가고싶어지잖아요. 시집은 저도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따금씩 반드시 읽어줘야 한다! 잘 읽고 갑니다.

syo 2020-09-06 18:24   좋아요 0 | URL
시집은 읽고 겸손해지기 딱 좋은 책이지요 ㅎㅎ
서점, 갈라면 갈 수는 있는데도 어쩐지 가기가 어렵다.... 남이 만진 책 만지기도 그렇고 ㅠㅠ

독서괭 2020-09-07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영학적 비난에 대한 반사~ 으흐흐 좋네요^^
서점.. 도서관.. 그립네요 ㅠ 갇혀 있는 애들이 젤 불쌍..ㅠㅜ

syo 2020-09-07 22:43   좋아요 0 | URL
얼른 다시 도서관이고 서점이고 팡팡 다닐 수 있는 시간이 왔으면 좋겠지만, 정말 그게 언제가 될지 알 수가 없어서 더 서글프고 빡치고 그러네요...

연록 2020-09-08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로또되면 요거트 뚜껑 안 핥아먹고 우아하게 휙 버려야지 하는 생각을 했는데 말예요.ㅋ 안도현 북항은, 참 좋죠. 간절하게 참 철없이도 추천합니다.

syo 2020-09-11 08:38   좋아요 0 | URL
아.... 댓글을 늦게 발견했네요 ㅠㅠ
<간절하게 참 철없이> 저도 굉장히 좋아하는 시집입니다 ㅎㅎㅎ 역시 좋은 건 좋은 거죠? 다들 안다 ㅎㅎ

공쟝쟝 2020-09-10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안도현..... 그 안도현인 건 알겠는데... 저... 정말 불세출의 시인이시댜...

syo 2020-09-11 08:38   좋아요 0 | URL
그 안도현??ㅇ_ㅇ?

공쟝쟝 2020-09-11 08:58   좋아요 0 | URL
연탄재 함부로....
 

 

다시

 

 

1

 

한 손에 책을, 다른 손에는 사랑을 들고서 뚜벅뚜벅 살다 가는 것이 이번 생에 내가 해야 하는,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임을 선명하게 받아들인 건 고작 몇 해 전이다. 스물부터 읽고 사랑하기 시작했고 일단 시작한 이후는 쉼 없었으니, 살아온 인생의 거지반을 스스로 어떤 놈인지 잘 인식하고 살았던 것 치고는, 총 인생의 거지반을 어떤 놈으로 살아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수용은 꽤 늦은 셈이다.

 


이제 막 시단에 새로이 등장한 폴 발레리가 스승으로 우러러보던 스테판 말라르메에게 시작詩作의 충고를 구하는 편지를 쓴 적이 있습니다말라르메는 어떻게 답장을 썼을까요? "유일한 참된 충고자고독이 하는 말을 듣도록"이라는 것이었습니다아름다운 일화입니다자신이 하는 말도 듣지 말라는 얘깁니다누구의 '부하'도 되어서는 안 되고누구의 '명령'도 들어서는 안 됩니다.

사사키 아타루잘라라기도하는 그 손을

 

 


2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가는 중. 나라고 생각했던 나와, 되고 싶었던 나와, 되기 싫었던 나가 이루는 삼각형의 안쪽 어딘가에 내가 있는 것 같다. 정확히 어디쯤인지는 알 수 없지만. 거기가 어딘지 평생을 더듬어가면서 살겠지만.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어떤 사람이 되기로 선택했는지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잊으면 안 되네인류가 겪은 전쟁과 패배와 승리 중에는 군대와 상관없는 것도 있어그런 것들은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지앞으로 어떻게 할지 결정할 때 이 점을 명심하게.“

존 윌리엄스스토너


 

 

3

 

아무거나 쓰다 보면 아무것도 쓰지 못할 거라고 오래 생각해왔다. 그 생각은 곧 아무나 사랑하다 보면 아무도 사랑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으로 치환되었다. 마음의 논리가 그런 식인 사람이 있다.

