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물고기>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4월의 물고기
권지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권지예. 꽤나 유명한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품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다. 알게된 경위가 불명예스럽게도, 표절 시비였다. 사실이든 그렇지 않았든 역시 불명예스러운 소문은 작가에 대해 우호적인 감정이 생기게 하진 않는다. 나도 모르게 작가의 소설을 거부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4월의 물고기. 꽤 감성적인 제목이다. 그러나 제목이 내용과 꼭 맞지는 않는다. 추리 소설같은 면도 있으니 너무 직접적인 제목은 피하려는 의도였겠지?

유명한 작가치고 문체가 너무 소녀스럽다. 친절하다고 해야 하나? 뭐 나의 괜한 편견일 수도 있겠다. 문체는 표절 할 수가 없겠지만. 그래도 괜히 허세스럽지 않아서 괜찮았다.  

줄거리를 당췌 어디까지 써야할 지 모르겠다. 끝까지 쓰자면 스포일러가 되겠고, 난 그런 거 얘기하는 사람을 아주 싫어하니까. 근데 모든 내용을 알아버리고 나면 그 부분을 얘기 안 하면 할 말이 없어진다. 

아, 메멘토. 메멘토랑 비슷한 얘기라고 해도 괜찮겠다. 기억은 해석이고, 그 해석은 자의에 의해 왜곡된다.... 그리고 그 왜곡된 기억의 진실을 알 게 되면 너무나도 무서운 결과가 있다. 진실이 더 무서운 법이니까. 

소설 중반부까지는 운명적인 사랑을 얘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소설가이자 요가 강사인 서인은 어느 잡지에서 인터뷰를 하다가 사진 기자이자 교수인 석우를 만난다. 이상하게 서로에게 끌림을 느낀 둘은 운명의 힘에 의해 만나서 사랑에 빠진다. 30대가 되어 진짜 사랑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석우를 만나기 시작하면서 서인은 '악의 꽃'이라는 이름으로 메일을 받게 된다. 사랑에 빠지면 위험해 진다고. 

석우는 키가 크고 잘생긴 사진 작가이자 교수이다. 당연히 그에게는 추종자가 있다. 그의 자취방으로 연락없이 찾아오는 어린 제자 유정. 서인은 나중에 유정을 존재를 알고, 찾아낸 유정의 미니홈피에는 보를레르의 '악의 꽃'이란 시가 적혀있다. 

그들의 만남은 우연이었다. 아니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다. (어떤 필연인 줄 알게된다면 끔찍한 일이다.) 이런 진부한 문장처럼 나중 결말도 청승맞다.

줄거리는 여기까지 끝. 더 이상 얘기한다면 이 책을 읽을 재미가 반 이상은 없어지겠지? 

운명적 사랑, 애써 억눌렀던 아픈 기억이 갑자기 분출하 듯 떠오를 때 마음의 동요, 무의식의 탐험 등 소설은 너무 많은 얘기를 한다. 그 고리가 맞물리기는 하는데 애써 연결해 놓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흡입력이 떨어진다. 

그러나 이미지가 팍팍 떠오르는 것은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호수의 고요한 이미지, 주인공들이 무의식을 캐가면서 나는 색채의 이미지. 그래서 요즘 보기 드문 먹고 대학생인 나는 악몽을 자주 꾼다. 끔찍한 꿈을 길게, 오래도 꾼다. 원래 그런 꿈은 잘 안 꿨는데.. 얼마 전부터 난도질 당하는 꿈을 자주 꾼다. 흑흑. 

통속적인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 이야기에 목 말랐던 독자라면 한 번 쯤 읽어보면 좋겠다. 그러나 그런 데에 익숙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악몽을 꾸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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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아카데미>, <새드일루전>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뱀파이어 아카데미 - 내가 선택한 금지된 사랑 뱀파이어 아카데미 시리즈 1
스콜피오 리첼 미드 지음, 전은지 옮김 / 글담노블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나는 판타지,SF 같은 장르 소설을 별로 안 좋아한다. 더불어 추리 소설도. 그래서 리뷰를 쓰기가 참 난감하다. 이 책이 잘 씌여진 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두 신문사에서 선정한 베스트셀러고 미국도서관협회상 수상을 했으면 잘 씌여진 편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지....?  

