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 쇼쇼쇼 - 가식의 식탁에서 허영을 먹는 음식문화 파헤치기
스티븐 풀 지음, 정서진 옮김 / 따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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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먹는 대로 되는 건 아니다. You Aren't what You Eat'


책을 보니 '먹는 대로 된다. You Are What You Eat' 의 책과 동명의 프로그램을 패러디 한 것으로 보인다. (질리언 매키스 저)


쿡방과 먹방을 찬양하는 나로선 매우 뒤를 돌아보게 한 책이었다. 뭐 최현석 쉐프를 나의 '구루'같은 걸로 삼은 건 아니지만 짬뽕을 하나 사도 이연복 쉐프 얼굴이 붙어 있는 것을 별 고민도 없이 카트에 척척 넣어버린다. 자신을 위해 요리 하나 할 줄 모른다는 남자에게 정이 확 떨어져 버린 일도 있고. 그냥 눈만 점점 높아진다고 하기엔 내 머리속에서 '요리'라는 것 자체가 어느 순간 인생에서 뭔가 중요한, 굉장한 개념이 되어버렸다.  


내가 꽤 좋아하는 영화 [줄리&줄리아]를 보면서 나도 우리나라에서 어떤 요리 멘토이자 삶의 멘토를 누구로 삼아야하나를 심히 고민한 일도 있었다. 요리를 하는 행위 자체로 인생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고 할까. 특히 예상치도 못한 재료로 환상의 맛을 낸다고 하니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으랴고.


스스로 대단히 강단있고 줏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그렇지 않았다. 다 이런 것도 분위기에 휩쓸려서 그런 거라 생각하니 조금 부끄러워진다. 갑자기 어느 날 부턴지 렌틸콩과 커민 가루를 주문하고 아보카도 같은 것을 사서 멕시칸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과카몰리를 집에서 하게 되었고 파스타 면 삶는 냄비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바보상자의 노예가 되고 있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특히 식재료를 잘 아는 사람이 참 멋있어 보여서 음식 미시사같은 책도 틈틈이 찾아보았다. 토마토가 한 때는 얼마나 에로틱한 채소였는지 아스텍 문명에서 최면과 주술로 먹었다는 코코아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당시 어떤 맛이었는지 상상을 펼쳐보기도 하고 어딜가야 먹을 수 있는지 찾으면서 보낸 시간은 꽤 된다.


고든 램지의 [키친 나이트메어] 에서 얼굴 주름을 한껏 잡으며 F***를 연발하는 고든 램지의 카리스마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고 월급을 꽤 많이 받는 것 같은 대학 동기 Y가 페이스북에 이태원과 강남 등지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포스팅한 것을 몇 번이고 염탐하기도 한다. 참고로 이 친구는 모델처럼 깡 말랐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어떤 음식, 요리를 모르면 좀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요리책을 하나하나 사다가 결국 엄청 두꺼운 하드커버 요리책까지 구입한 상태다. 원래 살 때 즈음에만 해도 그 요리책을 한 장 한 장 펼치며 거품기를 들고 밀가루 범벅이 된 꼴로 오븐과 식탁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나를 상상했으나 결국, 요리책은 비싼 커피 컵 받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사실 나 정도의 사람은 '푸디스트'라고 부르기는 매우 미미한 수준인 걸 안다. 한 때 유기농 재료와 이국적인 재료를 좀 찾았다고 해서, 가정 요리의 달인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가졌다고 해서 '음식 미치광이'처럼 비춰지기는 싫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고개를 조금씩 숙일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먹는 것에 왜 이렇게 집착을 하는지. 예.. 저도 알아요. 저 좀 병적인 거!


종교는 없지만 7가지 죄악 중에 탐욕, 탐식이 들어간다. 음식을 섹스에 비유하는 것도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로마 도덕주의자들이 섹스에 대한 혐오감과 과식에 대한 혐오감을 하나로 취급해 "매음굴과 기름투성이 요릿집은 당신의 열망을 자극한다."(p.101)했다는데 나도 가끔은 먹는 것에 집착하는 게 스스로 좋지 않게 생각될 때가 있다.


