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3년쯤 전이었을 거다. 밤늦게 친구가 찾아왔던 건...
이 친구는 나와 그다지 친하지도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그날밤 친구의 출현이 생뚱맞다는 느낌이 없었다
전화를 받고 집앞 골목을 나가는데
하얗게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우린 몇 발자국을 앞에 두고 느닷없이 먹먹해졌다.
별로 친하지 않다는 거리감이 갑자기 들이닥친 순간
우린 그렇게 한참을 뻘쭘하게 서 있었고
친구는 "그냥 지나가다 생각이 나서..."라고 말을 흐렸다.
그러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그 친구의 작은 어깨가 슬펐다.
친구의 발자국 위로 하얗게 눈이 쌓였고
올려다본 골목등의 그 눈부신 빛가운데 눈이 춤을 추고 있었다.
별로 친하지도 않았고, 잘 알지도 못했던 그 친구가 잠시 친밀하게 느껴졌었다.
추위에 양손으로 팔을 감싸고 비비며 집으로 들어왔다
그냥 그 뒷모습에 안아줄껄 하는 묘한 후회도 생겼다.
그 후로 난 그 친구를 한번도 보지 못했다.
그냥 먼 친구로 부터 아주 가끔 흘러가는 소식도 두어번 듣고 끊겼다.
가끔 사람과 사람 사이엔 오작교처럼 잠시 다리가 놓였다 사라지는 것 같다.
그 친구는 아마 외롭거나 심심하거나
그런데 그 날은 마땅히 찾을 친구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냥 눈나리는 날 골목을 비추는 전등을 생각하니 그 친구가 생각났다.

우린 어떤 과정을 통해 친해지고 멀어지는 걸까?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카페인중독 2006-10-27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어쩔땐 친한 친구가 되는데 어쩔땐 흐지부지 멀어지기도 해요...모두 우연일까요? 가끔 생각하면 참 당연하면서도 또 참 이상해요...^^
 
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장바구니담기


"좋은 물건을 만들면 팔린다는 말, 거짓말이란 거 진작부터 알고 있는데도 현실에서 맞닥뜨리면 괴롭지"
"응, 맞아."
"대신 작품은 남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긴 한데, 그것도 틀린 말이야. 팔린 물건이 아니면 남지도 않아."-278쪽

"호시야마 씨가 쓴 '내일'을 읽었어요'" 마유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머뭇머뭇 말을 꺼냈다.
예기치 못했던 말이라 아이코는 어떻게 반응을 보여야 할지 망설여졌다
"너무 재미있었는데, 그 말을 해야 할 거 같아서."
"아.......". 아이코는 할 말을 잃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 독자가 있다.
"저, 소설 읽고 운 건 태어나서 처음이라"
나는 구제 불가능한 멍청이다. 독자를 잊고 있었다니.
마유미는 화가 난 것 같은 표정이었다.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쑥스러운 모양이다. 귀엽다
"그것뿐이에요. 그런 거 또 써주세요."
"응 쓸게. 오늘부터 쓸게요."
마유미가 종종걸음을 치며 사라졌다. 뭐야, 조금 더 얘기하지. 저런 붙임성 없는 것 같으니라구.
그렇지만 감격했다. 일부러 쫓아 나와 말해준 것이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인간의 보물은 말이다. 한순간에 사람을 다시 일으켜주는 게 말이다. -30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가끔 쓸데없이 무겁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삶에 대한 심각함을 잃어버리면 우리 자신의 존재마저도 그렇게 가벼워지는 것처럼, 그래서 결국 그 존재의 의미도 없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우린 불필요하게 삶에 무거움을 채워 넣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삶에 대해 생각이 많고 깊어서라기 보다 내가 어떻게 보일까 하는 것 때문에, 나의 삶은 가치 있는 것이란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것 저것 짊어지다 결국 폭삭 주저 앉게 되는 것만 같다.