 

그렇지만 또 아무것도 쓰지 않으면 역시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으면 역시 아무도 사랑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를 안고 있는 동안은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았는데.

마치 우주를 안고 있는 것처럼.

박상영우럭 한점 우주의 맛

 

 

 

4

 

읽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그러니까 사는 것이 이런 모양이어서는 안 된다고 느끼면서도 그저 이런 모양으로 읽고 사랑하고, 사는 것은, 얼핏 아무것도 아닌 일 같지만, 누구나 겪으며 살아가는, 세상에 너무 흔한 일 같지만, 그냥 맛있는 거 먹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한숨 푹 자고 나면 먼지처럼 사라지는 작은 불만 같지만, 그 괴리, 이래서는 안 된다는 마음과 그럼에도 이렇게밖에 살아지지 않는 삶 사이의 깎아지른 벼랑은, 거칠게 던져진 녹슨 칼처럼 마음의 밑바닥에 생채기를 낸다. 구멍이 생기고 그 틈새로 감정이 샌다. 그러다 어느 날, 수도꼭지보다 배수구의 직경이 더 커지는 때가 오면 세상 온갖 행복을 가져다 마음에 부어도 그것들은 그대로 흘러나가고, 나는 그냥 하나의 몸통이 된다. 그럴 때 버리고 떠나야 한다.

 

살려고, 살고 싶어서 그래.

 



바쁜 일들이 밀려 나 자신을 돌보는 것조차 귀찮고 번거로울 땐문 밖에 세워둔 나 자신을 상상한다집 안은 밝고 환하다하지만 누구도 문을 열어주진 않는다집주인인 나 자신도 창밖의 나를 보지 못한다낯선 얼굴들이 들어갔다 나온다날은 저물고 사위는 어두워지는데 나는 여전히 집 밖을 서성이고주저한다이제 밤이다나는 엄습하는 추위에 옷깃을 여민다언제까지 나는 나를 문 밖에 세워둘 것인가?

김다은혼밥생활자의 책장


 

 

--- 읽은 ---

 


118, 119. 설민석의 삼국지 1, 2

설민석 지음 / 세계사 / 2019

 

삼국지 1회독을 여기서 하는 것은 나쁘지 않겠다. 그러나 1회독까지. 삼국지를 안 읽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 읽고 마는 사람은 없으니, 내가 삼국지를 읽겠다 싶은 분은 이 책을 소장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

 

 


120. 인생을 바꾸는 결혼 수업

남인숙 지음 / 해냄 / 2017

 

이걸 왜 읽고 앉았냐- 하면서 책을 폈는데 의외로 끝까지 읽고 앉았다. 결국은 뻔한 소리 같긴 한데, 세상에 뻔한 소리는 다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된다. 도움이 되니까 퍼지고 퍼져서 뻔한 소리가 된 것이 아닐까.

 

 

 

121. 칠레의 밤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 우석균 옮김 / 열린책들 / 2010

 

알아야 읽히는 것들이 있어서, 알기 전에는 읽어도 읽은 게 아닌 책들이 있다. 지구 반대편 나라의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쓰인 소설 같은 것들. 그렇지만 그 가운데는 모르고 읽어도 읽을 만하되, 알고 읽어도 미처 다 알아내지 못하는 신기한 책들도 있다. 그런 책을 내놓는 이들에게 세상은 거장의 이름표를 붙이고, 설령 많이 팔리지는 않더라도 그들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끝내 멸종하지 않는다.

 

 

 

122. 남의 마음을 흔드는 건 다 카피다

이원흥 지음 / 좋은습관연구소 / 2020

 

내가 이런 (좋은) 카피를 썼다. 방황하는 후배에게 내가 이런 (멋진) 말을 해주었다. 이것이 (훌륭한) 나의 루틴이다. 누구누구가 이런 (살짝 부족한) 카피를 내놓았는데 내가 발전시켜서 최종적으로 이러이러한 (더 나은) 카피가 나갔다. 내가 SNS에 올려놓은 (폼 나는) 것 좀 보세요. 특히 SNS . 책 전체 분량의 거진 1/6을 작가가 SNS에 올린 글을 퍼와서 채웠다.

