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각

 

 

1

 

비가 대차게 온다고 했다. 비어 있을 집이 걱정되어 죽을 뻔했는데, 매미가 울고 새들이 지저귀고 심지어 야구도 한다.


三은 오송이라는 곳으로 내려갔다. 주말에 가끔 온다고 한다. 


그동안 '남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사랑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다음 이 시간부터는 'syo 혼자 산다'가 방영됩니다.

 


 

2

 

모처럼 편히 쉬는 주말이라 찬찬히 나를 한번 돌아보았다. 써놓은 글이 있다는 것은 이럴 때 유용하다. 작년의 syo와 재작년의 나와 그 이전의 기록된 모든 syo는 지금보다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웃을 줄 아는 기특한 녀석이었다. 팔 할이 자조였지만 어쨌든 웃을 땐 진짜 웃었고 웃거나 웃기거나 웃게 만들거나 웃기게 만들면서 뭔가를,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있었던 어떤 허방이나 그늘 같은 미끄럽고 어두운 것들을 요리조리 회피하며 비교적 행복하게 살아내는 모습이었다. 2020syo2019syo를 부러워할 줄을 2019syo는 전혀 알지 못했다. 2019syo는 자기가 최악의 syo라고 생각했었는데, 현재가 최악의 지점인지 아닌지는 객관적인 상황만 놓고 판정할 수 없는 문제였던 듯하다. 아무래도 슬픔이나 우울 같은 것들을 버텨낼 수 있는 마음의 힘 같은 것이 줄어든 모양이다. 그러니까 불행 체감의 수식 같은 게 있다면, 분자는 줄어들었지만, 분모가 더 크게 줄어드는 바람에 결국 더욱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2020syo는 도통, 웃는 글을 쓰지 않는다. 쓰지 못한다.

 



무수한 과거가 우리에게 들어왔다가 사라져간다다만 그 안 어딘가에 다이아몬드처럼 소비되기를 거부하는 파편들이 존재할 뿐이다용기를 내어 그것들을 수집한다면 우리는 진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임스 설터스포츠와 여가

 

 

 

3

 

그렇게 한다면 물론 기쁨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쁨의 뒤꿈치에 슬픔이 붙어올 것이다. 그리고 이후로 오랫동안 슬픔만이 있을 것이다.

 

 

 

--- 읽은 ---

 


93. 타인은 놀랄 만큼 당신에게 관심 없다

이종훈 지음 / JUNO 그림 / 성안당 / 2020

 

재기가 넘친다. 그런데 고르지 않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어떤 것일지 늘 고민하게 된다. 성게는 뾰족한 데가 있어 놀라게 하지만, 굴려보면 공처럼 잘 굴러가지는 않는다. 누구든 한번 찔리면 나를 확 느끼게 만드는 뾰족함과, 읽는 이를 멀리까지 굴러가게 만드는 둥긂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중요한 걸까.

 

 

 

--- 읽는 ---

사람, 장소, 환대 / 김현경

에티카를 읽는다 / 스티븐 내들러

섹슈얼리티의 매춘화 / 캐슬린 배리

논어를 읽다 / 양자오

스토너 / 존 윌리엄스

혼밥생활자의 책장 / 김다은

스피노자 매뉴얼 / 피에르-프랑수아 모로

산소리 / 가와바타 야스나리

이제야 어디에 힘을 빼야 하는지 알았습니다 / 안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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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0-08-01 2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니체도 그렇고 흄도 그렇고 아마도 스피노자도 그랬을 것으로 짐작되는데요, 철학자들은 대게 모두 세상이 아닌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들여다고 고심하고 분석하여 세상 원리를 파악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여름 휴가 안 가세요.^^

syo 2020-08-01 23:25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비가 주룩주룩 오네요. 독서하기 좋은 날인 듯합니다. 저는 이런저런 사정을 겪는 중인데, 북다님은 휴가 안 가시나요 ㅎ

페넬로페 2020-08-01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어떡해요~~
삼 님이 그리워서요^^
한 번씩 소식 전해주세요**
앞으로 혼자 사는 syo님의 사연도 기대합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제가 책에는 1도
관심없는 사람처럼 보이네요 ㅎㅎ
책얘기도요~~

syo 2020-08-01 23:26   좋아요 0 | URL
삼놈은 어디서나 빈둥빈둥 잘 살겁니다. 간혹 안부 전할게요 ㅎ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0-08-01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쁘고 웃을 일이 많이 생기길 빌어요. 뒤꿈치에 붙은 슬픔은 그 발바닥 미는 돌로 갈아 버리고 다른 기쁨 찾아 나서면 되지.

syo 2020-08-01 23:27   좋아요 1 | URL
늘 고맙습니다 ㅎㅎ 슬픔이란 것이 쓱싹 갈아지는 것도 아니고 기쁨이 또 뚝딱 찾아지는 것도 아니라서 서글프네요...

모운 2020-08-01 22: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2020년 절반 이상 사용해서 반품이 안 된대

syo 2020-08-01 23:28   좋아요 1 | URL
중고나라에 올려야겟네

페크pek0501 2020-08-02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 장소, 환대 / 김현경, 이 책을 여기서도 보네요. 좋은 책은 발 없는 소문을 몰고 다니나 보네요.

글이 뜸하신 적이 있어 바쁘신 일이 있나, 했습니다.

syo 2020-08-02 13:45   좋아요 1 | URL
말 그대로 일이 바쁘더라구요....