나는 또 할리퀸 로맨스 같은 것도 읽지 않는다. 그 내용이 그 내용이라. 거기 나오는 남자들도 외형부터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감성이 메마르고 소녀 취향의 로맨스를 보면 구역질을 하는 사람은 아니니 너무 타협없는 사람이라고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처음에 <뱀파이어 아카데미>를 받았을 때 실로 난감했다. 뱀파이어, 뱀파이어라니! 뱀파이어라 하면 인간의 피를 빨아 먹고 사는, 언제나 창백하고 우울한 종족이 아닌가. 추운 거를 엄청 싫어하는 나는 차가운 이미지가 느껴지는 것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고식딕으로 지어진 성에서 밤에만 활동하는 음침한 이미지가 그려지는 뱀파이어에 관심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어으~ 생각만 해도 춥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선과 악의 구조가 너무나 분명한 고전 소설에 소녀 취향의 로맨스를 곁드린... 뭐 그런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크게 생각하면서 읽을 내용은 아니다. 다만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으면 읽기가 힘들다.  

소설에서는 뱀파이어에도 두 종류가 있다. 모로이와 스트리고이. 모로이는 세상의 평화를 위해 마법을 쓰는 한 마디로 '착한 놈'이고, 스트리고이는 불멸하며 사람들과 모로이는 잡아 죽이는 '나쁜 놈'이다. 모로이와 인간 사이에서 나온 댐퍼라는 종족이 있는데, 댐퍼는 인간과 모로이의 장점을 가지고 있어 모로이를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 댐퍼끼리는 아이를 가지지 못하고 모로이와의 사이에서만 아이를 가질 수 있지만, 그 사이에서도 꼭 댐퍼만 나오게 된다. 댐퍼는 무서운 종족보존의 본능 때문에 모로이를 지킨다.  

그치만 도대체 어디가 모로이가 착하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마법을 세상의 평화를 위해 쓴다는데 그런 예는 어째 하나도 없고, 피를 제공하는 인간과 자신들을 지켜주는 댐퍼들을 무시하는 모습만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피를 제공하는 것은 순수한 봉사의 정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목을 물려 피를 뽑힐 때의 희열에 중독되어 계속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고, 댐퍼는 종족을 지키기 위해 그들을 수호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해도 그런 인간들을 데리고 놀거나 자신들을 지켜주는 댐퍼들을 무시하는 행태가 따지고 보면 그냥 태생적으로 주어진 것일 뿐이지 않은가. 운 좋게 모로이로 태어난 주제에 남들을 다 무시하면서 왜 '좋은 놈'으로 치부되는 건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 별 것 아닌 것에 왜 이렇게 흥분하는지 스스로도 알 수가 없지만... 

그래도 주인공은 착하고 예뻐야 하는 법이라(이건 고전소설이니까!) 모로이인 리사는 남들보다 더 뛰어난 외모와 특출난 능력의 소유자다. 그리고 옆에는 열정적이고 아름다운 뱀퍼인 나, 로즈가 있다. 자신들도 그것을 잘 알고 있고! 

로즈는 리사 덕분에 '어둠의 세계를 경험'하였고, 그로 인해 리사의 마음 속에 들어갈 수 있고 위기 상황에는 함께 그것을 느끼기 때문에 수호인으로서는 최고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리사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알아챈 세력이 무서워 둘은 도망치게 되었고, 멋진 디미트리에 의해 뱀파이어 아카데미에 잡혀오면서 또 타인의 욕망에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로즈는 2년간의 공백 때문에 디미트리에게 특별 지도를 받게 되고 그러는 중에 로맨스가 싹트는 매우 상투적인 이야기로, 이야기를 좀 더 재밌게 한다. 게다가 선생과 제자, 또 인생의 숙명적인 임무 때문에 사랑할 수 없는 사이여서 사람에 따라서는 애절한 러브스토리이다. 

최근에 뱀파이어 영화가 슬슬 나오기 시작하더니 이제 열풍인가보다. 뭔가 핏기 없고 멕아리도 없는 그들은 일단 너무 예쁘고 잘 생겼고(이상하게도 뱀파이어 중에는 못생긴 애들이 없다. 뭐 원래 뱀파이어도 없으니 만드는 사람 마음이겠지?) 거기다 성격도 까칠하니, 기본적으로 그들은 매력있는 캐릭터다. 게다가 꼭 목을 물어 피를 먹는 행위는 대단히 섹시하게 느껴진다. 나쁜 놈이라도 매력있으면 용서되는 게 이 세상의 이치니까. 

