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안의 문학, 손 밖의 종이 뭉치

 


 

 

아침에 비몽사몽 일어나서 잠 한번 깨 보겠다고 북플에 들어갔다가 성공했다. 친애하는 이웃의 서재에서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을 둘러싸고 어느 독서모임에서 벌어진 일을 읽게 되었는데, 그 모임의 선생님이라는 자의 입에서 도덕적 잣대를 가지고 문학을 봐서는 안 된다, 그런 해석은 편향된 것이다라는 말이 나왔다고 해서, 눈이 번쩍 뜨인 것이다. , 대박. 이건 syo2020년 하반기에 들은 말 가운데서 가장 편향된 말이군.

 

첫째. 어떤 판단 자체가 도덕적 판단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둘 중 하나는 필요하다. 그 판단 자체를 도덕적으로 판단하든가, 아니면 모든 판단을 판단할 수 있는 신이 있어서 이건 도덕, 저거는 정치, 그리고 요거는 그냥 개소리- 이런 식으로 딱딱 결정을 해주든가. 사람이 신이 아닌 이상 어떤 판단이 도덕적 판단인지 아닌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도덕률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고, 그 순간 메타-도덕적 판단은 그대로 하나의 도덕적 판단이 된다. , 도덕적 잣대를 가지고 문학을 봐서는 안 된다는 말 자체가 문학을 보는 하나의 도덕적 잣대라는 혐의를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게 아니라면 저 말은 나는 신이오, 내 말을 들으시오라는 뜻인데, 설마. 결론적으로 저 선생님은 문학에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지 말라는 말로써 그 말을 듣는 사람의 도덕적 잣대에 자신의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었다. 도덕적 잣대의 침투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 잣대에 쑤셔진 죽은 문학의 분노는 두렵고, 눈앞에 살아 있는 사람은 두렵지 않은 것일까.

 

둘째, 세상에는 여성주의 비평이라는 게 떡하니 존재한다. 이 모임에서는 세상에 뿌려진 별처럼 다양한 비평들 가운데 여성주의 비평만은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하는 합의가 있지 않고서야, 판단의 오류나 오해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방식의 판단 자체를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독서모임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일까? 그리고 도덕적 잣대라는 용어 자체가 어쩐지 여성주의 비평을 비평의 한 갈래로 보지 않는 듯한 느낌도 풍긴다.

 

셋째, 설령 그렇게 볼 수 있다손 치더라도, 아니 문학이 대체 뭐건대 지 혼자 도덕적 잣대를 피해가야 하느냐는 말이지. 문학이 할 일은 그냥 문학이다. 제 몸에 갖다 댈 잣대를 제가 고르는 일이 아니라. 두려우면 피하고, 두렵지 않으면 밀고 나갈 일이다. 그런 과정에서 어떤 문학은 제 시대에 박해받다 다음 시대에 인정받기도 하고, 어떤 문학은 제 시대에 반성하고 돌아서기도 하고, 어떤 문학은 시대의 시각을 바꿔놓기도 한다. 다자이 오사무는 어쨌든 자신의 시대에,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문학을 했다. 문학을 도덕적인 시각으로 보면 안 되는 거니까 살짝 비도덕적으로 써도 문학적 평가는 좋게 받을 수 있을 거야 헤헤- 이러면서 문학을 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쓸 수 있고 쓸 수밖에 없는 글들을 썼다. 그게 그가 사랑받는 이유이고, 개개의 작품이 불러일으키는 호오를 떠나 다자이 오사무라는 이름이 문학의 역사에 크게 새겨진 이유다. 그게 작가의 일이며, 독자가 할 일은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잣대를 동원해 작품의 의미를 지금 여기에 맞게 재해석하고 재창출하는 일이다. 문학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무대 위에서, 작가-작품-독자가 대사를 주고 받으며 펼쳐지는 연극이다. 작품은 그 연극을 위한 하나의 구성요소일 뿐이고, 결코 독자의 위에 있거나 독자의 시각을 제약하는 위치에 있지 않다. 그 연극을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서, 독자는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연기를 해야 한다. 도덕이건 뭣이건, 독자는 한다.

