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이들은 결국 으-른이 된다, 으흐흐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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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 멘데스Shawn Mendes의 <There’s Nothing Holdin’ Me Back>은 툭뚜룽뚱 툭뚜룽뚱 들을 때도 신나지만 어쩐지 부를 때야말로 쫙쫙 씹히는 맛이 있을 것 같은 구성이다. 발음만 까리하게 할 수 있다면.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노래이지만, 무슨 말인지 모를 음악은 듣지 않는다는 흥선대원군 스타일 문화예술정책을 굳건히 견지해 온 syo는 이런 곡이 나왔는지도 모른 채 부끄럽게 2년하고도 4개월을 살았다. JTBC의 <비긴 어게인>을 보다가 그 존재를 포착했는데 입에 자꾸 맴돌아 뜻 모를 노래를 예외적으로 연습하고 있다. 얼추 ‘널 향한 내 사랑은 낙장불입, 이젠 날 막을 순 없지’ 하는 이야긴 것 같은데 이쪽에서는 저런 낯 뜨거운 말을 할 나이가 한참 지나서 검색해보니 저 친구는 98년생이라고. 그럼 저 노래는 우리 나이로 스무 살에 불렀다는 말이 되는데, 과연 그럴싸하다. 스무 살의 syo 역시 사랑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으로 하루하루 살았다. 딱 하나, 사랑하는 사람 빼고는 모든 것이 갖춰져 있는 완벽한 사랑이었다. 와, 아련한데…….
아련한 기분으로 멘데스 젊은이가 최근엔 뭘 불렀나 찾아보다 <Señorita>라는 노래를 발견했다. 쩌는 라틴 음률로 한국을 들썩이게 만든 <Havana>라는 곡의 주인장 카밀라 카베요Camila Cabello와 함께 부른 노래인데, 뭐랄까, 역시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도 굉장히 야하다. 섹시의 수목한계선을 넘었다 말았다 한다. 섹시가 열대과일이라 치면 syo의 섹시는 바나나에서 끽해야 망고쯤인데, 얜 자꾸만 두리안을 멕이려고 한다. “Ooh, I should be runnin' Ooh, you keep me coming for ya” 하는 가사는 표면적 의미가 명확한데, 저 coming이 자꾸만 다른 뜻으로 들려. 얘네 둘이 노래를 그렇게 부른다. syo의 머릿속에서, 쟤네는 노래 부르면서 무슨 짓을 하고 있을 것만 같은데, 끝나면 깨끗이 안 치우고 그냥 갈 것 같아서 좌불안석이 된다. 검색을 때려보니, 와, 아니나 다를까 저 젊은이 둘은 목하 뜨거운 열애 중으로, 아무데서나 신나게 안고 물고 빨고 부럽다.
<Havana> 때는 카베요 양의 목소리가 이렇게 섹시한 줄 미처 알지 못했다. 그 노래는 오히려 헛, 허잇, 하며 이상한 추임새를 넣는 피쳐링 남자 랩퍼 목소리가 더 섹시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나저나 자기 사랑을 막고 있는 모든 방해물들을 걷어내 버릴 것처럼 덤벼들던 열정의 스무 살짜리는 올해, 자기 사랑이 입고 있는 모든 방해물들을 걷어내 버릴 것처럼 달겨드는 정열의 스물두 살짜리가 되었구나. 과연 그럴싸하다. 스물두 살의 syo 역시…… 히히히.
에헴.
사랑의 열정이 무방비한 상태에 빠져 있는 나를 격정적 행위로 나아가게 만든다면, 그것은 과도함 때문이다. 사랑이 욕망 자체는 아니지만 본질적으로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욕망을 낳으며, 이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사랑하는 사람의 기쁨은 고통으로 변한다.
사랑의 모순은 희망에 부푼 기대와 좌절에 대한 불안감 사이에서 발생한다. 나는 이미 정복당하고 싶은 복종, 눈뜨고 있는 맹목, 기꺼이 받아들이는 달콤한 순교의 상태에 와 있지만,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이것이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한계를 넘어서는 열정의 과도함은 사랑의 시련을 낳는다.
_ 주창윤, 『사랑의 인문학』, 86쪽
내가 막 하는 말이 아니라 배우신 분이 하시는 말씀이니까, 얘들아 새겨들어라. 엄한 30대 아저씨 부럽게 만들지 말고…….