사람 장소 환대는 지금 몇 페이지 안 읽었는데도 굉장히 좋습니다 ㅎㅎ 아직 독서 전이시라면 권합니다^-^
 

 

쌍칼



우리가 여성은 억압과 전유의 대상이라는 것을 발견했을 때 바로 그 순간에 우리는 추상화의 작동을 통해 인식할 수 있는 주체라는 의미에서 주체가 된다억압에 대한 인식은 억압에 대한 반응(대항해서 싸우는)일 뿐만 아니라 사회와 세계의 개념을 전체적으로 재평가하고억압의 관점에서부터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내 전체를 재조직화하는 것이기도 하다나는 이것을 억압받는 자에 의해 만들어진 억압의 과학이라고 부른다현실을 이해하는 작업은 우리 모두가 수행해야만 한다이것을 주체적인인식적인 실천이라고 부르자현실 층위 사이를 오가는 운동(억압의 개념적 현실과 물질적 현실은 둘 다 사회적 현실들이다)은 언어를 통해 완수된다.

모니크 위티그모니크 위티그의 스트레이트 마인드, 72-73

 

syo는 우리가 서로 말이 통한다는 사실이 제일 신기하다. 찰떡같이 말했을 때 개떡같이 알아듣는 일, 혹은 그 반대의 일은 하나도 신기하지 않다. 찰떡같이 말했더니 찰떡을, 개떡같이 말했더니 개떡을 내밀 때, 그때가 바로 놀라야 할 때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중 완전히 같은 언어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모든 단어는 특정한 뜻이 없다. 마치 원자핵 주변에 있는 전자의 위치를 확률값의 구름으로만 짐작할 수 있듯, 모든 단어는 정해져 있지 않은 모호한 의미의 덩어리다. 단지 어떤 시간, 장소, 정황, 발화자의 감정, 청자의 상상력, 발화자와 청자 사이에 쌓여있는 역사,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회의 역사, 문화적 좌표 뭐 이런 것들이 뒤섞이면서 한 순간 특정한 의미를 획득하는 것이고, 그 순간이 지나면 다시 의미는 구름처럼 흩어져 버린다. 후려치면, 맥락에 따라 단어의 의미나 뉘앙스가 다를 수 있다- 수준에서 끝날 이야기같지만, 이것은 심각한 문제다.

 

모든 단어의 의미는 사회적 산물이다. 그리고 단어의 의미를 조정하는 것은 단지 시간의 흐름만은 아니다. 내가 펩시콜라에 대해 코카콜라가 없을 때 어쩔 수 없이 마시는 것이라는 관념을 지니고 있다면, 직접적으로 그런 생각을 드러내지 않고 최대한 중립적으로(사용한다고 착각하면서) ‘펩시라는 단어를 쓰더라도, 내가 속한 언어의 장에서 펩시라는 단어의 위상이 조금은 변한다. 태평양 바다에 민물 한 스푼을 부어 넣는 수준이겠으나, 분명히 변한다. 촘촘히 쳐진 거미줄에 매인 이슬처럼, 단어는 늘 흔들리고 불안하다. 모든 언어는 그렇다. 그것들은 하나의 거대한 수프 같은 것이어서, 사용자들의 관념을, 태도를, 그리고 무의식을 반영한다.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가 무의식을 언어처럼 구조화한다면 우리가 언어를 구조화할 때 무의식의 손을 빌리지 말라는 법도 없다.

 

모든 단어는 중립적이지 않다. 단어의 의미는 사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의식과 무의식의 총합에다가 사용자의 언어 권력을 곱한 가중평균값의 위치쯤에 있을 것이다. ‘여성이라는 단어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무언가를 지시하지 않는다. ‘여성이란 무엇이고, 무엇이 되어야 하고, 그러나 지금은 무엇이 되어있지 못하고, 그리하여 이건 여성이고 저건 여성이 아니고- 와 같은 개인적 견해들의 뭉텅이에 그들의 사회 언어적 권력의 크기를 곱한 다음 사용자의 총수로 나눈 어느 자리에, ‘여성이라는 단어의 사회적 의미가 존재한다.

 

내가 사용하는 여성이라는 단어는 내 개인적 견해의 산물이므로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여성이라는 단어와 미세하게 다를 수밖에 없는데, 앞서 산출한 여성이라는 단어의 사회적의미는 거대한 질량(권력)을 앞세워 개개인이 사용하는 작은 질량의 여성이라는 단어를 자신의 위치로 맹렬하게 끌어당긴다. 지구의 중력이 사과를 끌어당기듯이. 아무 생각 없으면, 당하는 것이다.

 

우리가 여성을 표현하는데 여성이라는 단어를 빌려 쓰는 이상, 우리는 여성이라는 단어에 덧씌워지는 의미의 거대한 수작으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가 없다. ‘여성 신화여성 신화라고 표기하는 이상, 이것은 여성이라는 언어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여성이라는 단어가 뒤집어쓴 여성 신화를 해체하고 그것을 여성의 바깥으로 끄집어내야 한다.