 

모든 문학은 역사성을 띤다. 지위가 변하지 않는 고전이라는 것은 환상이다. 셰익스피어는 시대를 안 탈까? 이제 고작 500년이 지났다. 500년 뒤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솔직히 말해서 다자이 오사무의 아우라를 벗기고 나면 사양은 쓰레기에 가깝다. 최소한 이 시대에는. 나는 사양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과, 사양이 존재하지만 그걸 쓰레기라고 말할 수 없는 세상 가운데 하나를 골라 살라고 하면 0.1초의 고민도 없이 전자의 세상을 고르겠다.

 

 

 

우리의 모든 기술적인 진술들은 종종 보이지 않는 가치범주들의 그물조직 속에서 움직이며 실로 그러한 범주들이 없으면 우리는 서로에게 할 말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우리가 사실적 지식(factual knowledge)이라고 불리는 어떤 것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다시 특별한 이해관계나 판단에 의해서 왜곡된다는 것만이 아니다물론 이것도 분명히 가능하지만그보다도 특별한 이해관계가 없이는 아예 지식을 갖지 못하리라는 것이다왜냐하면 어떤 것을 굳이 알려고 애쓸 이유가 없을 테니까이해관계는 우리의 지식을 '구성하는요소이지 지식을 위태롭게 하는 한갓 편견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지식이 '몰가치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그 자체가 하나의 가치판단이다.

테리 이글턴문학이론 입문


이야기'는 곧 읽기와 쓰기다반응하지 않는감정 이입 없는 글쓰기는 불가능하다그러지 않아야 더 잘 쓸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의 뇌는 진공 상태다글이란 자기 생각을 외부로 물질화하는 일인데생각이 없다면생각 없는 글쓰기가 가능하고 심지어 널리 읽히는 세상이다.

정희진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문화의 불모지에서 잘난 척 날뛰고때로는 처절한 비명으로 변하는 내 아우성은 내 글의 표면을 집게손가락 끝으로 후벼팔 줄 아는 사람들많지는 않으나 내게는 충분한 그런 사람들에게만 들릴 뿐이엇다삶은 계속되고 계속되었다마치 알갱이마다 미세하게 풍경을 그려 넣은 쌀알 목걸이 같은 삶이었다모든 사람이 그런 목걸이를 하고 있지만그 누구도 목걸이를 벗어 눈에 가까이 대고 알갱이마다 담겨 있는 풍경을 해독할 충분한 인내심이나 용의가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로베르토 볼라뇨칠레의 밤


 

 

 

--- 읽은 ---


 

131. 붕대 감기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 2020

 

문학은 시대를 반영하고, 어떤 이야기가 쏟아져나오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의미다. 우리는 저마다 감수성은 다르지만 어쨌든 시대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지니고는 있다. 그러나 그래 봐야 그건 인간의 감각이다. 신의 눈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떤 작가가 흐름의 시작점이고, 어떤 작가가 그 흐름을 거세게 만들었고, 그리고 어떤 작가부터 어떤 작가까지는 이미 존재하는 흐름에 그저 올라탔을 뿐이다- 라는 식의 자체적 판단을 할 수는 있지만, 그 판단이 객관적이거나 여지없는 진리라고 우길 수는 없다. 그건 무지개에서 노란색과 초록색의 정확한 경계를 찾으려는 노력과 비슷하다. 그런 판단조차 하나의 흐름일 뿐이다. 그 흐름이 거세어져 많은 이들이 동의하게 되고, 사회적 설명력을 지니면 패러다임이 되는 거고.

 

윤이형의 차례였다. 윤이형은 돌아와야 한다.

 

  

 


132. 어느 괴짜 선생님의 수학사전

김용관 지음 / 생각의길 / 2019

 

거의 대충 다 알고 있었다. 생각보다 똑똑했던 나. 나라는 인간을 좀 더 사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133. Chaeg 2020. 7. 8.

()(월간지) 편집부 지음 / (주)책(잡지) / 2020

 

우린 모두 별에서 왔느니 어쩌니 하는 멘트는 솔직히 별 이야기 책마다 다 들어 있어서 별 이야기 아니다. <, 빛의 과학>이라는 책을 책장에 꽂아 넣었다. 근데 글 잘 쓰는 사람 정말 너무 많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문학이 아니라 책이라는 사실을 잡지를 읽을 때면 선명하게 느낀다.

