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대저기압으로
저녁이 내리기 전에 얼른 옥상에 섰다. 태풍이 휘몰고 온 비가 멀리 산과 하늘의 경계를 문지르고 있었다. 더 멀리 내다보고 싶었지만 그건 가벼운 마음만 가지고 될 일이 아니어서 오늘은 그냥 웃고 말았다. 버스가 사람을 태우고 마을을 휘돌아 내려가고 있었겠고, 나는 그런 생각만으로 조금 먹먹해졌다. 빗방울이 우산을 때려대는 소리가 고르지 않았다. 그래서 좋은 거잖아, 때로는 강하고 때로는 여리게, 때로는 빽빽하고 때로는 성글게, 작은 물방울들은 아무리 애를 써도 이길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대기나 중력 같은 커다란 힘에 휘감겨 그때그때 주어진 만큼의 리듬과 강렬함으로 부딪는 거라서, 알 수 없는 거라서, 그래서 좋은 거잖아, 하고 말해도 보았다. 아무도 듣지 않는 옥상에서. 조금 머쓱해져서 고개를 들고 올려다본 하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를 아무도 듣지 않는 옥상에서 맞아가며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을 아무 생각이나 하는 동안, 태풍이 동쪽 바다를 지나가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저녁이 자주 있기를.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아무 생각이나 하는 동안, 태풍은 스스로 바다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 천천히 사라지는 이런 저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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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은 우리에게 늘 똑같은 한 쪽만 보여준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삶 또한 그러하다. 그들의 삶의 가려진 쪽에 대해서 우리는 짐작으로밖에 알지 못하는데 정작 단 하나 중요한 것은 그쪽이다.
_ 장 그르니에, 『섬』
내 상상은 거처가 없고 처자식도 봉양할 부모도 없고 오로지 흔들리는 그림자만 있어서
내 상상은 죽도록 사랑할 애인도 없고 이별 따윈 더더욱 없고 옥수숫대의 종아리만 있어서
나는 누군가 나에게 흔들리는 옥수수 그림자를 경작하는 사람이라고 불러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왜 하필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물으면
간신히 이를 가지런히 내보이며 파종의 힘을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_ 안도현, <파종의 힘> 부분
--- 읽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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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르노, 사유의 모티브들 / 게르하르트 슈베펜호이저
정전과 내전 / 오오타케 코지
한 권으로 읽는 칸트 / 이정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