 

모니크 위티그는 여성자체를 탈출하는 전략을 취하는데,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 도리어 손쉬운 일이다. ‘여성이라는 범주는 이미 너무 오랜 세월 오물을 뒤집어 쓴 채 사용되어 왔고, 심지어 그 쓰레기 의미들은 자연적인 것으로까지 숭배받는다. 뒤집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일단 빠져나와서 싸우자는 것이다. 주체로. 주체로서. 여성을 완전히 버리는 것은 아니다. 계급으로서의 여성은 여전히 우리가 손에 쥐고 싸울만한 무기라는 것이다. 모든 존재를 사회적 존재로 파악하는 유물론의 인식은, ‘여성이 자연적인 것도, 신화적인 것도 아니라 사회적, 정치경제적인 위치(계급)로부터 만들어진 산물이라는 통찰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조력자이므로. 그러니까 위티그는, 왼손에 주체, 오른손에 계급을 들고 여성을 여성으로부터 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곳에서 우리를 억압하는 성 범주 그 자체로부터 우리 자신을 구하자는 것이다.

 

유물론적 용어로 개별 주체를 정의하는 역사적인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다유물론과 주체성은 언제나 상호 배타적이었기 때문에이 임무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그런데도 이해를 포기하는 대신에 우리는 다수가 '여성신화(우리를 지탱하는 덫일 뿐인 여성이라는 신화)를 포기함으로써 주체성에 도달해야만 하는 필요를 인식해야 한다모두가 계급의 구성원으로서뿐 아니라 개인으로서 존재해야 하는 실질적 필요성은 혁명 성취의 첫 번째 조건일 것이다그것이 없이는진짜 싸움 혹은 변화는 없다.

  그러나 반대 역시 진짜다계급과 계급의식 없이는진짜 주체는 없다소외된 개인들만이 있을 뿐이다여성이 유물론적 용어로 개별 주체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첫 번째로 할 일은 레즈비언들과 페미니스트들이 한 것처럼 '주체적인', '개별적인', '사적인문제가 실제로는 사회적인 문제계급 문제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섹슈얼리티는 여성 개인이나 주체의 표현을 위한 것이 아니라 폭력의 사회적 제도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그러나 우리가 일단 소위 모든 사적인 문제가 계급 문제라는 것을 보여 주더라도우리에게는 여전히 개별 여성 주체의 문제가 남는다신화가 아니라 우리 각자이 지점에서 인류를 위한 새롭고 개인적이며 주체적인 정의가 성 범주(여성과 남성)을 넘어서만 발견될 수 있다고 해 보자그리고 개별적인 주체의 등장은 성 범주를 파괴하는 것성 범주의 사용을 중지하고그 범주를 그들의 토대로 사용하는 모든 과학(실질적으로 모든 사회과학)을 거부하는 것부터 요청한다.

같은 책, 73-74


그래서 이것은 인식의 싸움인 동시에 언어의 싸움이다. 그 두 가지는 분리되지 않는다. 역사상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강자들은 의식적/무의식적으로 늘 그것을 이용해 왔다. 언어를 통해 관념을 조작하고, 관념을 통해 언어를 바꾸면서.


 

 

--- 읽은 ---



91.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박상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

 

봉곤이의 문장이 개인적으로 더 좋았지만, 사람은 어쩐지 상영이다(귀엽잖아). 봉곤이는 잃었지만, 제발 상영이만큼은 이런저런 모습으로 영원히 내 옆에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92. 라이프니츠가 들려주는 모나드 이야기

김익현 지음 / 자음과모음 / 2008

 

아직까지도 syo는 모나드가 제일 어렵다. 왜 이렇게 개소리 같은지 모르겠다. 내가 기묘하기가 세상에 짝이 없다는 양자역학도 하나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부드럽게 쓱 받아들인 사람인데, 모나드 이것만큼은 진짜 뭔가 싶다.

 

 


--- 읽는 ---

모니크 위티그의 스트레이트 마인드 / 모니크 위티그

마르크스 철학 연습 / 한형식

타인은 놀랄 만큼 당신에게 관심 없다 / 이종훈

90년생이 온다 / 임홍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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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20-07-26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각 잡고 제대로 쓰신 글인듯 합니다...^^

syo 2020-07-26 10:18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 마감(?)에 치여서 후다닥 쓰고 말았습니다...^-^

다락방 2020-07-26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좋은데요?

syo 2020-07-26 10:18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이제 100쪽 읽음...

라로 2020-07-26 07: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상영 작가의 책을 미리보기로 읽었는데,,,토비 님의 글을 읽는 듯한? 근데 토비 님 글보다 약간 모자르는 느낌? (진심) 그래도 재밌네요.^^

syo 2020-07-26 10:19   좋아요 0 | URL
그럴 리가! 상영이 얼마나 잘 쓰는데요.... ㅎㅎㅎㅎ

2020-07-26 1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07-26 0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오 빨간 책 사면 뒷면에 해제-하고서 붙어 있는 글이군요. 짝짝짝짝

syo 2020-07-26 10:20   좋아요 1 | URL
그러고 다음 챕터를 읽었더니, 제가 완전 딴소리를 하고 있던 것이더라구요....

반유행열반인 2020-07-26 10:2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아무렴 어때. 이 글은 책 표지 감춰도 그 자체로 읽는 맛+유익함 잔뜩이었습니다.

단발머리 2020-07-26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은데요. 엄지척! 척척척!!!

syo 2020-07-26 10:20   좋아요 0 | URL
바로 다음챕터에서 혼 남....

수이 2020-07-26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쇼 언니가 더 좋아지는 글입니다. 실로 감탄. 아침부터 뇌가 즐거워지는.

syo 2020-07-26 10:21   좋아요 0 | URL
밤에 쓴 편지 같다, 아침에 읽어보니까 저렇게까지 단정적으로 깝칠 일이었나 싶네요....