 

 

 

 

 

--- 읽는 ---

희망은 과거에서 온다 / 김진영

11미술 1교양 1 : 원시주의~낭만주의 / 서정욱

이사 / 마리 유키코

, 빛의 과학 / 지웅배

쓰기의 감각 / 앤 라모트

문학사를 움직인 100/ 이한이

페미니즘 : 교차하는 관점들 / 로즈마리 퍼트넘 통 외

프로이트 패러다임 / 맹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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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0-09-11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무원들 봉급 깎아서 그걸로 재난 지원금 주자는 새끼들은 이제 아닥 했나요?
그 뉴스 듣자마자 사이오 님 생각이 났다는 거 아닙니까. 흑흑...
아침부터 열 받을 일이 따로 있지 그깟 다자이 때문에 뭘 힘을 주시고 그래요. ^^

syo 2020-09-11 10:52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 ‘그깟 다자이‘라는 딱 다섯 글자가, 제가 써 놓은 저 양만 많은 글 전체보다 더 시원한 한방이네요!
역시 깔 놈 까는 법은 폴스타프님께 오래 배워야겠어요....

봉급 깎아서 재난지원금 주자는 논의가 있었었군요..... 진짜 쥐똥만큼 주면서..

비연 2020-09-11 13:54   좋아요 1 | URL
Falstaff님은 ‘사이오님‘이라 하고
스텔라님은 ‘스요님‘이라 하고
저랑 기타 등등은 ‘쇼님‘이라 하고.
도대체 누굽니까, 그대는...ㅎㅎㅎ

Falstaff 2020-09-11 13:54   좋아요 1 | URL
비연님,
제 댓글에 비밀 답글을 다시면, 저는 보이는데 사이오님은 못 보실 거 같습니다. ㅋㅋㅋㅋㅋ
‘사이오‘ 멋있잖아요? 스요, 쇼 님 보다요. 저 유명한 만화 <손오공>에 초 사이언이 등장하는데요, 발음이 좀 비슷.... ㅎㅎㅎㅎ

비연 2020-09-11 13:56   좋아요 0 | URL
으하하하. 쇼님한테 정체성을 물어본 댓글인데 쇼님만 안 보였다니.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냥 비밀댓글 풀어버림 ㅎㅎㅎㅎ 별 얘기도 아니고 해서..
사이오님이 손오공의 초사이언과 비슷해서 그렇게 부르시는군요..
영어로 쓰면 이렇게 읽을 때 각자 읽게 되는 듯^^;;; 그렇다면, syo님. ㅎㅎ

syo 2020-09-11 14:00   좋아요 1 | URL
으하하하 저는 호칭논란을 즐깁니다. 그래서 늘 저 자신은 syo라고 쓰죠. 더 헷갈리라고.... ㅎㅎㅎ

stella.K 2020-09-11 16:25   좋아요 0 | URL
전에 그냥 아무렇게나 불러 달라고 하시던데
그래서 전 스요님으로 낙찰봤다능.ㅎㅎㅎ
스요님은 다중성명자잖아요.
거 말고 또 다르게 부를 이름은 없을까요?ㅋ

단발머리 2020-09-11 10: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대면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있었지만, 쇼님의 위의 아름다운 문장들을 내가 잘 꿰고 있었다면 정확하게 친절하게 대응할 수 있었을텐데... <비평 이론의 모든 것>을 사기만 하면 뭐하나요. 저는 어버버 했습니다. ㅎㅎㅎㅎ 셋째,로 시작하는 문단 너무 좋네요. 문학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무대 위에서, 작가-작품-독자가 대사를 주고 받으며 펼치는 연극이라니. 이건 좀 외워서 써먹어야겠습니다.

