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Game

 

 

1

 

별일 없이 또 하루를 살았다. 아픈 데는 없었지만 웃을 일도 없었다. 집 밖으론 나가지 않았다. 짐작건대 몸은 약해지고 있고 확신컨대 살은 찌고 있다. 단문을 쓰면 구슬퍼 보이지만 그건 기분 탓. 웃을 일도 없었지만 슬플 일도 없었다. 읽었고,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늘 그렇다. 읽는 일은 서두르고 쓰는 일은 미룬다. 보통 나라면 이쯤에서 바람이나 비 이야기를 꺼내겠지만, 뜬금없이 바다 이야기가 나오면 그야말로 syosyo한 거겠지만, 오늘은 그런 단어를 쓰지 말아야지. 여기까지 적어놓고 보니까 계속 구슬퍼 보이지만 그건 문장 탓. 점심 먹고 좀 더 읽어야지.

 

 

 

2



욕망과 공부." 캐서린이 한 번은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건 그것뿐이죠안 그래요?"

스토너가 보기에는 딱 맞는 말 같았다이것이 그가 살면서 터득한 것들 중 하나인 것 같았다.

존 윌리엄스스토너


욕망하지 않는 법을 욕망하던 시기를 통과하자 나는 부상병이 되어 있다. 이제는 있는 그대로 욕망을 인정하고 살게 되었는데, 사실은 욕망의 존재를 인정한 것이 아니라 욕망에 대한 패배를 인정한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요리보고 조리봐도 보통 사람이라 욕망의 아가리에 입마개를 채울 만한 역량이 없다는 사실에 대한 인정, 그러니까 결국 내 꼴리는 대로 하지 않고 살 수 있을 만큼의 자제력과 인내력이 부족하다고 자백하는 것인데, 그렇게 말하면 굉장히 없어 보이니까 그냥, 욕망을 인정하려고- 따위의 그럴싸한 문장을 훔쳐 와 찌라시를 뿌리고 프로파간다에 동참하고 있는 것 같다. 욕망이라는 것이 실제로 있었나? 내 안에 있었나? 내가 내 욕망을 마주 본 적이 있었던가? 나는 그저 욕망하는 나를 봤을 뿐이고 행동하는 나를 봤을 뿐인데. 내 뒤에 혹은 내 안에 욕망이라는 물건이 있어서 나를 개처럼 여기저기 끌고 다녔다는 식의 말은 확인된 사실인가? 그럼 나는 지금껏 무엇에 계속 지면서 여기에 도착한 것일까.

 

욕망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고, 그냥 욕망하는 내가 있었고, 나는 그런 나의 패배를 내뱉기 싫어서 존재하지도 않는 것의 승리를 말한 것도 같다. 왼손이 가위를 내고 오른손이 바위를 냈으니 오른손이 이겼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 왼손이 지고 내 오른손이 이길 동안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 오늘 하루 어떻게 지냈느냐고 묻는 말에, , 왼손이랑 오른손이 싸워서 오른손이 이겼어- 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농담과 자조를 하고 있는 것이지 실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별일 없이 그럭저럭 지냈어. 뭐 좀 심심했지. 이긴 욕망 같은 건 없다. 그냥 별일 없이 그럭저럭 지내는 나만 있다. 뭐 좀 심심한 나만이 존재한다.

 

그나저나, 욕망만큼이나 공부가 중요하다고 한다…….

 

 

 

--- 읽은 ---

 


128.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

이주윤 지음 / 드렁큰에디터 / 2020

 

이주윤 선생님. 유추해보건대 syo와 동갑. 인생에 대해 syo와 비슷한 견해(“청소년 시절에도 내 인생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성인이 되면서부터는 이때까지와는 차원이 다르게 팔자가 꼬인다는 느낌을 받았는데”)를 지니고 있음. 심지어 문장에 대한 관점(“모든 책에서 공통으로 조언하길, 말하듯이 쓰되 단문을 사용하라고 했다. 시키는 대로 글을 써보았다. 과연 쉽게 읽히기는 하였으나 경상도 남자의 일기장처럼 영 재미가 없었다. 버리자.”)은 마치 한 사람의 왼손과 오른손처럼 syo와 착 달라붙는, 재밌는 와중에 왠지 서글프고, 치열한 와중에 어쩐지 느른한,

 

syo는 이 선생님이 팔리는 작가가 되면 좋겠다.

