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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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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물건을 만들면 팔린다는 말, 거짓말이란 거 진작부터 알고 있는데도 현실에서 맞닥뜨리면 괴롭지"
"응, 맞아."
"대신 작품은 남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긴 한데, 그것도 틀린 말이야. 팔린 물건이 아니면 남지도 않아."-278쪽

"호시야마 씨가 쓴 '내일'을 읽었어요'" 마유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머뭇머뭇 말을 꺼냈다.
예기치 못했던 말이라 아이코는 어떻게 반응을 보여야 할지 망설여졌다
"너무 재미있었는데, 그 말을 해야 할 거 같아서."
"아.......". 아이코는 할 말을 잃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 독자가 있다.
"저, 소설 읽고 운 건 태어나서 처음이라"
나는 구제 불가능한 멍청이다. 독자를 잊고 있었다니.
마유미는 화가 난 것 같은 표정이었다.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쑥스러운 모양이다. 귀엽다
"그것뿐이에요. 그런 거 또 써주세요."
"응 쓸게. 오늘부터 쓸게요."
마유미가 종종걸음을 치며 사라졌다. 뭐야, 조금 더 얘기하지. 저런 붙임성 없는 것 같으니라구.
그렇지만 감격했다. 일부러 쫓아 나와 말해준 것이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인간의 보물은 말이다. 한순간에 사람을 다시 일으켜주는 게 말이다. -3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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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안톤 슈낙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11월
구판절판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의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빛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게다가 가을비는 쓸쓸히 내리는데 사랑하는 이의 발길은 끊어져 거의 한 주일이나 혼자 있게 될 때.-.쪽

거울처럼 잔잔하게 잠든 호면에서 보트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 보라. 끌어올린 노에서 이따금 물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구원의 물방울. 알아보기도 힘든 자디잔 물체와 들릴 듯 말 듯한 소음. 그것은 은빛으로 반짝이며 스러져 가는 것이다.
-.쪽

무엇보다도 이삭처럼 원통형의 꽃차례를 가진. 더부룩하니 솜털이 나 있는 가냘픈 줄맨드라미, 어린 고사리손은 이 꽃이 만발할 때면 위에서 아래로 꽃차례를 따라 더듬어 보며 시간 가는 줄을 몰랐었다. 만개했을 때 그 꽃은 흡사 빨간 여우 꼬리처럼 보였고, 초록빛 솜털 외투를 입고 딱딱해져 있는 조그마한 꽃의 표면은 어린이의 손가락에 구리빛 꽃가루를 묻혀 주는 것이었다.
-.쪽

이 나무는 우리의 인생보다 더 위대한 거다. 이 나무의 고향은 거대하고 말없는 자연이란다. 자연은 다시 돌아오는 것이야. 자연은 이런 나무들이 심어진 모든 대지와 더불어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또한 자연은 모든 도시를, 프랑크푸르트와 아샤펜부르크를, 뷔르쯔부르크와 뮌헨을 가로질러 흐르는 따스하게 끓어오르는 강물과 함께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이렇게 자연이 돌아오면 불현듯. 그야말로 야생으로 돌아간 친구들이 대문 앞에 서서 창문 안으로 돌팔매질을 하게 되는 것이다.-.쪽

건초의 향내 속에서, 이미 죽음에 의해 베어지고 망각의 세계에 묻혀 버린 그 옛날의 풀을 베던 무리들이 아물아물 부동해 온다. 온통 햇볕에 그을러 거무튀튀한 얼굴의 기다란 사슬. 교회의 축성일이면 클라니넷을 불었던 그들. 나무 껍질의 담배통에서 흙 묻은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냄새 맡는 담배를 집어올리던 그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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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에 대한 명상 민음 오늘의 시인 총서 22
장정일 지음 / 민음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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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으면 좋겠다 살다가 지친 사람들
가끔씩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계절이 달아나지 않고 시간이 흐르지 않아
오랫동안 늙지 않고 배고픔과 실직 잠시라도 잊거나
그늘 아래 휴식한 만큼 아픈 일생이 아물어진다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14쪽

쓸쓸하여도 오늘은 죽지 말자
앞으로 살아야 할 많은 날들은
지금껏 살았던 날에 대한
말없는 찬사이므로.-24쪽

......화물들 화물들 지상에 퍼질러 놓은 화물들
누가 그것을 옮기든 상관없이 화물이 쉬는 법이라곤 없는 것이다-37쪽

중북부의 소도시. 어딜 가나
한국의 찻집에는 중년들이 있다.
정치적 예언가 역할을 즐기는 중년 신사가 있어
개혁 세력, 후계자 또는 한 재벌 기업의 어이없는
무너짐에 대하여 진단하고 의심하고 예언한다.
그 어딜 가나 한국에는 책임감 없는 논객이 있다.
세상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세상 사람 모두가 부르주아가 되면 될 것이라고
호탕하게 껄껄거리는 중년이 있다.
한국의 어느 도시엘 가나 문제가 있는 곳에
문제의 중년이 있고 추문이 있다. 나이 먹은 추물이-74쪽

