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세계문학세트>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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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 - 스페인·라틴아메리카 ㅣ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후안 룰포 외 지음, 김현균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평점 :
슈퍼스타 K, 서인영의 카이스트... 등 요즘은(예로 든 것은 요즘 것도 아니다..흑ㅜ) 공중파 방송을 넘어서 케이블 방송까지 보지 않으면 인터넷이고 사회 생활도 힘들어졌다. 나같이 아날로그적인 사람에게는 점점 더 힘든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아직 어린 나이지만 드라마는 거의 안 보고 예능 프로도 개콘과 1박2일 정도만 보는 나에게는 이런 대화 주제가 나오면 뻘쭘하게 앉아 있는 것이 은근 고역이다.
가끔 우연한 기회에 케이블 방송을 볼 때가 있는데 그 자극적인 소재와 내용을 보고 깜짝 놀란다. 뭐 그렇다고 내가 건전한 인간 것 만은 아니지만. 시청률이 1%만 나와도 소위 '대박' 이라는데 그 정도는 해줘야 시청률이 좀 나와준다나? 욕은 하면서도 이상하게 땡기는, 바로 이 맛 아닙니까아~~? (아 세태를 비판하려고 쓴 건 아니었는데...우짜지) 아무튼 요즘이 대놓고 싼티(!)나는 컨셉이 유행이라 그런지, 이상하게 자극적이라 기분은 뭐한데 채널은 안 돌아가게 만드는 것도 하나의 재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스페인, 라틴 아메리카 문학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그 강렬한 이미지와 환상적인 내용으로 하여, 다른 나라보다도 꼭 읽어보고 싶었다. 제목도 제일 강렬했다. 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무려 따옴표도 있다!)
창비에서 문학 전집을 얼마나 야심차게 준비했는지 몰라도 내용이 꽤 알차다. 사실 미국이나 영국아니면 생소한 작가들이 많은데 작품 앞 장에 작가의 약력과, 그 다음 장에는 간단하지만 큰 도움이되는 작품해설도 있다. 또 작품 뒤에는 <더 읽을거리>라고 해서 관심있는 사람은 더 읽어볼 수 있게 작품도 추천해 놓았다. 번역 상황까지 친절히 알려줘서, 아직도 목마른 이에게 조금이나마 갈증 해소를 시켜줄 수도 있는 일이다. 작품 선정은 말 할 것도 없이, 좋다.
요즘은 그 나라 언어가 발음되는 소리대로 표기하는 것이 표기법의 관행인지, 대체로 된소리로 표기된 것이 많았는데 뭔가 이국적이라 읽는 재미도 더 컸다. 레오뿔로 알라스, 삐오 바로하, 이그나시오 알데꼬아..... 작가의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이국적이다. 된소리는 어떻게 들으면 촌스럽지만 그만큼 강렬하고 동물적이라고나 할까. 마술적이고 환상적인 내용도 더 동물적(?)이어서 매력적이다.
이 중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작가가 마르께스가 아닐까 생각한다.<거대한 날개 달린 상늙은이>는 범상치 않은 제목처럼 내용도 범상치 않다. 제목대로 거대한 날개 달린 상늙은이가 해안가에 사는 가난한 부부에게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지고, 그로 인해 돈을 버는 내용이다. 이 부부는 입소문을 타고 구경 오는 사람들에게 관람료를 받아 단기간에 부자가 된다. 그러나 곧 부모 말을 안들어서 거미가 된 여인에게 밀려 늙은이는 대중의 눈에서 벗어난다. (이건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거라고 하는데 이런 분석없이 읽어도 상당히 재미있다!) 그리고 그 늙은이는......
어쩜 이렇게 아이같이 생각할 수 있을까. 문득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학급 문집에 쓴 소설이 생각났다. 아직도 가족에게 회자되어 놀림감이 되는 소설... 내용은 차마 너무 창피하여 밝힐 수 없다.
아, 왜 케이블 방송이 자극적인 걸 추구하는지 그 이유를 이제서야 알았다고 했는데...
19편의 엄선된 단편 중에서 유난히 기억에 남는 것은, 글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다가와서 잘 잊혀지지 않는 것이었는데, 그런 것이 자극적인 내용이었던 것이다. 살인, 질투에 눈 멀어 행하는 치기어린 행동... 뭐 이런 것들.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글도 많았음에도 읽고 나니 쉽게 잊혀졌다. 내 감수성이 이런가보다. 쩝.
루벤다리오의 <중국 여제의 죽음>은 조각가 남편과 아름다운 아내(수집품 인형같이!) 사이에 있었던 일이다. 남편은 동양 문화의 이국적인 매력에 심취해 있었고 예술에 탐닉하였다. 아내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취미가 비슷한 친구가 중국에서 보내온 선물을 받게 된다. 그것은 도자기로 만든 중국의 여제였다.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 장인의 섬세한 솜씨에 감동받은 그는 급기야 사면에 유리를 씌워 놓고 날마다 감상한다. 아내는 그때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에 의욕이 없었고 밥도 잘 먹지 않았다. 남편이 다른 연인 때문에 그를 버린 것이다. 그리고 아내는 그 여인을 부셔버린다. 말 그대로 부셔버린다.
아 무서워..... 이 부부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이 걱정되었다. 정신병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데.
<태만의 죄>는 정말 겨우 3장이 되는 단편인데 그만큼 강렬하다. 한마디로 '못난 놈'에 대한 이야기지만 사람은 밥만 먹고 살 수 없다는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양부모가 죽고 자신을 거두어주었던-정말 밥만 먹여주고 그의 재능은 깡그리 무시했던- 외삼촌에게 길러진 남자는 어느 날, 한 때 동급생이었던, 지금은 변호사인 친구를 만난다. 친구는 여자같이 이상하게 야들야들한 손가락으로 그에게 담배를 건넨다. 남자는 순간 참지 못하고 외삼촌에게 달려간다. 그리고......
뭐 재능을 안 키워 준 외삼촌이 원망스러울 수는 있으나 자신도 태만의 죄를 저질렀으니, 그 돌은 비단 외삼촌에게만 던져질 것은 아니겠다.
그 밖에도 정말 괜찮은 단편들이 많다. 책이 잘 안 읽힐 때나 장편소설만으로 너무 질릴 때 한편씩 읽으면 기분전환에도 좋을 것 같다. 서정적이고 차분한 내용들도 음미하면서 읽어봐야겠다. 아무튼 꽤 신경을 많이 쓴 문학전집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