비연 2020-07-26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뤠잇!

syo 2020-07-26 10:21   좋아요 0 | URL
왜 다들 여기서 출첵을 하죠? ㅋㅋㅋㅋㅋㅋ

AgalmA 2020-07-26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내 작가에 관심을 더 가지려는 시기에 나타난 봉곤과 상영 제게서 다 안타깝게 점수를 잃어서 저는 맘 편한 해외 작가로 다시 ㅜㅜgogo
그런데 코카콜라와 펩시 맛을 구분 못 한다는 게 저는 이해가 안 됩니다. 김 빠진 상태라면 몰라도 펩시는 코카콜라보다 좀 싱거운 게 분명 느껴지는데...

syo 2020-07-26 14:13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상영이 봉곤이를 다 잃으셨군요. 슬픔.....
콜라사랑 27년차로 접어드네요.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의 맛은 명확하게 구분이 됩니다. 김 빠진 상태에서조차 그 두 콜라는 맛 자체가 다른데요.

공쟝쟝 2020-07-28 2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봉곤찡.... 왜그랫졍....
 


 

바람 속에서 제비가 높게 날았다. 흐린 가운데 대기가 투명해 멀리 앉은 산이 진한 녹색이었다. 그 녹색을 에두르며 솟아오른 아파트들은 지나치게 하얗고 날카로와 마치 지구의 뼛조각 같아 보였다. 구름이 달리는 속도가 예사롭지 않았다. 옥상은 소리로 가득 차 있어서 바람 안에서 숨 쉴 때마다 위태로움을 마시는 기분이었다. 숲이 몸을 흔든다. 옆집 빨래건조대가 뒹군다. 앞집 옥상에 늘 있던 성격 나쁜 강아지는 어디론가 치워졌다. 시끄러우니까 없어졌으면, 하고 나쁜 마음을 품은 적이 있다. 맑은 날이었다. 사람은 맑은 날 나쁜 마음을 품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오늘은 흐리고, 곧 다시 비가 올 것만 같고, 옥상에 올라오는 계단에는 아직 채 마르지 않은 보라색 나팔꽃들이 분분히 흩어져 있다. 어제를 견디지 못하고 옆집 옥상으로부터 날아든 모양이다. 내다보니 아직 꽤 많은 꽃이 잘 매달려 있다. 위태롭되 싱싱하다. 늘 그렇다. 바람이 크게 일면, 줄기를 부여잡는 힘이 약한 녀석들은 바람에 몸을 맡긴다. 그러나 바람은 한 번도 꽃잎에 친절한 적이 없다. 꽃잎도 바람의 진심을 알고 있다. 그러니 이것을 바람에 몸을 맡긴다-고 이르기보다는 바람에 멱살을 잡혀 내동댕이쳐진다-고 표현하는 게 낫다. 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줄기는 알게 된다. 꼭 닮은 무수한 꽃 가운데 어느 놈이 줄기에 더 적합한 놈인지를. 꽃도 알게 된다. 나는 줄기와 하나가 아니었구나, 그저 줄기에 얹혀 있던 것이었구나, 이 모든 게 바람이 크게 불면 들통날 짧은 거짓말이었구나, 그랬구나, 그랬구나. 그러니 이제는 더 높은 곳으로, 그러니 이제라도 더 먼 곳으로, 조금만 더, 한 번만 더, 다시 한 번 더…….

 

 

 

--- 읽은 ---

 


90. 스포츠와 여가

제임스 설터 지음 / 김남주 옮김 / 마음산책 / 2015

 

관능의 기억으로만 남는 사랑이 있을까. 관념과 섞이지 않은 관능은 섹시하지 않고 기억 속에서 오래 되풀이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나를 안았을 때, 내가 그 사람을 안았을 때, 그 두 가지를 서로 구분할 수 없었을 때, 그때 그 순간 말고 그 순간을 둘러싼 많은 일들과 그 일들을 둘러싼 많은 감정들과 그 감정들을 둘러싼 많은 제약 조건들과 그 조건들로 둘러싸인 중에서도 늘 펄떡펄떡 뛰놀았던 감정들, 사건들, 그런 것들이 다 함께 녹아있는 안에서 지나간 관능들은 섹시하다. 나는 아직도 내 치골을 오래 강하게 찍어누르는 어떤 꼬리뼈의 감각이라든지 내 얼굴에서 다른 얼굴로 줄지어 떨어지던 땀방울의 온도 같은 것들을 종종 떠올리는데, 그것은 그 관능의 장면이 관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능의 뒤에, 관능과 관능의 사이에, 그것은 있다. 스포츠처럼, 여가처럼, 무엇과 무엇의 사이에서, 더 아름답게 해 주는.

 

 


91. 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0

 

여리다는 것. 결국 무시할 수 없다는 것. 내 안에다 벽을 들여놓고 내 안에서 길을 찾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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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07-24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좋아요 먼저 누르고!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저 로또 살까요? 토비 님의 글에 제가 일빠로 좋아요하고 댓글 쓰다니!!!ㅎㅎㅎㅎ)

라로 2020-07-24 12:31   좋아요 0 | URL
음,,,,댓글과 좋아요를 먼저 한 후 글을 자세히 읽으니 저런 댓글 단 것 후회되고,,,로또는 무슨...ㅠㅠ 너무 반가와서 저랬나보다,,그렇게 생각해줘요,,그랬으니까.

syo 2020-07-24 12:31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 라로님 반가워요. ‘라로‘라는 두 글자만으로 딱 위안과 위로가 됩니다 ㅎㅎ

추풍오장원 2020-07-24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강아지 성격 정말 고약한 친구였나 봅니다.다른데 갔을까요?

syo 2020-07-26 00:15   좋아요 0 | URL
최근에 복날이 있었다는 것이 힌트가 되려나 했으나, 오늘부터 다시 짖기 시작했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07-25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작년에 스포츠와 여가를 읽었는데 등장인물이 몇 번 하나(뭘...)세어봤던 기억이 나네요.

syo 2020-07-26 00:16   좋아요 1 | URL
몇 번 하던가요? 적잖게 하긴 하던데.....