우리들은 잃어버린 게 없다
모든 것은 너희들이 분실했으므로
더 이상 우리는 빼앗기지도 않으리
실과이래 자라난 우리는 망명세대
다가서지 않은 미래로부터도
쫓겨났다-82쪽

살아 있다는 까닭 외에 생업이라는 수식어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인지
밀대와 빗자루가 작은 내 생활의 가게를 쓸고 있을 때
쳐들어오는 것이다. 허벅지에 꿀을 가득 묻힌 벌떼같이
낮게 웅웅거리며 황금색 상호로 번뜩이는
왕국의 차들이 오는 것이다. 어디선가 이루어진
거대한 공업으로부터 그러나 철저히 은폐된
공업이 자신 스스로를 판매하기 위해
여섯대의 차를 나누어 타고 사방의 길 끝에서 길을 끌고 몰려 온다.그렇다 여기 이 도시의 한쪽을
제일 먼저 흔들어 깨우는 것은 태양이 아니라
신선한 우유를 만재한 냉동트럭 밀려드는 상품트럭-96쪽

대포 소리 맞춰 엉덩이 흔들 수는 없으니까
중동이 불타든 말든
그들은 엘비스를 듣는 거지
등뒤로는 최신 무기를 몰래 내어 팔면서
하카 하카 버닝 러브!

배고픈 젊은이들이여
영어를 못하는 무식한 제3 세계
젊은이들이여
엘비스를 들으며 교양을 쌓자
(함께 입을 모아, 큰소리로)
하카 하카 버닝 러브!-1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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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6-10-19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들은 잃어버린게 없다..다만 분실했을뿐...
그랬으면 좋겠다...그랬으면 좋겠어라...

건우와 연우 2006-10-19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햄버거에 대한 명상이 개정판인가요? 아님 제 기억이 잘못된건가요?
제 머리속엔 침침한 건물 한쪽에서 몇몇과 이 시집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희미한 기억이...

카페인중독 2006-10-19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꽃님...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그러나, 그들은 절 일깨우기도 하지만 가끔 우리 젊은이들은 너무 오만한 것은 아니었나 돌아보게도 합니다...
건우와 연우님 개정판 맞습니다...^^
 
하이쿠와 우키요에, 그리고 에도 시절 - Art 020
마쓰오 바쇼 외 지음, 가츠시카 호쿠사이 외 그림, 김향 옮기고 엮음 / 다빈치 / 2006년 3월
절판


雲を呑んで花を吐くなるよしの山
구름 삼키고 꽃들을 토하누나, 요시노산아 - 부손-42쪽

花の陰あかの他人はなかりけり
꽃그늘 아래선 생판 남인 사람 아무도 없네 - 잇사-46쪽

食うて寢て牛にならばや桃の花
먹고 누워서 소가 된들 어떠리, 복사꽃 피었네 - 부손-54쪽

我がためか鶴食み殘す芹の飯
나를 위해 학이 먹다 남겨두었나, 봄날 미나리 - 바쇼-70쪽

落花枝にかえるとみれば胡蝶かな
떨어진 꽃잎 가지로 돌아가네, 아, 나비였구나 - 모리다케-72쪽

我星はどこに旗寢や天の川
내 별은 어디서 한뎃잠 자나, 여름 은하수 - 잇사-170쪽

夜竊ニ蟲は月下の栗を穿シ
한밤중 몰래, 벌레는 달빛 아래 밤을 갉는다 - 바쇼-200쪽

こがらしや岩に裂け行く水の聲
겨울 찬바람아, 바위에 갈라터지는 추운 물소리 - 부손-2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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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6-10-16 0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먹고 누워서 소가 된들 어떠리...복사꽃 피었네..히히히..재미나네요..
학이 남겨둔 봄날의 미나리... 멋집니다..

카페인중독 2006-10-16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사람들과 그 정서가 비슷한 것 같아요.
먹고 누워서 소가 된들 어떠리...ㅋ...제 생활을 콕찝힌 것 같은 찔림에...
유난히 가슴에 와닿았더라나 어쩌나 그렇습니다. ^^;;;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 잠언 시집
류시화 엮음 / 열림원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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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이 놀고, 덜 초초해 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10쪽

아무리 가파른 길이라도
나 이전에
누군가는 이 길을 통과했을 것이다
아무도 걸어가 본 적이 없는
그런 길은 없다.-31쪽

사랑은 주기 전에는
사랑이 아니니까.-50쪽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마더 데레사-51쪽

우리가 최상의 진리라고 여기는 것은
절반의 진리에 불과하다.-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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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6-09-20 0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님도 이 시집을 옆에 끼고 있나요??

카페인중독 2006-09-20 0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넘 좋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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