 

 


129. 근육이 튼튼한 여자가 되고 싶어

이정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

 

[운동]

1. 사람이 몸을 단련하거나 건강을 위하여 몸을 움직이는 일.

2.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힘쓰는 일. 또는 그런 활동.

 

이정연 선생님은 운동으로 운동을 하고 계셨다. 남자의 운동은 그저 운동이지만, 여자의 운동은 그대로 운동이 되는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아서, 특히 근육 운동 장르에서는 아직도 넘어야 할 시선과 편견의 장벽이 거대한지라, 운동이 없을 수는 없을 듯. 운동을 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 바로 운동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퍽 재미있고 뜻하는 바도 크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말은 개인적 문제가 정치적 문제라는 뜻 이외에도, 묵묵히 해나가는 개인적 운동이 정치적 운동이 된다는 뜻이기도 한가 보다.

 

그나저나 알고 보니 세상에는 두 종류의 통장이 있는 것이었다. 금융통장과 근육통장. 종성만 다른 이 두 통장은 자본주의와 백세시대가 콜라보 된 이 자주 빡세고 종종 빡치는 빡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물건으로서, 둘 중 하나만 잔고가 간당거려도 인생사가 심히 고달파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 두 통장을 동시에 땅땅하게 배 불리는 일이 불가능은 아니지만 불가능과 호형호제하는 사이쯤은 되잖아. 그럼 일단 하나씩 처리해야겠는데, 내가 아무리 구르고 구른들 내 월급 주는 사람은 인사만 할 뿐 인상은 해주지 않는바, 그렇다면 당장 뭐부터 시작해야 되겠어?

 

하여 맘먹고 케틀벨을 사보았다. 근데 너무 무거운 걸 사버려서 들었다 놨다 빼고 뭘 제대로 하지를 못하는 서글픈 상황에 봉착. 스윙까지는 근력이 조금(거짓말) 더 필요할 듯하다. 운동하려고 케틀벨을 샀는데 케틀벨 하려고 운동을 할 판이다.

 

가끔 운동도 그냥 돈 주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뭐 임마? 하며 이정연 선생님이 케틀벨 들고 후드려패러 달려오시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130. 다소 곤란한 감정

김신식 지음 / 프시케의 숲 / 2020

 

제일 많이 든 생각은, 대체 여기에 마침표를 왜 찍느냐는 것이었다. 그 생각을 수도 없이 하느라 읽기의 흐름이 자꾸만 달아났다. 간결한 문장, 쉽게 와닿는 사유를 담은 책인데도 끝까지 읽어내는데 정말 오랜 시간과 공력이 들었다.

 

syo는 스스로 타인의 문체에 관대한 사람이라고 믿어왔다. 한 페이지를 세 문장으로 채우는 소설도 하하하, 마침표 하나 찍으면 한 권이 끝나는 소설도 허허허, 소위 ’,‘를 보이는 들로 가득 찬 문장도 호호호 넘길 줄 아는 호방한 독자였는데, , 마침표 이렇게 찍는 문장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 점들이 내 생각에 와서 쾅쾅 찍히는 바람에 나는 자꾸만 멈춰서 한숨을 쉬고……. 안 맞다, 나랑은 진짜 안 맞다…….

 

그럼에도 감정과 심정에 관한 사회학이라는 차림은 먹기에 썩 괜찮았다. 워낙 감정적인 인간이 돼놔서, 감정 때문에 곤란한 일이 다소를 초월한지 벌써 오래다. 부제에 매달린 섬세한이라는 수사가 적확한 것이, 내가 지나쳐온 감정에 대해서는 너무 날카롭게 와닿았고, 내가 모르는 감정에 대해서는 아, 그런 게 그런 거로구나- 하고 지나갈 수밖에 없을 만큼 뾰족한 핀포인트 조명을 던져 놓은 듯. 그러니까 요는, 패가 모 아니면 도뿐인데 마침표 때문에 쉴새 없이 뒷도가 몰아치는 윷놀이판 같은 책이었다고.