수요일 깊은 밤이었죠. 책을 읽다가, 아니 이건 도대체 무슨 소리야? 노여움에 알라딘 들어와 쇼님의 <사양>에 대한 짧은 리뷰를 읽고, 크게 안심했습니다. 그때부터 고마웠습니다.

syo 2020-09-11 10:53   좋아요 0 | URL
다자이 오사무는 시공간을 너무 타죠?
그때 그 시절 그곳에서는 울림이 컸는데, 조금씩 영향력이 작은 영역에 집중되는 느낌. 그러다 소멸할지도?

저는 좋아하지만요....

추풍오장원 2020-09-11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자이 책은 인간실격외엔 읽어보질 않았는데 syo님의 글 덕택에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쓰레기 문학도 있고 쓰레기를 쓰레기라 하는 비평도 있고 쓰레기 비평도 있고..저같은 사람은 그저 읽을 뿐입니다. 사양 번역은 어느 출판사가 괜찮을까요?

syo 2020-09-11 10:56   좋아요 0 | URL
저도 <사양>은 민음사 것밖에 안 읽어봐서 딱히 드릴 만한 말씀은 없지만, 이 번역은 자체로 특별한 감상을 불러일으키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유숙자 선생님이야 뭐, 워낙에 베테랑이시기도 하고..... ㅎㅎ

하나 2020-09-11 15: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자이 오사무는 어쨌든 자신의 시대에,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문학을 했다. 문학을 도덕적인 시각으로 보면 안 되는 거니까. 살짝 비도덕적으로 써도 문학적 평가는 좋게 받을 수 있을 거야 헤헤- 이러면서 문학을 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쓸 수 있고 쓸 수밖에 없는 글들을 썼다.” 너무 좋아서 일기장에 옮겨 썼어요. 저의 요즘 고민과도 통하는 거 같아서요. 나중에 다시 읽어보려고요. 오늘도 생각할 거리에 대한 자극을 주셔서 감사합니당! 좋은 하루 보내세요 ^^

syo 2020-09-11 14:02   좋아요 1 | URL
별말씀을요. 요즘 그런 고민을 하고 계셨군요..... 저는 이렇게 한 번 찌끄린 다음 또 다 까먹고 으헤헤 하면서 산답니다 ㅎ
하나 님도 좋은 금요일 되시길^-^

독서괭 2020-09-11 14: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yo님의 빡침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ㅋㅋㅋㅋ 전 인간실격 그닥 기억에 남지 않아서 사양은 안 볼 것 같네요..
위에 하나 님이 옮겨 썼다는 부분 저도 좋아요~~!

syo 2020-09-12 10:41   좋아요 0 | URL
다자이 오사무는 결락이 별로 없거나 아직 발견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다지 매력이 없는 작가인 것 같아요.
한참 다자이앓이 하던 사람들도 때 되면 졸업하는 느낌...

모운 2020-09-11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자이는 포기할 수 없다. 죽어서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

syo 2020-09-12 10:42   좋아요 0 | URL
늘 느끼는 거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모진 말을 한단 말이지....

2020-09-11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붕대감기.. 공감합니다. syo님 글 늘 재밌게 잘 보고 있어요.^^

syo 2020-09-12 10:42   좋아요 0 | URL
쥬님 반갑습니다^-^

stella.K 2020-09-11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놈의 월간 책은 읽어보고 싶긴한데
괜히 비싸단 느낌이 들어서 안 사게 된다능...
잡지를 딱히 즐기질 않으니. 원..ㅠ

syo 2020-09-12 10:43   좋아요 0 | URL
즐기지 않으면 안 보셔도 되는 건데, 뭘 또 ‘원..ㅠ‘까지요 ㅎㅎㅎ
저는 오히려 axt같은 책은 너무 찐하고 무거워서 읽기가 힘들고, 이 정도가 적당하더라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20-09-12 16:5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음... 저는 그 선생님의 말씀이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알라딘의 이런 반응이 좀 놀랐습니다. 도덕적 잣대는 시대에 따라 다릅니다. 예를 들어, 허클베리 핀과 톰 소여를 보면 허클베리와 톰은 줄담배를 하죠. 그리고 헐리우드 영화에서 1950년대에만 해도 10살짜리 꼬마가 광장에서 어른과 함께 담배를 피웁니다. 그 시대에는 어린아이의 흡연은 문제가 되지 않았죠. 쇼 님처럼 지금의 도덕적 잣대로 평가하자면 허클과 톰소여는 쓰레기 문학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어떤가요 ? 유다는 며느리와 잠자리 가졌고, 세겜은 여자를 강간한 후 아내로 삼으려 했고, 롯은 자신의 손님을 지키기 위해 두 딸을 강간해도 좋다고 했고, 레위기는 월경하는 여자는 부정하다고 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도덕적인가요, 불태워야 할 책인가요 ?