2020-07-26 07: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26 1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26 1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루스트의 마들렌과 syo의 정수리와 흐르는 의식의 시궁창

 

 

책상 위에는 책이 있고, 차마 다 세어보진 못했지만 아마도 무한 개쯤 있고, 나는 이것들에 대해 어떤 책임을 져야만 할 것 같은데 세상일이 참 마음대로 되지가 않고, 고작 한 달 동안 내 손을 거쳐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꽂히는 돈의 액수가 내가 평생 벌어도 도달할 수 없을 만큼 커져버려서 나는 마우스를 쥐고 오들오들 떨고 있고, 이 와중에 우리 회사보다 옆 회사가 괜히 더 좋아 보이고, 그런 마음 아는지 모르는지 회사에서는 면허 따라고, 친구는 운동하라고, 커피메이커는 세척해 달라고, 이런 난리 난리 가운데서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콜라를 마시고, 엑셀 바이블이나 뒤적거리고, 기초연금 선정기준액을 외우고, 오늘은 회사에 들어가기 전에 버거킹에서 햄버거 하나 먹어야지 다짐하고, 행복한 일상이란 건 마치 지구 외 지적생명체처럼 확률적으로는 세상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 봤다고 증언했다가는 반쯤 미친 사람 취급받기 십상일 정도로 만나기 어려운 존재인 것이고, 그렇다면 일상 속 행복이라는 것은 있느냐 하면 그건 또 보일듯 말듯 가물거리고, 그대여 힘이 되 주오 길을 터 주오 불러 볼 사람도 없는 것이고, 그럼에도 분노도 슬픔도 그렇다고 즐거움도 기쁨도 뭐 하나 특별히 치고 나오는 감정이 없는 걸 보면 나는 차분하게 침착하게 부드럽게 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고, 여기까지 써 놓고 보니 이 글을 쓴 놈은 굉장히 불쌍하고 스트레스 많고 꿈도 희망도 미래도 비전도 없는 놈처럼 보이고, 근데 막상 그놈 자신은 또 바쁘고 정신없는 거 말고는 특별히 힘들거나 불행하거나 하지는 않고, 도대체 이건 어디에서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서 있는지 모르겠고, 모르면 모르는 대로 시간은 흘러가고, 갈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실하지 않은 부산까지 이제 스무 날 남짓 남았고, 정수리가 간지러워서 긁은 손 냄새는 대체 왜 맡아보는 것이고, 기왕 맡았으면 그냥 넘어가지 왜 자기 자신을 비난하는 것이고, 그 와중에 나만 이런 놈이고 싶진 않았는지 네이버에 검색해 보는 것이고, 봤더니 정수리 긁고 자동적으로 냄새 맡는 것은 인류 공통의 전통 깊은 행동양식이었던 것이고, 덕분에 으하하하 웃었다가 이내 내가 대체 무슨 세상에 살고 있는가 싶어서 오싹해지는 것이고, 이러고 허비할 시간 있으면 차라리 책이나 읽자 등신아 하며 봤더니 책상 위에는 책이 있고, 차마 다 세어보진 못했지만 아마도 무한 개쯤 있고, 나는 이것들에 대해 어떻게든 책임을 져야만 할 것 같은데…….

 

 

 

--- 읽은 ---

 


87. 나의 첫번째 과학 공부

박재용 지음 / 행성B / 2017

 

이 점수를 가지고 내가 대학을 간다는 마음으로 과학을 배우고, 문제집을 풀고, 그렇게 대학을 가서 이 점수를 가지고 내가 취업을 하거나 유학을 한다는 마음으로 다시 과학을 배우고, 문제를 풀고, 뭐 그런 식으로 과학과의 인연을 오래 쌓은 사람은 과학 교양서를 읽기에 다소 부적합한 인간이 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에게 말고 개인에게도 과학이 필요하다면, 그 필요성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그 차이에 따라 과학책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질 것이다. ‘인문학도에게 권하는-’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철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과학도에게 권하는첫 번째 철학 공부- 라는 책을 보았을 때 어떤 감정이 들 것인지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이렇게 쓰고 나니까 원서 읽으시라 원전 읽으시라 강권하는 분들이랑 비슷해진 것 같다.

 

 


88. 이기는 몸

이동환 지음 / 쌤앤파커스 / 2020


건강을 유지하는 일은 어려운 듯하면서도 쉽고, 쉬운 듯하면서도 어려운 데가 있다. 알아야 할 것, 먹어야 할 것이 많고 움직이는 데 써야 할 시간도 많다. 그리고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가 지금 건강하기 위해 당장 무엇을 먹거나 먹지 말아야 하는지, 무엇을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알고는 있다. 이기는 몸을 만드는 것이 그런 일이다. 눈 딱 감고, 이 책이 시키는 대로 1년만 살아볼까?