 내가 생각하기에 뱀파이어는 인간에 기생하는 똑같이 나쁜 놈들인데, 거기에도 착한 놈이랑 나쁜 놈이 있다니까 황당했다. 어이 없는 설정에 반항을 하며 읽고 있는데 이건 그냥 고전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은 (특출나며) 착하다. 꼭 나쁜 놈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그러나 결국은 착한 놈이 이기는 해피엔딩.   

나쁜 놈들은 꼭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결론도 안나고 내용 파악도 안 되는 현대 소설에 싫증이 난 독자, 소녀 취향의 로맨스를 좋아하는 독자, 그냥 뱀파이어가 좋은 독자라면 읽고 싶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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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세계문학세트>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 - 스페인·라틴아메리카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후안 룰포 외 지음, 김현균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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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스타 K, 서인영의 카이스트... 등 요즘은(예로 든 것은 요즘 것도 아니다..흑ㅜ) 공중파 방송을 넘어서 케이블 방송까지 보지 않으면 인터넷이고 사회 생활도 힘들어졌다. 나같이 아날로그적인 사람에게는 점점 더 힘든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아직 어린 나이지만 드라마는 거의 안 보고 예능 프로도 개콘과 1박2일 정도만 보는 나에게는 이런 대화 주제가 나오면 뻘쭘하게 앉아 있는 것이 은근 고역이다. 

가끔 우연한 기회에 케이블 방송을 볼 때가 있는데 그 자극적인 소재와 내용을 보고 깜짝 놀란다. 뭐 그렇다고 내가 건전한 인간 것 만은 아니지만. 시청률이 1%만 나와도 소위 '대박' 이라는데 그 정도는 해줘야 시청률이 좀 나와준다나? 욕은 하면서도 이상하게 땡기는, 바로 이 맛 아닙니까아~~? (아 세태를 비판하려고 쓴 건 아니었는데...우짜지) 아무튼 요즘이 대놓고 싼티(!)나는 컨셉이 유행이라 그런지, 이상하게 자극적이라 기분은 뭐한데 채널은 안 돌아가게 만드는 것도 하나의 재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스페인, 라틴 아메리카 문학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그 강렬한 이미지와 환상적인 내용으로 하여, 다른 나라보다도 꼭 읽어보고 싶었다. 제목도 제일 강렬했다. 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무려 따옴표도 있다!)  

창비에서 문학 전집을 얼마나 야심차게 준비했는지 몰라도 내용이 꽤 알차다. 사실 미국이나 영국아니면 생소한 작가들이 많은데 작품 앞 장에 작가의 약력과, 그 다음 장에는 간단하지만 큰 도움이되는 작품해설도 있다. 또 작품 뒤에는 <더 읽을거리>라고 해서 관심있는 사람은 더 읽어볼 수 있게 작품도 추천해 놓았다. 번역 상황까지 친절히 알려줘서, 아직도 목마른 이에게 조금이나마 갈증 해소를 시켜줄 수도 있는 일이다. 작품 선정은 말 할 것도 없이, 좋다. 

요즘은 그 나라 언어가 발음되는 소리대로 표기하는 것이 표기법의 관행인지, 대체로 된소리로 표기된 것이 많았는데 뭔가 이국적이라 읽는 재미도 더 컸다. 레오뿔로 알라스, 삐오 바로하, 이그나시오 알데꼬아..... 작가의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이국적이다. 된소리는 어떻게 들으면 촌스럽지만 그만큼 강렬하고 동물적이라고나 할까. 마술적이고 환상적인 내용도 더 동물적(?)이어서 매력적이다. 

이 중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작가가 마르께스가 아닐까 생각한다.<거대한 날개 달린 상늙은이>는 범상치 않은 제목처럼 내용도 범상치 않다. 제목대로 거대한 날개 달린 상늙은이가 해안가에 사는 가난한 부부에게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지고, 그로 인해 돈을 버는 내용이다. 이 부부는 입소문을 타고 구경 오는 사람들에게 관람료를 받아 단기간에 부자가 된다. 그러나 곧 부모 말을 안들어서 거미가 된 여인에게 밀려 늙은이는 대중의 눈에서 벗어난다. (이건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거라고 하는데 이런 분석없이 읽어도 상당히 재미있다!) 그리고 그 늙은이는...... 