다자이 오사무가 사양을 쓸 때가 1946년입니다. 출간은 47년도 이지만... 이때까지도 일본은 여성투표권이 없었습니다. 패망 후 어쩔 수 없이 미국법을 따라 46년에 투표권이 주어졌을 뿐이죠. 그 시절만 해도 여성은 일종의 재산 취급을 당했습니다. 시대적 맥락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의 잣대로 이 소설이 비도덕적이라고 말씀하신다면 현대인은 교회도 다니면 안되죠.


syo 2020-09-12 18:07   좋아요 9 | URL
곰발님, 우선 오랜만입니다^-^

아무래도 제 글이 미숙해서 전달을 실패한 것 같은데,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모든 작품이 현대를 기준으로 한 도덕적 허들을 넘어서지 않으면 일괄적으로 쓰레기라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식으로 한두 가지 기준만 적용하고 나머지 잣대는 들이대지 말라는 태도에 반대한 건데요. 어떤 사람은 작품을 평가할 때 미적 가치에 먼저 마음이 움직일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도덕적 관점(정확히는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들여다봤는데 선생님이 그건 ‘도덕적 평가‘라고 ‘평가‘하신 거지만요)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올 수도 있잖아요. 그렇다면 그 독자는 그 작품의 그런 점에 대해서 자신의 견해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어느 독자가 <사양>을 미적으로 접근하여 장점을 말했을 때, 그 선생님이 ˝그런 식의 아름다움을 우선으로 한 잣대를 작품에 들이대는 건 편향될 수 있으니 하지 마시고, 도덕적 시각으로 한 번 보시죠.˝ 라고 말씀하실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왜 뭐는 되고 왜 뭐는 안 되냐는 말이 하고 싶었던 건데요. 제 생각에는 시대의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는 곰발님의 말씀과, 도덕적 기준을 갖다대지 말라는 그 선생님의 말씀은 같은 견해가 아닌 것 같습니다.

10살짜리 꼬마가 광장에서 어른들과 담배를 피운다고 해서 그 책이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런 이유로 10살짜리 꼬마가 광장에서 어른들과 담배를 피워도 된다/혹은 피워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책이라면 이 책은 좀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톰 소여의 모험>에서 아이들이 피는 담배를 통해 마크 트웨인이 주장하고 싶은 것(그런 게 있었을까요)과, <사양>에서 가즈코의 행동이나 선택을 통해 다자이 오사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이 작품의 주제에 가깝잖아요)은 그 비중이 달라서, 읽는 이도 다른 비중으로 대응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마찬가지로 이 시대에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내용이 있는 책이라고 해서, 그 책을 불태워버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작품의 평가 기준은 너무 다양하고, 오늘날 관점에서 다소의 도덕적 결함이 있더라도 그걸 상쇄하거나 침묵시킬 만큼 뛰어난 가치를 보유한 작품들이 잔뜩 있으니까요. 톰 소여의 모험도, 성경도, 불태워야 할 책이라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유다와 세겜의 행위가 오늘날의 입장에서 보면 부도덕하다고 평가할 수 있도록 읽을 때 도덕적 기준을 들이댈 수 있지 않느냐는 거죠.

그 선생님이 ‘도덕적 잣대‘라는 말씀을 하시는 바람에 계속 도덕을 놓고 이야기하게 되어 좀 웃긴데, 저는 사실 서재 이웃님이 한 평가는 도덕적 평가가 아니라 정치적 평가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양>이 비도덕적이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파국을 헤쳐나가겠다고 정치적 약자에게 특정한 이미지를 씌우고 부당한 의무를 부과하는 방법을 택한 정치적으로 치졸한 작품이라고 생각했지요. 딱 한번 읽고 이런 판단을 내린 게 섣부른 결론이라든가, 다른 기준으로 보면 <사양>은 훌륭한 점이 많다든가, 혹은 네가 책을 이렇게 저렇게 잘못 읽어서 네 잣대를 놓고 봐도 이 책은 그리 쓰레기가 아닐 수 있다든가, 그런 비판었다면 제가 아마 군소리없이 그렇군요- 했을 것 같아요. 나중에 다시 또 이 책을 읽고 제 견해가 바뀔 수도 있고......