 

 


89. SQL 첫걸음

아사이 아츠시 지음 / 박준용 옮김 / 한빛미디어 / 2015

 

난 데이터베이스 과목 학점 A였는데 오늘날 이 시점에 첫걸음을 낑낑 거리며 보고 있다. 15년의 세월이 무섭다. 3 육상 꿈나무도, 그의 시간을 15년만 거꾸로 돌리면 첫걸음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 읽는 ---

스포츠와 여가 / 제임스 설터

일곱 해의 마지막 / 김연수

모니크 위티그의 스트레이트 마인드 / 모니크 위티그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 박상영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 이원하

이제야 어디에 힘을 빼야 하는지 알았습니다 / 안블루

수학은 어떻게 무기가 되는가 / 다카하시 요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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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7-12 1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쓰는 이의 불행은 읽은 이에게는 왜 재미난 것인지...의식의 시궁창을 허우적대며 안타까운데도 왜 재밌는 글빨인가...(사악한 독자 올림)

syo 2020-07-12 11:23   좋아요 2 | URL
ㅎㅎㅎㅎ 일주일이나 되었으니 뭐라도 써뱉어야 한다는 강박이 저런 걸 만들어내고 말았다......

반유행열반인 2020-07-12 11:35   좋아요 2 | URL
무엇이 되었든 생존신고는 좋은 일...더 여유로워지고 덜 힘든 날이 어여 오길 빕니다.

수이 2020-07-12 13:49   좋아요 2 | URL
같은 마음 찌찌뽕, 오늘쯤이면 쇼님 글이 올라올 테니 알라딘 들어가봐야지 하고 아침 설거지 하면서 생각했더니 짜잔_

추풍오장원 2020-07-12 21: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리워진 길은 유재하보다 김현식 버전이 더 좋더라구요.
유재하가 김현식만을 위해서 쓴 듯한 노래..

페크pek0501 2020-07-13 14: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양한 책 구경, 잘하고 갑니다. 글은 언제나 재미지고... 질서가 없는 듯하면서 질서가 있는 글에 감사^^

나와같다면 2020-07-14 0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많이 힘들죠? 그래도 저는 syo님이 취업 되었다는 이야기 들었을 때 괜히 기분이 좋았어요

공쟝쟝 2020-07-16 08: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머리 긁으며 읽다 화들짝
 

 

올림픽공원

 

 

1

 

바람 아래 앉아 있었다.

시를 읽었다.

 

움직이는 것이 많아 좋았다.

 

 

 

2

 

다시 바다에 대해 오래 생각한다. 모래와 바람과 큰물이 있고 그 모든 것들이 스쳐 내는 소리가 저녁과 어울려 늠실대는 곳.

 

나는 바다면 좋았다. 좋은 것이 참 많지만 바다가 참 좋았다. 바다에서 보낸 모든 시간이 다 좋았고 모든 시간의 바다가 다 아름다웠다. 그래서 모든 순간 바다를 생각하지만 유독 바다가 생각나는 순간도 있어서 일 년에 한두 번은 바다를 앓는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찾아가든, 바다에 찾아가면 어떤 마음이 된다. 바다는 너무 크고 넓고 철썩거리고 바람에도 간이 배어 있고 그렇게 수억 년을 그 자리에 있던 지구의 거대한 기억 같은 장소여서 바다 앞에서 바다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두고 온 세상을 온통 잊어버린다. 그렇게 해주는 장소는 이 우주에 딱 두 군데뿐이라 늘 그곳 주위를 빙빙 맴돈다. 어느 방향으로 걸어도 그곳에 바다가 있어서 이 별은 참 다행이다.

 

앉아 있으러 갈까. 천천히 가는 버스나 기차를 타고.

 

 

 

3


 

계급투쟁은 계급을 구성하고 폭로하면서 동시에 계급을 제거함으로써 두 개의 억압된 계급 사이의 모순을 해결한다모든 여성이 경험하는 여성과 남성 사이의 계급투쟁은 성별 사이의 모순을 해결하고 제거하는 동시에 이해되게 한다우리는 모순이 항상 물질적 질서에 속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갈등(혁명투쟁이전에 반대 범주는 없다는 것이 중요하다차이가 있을 뿐이다대립의 폭력적 현실과 차이의 정치적 질서는 투쟁이 발생하고 나서야 비로소 선언이 된다대립(차이들)이 기존에 주어진 것으로 나타나면, "자연적인갈등이나 투쟁이 없다면변증법도변화도운동도 없다.

모니크 위티그모니크 위티그의 스트레이트 마인드, 46 


계급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제일 먼저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혹시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본 신분제 사회의 모습이 떠오르셨나요? 혹은 시가를 입에 문 배 나온 양복쟁이 자본가가 $라고 쓰인 돈주머니를 손에 쥐고 있는 모습을 누덕누덕 기운 멜빵 청바지를 입은 노동자가 렌치나 곡괭이 같은 것을 들고 노려보는 장면 같은 건 어떠신가요. 그런 그림이 제일 먼저 떠오르셨다면, 당하셨네요. 당하셨어요.

