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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유다이 ㅣ 언틸유아마인 시리즈
사만다 헤이즈 지음, 박미경 옮김 / 북플라자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내가 한때 좋아하던 프로그램 [실제상황]을 요즘은 잘 안 본다. 같이 보자고 권유했던 언니가 독립해서 나가서이기도 하지만 에피소드에서 점점 '떡밥'을 전혀 던지지 않는 근본 없는 전개에 싫증이 났다고나 할까. 수 목요일 늦은 시각에 하는 프로라 피곤한 와중에도 내기를 걸면서 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어째 날이 갈수록 도무지 예상이 가야 말이지. 히치콕이 "관객에게 갑자기 폭탄이 터지게 하지 말라"는 식으로 말한 것도 같은데… 하지만 이 작가가 히치콕이 창안한 맥거핀 기법을 잘 다룬다는 소문이 난 사람이라 더는 무슨 말을 못하겠다.
하루에 2~3개의 에피소드를 방영해야 하는, 가만히 있어도 만족할만한 시청률이 나오는 재연프로그램에 완벽한 플롯을 갖춘 내용을 크게 기대하는 것도 우습긴 하다. 하지만 에피소드 초반에 시원하게 범인을 고르는데 재미를 느끼는 시청자가 회를 거듭할수록 승률이 떨어진다면 김이 빠진다.
뭐 이런 이유가 아니라면 [실제상황]은 소재도 현실에서 뽑아온 이야기라 퀴즈프로처럼 보지 않으면 꽤 볼만한 방송이다. 보험사기나 결혼사기, 꽃뱀이나 제비, 장기 팔이, 도시 괴담 등등 생각보다 우리 사회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 흥미롭기도 하면서 소름이 쫙 끼치는 사례가 많다. 알.고.보.니. 갸갸 나쁜X 이었다는 배신의 역사는 누구나 가슴속에 하나씩 가지고 있으니까. 수많은 에피소드에 변하지 않는 기본 줄기는 처음부터 나쁜 얼굴을 하는 악인은 없다는 것. 반전에 반전을 거듭할 때도 있지만 허술한 구성으로도 충분히 무서움을 주는 이유는 다들 이런 경험 하나쯤 갖고 있어서일 것이다.
[실제상황]을 언급하는 이유는 [비포유다이]에서 아주 잘 만든 실제상황의 에피소드의 향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사만다 헤이즈 [언틸유아마인]을 이미 읽어서 맥거핀 기법인지 뭔지에 면역이 되어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전작도 범인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고 재밌게 읽었다. 주위 사람들한테 추천해보니 바로 범인은 누구누구지! 라고 말을 해서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오히려 이번 작 [비포유다이]가 더 재밌었다. 아카데미형 작가보다 생활밀착형 작가가 좋은 이유는 바로 있을 법한 사건을 쉽고 생생하게 그려낸다는 점이다. 보통 ‘사회파’라고도 부르는 것 같다. 누가 살인마인지 밝혀낼 생각 없이 작가가 그리는 사회에 즐비한 문제점을 음미하며 읽으니까 훌륭한 한 편의 사회학 보고서를 본 것도 같다. 자폐증, 왕따, 교육열로 자식을 괴롭히는 부모, 탈선하는 아이들의 문제는 어느 사회라도 있는 공감할 수 있는 문제에다 흉흉하게 연쇄 자살 사건이라니!
흥미로운 줄거리로 눈길을 잡아 놓고 막상 다른 이야기로 변죽 울리는 게 살짝 얄밉긴 하지만 여러 명의 시점에서 사건을 보거나 발설할 수 없는 자신의 부끄러운 비밀을 아주 조금씩 풀어내서 독자를 잡아두는 것은 작가의 특기이다.
집단 따돌림 방식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발전과 함께 더 악랄해지고 불륜의 형태도 점점 이상하게 변하는 세태도 잘 드러난다.
거의 400페이지에 가까운 책이 술술 넘어가는 것도 지루할 틈에 많은 등장인물의 목소리로 말하면서 열심히 단서를 찾게 하는 재주가 있기 때문이다. 스릴러, 추리물의 특성상 마음 편히 휴식을 취하면서 읽는 경우가 많은데 책을 가벼운 종이로 만든 게 마음에 든다. 책을 가볍게 만드는 추세로 가면 좋겠다고 늘 바란다.
다만, 로레인 경위가 사건을 수사하는 내용으로 두 번째 작품이라고 하는데 딱히 이 형사부부의 매력을 나는 잘 모르겠다. 정의감에 찬 유능한 형사부부는 그저 열심히 일하고 사회의 정의를 위해 힘쓰는데 흡사 CSI가 시즌을 거듭할수록 달라진 시대 분위기와 다양한 인종, 계층을 의식해서 요원들이 어색한 대사를 뱉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가령 매춘부 살해 사건조사 중에 “난 이런 섹스 산업에 반대해.” 라고 말하면서도 바로 뒤에 “물론 그녀들이 하드코어한 직업에 종사한다고 생각하지만” 같은 대사를 재빨리 덧붙인다.
CSI의 형사들보다 미국 드라마 [멘탈리스트]의 형사와 패트릭이 더 매력적인 이유는 과거의 상처를 기억하며 살며 범죄자라도 도덕적 우위에 서서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그들이 훨씬 인간적이고 푸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의 상처는 작업에 더 방해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사회파 작가이다 보니 앞으로도 또 로레인 형사 부부를 등장시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렇다면 부디 좀 더 매력적인 캐릭터로 탄생시켜주길...
*참고로 [실제상황]의 관전 포인트는 범죄자를 연행해갈 때 언제나 흥분하는 형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