물론 책은 나같은 사람을 비난하기 보단 스스로 '신'의 경지에 오른 것 같이 구는 일부 셰프들과 똥폼 잡는 푸드 블로거, 외식 사업과 방송의 실체를 발가벗기는 데 있겠지만 왠지 뜨끔하긴 했다. 정신차려야지.


밑줄긋기 해본다. 몇 가지 뜨끔한다면 깨달아야 한다. '먹는 대로 되는 건 아니다. You Aren't what You Eat' 라고.


그들은 건강식품 환자가 "먹는 행위에서 정체성과 영성을 추구하는 성향"을 보인다고 했다. 꼭 푸디스트처럼 말이다. "건강식품 강박증 환자는 음식을 생각하며 보내느 시간이 상당이 많다." 이 역시 푸디스트와 마찬가지다. 강박 증세를 보이는 이들의 먹는 행위는 "다른 사람의 생활 방식, 식습관보다 자신이 우월하다고 느끼도록 한다." 푸디스트의 먹는 행위 또한 마찬가지다. (p.31)

이제부터는 `스프링 램`에 관한 어휘 문제. 스프링 램이 봄에 먹는 어린 양고기를 뜻했던 적이있다. 도세트 혼이라는 오래된 영국 품종인 암양은 가을에 새끼를 낳았고, 그 새끼는 겨울 동안 충분히 자라서 부활절 무렵에 딱 먹기 좋게 컷다. 하지만 대다수 품종의 양은 봄에 새끼를 낳아 겨울에 먹어야 했다. 혼란스럽게도 이제 사람들은 일 년 내내 스프링 램을 먹길 원해서 업계에서 말하는 스프링 램은 "풀밭에서 자라다가 한해의 특정 계절이 아니라 적당한 무게가 되었을 때 도살되는" 양에 불과하다. 이런 점을 모두 감안하면 `스프링 램`이라는 명칭은 결코 믿을 수 없다. 지구상 어딘가에서 적어도 4월쯤에 초원을 즐겁게 뛰어다니던 양의 고기가 접시 위에 놓여 있다는 기분 좋은 이미지를 떠올리려는 이름일 뿐이다. (p.74)

이렇게 메뉴에서 요리 이름은 미각적인 즐거움, 입에 닿는 흥미로운 느낌, 자연과의 교감, 윤리적 책임, 요리에 응용된 과학, 편안한 분위기에서 기꺼이 제물로 마쳐진 고기, 혐오스럽지 않은 이름의 생선을 약속하며 심지어 야유까지 담아낸다. 이런 모든 전략을 펼칠 때 메뉴는 매우 입에 발린 방식으로 손님이 식별력이라는 미묘한 안목을 갖춘 듯 느끼게 한다. 메뉴는 문학적 산물로 실제로 영향력이 있다. (p.81)

푸디즘의 또 다른 면은 이국적인 것에 대한 선호이다. 이국풍 음식에 대한 찬미는 주류의 가스트로포르노가 아니라 일종의 고금 페티시 성애물이라 하겠다. <펫덕 요리책>에 나오는 요리법의 매력이라 할 만한 것은, 누가 봐도 혐오스러운 조합(달걀과 베이컨 아이스크림, 올리브와 가죽 퓌레)으로 이루어진 참신함이 전부이다. (p.99)

유기농 식품에 대한 몰두는 쾌락적 폭식을 겨냥한 비난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현대 푸디스트의 가장 야심찬 방식을 보여 주는 사례일 뿐이다. 먹을 것에 대한 푸디스트의 병적인 집착이 단순한 방종이 아니라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변화하는 방식이라 주장하는 것이다. 올바른 음식을 선택하는 것이 윤리적인 행위라는 것. 따라서 식사 준비를 위해 장을 보는 것은 한 개인의 도덕적 우월함을 행사하는 것이다.(p.173)

음식은 상상 속으로의 여행이 아닐지라도 위로를, 특히 경제적으로 궁핍한 시기에 위로를 준다. 다른 모든 상황이 예측할 수 없이 돌아갈 때, 음식은 기댈 만한 위안물이다. 리처드 고드윈 기자는 삼십대 친구 중 상당수가 아파트를 살 경제적 여유가 없고, 아이를 가지는 시기도 미루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대신 그들은 페이스북에 자신이 먹은 음식 사진을 올린다. 그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관대하게 보자면, 음식을 통해 다른 곳에서 부족한 위로를 받으려는 게 아닐까." (p.192)