어쩜 이렇게 아이같이 생각할 수 있을까. 문득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학급 문집에 쓴 소설이 생각났다. 아직도 가족에게 회자되어 놀림감이 되는 소설... 내용은 차마 너무 창피하여 밝힐 수 없다. 

아, 왜 케이블 방송이 자극적인 걸 추구하는지 그 이유를 이제서야 알았다고 했는데...  

19편의 엄선된 단편 중에서 유난히 기억에 남는 것은, 글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다가와서 잘 잊혀지지 않는 것이었는데, 그런 것이 자극적인 내용이었던 것이다. 살인, 질투에 눈 멀어 행하는 치기어린 행동... 뭐 이런 것들.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글도 많았음에도 읽고 나니 쉽게 잊혀졌다. 내 감수성이 이런가보다. 쩝. 

루벤다리오의 <중국 여제의 죽음>은 조각가 남편과 아름다운 아내(수집품 인형같이!) 사이에 있었던 일이다. 남편은 동양 문화의 이국적인 매력에 심취해 있었고 예술에 탐닉하였다. 아내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취미가 비슷한 친구가 중국에서 보내온 선물을 받게 된다. 그것은 도자기로 만든 중국의 여제였다.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 장인의 섬세한 솜씨에 감동받은 그는 급기야 사면에 유리를 씌워 놓고 날마다 감상한다. 아내는 그때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에 의욕이 없었고 밥도 잘 먹지 않았다. 남편이 다른 연인 때문에 그를 버린 것이다. 그리고 아내는 그 여인을 부셔버린다. 말 그대로 부셔버린다. 

아 무서워..... 이 부부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이 걱정되었다. 정신병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데. 

<태만의 죄>는 정말 겨우 3장이 되는 단편인데 그만큼 강렬하다. 한마디로 '못난 놈'에 대한 이야기지만 사람은 밥만 먹고 살 수 없다는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양부모가 죽고 자신을 거두어주었던-정말 밥만 먹여주고 그의 재능은 깡그리 무시했던- 외삼촌에게 길러진 남자는 어느 날, 한 때 동급생이었던, 지금은 변호사인 친구를 만난다. 친구는 여자같이 이상하게 야들야들한 손가락으로 그에게 담배를 건넨다. 남자는 순간 참지 못하고 외삼촌에게 달려간다. 그리고...... 

뭐 재능을 안 키워 준 외삼촌이 원망스러울 수는 있으나 자신도 태만의 죄를 저질렀으니, 그 돌은 비단 외삼촌에게만 던져질 것은 아니겠다. 

 

그 밖에도 정말 괜찮은 단편들이 많다. 책이 잘 안 읽힐 때나 장편소설만으로 너무 질릴 때 한편씩 읽으면 기분전환에도 좋을 것 같다. 서정적이고 차분한 내용들도 음미하면서 읽어봐야겠다. 아무튼 꽤 신경을 많이 쓴 문학전집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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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시선>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한낮의 시선
이승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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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서평단이 되고 처음으로 책을 받았다. 처음 받은 책에 뭔가 양파스럽게(?) 생긴 표지의 그림도, 분명 공들여썼을 제목의 서체도, 한 손으로 들어도 무겁지 않은 책의 무게도 모두 마음에 들었다. 기뻐하며 엄마한테 막 자랑을 했다. 엄마는 제목을 물어왔고, 나는 한낮의 시선이야,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엄마는 대뜸, 한낮의 시선이라... 뜨겁겠구나, 라는 말을 했다. 

책을 읽기 전이라 대충흘리며 넘어갔는데 읽다보니 정말 그 시선은 뜨겁고, 그래서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그래서 거기에 순응해야 할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비록 나를 파멸에 이끌지라도(그것도 알지라도) 결국 그것을 행할 수밖에 없는 것. 그러니까 이건 운명에 관한 이야기이다.