공중그네를 읽으며 느낀 건 바로 그것이였다. 정신병이라는 건 사실 내가 분수에 맞지 않게 짊어진 삶의 무게였다는 것......사실 우린 그걸 다 짊어질 필요는 없었다. 그건 어떤 위대한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내 존재가 꽤 쓸모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쓰잘데 없는 노력일 뿐이었다. 그래서 결국 그 무게로 무너지고 마는......현실에서는 절대 만날 수 없을 것만 같은 정신과 의사 이라부가 오히려 더 유쾌하고, 어이없지만 그런 식의 치료를 어느새 인정하게 되는 것도 이라부가 그런 쓸데 없는 무게를 포기하고도 잘 살고 있는 일종의 모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가 별 볼일 없거나 그가 의미가 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기때문이다. 환자가 야구선수면 야구를 하고 공중그네를 타는 플라이어면 공중그네를 타고......그는 같은 행위를 다른 방식으로 행한다. 전혀 무게감없이 유쾌하게, 잘 하려고 애쓰지도 않고, 못하지는 않나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말이다. 그는 스스로 만들어 결국 억매이게 되는 '내가 생각하는 나'라는 자신만의 환영이 없다.

사실 우리는 몹시도 약한 존재가 아닌가? 그 존재를 인정 받고 싶고, 뭐든 잘해내고 싶은......사실 그렇게나 많이 떠 안고 낑낑거리는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어쩌면  고작 '괜찮아'라는 한마디의 말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애쓸 필요 없다는, 그냥 너인 것으로도 충분하다는......이라부의 주사 한방처럼, 인생도 사실 그런 말 한방이면 해결될지도 모른다. '괜찮아, 그러니까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충분해'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만두 2006-10-27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이라부의 주사 한방이면 괜찮을거라는 생각이 들죠^^

카페인중독 2006-10-27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라부의 주사나 한방 맞았으면 좋겠어요...^^

치유 2006-10-30 0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안에 나를 가두는 일부터 그만두어야 겠어요..
내게도 이라부의 엉뚱한처방이 필요해요..

카페인중독 2006-10-30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보면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의 눈 때문에 쓸데없이 자기를 가두곤 해요...
그런 바보스러움이 유난히 더 바보스럽게 느껴지는 요즘이에요...^^
 

나를 괴롭히는 것들...

기억상실증에 가까운 기억력, 커피에 대한 집착
유통기간이 지나가는 음식들, 어느새 지저분해지는 집,
불면증, 쉽게 걸리는 감기,
어딘가 항상 파스를 원하는 노인성 신체,
때론 너무 치밀하기도 하고 때론 너무 둔감하기도한 성격,
쉽게 중독되고 쉽게 싫증내는 성격, 갑자기 사라지는 논리성,
갑자기 찾아오는 무기력증,
편집증적 모으기 취미, 아무곳에나 부딪히기
요사스런 인간관계, 가끔 재수없는 나...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가지런히 접힌 신문과 그 위의 돋보기 안경, 빨래하는 물소리,
최영미의 글들, 미선이의 Drifting, 엘리엇 스미스의 죽음,
챔피언스의 blue Whale, 왕가위 영화들,
빔 밴더스의 밀리언달러 호텔, 꼬로의 모르트퐁텐의 추억,
사랑한다 말하지 못했던 시간들, 점점 잊혀져 가는 얼굴,
눈부시게 투명한 아침, 눈나리는 날의 가로등빛,
유리창에 맺히는 빗방울

 

내가 좋아하는 것들...

샤갈의 에펠탑의 신랑신부, 나른한 오후의 게으름,
바람부는 날의 벚꽃, 이마에 닿는 서늘한 바람,
모네의 수련연작들, 비오는 날의 커피, 델리스파이스의 노래들, 
시트콤 프렌즈, 섹스 앤드 더 시티, 애니매이션 공각기동대 TV판,
Elliott Smith 의 앨범 XO, Muse 의 앨범 Absolution,
Swan Dive 의 앨범 June,  
이한철의 우리는 하늘을 날았다, 신랑의 괜찮아~ ^^;;;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 로즈티 향기,
향연기의 매끈한 곡선, 만화 세상이 가르쳐준 비밀,
팀버튼의 크리스마스의 악몽, 애니매트릭스,
홍콩르와르의 부활 무간도, 레오까락스의 나쁜피,
Mr.children의 뮤직비디오 くるみ , 도자기로 만들어진 향꽂이들,
고양이의 우아한 보행, 덕수궁 돌담길

 

내가 즐기는 것들...

