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립자 열린책들 세계문학 34
미셸 우엘벡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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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후반에 나온 책이다. 2000년대 후반인 지금의 현실과도 아주 비슷한 게 놀라울 따름이다. 몸이, 특히 젊은 몸이 이상화되는 것은 거의 똑같다. 허벅지가 건강해보인다는(진짜 이유는 뭐였더라... 아무튼 기분 나쁜 이유였는데...?) 이유로 꿀이라는 접두사가 붙고, 소녀들이 나와서 엉덩이를 흔드는 것도 지금은 아주 익숙한 풍경이다. 

책 표지 뒷면에 쏟아진 찬사를 보면 "다른 소설들이 토끼를 사냥하고 있을 때 이 소설은 거대한 사냥감을 노리고 있다. - 줄리언 빈스" 라는 것이 있는데, 나도 이 말이 가장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쉽게 쉽게 읽히는 흔한 소설과는 달리, 읽는데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과학, 철학, 종교, 성.... 이 모든 것을 다루었지만, 사실... 다 이해가 가는 건 아니다. 다만 자본주의, 성의 해방이 원래 우위를 차지하고 있던 자들에게만 더 유리해졌다거나, 젊고 아름답지 않은 몸을 견디지 못하는 것은 지금 상황이랑 딱 맞는 것 같아서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소설은 논문이 아니므로 이런 얘기를 주제별로 줄줄 한 것은 당연히 아니나니! 큰 줄기를 이끌어나갈 주인공은 어떤 형제다. 그것도 아버지가 다르고 아름답고 자유분방한 어머니를 둔 형제. 이 조건만 봐도 두 사람의 자아형성이 쉽지 않았으리라는 촉이 오지 않는가.  

나중에 이름을 제인을로 바꾼 자닌은 너무나 아름다운 여자였고 전쟁 후에 크게 바뀐 변화에 적극적으로 응했다. 그 전에 털복숭이 원숭이처럼 생긴 의사 사이에서 형 브뤼노를 낳았고, 신여성(?)이 된 후에는 유능하고 잘생긴 다큐멘터리 감독 사이에서 미셸을 낳았다. 다만 그녀는 제 자식들을 방치해버린 것이 문제였다. 책임감은 강하지 않지만 그래도 죄의식은 있었던 아비들은 각자의 어머니에게 맡겨버리고, 형제는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게 된다. 

태어나서 부터 어미의 손을 타지 못한 형제는 성에 대한 대응방식이 무척이나 다르다. 형 브뤼노는 성에 과도한 집착을 하는데, 아버지를 빼닮은 외모로 시장(?)에서 경쟁력은 그리 뛰어나지 못하여 항상 똥 마려운 강아지 마냥 전전긍긍하는 인물이다. 반면 미셸은, 사후에 과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되는- 태생적으로 순수히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역시 아버지를 닮아 잘생긴 외모에도 불구하고 성에는 도무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모름지기 5살까지가 인간의 성격을 형성하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심리학에서는 침을 튀겨가며 강조하여, 아기 때에 엄마의 행동이 그렇게 중요한지는 알겠는데.... 이 형제의 반응은 이렇게 다른 것을 보면 결국은 천성인가?? 

작가가 하려는 말은, 당연하겠지만, 이런 건 아니다. 서구의 몰락(작가는 확실히 지금의 세태에 대해서 이렇게 보는 것 같다.)에 동참하거나, 혹은 동참하지 않는 개인도 어쨌든 사회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 그것이 제목 '소립자'가 뜻하는 것은 아닐까.  

소립자는 과학용어인데 물질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한다. 원자 같은 건가... 소설 안에 나오는 과학에 관한 얘기는 부끄럽게도 거의 이해하지 못 했는데, 그냥 이것이 뜻하는 바는 개인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특히, 두 형제 중에 비교적 멍청하게(?) 느껴지는 브뤼노의 경우, 그 욕망이 사회의 욕망과 매우 흡사한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헷갈리는 것은 소립자의 성질이 물질의 성질을 결정하는 것인지, 물질의 성질이 소립자의 성질과 그저 같은 것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런... 과학을 모르니. 정말 너무 치우치게 공부하며 살아왔구나..쩝! 

최근에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사탄스러운 엽기적인 범죄들은 정말 세상이 몰락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하게 만든다. 실제로 사탄숭배자라는 집단은 정말 사탄이라는 어떤 영적인 존재를 신봉한다기 보다는 물질숭배(페티시즘)와 섹슈얼리티의 숭배의 결합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오 하나님 맙소사. 

나도 내 욕망이 그저 사회의 욕망에 따라 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 반추해보며 리뷰를 마친다. 

 

그냥 덧붙이는 말) 열린책들에서 나오는 미스터노 세계문학은 정말 쵝오! 일단 다양성의 측면에서 소설의 선정은 두 말할 것도 없고, 특히 책의 무게와 크기가 감동스럽다. 가벼우니 얼마나 좋냐구요. 요즘 말하는 '착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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