무슨 얘기냐 하면, 생활력 강한 홀어머니와 아무 문제 없이 살고있는 대학원생인 나는 결핵에 걸려 요양차 한적한 곳으로 내려가게 된다. 거기서 은퇴한 심리학과 교수를 만나고 갑자기(갑자기..라고 해야할지) 아버지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사실 그는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애틋하거나 그립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갑자기 그 존재를 인식하게 된 순간, 어쩔 수 없이 그를 찾게 된다.   

연가시는 메뚜기 배 속에서 기생하는 생물이다. 연가시를 품고 있는 메뚜기는 양지바른 곳에서 죽는 것이 아니라 물가를 찾아간다. 그건 연가시가 숙주인 메뚜기를 그곳으로 이끈 것이다. 기생충한테 끌려가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그런 사람이 또 있었나부다. 페루 출신 영화감독은 '소명'이란 이름의 촌충이 그를 서점과 영화관에 가게 하고 책을 읽게 하고 토론하게 했던 것이다. 

"...... 촌충만을 위해 먹는 것이 아니다. 그는 먹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먹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먹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촌충의 욕망은 그의 욕망과 구별되지 않는다. 바르가스 요사는 말한다. 촌충과 그는 이미 한몸이 되어 버린 거라고. 애초에 촌충이 몸 안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p.89 

인구가 몇 안 되는 군기지 옆의 작은 읍같은 곳에서 그는 아버지를 대면한다. 가장 먼저는 포스터 전단지에서. 그는 기호 2번이었다. 선거가 사흘밖에 안 남은 날(굳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무작정 유세장에 가서 자신의 이름을 밝힌다. 그는 한순간 움찔하였지만 비정한 남자답게 주위 사람들과 똑같은 미소를 보낸다. 그날 밤, 수상한 남자 세 명이 와서 그 전말을 물어보고 간다. 다음 날, 바로 전단지가 뿌려진다. 그의 아버지는 야망을 위해 조강지처와 그 자식을 버린 비정한 남자로 쓰여진다. 

산책로에서 우연히 만난 그는 "타이밍이 좋지 않다...."고 말할 뿐이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이 그를 찾아와 그의 아버지는 이미 강하게 그 내용을 부정했고, 전단지에 있는 내용을 직접 부정해달라고 한다. 환영받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부정당하고 만다. 그는 아버지가 아니라 비정한 남자였을 뿐이다. 그럼 혼자 한낮의 시선을 느낀 것 뿐일까. 결국 그는 아버지를....... (대충 예상되시겠지만 알아서 읽으세요...ㅎㅎ) 

아버지로 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이 소설에도 나오지만- 요르한 파묵의 소설에서처럼 아버지와 함께 있는 지붕 아래서 이성과 잠을 자거나, 그를 죽이는 것 뿐이다. 남자는 사춘기가 지나면 아버지도 경쟁상대로 인식한다고 하니(정말일까??) 후자의 방법이 더 후련하긴 하겠다. 그러나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이 우뚝 선 경우는 자기가 다시 아들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은 염두해 두어야겠다.(현대 문화가 그렇다는 얘기는 어디서 들었더라..? 그래서 노인들, 자신의 육체가 늙는 것을 못 견뎌서 자살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던데... 아 <소립자>구나.)  

소설의 주인공은 어떤 것을 택했는지, 그래서 해방이 되었는지, 그게 좋았는지 나빴는지는 독자의 몫이겠다.

   

내가 나이도 좀 안 되고 성별도 달라서 그런지 사실 이해가 딱 되는 느낌은 아니었다. 아니면 내용보다는 주인공의 의식이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어서 읽기가 조금 버거웠는지도 모르겠다. 좀 더 살아봐야 이해가 갈 듯.... 아무튼 부모로부터 해방되는 건 무진장 어려운 일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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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립자 열린책들 세계문학 34
미셸 우엘벡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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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후반에 나온 책이다. 2000년대 후반인 지금의 현실과도 아주 비슷한 게 놀라울 따름이다. 몸이, 특히 젊은 몸이 이상화되는 것은 거의 똑같다. 허벅지가 건강해보인다는(진짜 이유는 뭐였더라... 아무튼 기분 나쁜 이유였는데...?) 이유로 꿀이라는 접두사가 붙고, 소녀들이 나와서 엉덩이를 흔드는 것도 지금은 아주 익숙한 풍경이다. 