최영미와 이주헌의 글들, 19세기말 20세기초의 그림들,
각종 차(茶)와 향들, 영화, 음악, 시트콤, 애니매이션, 드라이브,
오버, 유치함과 갈굼의 미학, 시체놀이, 오밤중의 산책
끄적대기, 여기저기 집적대기, 코드맞는이와 수다떨기

 

그냥 수필을 읽다 생각나서요......여러분은 무엇을 좋아하시고 싫어하시는지...   ^^;;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카페인중독 2006-10-26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울꺼에요...ㅎㅎ...지금 제가 누리니 알겠더이다...ㅋㅋ

카페인중독 2006-10-26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곱게 자란들 뭐 어떱니까...^^
이런...근데 알라딘에선 딸랑 그것 하나더이다...ㅋ

마법천자문 2006-10-26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는 건 따스한 햇살과 은은한 달빛, 초롱초롱한 별빛. 싫어하는 건 당나라당, 닭나라당, 딴나라당, 돼지우리당, 신문지 쪼가리들, 조용기, 김홍도, 네오콘, 스타벅스...

해리포터7 2006-10-26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눈나리는 가로등의 슬픔을 보셨군요..저도 골목길 가로등으로 그걸 본적이 있다지요..생생히 기억나네요..그날의 찬공기...따스할것같은 가로등밑...수필을 좋아하시는군요..전 많이 안읽어봤는데..

카페인중독 2006-10-26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루이드님, 후후...님의 느낌이 물씬 풍겨 나옵니다...^^
사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러구 이야기합니다...

카페인중독 2006-10-26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터님, 사실 저거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을 보다가 생각나서 써봤더랬지요...^^

물만두 2006-10-26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억상실증... 동감입니다 ㅡㅡ;;;

날개 2006-10-26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님처럼 저렇게 쓸수 있는게 하나도 생각이 안난다는 것이랍니다..으흐흑~ㅠ.ㅠ

mong 2006-10-26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즘...
numb3rs, 넬의 새앨범, audioslave, placebo, stereophonics
하늘사진찍기, 틈만 나면 커피 마시러 다니기,
다른사랑방 가서 수다떨기, 초콜릿 하나씩 까먹기,
재미난 소설 조금 보다가 다른 소설보고 낄낄 거리기 등을 즐기고 룰루랄라거리지요 ^^

치유 2006-10-27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아침엔 바짝 마른 욕실 바닥이 좋다는 ㅠ,ㅠ


건우와 연우 2006-10-27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에 혼자마시는 커피, 공원에서 노는 아이들 보며 벤치에서 책읽기, 연우랑 건우 손잡고 걷기...요즘 제가 즐기는 것들이지요.^^

카페인중독 2006-10-27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동병상련의 아픔이...흑흑...
날개님, 설마요~ 에잉~ ^^
몽님, 넘버스...액션치고는 참 따뜻해서 좋아요. 수도 좋구요...저 수학 참 좋아했는데...믿거나 말거나지만요...ㅋ, stereophonics...좋죠...하늘사진이라 요새 찍기 딱 좋겠어요...^^
배꽃님, 누가 범인인가요...ㅋ
건우와 연우님, 새벽커피...아...마셔본지 너무 오래되었어요...^^ 하지만 시퍼런 새벽을 녹이는 새벽커피...갑자기 그리워요. 내 아이의 손을 잡고 거니는 건 어떤 기분일까요?
 



Peter Ellenshaw - Glass Castle



Peter Ellenshaw - We Can Fly

저 아름다운 유리성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이거였다.
"오마나~ 미끄러워서 어찌 다닌다지? 공중부양이 필요할 꺼야...ㅋㅋ"
홀라당 깨는 말이라고 했지만 난 어려서부터 현실적(?)이었다.
어릴적에도 난 공주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 옷은 마음이 혹할 정도로 이뻤지만 상당히 불편해 보였다.
하루정도는 예쁘게 입을 있지만 매일은 못입을꺼라고 생각했다.
난 차라리 예쁘게 옷을 입은 공주를 매일 보는
궁전을 날라다니는 새쯤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어려서부터도 그 조그만 머리를 굴리던 소위 현실주의자였다.
그래서 동화책을 읽으면 엉뚱한 질문도 많았다.
어린게 얼마나 발라당 까져 보였을꼬...ㅎㅎ

"성이 갖고 싶니? 날고 싶니?"
그걸 질문이라고 해? 당연히 날고 싶지...
어쨌거나 낯익은 그의 그림, 깜찍하여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