 

 

 

--- 읽는 ---

희망은 과거에서 온다 / 김진영

어느 괴짜 선생님의 수학사전 / 김용관

붕대 감기 / 윤이형

회사 밥맛 / 서귤

Chaeg 2020. 7. 8. / ()(월간지) 편집부

11미술 1교양 1 : 원시주의~낭만주의 / 서정욱

 

 

--- 갖춘 ---

한나 아렌트의 정치 강의 / 이진우

혁명의 거리에서 들뢰즈를 읽자 / 김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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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0-09-09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슬퍼 보이는 게 기분 탓 문장 탓이라니 다행이네요~
마침표가 대체 어디에 어떻게 찍혔길래..?? 궁금궁금

syo 2020-09-11 08:37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기회되면 한 번 읽어보세요. 써 놓고 보니 욕만 한 것 같지만 실은 괜찮은 책이었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09-09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글을 보니 제목에다 괜히 마침표 찍고 아무데나 ... . . 하는 스스로를 괜히 돌아보게 됩니다... 왜 이리 생각이 많으세요. 나도 괜히 생각이 많아질락말락아일락

syo 2020-09-11 08:35   좋아요 1 | URL
저 정도 잡생각은 멍때리다보면 슥-하고 하게 되는 거잖아요 ㅎㅎㅎㅎ 다른 때에 비해 특별히 생각이 많은 나날을 보내고 있지는 않습니다^-^

단발머리 2020-09-09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갖춘‘의 책이 ‘읽은‘으로 가는데는 어떤 메카니즘이 있을까요? 요기 위에 두 책의 리뷰도 엄청나게 궁금하거든요. 기다릴께요!

syo 2020-09-11 08:35   좋아요 0 | URL
너무 간단한 메커니즘이 있습니다. 바로 ‘읽는‘ 거죠..... 말은 간단하다.

얄라알라 2020-09-10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는 일은 서두르고 쓰는 일은 미룬다.˝
이 문장에 격하게 공감입니다!!

syo 2020-09-11 08:34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안 돼요, 그런 문장에 격하게 공감하시면 ㅎㅎㅎ

공쟝쟝 2020-09-10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문체에 대해 탐구한적은 없으나, 가리지 않고 골고루 잘먹는 것 같아요. ㅋㅋㅋ 곤란한 감정도 읽으면서 가독성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았으며 ㅋㅋㅋ (뚝뚝 끊겨서 한번에 안읽어지니까 어쩐지 더 생각하며 읽게 된다는 느낌이었어요) 섬세한 생각, 생각에서 한번 더 생각한 생각들이 좋았던 책이었어요.
생각해보니 나 문체 진짜 안보는 사람이었던게 제2의 성 을유로 읽으면서도 왜 잘 안읽히는지 눈치 못챘었다...

syo 2020-09-11 08:34   좋아요 1 | URL
아마 그렇게 읽으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었겠으나, 모든 독자가 저자의 생각대로 움직일 수는 없으니까요. 저도 뚝뚝 끊긴 자리에서 ‘생각‘을 하긴 했는데 그 생각이라는 게 ‘대체 왜 이렇게 계속 점을?‘ 하는데 그치고 말아버리니까 오히려 도움이 안 됐달까요. 작가가 독자를 위해 생각의 자리를 마련해줄 수는 있곘지만 생각의 형태까지 지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결국 그냥 저랑 안 맞는 책이었던 거죠.

그래도 쟝님 같은 독자가 있으니 작가님의 의도는 성공에 가깝지 않나 싶고.

하나 2020-09-10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케틀벨로 가기 전에는 세라밴드가 유용합니당 ㅋㅋㅋ 인터넷에서 이삼천원이면 사요. 일년동안 운동만 배웠을 때가 있었는데, 체력이 안되어서 세라밴드로 하는 스쿼트만 두달 정도 했더니 케틀벨도 되더라고요 ^^ (이렇게 일부에만 반응해도 되는 것도 Syo님 글쓰기 ㅋㅋ)

syo 2020-09-11 08:31   좋아요 1 | URL
세라밴드라는 것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뭘 사든 사 놓고 안 하는 건 똑같아서 ㅎㅎㅎ

2020-09-11 1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11 1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