책 표지 뒷면에 쏟아진 찬사를 보면 "다른 소설들이 토끼를 사냥하고 있을 때 이 소설은 거대한 사냥감을 노리고 있다. - 줄리언 빈스" 라는 것이 있는데, 나도 이 말이 가장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쉽게 쉽게 읽히는 흔한 소설과는 달리, 읽는데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과학, 철학, 종교, 성.... 이 모든 것을 다루었지만, 사실... 다 이해가 가는 건 아니다. 다만 자본주의, 성의 해방이 원래 우위를 차지하고 있던 자들에게만 더 유리해졌다거나, 젊고 아름답지 않은 몸을 견디지 못하는 것은 지금 상황이랑 딱 맞는 것 같아서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소설은 논문이 아니므로 이런 얘기를 주제별로 줄줄 한 것은 당연히 아니나니! 큰 줄기를 이끌어나갈 주인공은 어떤 형제다. 그것도 아버지가 다르고 아름답고 자유분방한 어머니를 둔 형제. 이 조건만 봐도 두 사람의 자아형성이 쉽지 않았으리라는 촉이 오지 않는가.  

나중에 이름을 제인을로 바꾼 자닌은 너무나 아름다운 여자였고 전쟁 후에 크게 바뀐 변화에 적극적으로 응했다. 그 전에 털복숭이 원숭이처럼 생긴 의사 사이에서 형 브뤼노를 낳았고, 신여성(?)이 된 후에는 유능하고 잘생긴 다큐멘터리 감독 사이에서 미셸을 낳았다. 다만 그녀는 제 자식들을 방치해버린 것이 문제였다. 책임감은 강하지 않지만 그래도 죄의식은 있었던 아비들은 각자의 어머니에게 맡겨버리고, 형제는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게 된다. 

태어나서 부터 어미의 손을 타지 못한 형제는 성에 대한 대응방식이 무척이나 다르다. 형 브뤼노는 성에 과도한 집착을 하는데, 아버지를 빼닮은 외모로 시장(?)에서 경쟁력은 그리 뛰어나지 못하여 항상 똥 마려운 강아지 마냥 전전긍긍하는 인물이다. 반면 미셸은, 사후에 과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되는- 태생적으로 순수히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역시 아버지를 닮아 잘생긴 외모에도 불구하고 성에는 도무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모름지기 5살까지가 인간의 성격을 형성하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심리학에서는 침을 튀겨가며 강조하여, 아기 때에 엄마의 행동이 그렇게 중요한지는 알겠는데.... 이 형제의 반응은 이렇게 다른 것을 보면 결국은 천성인가?? 

작가가 하려는 말은, 당연하겠지만, 이런 건 아니다. 서구의 몰락(작가는 확실히 지금의 세태에 대해서 이렇게 보는 것 같다.)에 동참하거나, 혹은 동참하지 않는 개인도 어쨌든 사회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 그것이 제목 '소립자'가 뜻하는 것은 아닐까.  

소립자는 과학용어인데 물질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한다. 원자 같은 건가... 소설 안에 나오는 과학에 관한 얘기는 부끄럽게도 거의 이해하지 못 했는데, 그냥 이것이 뜻하는 바는 개인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특히, 두 형제 중에 비교적 멍청하게(?) 느껴지는 브뤼노의 경우, 그 욕망이 사회의 욕망과 매우 흡사한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헷갈리는 것은 소립자의 성질이 물질의 성질을 결정하는 것인지, 물질의 성질이 소립자의 성질과 그저 같은 것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런... 과학을 모르니. 정말 너무 치우치게 공부하며 살아왔구나..쩝! 

최근에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사탄스러운 엽기적인 범죄들은 정말 세상이 몰락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하게 만든다. 실제로 사탄숭배자라는 집단은 정말 사탄이라는 어떤 영적인 존재를 신봉한다기 보다는 물질숭배(페티시즘)와 섹슈얼리티의 숭배의 결합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오 하나님 맙소사. 

나도 내 욕망이 그저 사회의 욕망에 따라 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 반추해보며 리뷰를 마친다. 

 

그냥 덧붙이는 말) 열린책들에서 나오는 미스터노 세계문학은 정말 쵝오! 일단 다양성의 측면에서 소설의 선정은 두 말할 것도 없고, 특히 책의 무게와 크기가 감동스럽다. 가벼우니 얼마나 좋냐구요. 요즘 말하는 '착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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