 

계급이라는 단어가 주는 전근대적인 이미지 때문에 오해하기 쉽지만, 계급은 세상 어디에나 있습니다. 우리가 클라스class’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용법을 떠올려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우리 사회는 온갖 장르의 영역에서 계급사회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셨으면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보세요. 가족들이 있나요? 그 가족들 사이에서 당신의 계급은 어디쯤인가요. , 혼자 사시나요? 그렇다면 가족을 이루고 사는 계급에 비해 혼자 사는 계급인 당신이 겪어내야 할 각종 경제적·관습적·안전 비용에 대해서 생각해볼까요? 만원버스를 타고 출근하시나요? 클라스 오지시네요. 외제차 타고 출근하신다구요? 클라스 오지시네요! 점심은 뭘 드시나요. 혹시 비건이신가요? 옆자리에 앉은 동료는 오늘 점심부터 삼겹살을 굽자고 하시네요. 지구는 두 분 중 누구를 옹호할까요? 윤리는요? 자유와 자기결정권은 또 어떨까요?

 

사회라는 구조체 속에 산다면, 모든 것이 계급입니다. 사물의 기본 입자는 쿼크, 전자 뭐 그런 애들이 아니라 계급입니다. 이 말이 이상하신가요? 당신이 이 말을 이상하다고 느끼게 만들려고 계급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암암리에 안배해 왔을까요?

 

차별에 대해서 생각해볼까요. 우리는 보통 수많은 종류의 차별을 병렬적인 문제로 놓습니다. 그런 체제 하에서는 성, 계급, 장애, 인종, 종교, 지역, 경제력, 정치력 등등에서 발생하는 각종 차별을 각자의 방식으로 해결해야 하는 각자의 문제로 취급되게 만드는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이쪽 평면에서의 피해자인 우리가 저쪽 평면에서의 가해자라는 사실을 인지하기가 쉽지 않죠. 모니크 위티그의 도식에서는 저 모든 차별 및 폭력이 계급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묶이는 것으로 보입니다. 남녀는 성별이 아니라 하나의 계급, 흑인과 백인은 인종이 아니라 저마다 하나의 계급.

 

이렇게 계급의 관점으로 볼 때 생기는 장점이 있습니다. 일단, 내게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계급의 목소리를 들으며, 혹시 내게 피해를 입힌 계급이 내가 입은 피해를 부인하거나 인지하지 못했듯, 나 역시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 쉬워지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계급이라는 것은 전적으로 사회의 산물이기 때문에, 내가 입고 있는 계급 피해는 어떤 이유에서든 자연화/당연시되지 않는다는 점이 크겠네요.

 

그러니까 모니크 위티그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느낌일 것 같습니다. 우리가 나는 여혐 1도 없다니까?, 내가 얼마나 여자를 좋아하는데!“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끼는 이유는 혐오라는 용어를 좁게, 사전에 나오는 단 한 줄의 의미로만 좁게 사용하며, 언어의 사용이 그렇다 보니 사고의 사용 역시 협소해지는 메커니즘을 목격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남녀 문제가 계급 문제의 일종이라는 명제를 부인하는 사람들을 보며, ‘계급이라는 단어를 신분적 혹은 경제적인 영역에만 국한해 사용하면서 놓치게 될 여러 돌파구들을 아쉬워해야 하지는 않을까요. ‘혐오라는 용어를 확장적으로 사용하듯 계급이라는 용어의 외연을 크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sex)은 없다억압받는그리고 억압하는 성이 있을 뿐이다성을 생산하는 것은 억압이며그 반대가 아니다반대편은 성이 억압을 생산한다고 말할 것이다혹은 억압의 원인(기원)은 성 그 자체에서 발견된다고 말할 것이다이미 존재하는 사회에서(혹은 사회 바깥에서성은 자연적인 분할이다.

같은 책, 45


성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 자연적인 성질로 인해서 억압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억압의 기원을 자연적인 것으로 돌려 억압을 유지하기 위해 성이라는 것을 만들었다는 의미 같습니다. 이런 전복은 재미있잖아요. 이것은 사회가 성차를 만들었다는 것이 아니라 자체를 만들었다는 뜻에서 전복적입니다. 성은 당연히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단지 그 두 성 사이의 차이만이 사회적으로 조작된 것이라는 관점이 낳게 될 다른 억압과 차별이 있습니다. 그 억압과 차별이 의 바깥에 있는, 이를테면 LGBT에게만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 인정하는 바운더리 안쪽에 있는 여성에게도 가해질 수 있다는 관점이 독창적이네요. 심지어 이미 사회가 존재하고(그리고 존재한 이상 이제는 그 바깥에서조차) 성은 자연적인 분할로 취급받는다는 명제는 짜릿한데도 있구요.

 

아무튼 마르크스는 모니크 위티그를 대하기가 난처하겠습니다. 모니크 위티그가 이제까지의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라는 마르크스-엥겔스의 선언을 누구보다 강하게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그 계급이 주로 경제적평면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했던 마르크스의 또 다른 주된 주장을 완전히 승인하고 있지는 않으니까요.

 

 

 

3.5

 

모니크 위티그의 문장은 syo에게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선명하게 읽힙니다. 그래서 오해를 해도 선명하게 오해할 것 같아서 읽는 내내 기분이 좋습니다. 모호한 오해보다 위험한 것은 모호한 이해밖에 없으니까요.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문장을 쓰는 순간의 모니크 위티그의 기분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다고 할까요? 왜냐하면 우리(?)가 문장을 가지고 하는 짓(?)이 비슷하거든요.

 

그러므로 (sex)은 없다. 억압받는, 그리고 억압하는 이 있을 뿐이다.“

 

이 문장에서 앞의 과 뒤의 은 어떤 관계일까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찾아가든, 바다에 찾아가면 어떤 마음이 된다.“

 

쪼랩 글쟁이 syo가 앞에 써놓았던 이 문장에서 앞의 어떤과 뒤의 어떤은 또 어떤 관계일까요.

