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의 마들렌과 syo의 정수리와 흐르는 의식의 시궁창

 

 

책상 위에는 책이 있고, 차마 다 세어보진 못했지만 아마도 무한 개쯤 있고, 나는 이것들에 대해 어떤 책임을 져야만 할 것 같은데 세상일이 참 마음대로 되지가 않고, 고작 한 달 동안 내 손을 거쳐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꽂히는 돈의 액수가 내가 평생 벌어도 도달할 수 없을 만큼 커져버려서 나는 마우스를 쥐고 오들오들 떨고 있고, 이 와중에 우리 회사보다 옆 회사가 괜히 더 좋아 보이고, 그런 마음 아는지 모르는지 회사에서는 면허 따라고, 친구는 운동하라고, 커피메이커는 세척해 달라고, 이런 난리 난리 가운데서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콜라를 마시고, 엑셀 바이블이나 뒤적거리고, 기초연금 선정기준액을 외우고, 오늘은 회사에 들어가기 전에 버거킹에서 햄버거 하나 먹어야지 다짐하고, 행복한 일상이란 건 마치 지구 외 지적생명체처럼 확률적으로는 세상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 봤다고 증언했다가는 반쯤 미친 사람 취급받기 십상일 정도로 만나기 어려운 존재인 것이고, 그렇다면 일상 속 행복이라는 것은 있느냐 하면 그건 또 보일듯 말듯 가물거리고, 그대여 힘이 되 주오 길을 터 주오 불러 볼 사람도 없는 것이고, 그럼에도 분노도 슬픔도 그렇다고 즐거움도 기쁨도 뭐 하나 특별히 치고 나오는 감정이 없는 걸 보면 나는 차분하게 침착하게 부드럽게 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고, 여기까지 써 놓고 보니 이 글을 쓴 놈은 굉장히 불쌍하고 스트레스 많고 꿈도 희망도 미래도 비전도 없는 놈처럼 보이고, 근데 막상 그놈 자신은 또 바쁘고 정신없는 거 말고는 특별히 힘들거나 불행하거나 하지는 않고, 도대체 이건 어디에서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서 있는지 모르겠고, 모르면 모르는 대로 시간은 흘러가고, 갈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실하지 않은 부산까지 이제 스무 날 남짓 남았고, 정수리가 간지러워서 긁은 손 냄새는 대체 왜 맡아보는 것이고, 기왕 맡았으면 그냥 넘어가지 왜 자기 자신을 비난하는 것이고, 그 와중에 나만 이런 놈이고 싶진 않았는지 네이버에 검색해 보는 것이고, 봤더니 정수리 긁고 자동적으로 냄새 맡는 것은 인류 공통의 전통 깊은 행동양식이었던 것이고, 덕분에 으하하하 웃었다가 이내 내가 대체 무슨 세상에 살고 있는가 싶어서 오싹해지는 것이고, 이러고 허비할 시간 있으면 차라리 책이나 읽자 등신아 하며 봤더니 책상 위에는 책이 있고, 차마 다 세어보진 못했지만 아마도 무한 개쯤 있고, 나는 이것들에 대해 어떻게든 책임을 져야만 할 것 같은데…….

 

 

 

--- 읽은 ---

 


87. 나의 첫번째 과학 공부

박재용 지음 / 행성B / 2017

 

이 점수를 가지고 내가 대학을 간다는 마음으로 과학을 배우고, 문제집을 풀고, 그렇게 대학을 가서 이 점수를 가지고 내가 취업을 하거나 유학을 한다는 마음으로 다시 과학을 배우고, 문제를 풀고, 뭐 그런 식으로 과학과의 인연을 오래 쌓은 사람은 과학 교양서를 읽기에 다소 부적합한 인간이 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에게 말고 개인에게도 과학이 필요하다면, 그 필요성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그 차이에 따라 과학책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질 것이다. ‘인문학도에게 권하는-’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철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과학도에게 권하는첫 번째 철학 공부- 라는 책을 보았을 때 어떤 감정이 들 것인지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이렇게 쓰고 나니까 원서 읽으시라 원전 읽으시라 강권하는 분들이랑 비슷해진 것 같다.

 

 


88. 이기는 몸

이동환 지음 / 쌤앤파커스 / 2020


건강을 유지하는 일은 어려운 듯하면서도 쉽고, 쉬운 듯하면서도 어려운 데가 있다. 알아야 할 것, 먹어야 할 것이 많고 움직이는 데 써야 할 시간도 많다. 그리고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가 지금 건강하기 위해 당장 무엇을 먹거나 먹지 말아야 하는지, 무엇을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알고는 있다. 이기는 몸을 만드는 것이 그런 일이다. 눈 딱 감고, 이 책이 시키는 대로 1년만 살아볼까?

 

 


89. SQL 첫걸음

아사이 아츠시 지음 / 박준용 옮김 / 한빛미디어 / 2015

 

난 데이터베이스 과목 학점 A였는데 오늘날 이 시점에 첫걸음을 낑낑 거리며 보고 있다. 15년의 세월이 무섭다. 3 육상 꿈나무도, 그의 시간을 15년만 거꾸로 돌리면 첫걸음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 읽는 ---

스포츠와 여가 / 제임스 설터

일곱 해의 마지막 / 김연수

모니크 위티그의 스트레이트 마인드 / 모니크 위티그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 박상영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 이원하

이제야 어디에 힘을 빼야 하는지 알았습니다 / 안블루

수학은 어떻게 무기가 되는가 / 다카하시 요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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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7-12 1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쓰는 이의 불행은 읽은 이에게는 왜 재미난 것인지...의식의 시궁창을 허우적대며 안타까운데도 왜 재밌는 글빨인가...(사악한 독자 올림)

syo 2020-07-12 11:23   좋아요 2 | URL
ㅎㅎㅎㅎ 일주일이나 되었으니 뭐라도 써뱉어야 한다는 강박이 저런 걸 만들어내고 말았다......

반유행열반인 2020-07-12 11:35   좋아요 2 | URL
무엇이 되었든 생존신고는 좋은 일...더 여유로워지고 덜 힘든 날이 어여 오길 빕니다.

수이 2020-07-12 13:49   좋아요 2 | URL
같은 마음 찌찌뽕, 오늘쯤이면 쇼님 글이 올라올 테니 알라딘 들어가봐야지 하고 아침 설거지 하면서 생각했더니 짜잔_

추풍오장원 2020-07-12 21: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리워진 길은 유재하보다 김현식 버전이 더 좋더라구요.
유재하가 김현식만을 위해서 쓴 듯한 노래..

페크pek0501 2020-07-13 14: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양한 책 구경, 잘하고 갑니다. 글은 언제나 재미지고... 질서가 없는 듯하면서 질서가 있는 글에 감사^^

나와같다면 2020-07-14 0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많이 힘들죠? 그래도 저는 syo님이 취업 되었다는 이야기 들었을 때 괜히 기분이 좋았어요

공쟝쟝 2020-07-16 08: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머리 긁으며 읽다 화들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