 

남의 마음을 흔드는 것은 다 카피라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은 하나도 카피가 아니었다.

 

 

 

--- 읽는 ---

질풍노도의 30대입니다만 / 김희성, 김밀리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고병권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 정희진

어른의 어휘력 / 유선경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 / 이주윤

김언호의 세계서점기행 / 김언호

새로 쓴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 임승수

알기 쉬운 경제학 / 김경진

희망, 살아 있는 자의 의무 / 인디고 연구소, 지그문트 바우만

인생을 바꾸는 건축 업 / 김진애

 

  

--- 갖춘 ---

홍차수업 / 문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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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0-09-04 08: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구의 부하도 되지 않기로 결심하고 사사키 아타루의 발소리만 들으면서 걸어온 밤이 있었어요. 그러다가도 책만 읽는 내가 답답해질 때도 있었는데, 스토너를 읽다가 “자네는 (책과) 사랑에 빠진 걸세.”라는 말을 듣고 또 집어들고 책을 읽던 ^^ 그 기억을 떠오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살려고, 살고 싶어서 그래.” 울컥하네요

syo 2020-09-06 12:02   좋아요 1 | URL
하나님은 책을 사랑하며 굳건히 읽어나가시는 분이신가 보다....
저는 이놈들과 애증의 관계라서, 제가 책이 좋아서 읽고 있는건지 아니면 책이 싫어서 읽어 없애버리겠다는 심정으로 읽는건지 가끔 헷갈릴 때가 있더라구요 ㅎㅎㅎㅎ 어쨌든 살려고 읽는 거긴 한데...

하나 2020-09-06 12:17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오해 노노합니다 ㅋㅋㅋ 저도 살려고 억지로 읽다가, 저는 심지어 힘들어서 도망쳤다 돌아온 걸요 ^^ 애증 너무나 공감됩니다. 본가에서 다시 나올 때 호기롭게 위대한 개츠비, 호밀밭의 파수꾼만 가져온 저예요 ㅋㅋㅋㅋㅋ 지긋지긋해서. 저는 오히려 쇼님의 글에서 느껴지는 책에 대한 열정에 이제 나는 너무 날라리(?)인가 싶었는 걸요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09-04 1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슬프고 아픈 일은 조금씩 줄이고, 기쁜 일 즐거운 날 행복한 시간은 조금씩 늘리면서 살아요. 저도 고병권 선생님 니체 책 다시 읽어볼까 싶네요ㅎㅎ 가지고는 있는데 읽은 건 하나듀 안 남았어요 ㅎㅎㅎ

하나 2020-09-04 10:59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저도 고병권 선생님 책 되게 좋아해서 글 남겨요. “그러나 니체는 적어도 자기 삶의 많은 순간들에서 주인이었다.” 같은 문장이 좋아서요.

반유행열반인 2020-09-04 21:02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저는 아주 아주 아주 오래 전에 두 권 정도를 읽었는데(제 뒤에 꽂혀 있는 걸 보니 읽긴 했었나 본데) 현재는 안 읽은 상태나 마찬가지여서 부끄럽네요. 그런 좋은 문장이 담긴 글을 쓰시는 분이었군요 ㅎㅎ 일단 가지고 있는 니체 시리즈 둘을 읽고 자본 시리즈도 읽는 게 소망입니다. (될까..올해 안에 될까...)

syo 2020-09-06 12:02   좋아요 2 | URL
두 분의 아름다운 만남이 제 서재에서 이루어져서 썩 기분이 기쁩니다^-^

공쟝쟝 2020-09-05 1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이 쓸쓸하네요.. 가을이다....

syo 2020-09-06 12:02   좋아요 0 | URL
가을에는 역시 쓸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