최근에 김초엽과 문목하를 놓고 친구랑 이야기하다가 다시 느낀 건데, 정말 사람마다 책 읽는 방법은 다양하고 평가하는 잣대의 좌표나 크기도 다르더라구요.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이 쓰레기라고 말하고 싶다는 것은 제 개인적 견해입니다. 저는 그저 입 다물라는 소리 듣지 않고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싶지, 다른 독자들 역시 저처럼 이 책을 쓰레기로 봐주길 바라는 마음은 하나도 없어서요.

시대적 맥락을 읽어야 한다는 곰발님의 말씀에 당연히 동의합니다. 그러니까 제 말이 이렇게 길어지는 거겠죠....

곰곰생각하는발 2020-09-12 18:25   좋아요 5 | URL
아, 그렇다면 < 사양 > 에 대하여 어느 독자가 ˝ 페미니즘적 비평 ˝ 으로 이 작품을 독해했더니 선생이 패미니즘적 비평을 단순히 도덕적 잣대‘로 폄훼했다는 의미로군요 ? 그렇다면 그 선생이 ˝ 선생질 ˝ 을 한 거죠. 비평은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니깐 말이죠. 마르크스적 비평, 정신분석 비평, 페미니즘 비평 등등.... 제가 오해를 했습니다. 죄송.


+
저는 개인적으로 이 작품 << 사양 >> .. 아, 주인공 이름이 가물가물.. 하여튼 여성 주인공을 단순히 남성 작가의 판타지가 만든 인물이라기보다는 안타고니스트로서의 독립적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는 일본에 남자가 전멸했습니다. 젊은 남자는 전부 전쟁터에서 어마어마하게 죽었거든요. 당연히 결혼할 젊은 남성은 다 죽고, 마약중독이거나 늙은 남자밖에 없어ㅛㅆ죠. 남자는 여자와 결혼하기 쉬운 반면 여자는 결혼하기 힘들었죠. 그런 상황에서 여성 주인공은 유부남의 아이를 낳아 첩일망정 이 시대를 혁명하고 싶다는 결의를 합니다. 그냥 마냥 착한 여성(캔디형 인간)이 아닌 거죠. 오히려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서예지 같은 안타고니스트죠. 뭐, 그렇다는 소리입니다. 주말 잘 보내ㅣ십시오..

syo 2020-09-12 18:33   좋아요 2 | URL
곰발님이 이렇게 깔끔하게 한 줄로 정리하실 말을 전 한 바닥을 썼군요...ㅠㅠ
그렇게 말하고 싶었는데, 왜 그렇게 말하지 못했을까요;;

추적추적 비도 내리는데, 곰발님도 주말 잘 보내시고 코로나 조심하소서...

AgalmA 2020-09-12 22:5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비판적 서평을 썼다고 출판사가 실질적 제재를 취할 정도로 제가 느끼기엔 한국은 비판에 대해 1%도 용인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판매와 연결되는 비판에 대해서는 더욱 그럴 테지만, 비판이 악플이 되는 것도 한 끗 차이고, 비판과 악플의 기준도 각자 느끼기 나름이니 참 어렵죠.

각자 소양이 다르니 여러 감상 포인트가 나올 것이고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도 각자의 몫이겠죠. 그러나 자신이 옳다라는 걸 선점하고 말이든 글이든 휘두르진 말아야겠지요. 저도 누누히 명심해야 할 점이고요.

표현의 자유만큼 해석의 자유도 열어두면 좋겠습니다.

syo 2020-09-14 18:07   좋아요 0 | URL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데 참 어렵지요?
열심히 조심하고 살아야겠습니다.

2020-09-12 2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14 1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12 2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