 

 

 

 

--- 읽은 ---

 

85. 카카오프렌즈 러브 1

오쭈 지음, 흑부 그림 / 대원앤북 / 2019

 

귀여워서 봐줬다. 진짜.

 

 

 


86.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사사키 아타루 지음 / 송태욱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

 

읽어버렸으니 이제 어쩔 수 없게 되었다는 말에 사로잡혔다. 그 말이 참 아프고 기쁘다.

 

 

 

--- 읽는 ---

나의 첫 번째 과학 공부 / 박재용

스포츠와 여가 / 제임스 설터

이기는 몸 / 이동환

일곱 해의 마지막 / 김연수

모니크 위티그의 스트레이트 마인드 / 모니크 위티그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 박상영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 이원하

SQL 첫걸음 / 아사이 아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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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0-07-05 1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트레이트 마인드 해제 페이퍼 따로 써서 책으로 묶어도 좋겠다 싶은 이 멋들어진 글 좀 보소

syo 2020-07-05 12:59   좋아요 0 | URL
으쓱으쓱하면서 쑥쑥 자란다ㅎㅎ

다락방 2020-07-05 1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좋군요! 좋으네. 좋군. 계속 스트레이트 마인드 읽고 써주시기 바랍니다.

수이 2020-07-05 13:03   좋아요 0 | URL
뭔가 또렷또렷해지죠? 와 하고 다시 한번 놀라게 되는 지점. 스트레이트 마인드 얼른 읽게 하고 모셔서 강의 듣고싶은 마음.

syo 2020-07-07 07:24   좋아요 0 | URL
근데 안 가지고 다닌다 ㅋㅋㅋㅋㅋ 😂

겨울호랑이 2020-07-05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자요산 지자요수 仁者樂山 知者樂水 이라 했는데, 움직임(動)과 물을 좋아하는 것을 보니 syo님은 지혜로운 쪽인 듯합니다.^^:)

syo 2020-07-07 07:25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 지혜로운 이는 물을 좋아하지만 물을 좋아한다고 다 지혜로운 이겠어요 ㅎㅎ

단발머리 2020-07-05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너무 좋으네요. <스트레이트 마이드> 정확하게 읽었는지 알고 싶어서 syo님 글을 두번 세번 읽습니다.
이런 경우라면 syo님이 먼저 읽고 단락별로 정리해주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소심하게 해봅니다. 소심하게, 똑똑!!

syo 2020-07-07 07:25   좋아요 0 | URL
재밌잖아요 다들? 왜 나만 재밌는 분위기지??

페넬로페 2020-07-05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바다를 좋아하는 이유를 syo님께서
너무 절묘하게 표현해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어제 올림픽공원에 앉아 있었습니다 ㅎㅎ

syo 2020-07-07 07:26   좋아요 0 | URL
날씨도 좋고 드넓어서 올림픽 공원 참 좋았어요 ㅎㅎㅎ 페넬로페님도 계셨구나

북깨비 2020-07-05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에도 간이 배어 있다고 하시니 ㅠㅠ 갑자기 바다가 오감으로 느껴집니다. 당장 바다 가고 싶어요. ㅠㅠㅠ 🌊 syo님 책 안 내시나요.. 언젠가 syo님 글을 책장에 꽂아두고 언제든 꺼내 읽을 수 있게 되길 바라며.🤞... 혹시 저만 모르고 있다던가.. 😳

syo 2020-07-07 07:27   좋아요 0 | URL
그런 일은 웬만해선 일어나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ㅎㅎ 뻘글이지만/이라서 알라딘 밖에는 없습니다.

추풍오장원 2020-07-05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페이퍼를 자주 올려주셔서 참 감사한 마음입니다.^^
사사키 아타루 책은 읽어야지 하면서 구입이 참 늦어지는군요...

syo 2020-07-07 07:30   좋아요 1 | URL
사사키 아타루 참 기묘한 사람이지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은 말을 잘 모르겠다 싶게 하고 무슨 말인지 모를 말을 알 것 같다 싶게 하고....
너무 유명하고 많이 읽힌 책이라 추풍님처럼 많이 읽으시는 분께서 아직 안 읽으셨다는 게 믿기 어렵네요 ㅎㅎㅎ

비연 2020-07-05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사키 아타루의 이 책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 다시 떠오르네요...
바다와 스트레이트 마인드... 곧 이 둘 앞에서 syo님의 이야기를 들을 날이 올라나요.

syo 2020-07-07 07:30   좋아요 0 | URL
바다다... 일단 바다입니다!!

얄라알라 2020-07-08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개해주신 저 많은 책 중에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가 눈에 확 들어오는 이 와중에, 제 책상 오른쪽 위에는 크래커 상자가^^:;;;;

syo 2020-07-12 10:55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는 정말, 일단 제목 자체만으로 끌어당기죠. 저 말 한 번 안해본 사람 있나요....

무식쟁이 2020-07-11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줄만 읽어도 좋네요.. 이런..

syo 2020-07-12 10:56   좋아요 0 | URL
댓글만 읽어도 좋네요, 으하하하.

공쟝쟝 2020-07-16 1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왜 이 페이퍼가 띵페이퍼인지 오늘에 와서 정확히 알게되어 기쁘기 그지 없읍니다. 또써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