현대의 푸디즘은 희귀한 이분법으로 나뉘어 있다. 엄청난 노력이거나 최소한의 노력. 그 중간이랄 것은 없다.(p.201)

이는 음식 문화의 격이 떨어진 게 아니라 (오히려) 노동 문화의 질적 하락을 보여 주는 것이다. 영국과 다른 유럽에서 많은 사람이 매일 저녁 집에 돌아와서 요리를 하고 싶어도 요리할 시간은 물론 정신적 에너지도 내지 못한다. 인스턴트식품을 먹으면서 혐오스럽고 무지하다는 소리까지 들으니 이러한 존재론적 상처에 모욕까지 끼얹는 셈이다. (p.203)

`딜리아의 클래식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재미 삼아 요리해 보는 기회를 가지려고 추가로 돈을 내야 하는 현실을 보여 준다. 특히, 지적 노동이 증가하는 일반적인 근무 환경에서 무형의 생산물을 다루며 소외감을 느끼는 이들이라면 더욱 그런 기회를 원할 것이다.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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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 2016-02-15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쿡방, 먹방의 인기몰이에 `음식관음증`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고 하죠.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보고 음미하는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기쁨을 주는 행위임에는 분명합니다. 저도 자칭 미식가입네 하고 다녔지만 요즘은 너도나도 먹는 것에 집착을 하다보니 맛집 찾는 것도 피곤하고 그냥 가볍에 평가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그냥밥`으로 한끼를 해결하고 싶기도 합니다.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는 행위가 도리어 -맛있는 것을 먹지 않으면 안될것같은- 압박을 주기 때문이랄까요.
어찌되었든 굳이 맛있는 것을 먹고자 하는 열망에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요^^
과도하게 집착하지만 않는다면.
무엇이든 마찬가지겠지만

뽈쥐의 독서일기 2016-02-16 01:21   좋아요 1 | URL
그쵸~ 저도 음식을 진짜 좋아하긴 하는데 가끔은 쿡방이니 먹방이니 좀 과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먹방같은 건 영국 잡지에서 `korean food porn`으로 소개된 적도 있다고 해요. 저도 희안한 곤충 먹는 방송은 찾아본 적도 있어서 뜨끔합니다요.ㅎㅎㅎ
어느 순간 궁극의 한끼를 찾아먹는 것도 조금 지겹다는 생각이 들어요. 스트레스도 받고.. 음식이 단순히 먹은 행위만은 아니라서 그런지 여러모로 의미 부여가 되는 것 같아요.
책벌레님 말씀에 힘 입어 이제 죄책감 없이 맛난 음식을 호로록~ 하겠습니다.ㅎㅎ

cyrus 2016-02-15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 연휴에 TV 채널을 돌리는데 쿡방 프로그램만 나오길래 아예 TV를 꺼버렸습니다.  쿡방 프로그램만으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기가 어렵습니다.

뽈쥐의 독서일기 2016-02-15 17:45   좋아요 0 | URL
그죠 명절에 기름에 목욕한 전에 질리는데다 또 남은 전탕(?)해먹어야 되나 싶은데 쿡방에서는 막 럭셔리 음식에 남은 전으로 막 햄버거 만들어먹으라 그러고...ㅎㅎ
요즘 쉐프들도 연예기획사에 속해 있는 경우도 꽤 있어서 그런지 예능감 넘치는 분 아니면 불편하게 방송하는 게 느껴져서 짠하기도 하더라구요. ㅠㅠ

cyrus 2016-02-15 17:46   좋아요 1 | URL
남은 설 음식... 오늘 점심은 떡국이었습니다. ㅋㅋㅋ

서니데이 2016-02-15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뽈쥐님 ,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뽈쥐의 독서일기 2016-02-15 20:31   좋아요 1 | URL
네 고맙습니다. 서니님도 따뜻한 저녁 시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