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용사 형용사람 형용사랑
1
겐지는 소녀와 소녀 주변의 완고한 수행원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비록 이른 나이에 혼인이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이 열 살짜리 소녀는 그 나이치고 아직 미성숙하다고 그녀의 수행원들은 주장했다. 그들은 그가 요구한 대로 시를 그녀에게 전해주기는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녀가 아직 시를 짓는 법을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이 점은 나이에 비해 그녀가 정말로 아직 미성숙하다는 표식임을 겐지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시를 지을 줄 모르는 소녀는 사랑을 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145)
_ 마틴 푸크너, 『글이 만든 세계』
지루함과 고루함을 참아가며 겐지 이야기를 한 권씩 읽어가던 시절이 떠오른다. 내가 이걸 왜 읽고 앉았느냐는 회의감과 끝없이 싸워나가야 했던 긴 시간이었다. 마침내 10권을 끝냈을 때, 너무나도 기뻤다. 11권이 없다는 사실이. 그게 다, syo가 어리고 철이 없어서였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시를 지을 줄 모르는 소녀는 사랑을 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라는 문장이 그리는 세상은 좀 아름다운 것 같다. 진짜로 지루한 작품이건 아니건 간에, 어쨌든 그 10권의 책 속에는 무시하기 쉽지 않은 양의 아름다움이 (syo에게 무시된 채로) 있었을 것이라고, 주인공과 작가의 이름 말고는 기억나는 게 1도 없는 오늘날은 생각해본다.
직후 오랫동안 딸을 방치해온 소녀의 아버지가 소녀를 겐지가 손을 뻗을 수 없는 곳으로 데려가려고 한다는 소식을 듣고, 겐지는 지금은 발 빠르게 대처할 때라는 것을 알았다. 어떤 구실을 들어서 그는 소녀의 거처로 달려갔다. 이번에는 모든 관습과 예법을 팽개쳐버리고, 경악한 소녀의 수행원들의 비명 따위는 무시한 채로 발과 장막, 병풍을 밀어제치고 규방으로 쳐들어갔다. 소녀는 잠을 자고 있었지만 겐지는 소녀를 품에 안은 다음 소녀가 잠에서 깨는 기척을 보이자 가만히 어르고는 자신의 마차에 태워 가버렸다. 그가 보기에는 이 모든 일은 그녀가 잘 되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집에서 소녀를 보살피고 그녀에게 걸맞은 수행원들과 앞날을 제공할 수 있으리라. 또 명백히 방치되어온 그녀의 교육을 겐지가 직접 책임질 수도 있을 턴이니 교육을 통해서 소녀는 제대로 된 숙녀가 될 수 있으리라.
(나를 포함한) 많은 독자들에게 이 도입부는 굉장히 불편하다. 그녀의 아버지의 뜻에 반하여 열 살짜리 소녀를 납치하는 설정은 건전한 관계를 위한 훌륭한 처방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무라사키 시키부의 초기 독자들은 다르게 반응했다. 그들은 남자 연인이 열 살짜리 소녀를 납치한 데에 살짝 충격을 받을 수는 있지만 그러한 행위를 가능하게 했던 더 넓은 차원의 혼인제도에 관해서는 비난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여러 가지 결점들에도 불구하고 히카루 겐지에게 감탄하며 그가 성숙해가는 과정을 칭찬했다. (145-146)
_ 같은 책
그리고 그 아름다운 세상은 저런 세상이기도 했다. 이런 시빌세기(11C).
