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시선>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한낮의 시선
이승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서평단이 되고 처음으로 책을 받았다. 처음 받은 책에 뭔가 양파스럽게(?) 생긴 표지의 그림도, 분명 공들여썼을 제목의 서체도, 한 손으로 들어도 무겁지 않은 책의 무게도 모두 마음에 들었다. 기뻐하며 엄마한테 막 자랑을 했다. 엄마는 제목을 물어왔고, 나는 한낮의 시선이야,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엄마는 대뜸, 한낮의 시선이라... 뜨겁겠구나, 라는 말을 했다. 

책을 읽기 전이라 대충흘리며 넘어갔는데 읽다보니 정말 그 시선은 뜨겁고, 그래서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그래서 거기에 순응해야 할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비록 나를 파멸에 이끌지라도(그것도 알지라도) 결국 그것을 행할 수밖에 없는 것. 그러니까 이건 운명에 관한 이야기이다.

무슨 얘기냐 하면, 생활력 강한 홀어머니와 아무 문제 없이 살고있는 대학원생인 나는 결핵에 걸려 요양차 한적한 곳으로 내려가게 된다. 거기서 은퇴한 심리학과 교수를 만나고 갑자기(갑자기..라고 해야할지) 아버지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사실 그는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애틋하거나 그립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갑자기 그 존재를 인식하게 된 순간, 어쩔 수 없이 그를 찾게 된다.   

연가시는 메뚜기 배 속에서 기생하는 생물이다. 연가시를 품고 있는 메뚜기는 양지바른 곳에서 죽는 것이 아니라 물가를 찾아간다. 그건 연가시가 숙주인 메뚜기를 그곳으로 이끈 것이다. 기생충한테 끌려가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그런 사람이 또 있었나부다. 페루 출신 영화감독은 '소명'이란 이름의 촌충이 그를 서점과 영화관에 가게 하고 책을 읽게 하고 토론하게 했던 것이다. 

"...... 촌충만을 위해 먹는 것이 아니다. 그는 먹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먹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먹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촌충의 욕망은 그의 욕망과 구별되지 않는다. 바르가스 요사는 말한다. 촌충과 그는 이미 한몸이 되어 버린 거라고. 애초에 촌충이 몸 안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p.89 

인구가 몇 안 되는 군기지 옆의 작은 읍같은 곳에서 그는 아버지를 대면한다. 가장 먼저는 포스터 전단지에서. 그는 기호 2번이었다. 선거가 사흘밖에 안 남은 날(굳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무작정 유세장에 가서 자신의 이름을 밝힌다. 그는 한순간 움찔하였지만 비정한 남자답게 주위 사람들과 똑같은 미소를 보낸다. 그날 밤, 수상한 남자 세 명이 와서 그 전말을 물어보고 간다. 다음 날, 바로 전단지가 뿌려진다. 그의 아버지는 야망을 위해 조강지처와 그 자식을 버린 비정한 남자로 쓰여진다. 

산책로에서 우연히 만난 그는 "타이밍이 좋지 않다...."고 말할 뿐이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이 그를 찾아와 그의 아버지는 이미 강하게 그 내용을 부정했고, 전단지에 있는 내용을 직접 부정해달라고 한다. 환영받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부정당하고 만다. 그는 아버지가 아니라 비정한 남자였을 뿐이다. 그럼 혼자 한낮의 시선을 느낀 것 뿐일까. 결국 그는 아버지를....... (대충 예상되시겠지만 알아서 읽으세요...ㅎㅎ) 

아버지로 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이 소설에도 나오지만- 요르한 파묵의 소설에서처럼 아버지와 함께 있는 지붕 아래서 이성과 잠을 자거나, 그를 죽이는 것 뿐이다. 남자는 사춘기가 지나면 아버지도 경쟁상대로 인식한다고 하니(정말일까??) 후자의 방법이 더 후련하긴 하겠다. 그러나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이 우뚝 선 경우는 자기가 다시 아들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은 염두해 두어야겠다.(현대 문화가 그렇다는 얘기는 어디서 들었더라..? 그래서 노인들, 자신의 육체가 늙는 것을 못 견뎌서 자살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던데... 아 <소립자>구나.)  

소설의 주인공은 어떤 것을 택했는지, 그래서 해방이 되었는지, 그게 좋았는지 나빴는지는 독자의 몫이겠다.

   

내가 나이도 좀 안 되고 성별도 달라서 그런지 사실 이해가 딱 되는 느낌은 아니었다. 아니면 내용보다는 주인공의 의식이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어서 읽기가 조금 버거웠는지도 모르겠다. 좀 더 살아봐야 이해가 갈 듯.... 아무튼 부모로부터 해방되는 건 무진장 어려운 일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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