2
금요일에는 저녁 7시 30분쯤, 독서실을 빡차고(오타 아님) 나왔다. 대한민국 공부 다 죽가라 그래- 하는 심정으로 버스를 타고 흐느적흐느적 중앙도서관으로 향했다. 신나게 서가를 뒤지고 있는데, 저쪽에서 누가 걸어온다. 뭐야, 저 되게 cyrus 닮은… cyrus네? 와, 뭐야, cyrus잖아. 난 또 cyrus인줄 알았네. 결국 우리가 이렇게 약속 없이 도서관에서 마주치는군요. 언젠가 한번은 이럴 줄 알았어요. 그렇지만 하필 바깥세상이 가장 흥청망청한다는 불금 저녁 8시에 그지 같은 꼬락서니로 중앙도서관 종합자료실에서 만나다니, 대체 우린 뭐고 지금 이 기분은 뭐죠? 눈가에 맺힌 그 물은 다 뭐죠? 땀인가요? 그러지 말고 이렇게 만났으니 냉라면이나 먹으러 갑시다. 제가 살게요. 제게 지금 이 꼴을 하고 시내 한복판을 가로지르라는 건가요? 한껏 부리고 온 중생들이 오뇌의 무도를 추고 있을 저 밤의 동성로를요? 딱 도서관 다니기 적합한 복장인데 뭘 그래요. 제가 인적이 가장 드문 경로로 안내할 테니, 자 어서 가시죠. 정 그러시다면, 가시죠. 냉라면에 맥주 한 잔 하시죠. 가시죠. 가시죠.
그렇게 가셨다. 냉라면도 맛있고, 백만 년 만에 마신 맥주 한잔도 맛있고, 와사비맛 프레첼도 참 맛있었다. 다 좋았다. 막상 가게에 도착하자, cyrus님이 유리문 손잡이 쪽이 아니라 경첩 쪽을 밀면서, 응? 닫혔나? 하긴 했지만 그것도 좋았다. 여러분, 저 리뷰 기계는 사실 허당입니다. 허당이에요. 책 이야기 할 때만 머신 같지, 주말이면 시골 산에 나물 캐러 다니는 건실한 청년입니다. 부디 어려워 마소서.
사람들도 저마다 다른 온도와 습도의 기후대와 문화를 품은 다른 나라 같아서,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외국을 여행하는 것처럼 흥미로운 경험을 준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유행어에도 진실이 아주 없지 않지만, 내 생각에 타인만 한 토털 엔터테인먼트도 없다. 자기만의 세계관, 음악 취향, 관심사와 말솜씨, 표정과 몸짓, 신념과 상상력, 농담의 방식… 이런 요소들은 그 사람 고유의 분위기와 매력을 형성한다. 물론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여행자의 예의를 품을 때, 내가 갖지 못한 아름다움을 목격할 수 있을 거다.
_ 김하나, 황선우,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23-24쪽
3
내 친구들은 나더러 연민과 후회의 진창 속에서 뒹군다고 한다. 더 이상 교제도 하지 않는다면서. 나는 웃을 때 나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가린다.
_ 루시아 벌린, 「청소부 매뉴얼」
표제작까지 읽고 나니, 사람들의 어쩐지 떨떠름한 반응을 이해할 것도 같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들이 파편적인 것 같고, 서술이 산만한 것 같고, 전체적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선명하지 않다면 그것은 구성의 문제도 있지만 아마 저런 문장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1. 친구들이 비난한다. 2. 나는 웃을 뿐이다. 3. 나는 웃을 때 나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가린다. 사이에서 2를 과감히 잘라내 버린다. 2를 잘라버림으로써 1이 선명해지고, 3이 농후해진다. 그런데 1-2-3에서 2를 잘라내는 정도는 어떻게든 알아채지만, 1-2-3-4-5에서 2-3-4를 들어내면 독자는 혼란스럽다. 뭐지, 내가 뭘 놓친 거지?
맞다. 나는 뭔가를 놓쳤다. 그런데 그것은 어차피 나더러 채우라고 작가가 비워둔 공간인 듯하다. 번거로운 숙제를 내는 작가로군.
--- 읽은 ---
+ 까대기 / 이종철 : ~ 283
+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 / 위근우 : 84 ~ 288
+ 은는이가 / 정끝별 : 53 ~ 123
--- 읽는 ---
= 청소부 매뉴얼 / 루시아 벌린 : 45 ~ 89
= 여보, 나 좀 도와줘 / 노무현 : ~ 50
= 이것이 실전 회계다 / 김수헌, 이재홍 : ~ 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