2
신부님은 나에게 어떤 기도문을 외라고 했다. 내가 그 기도문을 모르므로 신부님은 그것을 내게 불러주었고, 나는 신부님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에 대해 통탄할 만큼 미안해하며 그것을 따라 했다. 그런 다음 신부님은 내 죄가 무엇인지 물었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정말로 진실로 고백할 죄가 없었다. 하나도 없었다. 나는 고백할 죄가 없어서 너무 부끄러웠다. 물론 뭐라도 생각해낼 수 있을 것이다. 얘야, 네 마음속을 깊이 살펴보거라……. 아무것도 안 보였다. 신부님을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나는 필사적으로 하나를 지어냈다. 내 여동생을 헤어브러시로 때렸다고 했다. 네 동생을 질투하느냐? 네, 그럼요, 신부님. 질투는 죄란다, 얘야, 그 죄를 없애기 위해 기도해. 성모송 세 번 외거라. 나는 무릎 꿇고 기도하면서 고해성사가 짧았다는 것을 깨닫고 다음번에는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번은 없었다. 그날 방과 후 세실리아 수녀님이 나를 붙들어놓았다. 그 상황이 더 유감스러웠던 건 수녀님이 매우 친절하다는 점이었다. 수녀님은 내가 얼마나 가톨릭의 성사聖事와 성체聖體를 체험하고 싶어 하는지 알고 있었다. 성체, 맞아요! 하지만 나는 개신교인 데다 세례도 견진성사도 받지 않았다. 그렇지만 착하고 온순한 학생이기 때문에 이 학교에 다니도록 허락을 받았으며, 그래서 수녀님은, 기쁘지만 내가 교회 의식에 참여할 수 없다고 했다. 다른 아이들과 운동장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두려운 생각이 들어 성인聖人 카드 네 장을 꺼냈다. 학생들은 읽기나 산수에서 만점을 받을 때마다 별 한 개를 받았다. 그리고 금요일마다 그 주에 가장 많은 별을 받은 학생은 성인 카드를 받았다. 야구 카드와 비슷하지만 성인의 후광에는 야구 카드에는 없는 반짝이가 붙어 있었다. 성인 카드는 가지고 있어도 돼요? 나는 괴로운 심정으로 물었다.
_ 루시아 벌린, 「별과 성인」
읽기도 전부터 이 책이 어떨 것이라 예상케 만드는 요인들이 꽤 있었다. 에드워드 호퍼 풍의 적막한 표지나 작가가 사후에야 재발견되어 인정받고 있다는 쓸쓸한 사연 같은 것들. 누구의 인생이라고 막 순탄하겠느냐마는, 책날개에 언급된 작가의 생을 보면, ‘세 번의 실패한 결혼’, ‘알코올 중독’, ‘싱글맘으로 네 아들을 부양’, ‘평생 시달리던 척추옆굽음증으로 허파에 천공이 생겨 산소호흡기를 달고’, ‘암으로 투병하다 사망’, 이런 독하고 쓰린 이력이 잔뜩이다. 그런 벌린이 자기 삶을 기반으로 하여 써 낸 짧은 이야기들의 모음이라 하니, 이 책의 첫 페이지에 손가락을 올린 syo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침 한번 꼴깍 삼키고, 최대한 진지하고 웅숭깊은 눈알을 장착한 채 페이지를 열었는데,
뜻밖에 웃기고 너무나 귀여운 구석이 있어서 좋다. “성인 카드는 가지고 있어도 돼요?”라는 대사는 요즘 자주 사용하는 그렁그렁 ‘그렁이’ 이모지를 떠오르게 한다.
그렁이
그렁이 구글버전
3
사랑에는 형용사가 필요하지 않다. (361)
_ 주창윤, 『사랑의 인문학』
요즘 가장 사랑스러운 품사는 형용사다. 정확히 말하면 형용하는 문장이겠다. 정확히 말하고 보니 형용사랑은 좀 다르네. 그렇지만 저 문장이 건네고 싶어 하는 사랑의 규범은 품사로서의 형용사를 말하기보다는 형용하는 행위 자체를 일컫는 것 같다. 그렇다면 형용사라는 호명에 형용하는 문장이 대답하는 것도 크게 잘못된 일이 아닐지도.
무언가를 형용하는 일에는 품이 많이 들어간다. 오래 보아야 하고, 오래 궁굴려야 한다. 오래 보아야 아름답다는 말을 들을 때면 늘 생각한다. 오래 보고 나서도 ‘아름답다’는 추상적이고 몰개성적인 말밖에 하지 못하는 오래봄이 진짜 오래봄일까를. 아름다워 보일 때까지 오래 보는 것과 형용하려는 마음으로 오래 보는 것은 조금도 같지 않다. 세상에 없는, 최소한 이미 내가 만들어 놓은 문장 사전 안에는 등재되어 있지 않은 새롭고 더 적확한 문장을 찾아내 당신을 형용하고야 말겠다는 욕심이 더 깊게, 더 두루두루 당신을 보게 한다. 그런 오래봄은 사랑 없이는 불가능하므로 사랑의 자식이지만, 동시에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사랑을 가능케 하므로 사랑의 부모다.
사랑에는 형용사가 필요하다.
어떤 사랑에는 1일 1형용사가 필요하다.
--- 읽은 ---
+ 사랑의 인문학 / 주창윤 : ~ 379
+ 우리말 강화 / 최경봉 : 177 ~ 335
--- 읽는 ---
= 글이 만든 세계 / 마틴 푸크너 : 148 ~ 224
=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 / 위근우 : ~ 84
= 은는이가 / 정끝별 : ~ 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